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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몇 십 년간 이탈리아에서 태양중심 모델에 관한 새로운 논란이 시작되었다. 이번 논쟁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계 이론의 대표적인 옹호자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입장을 둘러싼 것이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결국 가톨릭교회는 갈릴레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고, 오늘날 이는 일부 교회 관료들이 저지른 명백한 판단 착오로 인식되고 있다.

​처음에 갈릴레이의 의견은 고위 성직자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그가 교황의 총신 치암폴리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일부 작용했다.

 

치암폴리의 권력 실추로 갈릴레이는 교황 측근의 지지를 잃었고, 결국 적들의 공격 대상이 되어 유죄 선고까지 받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록 갈릴레이를 둘러싼 논쟁이 과학 대 종교, 또는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성경의 올바른 해석에 있다.

과거에는 이 논쟁과 관련된 신학적, 더 정확하게 해석학적 쟁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올바르게 조명되지 않았다.

 

이 논쟁에 관심을 가진 학자 상당수가 과학자나 과학 역사가였다.

고도로 복잡했던 시대에 성경 해석에 관한 논쟁의 얽히고설킨 내막을 잘모르는 사람들이 벌였다는 사실도 부분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여하튼 갈릴레이와 그의 비판자들이 벌인 논쟁에서 최대 쟁점은 특정 성경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논쟁에서 조정(accommodation)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점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1615년 1월 발표한 중요한 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갈멜 수도사였던 포스카리니(Paolo Antonio Foscarini)는 <피타고라스학파와 코페르니쿠스의 의견에 관한 서한,Letter on the Opinion of the Pythagoreans and Copernicus>에서 태양중심 모델이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포스카리니는 그의 분석에서 어떤 새로운 성경 해석 원리를 내세우지 않았고, 오히려 전통적인 해석 방식을 제시하고 적용했다.

성경에서 ​부적절하고 부적당하다고 여겨질 만한 속성을 신이나 피조물에 부여하려면 다음 방법 중 하나 이상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야 한다.

​[1] 은유나 비교, 비유의 목적을 지닌 것

[2] 우리의 고찰과 판단, 이해, 인식 등의 방식에 맞게 말한 것

[3] 서민의 생각과 보편적인 화법에 맞게 말한 것


(Blackwell, 1991, pp.94~95)

포스카리니가 말한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세 번째 성경 해석법인 '조정'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말한 대로 이 해석법의 기원은 초기 기독교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에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았다.


포스카리니는 그가 채택한 해석법이 아니라, 그 해석법을 적용한 성경 구절에서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포스카리니는 ​당시까지 많은 이들이 문자 그대로 해석하던 일부 구절에 조정 해석법을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지구가 정지해 있고 태양이 움직인다는 의미로 여겨지던 구절에 대한 것이었다. 포스카리니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성경은 우리의 이해 방식과 형세에 따라 우리를 고려해서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내용이 우리와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인간의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고방식에 맞게 묘사된다. 즉 지구는 멈춰있고 움직이지 않으며 태양이 그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를 생각해서 평범하고 보편적인 말투로 얘기한다. 우리에게는 정말 지구가 한가운데 단단히 고정된 상태에서 태양이 그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이지 그 반대로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Blackwell, 1991, p.95)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더욱 신봉하게 된 갈릴레이 역시 포스카리니와 비슷한 성경 해석법을 채택한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인데 갈릴레이 비판자들은 성경의 몇몇 구절이 갈릴레이의 의견과 반대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 10장 12~13절에는 여호수아의 명령으로 태양이 멈췄다고 하는데, 바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없이 입증한 것이 아닌가?

 

갈릴레이는 <대공비 크리스티나께 드리는 서한, Letter to the Grand Contess Christina>에서 그와 같은 표현은 단지 보편적 화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맞섰다.

여호수아가 천체역학의 복잡한 원리를 알았을리 없고, 결국 그는 '조정된' 화법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두 가지 근거로 공식적인 지탄을 받았다.

[1] 성경은 '단어들의 올바른 의미'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직해적인 해석법이 힘을 얻으면서 포스카리니가 택했던 조정된 해석법은 거부되었다.

그런데도 두 가지 다 기독교 신학계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았고, 오랜 역사를 지닌 해석 방법이라 문제의 성구에 어느 쪽이 적합한가를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졌다.

[2] 성경은 '교황 성하와 박학한 신학자들의 공통된 해석과 이해에 따라' 해석해야 했다.

다시 말해 그때까지 중요한 인물 중 포스카리니의 해석을 따른 이가 없었고, 따라서 그 해석은 새로운 것이므로 일축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포스카리니와 갈릴레이의 견해는 기독교 사상 전례가 없는 새로운 주장인 만큼 거부해야 했다.

두 번째 논점은 매우 중요하다. 향후 오랫동안 계속된 프로테스탄티즘과 로마가톨릭 간의 치열한 논쟁의 맥락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새롭게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정통 기독교의 회복인지를 따졌던 이 논쟁은 17세기에 일어난 30년 전쟁(1618~1648) 때문에 더욱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가톨릭 전통의 불변성이라는 개념은 로마가톨릭이 프로테스탄티즘에 맞서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로마가톨릭을 옹호하는 대표적 인물인 보쉬에(Jacques-Benigne Bossuet, 1627~1704)가 1688년 그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교회의 가르침은 언제나 한결같다....복음은 이전의 내용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과거에 언급되지 않았더너 뭔가가 신앙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이단, 즉 정통 교의에서 벗어난 것이다. 거짓된 교의는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언제 나타나든지 즉시 알아볼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이니까..... (Chadwick, 1957, p.20)

17세기가 시작될 무렵 이러한 주장들은 널리 확산되었고, 포스카리니에 대한 공식적인 비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가 제안한 해석법은 전례가 없었고 그 이유만으로도 옳지 않았다.

 

​이처럼 성경 해석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은 복잡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극도로 정치화된 일촉즉발의 시대에 어떤 새로운 접근법이라도 용인했다가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적법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일까 두려워해 당시의 신학 논쟁은 크게 편향되어 있었다.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해 로마가톨릭의 가르침이 '바뀌었음'을 인정한다면 필시 프로테스탄티즘 핵심 교의, 즉 이제까지 로마가톨릭 교회가 '새로운 것'으로 여겨 거부해왔던 가르침을 정통 교의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갈릴레이의 견해가 저항에 부딪힌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신학적으로 새로운 개념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특정 성구에 대한 갈릴레이의 해석을 수용한다면 가톨릭의 프로테스탄티즘 비판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에서 특정 성구에 새로운, 새롭기 때문에 잘못된 해석을 도입했다는 주장에 기초한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갈릴레이의 주장이 배척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이와 같은 간단한 분석을 통해 갈릴레이 논쟁의 배경에 성경의 해석과 과거 교의의 전승을 두고 갈등을 빚은 프로테스탄티즘과 가톨릭교회의 관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갈릴레이는 이 논쟁의 십자포화와 암류에 휩쓸렸던 것이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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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3년 5월 발표된 코페르니쿠스의 논문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모델은 17세기 초반 20여 년간 케플러의 정밀한 연구가 이루어진 뒤에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중세 신학자들은 '지구중심설'이라고도 불리는 과거의 모델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지구중심설이라는 안경을 쓰고 성구를 읽는 데 익숙한 나머지 새로운 관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구 중심설)
 

따라서 성경과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다룬 최초의 글로 인정받은 레티쿠스(G. J. Rheticus)의 <성경과 지구의 운행에 관한 논문, Treatise on Holy Scripture and the Motion of the Earth>과 같이 초기에 발표된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대한 변론에서는 두 가지 쟁점을 다뤄야 했다.

[1]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는 결론으로 이끌 관측 증거를 제시해야 했다.

[2] 오랫동안 지구중심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해석되었던 성경과 이 견해가 사실은 부합한다는 점을 증명해야 했다.

앞서 말했듯이 관측 증거는 나중에 케플러가 수정한 코페르니쿠스 모델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이 모델을 본다면? 이 모델에 따라 지구중심의 우주와 완전히 결별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태양중심설이 부상하면서 신학자들은 일부 성구의 해석 방법을 재검토할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의 전통적인 성경 해석법은 크게 세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방법을 살펴보고 과학과 종교의 대화라는 주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보자.

 

[1] 성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직해적(literal) 접근법이 있다. 창세기 1장을 직해적으로 해석하면 창조가 하루를 24시간으로 하여 6일에 걸쳐 일어난 것이 된다.

[2] 비직해적, 즉 우의적(allegorical) 접근법으로 성경의 어떤 부분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적절치 않은 문체로 쓰였음을 지적한다.

 

중세에는 성경에서 세 가지 비직해적 의미가 인정되었다.

 

이는 16세기의 많은 학자들이 상당히 정교한 표현으로 여겼던 것들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창세기의 도입부는 시적이거나 우의적인 표현으로서, 여기서 신학과 윤리 원칙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반면 문자 그대로 지구의 기원을 전달하는 역사적 설명은 아니다.

[3] 조정(accommodation)의 개념에 입각한 접근법이다. 이는 성경의 해석과 자연과학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볼 때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접근법이다.

 

여기서는 계시(revelation)가 문화 및 인류학적 조건이 부여된 방법과 형태로 일어나 그 결과를 적절히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는 유대교와 그 뒤에 이어진 기독교 신학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초기 기독교 교부 시대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16세기에 와서야 완성된 모습을 갖췄다.

 

이 관점에 따르면 창세기 도입부에 사용된 언어와 이미지는 초기 독자들의 문화적 환경에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초기 독자에게 맞게 '조정된' 형태와 용어 속에 표현된 핵심 개념을 추출하여 해석해야 한다.

세 번째 접근법은 16~17세기에 신학과 천문학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종교개혁가로 유명한 칼뱅(John Calvin, 1509~1564)은 자연과학이 인정받고 발전하는 데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공헌했다.

(존 칼뱅)


[1]자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을 적극 장려했다.

[2]앞서 설명한 '조정'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과학 연구 발전을 가로막던 큰 장애물을 없앴다.

그의 첫 번째 ​공헌은 특히 창조의 질서를 강조한 것과 관련이 있다. 물리적 세상과 인체 모두 신의 지혜와 개성을 입증하는 증거다. 따라서 ​칼뱅은 천문학과 의학 연구를 장려했다. 자연세계를 신학보다 더 깊이 탐구하면 창조의 질서와 창조주의 지혜를 밝힐 증거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칼뱅은 자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새로운 종교적 동기를 부여했다.

 

칼뱅이 두 번째로 크게 기여한 것은 자연과학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물이었던 성경 직해주의를 타파한 것이다. 성경의 주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성경은 천문학이나 지리학, 생물학 교과서가 아니다.


그리고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신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능력에 맞추어 '적절히 조정'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계시가 일어나려면 신이 인간의 수준으로 내려와야 한다. 인간이 한정된 능력으로 수용할 수 있게 단계를 낮춘, 즉 '조정된' 신의 모습이 계시를 통해 전달된다.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기 위해 몸을 굽히는 것처럼 신 역시 인간의 눈높이에 맞게 스스로 굽히고 낮춘다.


​계시는 신이 보여주는 겸손의 행위인 것이다.

과학 이론화에 관한 이 두가지 관점은 특히 17세기에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영국의 저술가 라이트(Edward Wright)는 길버트(William Gilbert)가 쓴 자기학 관련 논문 (1600)의 서문에서 성경 직해주의자들에 맞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옹호했다.

​성경은 물리학을 다룬 책이 아니며, 성경의 화법은 '유모가 어린아이를 대하듯 보통 사람의 이해력과 말투에 맞게 조정된 것'이라고 주장했다.(Hooykaas, 1972, pp.122~123). 이 두 가지 주장 모두 칼뱅에서 비롯된 것인만큼 칼뱅은 자연과학의 출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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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첨예한 요즘 분위기에서 둘 간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책입니다.


과학사에서 잘못 알려진 역사적 진실을 추적해 보기도 하고, 맥그라스 특유의 논리를 바탕으로 섯부른 이분법적 접근이나 굴드 식 NOMA 개념을 거부하는 책입니다.


평소 맥그라스의 저서를 좋아한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책이 될 것이며 이 책을 입문서로 시작해 개론서들을 찾아 읽으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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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근대에 인류가 세 가지 '자기애적 상처'(narcissistic wound)를 입었고, 각각의 상처는 인간의 자긍심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단언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 퍼옴)​


첫 번째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 있음을 알려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입힌 상처였다.

두 번째 상처는 심지어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음을 입증한 다윈주의였다.

세 번째는 인간이 자신의 한정된 영역에서도 주인이 아님을 밝히는 프로이트 본인이 입힌 상처라고 그는 당당히 밝혔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러한 혁명적 전환은 전자가 가져온 고통과 상처를 가중시키면서 인류의 위치와 중요성에 관한 철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프로이트의 견해가 갖는 종교적 의미는 이 책에서 나중에 다시 조명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 '상처' 중 첫 번째인 코페르니쿠스 혁명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각 시대는 그 시대의 세계관을 뒷밤침하는 일련의 확립된 신념들이 존재한다.

중세도 예외는 아니다. 중세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태양과 다른 천체(달, 행성 등)가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는 믿음이었다. '지구 중심적' 우주관은 자명한 사실로 간주되었다.

 

성경도 이러한 믿음을 근간으로 해석했다 .많은 성경의 해석에 지구중심적 가정이 적용되었다. 현재 사용 중인 언어 대부분도 지구중심적 세계관을 여전히 반영한다.

예를 들어 현대 영어에서도 '해가 오전 7시 33분에 떠올랐다.'고 말하는데, 여기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

태양계의 지구중심 모델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일상생활에 별 영향을 주지 않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중세 초기에 가장 널리 받아들였던 우주관은 2세기 상반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eos)가 구상한 것이었다. 그는 <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달과 행성의 운행에 관한 기존의 개념을 집대성하면서 다음 가정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다.

2. 모든 천체는 원을 그리며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

3. 회전은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그 중심 역시 또 다른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형태를 띤다. 본래 히파르코스(Hipparchos)가 주창했던 이 중심론은 '주전원'(epicycle), 즉 원 운동 위에 원 운동이 부여된다는 개념에 근거한다.

행성과 항성의 움직임이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관측되면서 이론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주전원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모순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5세기 말 무렵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루기 힘든 이 모델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에 있었다. 하지만 무엇으로 대체한단 말인가?

16세기 들어 지구중심 모델은 태양 중심 모델, 즉 태양을 중심에 놓고 지구는 그 주위를 도는 많은 행성 중 하나라고 보는 관점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는 기존 모델과 완전한 결별을 뜻하며, 지난 1000년 간 인류의 실재관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임이 분명하다. 이 사고의 전환을 흔히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 부르며, 이것이 자리잡기까지 세 명의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폴란드 학자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동심원을 그리며 회전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 뿐 아니라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했다.


(코페르니쿠스- 퍼옴)


그러므로 항성과 행성이 움직이는 듯 보이는 것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조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모델은 차츰 버거워진 프톨레마이오스 모데렝 비해 단순하고 정밀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그러나 이 모델 역시 모든 관측 데이터를 설명하지는 못했고, 이 이론을 받아들이려면 수정이 필요했다.

덴마크 학자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는 코펜하겐 인근 섬의 관측소에 있으면서 1576년부터 1592년까지 행성 운동에 관한 일련의 정밀 관측을 실시했다.

이 관측 자료는 케플러(Johann Kepler, 1571~1630)가 수정한 태양계 모델의 토대가 되었는데, 그는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2세가 사망한 뒤 브라헤가 보헤미아로 이주할 때까지 브라헤의 조수로 일했다.

(요하네스 케플러)

케플러는 행성인 화성의 운행을 관측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행성이 태양 주위를 원형 궤도를 그리며 돈다고 가정하는 코페르니쿠스 모델로는 실제 관측된 화성의 운행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609년 케플러는 화성 운행의 일반 원칙 두 가지를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

[1] 화성이 타원형 궤도로 회전하며, 이 때 태양은 두 초점 중 하나다

[2] 화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선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면적을 휩쓸고 지나간다.

1619년경 그는 이 두 원칙을 나머지 행성에 확대 적용해 세 번째 원칙을 밝혀냈다.

[3] 행성의 공전 주기(행성이 태양 주위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 간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케플러의 모델은 코페르니쿠스의 개념을 상당히 수정한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획기적인 새 모델은 개념이 정밀하고 단순한데도 행성의 궤도가 원형이라는 잘못된 가정 때문에 관측 데이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흥미롭게도 이 가정은 유클리드 고전 기하학에서 유래한 듯하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리스 고전 철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원은 기하학적으로 완전한 형태지만 타원은 왜곡된 형태였다.

왜 자연이 기형적인 기하학 구조를 사용하겠는가?

-알리스터 맥그라스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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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그린의 [멀티 유니버스] 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상대성 이론, 다중우주론 등에 대한 비교적 명료하며 친절한 설명이 장점이 책입니다. 그의 전작인 [엘러건트 유니버스], [우주의 구조] 등과 함께 읽는다면 시너지 효과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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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지난 수 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쌓아왔던 직관, 즉 시간과 공간이 우주만물의 저변에 깔려 있는 불변의 배경이라는 관념을 한방에 무너뜨렸다.

 

그전에 과연 어느 누가 시공간을 "수시로 뒤틀리거나 구부러지면서 우주의 안무를 관장하는 적극적인 객체"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혁명의 춤'이었으며, 관측을 통해 틀림없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과학자로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근거 없는 오래된 편견에 사로잡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정적 우주-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다음 해에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가장 큰 스케일인 우주에 적용해보았다.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엄청난 작업처럼 들리겠지만, 이론물리학자들은 끔찍하게 복잡한 대상을 단순화시키는 데 거의 도사들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대상의 물리적 특성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이론적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단순화시키되 기본적 특성은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론물리학의 예술이다.

이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소위 말하는 '우주원리(cosmological principle)'에 입각하여 우주를 단순화시킴으로써 이론적 우주론의 기틀을 마련했다.

우주원리란 "가장 큰 스케일에서 보면 우주는 균일하다"는 것이다.

 

당신이 아침에 마시는 차를 생각해보라. 미시적인 스케일에서 보면 차의 내부는 전혀 균일하지 않다. 곳곳에 H2O 분자가 있고 그 옆은 비어 있으며, 그 옆에는 폴리페놀(polyphenol)과 타닌(tannin)분자가 떠다니고, 그 옆은 또 비어 있고....기타 등등이다.

 

 

그러나 거시적 스케일, 즉 맨눈으로 바라보면 차는 지극히 균일한 액체이다.

 

아인슈타인은 우리의 우주가 찻잔 속에 담긴 차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여기 지구가 있고, 그 옆은 비어 있고, 달이 있고, 그 옆은 더 넓게 비어 있고, 금성, 수성, 그리고 태양 등이 불규칙적으로 늘어서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작은 스케일에서 나타나는 불균일성일 뿐,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찻잔 속의 차처럼 균일하다.

아인슈타인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우주원리를 입증할 만한 관측자료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는 우주 안의 어떤 지점도 다른 지점보다 특별하지 않다고 굳게 믿었다.

평균적으로 볼 때 우주의 모든 지점은 서로 동일하여, 물리적 특성도 근본적으로 거의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얻어진 천문관측 데이터는 우주원리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적어도 1억 광년 이상의 규모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1억 광년은 은하수 폭의 약 1,000배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예를 들어 각 변의 길이가 1억 광년인 상자 하나를 '여기'에 놓고, 같은 크기의 상자를 '저기('여기'로부터 1억 광년 떨어진 곳)'에 놓았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각 상자 내부의 평균적인 특성(은하의 평균밀도, 물질의 평균밀도, 공간의 평균온도 등)을 관측해보면 거의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다. 간단히 말해서, 1억 광년짜리 '조각 우주'를 보았다면 그로부터 우주 전체의 특성을 유추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우주 전체의 특성을 연구할 때 균일성(uniformity)은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아름답고 균일하면서 잔잔한 파도가 이는 해변가로 나가보자.

 

단, 당신에게는 하나의 임무가 주어져 있다. 해변가를 둘러본 후 작은 규모의 특성을 내가 알아듣도록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작은 규모'란 모래 한 알 한 알의 물리적 특성을 일일이 조사한 후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신의 임무가 너무 과하다며 강하게 항의한다. 하긴 어느 세월에 모래알을 일일이 들여다본다는 말인가?

 

그래서 나는 친절을 베풀어 당신의 임무를 조금 수정했다. 해변가의 특성을 탐색하되, 1m3 당 모래의 평균무게와 1m3당 햇빛의 평균반사율, 해변가의 평균온도 등 정보의 내용을 조금 큰 스케일로 바꿨다.

그랬더니 당신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맙다는 인사까지 한다.

이 작업이 만만해 보이는 이유는 해변가가 전체적으로 균일하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서 있는 근처에서 모래의 평균무게와 평균반사율, 그리고 평균온도를 재빨리 측정한 후 남은 시간을 느긋하게 즐기면 된다.

멀리까지 가서 같은 측정을 반복해봐야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균일한 우주도 이와 비슷하다. 우주를 분석하기 위해 행성과 별, 은하 등 모든 천체를 일일이 고려해야 한다면 천문학은 별로 희망이 없다.

그러나 균일한 우주의 평균적인 특성을 서술하는 것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쉽다. 여기에 일반상대성이론까지 주어졌으니, 천문학자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소식이 없을 것이다.

방정식을 통해 우주의 특성이 밝혀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방대한 공간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의 총량은 물질의 밀도 ,더욱 정확하게는 '물질과 에너지의 밀도'로 결정된다.

그리고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은 이 밀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우주원리를 도입하지 않으면 방정식을 푸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방정식은 모두 10개인데, 각 방정식은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리지아의 고르디우스왕이 매어놓은 매듭으로, 이것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한다고 예언되었다. 흔히 '풀기 어려운 문제'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옮긴이)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다른 방정식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그런데 다행히도 아인슈타인은 균일한 우주에 이 방정식을 적용하면 문제가 크게 단순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주가 균일하다고 가정하면 10개의 방정식들 중 대부분이 중복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단 하나의 방정식만 풀면 된다.

우주원리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어서 수학이 크게 단순해졌고, 그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우주에 퍼져 있는 물질과 에너지를 단 하나의 방정식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방정식을 풀어서 얻은 결과는 그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당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 사이에는 우주가 큰 스케일에서 균일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팽배해 있었다.

찻잔 속의 분자들이 복잡한 운동을 하고 있지만 이들의 운동을 전체적으로 평균해서 거시적으로 보면 잔잔한 액체가 되듯이, 태양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이나 은하의 가장자리를 돌고 있는 태양의 움직임 등을 모두 평균하면 변하지 않는 우주가 얻어진다.

이 정적인 우주관에 집착했던 아인슈타인은 계산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장방정식은 물질과 에너지의 밀도가 시간에 따라 더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수학적인 과정은 꽤나 복잡하지만, 여기 담겨 있는 물리학적 의미는 매우 단순하다. 야구장의 홈플레이트에서 출발하여 중견수 쪽 담장을 향해 날아가는 야구공을 생각해보자.

처음에 공은 로켓처럼 위로 솟구쳤다가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최고점에 도달한 후 어딘가에 떨어진다. 이 공은 날아가는 동안 비행선처럼 공중에 머물렀던 순간이 단 한번도 없었다.

중력이 공을 항상 아래쪽으로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행선의 경우에는 기압에 의한 부력이 아래로 향하는 중력과 상쇄되기 때문에 공중에 가만히 떠 있을 수 있다. (비행선의 풍선은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가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허공을 날아가는 야구공에는 중력을 상쇄시키는 힘이 전혀 없으므로 (공기저항이 야구공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정지상태를 연출할 수는 없다) 공이 공중에 가만히 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우주가 비행선보다 야구공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무조건 잡아당기기만 하는 중력을 상쇄시킬 만한 외향력(outward force)이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계산된 우주는 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우주공간이 외부로 뻗어나가거나 안으로 수축될 수는 있어도, 고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육면체 공간의 각 변이 오늘 1억 광년이었다면, 내일은 더 이상 1억 광년이 아닌 것이다. 부피가 더 커진다면 그 내부의 물질밀도는 작아질 것이고 (공간의 크기에 비해 물질이 더 드물게 존재할 것이고), 부피가 작아진다면 물질의 밀도는 더 커질 것이다. (물질이 더 촘촘하게 존재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일반상대성이론의 수학에 의하면, 공간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큰 스케일에서 본다고 해도 우주는 변해야만 했다.

아인슈타인이 기대했던 '정적이고 영원한' 우주는 방정식의 답이 아니었다. 그는 우주론을 창시한 장본인이었지만, 수학이 인도하는 길을 곧이곧대로 따라가다가 커다란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브라이언 그린은 이 저서에서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우주 물리학이 실제로 관측할 수 없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보니 실제로 감각 기관을 통해 지각하지 못하더라도 수학적 방정식에 잘 부합하는 값이 나온다면 이는 충분히 과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곤 한다.

 

하지만 과연 이를 '과학'이라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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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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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셔머의 <도덕의 궤적> 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뒤에 Reference 를 제외하고도 650page에 달하는 상당한 볼륨을 자랑하는 책입니다.

 

이야기의 요지는 '과학'과 '이성'이 인류에 혼란을 초래하거나, 비도덕을 유발한 게 아니라 오히려 '진리', '정의', '자유'를 이끌어 냈다는 대담한 주장을 하는 책입니다. 대개 종교, 신앙 등의 기준이 '도덕과 윤리' 등의 '가치'를 지탱해 주고, 과학은 '객관적 사실'의 영역을 지탱해 준다는 논점들이 주를 이뤘었는데요.

(데니얼 데닛, 리처드 도킨스 등의 강성 유물론적 무신론을 지향하는 이들은 이러한 이분법적 논거도 반대를 하며, 종교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허구'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등의 책을 보면, 그의 강경한 어조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쓴 [도킨스의 망상]과 함께 보면 재미있습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존 레녹스의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을 보면 기독교적 변증이 상당히 잘 되어 있습니다. 도킨스와 레녹스, 맥그라스가 토론을 한 영상은 유투브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온건한 무신론 지지자들은 대개 종교의 역할을 일부 남겨두는 절충안을 지지해 왔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이러한 이분법은 논리적이지 않고, 사실이라고 보기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셔머는 이젠 '도덕' 등의 '가치'의 영역도 과학과 이성으로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 주장하며 그나마 남아 있던 종교의 자리를 가져가는 주장을 합니다.

책이 상당히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유신론을 지지하는 분들이 본다면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과학과 이성이 가져다 주는 순기능에 대해선 즐겁게 읽어 내려가면 되겠지만 이 두툼한 책을 다 읽으면 과연 전체 논리에 설득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 집니다. 하지만 도킨스의 저서,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데니얼 데닛의 저서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 전제 자체가 달라서 그런지 논리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맥그라스나 C.S Lewis가 쓴 변증서적이 훨씬 논리적이고 치밀해 보였습니다.

과학의 정의 자체가 생각보다 간단치 않은지라 여러 가지 논란이 있겠지만 이 책에 나온 내용을 간단히 고찰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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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과학은 과거나 현재에 관찰 또는 추론된 현상을 기술하고 해석하는 방법 체계로, 가설을 검증하고 이론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방법 체계라고 한 것은 과학이 사실들의 집합이라기보다는 과정에 가까움을 강조하는 것이고, 기술하고 해석한다는 것은 그 사실들이 자명하지 않음을 뜻한다.

관찰 또는 추론된 현상은, 자연에는 코끼리와 별처럼 우리가 볼 수 있는 대상들이 존재하지만 코끼리와 별의 진화처럼 우리가 추론해야 하는 대상들도 존재함을 뜻한다.

(개인 의견: 과학의 정의를 임의적으로 정하여서 자신들이 원하는 논거를 획득하고 있는데, 과연 직접 볼 수 없는 현상을 '추론'할 때, 그 가능성이 과학적 사실이라 불릴 만큼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과거나 현재라고 표현한 것은 과학의 도구들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뿐 아니라 과거에 일어난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과학에는 우주론, 고생물학, 지질학, 고고학, 그리고 인류 역사를 포함한 역사학이 있다.)

가설을 검증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 타당한 과학적 진리가 되려면 반드시 검증 가능해야 함을 뜻한다.

 

검증을 할 수 있어야 참임을 확증하거나 거짓임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을 구축한다는 것은, 과학의 목표가 수많은 검증된 가설들로부터 포괄적인 설명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과학적 방법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관찰하고, 그것을 토대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예측을 한 다음, 추가적인 관찰을 통해 그 예측이 맞는지 틀렸는지 검증함으로써 처음에 세운 가설을 확증하거나 반증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 과정에서 관찰, 결론의 도출, 예측의 검증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그런데 관찰을 통한 데이터 수집은 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는 가설에 따라 어떤 종류의 관찰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데, 이러한 가설들 자체는 관찰자의 교육, 문화, 특정한 편향을 통해 형성된다. 열쇠는 관찰이 쥐고 있다.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스탠리 에딩턴(Arthur Stanley Eddington) 경은 법적 은유를 사용해 그 점을 지적했다.

"물리학의 결론들이 참인지 가리는 최종 법정은 관찰이다."

과학은 모든 사실은 잠정적인 것으로서 언제든 도전받고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과학은 그 자체로 '어떤 것'이 아니라, 잠정적 결론들을 이끌어내는 발견 방법이다.

[이성]

 

 

 

이성이란,논리와 합리성을 사용함으로써 사실을 확인하고 입증하며, 그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고 믿음을 형성하는 인지 능력이다.

 

합리성(rationality)은 추측, 의견, 느낌 대신 이성을 사용해 사실과 증거를 바탕으로 한 신념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본인이 사실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실인 것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지심리학 분야에서 지난 몇 십년 동안 이루어진 연구가 보여주듯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합리적인 계산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에 좌우되고, 편향에 눈멀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도덕 감정들에 이끌리는 존재다.

확증 편향, 사후 확신 편향, 자기 정당화 편향, 매몰비 편향, 현상유지 편향, 거점 효과, 근본적 귀인 오류는 우리가 증거를 무시한 채 사실이기를 바라는 것을 실제 사실로 믿게끔 만드는 뇌의 수많은 '동기화된 추론' 방식들 가운데 단 몇 가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성과 합리성은 우리 뇌의 특징적 요소로 자리 잡았는데, 패턴과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일(이것을 학습이라고 부른다)을 위해 진화한 그러한 능력이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환경에서 생존과 번성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지 구조의 일부가 된 이성이라는 능력은 일단 생긴 뒤에는 애초에 진화할 때는 의도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분석하는 데 투입될 수 있다.

핑커는 이것을 열려있는 조합적 추론 체계라고 부른다.

"이성은 식량을 마련하고 동맹을 다지는 것 같은 일상적 문제들을 위해 진화했지만, 다른 명제들의 논리적 귀결로서 따라 나오는 명제들에 쓰이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능력은 도덕에 중요하게 쓰이는데, "만일 어떤 종의 구성원들이 이성을 이용해 서로를 설득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그러한 능력을 발휘할 충분한 기회가 있다면, 그 종은 조만간 비폭력을 포함한 호혜적 배려가 서로에게 이익임을 발견하고 그러한 능력을 점점 더 광범위하게 활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 의견: 핑커의 설명은 진화 생물학을 '참'으로 전제한 상태에서 '이성'의 진화를 설명해 내고 있다. 독창적인 '가설' 정도로 간주하고 넘어가도 될 것 같다.)

 

수렵-채집인들이 하는 것처럼 발자취로 동물의 움직임을 추론하는 것은 명백히 생존에 도움이 되고, 우리는 자동차를 몰고 상점에 가는 것에서부터 달에 로켓을 쏘아 올리는 것까지 모든 일에 그러한 추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과학사가이자 동물 추적 전문가인 루이스 리벤버그(Louis Liebenberg)는 우리의 과학적 추론 능력은 조상들이 발전시킨 사냥감을 추적하는 기술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리벤버그가 찾아낸 추적과 과학적 방법의 유비 관계는 흥미롭고도 중요한 사실들을 드러낸다.

"추적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 정보가 수집되면 가설은 수정되거나 더 나은 가설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동물의 행동에 대한 가설이 세워져 있으면, 이 가설로부터 그 동물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측들이 맞는지 틀린지 점검하면서 가설을 검증하는 작업이 계속된다."

리벤버그는 조직적인 추적('그 동물이 무엇을 하고 있었고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자세히 알 때까지 단서에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것')과 사변적인 추적('단서들에 대한 초기 해석, 그 동물의 행동에 대한 지식, 그리고 지형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작업 가설을 세우는 것'으로, 이러한 작업 가설은 검증된 이론적 가설이 되거나, 확증되지 않을 경우 그 동물의 행방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이끌어낸다.)을 구별한다.

사변적인 추적에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 ToM)' 또는 '마음 읽기(mind reading)'라고 부르는 또 다른 인지 과정이 수반되는데, 그 과정에서 추적자는 자신이 쫓고 있는 동물의 마음이 되어 그 동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상상함으로써 그 동물의 행동을 예측한다.

리벤버그는 고고학 및 인류학 증거를 토대로 인간은 적어도 200만 년전부터(호모 에렉투스 때부터) 사냥을 하고 조직적인 추적을 했으며, 적어도 10만 년 전부터 사변적 추적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러한 인지 능력이 언제 생겼든, 사자가 어젯밤에 여기서 잤다는 사실을 유추하는 신경 구조가 일단 자리를 잡으면, 사자를 다른 동물이나 사물로, '이곳'을 '저곳'으로, '어젯밤'을 '내일 밤'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러한 추론 과정의 대상들과 시간 소요들은 서로 교환 가능하다.

오늘날의 예를 들면, 우리가 구구단을 외워서 7 곱하기 5가 35임을 알면, 5 곱하기 7도 35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이 방정식에서 5와 7은 교환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잡아먹을 동물을 추적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추론 능력들을 위해 진화한 신경계의 부산물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목적을 위해 진화한 뇌가 다른 목적에 쓰일 수 있으며, (먹잇감에서부터 사람들까지) 수많은 조합과 옵션을 아우르는 한 방정식의 X항과 Y항을 대체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은 우리가 다른 도덕적 행위자의 관점을 취할 수 있게 하고 따라서 도덕적 추론의 바탕이 되는 인지 구조다.

-[도덕의 궤적] 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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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몇 십 년간 이탈리아에서 태양중심 모델에 관한 새로운 논란이 시작되었다.

이번 논쟁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계 이론의 대표적인 옹호자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입장을 둘러싼 것이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결국 가톨릭교회는 갈릴레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고, 오늘날 이는 일부 교회 관료들이 저지른 명백한 판단 착오로 인식되고 있다.

​처음에 갈릴레이의 의견은 고위 성직자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그가 교황의 총신 치암폴리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일부 작용했다. 치암폴리의 권력 실추로 갈릴레이는 교황 측근의 지지를 잃었고, 결국 적들의 공격 대상이 되어 유죄 선고까지 받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비록 갈릴레이를 둘러싼 논쟁이 과학 대 종교, 또는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성경의 올바른 해석에 있다.

과거에는 이 논쟁과 관련된 신학적, 더 정확하게 해석학적 쟁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올바르게 조명되지 않았다. 이 논쟁에 관심을 가진 학자 상당수가 과학자나 과학 역사가였다.

고도로 복잡했던 시대에 성경 해석에 관한 논쟁의 얽히고설킨 내막을 잘모르는 사람들이 벌였다는 사실도 부분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여하튼 갈릴레이와 그의 비판자들이 벌인 논쟁에서 최대 쟁점은 특정 성경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논쟁에서 조정(accommodation)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점을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1615년 1월 발표한 중요한 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갈멜 수도사였던 포스카리니(Paolo Antonio Foscarini)는 <피타고라스학파와 코페르니쿠스의 의견에 관한 서한,Letter on the Opinion of the Pythagoreans and Copernicus>에서 태양중심 모델이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포스카리니-

 

포스카리니는 그의 분석에서 어떤 새로운 성경 해석 원리를 내세우지 않았고, 오히려 전통적인 해석 방식을 제시하고 적용했다.

성경에서 ​부적절하고 부적당하다고 여겨질 만한 속성을 신이나 피조물에 부여하려면 다음 방법 중 하나 이상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야 한다.

​[1] 은유나 비교, 비유의 목적을 지닌 것

[2] 우리의 고찰과 판단, 이해, 인식 등의 방식에 맞게 말한 것

[3] 서민의 생각과 보편적인 화법에 맞게 말한 것


(Blackwell, 1991, pp.94~95)

포스카리니가 말한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세 번째 성경 해석법인 '조정'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말한 대로 이 해석법의 기원은 초기 기독교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에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았다.


포스카리니는 그가 채택한 해석법이 아니라, 그 해석법을 적용한 성경 구절에서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포스카리니는 ​당시까지 많은 이들이 문자 그대로 해석하던 일부 구절에 조정 해석법을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지구가 정지해 있고 태양이 움직인다는 의미로 여겨지던 구절에 대한 것이었다. 포스카리니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성경은 우리의 이해 방식과 형세에 따라 우리를 고려해서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내용이 우리와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인간의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고방식에 맞게 묘사된다. 즉 지구는 멈춰있고 움직이지 않으며 태양이 그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를 생각해서 평범하고 보편적인 말투로 얘기한다. 우리에게는 정말 지구가 한가운데 단단히 고정된 상태에서 태양이 그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이지 그 반대로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Blackwell, 1991, p.95)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더욱 신봉하게 된 갈릴레이 역시 포스카리니와 비슷한 성경 해석법을 채택한다.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인데 갈릴레이 비판자들은 성경의 몇몇 구절이 갈릴레이의 의견과 반대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 10장 12~13절에는 여호수아의 명령으로 태양이 멈췄다고 하는데, 바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없이 입증한 것이 아닌가?

 

갈릴레이는 <대공비 크리스티나께 드리는 서한, Letter to the Grand Contess Christina>에서 그와 같은 표현은 단지 보편적 화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맞섰다.

여호수아가 천체역학의 복잡한 원리를 알았을리 없고, 결국 그는 '조정된' 화법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두 가지 근거로 공식적인 지탄을 받았다.

[1] 성경은 '단어들의 올바른 의미'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직해적인 해석법이 힘을 얻으면서 포스카리니가 택했던 조정된 해석법은 거부되었다.

그런데도 두 가지 다 기독교 신학계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았고, 오랜 역사를 지닌 해석 방법이라 문제의 성구에 어느 쪽이 적합한가를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졌다.

[2] 성경은 '교황 성하와 박학한 신학자들의 공통된 해석과 이해에 따라' 해석해야 했다.

다시 말해 그때까지 중요한 인물 중 포스카리니의 해석을 따른 이가 없었고, 따라서 그 해석은 새로운 것이므로 일축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포스카리니와 갈릴레이의 견해는 기독교 사상 전례가 없는 새로운 주장인 만큼 거부해야 했다.

두 번째 논점은 매우 중요하다. 향후 오랫동안 계속된 프로테스탄티즘과 로마가톨릭 간의 치열한 논쟁의 맥락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새롭게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정통 기독교의 회복인지를 따졌던 이 논쟁은 17세기에 일어난 30년 전쟁(1618~1648) 때문에 더욱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가톨릭 전통의 불변성이라는 개념은 로마가톨릭이 프로테스탄티즘에 맞서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로마가톨릭을 옹호하는 대표적 인물인 보쉬에(Jacques-Benigne Bossuet, 1627~1704)가 1688년 그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교회의 가르침은 언제나 한결같다....복음은 이전의 내용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과거에 언급되지 않았더너 뭔가가 신앙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이단, 즉 정통 교의에서 벗어난 것이다. 거짓된 교의는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언제 나타나든지 즉시 알아볼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이니까..... (Chadwick, 1957, p.20)

17세기가 시작될 무렵 이러한 주장들은 널리 확산되었고, 포스카리니에 대한 공식적인 비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가 제안한 해석법은 전례가 없었고 그 이유만으로도 옳지 않았다.

​이처럼 성경 해석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은 복잡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극도로 정치화된 일촉즉발의 시대에 어떤 새로운 접근법이라도 용인했다가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적법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일까 두려워해 당시의 신학 논쟁은 크게 편향되어 있었다.

어떤 중요한 사안에 대해 로마가톨릭의 가르침이 '바뀌었음'을 인정한다면 필시 프로테스탄티즘 핵심 교의, 즉 이제까지 로마가톨릭 교회가 '새로운 것'으로 여겨 거부해왔던 가르침을 정통 교의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갈릴레이의 견해가 저항에 부딪힌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신학적으로 새로운 개념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특정 성구에 대한 갈릴레이의 해석을 수용한다면 가톨릭의 프로테스탄티즘 비판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에서 특정 성구에 새로운, 새롭기 때문에 잘못된 해석을 도입했다는 주장에 기초한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갈릴레이의 주장이 배척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이와 같은 간단한 분석을 통해 갈릴레이 논쟁의 배경에 성경의 해석과 과거 교의의 전승을 두고 갈등을 빚은 프로테스탄티즘과 가톨릭교회의 관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갈릴레이는 이 논쟁의 십자포화와 암류에 휩쓸렸던 것이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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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3년 5월 발표된 코페르니쿠스의 논문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모델은 17세기 초반 20여 년간 케플러의 정밀한 연구가 이루어진 뒤에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중세 신학자들은 '지구중심설'이라고도 불리는 과거의 모델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지구중심설이라는 안경을 쓰고 성구를 읽는 데 익숙한 나머지 새로운 관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구 중심설=천동설)
 

따라서 성경과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다룬 최초의 글로 인정받은 레티쿠스(G. J. Rheticus)의 <성경과 지구의 운행에 관한 논문, Treatise on Holy Scripture and the Motion of the Earth>과 같이 초기에 발표된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대한 변론에서는 두 가지 쟁점을 다뤄야 했다.

[1]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는 결론으로 이끌 관측 증거를 제시해야 했다.

[2] 오랫동안 지구중심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해석되었던 성경과 이 견해가 사실은 부합한다는 점을 증명해야 했다.

앞서 말했듯이 관측 증거는 나중에 케플러가 수정한 코페르니쿠스 모델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이 모델을 본다면? 이 모델에 따라 지구중심의 우주와 완전히 결별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태양중심설이 부상하면서 신학자들은 일부 성구의 해석 방법을 재검토할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의 전통적인 성경 해석법은 크게 세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방법을 살펴보고 과학과 종교의 대화라는 주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보자.

[1] 성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직해적(literal) 접근법이 있다. 창세기 1장을 직해적으로 해석하면 창조가 하루를 24시간으로 하여 6일에 걸쳐 일어난 것이 된다.

[2] 비직해적, 즉 우의적(allegorical) 접근법으로 성경의 어떤 부분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적절치 않은 문체로 쓰였음을 지적한다. 중세에는 성경에서 세 가지 비직해적 의미가 인정되었다. 이는 16세기의 많은 학자들이 상당히 정교한 표현으로 여겼던 것들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창세기의 도입부는 시적이거나 우의적인 표현으로서, 여기서 신학과 윤리 원칙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반면 문자 그대로 지구의 기원을 전달하는 역사적 설명은 아니다.

[3] 조정(accommodation)의 개념에 입각한 접근법이다. 이는 성경의 해석과 자연과학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볼 때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접근법이다. 여기서는 계시(revelation)가 문화 및 인류학적 조건이 부여된 방법과 형태로 일어나 그 결과를 적절히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는 유대교와 그 뒤에 이어진 기독교 신학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초기 기독교 교부 시대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16세기에 와서야 완성된 모습을 갖췄다.

 

이 관점에 따르면 창세기 도입부에 사용된 언어와 이미지는 초기 독자들의 문화적 환경에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초기 독자에게 맞게 '조정된' 형태와 용어 속에 표현된 핵심 개념을 추출하여 해석해야 한다.

세 번째 접근법은 16~17세기에 신학과 천문학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종교개혁가로 유명한 칼뱅(John Calvin, 1509~1564)은 자연과학이 인정받고 발전하는 데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공헌했다.

(장 칼뱅)


[1]자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을 적극 장려했다.

[2]앞서 설명한 '조정'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과학 연구 발전을 가로막던 큰 장애물을 없앴다.

그의 첫 번째 ​공헌은 특히 창조의 질서를 강조한 것과 관련이 있다. 물리적 세상과 인체 모두 신의 지혜와 개성을 입증하는 증거다. 따라서 ​칼뱅은 천문학과 의학 연구를 장려했다.

 

자연세계를 신학보다 더 깊이 탐구하면 창조의 질서와 창조주의 지혜를 밝힐 증거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칼뱅은 자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새로운 종교적 동기를 부여했다.

칼뱅이 두 번째로 크게 기여한 것은 자연과학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물이었던 성경 직해주의를 타파한 것이다. 성경의 주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성경은 천문학이나 지리학, 생물학 교과서가 아니다.


그리고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신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능력에 맞추어 '적절히 조정'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계시가 일어나려면 신이 인간의 수준으로 내려와야 한다. 인간이 한정된 능력으로 수용할 수 있게 단계를 낮춘, 즉 '조정된' 신의 모습이 계시를 통해 전달된다.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기 위해 몸을 굽히는 것처럼 신 역시 인간의 눈높이에 맞게 스스로 굽히고 낮춘다.


​계시는 신이 보여주는 겸손의 행위인 것이다.

과학 이론화에 관한 이 두가지 관점은 특히 17세기에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영국의 저술가 라이트(Edward Wright)는 길버트(William Gilbert)가 쓴 자기학 관련 논문 (1600)의 서문에서 성경 직해주의자들에 맞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옹호했다.

​성경은 물리학을 다룬 책이 아니며, 성경의 화법은 '유모가 어린아이를 대하듯 보통 사람의 이해력과 말투에 맞게 조정된 것'이라고 주장했다.(Hooykaas, 1972, pp.122~123). 이 두 가지 주장 모두 칼뱅에서 비롯된 것인만큼 칼뱅은 자연과학의 출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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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첨예한 요즘 분위기에서 둘 간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책입니다. 과학사에서 잘못 알려진 역사적 진실을 추적해 보기도 하고, 맥그라스 특유의 논리를 바탕으로 섯부른 이분법적 접근이나 굴드 식 NOMA 개념을 거부하는 책입니다. 평소 맥그라스의 저서를 좋아한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책이 될 것이며 이 책을 입문서로 시작해 개론서들을 찾아 읽으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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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근대에 인류가 세 가지 '자기애적 상처'(narcissistic wound)를 입었고, 각각의 상처는 인간의 자긍심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단언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 퍼옴)​


첫 번째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 있음을 알려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입힌 상처였다.

두 번째 상처는 심지어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음을 입증한 다윈주의였다.

세 번째는 인간이 자신의 한정된 영역에서도 주인이 아님을 밝히는 프로이트 본인이 입힌 상처라고 그는 당당히 밝혔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러한 혁명적 전환은 전자가 가져온 고통과 상처를 가중시키면서 인류의 위치와 중요성에 관한 철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프로이트의 견해가 갖는 종교적 의미는 이 책에서 나중에 다시 조명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 '상처' 중 첫 번째인 코페르니쿠스 혁명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각 시대는 그 시대의 세계관을 뒷밤침하는 일련의 확립된 신념들이 존재한다.

중세도 예외는 아니다. 중세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태양과 다른 천체(달, 행성 등)가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는 믿음이었다. '지구 중심적' 우주관은 자명한 사실로 간주되었다.

성경도 이러한 믿음을 근간으로 해석했다 .많은 성경의 해석에 지구중심적 가정이 적용되었다.

현재 사용 중인 언어 대부분도 지구중심적 세계관을 여전히 반영한다.

예를 들어 현대 영어에서도 '해가 오전 7시 33분에 떠올랐다.'고 말하는데, 여기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

태양계의 지구중심 모델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일상생활에 별 영향을 주지 않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중세 초기에 가장 널리 받아들였던 우주관은 2세기 상반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eos)가 구상한 것이었다. 그는 <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달과 행성의 운행에 관한 기존의 개념을 집대성하면서 다음 가정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다.

2. 모든 천체는 원을 그리며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

3. 회전은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그 중심 역시 또 다른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형태를 띤다. 본래 히파르코스(Hipparchos)가 주창했던 이 중심론은 '주전원'(epicycle), 즉 원 운동 위에 원 운동이 부여된다는 개념에 근거한다.

행성과 항성의 움직임이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관측되면서 이론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주전원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모순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5세기 말 무렵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루기 힘든 이 모델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에 있었다. 하지만 무엇으로 대체한단 말인가?

16세기 들어 지구중심 모델은 태양 중심 모델, 즉 태양을 중심에 놓고 지구는 그 주위를 도는 많은 행성 중 하나라고 보는 관점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는 기존 모델과 완전한 결별을 뜻하며, 지난 1000년 간 인류의 실재관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임이 분명하다. 이 사고의 전환을 흔히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 부르며, 이것이 자리잡기까지 세 명의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폴란드 학자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동심원을 그리며 회전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 뿐 아니라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했다.


 

(코페르니쿠스- 퍼옴)


그러므로 항성과 행성이 움직이는 듯 보이는 것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조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모델은 차츰 버거워진 프톨레마이오스 모데렝 비해 단순하고 정밀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그러나 이 모델 역시 모든 관측 데이터를 설명하지는 못했고, 이 이론을 받아들이려면 수정이 필요했다.

덴마크 학자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는 코펜하겐 인근 섬의 관측소에 있으면서 1576년부터 1592년까지 행성 운동에 관한 일련의 정밀 관측을 실시했다.

이 관측 자료는 케플러(Johann Kepler, 1571~1630)가 수정한 태양계 모델의 토대가 되었는데, 그는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2세가 사망한 뒤 브라헤가 보헤미아로 이주할 때까지 브라헤의 조수로 일했다.

(요하네스 케플러)

케플러는 행성인 화성의 운행을 관측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행성이 태양 주위를 원형 궤도를 그리며 돈다고 가정하는 코페르니쿠스 모델로는 실제 관측된 화성의 운행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609년 케플러는 화성 운행의 일반 원칙 두 가지를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

[1] 화성이 타원형 궤도로 회전하며, 이 때 태양은 두 초점 중 하나다

[2] 화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선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면적을 휩쓸고 지나간다.

1619년경 그는 이 두 원칙을 나머지 행성에 확대 적용해 세 번째 원칙을 밝혀냈다.

[3] 행성의 공전 주기(행성이 태양 주위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 간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케플러의 모델은 코페르니쿠스의 개념을 상당히 수정한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획기적인 새 모델은 개념이 정밀하고 단순한데도 행성의 궤도가 원형이라는 잘못된 가정 때문에 관측 데이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흥미롭게도 이 가정은 유클리드 고전 기하학에서 유래한 듯하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리스 고전 철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원은 기하학적으로 완전한 형태지만 타원은 왜곡된 형태였다.  왜 자연이 기형적인 기하학 구조를 사용하겠는가?

-알리스터 맥그라스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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