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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의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의 전작인 <90년생이 온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해서 유명세를 탔던 책이다. 필자는 [그건 부당합니다]만 읽어 봤는데, 책을 읽고 나니 전작도 사봐야 겠다는 확신을 주는 좋은 책이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를 편가르기 하고 요즘 젊은 세대들을 소위 MZ 세대라고 부르면서 다각도로 분석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묘하게 사안을 단순화 시키고,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과장하는 느낌을 지우지 않을 수 없다.

 

 

젠더 이슈에 있어서도 갈라치기를 노골적으로 하더니, 이젠 세대간의 갈라치기까지 이뤄지는 건지 삐딱한 시선(+섬세한 시선)으로 주의, 감시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yes24 에서 발췌한 사진

 

누군가에겐 이와 같은 분열이 정략적으로 이득이 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건 정치,사회 공부를 조금만 해봐도 너무도 쉽게 유추 가능한 사안이다.

 

그런 측면에서 젊은 세대들이 이야기하는 '공정' 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때론 '불공정'에는 침묵하면서, '불이익'은 못 참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젊은 친구들에 지나치게 우경화 되어가는 모습도 보이긴 하지만 이들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며 세상 속에서 균형감을 회복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현 세대가 공무원,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

조직 문화에 대한 필연적 거부감.

저출산, 비혼주의가 만연한 이유.

통제력을 잃어 가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이슈에 대해 열광하는 듯한 모습.

태생적인 불평등에 대한 논의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하나같이 주옥같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이 책의 저자와 다른 의견을 지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섬세한 필지와 나름 객관적인 자료들을 동원하여 자신이 서술하고자 하는 내용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잘 쓴 책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섬세한 사회 지식을 습득한 지성인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는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모양새로 유지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어느 정도의 노력을 투입하면, 100프로 비례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나와주면 참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세상을 살아 보면 50프로 노력을 쏟아 부었다 해서 50프로까진 아니더라도 20~30프로라도 보상을 받는 시스템은 아닌 것 같다. 운이 나쁘거나, 여건이 좋지 않으면 50프로의 노력을 쏟아 부어도 0프로로 남기는 게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노오오오력 하라는 식의 말.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식의 메시지는 현 시대에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결국 근원적으로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 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따라올 수 밖에 없다.

 

이 책으로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한 뒤에는, 근원에 있는 물음들에 답을 하기 위해 추가적인 사유를 동반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인간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건 부당합니다], 임홍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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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적 가치관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획일화되어 있고, 한 줄로 서열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학벌, 직장, 직위, 사는 동네, 차종, 애들 성적...삶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남들 눈에 띄는 외관적 지표로 일렬 줄 세우기를 하는 수직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완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논리상 한 명도 있을 수 없다. 그 모든 경쟁에서 모두 전국 일등을 하기 전까지는 히딩크 감독 말처럼 늘 '아직 배가 고플' 테니 말이다. 모두가 상대적 박탈감과 초조함, 낙오에 대한 공포 속에 사는 사회다."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중에서-

 

문유석 판사나 나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이런 생각들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도 있다. 김찬호 사회학 박사는 우리 사회의 수직적 가치관과 그로 인해 모든 면에서 일상화된 경쟁 심리의 부작용을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 속에서 찾는다. 그것이 "모멸감"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yes24 에서 발췌한 사진

 

"한국인들은 사소한 차이들에 집착하면서 위세 경쟁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모멸을 주고받기 일쑤다. 못생겼다고, 뚱뚱하다고, 키가 작다고, 너무 어리다고, 나이가 많다고, 결혼을 안 했다고, 이혼했다고, 심신에 장애가 있다고, 가난하다고, 학벌이 후지다고, 비정규직이라고, 직업이 별로라고, 영어를 못한다고...

 

모멸을 주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기준으로 열등한 집단을 범주화하고 멸시하는 통념이나 문화의 위력도 만만치 않다. 일부 소수의 '잘난' 사람들만을 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박대 또는 천대를 받는 듯 느낀다.

 

-김찬호 [모멸감] 중에서-

 

세상을 수직적으로 보는 이들은 우월감 또는 열등감을 바탕에 깔고 다른 사람을 대한다.

우월감으로 인해 마트 고객센터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열등감으로 인해 타인이 이룬 성공을 시기하고 깎아내린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비상식적인 갑질이 난무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수직적이기보다는 수평적인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 대다수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월등히 높다.

 

어떤 이는 문유석 판사나 김찬호 박사, 혹은 나 같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이상주의자라고 비판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식으로든 서열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냐며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이 대체적으로 그런 식의 서열에 무감한 문화를 가진 나라는 이 지구상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런 문화권 안에서는 모두가 각자 다른 재능을 가지고 각기 다른 모습과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룬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구성원 모두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나는 그런 곳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불행히도 20대의 내가 겪었던 한국은 그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그래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를 들을 때면, 나는 한국에서 겪은 쓰디쓴 기억들이 떠올라서 씁쓸해진다.

 

이렇게 유행어는 종종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미국 영어 문화수업], 김아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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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이야기 호머의 오디세이를 보면, 오디세우스와 그의 전사들은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그리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들은 위험한 에게해를 항해한다. 수많은 위험을 마주하면서 항해하지만 아마도 사이렌의 섬을 지나는 것보다 더 도전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사이렌은 미래를 알려주겠노라고 약속하는 노래를 부르며, 해안선을 따라 있는 바위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노래는 각각의 선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유혹적이지만, 노래에 도취되어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은 불가피하게 불행한 숙명을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러한 급박한 위험에 대해서 미리 키르케의 조언을 들었기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밀랍으로 자신의 귀를 막으라고 명령한다.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었지만, 그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으라고 명령한다. 그래서 배가 그 섬의 해안선을 무사히 다 지나갈 때까지는 자신을 풀 수 있는 그 어떤 상황도 없게 만든다.

 

배가 그 섬을 지나가는 동안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에 완전히 매혹되어서 부하들에게 자신을 풀어달라고 간청하지만 부하들은 오디세우스가 배 바깥으로 뛰어들어서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거절한다.

 

오디세우스와 사이렌의 노래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은 스스로의 정신력이 갖고 있는 어두운 측면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과 사람들은 언어적인 지식과 뒤얽혀 있다는 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창세기 이야기처럼 그 이야기는 언어적 지식의 양면성에 대해서 경고한다.

 

우리는 2개의 핵심적인 과정인 인지적 융합과 경험적 회피, 즉 인간 괴로움에 대한 '사이렌의 노래(Strosahl & Robinson, 2008)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경고를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

 

-[수용과 참여의 심리치료]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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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서 자기제거 행위는 다양한 목적에 의할 수 있지만 그 행위가 말로 주장하고 있는 목적은 대개는 감정, 기억, 생각에 대한 일상적인 어휘들로부터 나온다.

 

예를 들어 자살자의 노트를 조사해보면, 그 메시지들은 삶의 짐이 얼마나 막대한 가를 강조하고 있으며, 미래의 존재 상태(혹은 비존재 상태)가 그 짐들을 없애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Joiner et al., 2002)

 

비록 자살노트에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자살 행위에 대한 수치심이 빈번히 표현되어 있을지라도, 자살노트에는 견뎌내기에는 삶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점 또한 공통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Foster, 2003).

 

일반적으로 자살과 연결되어 있는 감정 그리고 자살과 연결되어 있는 보편적 생각 상태는 죄의식, 불안, 외로움, 슬픔이다. (Baumeister, 1990)

 

자살이라는 현상은 인간의 괴로움에 대한 순전히 증후군에만 기반한 관점의 한계와 결함을 보여준다.

 

 

자살은 증후군이 아니어서 뭐가 되었든 어떤 특정의 잘 정의된 증후군 명칭 아래로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많은 사람들을 말끔하게 범주화시킬 수는 없다.

(Chiles & Strosahl, 2004).

 

가장 심하게 '건강하지 않은' 형태의 활동이 대부분의 인간 삶에는 어느 정도까지 있지만 다른 종에는 없다면 우리는 분명한 결론, 즉 인간에게만 있는 무언가 때문에 자살을 하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보다 정확히 하자면 너무도 쉽게 그 정도까지의 심리적 괴로움에 도달하게 만드는 과정, 바꿔 말하면 인간의 심리에만 특유하게 있는 그런 과정이 있어서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현대의 정신병리학을 뒷받침하고 있는 연구 책략이 이 과정을 반드시 탐지해 내지는 않게 될 것인데, 그 이유는 이 연구 책략이 인간 행동의 소소한 일상에 특별하게 초점을 두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하나나 그 이상의 진단적 꼬리표를 부여할지라도, 정신병리학 분야의 연구에서의 진전이 워낙 미미하기 때문에 인간의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도처에 퍼져 있는가를 다루고 또 더 상세히 설명해야 하느라 우리가 많은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인간은 다 아파한다. 사실상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이다.

 

(나름 철학적 전제가 들어가 있는 치료 기법입니다. 실존주의 치료와도 일부 겹치는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수용과 참여의 심리치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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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이 인간 상태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자살이다. 고의적 선택에 의한 죽음은 분명 인간이 살면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놀랄 만큼 많은 사람이 한두 번쯤은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며, 그들 중 충격적일 만큼 많은 수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은 의식적이고 계획적이며 목적적으로 자신의 삶을 종결짓는 행위이다.

 

자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사실이 아주 분명하다.

 

[1] 자살은 인간 사회에서 어디에서나 발생한다.

[2] 자살은 인간이 아닌 다른 살아 있는 유기체에는 분명 없다.

 

자살에 관한 기존의 이론들은 이 두 사실 모두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고, 자살은 모든 인간 사회에서 다 보고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100,000명당 대략 11.5명의 사람이 실제로 매해 자살을 한다. (Xu, Kochanek, Murphy, & Tejada-Vera, 2010)

 

2007년의 경우 자살 사망자가 거의 35,000명이었다. 자살은 사실 유아나 아주 어린아이들에게는 발생하지 않으나, 학령기 초기에는 나타나기 시작한다.

 

 

자살생각과 시도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꽤 흔하다. 물질남용 및 정신건강서비스국(Substance Abuse and Mental Health Services Administration)에 의해 위탁된 최근 연구는 8,300만 명에게서 심각한 자살 생각에 대한 연간 귀속 비율을 조사해냈는데, 청소년들의 연간 자살 시도가 약 1.2%에 달했다.

 

물질남용과 관련된 발생 비율보다 더 높은 수준이었다.(Substance Abuse and Mental Health Services Administration, 2009).

 

평생 발생률에 대한 연구는 모든 사람의 약 10%는 어느 땐가는 자살 시도를 할 것이며 다른 20%는 자살생각과 싸우다가 결국은 자살을 성공시킬 수 있는 계획과 방법을 생각해낼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또 다른 20%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이 자살생각과 싸울 것이다. 그래서 전체 인구의 약 절반은 살아가는 동안 중간 정도에서 심각한 정도에 이르는 수준의 자살 위험성을 겪게 될 것이다. (Chiles & Strosahl, 2004).

 

자살 위험성을 '비정상'으로 본다면 이 수치는 설명이 잘 안 될 만큼 충격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우리 논의와 관련되어 있는 또 다른 사실은 자살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게서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일반화에 대한 몇 가지 과장된 예외가 주목되기도 하였지만, 조사해보니 그러한 예들은 맞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노르웨이 나그네쥐는 아마도 가장 고전적인 사례일 것이다. 나그네쥐는 개체수가 더 이상 유지 불가능한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집단 전체가 혼란스러운 양상으로 달리기를 시작하고 결국은 그 달리기로 인해 다수가 물에 빠짐으로써 죽음에 이른다.

 

자살은 단순한 죽음뿐만 아니라 그 행동의 의도된 결과로서의 개인적 죽음을 향해 마음을 움직이는 모든 심리적 활동까지도 다 포함한다.

 

나그네쥐가 물속에 빠지면 그 쥐는 기어나오려고 애를 쓰며, 기어나오는 데 성공하면 살아남는다. 그러나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살아났다가 그후 곧바로 다시 뛰어내리는 사람에 대한 수많은 입증 사례가 있다.

 

-[수용과 참여의 심리치료]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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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기술된 접근은 수용 참여 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또는 ACT 라고 불린다.

 

ACT는 항상 한 단어로 말하지, 개별 글자로는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A-C-T가 우호적인 연상을 거의 떠올릴 수 없는 E-C-T(전기 충격요법의 약자)와 비슷한 소리가 나기 때문일 것이며, 보다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ACT 라는 용어는 이 접근이 자기 삶 속으로의 적극적인 관여를 격려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ACT 관점에서는 인간의 괴로움이 통상적인 심리적 과정들, 특히 인간 언어를 포함하는 심리적 과정들에서 대부분 나타난다고 본다.

 

생리적인 측면에서의 기능장애가 있을 때조차도 (EX) 당뇨병이나 간질에서의 경우에서처럼), "좋은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고, 위대한 의사는 질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한다."는 금언은 유효한 교훈이다.

 

전술한 의견이 비정상적인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정상적인 과정은 분명 존재한다.

 

누군가가 뇌손상으로 괴로움을 겪고 그 결과로 기묘하게 행동한다면, 통상적인 심리적 과정만이 원인이 되어서 그 행동이 나타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뇌손상으로 발생한 결과를 다루는 데 그러한 통상적인 심리적 과정들이 여전히 관련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말이다.)

 

언젠가 조현병, 자폐증, 양극성 장애 등에 대해서도 위 의견이 맞는 것으로 입증될 수도 있다.

 

그 질환들에 대한 특유하고 민감한 생물학적 표지자가 없다는 점으로 입증되고 있는 바와 같이, 그 영역들에서 유기체 내 단일 병인론에 대한 실제 증거가 매우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심각한 정신질병들과 관련될 때조차도 ACT의 근간이 되고 있는 모형은 자기 반성적 언어와 생각 속에 박혀 있는 일상적 과정들이 실제로는 그러한 질병들과 연결되어 있는 핵심적 어려움들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더욱 자세한 증거가 필요하면 제13장 참조).

 

한 개인이 듣는 목소리가 아무리 많을지라도 혹은 그 사람이 경험하는 공황발작이 아무리 여러 번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하는 인간이다.

 

환각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하고 어떻게 말을 하든, 이를테면 환각은 환각 그 자체에 대해서보다는 건강하게 기능하는 것에 있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그리고 ACT 관점에서는 그 반응이 통상적인 심리적 과정에 의해서 주로 결정된다고 본다.

 

-[수용과 참여의 심리치료]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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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환자를 진료해 보면, DSM-5 분류체계과 매우 유용할 때도 있지만 상당히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진단 체계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 칼 포퍼가 말한대로 심리학에 기반한 지식들은 과학의 반열에 올리기가 어려운 건 아닐지 우려가 될 때도 있다. 유용성은 있으나, 이것만 가지고는 충분치 않다. 이게 정신의학 분야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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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청중 중 누군가가 즉각적으로 "바로 당신!" 이라고 큰소리로 답한다.

 

그러나 그 답은 틀렸다. 다음 소견들은 DSM-5 판에 대한 미국정신의학회 계획위원회 보고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Kupfer et al., 2002). 이 조직은 우리가 살고 있는 바벨탑을 세운 바로 그 조직이다.

 

보고서는 이보다 더 나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우리는 가장 혼란스러운 고백의 일부분을 강조하기 위해서 고딕체를 사용하였다.

 

 

그러한 증후군들을 타당화하는 일 그리고 공통된 원인론을 발견하는 일의 목표는 여전히 파악이 안 된 채이다. 여러 후보가 제안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DSM 에서 정의한 증후군 중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그 중후군을 확인해내는 데 특화된 실험실 표식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p. xviii)

 

각각의 증후군은 서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원인론을 대표하고 있다는 가설을 훼손시킬 정도로, 역학 연구와 임상 연구들은 장애 간에 극단적으로 높은 정도의 동반이환 비율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역학 연구들은 많은 장애의 경우 단기적인 진단적 불안정성의 비율이 아주 높음을 입증해 왔다. 치료가 특이성을 가지지 않는 것은 예외라기보다는 오히려 통례이다. (p. xviii)

 

대다수는 아닐지라도 조건과 증상은 정상적 행동과 정상적 인지 과정에 대해 다소 임의적으로 정의된 병리를 남발한 것인 경우가 많다. (p. 2)

 

DSM-IV 정의들을 연구자들이 맹종적으로 채택한 일은 정신장애의 원인론에 관한 연구를 방해해 왔을 수 있다. (p. xix)

 

DSM-IV 에 나오는 하나하나의 질병들이 실재하는 질병들이 맞다고 간주되는 순간이 오기 전에는, DSM-IV 안에서 질병들을 더 구체화시키는 것이 연구 발견들을 명료화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모호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p. xix)

 

현행 진단 패러다임 안에서의 그러한 모든 제한점은 DSM 에서 정의하는 증후군들을 다듬는 것에만 전적으로 초점을 두고 있는 연구가 결코 그 증후군들의 근원적 원인론을 밝히는 데는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근본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지금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방식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할 수 있다. (p. xix)

 

 

보고서는 정직했지만 DSM-5 초안이 발표된 것을 보면 정신과적 질병분류학을 통제하고 있는 DSM 이 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음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Frances, 2010)

 

 

진정으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는 점에서는 DSM 작업 집단은 옳았다. 이 책은 그들이 필요로 하던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방법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패러다임 전환은 우리의 내담자들 안에서의 우리의 분야 안에서의 그리고 우리 자신 안에서의 패러다임 전환을 말한다.

 

그러한 전환은 부분적으로는 추정적인 것이고, 행동적인 것이고, 경험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지적인 것이기도 하다.

 

더욱 유용하고 통합된 통합된 심리학을 만들어내기 위한 더욱 넓은 범위의 과학적 노력과 연결되어 있는 초진단적 통합 모형을 현장은 필요로 하고 있다.

 

-[수용과 참여의 심리치료]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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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단지 증후군적 사고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이 아니다.

 

예를 들어 긍정심리학은 공동체와 개인이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강점과 미덕을 연구함으로써 우리가 가지고 있는 초점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그렇게 해서 긍정 심리학은 이 책에서 우리가 발전시키고 옹호하는 접근에 많은 방법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우리 바로 눈앞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여러 형태의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있는 핵심적 차원의 과정들을 긍정심리학이 탐색할 때까지는 긍정심리학은 현행 시스템에 내재되어 있는 심각한 어려움들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

 

 

즉, 우리는 설명을 필요로 하고 있다.

 

건강한 것이 정상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임상제도(clinical establishment)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신건강의 영역에 접근해 오고 있는 중이고, 넓게 말하면 인간 괴로움의 영역에 접근해 오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로써 건강한 것이 정상이라는 가정은 마음의 고통 상태를 장애나 질병 신호로 보고 있다.

 

이러한 책략이 굉장히 효과적인 형태의 심리치료로 이어졌다면 우리가 반대할 이유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 괴로움은 어디에나 다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괴로움을 사제나 목사 혹은 랍비에게 맡겨야만 한다.

 

우리 임무는 임상적 증후군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바로 우리 내담자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그것을 아주 잘 해낸다."

 

우리는 그렇게 말을 할 수는 없다.

 

심리학 분야는 가장 흔한 '정신장애'에 대해 꽤 효과적인 치료들을 개발하고는 있지만 그러한 치료의 효과 크기는 중간 정도일 뿐이며,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효과 크기상에서의 감지 가능한 증가가 여러 해 동안 전혀 없었다.

 

 

증거기반 치료 혁명은 이러한 문제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드러내 왔지만, 과학적 공동체 안에는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지원 기금이 대학이나 연구소로 계속해서 쇄도하는 한 사람들은 불만을 갖지 않는다.

 

과학 저널들이 질병 모형에만 매진하는 한 그 누구도 보다 더 현명해지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험 많은 임상가들은 현재의 진단 체계에 대한 깊은 회의를 쉽사리 표현할 것이며, 정신장애에 기반한 치료를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어떤 점에서는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다고 선뜻 말할 것이다.

 

실무자들은 미리 약속되었던 것과 실제로 전달된 것 사이의 간극을 대개는 인지하고 있다.

 

학계는 정신건강 문제들의 '형태'에만 열중할 뿐, 그 문제들이 내담자의 삶 속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충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라고 임상가들은 종종 말한다.

 

다른 비판자들은 다음의 불일치, 즉 특정 장애에 대한 임상치료와 그 증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적 영향 간의 외견상 드러나 있는 불일치를 지적한다.

 

심지어는 정신의학적 질병분류학의 창시자들조차도 증후군적 접근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증후군적 접근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때때로 다음에 나오는 인용문의 출처를 생략하고 나서 청중에게 출처를 맞혀 보라고 한다.

 

-[3부]에 계속-

-[수용과 참여의 심리치료]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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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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