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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그린의 [멀티 유니버스] 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상대성 이론, 다중우주론 등에 대한 비교적 명료하며 친절한 설명이 장점이 책입니다. 그의 전작인 [엘러건트 유니버스], [우주의 구조] 등과 함께 읽는다면 시너지 효과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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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지난 수 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쌓아왔던 직관, 즉 시간과 공간이 우주만물의 저변에 깔려 있는 불변의 배경이라는 관념을 한방에 무너뜨렸다.

 

그전에 과연 어느 누가 시공간을 "수시로 뒤틀리거나 구부러지면서 우주의 안무를 관장하는 적극적인 객체"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혁명의 춤'이었으며, 관측을 통해 틀림없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과학자로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근거 없는 오래된 편견에 사로잡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정적 우주-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다음 해에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가장 큰 스케일인 우주에 적용해보았다.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엄청난 작업처럼 들리겠지만, 이론물리학자들은 끔찍하게 복잡한 대상을 단순화시키는 데 거의 도사들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대상의 물리적 특성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이론적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단순화시키되 기본적 특성은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론물리학의 예술이다.

이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소위 말하는 '우주원리(cosmological principle)'에 입각하여 우주를 단순화시킴으로써 이론적 우주론의 기틀을 마련했다.

우주원리란 "가장 큰 스케일에서 보면 우주는 균일하다"는 것이다.

 

당신이 아침에 마시는 차를 생각해보라. 미시적인 스케일에서 보면 차의 내부는 전혀 균일하지 않다. 곳곳에 H2O 분자가 있고 그 옆은 비어 있으며, 그 옆에는 폴리페놀(polyphenol)과 타닌(tannin)분자가 떠다니고, 그 옆은 또 비어 있고....기타 등등이다.

 

 

그러나 거시적 스케일, 즉 맨눈으로 바라보면 차는 지극히 균일한 액체이다.

 

아인슈타인은 우리의 우주가 찻잔 속에 담긴 차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여기 지구가 있고, 그 옆은 비어 있고, 달이 있고, 그 옆은 더 넓게 비어 있고, 금성, 수성, 그리고 태양 등이 불규칙적으로 늘어서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작은 스케일에서 나타나는 불균일성일 뿐,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찻잔 속의 차처럼 균일하다.

아인슈타인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우주원리를 입증할 만한 관측자료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는 우주 안의 어떤 지점도 다른 지점보다 특별하지 않다고 굳게 믿었다.

평균적으로 볼 때 우주의 모든 지점은 서로 동일하여, 물리적 특성도 근본적으로 거의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얻어진 천문관측 데이터는 우주원리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적어도 1억 광년 이상의 규모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1억 광년은 은하수 폭의 약 1,000배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예를 들어 각 변의 길이가 1억 광년인 상자 하나를 '여기'에 놓고, 같은 크기의 상자를 '저기('여기'로부터 1억 광년 떨어진 곳)'에 놓았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각 상자 내부의 평균적인 특성(은하의 평균밀도, 물질의 평균밀도, 공간의 평균온도 등)을 관측해보면 거의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다. 간단히 말해서, 1억 광년짜리 '조각 우주'를 보았다면 그로부터 우주 전체의 특성을 유추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우주 전체의 특성을 연구할 때 균일성(uniformity)은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아름답고 균일하면서 잔잔한 파도가 이는 해변가로 나가보자.

 

단, 당신에게는 하나의 임무가 주어져 있다. 해변가를 둘러본 후 작은 규모의 특성을 내가 알아듣도록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작은 규모'란 모래 한 알 한 알의 물리적 특성을 일일이 조사한 후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신의 임무가 너무 과하다며 강하게 항의한다. 하긴 어느 세월에 모래알을 일일이 들여다본다는 말인가?

 

그래서 나는 친절을 베풀어 당신의 임무를 조금 수정했다. 해변가의 특성을 탐색하되, 1m3 당 모래의 평균무게와 1m3당 햇빛의 평균반사율, 해변가의 평균온도 등 정보의 내용을 조금 큰 스케일로 바꿨다.

그랬더니 당신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맙다는 인사까지 한다.

이 작업이 만만해 보이는 이유는 해변가가 전체적으로 균일하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서 있는 근처에서 모래의 평균무게와 평균반사율, 그리고 평균온도를 재빨리 측정한 후 남은 시간을 느긋하게 즐기면 된다.

멀리까지 가서 같은 측정을 반복해봐야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균일한 우주도 이와 비슷하다. 우주를 분석하기 위해 행성과 별, 은하 등 모든 천체를 일일이 고려해야 한다면 천문학은 별로 희망이 없다.

그러나 균일한 우주의 평균적인 특성을 서술하는 것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쉽다. 여기에 일반상대성이론까지 주어졌으니, 천문학자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소식이 없을 것이다.

방정식을 통해 우주의 특성이 밝혀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방대한 공간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의 총량은 물질의 밀도 ,더욱 정확하게는 '물질과 에너지의 밀도'로 결정된다.

그리고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은 이 밀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우주원리를 도입하지 않으면 방정식을 푸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방정식은 모두 10개인데, 각 방정식은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리지아의 고르디우스왕이 매어놓은 매듭으로, 이것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한다고 예언되었다. 흔히 '풀기 어려운 문제'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옮긴이)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다른 방정식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그런데 다행히도 아인슈타인은 균일한 우주에 이 방정식을 적용하면 문제가 크게 단순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주가 균일하다고 가정하면 10개의 방정식들 중 대부분이 중복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단 하나의 방정식만 풀면 된다.

우주원리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어서 수학이 크게 단순해졌고, 그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우주에 퍼져 있는 물질과 에너지를 단 하나의 방정식으로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방정식을 풀어서 얻은 결과는 그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당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 사이에는 우주가 큰 스케일에서 균일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팽배해 있었다.

찻잔 속의 분자들이 복잡한 운동을 하고 있지만 이들의 운동을 전체적으로 평균해서 거시적으로 보면 잔잔한 액체가 되듯이, 태양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이나 은하의 가장자리를 돌고 있는 태양의 움직임 등을 모두 평균하면 변하지 않는 우주가 얻어진다.

이 정적인 우주관에 집착했던 아인슈타인은 계산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장방정식은 물질과 에너지의 밀도가 시간에 따라 더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수학적인 과정은 꽤나 복잡하지만, 여기 담겨 있는 물리학적 의미는 매우 단순하다. 야구장의 홈플레이트에서 출발하여 중견수 쪽 담장을 향해 날아가는 야구공을 생각해보자.

처음에 공은 로켓처럼 위로 솟구쳤다가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최고점에 도달한 후 어딘가에 떨어진다. 이 공은 날아가는 동안 비행선처럼 공중에 머물렀던 순간이 단 한번도 없었다.

중력이 공을 항상 아래쪽으로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행선의 경우에는 기압에 의한 부력이 아래로 향하는 중력과 상쇄되기 때문에 공중에 가만히 떠 있을 수 있다. (비행선의 풍선은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가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허공을 날아가는 야구공에는 중력을 상쇄시키는 힘이 전혀 없으므로 (공기저항이 야구공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정지상태를 연출할 수는 없다) 공이 공중에 가만히 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우주가 비행선보다 야구공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무조건 잡아당기기만 하는 중력을 상쇄시킬 만한 외향력(outward force)이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계산된 우주는 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우주공간이 외부로 뻗어나가거나 안으로 수축될 수는 있어도, 고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육면체 공간의 각 변이 오늘 1억 광년이었다면, 내일은 더 이상 1억 광년이 아닌 것이다. 부피가 더 커진다면 그 내부의 물질밀도는 작아질 것이고 (공간의 크기에 비해 물질이 더 드물게 존재할 것이고), 부피가 작아진다면 물질의 밀도는 더 커질 것이다. (물질이 더 촘촘하게 존재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일반상대성이론의 수학에 의하면, 공간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큰 스케일에서 본다고 해도 우주는 변해야만 했다.

아인슈타인이 기대했던 '정적이고 영원한' 우주는 방정식의 답이 아니었다. 그는 우주론을 창시한 장본인이었지만, 수학이 인도하는 길을 곧이곧대로 따라가다가 커다란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브라이언 그린은 이 저서에서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우주 물리학이 실제로 관측할 수 없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보니 실제로 감각 기관을 통해 지각하지 못하더라도 수학적 방정식에 잘 부합하는 값이 나온다면 이는 충분히 과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곤 한다.

 

하지만 과연 이를 '과학'이라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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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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