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분석정신치료의 진행과 해석 과정 설명인데 실제 치료자들은 도움이 많이 되겠네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주로 치료자가 침묵하면서 많이 듣는 자세를 취하는 분석정신치료에서 치료자의 말은 치료자가 상상하고 의도하는 것 이상으로 환자에게는 많은 의미를 전달하게 됩니다.

 

정신분석에서 무엇이든 떠오르는 대로 진술하라고 자유연상을 권장하는 것 자체를 환자가 자신이 무슨 공상을 하든지 간에 괜찮다고 허용된다고 받아들이듯이 분석정신치료에서 치료자가 무엇을 선택해서 말하든 간에 환자는 그것을 마치 치료자가 그걸 안 좋게 생각한다고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치료자에게 환자가 자신의 초자아를 투사하는 일은 흔한 현상입니다.

 

치료자가 아무 말을 안 하고 지나가는 건 마치 치료자가 그건 괜찮다고 한다는 식으로 환자는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 반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구요.

 

또한 치료자는 명시적 말이 아니라 '음', '흠' 등등의 소리를 내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경우에 환자들은 보통 치료자가 환자의 말에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치료자의 말들을 카테고리화해서 살펴본다면 저는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치료자의 말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명료화시키기 위한 질문 형태의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명료화는 환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에서 모호한 부분을 좀 더 상세한 질문을 통해 명료화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료화는 환자가 이야기하는 상황을 명료화하기 위한 질문이나 아니면 환자가 직면한 심리적 현상을 명료화하기 위한 물음으로 다시 나누어 볼 수도 있겠지요.

 

물론 이런 명료화를 위한 질문을 던질 때도 형사가 범인 취조하듯이 묻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되지요.

 

항상 환자의 주의를 이끌면서 그 부분을 좀 더 아는 게 흥미롭지 않은지 하는 등의 태도를 취하는 게 기본적일 테죠.

 

이러한 명료화와 온전히 구별하기는 쉽지 않지만 직면시키기 위한 치료자의 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환자가 어떤 현상을 피하고 대면하지 않으려 할 때, 이를 직면토록 해서 그 부분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게 자신의 마음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는 거지요.

 

그 다음에 이를테면 '해석'이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해석에 관해서는 많은 초보 치료자들이 지레 겁을 먹어서 아예 해석을 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습득한 지적 이해에 기반으로 한 해석을 남발해서 마치 치료를 지적인 게임의 장과 같은 것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음은 해석의 이론에 관해서입니다.

 

페니쉘(1941)이 말했던 바 '해석은 표면에서부터 비롯해야 한다.'는 명제는 환자가 막고 있는 본능적 파생물을 직접적으로 해석하기 이전에 이에 관한 방어에서부터 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어가 더 표면적인 것이고 환자가 깨닫기가 더 쉬운 부분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 환자가 자신의 방어에 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전에 자신이 배척했던 걸 들여다보려고 하게 되면 좀 더 깊은 내면의 본능적 소망에 대한 해석도 가능해질 수 있겠지요.

 

보통 환자의 전의식에 올라와 있는 것을 우리가 해석해야 바로 의식에서 환자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요.

 

이 모든 개입에서 중요한 요소는 환자와 치료자가 맺고 있는 관계입니다. 적어도 치료자에 대한 긍정적 감정을 지니고 있어야 치료자가 하는 말이 환자에게 의미 있는 말로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환자가 치료자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다루고 있는 과정이라도 최소한 치료적 관계를 유지하고 치료자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정도의 긍정적이고도 우호적인 감정이 치료자를 향해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해석을 시도할 때 치료자가 명심해야 할 일은 모든 해석은 환자에게는 고통을 주는 아픈 일이 될 거라는 사실입니다.

 

어느 정도의 강도로 해석을 가할지를 생각할 때 환자에게 고통을 덜 주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표면에서부터 해석하라는 것도 바로 그런 노력의 일환입니다.

 

우선 환자가 어떻게 방어하고 있는지를 해석해서 환자의 호기심을 이끌어내고 환자가 왜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런 방어를 일삼고 있는지, 즉 환자가 자기의 심리현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뒤에 그 다음 단계로 좀 더 깊은 내용을 해석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환자의 자아는 전에는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던 걸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변하게 되고 이런 맥락 하에서야 비로소 본능적인 충동에 관한 좀 더 깊은 내용에 대한 해석도 수용이 가능하게 되겠지요.

 

슈퍼비전을 수행하다 보면 수련생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혼란을 종종 마주치곤 합니다. 한번 해석한 어떤 것에 대해서 환자가 당연히 이를 받아들였던 것으로 간주해서 같은 해석을 다시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수련생들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비슷한 내용을 해석하고, 또 되풀이해서 해석하는 일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치료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같은 현상도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경험할 때마다 늘 새로운 듯이 다루어주어야만 하는 거지요. 이런 현상은 그러니까, 왜 훈습이 필요한가 하는 물음에 대한 적절한 응답이 되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의 이삭을 줍다, 치료자를 위한 길잡이], 민성혜 저-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저는 우선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는 삶과 현실이 어느 정도의 고통일지를 가늠해 봅니다.

 

그래서 만일 분석정신치료를 한다면 불가피하게 그 고통을 다시 치료 상황에서 경험하게 될 터인데 이러한 퇴행을 얼마나 환자가 견딜 수 있고, 또한 그 고통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건강하게 다룰 수 있는 힘이 환장게 얼마나 있을지를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환자의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합니다. 

 

과연 얼마나 지속적으로 올 수 있을지, 치료비를 환자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지. 만일 보호자가 치료비를 내 주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보호자는 과연 어느 정도 이런 치료 방식을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려고 하지요.

 

예를 들어 정신분석을 원한다고 하면서 몇 달 후에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야하는 현실적 사정이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지금 수행할 수 있는 치료는 정신분석이 아니라 단기정신치료가 될 터이지요.

 

제가 미국에서 돌아와서 분석정신치료와 정신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임상을 시작했을 때, 다른 선생님들이 저에게 의뢰하는 환자를 보면 때로는 마치 문제가 심각한 환자를 제가 잘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저에게 보내는 경우가 있었지요.

 

하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제가 분석적인 방식으로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환자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잘 대처할 수 있을 만큼 기능하고 있지만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괴로움이 있는, 말하자면 어느 정도는 기능의 수준이란 것이 꽤 높은 환자이지요.

 

또 다른 딜레마는, 분석정신치료의 적응증에는 다 맞지만 현실적인 여러 여건이 환자가 치료를 지속할 만한 여건이 안 되는 경우에는 치료를 하기가 어려워지지요.

 

이제 치료 세팅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치료 세팅이 왜 그리 중요한 걸까요?

 

이 치료 세팅을 제대로 해 논 상태에서 치료를 수행해야 분석정신치료의 과정에서 활성화되는 무의식의 자료들이 의식으로 올라올 때 치료적으로 다룰 수가 있습니다.

 

우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시간만큼을 규칙적으로 치료자를 볼 수 있는 상황. 치료자가 항상 그 시간에 같은 치료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보통의 사회적 관계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어떤 면에서 살펴보자면 다소 비현실적인 상황이기도 하지요.

 

이런 인위적인 비현실적인 상황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우리 무의식을 살피는 실험실의 상황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일주일에 몇 번 만날지 하는 횟수의 문제도 있는데 보통 전통적 정신분석에서는 주 4회 내지는 주 5회를 시행합니다. 그 경우에는 카우치에 누워서 하고, 그 외에 주 3회 이하 주 2회나 주 1회에서는 보통은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서 하게 됩니다.

 

한 차례 만날 때의 시간은 보통 45분에서 50분으로 미리 정하지요. 이 시간도 프로이트는 애초에 1시간 정도 보았다고 하는데 그 뒤에 전화의 발명 및 확산이 있으면서 환자 보는 사이의 시간에 분석가들이 처리할 일, 전화를 주고받는 등의 일을 하고 또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정신분석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환자를 더 보기 위해서 한 번에 45분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또한 책에는 노골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치료자의 수입과도 관련이 됩니다. 이러한 치료를 하는 경우에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의 수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데 치료 시간이 초창기의 1시간에서 45분으로 줄어들면서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 수가 다소 늘어나는 추세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무의식을 다루는 의미 있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회당 적어도 45분은 봐야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45분에서 더 짧은 시간으로 단축될 것 같지는 않네요.

 

-[정신분석의 이삭을 줍다, 치료자를 위한 길잡이], 민성혜 저-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하지만 저는 환자가 치료의 효과에 관해 초기 면담이나 평가면담 후에 물어볼 때, 치료자가 지나치게 회의적으로 답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보통은 치료자의 치료 목표가 환자가 바라는 치료 목표보다 높은 경우가 많고, 환자는 치료에서 충분한 도움을 받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겠죠. 혹은 치료를 통해서 환자가 자신에 대해서 충분한 통찰력을 갖게 되면서 자신이 치료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의 현실적인 한계를 인식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선 치료자의 역할을 생각해 볼까요? 앞서 얘기에서 분석정신치료 진행에서의 환자의 몫을 6할이라고 보고, 치료자의 몫을 4할이라고 제가 가정했는데 제 말을 잘못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 비유는 치료가 진행될 때 치료 안에서의 역할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환자와 분석분석정신치료의 치료 계약을 맺은 뒤에 그 치료 틀을 유지하고 치료 환경을 만드는 데 있어서 치료자의 역할은 이보다 훨씬 더 큽니다.

 

처음으로 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볼 때, 저는 치료자의 역할이 거의 10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치료를 시작한 이후에는 물론 치료 계약을 따라야 하는 환자의 역할 분담이 늘어나게 됩니다.

 

환자에게는 치료 지속을 위한 치료 계약의 외적인 틀을 준수해야 하는 역할 분담이 있지요.

 

약속한 치료 시간에 오고, 약속한 치료비를 지불하는 등의 일이 여기에 속하겠지요.

 

 

치료 계약의 내적인 부분으로는 치료 시간에 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나 떠오르는 생각, 느낌, 감각 등을 가능한 한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역할이 부여됩니다.

 

요컨대, 분석정신치료는 말로 하는 치료입니다. 환자가 치료 시간에 무엇이든 말로 표현하는 건 괜찮지만 치료 시간 내에서 어떤 행동이건 행동으로는 표현하지 않아야 하겠지요.

 

분석정신치료에서는 정신분석에 비하면 환자에게 자유연상을 하도록 많이 강조하지는 않지만, 환자가 이야기해 나아감에 따라서 환자가 직면하고 있는 고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인 셈입니다. 따라서 분석정신치료에서 환자에게 부여된 중요한 역할은 자신의 고통을 향해 나아가라는 거지요. 당연히 환자는 의식에서는 이 작업을 하러 분석정신치료에 왔다고 알고 있지만 여러 방법을 통해서 이 고통을 피하려고 합니다. 환자는 침묵하거나, 자신의 고통과 멀어지는 방식으로 말하거나 등등의 방법으로 말이에요.

 

이 과정에서 치료자에게는 환자에게 왜 치료 계약이 필요하며 치료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 치료에 어떤 의미가 있어서 그런지를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설명하거나 교육하거나 환자의 저항을 조심스럽게 다루어 주어야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석정신치료에서 치료자가 환자에게 요구하는 일들은 환자에게는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는 일이기도 해서이지요.

 

이 과정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왜 환자에게만 주로 말하게 하고 치료자는 가만히 듣고만 있는지요? 그리고 환자가 질문을 하는데 왜 치료자가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기도 하는지요? 환자가 가지게 되는 매우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의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로 환자가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하고 치료자가 침묵하는 이유는 환자에게 치료적으로 도움이 되는 퇴행을 일으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거나, 환자의 질문에 바로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대답을 안 하는 경우에도 어떤 치료적 목적이 있어서 그런다거나 하는 걸 알려주는 일이 치료자의 역할에 속하는 일입니다.

 

많은 환자가 말하는 것만으로 과연 치료가 될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기도 합니다.

 

아이흘러(2010)는 다음과 같은 비유로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서가 캄캄한 링 위에 서 있으면서 누구와 싸우는지 모르는 상태일 때, 정신치료는 여기에 빛을 비추어서 누구와 싸우는지를 보게 해준다, 라구요.

 

-[정신분석의 이삭을 줍다, 치료자를 위한 길라잡이], 민성헤 저-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분석정신치료에서는 무엇보다도 환자의 협조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치료 과정 중에 환자가 감당하고 부담해야 하는 몫이 크기 때문이지요.

 

이를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렵고 또한 수치로 인해 도식화 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분석정신치료에서 전체 치료 진행의 몫을 10으로 볼 때 치료자의 몫을 4로 두고 환자의 몫을 6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자신과 치료를 하려는 이 환자는 과연 어느 정도의 몫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인가? 치료자 자신에게 이를 스스로 묻고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요리를 잘 하는 사람과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제 경험에 의하면 요리할 때 들어가는 여러 재료와 양념을 필요한 만큼 적절하게 넣을 수 있는지에 그 차이가 생긴다고 봅니다.

 

무조건 많이 넣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너무 많이 넣으려 한다면 그 요리의 맛을 장담하기 어렵겠지요.

 

꼭 필요한 재료와 양념이 안 들어가도 마찬가지로 맛을 장담할 수 없다고 봅니다. 결혼 초에 왜 내가 만든 요리는 맛이 없고 남편이 만든 요리는 맛이 있는지를 살피다가 제가 내린 결론이 이러했습니다.

 

또한 맛있게 만든 음식도 우리가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적당한 양과 적당한 온도를 잘 이용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이 모두는 저의 초기 신혼 생활에서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일입니다.

 

분석적인 계열에 속하는 정신치료도 바로 이런 발상으로 이해한다면 좀 더 쉬울 겁니다. 치료자가 나서서 환자의 어려움을 다 해결해 줄 것 같은 태도를 취하면 이는 아주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는 환자의 경우에서는 환자에게 안전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치료자로부터 필요한 충분한 지지를 받았다고 느끼게 할 수는 있지요.

 

 

하지만 반대로 현실감이 충분히 살아있고 이미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인생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고 치료를 받으러 오기 전에 여러 가지의 시도를 통해서 자신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는 걸 파악하고 온 환자의 경우라면 치료자가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오히려 환자는 치료자의 전문성을 의심하게 될 터이겠지요.

 

그도 그럴 것이 이런 환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로의 접근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의식적인 각성을 지니고 치료에 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니까요.

 

만약 환자 마음속에 치료자의 몫이 10이라는 주장이 강하다면 우선 지지적인 정신치료를 하면서 어느 정도까지 환자가 자신의 몫을 감당할 잠재력이 있는지를 살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속성 때문에 분석 정신치료의 결과에 대한 예측이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환자가 처음에는 환자의 몫인 6할 정도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치료자가 평가했지만 치료의 진행에 따라 그렇지 않다는 게 점점 더 분명해질 수도 있겠고, 그와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수 있겠지요.

 

이런 속성으로 인해서 분석정신치료의 치료적 효과를 치료자가 환자에게 확신을 가지고 예측해서 미리 말해주기가 어렵고 따라서 분석정신치료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많은 사람을 설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초보 치료자는 다시 한숨이 나오겠지요. 다음의 넋두리가 절로 나오겠네요.

 

'아니 하나도 단순하거나 쉬운 게 없어 보이네.' 하고 말입니다.

 

네, 맞습니다. 분석정신치료를 한다는 일은 늘 치료자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고 항상 불확실성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입니다. 자신이 이런 점을 너무나 견디기 어려워한다면 왜 이런 치료를 하는 치료자의 길로 들어섰는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2부]에 계속-

-[정신분석의 이삭을 줍다, 치료자를 위한 길잡이], 민성혜 저-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환자가 의식에서 치료를 받고자 하는 마음과 환자의 무의식에 숨어있는 마음의 틈새가 크게 벌어져 있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자면 환자는 마음이 괴로워서 치료자를 찾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의식적인 치료 동기를 가지고 치료에 동참하려 왔지만, 사실 환자의 무의식에서는 이 모든 괴로움은 나(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부모 탓이라든지, 내 배우자로 인해 생긴 문제로 보고는 합니다.

 

환자들은 내가 괴롭지만 나의 문제로 이해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개연성이 매우 짙습니다.

 

치료자가 우선 당신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깊이 헤아려 보자고 할 때, 아주 강한 반감을 느낄 수도 있고, 치료란 환자가 유지해온 심리적인 평형에 균열을 초래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치료 중단을 원하게 될 수도 있지요. 환자 자신도 이에 대해 명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히 이만 하면 됐다거나,  지금은 이런 치료를 받을 상황이 되지 않는다거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나아가 환자의 문제를 살펴보려는 작업이란, 환자의 좀 더 어린 아이 같은 마음 상태를 살피게 되는 일인 것인데, 수치심이 환자의 방어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경우에는 이를 견디는 '역치'가 낮아서 이런 시도 자체가 환자의 수치심을 유발하는 일이 되어서 치료를 중단하고 떠나는 경우도 생기지요.

 

또 다른 경우로는 환자가 치료를 받음에 따라서 주변 환경에 대해 적응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오히려 마찰이 많아지게 되고 이로 인해 주변 환경에서 들어오는 압력에 치료 의지가 꺾이면서 치료 중단을 선언하게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순종적이었던 환자가 치료를 받게 되면서 부모에게 도리어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다든지 하는 경우에 있어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치료를 통해서 환자의 상태가 나빠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따라서 부모는 치료 중단의 압박을 응당 가할 수 있겠지요. 청소년 환자의 경우는 그래서 치료 시작 전에 부모에게 이런 점을 미리 주의시키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치료가 진행됨에 따라서 따님(아드님)의 태도가 반항적으로 될 수도 있는데, 이는 치료의 한 과정일 수 있구요, 이를 잘 견뎌주시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라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제가 여기서 초보 치료자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환자는 언제나 치료 도중에 중단하려 할 수 있다는 것과,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 치료자가 당황해하지 않기를 바라고, 비록 치료자로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더라도 환자를 잘 보내주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환자도 나중에 필요할 경우에 다시 치료를 받으러 찾아올 수 있게 된다구요.

 

물론 나중에 여러분이 아니라, 또 다른 치료자에게 갈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어떤가요?

 

환자가 어디에서든 상관없이 치료의 도움을 받게 된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지요. 너무 환자에 대해 자신만이 독점적으로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믿음과 집착을 버리는 게 여러분을 위해서도 훨씬 도움이 되겠지요.

 

-[정신분석의 이삭을 줍다, 치료자를 위한 길라잡이], 민성혜 저-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환자가 치료의 도중에 그만두려고 하는 일은 많은 초보 치료자가 다루기 힘들어 하는 부분입니다.

 

흔히 초보 치료자는 아직 치료자로서의 자신감이 없는 상태이므로 환자의 치료 중단을 치료자로서의 능력을 훼손시키는 중대한 도발로 받아들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환자가 치료의 도중에 그만두는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이를 안다면 지나치게 이 문제에 예민해져서 치료자로서의 자존감에 상처를 받거나 젊은 의욕이 꺾이거나 할 필요가 없겠지요.

 

치료 도중에 환자가 그만두는 이유는 아주 많습니다.

 

그 중에서 초보 치료자를 당황하게 하는 경우는 치료에 동기가 아주 많은 듯이 보였던 환자가 갑자기 치료를 끝내겠다고 할 때이지요. 이럴 때 가장 처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치료를 통해 다룬 뭔가를 환자가 불편해하거나 위험한 일로 경험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밖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치료를 받고 이제 많이 좋아졌다.' 라든가, '남편(아내)이 이런 치료 받는 걸 반대한다.' 혹은 '시간이 도저히 맞지 않아 치료를 계속 받을 수가 없다.' 하는 등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드러나게 되곤 합니다.

 

소위 말해서 우리가 '저항'이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과 달리, 때로는 실제로 현실의 상황이 도저히 치료를 계속할 수 없게 된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요.

 

마침내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긴요한 충고가 있다면, 환자가 초기에 치료에 대해 열렬한 동기가 있는 듯이 보인다고 해도 속단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겁니다. 어쩌면 치료의 초기에 열렬한 동기를 가진 듯이 보이는 경우는 그 만큼 치료에 관한 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많이 가지고 있는 환자일 가능성이 높으며, 조금 시간이 지나서 이 치료가 자신이 바라는 대로 마술적인 치료 효과가 나오지 않겠구나, 라고 환자가 스스로 깨닫게 된다면, 바로 치료를 중단하고 싶어할 가능성도 그만큼 더 높아지겠지요.

 

 

저항과 방어는 엄밀히 이야기하면 다른데요. 방어는 환자가 가진 통합적인 심리 구조를 말합니다. 반면에 저항은 분석적인 치료 과정 중에 환자의 심리적인 평형이 위협을 받게 되면 환자로서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려는 시도로서, 일종의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분석치료에서의 저항이란 결국은 환자가 자신의 무의식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하는 환자의 말과 행동을 뜻합니다.

 

이 부분이 초보 치료자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치료를 받으러 와서 그렇게 열렬하게 자신의 마음을 알고 싶다고 하고선, 그러기 위해서는 뭐라도 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던 환자가 얼마 가지 않아 이제 치료를 그만 두고 싶다고 하거나, 심지어는 이제 치료가 다 되어서 그만 두어도 좋겠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면, 초보 치료자는 환자에게서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겠지요. 치료자 입장에서 보자면 아직 본격적인 치료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2부]에 계속-

-[정신분석의 이삭을 줍다, 치료자를 위한 길라잡이], 민성혜 저-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치료자는 자신의 어두운 면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모든 인간의 소망과 충동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치료경험은 수련생 치료자들이 환자의 위치에서 치료적 과정의 여러 가지 측면, 즉 치료자를 이상화하는 경향, 의존하고 싶은 바람, 따뜻한 마음으로 주의깊게 들어주는 경청자에 대한 감사한 마음, 치료자에게 주어지는 권력 등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젊은 치료자들은 자신의 신경증적 문제를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맹점을 자각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그들을 보듯이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치료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인식해야 하며 정확한 피드백을 주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심리치료자는 심리적으로 많은 것을 요구하는 전문적 활동인 심리치료에 내재하는 수많은 직업적 난관에 대처하기 위해서 자각능력과 내면적 강인함을 발달시켜야 한다.

 

-Irvin Yalom-

 

 

 

Nancy McWilliams 은 Yalom 의 견해에 몇 가지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그녀가 보기에 개인적 치료를 따로 받지 않았음에도 효과적으로 정신분석 치료를 하고 있는 치료자들이 많다고 한다. 대개 그런 치료자들은 재능도 있거니와 자연스러운 공감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위와 같은 치료자들은 대개 지지적인 부모와 공감적인 인물 사이에서 성장해 온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오랜 기간 카우치에서 정신분석을 받았음에도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 치료자들도 많이 알고 있었다.

 

정신분석을 하는 이들이 '모든 정신분석 수련생들은 분석을 받아봐야 한다' 라고 이야기하는데는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의 요소도 들어 있기 때문에 (1시간에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한 주장 이면에 다른 동기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그녀는 분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치료에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역동을 관찰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향상시켜 준다.

 

또한 성숙하고 공감적인 경청의 자세를 배우기 위해서도 스스로가 정신분석 치료를 받아볼 당위성은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Frieda Fromm-Reichmann 은 개인적 분석 치료를 받아야 하는 네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1] 치료자가 자신을 잘 이해하게 되면 충동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줄어들고 자신의 역전이 반응을 잘 인식하게 된다.

 

[2] 개인적 치료는 치료자가 직업 외적인 생활을 안정되고 만족스럽게 하도록 도움으로써 경청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치료자의 자기애적 욕구, 의존적 욕구, 성적인 소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환자를 이용하려는 유혹을 감소시킨다.

 

[3] 효과적인 치료를 통해서 자기존중과 현실적인 자존감을 향상시키게 되면, 임상가는 공격적이고 비하적인 대화내용을 비방어적으로 이해하게 될 뿐만 아니라 공격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존감을 보존하는지를 내담자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된다.

 

[4] 자기 자신의 역동을 잘 이해하게 되면 타인에게서 나타나는 유사한 과정들을 잘 인식할 수 있게 된다.

 

 

Nancy McWilliams 은 이에 덧붙여서 몇가지 이유들을 추가로 소개한다.

 

[5] 치료자는 환자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를 실감나게 인식해볼 수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즉 환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공감하는 가장 최고의 지름길로서 그러한 역할을 스스로 경험해 보라는 것이다.

 

[6] 심리치료의 경험을 통해서 치료가 진행되는 전형을 알게 된다.

 

분석적 기관의 수련생들에게 물어 보면 수련과정에서 받은 개인적 분석을 통해서 치료하는 방법을 가장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고들 말한다.

 

(그들 대부분이 슈퍼비전 경험이 두 번째로 유익했고, 강의를 들어서 배우는 게 세번째로 유익했다고 말한다)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를 읽으면서 살펴본 내용-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이무석 박사님의 쉽게 쓴 정신분석 관련 책입니다. 부담없이 접근 가능하며, 본인의 경험이 잘 녹아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에 대해 이해하길 원한다면 입문하기 좋은 책입니다.

 

 

 

분석 시작 무렵에 피분석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석가인 나의 역할은 '이 사람의 고통이 무엇일까? 그것은 어디서 온 것일까? 를 이해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 사람에게 정신분석이 적당한가?' 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누구나 정신분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을 받기에 적당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우선 자기 마음을 잘 읽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정신분석에서는 '마음 중심적임'(심리적 역량)(Psychological mindedness) 사람' 이라고 한다.

"그 때 나는 이런 감정을 느꼈어요. 그리고 이러이러한 생각이 떠올랐어요." 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기자처럼 사건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 속에서 느낀 자기 감정과 마음을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정신분석이 자기 마음을 탐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런 능력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Ms A는 내 진료실에 처음 온 날 화분을 보며 "화분의 저 식물은 아마도 난 같은데, 참 행복해 보이네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보이세요?" 라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작은 난이 혼자서 넓은 화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참 좋겠어요. 풍요로워 보여요." 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난을 보며 느끼는 자기감정과 상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 분석 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녀는 난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넓은 화분, 풍요로운 토양을 독점하고 매일 나의 보살핌을 받고 사는 난이 부러웠던 것이다.

내가 매일 난에게 물을 주고 잎을 손질해 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녀는 그렇게 자상한 아버지를 원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었고 그녀의 비의식은 남동생에게 아버지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상한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Ms A  는 난을 보며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또한 분석은 최소한 2년 이상 걸리는 긴 항해이다. 그래서 분석을 받는 사람에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한 번 맺으면 오래 유지하는 사람이 분석에 좋다.


작은 일로 삐치고 절교하는 사람은 분석에 적당하지 않다.

 

분석과정에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중단해 버릴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석가는 "오랜 친구가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


사람을 고용하는 사람이라면 "수년간 함께 일하는 직원이 있는가?" 라는 것도 관심사항이다.


Ms A 는 남편과 10년 째 비교적 화목한 가정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것도 분석에 적당한 사람이라는 판단의 이유가 되었다.


분석에 적당한 환자인가를 판단할 때는 현실적인 여건들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시간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분석은 보통 한 번에 45분간, 일 주일에 4일을 만난다.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분석은 불가능하다.


또한 거리상 두 시간씩 차를 타고 와야 한다면 분석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Ms A 는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고 직장도 진료실에서 가까웠다.


아침 일찍 분석을 받고 직장으로 출근할 수 있는 거리였다.


또한 정신분석에 적당한 사람들은 분석에 대한 동기가 강해야 한다.


분석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보통 노이로제 증상인 경우가 많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 때문에 잠 못 자고 시달리다가 분석가를 찾기도 한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성공했지만 자신은 예나 지금이나 도무지 행복하지 않고 우울한 사람들도 분석가를 찾는다.


늘 뭔가에 쫓기는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사람들도 정신분석을 원한다. '이런 기분에서 제발 벗어나고 싶다.'고 호소한다.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분석을 받는 사람도 많다.


사람을 만났을 때 지나치게 긴장하는 사람들은 전화도 마음 편하게 못한다.


전화기를 들고 몇 번이나 망설이고 다짐한 후에 비로소 다이얼을 돌린다.


상대방이 싫어할 것 같아서이다. "귀찮게 왜 전화질이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전화기를 들 때마다 마음은 긴장한다.


'제발, 이 바보 같은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다.' 는 소원이 간절하다. 이런 사람들이 분석실의 문을 두드린다.


북미나 유럽에서는 심리학자나 사회사업가들이 분석을 많이 받는다. 또 인류학자, 연예인, 시인이나 예술가들도 많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들이라 갈등도 그만큼 많고 그래서 분석의 효과도 잘 알기 때문이다. 분석을 받는 사람을 지적인 사람으로 보는 사회도 있다.

 


Ms A도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겉으로는 사교적으로 보였지만 속마음은 늘 긴장하고 있었고 외로웠다.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웠다.


전문직도 가졌고 비교적 성공했지만 마음은 행복하지 못했다.


이것이 분석을 받게 된 동기였다.


Ms A 뿐만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친밀함(intimacy)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런데 친밀함을 가로막는 요소들이 있다. 친밀함을 가로막는 원인들에 대해서는 다른 장에서 다루겠다.


대인관계의 어려움이나 불안, 우울, 강박관념 같은 증상이 심할수록 벗어나고 싶은 동기도 강해진다.


동기가 강한만큼 분석의 어려움도 잘 이겨낼 수 있다. 그래서 고통이 심할수록 분석에 적합한 조건이 된다. 반대로 증상이 쉽게 호전되어 버리면 분석의 동기가 약해져서 분석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정신분석에서는 진정제나 항우울제로 증상을 없애주는 처방을 하지 않는다. 힘들어도 인간은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다.


이무석 박사님 책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이무석 저
친밀함
이무석 저
자존감
이무석 저
예스24 | 애드온2


-[나를 행복하게 하는 친밀함] 에서 -​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