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유명한 찬송가는 소시오패스 노예상이 쓴 곡이다.

존 뉴튼은 수많은 노예와 가족들을 고문하고 그들의 삶을 빼앗고 죽였다.

 

물론 표면적으로 존 뉴튼은 선장이자 성직자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자신의 '비참함'을 보게 되었다. 노예무역을 그만둔 지 30여 년이 흐른 뒤 그는 그 악습을 비판하고 천천히 보호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예로, 찰스 콜슨의 변화는 노년의 미국인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출세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재소자들을 옹호하는 사역자가 되었다.

 

이 둘의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통 요인은 무엇인가?

 

그들은 모두 하나님과 직접 만난 경험이 있었다.

 

기꺼이 원수를 사랑하려는 하나님의 백성(God's people)과 의미 있는 관계를 나누었다.

 

인격적 약점을 지닌 사람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시작하면 그들 안에 놀라울 정도로 헤세드 사랑이 성장한다.

 

한때 악하게 사용되던 약점이었지만 이제는 사랑을 자라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은 자기를 합리화하지 않고 이전의 생활 방식이 수치스러웠음을 인정하며, 새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생활 방식의 일원이 된다.

 

 

인격적인 변화를 지속하는 일은, 단순한 변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는지 이해하면, 누구나 겪는 일상의 문제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알 수 있다.

 

가령, 원수를 사랑한 순교자의 가족에게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짜증스러운 교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상처를 입으면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들을 '원수'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무관심하기 쉽다. 자신을 추적해 살해하려던 가해자를 사랑으로 품은 그리스도인을 보면 변화를 지속하는 방법에 관한 통찰을 얻게 된다. 

 

변화가 일어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에 효과가 없는 이유를 알게 된다.

 

내가 상담 전문직에 입문할 당시, 소속 교구민을 희롱한 성직자들의 추악한 실상을 자각하자는 문화적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교회의 초기 대응은 그런 성직자들에게 회개를 요청하고 전문 상담을 받게 한 후 새 교구로 전보 발령을 내는 식이었다. 그 결과, 대부분 '범죄 재발'이 일어났다. 확실히 내가 경험한 사례는 모두 그러했다.

 

서구식 해결 방식은 성범죄좌, 아동 성애자,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교회는 정기적으로 신원을 조회하여 자원봉사자 중에서 범죄자를 걸러낸다.

 

하지만 그 범죄자의 변화에 대해서 교회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교회의 역사는 인생의 변화를 체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우리는 나르시시즘과 인격 장애에 대한 해결책이 서구의 문화와 미국적 가치 체계에서는 무시당하고 심지어 악마화되는 뇌의 메커니즘을 활용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르시시즘, 그 판도라 상자를 열다] 짐 와일더 저-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인격의 변화와 씨름하는 현장에서 수년간 봉사하면서 나는 이 책에서 다룰 일련의 해결책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판도라 문제는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의 주변인들이 '내가 한 마디라도 하면 문제가 더 악화될 뿐이야'라는 생각을 버릴 때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

 

나머지는 다 두려움으로 침묵하는데 한 사람만 나설 때에는 당연히 문제는 악화된다. 따라서 그룹 차원에서 정체성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첫 번째 필수적인 인격 변화는 그룹 정체성(group identity)의 변화다. 인격의 변화가 일어나려면 인격의 변화 방법을 아는 그룹이 필요하다.

 

중앙에 있는 사람을 바꿀 방법을 찾기 전에 주변 그룹을 바꿀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판도라 문제가 발생하고 계속 지속되는 이유는 주변 사람에게 아무런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주변인들의 선택 범위를 넓히고, 이들의 정체성을 강화할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40년 동안 나는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그 변화를 유지하는 법을 이해하고 연구해 왔다.

 

연구 끝에 나는 이단 종교, 학대, 마인드 컨트롤, 테러, 정권 차원에서 자행한 고문 행위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범죄 현장 조사, 연쇄 살인마 프로파일링, 살해당한 어린이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다.

 

 

참전 용사, 트라우마 생존자들, 전쟁 피난민, 유대인 인종 학살이나 아르메니안 인종 학살과 투치족 인종 학살의 생존자들, 남수단, 우간다, 나이지리아, 콜롬비아, 스리랑카, 동남아시아의 정치 종교적 대량 학살 생존자들을 돕는 법을 배웠다.

 

이들의 고통을 연구하면서 가해자가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바뀌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변화가 가장 분명하게 일어날 때는 약탈자가 보호자로 바뀌거나, 가해자가 친구가 될 때다.

 

우리가 성자라고 부르는 이들 중에는 자기애성 소시오패스였던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은 자기 의가 강하고 쾌락에 탐닉하며 완악한 사람들이었다. 성 바울과 성 프란시스, 성 어거스틴, 로욜라의 성 이그나시우스는 변화되기 전에 하나같이 남을 해치던 악인이었다.

 

-[2부]에 계속-

-[나르시시즘, 그 판도라 상자를 열다], 짐 와일더 저-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성도들이 신의 대리자로 떠 받들어 주고, 본인도 뭔가 능력을 받은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이 추종해 주니 일부 목회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하게 해석하고 선을 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의 나르시시즘..... 잘 알아두는 게 좋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검토가 필요한 첫 번째 판도라 문제는 교회 내의 나르시시즘이다.

 

2015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현재 나르시시즘 증상이 있는 목회자가 목회를 담당한 교회는 96,300에서 112,350개에 이른다고 한다.

 

실제로 일생 동안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런 자아도취적 목회자를 한 번은 경험할 것이다.

 

이렇게 엄청나게 높은 수치는 교회들이 나르시시즘 지도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조장하고 좋게 포장해 선전하기 때문이라고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마르쿠스 와르너(Marcus Wamer) 박사와 공저한 [희귀한 리더십](Rare Leadership)은 성숙한 리더십과 성실하고 공감력 높은 그룹 정체성 구축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독자들이 보인 가장 흔한 반응은 "교회 지도자 그룹에 자기도취형 약탈자(a narcissistic predator)가 있다면 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였다.

 

교회는 인격 장애라는 문제의 심각성을 상당 부분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런 장애를 지도자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앞의 연구에서처럼 서구에서 나르시시스트가 목회하는 교회가 30% 에서 90%에 이른다면, 이런 교회가 판도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네델란드 목회자 중에서 90%가 높은 수준의 나르시시즘 증상을 드러낸다는 존다흐(Zondag)의 연구를 보라.

 

교회는 자기애성 약탈자들이 번성할 최적의 조건을 조성할 뿐 아니라, 목회자 선정 과정에서 나르시시스트를 선호함으로 약탈자형(폭군형) 지도자를 적극 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볼(Ball)과 펄스(Puls) 박사는 캐나다에서 목회자가 일반 국민보다 나르시시스트가 될 확률이 50%에서 3,000%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NPD(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겪은 목회자가 정신 건강을 회복할 통계적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볼과 펄스는 치료나 성경적 훈련을 통해 인격적 변화를 이루어 가자고 주장하는 대신, 이 나르시시즘을 악성 종양처럼 대하고 교회 사역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걸러내는 방법을 추천한다.

 

대부분 교회들은 소아성애자를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

 

자기애성 지도자들이 스스로 낫기를 기대하는가? 아니면 그들의 문제를 우리가 알아차리도록 가르치기를 기대하는가?

 

기독교 교회의 관행을 보면, 약탈자들을 보호자로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약탈자들에게 희생자들을 조달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기독교가 어려 심각한 문제를 다루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인가?

 

-[나르시시즘, 그 판도라 상자를 열다], 짐 와일더 저-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어떤 곳에서는 드러내고 다룰 수 있는 문제들이 다른 곳에서는 같은 주제라도 엄청난 문제를 야기한다.'

 

똑같은 사람들이 어떤 곳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판도라 문제에 갇혀 하나같이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대화를 중단해 버리는 문제도 일어난다. 판도라 문제의 폭발적 성격 혹은 파괴적 성격을 이해하려면 중앙에 있는 사람 (혹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판도라 문제의 중심에 놓인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상당히 많다.

 

수천 권의 책, 심리학 연구, 끝없어 보이는 인터넷 자료들은 원인을 이해하고 조건을 확인하며 모든 판도라 매트릭스의 중심에 있는 인물의 단점이나 성격 장애를 구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문제는 인격 장애로 분류할 수 있다.

 

나르시시즘,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와 같은 인격 장애는 흔히 볼 수 있다. 소아성애자, 성추행범, 학대범, 강간범, 연쇄 살인범은 심각한 경우에 해당한다.

 

많은 인격 장애는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있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은 이런 심각한 사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여긴다.

 

경증의 인격 장애들은 상당히 흔하다.

 

조(Joe)의 사레를 생각하면 가벼운 미소가 나올 것이다. 그는 멋진 신사복을 차려입고 내 사무실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박사님, 한 달 치 비용을 미리 치를 테니, 그 시간에는 박사님이 원하시는 대로 마음대로 하십시오. 다만 아내에게 내가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확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조는 명확히 나르시시스트였고, 이런 그를 내가 도울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에게 그가 어떻게 말했는지는 하나님이 아실 것이다.

 

조는 아내가 정절을 지키기를 원했지만 정작 자신은 아내에게 충실하지 않았다.

 

친구처럼 보이고자 했지만, 실상 원수처럼 행동했다. 우리에게는 의리를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본인은 지킬 마음이 없어 보이는 사람 때문에 의아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를 보호해 주리라 생각했던 사람에게 상처를 입거나 이용당한 적은 없는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거나 안전감을 얻기 위해 누군가를 위협한 적은 없는가?

 

우리는 "글쎄, 진짜 위협할 마음은 없었는데. 이런 상황은 그냥 경고에 더 가까워.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단 말이야" 라고 말한다. "달리 어떻게 했어야 한다는 거야? 내가 뭔가를 꼭 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인격적 결함은 대부분 압박감이 심할 때 드러난다. 부부 갈등, 양육권 싸움, 교회 리더십 분쟁, 사업상의 어려움, 통치 권력 투쟁을 통해 경증의 인격적 결함이 드러나게 되고, 이것을 지적할 경우 오히려 문제는 악화된다.

 

중증의 인격 장애 못지 않게 이런 경증의 인격 장애를 변화시키는 일 역시 성공 확률이 낮다.

 

이 책에서는 성경의 이야기들과 세상 각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겪는 경험을 살펴보고, 판도라 문제가 침묵이 아닌 실제적 인격 변화로 나타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것이다. 

 

중증의 인격 장애들을 고친 사례들을 연구하면 우리가 침묵하는 경증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르시시즘, 그 판도라 상자를 열다], 짐 와이덜 저-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판도라 문제(Pandora problems)

: 누구나 심각성을 알지만 언급하기를 꺼리고 두려워하여 못 본 체하는 문제. / 폭발력이 강해 아예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인 문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판도라 문제의 역동을 이해하려면 한 집단에서 (악화되기만 할 뿐 달리 도리가 없다고) 두려워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헤쳐 나갈 방법이 있다는 확신이 그 집단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판도라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얼마든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그리스도인 지도자 두 명이 이런 판도라 문제를 해결한 방법을 비교하고 대조해서 살펴볼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자기 어머니를 살해한 사람을 사랑하도록 주위 사람들을 도와야 했다.

 

나는 우발도(Ubald) 신부가 모친을 살해한 남자를 안아 주는 장면을 보면서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두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고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원수를 친구로 삼으면서 그들의 인격에는 심오한 변화가 생겼다.

 

르완다 학살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면서 나는 옆에 앉아 있는 우발도 신부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은 평온했다.

 

이 아프리카계 사제가 잔혹한 살인자들과 참혹한 고통을 당한 희생자들로 이루어진 회중을 사랑의 관계로 이끌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는가?

 

특별히 가해자들이 변화된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그를 보면서 또 다른 위대한 르완다 지도자인 R 박사가 생각났다. 우발도 사제처럼 R 박사 역시 학살 이후 용서를 가르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해 왔다. 그러나 R 박사가 섬기던 기독교 공동체에서 이 학살은 일종의 판도라 문제가 되었다.

 

누구도 학살에 가담한 사실을 입 밖에 내려 하지 않았다.

 

 

학살에 가담한 일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입으로 발설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책을 쓰는 시점에도 문제를 발설하면 상황이 더 악화될 뿐이므로 내 친구들의 실명을 거론할 수 없다)

 

R 박사는 연설을 하려 강단에 섰을 때, 어머니를 눈앞에서 살해한 사람이 맨 앞줄에 앉아 있었던 당시 상황을 내게 말해 주었다.

 

그 사람은 맨 앞줄에 앉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R 박사는 속으로 그 남자를 용서했다. 하지만 그 살인자에게는 어떤 인격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교회는 어떤 화해의 미소도 보이지 않았다. 공동체에는 어떤 기쁨도 없었다. 무슨 말이든 한 마디라도 하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 뻔했다.

 

R 박사와 우발도 신부는 인종 학살이라는 문제를 용감하게 거론하는 놀라운 지도자들이었다.

 

두 지도자 모두 용서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데 매우 뛰어났다.

 

두 사람 모두 모친을 살해한 살인자와 직접 대면했다. 두 사람에게는 원수를 용서하는 그리스도의 심장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두 만남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 주변의 사람들이었다.

 

-[나르시시즘, 그 판도라 상자를 열다], 짐 와일더 저-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기독교 심리학(상담학)에 입각하여 성경 속 이야기들을 독백 형식으로 작성해 봤습니다. 니고데모의 입장이 되어서, 예수님의 입장이 되어서 성경 이야기를 더욱 깊게 들여다 보고, 더 나아가 한 인간의 심리와 내면을 통찰하는데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약 10년 전에 작성한 글입니다.

 

니고데모와 예수님

 

★니고데모의 목마름★

주님. 당신에 대해 배우고 , 연구하는데 제 인생을 걸었습니다.

다시 오실 메시아를 갈망하며 , 하루를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 주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지키려고 애를 썼나이다.

저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바리새파의 길을 걸어 왔으며 율법학자였습니다.

수 년간 학자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 공부했고 ,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장도 맡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모세 오경에 대해 강론을 해 왔고 , 저의 신앙적 열심을 누구보다도 더 강하게 지니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로 갈 수 있는 것인지 말입니다.

당신은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고 있는 랍비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당신에게 가면 무언가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 당신이 하시는 말씀들은 난해하기 짝이 없습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도 그렇고 ,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결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니요.

그렇게 말씀을 많이 보고 , 그 말씀을 제 미간에 붙이고 손목에 매고 다니는데도 이러한 열심이 구원의 조건이 안 된다는 건가요.

맞아요. 전 당신이 말씀하신 땅의 일에 대한 내용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겠어요.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다는 메시지말입니다.

당신은 제 이해를 돕고자 비유를 사용하여 말씀하셨지만 , 뭔가 모호하게 느껴지고 이성적인 담지가 되지 않는 이와 같은 메시지들에 대해 전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또한 제게 친숙한 [민수기 21] 말씀을 사용하신 저의는 무엇인가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는 말씀 말이죠.

그렇다면 , 당신이 바로 그 인자란 말씀인가요뭔가 알 것도 같아요.

하지만 , 쉽지 않네요. 수십 년간 배워 왔던 지식과 전통들이 뭔가 큰 의미를 잃게 되는 것 같거든요. 정말 , 이와 같은 방법이 맞는 건가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중요한 지식을 깨닫지 못했던 건가요?

 

★예수님의 마음★

니고데모야. 난 널 사랑한다. 어두운 이 되어서라도 날 찾아와 준 네가 너무 고맙구나.

너가 지니고 있는 모든 전통과 유전이라는 토대들은 허물어져야 한단다.

그 모든 자기 의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 너는 끝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너의 경건한 행동과 열심은 결코 너를 의롭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로만 그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단다.

너의 상태를 봐야 해. 너가 나에 대한 많은 지식을 알고 있고 , 또한 나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그러한 너의 삶 때문에 지금 너의 존재가 바른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 너의 상태를 바로 자각하지 않으면 ,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사건이 너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어 버린단다.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나를 바라지 않았다. 나를 삶의 주인으로 모실 생각이 전혀 없었단다.

그저 , 자신들의 힘으로 ,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의 존재를 도구로 사용하기 급급했다.

자신들이 원할 때만 나를 찾고 ,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나를 연구했다.

, 실존하고 있으며 인격을 지닌 창조주 하나님이다.

하지만 , 너희들은 나란 존재를 잊어 버린지 오래더구나.

그저 , 너희들은 선택받은 민족이고 , ‘거룩한 민족이라는 완고하고 굳어진 마음만 지닌 채 , 오만하게 고개를 쳐 들고 사람들을 무시해 왔었지.

그 속에 난 거할 수가 없었다.

나를 거치지 않고는 너희에게 소망이 없단다.

너희를 용서하시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나의 십자가다. 너가 곧 보게 될 인자의 들림말이다.

[민수기21] 은 너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너희들에게 주어진 모세오경과 구약 만으로도 난 충분히 나 자신을 계시했었다.

하지만희들은 그 말씀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바른 말을 하는 이사야와 예레미야 등을 너희들이 어떻게 대우했는지 기억하느냐….

너희 입맛에 맞는 예언만 취했고 , 도무지 너희들의 자원 없음’ , ‘을 인정하지 않았었지.

슬프도다. 이젠 , 이 모든 죄악의 사슬들을 끊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 너희 민족들을 만날 때마다 강한 훈계와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 그 모든 게 내 안에 너희들을 향한 한 가닥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란다.

그래도 너희들은 나에 대한 지식이 충만하지 않더냐. 이젠 삶의 주인을 바꾸고 , 빈손을 들고 나를 찾아오지 않겠느냐.

난 너희들마저도 사랑하고 있단다. 난 너희들을 사랑하기에 , 너희들에게 이와 같이 선포하고 다니는 것이다.

돌아오너라.

어서 , 진리의 으로 나아와 어둠에서 멀어지거라. 난 널 사랑한다. 난 널 위해 이 땅에 왔다.  

 

★나의 느낀점★

바리새인이요. 율법학자요. 산헤드린 공회의 위원장이던 니고데모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많은 말씀을 하시며 , 굉장히 지식적이고 , 생각할 거리가 많은 말들을 던져 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필경 그 당시 니고데모의 입장이었다면 더욱 강렬하고 , 어쩌면 더욱 혼란스럽고 , 모호한 시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 무엇보다도 예수님에게는 니고데모를 향한 애끓는 사랑이 있었다. 자신을 곧 십자가에 달려 죽게 만들 민족이요.

오랜 세월 동안 ,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았던 문제아 중에 문제아인 그 이스라엘 백성 , 그리고 그들의 대표에게 그 분은 놀라운 자비를 베풀고 계신다.

말이 어려운 것 같아 보여도 , 사실 [3:16] 등을 통해서 이미 명확한 해답이 주어진 상태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그 어떤 구원도 있을 수 없음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자세히 알려 줬음에도 돌이키지 못한다면 그건 하나님 편의 책임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죄악과 악함이 그 상황을 초래했다고 보는 게 더욱 적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 그 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또한 , 그렇게 지닌 게 많고 , 아는 게 많은 사람이 그래도 예수님을 랍비라 칭하며 , ‘중에라도 찾아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니고데모의 용기와 목마름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조금만 남들보다 더 지니고 있으면 , 어느새 우쭐해 져서 나보다 덜 지닌 자들을 깔 보고 , 업신여기며 나 자신을 높이기에 급급할 때가 많은데 , 니고데모는 그 누구보다도 그와 같은 위치에 처하기 용이했던 사람임에도 질문할 수 있는 자세를 지녔다.

예수님도 그와 같은 니고데모의 진심을 보시고 , 세심하게 그에 대해 답하시며 , 알려 주시며 그를 독려하셨던 것이리라 믿는다.

하나님이 태초부터 사랑하셨고 , 인류의 역사 초창기부터 친히 선택하시사 자신의 사랑을 친밀하게 드러내셨던 민족.

이스라엘. 그런 그들에게 받으셨던 예수님의 배신과,고난,핍박은 일반적인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충격을 더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건 , 그런 그들에게 끊임 없이 손을 내미사 , 그들이 으로 나아오기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장자의 입장에 서 있던 니고데모가 , ‘탕자와 같은 가난한 마음을 얻어감에 따라 그에겐 아버지가 부어 주시는 무조건적 사랑과 은혜의 그림자가 서서히 스미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이 속에 감춰진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시 한 번 찬양하고 싶다.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니고데모와 예수님

 

★니고데모의 목마름★

 

  주님. 당신에 대해 배우고 , 연구하는데 제 인생을 걸었습니다. 다시 오실 메시아를 갈망하며 , 하루를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 주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지키려고 애를 썼나이다. 저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바리새파의 길을 걸어 왔으며 율법학자였습니다.

 

  수 년간 학자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 공부했고 ,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장도 맡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모세 오경에 대해 강론을 해 왔고 , 저의 신앙적 열심을 누구보다도 더 강하게 지니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로 갈 수 있는 것인지 말입니다.

 

  당신은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고 있는 랍비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당신에게 가면 무언가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 당신이 하시는 말씀들은 난해하기 짝이 없습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도 그렇고 ,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결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니요.

 

  그렇게 말씀을 많이 보고 , 그 말씀을 제 미간에 붙이고 손목에 매고 다니는데도 이러한 열심이 구원의 조건이 안 된다는 건가요. 맞아요. 전 당신이 말씀하신 땅의 일에 대한 내용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겠어요.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다는 메시지말입니다.

 

  당신은 제 이해를 돕고자 비유를 사용하여 말씀하셨지만 , 뭔가 모호하게 느껴지고 이성적인 담지가 되지 않는 이와 같은 메시지들에 대해 전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또한 제게 친숙한 [민수기 21] 말씀을 사용하신 저의는 무엇인가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는 말씀 말이죠.

 

  그렇다면 , 당신이 바로 그 인자란 말씀인가요뭔가 알 것도 같아요. 하지만 , 쉽지 않네요. 수십 년간 배워 왔던 지식과 전통들이 뭔가 큰 의미를 잃게 되는 것 같거든요. 정말 , 이와 같은 방법이 맞는 건가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중요한 지식을 깨닫지 못했던 건가요?

 

★예수님의 마음★

 

 니고데모야. 난 널 사랑한다. 어두운 이 되어서라도 날 찾아와 준 네가 너무 고맙구나. 너가 지니고 있는 모든 전통과 유전이라는 토대들은 허물어져야 한단다. 그 모든 자기 의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 너는 끝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너의 경건한 행동과 열심은 결코 너를 의롭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로만 그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단다. 너의 상태를 봐야 해. 너가 나에 대한 많은 지식을 알고 있고 , 또한 나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그러한 너의 삶 때문에 지금 너의 존재가 바른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 너의 상태를 바로 자각하지 않으면 ,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사건이 너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어 버린단다.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나를 바라지 않았다. 나를 삶의 주인으로 모실 생각이 전혀 없었단다.

 

  그저 , 자신들의 힘으로 ,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의 존재를 도구로 사용하기 급급했다. 자신들이 원할 때만 나를 찾고 ,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나를 연구했다. , 실존하고 있으며 인격을 지닌 창조주 하나님이다. 하지만 , 너희들은 나란 존재를 잊어 버린지 오래더구나.

 

  그저 , 너희들은 선택받은 민족이고 , ‘거룩한 민족이라는 완고하고 굳어진 마음만 지닌 채 , 오만하게 고개를 쳐 들고 사람들을 무시해 왔었지. 그 속에 난 거할 수가 없었다. 나를 거치지 않고는 너희에게 소망이 없단다. 너희를 용서하시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나의 십자가다. 너가 곧 보게 될 인자의 들림말이다. [민수기21] 은 너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너희들에게 주어진 모세오경과 구약 만으로도 난 충분히 나 자신을 계시했었다. 하지만희들은 그 말씀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바른 말을 하는 이사야와 예레미야 등을 너희들이 어떻게 대우했는지 기억하느냐…. 너희 입맛에 맞는 예언만 취했고 , 도무지 너희들의 자원 없음’ , ‘을 인정하지 않았었지.

 

  슬프도다. 이젠 , 이 모든 죄악의 사슬들을 끊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 너희 민족들을 만날 때마다 강한 훈계와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 그 모든 게 내 안에 너희들을 향한 한 가닥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란다. 그래도 너희들은 나에 대한 지식이 충만하지 않더냐. 이젠 삶의 주인을 바꾸고 , 빈손을 들고 나를 찾아오지 않겠느냐. 난 너희들마저도 사랑하고 있단다. 난 너희들을 사랑하기에 , 너희들에게 이와 같이 선포하고 다니는 것이다.

 

  돌아오너라. 어서 , 진리의 으로 나아와 어둠에서 멀어지거라. 난 널 사랑한다. 난 널 위해 이 땅에 왔다.  

 

 

★나의 느낀점★

   바리새인이요. 율법학자요. 산헤드린 공회의 위원장이던 니고데모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많은 말씀을 하시며 , 굉장히 지식적이고 , 생각할 거리가 많은 말들을 던져 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필경 그 당시 니고데모의 입장이었다면 더욱 강렬하고 , 어쩌면 더욱 혼란스럽고 , 모호한 시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 무엇보다도 예수님에게는 니고데모를 향한 애끓는 사랑이 있었다. 자신을 곧 십자가에 달려 죽게 만들 민족이요.

 

오랜 세월 동안 ,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았던 문제아 중에 문제아인 그 이스라엘 백성 , 그리고 그들의 대표에게 그 분은 놀라운 자비를 베풀고 계신다. 말이 어려운 것 같아 보여도 , 사실 [3:16] 등을 통해서 이미 명확한 해답이 주어진 상태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그 어떤 구원도 있을 수 없음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자세히 알려 줬음에도 돌이키지 못한다면 그건 하나님 편의 책임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죄악과 악함이 그 상황을 초래했다고 보는 게 더욱 적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 그 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또한 , 그렇게 지닌 게 많고 , 아는 게 많은 사람이 그래도 예수님을 랍비라 칭하며 , ‘중에라도 찾아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니고데모의 용기와 목마름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조금만 남들보다 더 지니고 있으면 , 어느새 우쭐해 져서 나보다 덜 지닌 자들을 깔 보고 , 업신여기며 나 자신을 높이기에 급급할 때가 많은데 , 니고데모는 그 누구보다도 그와 같은 위치에 처하기 용이했던 사람임에도 질문할 수 있는 자세를 지녔다.

 

 예수님도 그와 같은 니고데모의 진심을 보시고 , 세심하게 그에 대해 답하시며 , 알려 주시며 그를 독려하셨던 것이리라 믿는다. 하나님이 태초부터 사랑하셨고 , 인류의 역사 초창기부터 친히 선택하시사 자신의 사랑을 친밀하게 드러내셨던 민족. 이스라엘. 그런 그들에게 받으셨던 예수님의 배신과,고난,핍박은 일반적인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충격을 더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건 , 그런 그들에게 끊임 없이 손을 내미사 , 그들이 으로 나아오기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장자의 입장에 서 있던 니고데모가 , ‘탕자와 같은 가난한 마음을 얻어감에 따라 그에겐 아버지가 부어 주시는 무조건적 사랑과 은혜의 그림자가 서서히 스미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이 속에 감춰진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시 한 번 찬양하고 싶다.

 

 

 

 

 

※ 모든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