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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다.

워낙 인기리에 종영되었던 드라마인지라, 다소 뒤늦은 감이 있지만 명작 드라마의 반열에 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하여 글을 남긴다.

명품 배우들의 열연 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상당한 드라마다.

 

더군다나 조선 말기 일본, 미국 등 여러 강대국들로부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가슴 아픈 역사를 담고 있어서 나름 묵직한 무게를 지닌 드라마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 드라마 특유의 '기승전멜로'는 건재하지만, 이 부분이 우리 나라 드라마의 강점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이 드라마가 잘 보여줬다.

고애신이라는 한 여인을 두고, 유진 초이, 구동매, 김희성이라는 세 남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그 사랑을 드러낸다.

노비의 자녀로서 비참한 생을 살고 미국인으로 살아야 했던 유진 초이(이병헌).

백정의 자녀로서 끔찍한 생을 살다 일본인으로 살아야 했던 구동매(유연석)

친일을 일삼고, 약한 자들에게 한 없이 매정했던 부유하고 명망있던 가문집 아들 김희성(변요한)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대표적인 매국노 이완익의 딸이라는 원죄와 같은 죄책감을 지닌 채 살아야 했던 쿠도 히나(김민정)

덕망 있고, 존경 받는 양반 집 딸이지만 조국에 대한 열망을 지닌 채 의병의 삶을 선택한 고애신(김태리)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인물들의 설정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다양한 신분, 상황에 놓여 있는 개성 있는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매력이 있다.

 

 

가난하고, 계급도 낮고, 서럽기 짝이 없던 삶을 살았던 유진 초이, 구동매는 왠지 같은 카테고리에 묶어서 바라보게 된다.

고애신과 김희성의 집안은 평판이 다소 상반되는 경향이 있으나, 경제적 어려움, 계급상의 서러움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카테고리를 묶어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쿠도 히나는 표면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는 삶을 살고 있어 보이나, 원죄와 같이 따라다니는 부모의 죄값, 그리고 자신의 본명으로 살지 못한 채 일본인처럼 살아야 했던 비참한 인생, 자기를 잃고 살아야 했다는 존재론적 상처가 어마어마하다.

 

 

사실 누군가의 고통을 비교하거나, 절대량으로 치환할 순 없다. 드라마를 보는 각자가 자신이 알고 있고, 경험했던 고통과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인물들에게 좀 더 동정심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나라의 힘이 없고, 주변 강대국들에 휘둘리며 살아왔던 민족의 아픔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점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위로와 교육의 효과가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일본 그 자체가 나쁘다거나, 미국 그 자체가 나쁘다는 식의 성급한 일반화, 성급한 범주화의 오류를 경고하는 섬세함이다.

일본인 중에도 정의의 결이 같은 자들이 드라마 속에 등장한다.

 

그리고 조선인 중에도 을사오적, 정미칠적과 같은 금수와 같은 자들이 등장한다. 미국인 중에도 카일 소령처럼 고마운 이들이 존재한다.

 

처음, 김희성이 등장했을 때 별다른 고통 없이, 부족함 없이 편하게 유학 갔다 돌아온 도련님 같은 인상을 받았을지언정, 그가 자신의 가문이 저지른 죄값에 대한 형벌을 대신 지고 가는 모습을 본 이후 김희성이 지닌 삶의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들을 훌륭하게 해낸다.)

결국 이 드라마 속 주요 인물들은 '결'이 같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는 국적과, 신분, 나이, 성별 등을 초월하는 참 인간과 참 인간의 깊은 연결고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진 초이, 구동매와 같이 비참했던 사회 제도,구조의 희생자들은 고통의 세월이 깊었던 만큼, 그들이 품을 수 있는 사람들의 폭,그들이 공감해 줄 수 있는 고통의 깊이도 더욱 깊을 것이라 믿는다.

물론 이와 같은 능력을 지닐 수 있다 하여, 다시 태어났을 때 다시 그 생을 살고 싶진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깊은 고통 속에서 체득 된 (그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고 버텨내면서 형성된) 삶의 시야는 분명 그 길을 걷지 않는 이들이 흉내낼 수조차 없는 깊이가 있으리라 믿는다.

Gun, Glory, Sad Ending

 

 

이 작품의 모든 것이 암시되어 있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자체는 중간중간 피식 웃을 수 있는 요소들도 많고, 조연 배우들도 상당히 탄탄하며, OST도 훌륭하다. 심지어 영상미도 훌륭하다.

혹자들은 대사가 너무 오글거린다고 말하는데, 명대사가 상당히 많다.

참 드라마 잘 뽑혔다는 생각이 든다. 필히 시청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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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종영된지 한참 지난 드라마다. 하지만 워낙 비숲에 대한 좋은 평가들이 많다 보니 반신반의하면서 완주했다.

결론은, 한국에서도 왠만한 미드 부럽지 않은 몰입력 있는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다.

의사 드라마도 멜로, 요리 드라마도 멜로, 정치 드라마도 멜로로 귀결되던 한국 드라마의 식상한 전개 방식을 탈피했다는 점만으로도 일단 신선했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 물이라고 생각했으나 검찰,경찰,행정,재벌, 군부 등각계각층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두운 면모들을 과감하게 들춘 보기 드문 문제작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부정/비리 고발 드라마는 더러 있었으나, 완결이 난 마지막 화 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주제 의식을 확실하게 전달해 주는 드라마는 좀처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배우들의 열연도 주목할 만 한데, 드라마로 만나는 배두나, 조승우는 그저 반가웠다.

일단 인물들의 개성이 온전하게 살아 숨쉬고, 이러한 개성이 일관성 있게 시리즈 전반에 걸쳐 나타났기에 몰입도가 감소하지 않았으리라...

 

insula(뇌섬엽) 부위 절제 수술을 받고 나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게 된 황시목 검사(조승우)가 주인공이다 보니, 감정과잉으로 흘러가지 않고 보는 이들도 차분하게 추리/수사에만 집중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이 감정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이 있으나 이를 드러내거나 표현하거나 인지할 수 없다는 점....그래서 격해지는 상황에서는 몸이 이를 버티지 못해 발작을 일으킨다는 설정 등은 황시목 검사를 향한 연민의 감정, 따스한 시선, 보호 본능을 자극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드라마는 치밀하게 추리를 하면서 용의자를 찾아나서게 만드는데 미리 정보를 입수하지 않고 처음부터 보는 걸 추천한다. 예상을 빗나가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해 줄 것이다.

 

서부 지방 검찰청과 용산 경찰서에 소속되어 있는 검사,경찰 들이 사건의 중심에 있으며 그 주변부로 해서 초거대 재벌기업 한조가 우뚝 서 있다.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얽히고 설킨 각자의 이야기.

 

모든 등장인물들이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나무 하나하나가 모여서 거대한 숲을 이룬다.

조승우, 배두나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의 감초같은 연기들도 일품이다. 드라마 진행에 방해가 될 만한 어설픈 연기를 보여주는 이들은 드물다.

(여담이지만 [sky 캐슬]을 최근에 봤더니 윤세아, 박유나 씨 등 출연진이 눈에 띈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역할도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창준 역을 맡은 유재명 씨의 연기도 상당히 인상 깊으며 자세한 스포일링은 생략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마지막 법정에서의 모습은 정말 압권)

(드라마 [자백] 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하니 기대를 해본다)

 

사회를 고발하는 장르물. 몰입도와 신선도를 유지한 채 끝까지 일관성 있게 주제를 끌고 나간 보기 드문 수작.

 

 

너무 허황되고, 이상적인 결과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범위 내에서 현 시대의 문제점을 조망해 준 점 등이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줬다고 생각한다.

"법관에게 있어 정의란, 영원한 짝사랑이자 궁극의 이데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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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포 주의]!!!!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핫한 주제 중 하나인 '교육'과 인간이 지닌 '욕망'이 만났다.

두 가지 이슈가 이야기의 큰 흐름을 끌고 가고 있다 보니, 일단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데는 성공했다.

 

그 다음부터는, 드라마가 지닌 자체적인 힘이 관건인데 'SKY 캐슬'이라는 작품은 그런 면에서 참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한 화를 끝마칠 때마다 다음 화를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놀라운 전개를 선보이면서,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현재 드라마는 종영된 상태로 출연진들은 보상 휴가도 다녀오고, CF나 쇼프로그램에도 출현하는 등 인기몰이가 한창이다.(후반부에 들어서는 드라마의 장르가 스릴러로 변하는데, 흥미진진하다.)

 

 

일단 드라마의 배경은 'SKY 캐슬'이라는 으리으리한 부촌에 살아가는 여러 가정들의 모습을 다룬 드라마다.

자신의 딸을 서울의대에 합격시키기 위해 자신의 전 인생을 걸고 있는 곽미향. 술 주정뱅이, 선지국집 딸로 태어나 자신의 출생에 대한 깊은 열등감을 지닌 그녀는 자신의 딸 예서를 통해 자신의 삶을 보상받고, 예서의 성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누리려 한다.

(자신의 기준에서는 예서가 서울의대를 들어가고 가시적인 성공을 해야 더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는 이타적(?) 동기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건 예서가 원하는 사랑은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을 한서진으로 바꾸고, 자신의 신분을 세탁한 채 SKY 캐슬에서 고고하며, 확고한 교육관으로 주변 엄마들의 부러움과 시기, 질투를 받던 그녀...

그녀와 함께 양대산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은 소위 입시 코디네이터라 불리는 김주영 선생님이다.

 

 

 

그녀에게 아이를 맡기려면 수십억원의 돈이 필요하지만 일단 코디가 도와주기만 하면 서울의대 합격은 100% 따놓은 당상이라 한다.

곽미향의 욕망이 예서를 향한다. 그리고 예서라는 존재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공부를 잘 해야 하며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자신, 1등을 하지 못하는 자신은 존재 가치가 없다라는 무언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여기에 김주영 선생은 기름을 부어 그 '오개념'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 드라마의 주제가처럼 여기 나온 모든 등장인물들은 We all lie~ 를 하고 있다. 모두 한가지 이상의 거짓을 지닌 채 타인에게 자신의 참 모습을 감추며 살아온 이야기다.

 

그러다가 서서히 진실이 드러나면서 서로간의 갈등이 첨예해 지고, 서로의 진심을 알아가고,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모해 나간다.

 

 

그 와중에 혜나라는 인물이 개입하게 되며, 여러 가지 가슴 아픈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Y 캐슬'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게 된다.

이 드라마 속에서 곽미향의 욕망, 그리고 자신의 피해 의식과 엇나간 분노 등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던 김주영 선생의 욕망이 전부는 아니다.

체면과 자존심, 열등감을 가리는 피라미드 논리로 자녀들을 파괴시키던 차 교수, 3대 째 의사 집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고, 며느리와 손녀까지 통제하려 하는 곽미향의 시어머니 등도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인물들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유독 자녀들을 싸고 도는 문화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

부부라 함은 자신들의 부모를 떠나서 서로 한 몸을 이루는 삶이다.

 

자녀들에게 부모는 '안전기지' 역할을 해주면서 자녀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탐색을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줘야 한다.

그러나, 자녀들이 독립적인 인격체라는 생각을 망각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녀를 통제하기 시작하면, 자녀들은 '자율성'을 기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부모의 내면에 자리잡은 '어린아이'를 달래주는데 시간,에너지, 인생을 소모해야 하는데 그때부터 아이들은 엇나가기 시작한다. (꼭, 가난하고 가진 게 없을 때만 자녀들이 상처를 받는 게 아니다. SKY 캐슬에 사는 아이들처럼 물질적으로는 부유해도 내면이 가난한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 때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답을 찾기 힘들고, 심한 경우에는 자신이 소멸되는 것 같은 극도의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예서가 등수가 내려갈 때마다 불안해 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은 부모의 책임이 매우 크다.

더군다나 곽미향의 남편인 강준상 주남의대 정형외과 교수는 부모가 원하는 삶만 살아가다 보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잃어버린 사람이다.

강 교수는 곽미향의 지독한 교육열에 대해서 핀잔을 주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자신의 내면 속에도 동일한 욕망이 숨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예서라는 딸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고 결국 '높은 성적', '전교 학생 회장' 등의 조건이 붙어 있을 때만 칭찬을 해주는 등 결국 곽미향과 동일한 속물 근성을 보여준다. (결국 그 부모로부터 받은 잘못된 양육의 폐해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다. 3대가 어긋나 있는 셈이다.)

그 와중에 예서의 여동생인 예빈이는 문제 행동을 일삼지 않으면 자신에게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는 부모에게 사랑/관심을 받고 싶어서 물건을 훔치는 등의 일탈 행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곽미향의 양육은 지독히도 어긋나 있고 말이다.)

 

한국 사회 속에서 청소년기의 성적이 좋은 대학의 향방을 결정하고, 좋은 대학에 진입하면 출세의 길이 열린다는 공식은 쉽사리 반박하기 어려운 부분이긴 하다.

그래서 부모들이 먼저 나서서 자녀들을 교육시키려 하고, 자녀가 자신들의 뜻대로 따라와 주지 않으면 통제하려 하거나, 체벌을 가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고, 보여줘야 할 지침은 '성공', '출세', '높은 성적'보다는 '진실', '배려', '사랑', '행복'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워낙, 이상적이고 희망적인(?) 엔딩에 가깝다 보니 좀 더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엔딩을 원했던 시청자들에겐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이 쯤에서 드라마의 파괴적인 전개에 제동이 걸린 것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남들보다 더 가지면서, 소위 성공적으로 살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언제나 우리 안에 남아 있으나, 이를 제어하고 적절하게 선용할 수 있는 절제력은 굉장한 미덕이 될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등장인물 한명한명, 가족 구성원을 깊게 분석해 볼 만한 재미있고, 유익한 드라마였다. 이렇게 사회 현실을 반영해 주고, 교훈 의식을 도출해 줄 수 있는 드라마들이 자주 나오면 좋겠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예서, 우주, 기준, 예빈, 서준, 혜나, 수한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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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드라마가 돌아왔다. 그러나 <뷰티풀 마인드> <닥터스>라는 인기 의학 드라마에 밀려서 시청률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하고 조기 종영해 버렸다.(기존의 전형적인 의학 드라마와는 결이 좀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우리 나라 드라마의 특성상 '멜로'가 섞이는 특성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뷰티풀 마인드는 상당한 수작이었다.

 

<닥터스>는 첫 화부터 대중성을 확보할 만한 다양한 요소들이 잘 가미되었다. 선남선녀 주연급 캐릭터들과, 적당한 하이틴 물을 방불케 하는 학교씬, 그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나름 화려한 액션신 등

 

분명 <닥터스>는 재미있고, 시청률이 높게 나올 만한 드라마다.

 

 그러나 <뷰티풀 마인드>같은 경우는 스토리 라인이 전반적으로 어두운 부분을 담고 있다. 섬세한 심리 묘사를 자주 그리다 보니, 마이너한 성향을 풍기기도 했을 터인데, 난 이런 부분들이 오히려 <뷰티풀 마인드>의 가치를 높여 줬다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는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는 싸이코 패스[반사회성 인격장애] 신경외과 의사 이영오의 자전적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나름 매 화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데, 떡밥 회수도 괜찮고, 장혁과 박소담의 연기도 좋다. 다른 주연급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사실 사람들의 감정을 공감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싸이코 패스 라느니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불리기에는 의학 정의상 약간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마땅히 눈물을 흘려야 할 때 울 수 없고, 사람들이 웃고 있을 때 혼자 웃을 수 없는 누군가가 있다면……. 더군다나 그 사람이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과 정신을 지녀야 할 의사라는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누구든 그 의사를 만나면 소름이 돋고, 경계심이 생길 것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이영오(장혁)는 그런 사람이다.

 

 [적당한 스토리 누설이 있으니 안 보신 분들은 아래를 읽지 마세요]

 

이영오는 이건명(허준호) 과장으로부터 어린 시절에 수술을 받았고, 수술 중의 실수로 인해 감정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손상되었다는 판정을 받는다.

이건명은 자신의 의료 실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이영오를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이 아이가 보통의 아이들처럼 살아갈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사람의 표정과 눈빛 등을 가지고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도록 특별한 의사소통 훈련을 시킨다.

 결국, 이영오는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 몸짓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을 예측하는 훈련을 하여 어느 정도 보통의 사람들과 비슷한 면모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 드러난 사실은 이건명은 수술 도중 실수를 하지 않았었고, 단지 brain CT 사진이 뒤바뀐 것 뿐이었다. 결국, 이영오는 멀쩡한 아이였는데, 이건명이 자신의 실수를 가리기 위해 더 이상의 follow up 없이 그 아이를 기정 싸이코패스로 낙인 찍고 키워 왔던 것이다. 더군다나 자연스럽게 사람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로 규정을 해 버리고 키워 왔기에, 그 아이의 전두엽은 후천적으로 퇴화 되어 버린 케이스였다.

 

 

 

이 드라마 속에선 현성 병원의 이사장인 강현준과 채순호 과장이 나오는데 그들은 각자의 이득을 위해서 불법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들이다.

 

재생 의료 사업을 추진하고 연구 중인 이 병원을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병원으로 만들기 위해….. 이사장인 강현준은 이를 통해 현성 그룹 총회장인 자신의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 하고, 채순호 과장은 이를 통해 병원장 자리를 획득하며 계속 기득권을 얻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재생 의료 치료제를 사용했던 사람들의 심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부작용을 은폐하기 위해 채순호 과장은 그들을 의료 사고라는 명목 하에 죽음으로 몰고 간다.

 

이런 부도덕한 상황 속에서 늘 참다운 의사 상으로 모범을 보여주던 현석주 선생은 분개하게 된다.

 

 

 

스토리를 파편적으로 설명하니, 뭔가 이 드라마의 멋진 면모들이 건조해 지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러나 요약하자면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과 욕심이 이 드라마 속에서 잘 드러나 있고 그 속에서 늘 무시 당하고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 받아온 [이영오] 라는 공감 장애 환자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가 역시 멋지게 그려져 있다.

 

계진성이라는 의롭고 순수한 여자 순경을 만나면서 이영오는 서서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워 나가게 되고, 계진성의 병든 폐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자신의 폐 하나를 이식해 주는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이 드라마가 감동적인 이유는 이영오라는 한 인간이 변해 가는 모습이 너무 절절하다는 것이다.

 

사실 누구보다도 가장 큰 피해자였던 이영오

 

그러나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용서를 구해야 했던 이건명(아버지)은 이영오의 존재를 늘 무너뜨려 왔다[넌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넌 안되는 거다]

 

이런 말만 듣고 자라 왔으니, 어떻게 감정을 배울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이영오보다 훨씬 저급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인간은 감정이 있다 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해 주는 존재가 아닌가 보다.

 

생리적으로 감정이 마비된 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더 깊은 심중[우리는 그것을 마음, 또는 영혼 , 정신 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에 따뜻한 불을 품고 있다면 그 사람은 상대방을 가슴으로 품을 수 있게 되나 보다.

 

 

이 드라마의 포인트는..

 

1.     우리 나라에 만연해 있는 자존감 낮고, 자존심 강한 아버지로부터 받아온 가정의 학대를 견디고 아버지보다 더욱 아름다운 남자로 자라난 이영오의 스토리

 

2.     자신을 이토록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 이들을 향해 복수와 분노를 표출하기 보다는, 이 복잡다단한 세상사를 달관하며, 이를 아름다운 방향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이영오의 스토리

 

3.     비록 전두엽이 멀쩡하고, 감정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보통의 사람들], 공감장애, 사이코 패스라 조롱 당하던 이영오 보다도 훨씬 저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돌아 보게 만드는 스토리 전개

 

4.     감정이 없었던 이영오가 계진성을 만남으로써 서서히 참된 사랑에 눈을 떠 가는 모습. 다른 감정은 학습이 가능했으나 눈물을 흘리는 것만큼은 배울 수 없었는데, 끝내 환자의 모습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영오의 변화된 모습

 

5.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힘을 합친 이사장과 채순호 과장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말로를 지켜 보는 재미. 이는 의학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익히 노골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연장선 상에서 즐겨주면 될 것 같음.

p.s: 장혁을 위시하여 주연급 배우들의 연기도 상당히 좋다. 특히 가장 많은 역할을 담당한 이영오[장혁]의 캐릭터 성은 정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p.s2: 현성 그룹은 o성 그룹을 풍자한 게 아닐런지.... 단일한 기업이지만 왠만한 언론, 정치의 영향력 그 이상을 지니고 있는 기라성 같은 그들의 존재..... ​

p.s3: 음악이 상당히 좋다. 자신의 감정, 자신의 존재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이영오의 마음이 잘 반영된 음악은 특히 압권​

 

 

 

섬세한 심리 묘사, 잔잔하지만 깊은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는 [뷰티풀 마인드]..

 

최근 의학 드라마 중 가장 색깔 진하고, 여운이 오래 남는 드라마였다.

 

조기 종영된 게 아쉽지만, 명작은 보고 나서 남기는 교훈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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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될 수 있으니 드라마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보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얀 거탑]을 보고..

 

유명한 의학 드라마다. 수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되었다.(3년 전 쯤 봄)

원작이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확실히 우리 나라 드라마와는 전개하는 방식이 좀 다른 면이 있었다.

우리 나라는 의학 드라마든, 법정 드라마든, 퓨전 사극이든, 환타지 물이든 늘 달달한 연애씬이 주를 이룬다.

두 선남선녀의 그렇고 그런 로맨스를 위해 여러가지 부수적인 소재들을 옵션으로 사용하는 느낌이라면 일본 드라마들은 특정 소재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집요함과 집중력이 있는 듯 하다.

가령 요리 드라마는 정말 요리사의 숭고함과 열정을 잘 그려내고, 의학 드라마는 정말 의학 드라마 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일본판을 보지 못해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하얀 거탑]은 식상하기 쉬운 연애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의 가치는 한층 높아진다.

촉망받는 외과 의사 장준혁의 일대기를 그린 듯한 이 작품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 야망이라는 주제를 매우 적나라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장준혁은 지극히 인간적인 캐릭터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야망과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인 것이다.

자존심 따위는 과감히 내리고, 적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하고 때로는 강경하게 밀어 붙이는 태도로, 때로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애절한 멘트로 상대방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수 있다. 누군가는 이와 같이 확실하고 프로페셔널한 세속성을 닮고 싶어할 수도 있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처세술이니, 사회성이라는 이름으로 나름 멋지게 불릴 수도 있고 말이다.)

외과 과장이 되고자 하는 장준혁의 야망은 자신의 스승까지도 과감히 밟아버릴 수 있는 저돌성을 띄고 있는데 이는 이주원 외과 과장과의 치열한 심리전으로 그려지며 드라마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이에 반해 그의 오랜 친구인 최도영은 우리가 꿈꾸는 성실한 의사다.(여기서 '우리는'에 속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선호도가 있는 방향성이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병원이나 자신에겐 손해가 가더라도 인간을 향한 애정과 사랑, 그리고 인격성을 잃지 않는 의사다때론 그의 모습이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해 보일 순 있지만, 역시 내가 환자 입장이라면 이런 의사를 찾고 싶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중심 인물은 누구보다도 장준혁이다.

그가 외과 과장이 되기 위해 자신의 스승인 이주원 과장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서도, 혹자들은 장준혁을 마냥 미워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작금의 시대 상황과 정치 양상, 작게는 회사 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들이 더러 연출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장준혁을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그와 같은 색깔을 띄고 있는 모종의 욕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혹자들은 "욕망이 정말 나쁜가?, 모든 인간은 '욕망'하지 않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도 있고 말이다.

성향 상 그의 모습에 공감을 못 하는 것 뿐이지, 무언가 내가 바라는 것’, ‘내가 잡고자 하는 것을 간절히 꿈꾸고 염원하던 순간들을 각자가 지니고 있지 않은가?

(결국 색깔이나 방향성이 다르다 뿐이지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다는 점)

장준혁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한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에겐 외과 과장이 되고, 자신의 명성을 알리는 게 그의 삶에 전부였던 모양이다.

그것을 몸 속에 가득 채우기 위해 그는 인간성도 버리고(스승을 배신하거나, 자신의 실수로 죽은 환자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거나), 사랑도 버리고(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기 보단, 자신과 이야기가 통하는 술집 여성 희재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몸도 버리고 만다.

점점 인간 이하의 존재로 추락해 가는 그를 붙잡아준 건 그의 주변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그를 지지해 주던 무리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있는 그대로 불러주는 (“준혁아~”) 최도영이나 그의 어머님, 그리고 희재와 같은 인물이 그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기억 속에 남는 인물임이 드라마 속에 잘 묘사되어 있다.

장준혁이 스스로 파멸의 길로 치달을 때, 그는 친구인 도영이가 해 준 말을 회상하곤 한다.

넌 존재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었는데, 어떤 것을 이루지 않아도,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의 가치를 봐주는 고백이었다.

장준혁은 이 부분이 결여 되어 있었다.

그는 지독히 자존감이 낮았고, 열등감이 심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전형적인 반작용으로 그는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를 드러내는 데 생의 에너지를 다 쏟아 붓고 말았다.

(Kohut 은 self psychology 에서 어린 시절 자신을 충분히 지지해 주고, 공감해 주는 self-object(자기 대상)을 지니지 못했을 때, 그리고 이상적인 부모상이 형성되지 못했을 때 아이는 '나르시스틱 injury' 를 얻게 되며 이를 보상하기 위해 과장된 자기(grandiose self)를 형성하여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를 어필하고 싶어한다고 주장한다. 장준혁은 전형적인 '자기애성 인격장애' 의 표본이 아니었을까?)

그의 깊은 내면은 어쩌면 여리고 따뜻한 구석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장준혁의 명성과 실력을 이용해 병원의 위상을 높이고 자신도 병원장이 되고자 했던 부원장이라든지, 장준혁 주변에 날파리처럼 달라 붙었던 수 많은 인물들은 자신들의 욕심의 암 조직을 장준혁의 몸 속에 차곡차곡 배설했던 게 아닌가 싶다.

장준혁 본인의 욕심도 암 조직 발생에 한 몫을 했겠지만 주변의 모든 어두움이 장준혁의 몸 속에 응집되어 결국 젊은 천재 의사의 삶을 좀 먹어 버렸다.

그래도, 떠나는 길 자신의 시신을 해부학 교실에 기증하는 모습을 통해 그나마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승화 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여운을 느끼게 해 준다.

특별한 로맨스가 깊게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 인스턴트 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요소도 딱히 없어 보이지만, 이 드라마는 다분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정치적이며 다분히 인간적이다.

그리고 장준혁과 대비되는 최도영의 존재는 의롭고 싶으나 용기가 부족하고 체면을 중시하던 이주완 과장이 움직이는데 힘을 실어 줬고, 장준혁이라는 고집 불통의 마음 속에도 잔잔한 감동을 남겨 주었으며 수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 줬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포인트다.

한 사람의 의로운 자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생명을 전달할 수 있는지가 잘 묘사되어 있다.

어떤 인물과 같은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몫이다.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목적하는 바를 움켜 질 수 있는 장준혁의 모습이 멋있어 보이고, 강단 있어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최도영과 같이 지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씨를 뿌린 대로 거두기 마련이다.

장준혁의 장점들(자신의 이득이나, 야망 성취의 일환일 수 있긴 하지만 자신의 밑에 두고 있는 수련의들을 잘 챙겨주는 모습은 일정 부분 멋있어 보이긴 한다, 그리고 실력 있는 외과 의사라는 모습도 보기 좋고 말이다. 때론 용감한 모습도 한번 씩 보여주고 말이다.)을 잘 기억하면서, 동시에 오경환 교수나 최도영 교수, 이주완 과장의 딸인 이윤진과 같은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면 가장 적절한 결말이 아닐까? (물론,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 답답해 보이고 꽉 막혀 보이고 융통성이 떨어져 보일 때도 있을 것이며 이들이 절대적인 '의'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결말은 열어 놓겠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정말 잘 만들어져서 여운이 오래 남는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꼭 보자!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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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학교'는 상당한 전통을 자랑하는 하이틴물이자, 진지한 성장 드라마다.

 

2015년도를 맞이하여 한층 깊이를 더하고, 완성도를 높인 '학교' 가 방영되었다.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 늦게 본 감이 있긴 하지만, 음악이면 음악, 스토리면 스토리, 연기면 연기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잘 만든 드라마였다.

 

[줄거리는 구구절절 적진 않겠습니다만, 한번 보시면 많은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1. 왕따 문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이은비는 통영에 있는 학교를 다닐 때 강소영으로부터 극심한 왕따를 당한다. 학창 시절에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많은 문제들 중에 가장 심각한 일면을 다뤘다는 점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지닌 의의는 크다고 볼 수 있다.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는 건 인간이 겪는 수 많은 고통들 (불안감, 공포, 우울감, 무기력 등)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고통을 줃나는 '수치심'을 건들기 때문에 따돌림은 일종의 '범죄'며, '폭력'이다.

 

이를 가벼이 여겨선 안된다는 걸 나름 잘 보여준 드라마였다.

 

또한 이은비가 기억을 잃고 나서 자신이 고은별인 줄 알고 전혀 다른 학교, 전혀 다른 친구들,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면서 드라마는 흥미진진해 지는데, 나중에 고은별의 스토리가 밝혀지면서 은별은 자신의 친했던 친구 수인의 따돌림을 막아주지 못하고 오히려 암묵적으로 그 따돌림에 동조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때로는 따돌림의 문제가 '강소영' 같은 사악한 캐릭터 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서 아무 짓도 하고 있지 않는 '방관자'들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내가 적극적으로 '범죄'하지 않는 것만이 '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좇지 않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중립'이라는 미명 하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순간 자신의 몸이 점점 더 '악'으로 물들어 가는 경우도 생길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내가 '중립을 지켜야지!' 라고 가만히 있다고 해서 나를 둘러싼 구조와 맥락과 세상이 나를 그 자리에 가만히 유지시켜 줄 거라 생각하는 건 상당히 순진한 발상일 수 있다.)

 

막상 그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은별처럼 행동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그리고 용감한 행동을 시도했던 은비의 모습을 닮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그 길이 안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2. 교육 문제

 

고등학생을 다루는 성장 드라마의 단골 메뉴와 같은 '공부', '교육', '성적'.... 이 고등학교도 나름 명문이라 그런지 치열한 공부 경쟁이 반영되어 있다.

 

<발칙하게 고고> 에서 만큼 노골적으로 이 주제를 중심에 두지는 않지만 오히려 Side story 로 적당히 이 문제를 환기 시켜 주는 게 더 밸런스가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입시 교육의 폐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며, 이런 식으로 10대의 청춘을 보내 버리다 보니 우리는 서로 나누는 법,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에 매우 무딘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이기고, 밟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더 친숙해 지게 만드는 교육은 과연 교육인지 살육인지 ....

 

 

 

 

3. 부모들의 문제

 

사이코 패스 같았던 강소영의 연기는 대단했다. 그러나 강소영 또한 사이코 패스 같던 아빠, 엄마의 희생양이었다.

 

특히 아빠는 야욕이 많고, 누군가를 밟아 버리고 지배해 버리는 삶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못난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니 사회성이 엉망이 되어 버린 게 아니겠는가. 그의 엄마도 뭐 문제 많은 사람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이에 반해 은별과 은비의 엄마로 나오는 분은 정말 좋은 엄마의 표상이 아닐까 싶다. 인자하고, 너그럽고 함부로 자신의 생각을 딸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말이다.

 

또한 공태광의 아버지와 한이안의 아버지도 함께 언급을 해야 할 것 같다. 공태광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집에 부족함 없는 자원을 누리고 살아가지만 늘 비뚤어져 있고, 결핍이 가득한 학생으로 그려진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 아버지로부터의 결핍을 보상해 줄 만한 어머니가 부재하다는 점.... 이에 반해 한이안의 집은 부유하지도 않고, 넉넉하지도 않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 돈독하다.

 

아버지로부터 지지 받고 인정 받지 못한 공태광은 엇나갈 수 밖에 없는 소인을 지니고 있었다.

 

4.정체성의 문제

은비는 은별처럼 살아가다가 기억이 돌아오게 되어 자신이 은별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제목인 '후아유' 처럼, 은비는 자신의 에전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주저한다. 자신이 '은별'이 됨으로써 누리게 되는 수 많은 가치들 (엄마, 친구들, 경제적 여유) 을 한순간에 뿌리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I 는 I로 남아야 하지 You 가 될 수 없다. 나의 실존적 자아가 바로 서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얻게 된다 해도 무의미할 뿐이다.

 

결국, 은별이 돌아오고 나서 은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기할 수 있는 사랑의 집을 다녀오게 되고, 그 속에서 많은 결심들을 굳힌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은비'로서 점검하고자, 태광과 이안의 고백 속에서도 더욱 신중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쉽게 얻을 수 있었을 주변의 좋은 것, 좋은 사람들을 '은비'는 굳이 돌아가는 수고를 하면서 바로 손아귀에 넣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은비'이기에, 태광과 이안은 은별보다 은비를 선택했던 게 아닐까.

 

약한 자, 어려움에 처한 자를 외면할 수 없는 따뜻한 성품, 그리고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 해서 그걸 바로 잡으려 하지 않는 겸손함과 도덕성... 이런 매력은 때론 그녀를 왕따라는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녀의 삶에 큰 아픔을 나겼지만, 결국 그녀를 빛나게 하는 무기가 되었다.

 

이 드라마가 다루는 'Who are you?' 라는 물음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5. 사랑과 용서

우리의 삶 속에는 많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왕따의 문제, 교육의 문제, 부모들의 문제, 정체성의 문제 등..

 

그러나 이 모든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사랑과 용서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누구보다도 가장 진한 복수를 꿈꿨을 법한 은비는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된 후반에도 '강소영'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강소영을 향해 '난 너가 참 불쌍해' 등의 진솔한 고백을 하며, 그 존재를 향한 care를 아끼지 않는다. 결국 강소영은 이은비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되고, break 가 걸리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에 은별과 은비가 break 를 걸어준 것에 대해 간접적인 감사를 표한다.

 

양육강식의 '정글' 과 같은 인생을 배우고 자란 강소영에겐, 따뜻하고 배려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은비와 은비 주변 친구들(은별과 다른 여자 친구들, 이안과 태광 등)이 마냥 부러웠을 것이다.

 

envy 가 jealousy 로 변모하면서 점점 더 표독스럽게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걸 누리는 상대를 짓밟고자 했던 '강소영'... 어쩌면 소영의 삶에 따뜻한 빛을 제시해 줬던 건 그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가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무시하고, 공격하고 짓밟았던 은비가 아니였을까.....

 

또한 왕따를 당하다가 죽음을 선택한 수인... 그리고 그 수인을 방관해서 괴로워하는 은별... 그 죄책감의 무게를 실감하며 슬픔을 삭이고 있는 동안 수인의 언니 또한 은별을 용서해 주며 보듬어 준다.

 

은별이 결코 잘한 일은 없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있었기에 이 모든 상황들이 정리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고백하는 용서의 말은 회복의 시작이요, 열쇠가 될 수 있다.

 

비록 은별이 가해를 한 주체는 아닐지라도 스스로의 방관이 '소극적 가해' 였음을 인정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태광 또한 아버지를 늘 증오했으나, 아버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용기를 내어 드러내는 순간, 그 완고하고 깐깐하던 아버지가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의 죄를 감추기에 급급하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태광에게 멋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수를 하러 경찰서를 가는 모습.... 그 모습 속에서 회복의 씨앗이 있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맛있는 양념볶음 처럼 잘 버무린 드라마. 그리고 그 플롯에 어울리는 멋진 OST...

 

그러나 이 드라마가 다루고자 하는 핵심 주제들은 사실 '학교'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에겐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는 의외로 간단한 것에 있을 수 있다. 서로 소통하자.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자. 그리고 잘못을 인정한 자를 용서하자. 잘한 것은 아낌 없이 칭찬하고 지지하며, 못하더라도 상대방의 인격이 다치지 않도록 보듬어 주자.

 

그리고 모든 만남 속에 사랑을 담아 보자. 이런 소중한 교훈을 안겨 준 '후아유'

한번 쯤 시청을 추천합니다!!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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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터너]를 보고..

 

3부작 단편 드라마인데, 방영 후 몇 달 뒤에 보게 되었다.

페이지 터너란, 피아노를 연주할 때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 드라마는 상당히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well-made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예술 고등학교에서 1등을 달리고 있는 윤유슬(김소현)이라는 여자 학생이 나오고, 같은 고등학교의 2등을 하고 있는 서진목(신재하)이라는 남자 학생, 그리고 체육고등학교에서 장대 높이뛰기 선수인 정차식(지수)이라는 인물이 주요 인물이다.

 

 

 

<간단한 줄거리>


유슬이와 진목은 늘 사이가 안 좋다.

유슬의 엄마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인데 어린 시절 진목을 가르쳤던 경력이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유슬의 엄마는 어린 진목으로부터 자존심의 상처를 입게 되고, 그 뒤로 그게 한이 되어서 자신의 꿈을 자신의 딸로부터 성취하기 위해 딸의 피아노 선생을 자처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슬은 진목과 라이벌 의식을 느끼게 되고, 엄마의 마음을 반영하여 늘 그와의 싸움에서 이기고자 한다.

한편 차식은 무시를 당하면 빡치는 타입의 성격이다. 엄마를 모욕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견디질 못하고 빡쳐서 장대 높이뛰기로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열정이 있고, 좀 저돌적인 캐릭터다.

어느 날 유슬과 엄마는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나서 유슬은 시력을 잃게 되고, 차식은 장대 높이 뛰기를 하다가 잘못 떨어져서 허리를 다쳐 선수 생활을 못하게 된다.

유슬과 차식은 모두 삶의 목적을 잃고 인생을 마감하러 병원 옥상에 올라가지만 극적으로 서로를 만나 살아남게 되고, 그 이후에 유슬의 등,하교 등을 챙겨주는 도우미로 차식이 발탁되면서 이들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

유슬의 엄마는 어린 시절 집안 환경이 받쳐 주지 못해서 실력은 좋았으나 작은 피아노 학원 선생 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집안이 굉장히 좋은 진목의 개인 레슨 선생님이 되어 열심히 가르치려 하였고, 진목이 피아노를 무미 건조하게 치는 것을 지적했으나 오히려 어린 진목은 자신이 피아노를 못친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선생 뿐이라며 선생님을 바꿔 달라고 아버지께 조른다.

이런 굴욕의 시간을 겪고 나서 엄마는 자신의 딸 (이 딸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음을 그 사건 도중에 눈치채게 됨)에게 자신의 인생을 건다. 좋게 말하면 요즘 말하는 골프 맘이니, oo 맘 처럼 지극정성으로 자녀를 정상의 궤도에 올리고자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는 엄마지만 사실 이 엄마는 자녀를 사랑해서 그렇게 한 게 아니라고 봐야 한다.

자신의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성취하기 위해 딸을 이용할 뿐이었다. 그래서 딸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늘 자신이 지시하고 딸을 조종하기 바쁘다. 딸도 자신의 엄마가 지닌 한을 알기 때문에 늘 ‘yes’ 로 화답을 하지만, 자신이 왜 피아노를 쳐야 하며, 피아노를 치는 것이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시력을 잃고 나서 유슬은 차식이 해 준 말을 떠올리며 엄마로부터의 정서적 독립을 시도한다. 힘들어도 자신의 삶은 자신이 꾸려 나가고, 자신이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 나간다. 엄마도 처음에는 이 상황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힘들어 하지만 결국 자신이 딸을 망쳐 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착한 유슬은 자신이 엄마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는 이유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계속 엄마에게 끌려가다가는 선택의 기회가 없었던 자신보다는 자신의 선택을 강요했던 엄마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가, 결국 엄마를 원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슬이 다음과 같은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자살을 하려고 병원 옥상에 올라가 떨어졌을 때 자신을 받아 준 차식의 말의 영향이 컸다.

 

 

 

차식은 유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너는 피아노 치는 거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엄마 앞에서 좋아하는 척 하고, 늘 자신의 입장이나 의견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너가 엄마를 속인 거다라고 이야기 한다. 어찌 보면 상대방의 감정이나 복잡한 context 를 무시한 단순한 해석일 수 있지만, ‘자신의 책임을 강조하는 차식의 조언이 유슬에겐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아들러는 인간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환경 요인, 유전 요인과 함께 주어진 상황에 대한 각 개인의 response(반응)을 강조했었다.

세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인 반응이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유슬도 이 부분에서 자신에게 그 삶을 강요한 엄마를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도 결국 그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행동하기로 선택한 면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눈이 멀고 나서 유슬은 좀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에 이른다. 한편, 유슬의 눈이 멀었는데도 끝까지 딸에게 피아노만 치게 하려는 엄마의 모습은 가히 정신 이상자 수준이다.

그 정도로 유슬의 엄마는 피아노에 맺힌 한으로 인생을 살아 왔던 것이다. 그러나 유슬은 과감히 피아노 치는 것을 중단한다. 그리고 차식을 만나면서 서서히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피아노 치는 것을 즐기기 시작한다. 마지막 콩쿨 대회 때 유슬은 처음으로 웃으면서 피아노를 치는 사진을 남기게 된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성을 갈망한다. 부모의 의도가 어떠하든, 자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삶은 사랑이 아니다. 자유는 사랑의 필수 전제이다.

 

 

 

[부모의 사랑과 인정]

진목은 어릴 때부터 사이코 패스 소리를 들을 정도로 까칠하고 건조한 녀석이다. 늘 웃지 않고, 뭔가 날이 서 있고, 인상을 찌뿌리고 다닌다.

그러나 피아노 치는 실력은 상당하다. 늘 유슬과 1, 2등을 다투는 사이이고 말이다. 늘 자신을 무시하고 싫어하는 유슬과 유슬의 엄마를 보며 분노를 키워가던 그는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린다. 유슬과 유슬 엄마의 오만함을 벌해 달라고….. 그 순간 두 모녀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유슬은 시력을 잃게 된다.

그 사건 이후로 진목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그 죄책감을 달래 보고자 유슬에게 잘해 주려 한다. 처음에는 동정심이나 죄책감의 해소가 목적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마음은 좀 더 따뜻한 무언가로 바뀌어 가기 시작한다.

진목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집안은 부유했고, 가진 것도 많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늘 그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친구와 싸우고 와서 손을 다친 어느날이었다. 밥상 머리에서 아버지는 며칠 뒤에 있을 연주회에 참석하라고 말을 하고 진목은 팔을 다쳐서 참석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때 진목은 팔을 다쳤구나~ 어쩌다가 다쳤니?, 많이 아프니?” 등의 대답을 기대했겠지만 그의 아버지는 오직 연주회에 대한 이야기만 할 뿐이다. 그 모습에 섭섭했는지, 진목은 아버지~ 왜 제겐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느냐!” 고 말을 하자, 그 아비는 나약한 사람은 꼭 그런 관심이나 지지를 원한다고 말한다.

실력이 부족하니까 계속 동정 받는 쪽으로 마음이 향한다는 것이다. 그의 아비는 아들의 노력이나 열심을 지지해 주지 않는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먹고 정체성과 자존감을 만들어 나가는데 그런 성취감이 전혀 주어지지 않으니 진목은 자신이 왜 피아노를 치고 있는지 답을 찾기가 어렵다. 결국 자신은 피아노를 치는 게 맞지 않다고 여기고 수능 공부를 하겠다고 말하자 아버지가 하는 말은 잘 생각했다~ 너 정도로 피아노 쳐 봐야 작은 피아노 학원 선생이나 하겠지~ 그 정도로 살아봐야 시간만 아깝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끝까지 진목의 마음은 만져지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진목은 피아노실에서 차식이 대신 몰래 피아노를 연주할 일이 생기고 그걸 듣던 유슬은 진목에게(사실은 차식이가 친 건 줄 알고 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너는 꼭 피아노를 쳐야 한다고너에겐 재능이 있다고 말해준다.

 그 말을 들은 진목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흘린 땀에 대한 인정과 지지를 받은 것마냥 눈물을 흘린다. 부모로부터 받았어야 할 지지와 인정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 만한 (자신을 가장 모욕하던 유슬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콩쿨 때도 차식을 대신해서 피아노를 치게 되는데 그 순간에도 진목은 유슬의 엄마로부터 칭찬을 듣는다. 자신의 능력을 깎아내리던 존재로부터 진정한 인정을 받게 되는 순간이다. 진목은 결국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여전히 아버지의 지지는 없지만, 자신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스스로 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은 이 부분에서도 중요하게 오버랩된다. 진목이 피아노를 다시 치기로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결핍되었던 인정과 지지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고, 차식과 유슬이 보여준 모습들도 중요하게 작용했으리라 본다.

마지막 콩쿨 대회 때 차식을 대신해서 진목은 유슬과 피아노를 치게 되고 그 둘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멋진 피아노 연주를 해 보게 된다. 늘 은상만 받아 오던 진목은 처음으로 대상을 받는 순간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사랑과 인정이 오가는 그 무대는 그 어떤 대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대상에 걸맞는 대회였던 것이다.

 

 

[자존감과 자신감 그리고 열등감]

차식은 첫 등장 때부터 몹시 화를 낸다. 누군가 관중석에 있는 자신의 엄마를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친다.

처음에는 인격 장애가 있나 싶겠지만, 사실 엄마를 몹시 사랑하고 엄마와 자신이 무시 받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성격이다. 대개 집안 환경이 부유하지 못하고 결핍이 많은 경우에 그런 모습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러더라도 그에겐 열정이 있고 누가 봐도 당당한 자신감이 있다. 그러나 경기 도중 사고를 당해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자신감 넘치던 차식도 한순간에 자신감을 잃어 버리고 병원 옥상에 올라가 생을 마감하려 한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가여웠던 엄마는 거대한 선의의 거짓말을 해 버린다. 즉 차식의 숨겨진 아빠가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한명세라는 것이다.(이게 거짓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자, 차식은 자신에게 놀라운 재능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믿고 매우 적극적으로 피아노 공부, 연습에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저런 사건을 계기로 유슬과 가깝게 지내면서 둘은 콩쿨 대회에 나가기로 한다.

그러나 콩쿨 당일 날 차식은 엄마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된다. 늘 엄마에게 지극 정성이던 차식은 그 날 만큼은 엄마에게 몹시 화가 나 있다. 결국 엄마는 아들이 너무 기죽어 있는게 싫어서 엄마 아들이잖아~ 그러니까 넌 잘 할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엄마 스스로가 대필이나 해주는 초라한 작가 인생을 살고 있고, 월세 집도 면할 수 없는 상황이여서 자신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차마 그렇게 말해주진 못하고 그냥 재능 많은 한명세씨가 아빠야! 라고 말해줬던 것이다. 그러나 차식은 그 순간 그 어떤 때 보다 더 빡친다고 이야기 한다. “자신에게 있어서 엄마는 초라한 존재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멋진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낮은 자존감을 지니고 있다는 게 몹시 화날 정도로, 자신이 느끼는 엄마는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 모자는 저녁에 전봇대에 아르바이트 전단지를 붙일 때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차식이가 피아노 연주를 힘들어 하며 자신감을 잃어할 때 그의 엄마는 정 선생님하면서 아들을 높여준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감을 잃어 하는 것 같으면 여사님~’ 이라고 부르며 엄마를 높여 준다. 가진 게 없고, 부족한 게 많은 집안이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는 모습. 엄마는 아들을 높게 보고,, 아들은 엄마를 높게 보는 모습이 있기에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예술 고등학교에 유슬의 도우미로 오면서 차식은 자신이 듣기 싫은 무시 받는 말들을 학교 학생들로부터 많이 듣게 되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분노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무시를 인정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때론 자신을 무시하는 진목 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할 만큼 그는 자신감자존감으로 발전시켜 나가기에 이른다.

아들러는 열등감(inferiority)이 우리의 인생을 이끄는 강력한 동력이라고 이야기 한다. 차식도 그런 열등감을 느끼는 말들을 들으면 전투력이 상승한다고 스스로 이야기 한다.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자신감, 열등감, 자존감. 이들에 대한 섬세한 분류가 가능하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성숙한 열등감, 자신감의 사슬을 끊고, 내가 무언가를 지니든 안 지니든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주어진 존재 만으로도 높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자신의 아빠가 한명세라서, 자신이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길을 걸어가는 것 그 자체로도 존재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차식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고, 그는 누구보다도 그걸 잘 해나갈 것이다.

 

결국 '스스로 선택하는 삶', '사랑과 지지와 인정', '자존감, 자신감, 열등감'의 이슈는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몇가지 인생의 키워드들을 안정감 있게 지닐 수 있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아름다워 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 한가지가 있다.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우리는 모두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우리는 혼자서는 이 인생의 키워드들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드라마 속 유슬이 차식과 진목에게 영향을 주고, 진목이 차식과 유슬에게 자극을 주고, 차식이 유슬과 진목에게 영향을 주듯이 우리의 삶에는 모두 '페이지 터너'가 필요하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삶이기에 '스스로 선택한다는 개념'도 결국 타인의 '건강한 선 지켜주기'가 전제되어야 하며 '사랑과 지지와 인정'도 결국 '타인이 주는 몫'이 있는 법이고, '자존감, 자신감, 열등감'이라는 개념도 결국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서툰 실수 속에서 서서히 완성되어 갈 것이다. 함께 이 길을 훈련해 나가게 만들어 주는 좋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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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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