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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적 인간 중심 이론의 기원은 인간 역사의 가장 깊은 근저에 뿌리내려 있다.

스스로 살아있는 것에 대한 의미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미 실존적 인간 중심 탐구에 이미 참여한 것이다.

 

실존주의가 라틴어(ex-sistere)에서 나온 것으로 '나아가다' 또는 '~이 되다'를 뜻하는 말이라면, 인본주의(humanism)는 고대 그리스 전통의 '자신을 아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므로 실존적 인본주의는 자신이 되어가는, 또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초, 미국의 인간 중심 심리학은 인본주의와 실존주의에 기대어 심리학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이끌어 내었다.

 

이러한 접근은 정신분석과 행동주의에 내포된 환원주의적 관점을 반대하며 선택, 표현의 자유, 그리고 초월성의 특성을 강조한다.

철학적 측면도 중요하게 다루는데 죽음, 깊은 슬픔과 인간의 한계와 같은 실존적 요소에도 관심을 둔다.

 

특히 철학적 측면은 Rogers(1951)와 Perls(1971)에 의해 발전된 다른 인본주의적 세계관과 구별될 수 있는 부분이며 자기 초월적 운동의 흐름과도 차별성을 지닐 수 있는 측면이다.

이에 대한 것은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여기서는 오늘날의 실존적 인본주의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실존적 강조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인간 중심적 주장을 결합한 미국신 혼합물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리라고 본다.

이 결합은 상호 보완적인 대극의 역설적 통합을 만들어 낸다.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가 아우르는 세 가지 가치는 자유(인간의 한계 속에 주어진 것 안에서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것), 경험적 반영(참된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싸우는 것), 책임감(자신이 된 것에 따른 행동 또는 반응을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현대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는

 

(1) 주어진 한계 속에서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전인적'(지적-정서적-운동감각적) 능력

(2) 그 선택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전인적 능력

(3) 결정한 선택에 따라 행동하며 표현할 수 있는 전인적 능력을 강조한다.


이러한 가치를 기반으로,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는 근본적인 변화가 단지 지적 또는 행동적 재구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경험적 또는 '전인적' 재각성으로 이루어진다는 가정을 근거로 방법론을 개발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뒤에서 다룰 고소공포증에 시달렸던 해밀턴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해밀턴은 조절화 기술을 통해 두려움을 없애는 법을 배우기는 했지만 정작 두려움을 훈습하고 이를 바꾸는 것을 배우기 전까지는 두려움을 온전히 경험적으로 마주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실존적 인간 중심 접근법의 핵심은 전인적 만남에 대한 강조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이러한 종류의 접근법은 특히 우리가 의도성(intentionality)이라고 부르는 것, 즉 내담자가 자신의 인생을 되찾을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키고자 할 때 매우 중요하다.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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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에서는 잘 활용되고 있지 않으나, 철학적인 깊이를 더하며 삶의 무의미/의미를 탐구하는 심리 치료 접근법인 '실존치료'를 소개합니다. Cooper 의 저서인 [실존치료]도 좋고, 인간 중심 치료가 접목된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 도 명저입니다. 다양한 심리 접근법을 통합적으로 활용한다면 한 사람을 더욱 깊이 있게 분석하고 도와줄 수 있을 터인데 그 기저에 기본적으로 '실존적 개념'을 깔아두고 출발한다면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존치료가 지닌 통합적이고, 전체적인 관점들은 다양한 환원적이고 전문적인 심리 기법을 적용할 때 든든한 토대이자 균형추가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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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치료는 사람들이 빼앗겼던 자신의 인생을 되찾아 그들의 삶을 다시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치료법이다.


실존치료의 기본원리들은 외적이고 기계적인 변화에 대해 강조하는 일반적인 치료접근들을 넘어서 모든 치료법들에까지 확장된 것이다.


예를 들어, 실존치료는 의학적 개입법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반영해 보게 함으로써 이러한 개입법에 대해서도 적용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다.


만약 내향적인 사람이 보다 사교적인 사람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프로작(Prozac, 항우울제인 프로작)을 사용한다면, 실존치료자는 그 변화가 주관적으로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도록 할 것이다.


이 변화는 과연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과는 상관없이 그(녀)의 또래집단, 문화, 혹은 고용자에 의한 변화인가? 만약 자신이 간절히 바란 것이 아니라면, 이 변화는 대체 무엇인가?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가? 이에 따른 결과를 다루고자 하는 개인의 의지는 무엇인가?


또는 이와 유사하게,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기 위해 인지 재구조화와 같은 인지행동적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라면 어떨까?


이와 같은 경우에 실존치료자는 그 사람에게 "긍정적인"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적인 변화를 의미하는가? 질을 높이는 것을 의미하는가? 정서적 및 신체적으로 충족되는 변화를 의미하는가? 혹은 편의주의적 변화를 의미하는가? 편리한 것을 의미하는가? 동화되기 쉬운 것을 의미하는가? 이런 변화에 대한 결과는 무엇인가? 보다 단순하지만 덜 반추하는 삶인가?

다루기 쉽지만 지칠 대로 지친 삶인가?


실존치료자는 이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이러한 질문을 다룰 수 있게 도와준다.


실존치료자들이 내담자로 하여금 이런 문제들을 다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역시 우리 접근법의 독특한 부분이기도 하다.


앞의 문단을 보면 마치 우리가 내담자와 주로 지적인 대화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도리어 우리는 살아 숨쉬는 순간, 그 안에 펼쳐지는 삶의 과정에 집중한다.


우리에겐 분명히 보이지만 아직 내담자가 알아차리지 못한 그들 삶의 이모저모를 적절하게 반영해 줌으로써, 내담자들이 자기 자신 그리고 우리와 관계 맺는 방식이 어떠한지 조심스럽게 찾아나간다.

 

 


 

우리는 내담자가 자기 비판적인지 우유부단한지에 주목한다.


내담자가 우리와 독립적인 방식으로 관계하고 있는가? 혹은 분리되거나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관계하고 있는가?


내담자가 개인적인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은 망설이거나 제약적인가 아니면 자신감과 결단력으로인가 등에 관심을 둔다.


우리는 왜 이런 방식으로 내담자에게 주목하는가?


이는 우리 앞에 있는 대상을 단지 내담자라 여기지 않고, 살고 싶은 바람과 죽음에 대한 인식,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열망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 변화에 대한 갈망과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포함하는 그의 삶 전체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담자가 겪은 과거 경험에 대한 의미와 삶의 조건들은 현재의 삶에서도 존속되고, 그것들을 의식하는 정도는 각기 다르며, 내담자의 신체, 목소리, 행동, 가치관과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고 믿는다.

 

대체로 내담자가 말하거나 행동하는 모든 것은 내담자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만약 우리가 내담자와 깊게 마음을 맞추어 보다 현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면, 내담자는 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이 깨달음은 그(녀)의 인생에 다시금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어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실존치료가 실제로 행해지는 보다 넓은 차원에서의 치료적 틀이다.


약물치료, 논리적 논쟁, 또래집단, 또는 자기 자신 등 누가 또는 무엇이 변화를 만들었는가와 같은 질문은 실존적 관점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윤활제나 중간매체가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것과 같이 변화가 어떻게 추구되는가의 질문도 중요하다.


이제 우리가 앞서 제기한 모든 질문들을 아우르는 실존치료의 실제 핵심으로 논의를 이어가 보자.

 

당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것들이지만, 특히 온전하고 의미 있는 삶을 열망하는 내담자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중요한 질문이다.


편리하고 기계적인 것을 넘어서, 사랑에서 죽음, 두려움에서 즐거움에까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최대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이 책의 초점은 실존치료의 특정한 표현인 현대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이다.


전세계적으로 무수히 많은 형태의 실존치료가 논의되며 적용되고 있지만,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는 명백히 미국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는 전체적으로 이러한 부분에 집중하여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란 무엇인가?


이 책을 통해 그 개념을 자세히 설명해 나갈 것이지만, 간략히 말하자면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는 유럽식 인본주의 철학과 실존철학, 그리고 미국식 인간 중심 심리학의 혼합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는 1960년대 초에 유럽의 자아탐색, 분투, 책임감의 개념과 미국의 자발성, 낙관론, 현실성을 통합하면서 생겨났다.


이 결합으로 인해 역동적이고 시의성을 갖춘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현재 이 분야가 급속히 성장하며 다양성을 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의 역사, 이론적인 틀, 실제적 응용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상담자와 내담자로 이루어진 이 구성원은 놀라울 정도의 광범위한 문화와 진단 분야에 확장되어 가면서 점점 더 기존의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있다.

 

실존적 인간 중심에 대한 한가지 고정관념은 이것이 문화적 엘리트에게만 적절한 '식자층' 형태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다른 고정관념은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가 사람들 간에 연결을 인정하지 않고, 과도하게 개인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다른 추정과 오해는 실존적 인간 중심 심리치료가 불규칙적이고 잘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이 특히 1960년대에 일어난 인간 잠재력 개발운동과 괘를 같이하는 측면이 있었던 영향을 고려해보면 언뜻 타당해 보일지 몰라도, 그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곧 보게 될 것이지만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는 다양한 환경, 진단집단, 인종에 적용될 수 있으며, 개인적이고 대인 관계적인 맥락이 실존적 인간 중심 훈련의 핵심이기 때문에, 치료 전문분야 전체에 갈수록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멘델로비츠(Mendelowitz)와 슈나이더(Schneider) (2008)는 다음과 같이 썼다.

 

"현대 실존심리학이 거듭된 발전을 통해 그 지평을 넓혀 왔지만, 여전히 공유되는 근본가치가 있다. 즉, 실존의 심장부에는 초자연적인 핵심이 있고 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는 진정한 앎에 대한 탐구심이 있다."


이제 이 '초자연적인 핵심'과 문학적, 철학적, 심리학적 깊이의 유산에 대해 알아보자.


-[실존적 인간 중심 치료] 서문-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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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per 저 [실존 치료] 원서를 번역한 책입니다. 한글 번역 버전도 나왔기 때문에 편하게 읽으시려면 책을 사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철학과 심리학이 아름답게 접목된 실존 치료는 어렵기도 하지만 사람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접근법이라 생각합니다.

-10여 년 전에 다소 거칠게 번역한 내용이라 가독성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미국 실존주의의 흐름을 살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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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국 실존주의 인본주의적 접근: overcoming a resistance to life

 

Daseinsanalytic approach 와 가장 대조가 된다. 다자인 분석은  human being in-the-world nature 를 강조한다면 , 미국식 접근은(특히 그들의 초기 저작은) , 더욱 inward 에 집중하고 , 각각의 subjective existence 에 진실한 가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이와 같은 흐름을 ‘existential-analytic psychotherapy’ 라고 부른다.(부젠탈). 또는 ‘existential psychodynamics’(yalom) , …그러나 가장 좋은 건 existential-humanistic psychotherapy(부젠탈) 일 것이다.

 

1958년도에 출간된 Existence : A New Dimension in Psychiatry and Psychology 라는 책이 시초다. 이 책은 Rollo May 와 그의 동료들이 썼다.

 

이 책의 발간을 통해 , 빈스방거와 다른 유럽 실준 치료사들의 작품들도 처음 미국으로 건너왔다. Rollo May 는 처음에 목회자 하다가 나중에 임상 심리사로 전향했는데 , 미국 실존 심리학의 아버지로 통한다. 그의 유명한 다른 작품으로는 Man’s Search for Himself Love and Will 이 있다. 그의 3명의 제자가 세부적인 실존 인본주의 적 접근에 대한 책을 썼다. (메이는 별로 안 씀).

 

첫 재나는 James Bugental 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Irvin Yalom 이다. 그는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Kirk Schneider 가 있다. 이 사람은 최근에 세워진 Existential-Humanistic Institute in San Francisco 의 회장을 맡고 있다. 

 

[Influences]

롤로 메이의 멘토인 폴 틸리히 영향을 많이 받음. 그리고 키에르 케고르나 니체의 작품과의 친화성도 보인다. 다자인분석과 대조적으로 , 이 치료사들은 (특히 부젠탈은) , 실존 철학의 individualistic elements 를 더욱 차용했다.

 

첨언하자면, 혼자 서는 것 , 용기를 발휘하여 실존적 불안에 직면하는 것 등에 집중함. 틸리히로부터 , neurotic anxiety 라는 개념도 가져왔는데 , 실존적 불안이 denied 될 때 , human beings 이 직면하는 것이라고 봄.

 

이름이 알려주는 것처럼 existential-humanistic approach 는 인본주의 심리학의 영향을 크게 받음. 이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 1960년도에 정점에 이른다.

 

그래서 메이의 Existential Psychology 라는 책에서 칼 로저스와 Maslow 가 각각 한 챕터 씩 맞게 된다. 정신분석과 행동주의가 비인간화를 조장하던 분위기 속에서 인본주의적 심리학은 많은 핵심적인 실존주의적 전제를 차용했다.

, freely-choosing 이라든지 , self-aware 라든지 , unique 라든지 , meaning-oriented 라든지 , fundamentally whole beings 이라든지 하는 개념 말이다. 그러나 많은 실존주의 철학자들과는 달리 ,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인 로저스나 Maslow 등은 sovereignty of individual 를 특별히 강조했다. 그리고 subjective experiences 도 특별히 강조했다.

그리고 the need for human beings to be true to their own needs(타자의 needs conforming 해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에 대한 강조도 있었다.

Maslow Rogers는 또한 실존의 비극적인 영역을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human beings 은 선천적으로 their potential and to grow 를 실현하려는 경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른 실존 치료와 대조적으로 , 이 접근법은 삶에 대한 the most optimistic outlook 을 채택한다. 그리고 , possibility of  therapeutic change 에 대해서도 낙관적이다. 그리고 개인과 , 주관적인 실존의 차원을 강조한다.

 

다자인분석이나 의미치료 처럼 , 이 접근법도 또한 정신역동 이론과 practice 로부터 widely 하게 draw 한다. 이 접근법은 human-beings in-the-world nature 에 대해 덜 강조한다.

 그리고 resistance , transference , unconscious process 와 같은 intraphychic concepts 등을 덜 강조한다. 선택과 의지에 대한 이 접근법의 강조는 또한 아들러, Otto Rank , 에리히 프롬 , Freida Fromm-Reichmann , Leslie Farber 와 같은 the more humanistically-inclined psychodynamic therapists 로부터 heavily 하게 draw 한다. 특히 Yalom 은 설리반의 Interpersonal psychiatry 에 굉장히 빚을 졌다.

 이들은 정신적인 고뇌를 타자와의 dysfunctional interaction 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유럽 실존주의 치료 분위기와는 달리 , 이 접근법은 또한 미국인 느낌이 난다. 메이나 슈나이더나 부젠탈 모두 다 mid-western background 를 지닌다. 그리고 거기서는 힘,용기,fortitude(불굴의 용기) 등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러한 느낌이 치료 신념에 가미되어 있다. 여기에는 frontier spirit 이 들어 있다. 즉 혼란스럽고, uncertain world 에서 스스로가 단독으로 탐색을 해 나가는 걸 중요시 여긴다는 말이다. 또한 미국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 등에 의해 발전된 the spirit of pragmatism(실용주의) 도 가미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절충적인 방식, 다방면의 방식 활용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적절하게 작용하기만 하면 말이다. 그러므로 그래서 grab-bag(여러가지) approach 를 다 쓰고자 한다.

 

[Resistance is futile]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 성적,공격적 충동은 unconscious 로부터 오고 이게 anxiety 를 만든다고 봄.그래서 이걸 가라 앉히기 위해 개인은 denial 이나 interojection 과 같은 defense mechanism 을 쓴다고 본다. Yalom 과 같은 이들은 anxiety 를 막기 위한 많은 시도들이 인간의 에너지를 소진 시킨다는 점에 있어서 프로이트에게 동의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많은 process 들이 conscious 바깥에서 일어난다는 점도 프로이트에게 동의한다. 그러나 프로이트와는 달리 이들은 the root of human anxiety sexual and aggressive impulse 가 아니라고 본다. 차라리 , awareness of the reality of existence 에서 온다고 본다. , uncertainty , pain , freedom , meaninglessness 를 지닌 실존은 개인에게 위협을 가져올 것이고 , 그들은 이러한 현실을 compulsive behavior projection 과 같은 방어 기제를 통해 이러한 현실을 deny 하거나 distort 하려는 시도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직업을 골라야 하는 것에 대한 anxiety 에 직면한 a young person 은 이러한 discomfort her parent 에 대한 her responsibility project 함으로써 해소하려고 할 것이다. 또는 그녀는 obsessive pattern of behavior 를 통해 develop 할 지도 모른다. (ex) obsessive tidiness). 그래서 그녀는 the more pressing concern address 하는 걸 더 이상 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 정신분석적 공식은

 

Drive-> anxiety -> defense mechanism

이라면 , 이게 reality of existence -> anxiety -> defense mechanism 으로 바뀐 거다.

이들의 관점으로부터 이와 같은 short-term defensive behaviors a semblance(겉모습) of peace 를 가져다 줄지 모른다. 그러나, 정신역동 모델에서는 , 이것들은 궁극적으로 개선보다는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항변한다. 첫째로 , 실존적 인본주의적 관점으로부터 human beings 은 선천적으로 organisms 을 실현해 나간다. 그래서 그들이 their beings 을 부분적으로 denial 하면 , 그들 또한 their full potential 을 실현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deny 하는 것이고 그리고 자신들의 circumstances most effective and creative way 로 처리해 나가는 걸 deny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해 버린 a young woman 같은 경우는 자신에게 최고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her own inner sense 를 포기해 버린 거다. 게다가 , 이 관점으로부터 봤을 때 , a part of their existence 를 죽이려고 하는 individuals 은 필연적으로 shrunken , imprisoned life devoid of passion , vibrance and the full spectrum of emotions 을 초래할 지도 모른다. 부젠탈이 쓰기를 ‘emotionality a unitary dimension of being 이라고 본다. , one suppresses one aspect at the cost of crippling all…..더욱 심각한 것은 , 자신 스스로를 existential anxiety 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defensive strategies anxiety 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거다. 이것은 neurotic kind 하겠지….. 위에 나온 예시의 여성은 자신에 대해 out of control 함을 느낄 것이다.

그녀가 이와 같은 anxiety 에 대해 , 그녀 스스로를 others 로부터 떨어뜨려 논다든지 , 그녀 스스로 omnipotent 하다고 imagine 해 버린다든지 하는 defense 를 통해 반응해 보리면 , 그녀는 defense 를 계속 층층이 쌓아갈 것이다.

 

 

 

부젠탈의 (특히 그의 초기 저작에서) , 말에 따르면 , 이와 같이 existential anxiety 로부터 피하기 위한 내담자의 모든 방식과 방법들을 통칭하여 , resistance라고 부른다. 그는 이 용어를 넓은 의미로 사용하는데 , 치료적 과정 내에 또는 그 이외에 나타나는 모든 현실에 대한 blockages 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쓴다. 그래서 실존적 인본주의적 치료의 fundamental project 는 내담자로 하여금 their resistance identify 하고 , overcome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 ther self-deception unmask 시켜주고 , commitment , decisiveness , courage , resolve 의 태도를 지니고 anxiety of existence 에 직면할 것을 돕는 거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내담자는 their neurotic anxieties 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basic conditions of being human 과 조화를 이루며 살게 된다. 그리고 growth 를 위한 their potentiality re-connect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관점에서는 이와 같은 resistances overcoming easy 할 거라고 말한다. Psychodynamic thinking 에 의존하여서 이 치료사들(Bugental 이나 Yalom 같은) 은 주장하기를 an individual’s resistance deeply entrenched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빈번하게 unconscious 할 거라고 말한다. Bugental 은 양파 껍질 비유를 좋아했다. ….벗겨 나가는 것이다.

 

Resistances 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 이 치료사들은 내담자들을 향해 상대적으로 challenging stance adopt 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로 하여금 their fear 에 직면하게 독려하고 , reality 라는 hurdles 을 뛰어넘게 도와준다.

 

그러나 이들은 또한 이와 같은 과정의 목표는 내담자 자신이 resistance 에 대해 잘 recognize 하고 , release 하기 용이하게 만들어 주는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external authority 를 부과하기 보다는 차라리 clients empower 시켜주고자 한다. Schneider(2003) 는 내담자의 resistance respect 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안전한 느낌을 주고 , 친숙한 장소를 제공해 주고자 하는 것이다.

 

[Facilitating the inner search]

Our inner world of subjective experience acknowledgement 하는 것이 existence 에 직면하는 첫번 째 관문이다. (부젠탈 말). , kinasesthetic-affective realm of body , imagination , fantasy life and intuition 등 말이다부젠탈에게 있어서 , this private realm our homeland .

 

the centre of our being 인 것이다. 근데 우리는 우리의 많은 homeland exile 시켜놓고 산다. 그래서 이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내담자로 하여금 their actual, in-the-moment experiences aware 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부젠탈은 이 과정을 ‘inward searching’ 이라고 부른다. , ‘in which the awareness is tuned into one’s own subjective experiencing in the moment and given free rein to move as it will’ 이라고 보는 것이다.

process 를 시작하기 위해 이 치료사들은 내담자로 하여금 자신들의 concerns focus on 하기를 독려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free associate 시키기도 하고 , 그들의 sense of concern 이 가는 대로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부젠탈은 때때로 내담자들에게 아래와 같은 direction 을 주기도 한다. 이 때는 내담자들이 도대체 자신들이 무엇을 이야기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 쓰는 말이다.

 

당신의 concerns 들을 내게 말하세요. 당신의 삶에서 오늘 문제가 되는 건 뭔가요?. 지금 당장 너가 여기 누어 있다면 말이죠. 당신이 생각하길 원하는 건 뭔가요?. 당신이 변화시키고 싶은 당신의 life 는 뭔가요?. 당신의 문제에 대해 내게 이야기할 때 , 당신이 이야기하는 것과 관련된 것 또는 관련 없는 것이라도 any other awareness 가 언급되는 것에 대해 자유해도 되요. 때때로 이와 같은 other awareness 가 기억이 될 겁니다. 때때로 physical sensations 이 될 겁니다. 또는 emotions 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 그것들을 언급하세요. 그리고 계속 제게 이야기 하세요. 또는 그 문제를 따라 가세요.

 

이 치료사들은 또한 a range of other strategies 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 내담자로 하여금 inner experience focus on 시키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1)   내담자에게 직접 이와 같이 질문한다. : What does your inner experience tell you ? or “How does it feel when you say that?’

(2)   내담자들이 자신들의 experiences 를 서술할 때 가능한한 detail 하게 표현하도록 초청함.

(3)   내담자들이 immediate moment 어떻게 feel 하는지를 express 하도록 독려하고 , 지금 치료사와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 지도 묻기

(4)   내담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re-tell 할 수 있게 encourage 해 주기 -> 인간이라는 존재는 identical term 으로 same story 를 두 번 말하기 거의 힘들다는 principle 에 기반한다.

(5)   Present tense 에 대해 이야기 하도록 독려하고 , 그들 스스로 discuss 할 때 , I pronoun 하게 만들기

(6)   Various emotions differentiate 하고 label 하도록 도와주기

(7)   A particular scenario visualize 하도록 해 주기 , 그리고 그것들을 role-play 시켜 주고 , 이것들을 therapeutic meeting 에서 trying out 하게 해 보기. 예를 들어 , dreaded phone call 을 만들던지 또는 anger 를 표현하게 하기 -> 그리고 그와 같은 experience 를 어떻게 느꼈는지를 reflect on 하기

(8)   내담자가 이 상황 속에서 뿐만 아니라 , therapeutic encounter 바깥에서의 skill of self-awareness develop 하게 encourage 해 주기.

 

이 관점에서는 치료사가 이와 같이 하는 게 중요하다.

(1)   내담자가 이야기할 수 있는 sufficient time 을 제공해야 한다.: 부젠탈은 제안하기를 , 내담자는 19로 이야기 하고 치료사는 1 정도 이야기 해야 한다네

(2)   내담자의 narratives 에서 emerge 되는 dominant emotional theme listen out 해 주기 -> 또는 부젠탈이 ‘red thread’ 라고 부른 것에 listen 해 주기

(3)   내담자의 their own feeling 에 주의 기울이기 , 그리고 이것을 내담자가 경험할지도 모르는 것의 guide 로 사용하기

(4)   내담자의 고통스런 경험들이 종국에는 transform 될 것을 신뢰하라. 그리고 내담자가 그와 같은 trust acquire 할 수 있게 assist 해 줘라.

 

Internal , subjective experiences 에 대한 이와 같은 강조는 또한 내담자가 their bodily sensations 에 구체적으로 집중하도록 독려 받는 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내담자가 ‘How do you feel physically right now?” 라고 질문을 받았거나 , 또는 치료사가 내담자의 body postures , breathing patterns , vocal fluctuations 에 대해 comment 를 할 지도 모른다. 슈나이더는 또한 한 가지 접근법을 서술했다. 그것은 그가 이름 붙이기를 ‘embodied meditation’ 이라는 건데 , 여기서 내담자는 relax 하고 ,their body 가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예를 들어 슈나이더의 내담자인 Ruth 는 그녀가 relax 하면서 , 그녀의 관심을 inward 에 맞췄을 때 , her stomach 에서 뭔가를 느꼈다.

 

슈나이더: 가능한한 완전하게 , 현재적으로 당신이 sense 한 걸 묘사해 줄 수 있나요? 루쓰? 당신은 배 주변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나요?

Ruth: 나는 bloated 되고 , gassy 하고 , disturbed 되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어요 , 이것은 내게 칼이 박힌 느낌이예요.

슈나이더: 그건 꽤 강력한 이미지인 걸요?

루쓰: 이건 마치 messy down 된 상태 같아요. 이건 bubbling하고 teeming with stuff 인 것 같아요. 이건 완전 나쁘지는 않지만 말이죠. 이건 나의 일부인 것 같아요. 내 깊은 곳에 지니고 있는 나의 일부 말이죠. 동시에 난 또한 이와 같은 churnings 으로부터 sealed off 되었음을 느껴요. 나는 그것들 아래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그것들에 의해 unaffected되었어요.

슈나이더: 너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에 대해서 any images or associations come up 하나요?

루쓰: , 나는 in a great deal of my life 를 느껴요. Estranged 를 느껴요 , cut off 를 느껴요. 나는 나의 wild and expressive part 로부터 cut off 되었어요. 또한 나의 aspiring part 로부터 cut off 되었어요.

슈나이더: 당신이 그 감정에 머무를 수 있는지 보세요. 루쓰.

이 관점에서는 이와 같은 a process of inward searching 이 내담자로 하여금 their subjective reality more in touch 하게 도와준다. 그러나 , 그들이 그와 같이 할 때 , anxiety of authenticity inevitably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 자신들의 awareness blocking , deflection , distortion 하는 것을 통해 their inner search resist 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내담자는

(1)   주제를 바꾸려 할 것이다.

(2)   Distracted 될 것이다.

(3)   Trivialities 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할 것이다.

(4)   Clichéd(진부하게) , polite , formal , abstract or disinterested ways 로 이야기 하려 할 것이다.

(5)   빨리 말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hear 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6)   주지화 시키기 시작하고 , 합리화 시키기 시작하고 , their concerns solve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7)   Their experience 로부터 스스로가 멀어지고 , 그들이 마치 다른 사람인 것 처럼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러므로 , 내담자의 inward search 를 용이하게 만들 때 , 치료사의 a key role 은 내담자가 그 process resist 할 때 notice 해 주는 거다. 슈나이더는 two basic forms of resistance work 를 식별했다. : vivification confrontation 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vivification 은 그들이 어떻게 그들 스스로를 block or limit 하는 지에 대한 내담자의 awareness 를 고양시켜 주는 것을 포함한다. 이것은 내담자의 initial resistances noting 해 주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 너는 계속 주제를 바꾸는 것처럼 보인다. 난 당신의 illness 에 대해 묻고 있다. 라고 말해 주는 거다.

 

그리고 나서 ,이와 같은 resistance repeated 되고 있음을 그들에게 every time 알려 주는 거다. Confrontation more direct 하고 amplified form of vivification 이다. 내담자로 하여금 their blocks overcome 하게 만들기 위해 gently or otherwise 하게 pressing 하는 거다. 부젠탈은 이게 내담자에게 their inner research resist 하는 것의 negative effects 를 가르치는 데도 유용하고 , 그들에게 이게 단지 arbitrary or careless behavior 일 뿐만 아니라 , inner awareness blocking 하려는 motivated attempts 라는 점도 볼 수 있게 도와 준다고 말한다.

 

 

[interpersonal presence]

이 관점에서 , individual’s authenticity 는 그들 스스로를 아는 their willingness 의 관점에서만 정의되는 게 아니라 , 타자에 의해 알려지는 their willingness의 관점에서도 정의된다. 이건 ‘presence’ 로 정의된다. , : being as aware and as participative as one is able to be at that time and in those circumstances’. 내담자의 inner search 를 용이하게 할 뿐 아니라 , 이 치료사들은 또한 내담자의 another 에 대한 presence try 하고 용이하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 their authentic communicate 하고 expres 하는 their ability ….(in-the-moment experiencing 에서 말이다.). 이 관점에서 Yalom Bugental 은 지금의 치료적 상황에서 어떤 걸 느끼는지를 articulate 하기 위해 내담자를 독려하는 것을 상당히 강조한다. 그리고 치료사를 향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에 중점을 둔다.

 

Yalom 은 말하기를 ‘I make an effort to inquire about the here-and-now at each session even if it has been productive and nonproblematic.’.’ 이것은 다음 과 같은 질문을 포함할 수 있다. “How are you and I doing today?’ or ‘How are you experiencing the space between us today?;

이것에 대한 좋은 에는 Yalom Ginny Elkin 상담 건이다. 여기서 얄롬은 내담자에게 감정에 대해 직접 묻는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행동할 건지가 드러날지 본다. 예를 들어서 , 그녀가 어떠한 질문도 해 오지 않았는가?... 치료자인 나에게 반대하는가?...그녀는 내게 신경이나 쓰고 있는 건지 말하게 하기….예를 들어 , Ginny 가 자신은 친구에 의해 strangled 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하면 , Yalom 은 그녀가 또한 치료사인 자신에게도 strangled 된 걸 느끼는 지 , 그렇지 않은 건지를 궁금해 한다.

그러나 inward searching process 와 같이 , 이 치료사들은 인정하기를 another 에 대해 fully present 하고 open this process 도 굉장히 anxiety-creating 할 수 있다고 본다. 많은 실존적 인본주의적 치료 과정은 , 그래서 therapeutic encounter fully engage 하기 위해 내담자의 resistance vivifying 하고 challenging 하는 걸 포함할지도 모른다. Fat Lady 의 건 경우에 , Yalom 은 내담자인 Betty 에게 지적하기를 , 그녀는 자신의 real feelings and concerns 에 집중하고 있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Yalom: .. 제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determined 되고 , absolutely committed 되었군요…..나와 함께 즐기는데 말이죠.

Betty: ……흥미로운 이론이네요 Dr. Watson

Yalom: 당신은 우리가 처음 만난 이래로 계속 이러고 있어요. 당신은 내게 당신 스스로의 삶이 full of despair 라고 말했어요. 그러나, 당신은 이런 말을 bouncy-bouncy 하게 시종일관 하고 있네요.

Betty: 맞아요. 제가 그래요.

얄롬: 당신이 지금과 같이 유쾌한 분위기에 머무르면 , 난 당신이 얼마나 큰 고통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잃어 버릴 겁니다.

배티: 그것을 wallowing(뒹굴면서 끌어 안는) 하는 것보단 이게 더 나아요.

얄롬: 그러나 당신은 help 을 요청하려고 여기 온거요. 당신이 나와 entertain 을 즐기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이요?

 이 경우에 얄롬은 그녀가 not fully present 한 것에 대한 indication 으로서 내담자에 대한 자신의 boredom disinterest 의 감정을 사용했다. 이 관점에서 , 만약 치료사가 their clients 에게 engaged 를 느끼지 않으면 , 그 내담자는 their true existence에 대한 vibrant and complex picture 보다는 차라리 그들이 될 수도 있었을 lifeless façade(표면) 만을 presenting 할 것이다.

그러나 one’s authentic being express 하는 것은 presence coin only one side 일 수 있다. Input the other side 는 부젠탈이 accessibility 라고 부른 것이다. , matter 라는 a situation 에서 무엇이 일어날지를 allow 하기 위한 intention 을 지니는 것이라고 이 단어를 정의 내릴 수 있다.

 

Being fully present 라는 건 , one’s own authenticity expressing 하는 것 만큼 the authentic being of others 에 대해서도 open 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치료사들(얄롬 같은) 은 그들과 함께 있는 그 방 안의 another human existence 에 대해 내담자로 하여금 인정하도록 readily challenge 시킨다. 예를 들어서 얄롬의 내담자인 Ginny 가 그녀는 그를 볼 수 조차 없다고 말하면 , Yalom 은 그렇게 하도록 그녀를 도전시키고 , a length of time 동안 her gaze 를 고정시켜 둔다. Expressiveness 뿐만 아니라, accessibility 의 관점에서 presence 를 해석하는 것 또한 transference one particular form of resistance to presence 이다.

 

지금 치료 중에 만난 a unique , unfamiliar and unpredictable other 에게 fully present 하는 anxiety 를 피하고자 , 과거 자신이 만났던 중요한 사람과의 collaboration re-create 하려고 발악하는 게 transference 라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 전이라는 요소를 중요하게 봄. 그래서 내담자로 하여금 , 자신들의 치료사에 대해 mis-perceive 하는 부분이나,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에 대한 부분들에 도움을 줌으로써 ,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으로까지 확대시켜 줘서) , others 에 대해 more authentic way relate 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이 관점에서 , 이와 같은 process는 치료사가 her client 에게 진심으로 존재할 때에만 용이하게 작동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happening 이 없으면 , 치료사와 내담자는 real other 에 대한 perception 을 제한할 것이고 , 내담자는 fully relationships develop 하는 걸 배우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 슈나이더와 메이에 따르면 , 치료사의 presence 는 내담자의 문제가 confronted 될 수 있을 것이라는 a sense of safety create 해 낸다고 한다.

 

그리고 내담자가 her discoveries 에 대해 constructively 하게 act 할 수 있는 capacity deepen 시켜 준다. 그리고 치료사의 presence 가 중요한 마지막 이유는 , 내담자에게 a model of authentic living creat 할 수 있기 때문이다. Many different techniques interpretative formulations 이 이 접근법에서 developed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 이 모든 것들은 secondary 한 것으로 간주된다. 최우선은 development of an authentic , genuine relationship 이다….내담자와 치료사 간에 말이다. 얄롬의 personal mantra 는 바로 이거다. It’s the relationship that heals , the relationship that heals , the relationship that heals.

Presence coinaccessibility side 에 관해서는 , 치료사 presence 는 의미하기를 , 이 관점의 치료사들은 full scope of her client’s being open 하고 sensitive 할 것을 말해 준다. 예를 들어서 앞에 나온 Fat Lady 건에 있어서 , Yalom 은 자신의 disgust of obesity 가 그로 하여금 , fully attentive , caring 하는 것을 막았다고 말한다. Presence coin expressive side 에 관하여 , a therapist 는 자신의 내담자에게 opaque and aloof 로 남기 보다는 차라리 , self-disclose 하고자 하고 , open 해야 한다. 얄롬은 제안하기를 치료사는 항상 , 내담자의 질문에 답해야 하고 , 치료사가 transparent 해야 한다고 내담자가 느끼는 three particular areas 에서 outlines 을 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 mechanism of therapy . 예를 들어 , process 뒤에 존재하는 assumptions and rationale 등이다. 그리고 , 내담자가 their progress maximize 할 가능성이 높은 the ways 등 말이다. 두번째는 immediate here-and-now 에서 their client 를 향한 치료사의 feelings 을 이야기 해 주는 거다. ,  tenderness, progress 하는 방법에 대한 disinterest or an uncertainty 등에 대해서 말이다. 세번 째는 아마 가장 controversially 할 내용인데 , 얄롬은 이야기 하기를 치료사는 their own lives 에 대해 늘 honest 해야 한다고 말한다. , 그들이 relationship 에 들어가 있든 그러지 않든 말이다. 그리고 , 자신들의 sexuality 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 어떤 종류의 films 을 좋아하는 지도 이야기 하라고 말한다. 물론 이것은 tactfully 하게 시행되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치료사는 항상 내담자의 personal enquiries process explore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 결론 짓기를 내가 나 자신의 몇 가지에 공유했을 늘 치료가 용이하게 흘러갔다 라고 얄롬은 진술한다.

 

[the givens of existence]

이러한 접근법은 다른 인본주의 치료와 다르다…….(인간 중심 치료나 , focusing-oriented psychotherapy 등과 말이다.). 그러나 실존주의 철학을 의존할 때 , 이 접근법은 subjective intersubjective realms exploration 을 뛰어 넘고자 하는데 ,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직면하는 certain givens , or ultimate concerns 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는 , the fount(원천) of all our anxieties 에서 concerns 들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 all the layers of resistance peeled away 되는 대로 , 드러나는 terrors of existence 가 있다고 본다. 부젠탈에 따르면, many clients 는 결국 이와 같은 terrors 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therapeutic journey dark night existential crisis 라고 부른다. 얄롬은 반면에 a less linear perspective 를 지니는데 , 제안하기를 their growth 에서 any point 에서든지 개인은 boundary situations 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 world 내에서 one’s existential situation 을 지닌 채 , a confrontation 으로 propel 해 들어가는 event , urgent experience 말이다. 부젠탈과 얄롬은 또한 these ultimate concerns classification 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얄롬은 네 가지로 그걸 outline 하는데 , death , freedom , isolation , meaninglessness 였다. 반면에 부젠탈은 6가지로 outline 을 했는데 , finiteness , potential to act , choice , embodiedness , awareness and separateness….. 여기서 마지막인 separateness 는 나중에 separate-but-related 로 바뀌게 된다. 이 챕터의 목적에 맞게 얄롬의 다소 more concise schema 가 사용될 것이다. 물론 , 부젠탈의 concerns 들도 관련된 범위 내에서 다뤄질 것이다.

 

[confronting death]

얄롬에게 있어서 , death primordial source of anxiety . 그는 쓰기를 it is ubiquitous and of such magnitude that a considerable portion of one’s life energy is consumed in the denial of death 라고 말했다. 그의 책 Love’s Executioner 에서 , 그는 첨가하기를 , thought of a loved one dying a source of tremendous anxiety 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부젠탈은 construe 하기를 , this given of existence (조금 더 넓은 용어인 , finiteness 로서) , 설명하면서 , 제안하기를 an awareness of the limits of our existence 는 우리에게 uncertainty 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게 해 주고 , death 뿐만 아니라 an anxiety of fate evoke 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심리치료사들은 동의하기를 most human beings 은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는 지식에 대항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awareness depths of their unconscious 에 묻어 버린다.

얄롬은 outlines 하기를, an awareness of their demise 로부터 그들 스스로를 defend 하려고 시도하려는 개인들의 two particular strategies 를 기술했다. 이것 중 첫번 째는 one’s own specialness 에 대한 belief 이다. 개인들은 자신들이 unique 하고 special 하다는 확신을 가짐으로써 their own finitude 에 대한 awareness ward off 시켜 버린다. 반면에 mortality other people 에게 적용할지도 모른다. 자신들은 this natural law 로부터 은근 슬쩍 제외시키고 말이다.

 

이와 같은 resistance a number of forms 으로 manifested 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서 , compulsive risk-taking 을 통해 개인들은 자신들이 threat of death 에 대해 uniquely 하게 invulnerable 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Aggressive and controlling behaviors 는 개인이 다른 사람과 비교되는 자신의 superiority 를 입증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것이 곧 그들의 uniqueness 가 되는 것이다.

 

얄롬에 따르면 , another manifestation of the ‘I’m special’ defense 는 개인이 근무 현장에서 a unique position 을 얻기 위해 workaholism 에 빠지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고 , 이를 통해 mortality 에 대한 chasm yawning 하는 걸 넘으려고 한다고 본다.?? ‘I’m special’ defense 를 채택한 개인들은 many narcissistic traits 을 표현할 지도 모른다. , intense self-focus , 자신들은 무슨 행동을 하든지 , 사랑 받아야 하고 , 존경 받아야 한다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타자의 권리나 욕구에 대해서는 a diminished recognition 을 지니게 된다.

 

얄롬에 의해 제안된 두 번째 defensive strategy ‘ultimate rescuer’ 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belief 으로써 , some being-God, a parent , a doctor , or even one’s therapist the jaws of infinite non-existence 로부터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는 mind 라고 봄.

이 치료사들은 개인이 자신들의 mortality 에 대한 awareness ward off 하기 위한 수 많은 전략이 존재함을 알아 냈다. 예를 들어 , compulsive sexual activity 를 통해서 , 개인은 death 의 존재에 대항하고 ,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vitality youthfulness reassure 하려고 할 것이다. Workaholism , social activism or a desperate desire for children 과 같은 compulsive sexual activity

some kind of legacy 를 뒤에 남겨 둠으로써 , death 로부터 leap-frog 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얄롬은 이와 같은 방어 기제를 , immortality projects 라고 부른다.death 에 대항하는 defense 는 굉장히 personal 할 수가 있다. Yalom 이 맏았던 Fat Lady 같은 경우에는 , cancer 로 시들 거리며 , 말라가며 죽어가는 그녀의 아버지를 바라보던 내담자의 experience 는 그녀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 her body fat 하게 만들도록 만들었다. (그녀로 하여금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얄롬은 제안하기를 , 어느 정도 , reality of one’s own death 에 대항한 defense an important self-protective function serve 할지도 모른다고 제안했다.

 

 La Rochefoucauld observes 한 것처럼 , : sun 또는 death 중 하나를 directly 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 것이다. 그러나 , reality 에 대항하는 all defenses 와 같이 , more developed levels 에서는 이것들이 highly dysfunctional 할 수가 있다. 진심으로, 얄롬은 진술하기를 death primordial source of anxiety . 그것은 또한 primary fount(원천) of psychopathology . 자신들의 specialness 를 끈덕지게 주장하는 사람은 예를 들어서 , mutual and intimate relationships 을 형성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death-defying activities 에서 their lives risk 를 걸지도 모른다.

 

 이와 유사하게  , ultimate rescuer defense 를 채택한 개인은 self-effacement , fear of withdrawal of love , passivity , dependence , self-immolation , refusal to accept adulthood , and depression at collapse of the belief system 으로부터 consequently 하게 suffer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 하이데거가 논증했듯이 , their own finitude 에 직면하지 않음으로써 , 개인은 그들이 가지고자 하는 the most of the life 를 만들 수 없고 , 또는 다른 길을 찾아갈 수 없고 , neurotic debt of death escape 하기 위해 loan of life refuses 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 치료사들은 또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에게 동의하기를 , reality of death 에 직면하는 것은 , 각 개개인이 present seriously 하게 받아 들이고 , 그 대부분의 것들을 만들어 나가게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 in the same boat 에 있는 other human beings 과 함께 하는 a sense of fellowship 를 개개인 에게 부여해 줄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사용하여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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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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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per 의 [Existential therapy] 원서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Schizophrenia 환자들을 이해함에 있어서 새로운 통찰력을 남겨준 도발적인 Laing의 이론을 소개합니다. Deinstitutionalization 에도 상당 부분 영향력을 미쳤을 그의 이론은 과연 치료자의 입장에서 득과 실을 따져보게 만드는 주장들로 가득합니다. 그가 이야기 했던 double-binding 에 의한 조현병의 이해, 조현병 환우들이 보이는 망상적 사고 등이 실은 자신들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전략이었음에 대한 그의 설명은 환자를 이해하는 범위, 정상/비정상의 설익은 분류 체계에 대한 냉엄한 도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답을 제시해 줬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가능성을 알려준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10년전에 두서 없이 번역해 둔 거라 정교하진 못하지만 요즘 번역서가 나온 것 같기도 하니 자세

히 공부해 보고 싶으시면 정식 교재를 구입해 보시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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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Laing

[masks 없이 만나기]

 R.D Laing 은 스코틀랜드 정신과 의사다. 가장 infamous 하나 가장 많이 오해 받아온 existentially-informed therapists . 그가 죽은 지 10년 이상 지난 지금도 , 그의 생각은 여전히 논쟁적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그의 기질은 변덕스럽고 , 불가사의하고 , 오만하고 , 인습타파적이고 , 명석하다고들 말한다. 그리고 그의 저작들은 이러한 특징들이 잘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그의 접근법은 특징화 시키기가 가장 어렵다. 자신의 work 를 성문화 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의 practice 에 대한 example 도 안 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자신의 이론들을 상당 부분 수정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 그러나 어느 정도 이것은 deliberate 하다. , 랭은 그의 접근법이 어느 정도 formalize 되어 버리면 부패하게 되고 , 오해 받을 것이라고 두려워 했다.

 

그리고 그의 치료적 outlook 에서 core 를 차지하는 the very principles of spontaneity undermine 하는 격이 될 거라고 이야기 한다.

 

정신분열의 병인학치료라는 그의 primary concern 은 그가 broader therapeutic practice outline 하는 것에 자신의 에너지를 덜 사용했음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가 contemporary psychiatric practice 에 퍼붓는 critique 들은 , 그리고 mental misery 에 대한 his existential-phenomenological analysis , 그리고 therapeutic practice 에 대한 his interpersonal approach pantheon of existential therapies 에서 a key place 를 차지하고 있다.

 

 

 

[Influences]

그의 주 저서인 [the divided self] 는 어떤 기존의 실존주의 철학도 응용한 게 아니다. 그러나 많이 영향 받은 것도 사실이다. 키에르케고르 , 니체 , 틸리히 , 하이데거 , 부버 , 야스퍼스 , 메릴리 퐁티 , 허슬 , Sartre 등의 저작을 그는 접했다.

 

특별히 Husserlian phenomenology 를 많이 참고했는데 , , 다른 사람의 삶을 fully understand 하기 위해서는 , 그들을 categorizing , labeling , or diagnosing 하는 모든 시도를 타파하고 대신에 a purely descriptive level p서 그 사람의 lived-experience 에 머물러 있으라고 이야기 한다. 그는 사르트르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특히 , social processes 에 관련된 그의 후기 저작에 말이다. 그리고 human beings particular social structures 에서 enmeshed 된다는 측면에서 참고를 많이 함?....사르트르의 초기 저작 처럼 , 랭은 또한 인간은 서로를 objectify 하고 , dehumanize 시킨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의 다른 작품에서 랭은 human relationship 에 대해 more optimistic view 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부버의 I-Thou interpersonal attitude 를 더 수용하게 된다.

어느 정도 그의 접근법은 실존적 그리고 현상학적 측면에서 psychological difficulties formulate 하려고 했던 European psychiatrists 의 작품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들에는 칼 야스퍼스가 들어간다. 그의 저작은 detached scientific observations and causal explanations of abnormal psychic phenomena 로부터 벗어나 이러한 현상들을 환자의 actual , meaning-orientated , conscious lived-experiences 의 관점에서 서술하려고 노력을 많이 함. 또 랭에게 영향을 준 유럽파 실존주의 정신과 의사는 Eugene Minkowski .

 

이 사람은 certain psychological problems 은 특별한 experiences of time 과 관련이 있다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예를 들어서 , a depressed individual no sense of the long-term future 일 것이다. 그러나 mania 인 상태의 사람은 immediate present 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랭의 정신분열에 대한 설명은 빈스방거에 의해 developed 된 설명과 parallel 한 부분이 많다.

 

즉 예를 들어서 , potential annihilation 에 직면하는 a sense of naked horror 라는 경험이나 dissolution 에 대항하여 자신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노력으로 independent autonomous selfhood 로부터 withdraws 하는 게 정신분열이라고 보는 주장….랭보다 먼저 빈스방거는 분명 method meaning 이 있는 거라고 봄. 그리고 누군가가 사회적 관습의 기준을 벗어난 행동을 하면 sick 하다고 판단을 받는 거라고도 봄. 그러나 흥미롭게도 랭은 빈스방거를 direct influence 로 인용하지 않는다.

Daseinanalysis , logotherapy , existential-humanistic approach 등의 지지자처럼 , 랭도 또한 psychoanalytic thinking 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랭의 경우에는 , Freud 보다는 차라리 정신분석 그룹의 중간 세대들 , 그리고 British School object relations 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Tavistock Institute 에서 많은 시간을 수련하고 , 연구하면서 (이 때 정신분석가 자격을 얻음) , 랭은 많은 영국의 정신분석 대가들과 사귀게 된다.

 

John Bowlby , D.W. Winnicott , Marion Milner(그의 supervisor 였다.) 등 말이다. 그리고 Charles Rycroft ( 그의 치료사였다.). 랭의 작품에 영국적 정신분석적 사고가 미친 영향(특히 Winnicott 의 영향) early childhood experiences 의 관점에서 adult experience 를 설명하려는 그의 경향성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 absence of love 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랭의 초기 작품에서 , 또한 psychoanalytic 에 굉장히 의존을 많이 하는데 , 이게 바로 true and false selves 라는 그의 생각으로서 Winnicott 의 개념이다?...practice 에서 또한 랭은 정신분석에 굉장히 많은 빚을 졌다. 랭은 free association 을 가지고 훈련을 오래 배웠다. 이를 통해 내담자들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말을 자유롭게 다 하도록 격려 받았다.

 

그리고 이게 그의 임상 practice basis 가 되어 줬다. 그리고 transference interpret 하는 정신분석적 기법에도 많은 빚을 졌다. 이를 통해 , 자신들의 치료사에게 감정과 생각이 옮겨지는 것을 통해 이전의 삶이 잘 설명되어 지게 됨.

얄롬과 다른 미국의 실존 인본주의 치료사처럼 랭도 또한 Harry Stack Sullivan Interpersonal psychiatry 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랭은 Gregory Bateson Palo Alto group 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이들은 정신분열증이 a person dysfunctional family patterns of communications 에 갇힐 때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argue 했었다.

랭의 work 의 다섯 번 째로 영향을 준 것은 a broadly socialist-humanist-libertarian standpoint . 랭은 명쾌하게 left-wing에 서 있다고 이야기 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마르크스를 탐독했고 , injustices 에 도전하는 것에 깊이 헌신되어 있었다.

 Mental misery에 대한 그의 접근법의 핵심에 이런 정신이 잠재되어 있다. 마르크스처럼 랭 또한 논증하기를 a micro-context an understanding of the macro-context 없이 이해될 수 없다고 말한다. , an individual their family system 으로부터 떨어져서 이해되어질 수 없다.

그리고 a family system an understanding of its wider social , cultural and political nexus 없이 이해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 라는 랭의 grounding 은 또한 그로 하여금 , 우리가 normal 이라고 부르는 것이 반드시 good 하다는 assumption 에도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 하이데거 뿐 아니라 마르크스처럼 , 그리고 다른 실존주의 철학가들 처럼 , 랭도 믿기를 normal human beings their own selves and potential 로부터 hugely alienated 되었다고 믿는다. , 쪼그라 들고 , 말라 버린 fragment of what a person can be…..

랭의 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마지막 요인은 his own childhood . 어머니와 관계가 아주 숨 막히고 , 사랑 없고 , 혼란스러웠다. 랭의 어미는 랭을 원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를 향한 어머니의 적대감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그녀는 랭을 어르거나 만져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의 장난감을 , 악기를 다 망가뜨렸다. 심지어 그가 나이 먹고 나니 , 그가 심장 마비로 죽기를 바라며 인형 속에 압정을 박아 두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hostile feelings을 극구 부인해 왔다.

 그리고 자신은 아들을 너무 사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너무 possessive and intrusive ways 로 아들을 대했다고 이야기 한다. 예를 들어서 , 처음 학교 가는 날 학교를 못 가게 한다든지…. 그래서 랭의 많은 작품들은 children their parents(특히 어머니) 에 의해 rejection , invalidation , emotional violence 당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인다. 종종 guise of love 라는 미명하에 말이다.

 

[madness 에 대한 meaning 찾기]

그는 그 당시 일반적인 정신과적 세계관을 거부한다. 많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그는 lobotomies 에 대한 unspeakable violence 를 혐오했다. 그리고 electro-convulsive therapies and padded cell 도 다 혐오했다. 두 번째 , 그는 느끼기를 ,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에 a complete breakdown of genuine , human relationship 이 있었다고 느꼈다.

 세 번째는 , 그는 느끼기를 정신과의사는 너무 unparalleled degree of power 를 소유하고 있다고 봤다. 네 번째는 , 그는 느끼기를 특정 인들에게 labeling 하고 그들을 mentally ill 로 보고 , dysfunctional 로 보는 등의 psychiatric system 은 이러한 사람들의 symptoms 뒤에 감춰진 sense and meaning 을 알기 어렵게 만든다고 봤다.

이러한 접근법과는 대조적으로 , 랭은 논증하기를 , 정신과 의사와 치료사들은 their client’s phenomenologically-lived world 에 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논증하기를 이와 같이 함으로써 자신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내담자들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들이 meaning 을 지니고 purpose 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 관점에서 랭의 작품은 기존의 실존주의적 그리고 현상학적 정신과 의사의 견해를 extends 하고 radicalize 시킨다. 예를 들어서 야스퍼스가 neurotic and psychotic experiences 를 현상학적으로 서술한 반면 그는 여전히 abnormal and psychopathological 과 같은 용어는 사용 했었으며 , understandable fashion 에서 emerge 하는 affective states understanding defeat 시키는 affective states 에 대한 것을 구분하고자 했다.

이와 유사하게 보스 같은 Daseinsanalysis 에서도 perversions or obsessional neuroses 등에 대한 논의를 계속했는데 , 마치 these ways of being 은 다소 less legitimate 하고 less valid 하고 less meaningful 하다고 (normal 인 사람 보다는) 간주했다.

그러나 랭은 , 심지어 the most bizarre behavior 가 보여지더라도 , 그 당사자의 관점에서는 intelligible 한 것이었다는 걸 보이길 원했다. 한 예로서 , 한 여성은 그냥 앉아서 한 시간 동안 가만히 있었다. 정신과적 측면에서 보면 , 이와 같은 행동은 catatonic immobility 라고 볼 것이다. , her level of impairment 외에는 달리 의미가 없는 typical symptoms of her schizophrenic illness 였다. 그러나 랭과 Esterson 이 이 여자 내담자를 인터뷰할 때 , 이런 병의 탓을 다 무시했다. 그리고 그들은 발견하기를 , 그 여성의 immobility 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그 내담자에게 묻기를 만약 그녀의 어머니가(intrusive and infantilizing woman) , 그녀는 동의하지 않지만, 나중에는 옳게 될 것일이라는 의견을 표현했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대답하기를 누구도 gee at her 하지 못하고 , her opinion 을 바꾸지 못하도록 rigid and stiff inside 로 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게다가 , 그녀는 말하기를 그녀는 숨을 참고 , 정신분열적 증상을 드러냈다. (습관적으로 킁킁 거리고 , 기침하고)……왜냐하면 자신의 어머니의 폭포수 같은 언어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여성의 행동과 symptoms 에는 나름의 intelligibility 가 숨어 있었다. Crazed activity 라는 random expression 보다 훨씬 지혜로운 것이었다.

랭 학파의 edict(칙령) , 다른 게 입증되지 않으면 unintelligibility 로 간주하라 와는 반대인 다른 게 밝혀지지 않으면 intelligibility 로 간주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치료사는 내담자의 행동과 경험이 pathological or irrational errors of functioning 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자신들의 세상을 다루기 위한 meaningful attempts 일 것이라는 a basic trust 를 내담자에게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trust 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치료의 very foundations 에는 내담자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assumption 이 깔려 있곤 하기 때문이다.

A personal example 로서 , 오랜 시간 일자리를 찾는 데 실패한 50대 중반의 남성을 치료한 적이 있었는데 , a new local firm 이라는 굉장한 일자리 기회가 찾아 왔다. 나의 initial assumption 은 이 내담자는 이 제안에 기뻐했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 통보를 받고 나서 주저할 때 , 그리고 deeper depression 에 떨어질 때 , my instinctive response 는 그의 growth 를 방해하는 것을 그가 직접 보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상황을 더욱 깊게 탐색하고 나니 , 점차 명백해 진게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의 ambivalence 에는 a great deal more sense and intelligibility 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가정해 보자 , 그가 이 job 를 취했다고 말이다.

이것은 rewarding 하고 , enjoyable 할 것이다. 그러나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생기는 건 그가 20년 전 이러한 직업을 발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로서는 이 job 을 포기하고 , 그는 취업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간단히 믿어 버리는 게 덜 고통스러운 것이다….

내 처음의 tendency 는 이 내담자가 잘못된 것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그의 행동과 감정 뒤에 있는 sense 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나의 가정을 없애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최고의 길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

 

[ontological insecurity]

정신분열증을 나타내기 위해 시도하는 것은 의미 있는 행위일 것이다. 랭은 psychosis develop 하도록 개인을 이끌지도 모르는  a range of intrapsychic and interpersonal ways of being 을 서술했다.

Intrapsychic level 에서 랭은 제안하기를 , schizoid-predisposed individuals a fundamental sense of ontological insecurity 를 경험할지도 모른다고 제안했다.

이 상태는 한 개인이 a firm sense of his own and other people’s reality and identity develop 하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any unquestionable self-validating certainties 를 획득하지 않은 상태다. 랭은 ontologically insecure person 을 이와 같이 표현한다.

 

…real 보다는 unreal 을 잘 느끼고 , alive 보다는 dead 에 가깝고 , 불안정하고……그의 정체성이나 자율성은 늘 의문에 빠져 있고 , 그는his own temporal continuity 에 대한 경험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는 an over-riding sense of personal consistency or cohesiveness 를 소유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는 substantial 보다는 insubstantial 을 더 잘 느낄 것이고 , 자신이 이룬 것들이 genuine , good , valuable 한지를 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실존적 불안에 빠진 사람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당연하게 여길 수 없기 때문에 , 자신들의 very self annihilated 될지도 모른다는 constant fear 를 지닌다.

특별히 랭은 실존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 지닐지도 모르는 3 가지 fears 에 대해 이야기 한다. 첫째 , 자신들의 autonomy the will of others 에 의해 devoured 되고 subsumed 될 것이라는 a fear of engulfment 가 있다.

두 번째는 implosion 에 대한 fear . 자신들이 주변 real world 에 의해 제거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나타낸다. , a gas rush in 해서 a vacuum을 제거해 버릴 것 같은 두려움 말이다. 여기에 , 타자에 의한 the fear of intrusion and invasion 이 포함될 수도 있다. 세 번째는 the fear of petrification and depersonalization 이 있다. , 자신의 존재가 inanimate object 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을 나타낸다. 즉 타인에 의해 it 이 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말한다. (사르트르의 개념을 떠올려 보라).

어떻게 실존적 불안이 정신분열을 초래하는 걸까? 랭은 제안하기를 실존적으로 불안한 사람은 their existence 에 대한 perceived threats 에 대해 이것을 둘로 split 시킴으로써 대처를 한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true self their body 로부터 withdraw 시키고 , inner , private citadel of their mind retreat(후퇴) 할지도 모른다.

이 곳은 threat of annihilation 으로부터 safe 할 것이라는 그들의 hope 이 반영된 곳이다. 그들이 되에 남긴 것은 a de-personalized body 이다. 그리고 false-self . 그들이 자신들의 threat of engulfment , implosion , petrification and depersonalization 에 대항해 자신을 지켜 주기를 원하는 shell 인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sense of being preserve 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의 one component 를 희생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소망하기를 자신의 real being left alone 하기를 바라며 , outside world 로 던지는 a decoy(유인물,미끼) 로서의 일부인 것이다. 이 관점에서 그와 같은 individual external world 를 꽤 normal 로 인지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녀는 her false , public self 에 대한 책임을 포기해 버렸기 때문에 , 그녀는 의지적으로 그녀 주변 사람들의 요구를 따르고자 할 것이다. 심지어는 그녀가 따르는 사람의 성격과 행동까지 imitate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The real self 가 점 점 더 inwards withdraws 되면 , sane schizoid individual 은 한계선을 넘어서 psychosis 로 들어가 버릴 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body 로부터 굉장히 withdrawn 되고 alienated 되었기 때문에 ,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actions control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self-mutilation(절단) 을 통해 her sense of physical deadness 를 극복하려고 노력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에게 compliance(준수) 를 요구하는 사람에게 화를 낼지도 모른다. (이러한 요구를 따르는 the false part of herself 뿐만 아니라) , 그러므로 그녀가 따르고 있는 것을 imitate 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로테스크하게 특징화 시키고 ridicule 한다.

 그리고 real self withdraw 되어서 real relationship 을 가지기가 더 힘들어 지므로 , …점점 흐려진다. 궁극적으로 self 를 보호하기 위한 desperate battle its own annihilation 을 초래한다 : , gates of hell , wracked with despair , terror and a sense of dissolution 으로 descent 되어 가는 것이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사람들은 good 에서 bad 그리고 mad 로 옮겨가는 것으로 보인다.

 

 

 

[the social context of mental misery]

그러나 랭에게 있어서 , 정신분열증 같은 severe forms of mental misery 는 단지 , private , individual , intrapsychic activities 로만은 이해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랭은 믿기를 , 정신분열증은 개인이 particular social situations 에서 survive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develop 시키는 , a particular strategy 라고 믿었다.

-> 조현병에 대한 그의 열린 관점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다른 많은 intersubjective 철학자들 처럼 , 랭도 믿기를 human beings 은 본질적으로 inter-relational beings 이라고 봤다.

그래서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배제하고는 그 사람의 경험과 행동이 이해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므로 , an individual 이 그와 같은 bizarre forms of behaviors and experiences paranoia or psychosis develop 하는 것에서 , 랭은 믿기를 이것은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한다.

Family 에 대한 랭의 분석의 핵심은 개인으로부터 family 로 가는 phantasy 에 대한 정신분석적 개념의 연장이었다. 그는 제안하기를 family social phantasy system develop 시킨다고 말한다. , shared sets of inferences and assumptions 을 이르는 말이다.

 

모든 가족에게 있어서 이러한 phantasy system 은 어떠한 것을 바라보는 right way 가 된다. 만약 한 개인이 이러한 시스템 바깥에 있었던 경험을 증언하면 , 또는 이러한 시스템으로부터 자신을 extricate 하려고 시도하면 , their family 는 이와 같은 threats 에 대해서 자신들을 defend 할 것이다.

여기서 랭은 defense mechanism 이라는 psychodynamic concept intrapersonal level  에서 transpersonal level extending 하고 있다.

이와 같은 transpersonal defenses family member’s experience 에 대한 a denial , distortion , invalidation 을 포함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invalidation of feelings and perception 을 통해 , 랭은 제안하기를 individuals their own experiences fabric mistrust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any sense of self-assurance lose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개인들은 더 이상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게 된다. 즉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정말 이야기 할까? 사람들이 정말 그들의 관계에 신경이나 쓸까? ….뭐 이런 거?...게다가 만약 개인의 경험이 다른 사람에 의해 denied 되고 , 다른 경험들이 그들 위에 부과된다면 , 그들은 랭이 사용하는 용어인 false position 을 지녀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their own experiences and action 에 대한 any real sense 를 잃을 지도 모른다. 랭이 쓴 것처럼: 나는 확신하기를 , truth deprivation 은 비타민 결핍만큼 그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다.

더 나아가서 the family system 은 개인의 경험만 deny 하는 것이 아니라 , any denial 이 일어나는 것도 deny 할것이다.

또는 denial denied 되었다는 것도 deny 할지 모른다. : , 한 사람의 own and other people’s experiences destroy 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거다. 랭은 믿기를 , 감정적 , 의사소통적인 가족 안에서의 폭력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다고 본다. 그리고 아마도 , 랭 자신의 가족이 최고의 예시가 되어줄 것이다.

그의 어머니의 차갑고 , 거부하는 태도는 care concern 의 그늘에 감춰져 있었다. 이와 같은 mystification 을 통해 , constant shifting of meaning and position 이 일어난다나….랭은 믿기를 young people their position false 하게 find 할 뿐 아니라 , untenable(방어할 수 없게) 하게 find 한다고 본다. , 그들은 느끼기를 , 그들이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기만 당하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 lie 를 인정할 수가 없다. 보충하자면 , 그들은 자신들이 falsely 하게 살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 their position falsity 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Double-bind 도 대표적인 untenable position 중 하나다. 이 것은 랭이 미국의 인류학자인 Gregory Bateson 과 그의 팀으로부터 차용한 개념으로서 , 누군가가 이러이러한 행동을 하면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명을 받는데 또한 그것을 안 해도 처벌을 받게 될 것이 non-verbal level 에서 드러나는 거다. 게다가 그들은 이 상황을 떠날 수 없다는 injunction(경고) 를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 랭과 이스터슨 책에 나온 엄마 중 한 명으로서 , 자신의 정신분열적 딸이 그녀 스스로를 잘 표현하지 않는다고 regret 을 표현한다.

그러나 , 그 딸이 자신을 express 하면 , 그 엄마는 그녀를 interrupt 한다. 그리고 그녀를 야단친다. 그 딸은 catastrophe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들은 their own inner world refuge 를 만들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타자에 대한 trust 도 잃어버릴 것이다. 또한 그들이 의사소통 하기 원하는 것을 의사소통 하는 수단으로서 a more metaphorical and indirect level 을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retaliation(보복) and attack 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paranoid or bizarre behavior 도 사실은 insane world에서 자신들을 sane 하게 유지하려는 개인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 조현병 환자들이 보이는 피해 망상, 편집증적 사고 등에 대한 기전을 탐색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랭은 family life 라는 범주만 관심을 가진 게 아니라 , adult relationship 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의 1966년도 책인 interpersonal perception 에서 말하기를…..랭은 meta-perceptions 의 영역을 examine 했다즉 너가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 , 내가 너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 대한 너의 생각 등을 탐구하는 거다.

이 책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 우리가 상상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것에 대한 영역은 진실과 많이 다르곤 한다…. their perception our meta-perception 과 상당히 다른 것이다. 이게 굉장히 vicious and destructive spirals 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서 , 나의 내담자인 Sally 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childish and immature 로 볼 것이라고 가정 하고 있었다..이건 그녀의 meta-perception 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real perception). 그러나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그와 같이 인지해 주기를 기대했기 때문에 그녀는 serious 하고 다소 emotionally detached 된 느낌으로 남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이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나를 포함해서) 이 그녀를 cold 하게 보고 , 그녀로부터 떨어져 있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녀는 생각하기를 사람들이 자신의 childishness 때문에 자신 주변에 머무르기를 원치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그녀는 더욱 serious 하고 mature 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 이것은 사람들을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vicious cycle 은 영속되었다. 치료 관계 내에서의 perceptions meta-perceptions explore 하는 것은 그녀로 하여금 이러한 vicious cycle overcome 하게 도와 줬다. 랭은 또한 많은 시와 imaginary conversation publish 했었다. …이런 것들을 통해 adult relationship 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수수께끼, 골치 아픈 것들 , vicious circle , binds 들을 서술해 내려고 노력을 많이 함.

 

[candid confrontation]

그는 이와 같은 내담자의 interpersonal and intrapyschic knot 을 어떻게 untie 하도록 도왔을까?.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 랭은 내담자에게 attend 하는 것의 중요성을 믿었다. , 내담자 스스로가 their real experiences connect 하고 그것들을 분명히 표현할 기회를 주며 이를 잘 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함. 랭 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 내담자들은 demanding , intrusive world 로부터 자신들을 their mind inner citadels(내부의 요새) 로 피신 시켜 둔 상태다.

 

그러므로 , a non-invasive, non-intrusive interpersonal connection their self-recovery and re-integration 을 용이하게 하는 데 필수적이다. , metanoia 라고 랭이 부른 journey 를 떠나는 거다.  이 관점에서 랭으로서는 한동안 silent 하게 있는 것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의 과거 내담자였던 Jan Rensnick 이 말하기를 , 랭은 굉장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고 한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게다가 , Daseinsanalytic approach 와 같이 , 랭의 attentiveness a detached , psychoanalytic neutrality 넘어로 까지 간다. 많은 랭의 내담자들은 그의 therapeutic engagement intensity 를 서술했었다. 예를 들어서 , Resnick 은 그 때의 분위기는 종종 체스 경기에서의 silent tension 이 가득찬 상태 같았다고 말한다. (Deep concentration)

그러나 우리가 본 것처럼 랭은 또한 믿기를 내담자들은 deceptive , manipulative and indirect methods of relationship 때문에 고통 받는 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disentanglement honest , non-manipulative and direct I-Thou engagement 를 요구한다. 랭은 쓰기를.

이와 같은 authentic encounter 를 통해 , 랭은 믿기를 다른 사람과의 real relatedness 를 위한 내담자의 capacity restored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 their most basic existential needs 를 충족시키기 위한 their ability …… , 이러한 욕구에는 love , ontological security , freedom from deception , the ability to self-disclose , affirmation by others , real human relatedness 가 들어 간다.

랭의 치료적 접근에서 가장 fundamental 한 것은 그 자신이었다. 치료사로서 그는 mask 따위를 쓰지 않았다. 그는 치료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 그가 느끼고 인지한 것을 말했다. Human condition 에 대한 자신의 insight 에 의존해서 말이다. 랭의 long-term client 였던 Mina Semyon 은 말하기를 , 그는 intimate directness 를 지녔다고 한다. 예를 들어 , their initial session 에서 Semyon 은 랭에게 말하기를 그녀는 her life 에서 뭔가를 하기 원했다고 말했다. 랭은 간단히 말하기를 Then, do something

 

Semyon :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그러면 아무 것도 하지 마라.

Semyon: 그러나 난 뭔가를 하길 원해요

: 그러면 뭔가를 해라.

그녀: [눈물이 흐르고 , 랭은 웃는다.], 나는 내가 뭔가 마음 먹었음이 느껴져요 , 누구와 약속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늘 적당히 해서 , 큰 재앙이 초래되는 걸 막으려 했어요.

: 너가 삶에서 뭔가 의미 있는 걸 하려면 당신이 세워 둔 그와 같은 조건을 다 포기해야 함을 이제 아시겠어요?...당신은 그걸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세요.?

 

랭은 자기 내담자에게 정말 솔직했다. 그는 그녀에게 당신은 extraordinarily naïve 해 라고 말하기도 했고 , 그녀가 자신의 남편이 자신을 critical and judgemental 하게 본다고 불평할 때 , 랭은 말하기를 자기도 그 남편 생각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또한 ,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 말할 때 , 랭은 답하기를 당신은 the gloom of the Russian steppes 를 욺기고 다닌다고 말해 줬다.  (러시아 스텝 지형의 우울함). 그는 또한 psychoanalytic theory 에도 의존하고 , 사람들이 주로 자신의 inner world 로 도망가는 경향성과 같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human being nature 에 대한 insight 도 활용했다. [그 이후 예시는 생략]

Resnick은 보고하기를 랭과 같은 솔직한 태도로 접근했더니 내담자들이 더욱 더 치료적 관계 내에서 현실로 나오더라….

그러므로 랭은 믿기를 , empathic attunement therapeutic process 에서 essential 하지만 , 또한 때때로는 굉장히 confrontational 한 것이었다. 특별히 랭은 믿기를 , 내담자들이 거의 확실히 치료사들에게 project 하는 phantasy system 과 영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phantasy system 에는 내담자들이 자신을 powerless 하게 보고 , 타자에게 모든 책임이나 control 권이 있다고 해석해 버리는 것들이 있다. 랭은 이와 같은 영합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Resnick 은 보고하기를 , a typical Laingian construction 은 이와 같을 거란다. ,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내가 주지 않아서 unhappy 를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군요.

 그러나 , 당신이 이와 같은 기대로 당신을 이끄는 것을 면밀히 살펴 보면 , 그 기원이 전적으로 당신 내부에 있음을 알게 될 거예요. “ 랭은 이것을 더욱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 당신이 지금 날 당신의 아버지처럼 대하는 군요..같은 식으로나는 지금 당신에게 지적하고 싶네요. I’m not your fucking father…..와우.

랭은 믿기를 이와 같은 non-collusive therapy 는 내담자에게 대부분 좌절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는 느끼기를 치료사들은 이러한 내담자의 basic hatred tolerate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A more genuine human relatedness evoke 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 그는 또한 candid confrontation  은 내담자와 치료자 사이의 a basic sense of communion and relatedness 가 선행되어야지만 , only effective 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치료적 관계 내에서 랭의 genuineness 는 또한 의미하기를 , 그는 externally-imposed boundaries 를 위해 거의 시간을 들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의 치료 세션은 therapeutic hour 이상을 선회한다. 같이 산책도 다니고 , 담배도 건네 받고 , 그들이 위기에 처해 있으면 오랜 기간 동안 지켜 보기도 하고 , 더욱 heretically 한 것은 , discussion groups 을 위해 자신의 내담자들을 치료 세션 바깥에서도 만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가나 파티 등도 같이 하고 말이다.

 

우정을 쌓는 것이다. Mina Semyon 의 경우에 , Laing 은 그녀의 요청으로 법정에도 같이 가주고 , 그녀의 가족들과 명절도 같이 보냈다. 랭에게 있어서 , rules and guidelines genuine human encounter spontaneity and unpredictability 보다 far less therapeutic significance 를 지녔다. 랭은 믿기를 치료에서 the decisive moments unpredictable 하고 unique 하고 unforgettable 하다나…..그리고 항상 unrepeatable 하고 종종 indescribable 하다네….부버가 말한 나와 너의 관계는 ordered 되거나 planned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랭은 한 7살 소녀 이야기를 들려줌. 그녀의 아빠가 데리고 왔는데 이야기를 안 하더라네….어떠한 계획도 없이 랭은 그녀 앞의 마루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손가락 끝을 touch 했다.

 

그렇게 40분 지나고 나서 , 눈을 뜨니 , 그녀의 눈도 동시에 뜨여짐. 말 없이 손가락을 철회함. 의자로 돌아와 앉음. 너가 괜찮으면 아버지를 데려오라…..라고 말하자 그녀는 끄덕였다.

랭에 따르면 , 아버지가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묻자, 그녀는 당신이 알바 아니예요. 라고 말했다네….이게 거의 2달 만에 그녀가 꺼낸 첫 문장이었다.

 

[post-Laing]

Any Laingian therapeutic system 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 랭의 idea practice 는 영어권 내에서 실존적 치료 발전에 주된 영향을 미침. 예를 들어서 Kirk 슈나이더의 실존 인본주의 접근에서….슈나이더는 쓰기를 Laing 은 뭔가 unique 한 것을 가지고 왔다나…healing practice 로서 high art of presence or attention 말이다전에는 이런 게 없었는데그의 원리를 develop 시킨 다른 치료사들은 이런 식으로 나뉘더라첫째는 Emmy van Deurzen 처럼 그의 접근법에서 더욱 실존적인 측면으로 발전을 시킨 경우….두 번째는 랭의 생각의 psychoanalytic aspects 를 더욱 develop 시킨 부류다. 여기는 M.Guy Thompson 이 들어갈 듯그리고 필라델피아 association member 들이 여기에 들어간다.

랭의 작업을 develop 할 때 , 레비나스 , 비트겐슈타인 , 데리다 , 라깡 등도 많이 의지하더라. Pure presence 에 대한 Relationship establish 하려는 랭의 시도로부터 상당히 move away 했다는 말이겠지…..이 상태는 all masks , defenses and pretences 를 다 벗겨 낸 상태다..그리고 대신에 모든 관계는 궁극적으로 language , discourse(담론) , narrative 를 통해 중재 된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관점에서 이러한 수행자들은 mask 아래의 real person 에 대해 랭 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a close , therapeutically-healing relationship develop 할 때 , inevitable limitation and unknown accepting 하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가진다. ..

 

[비판적 접근]

의심할 여지 없이 , 그가 남긴 가장 큰 업적(정신과 영역은 아니고 , 심리치료나 심리학 영역에서) , ontological insecurity 라는 개념일 것이다. 그러나 밴 덜전 스미스는 논증하기를 이와 같은 실존적 불안(정신분열증의 핵심에 있는)이 우리 모두에게 본질적으로 있다라는 것을 명쾌하게 설명해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ontological 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은 이러한 insecurity universal given of human existence 라는 걸 의미하리라..). 밴 덜전 스미스에게 있어서 , 랭이 ontological insecurity 라고 서술한 것은 pure existential anxiety 였다. , the heart of the human condition 에서 dread of nothingness and sense of not-at-home-ness……….그리고 이것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논증하듯이 , 모든 인간이 직면하는 경험이다. 게다가 , 그가 말하는 존재론적 insecurity(engulfment , implosion , petrification) 와 관련된 fears , 이러한 불안에 대항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이 사용하는 strategies (splitting withdrawal ) severely distressed 한 개인에게만 한정되어져야 하는지 그럴 만한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서 Collier 가 지적하듯이 , many people 은 자신들을 real and false selves 를 지닌다고 본다. 이와 유사하게 Eleftheriadous experiences of ethnic minority members depersonalization and engulfment 와 같은 fears 사이의 평행관계가 있음을 본다. 다른 사람에 의해 petrified 되는 것에 대한 fear 에 대하여 , Sartre 의 말을 주목하는 것도 좋다. 그는 고려하기를 이것은 정신분열적으로 predisposed 된 개인에게만 국한 된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나타 난다고 봄. 이와 유사하게 , 랭이 dysfunctional families 와 연관시킨 다양한 역동들(deception and double-bind) 도 많은 가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랭의 존재론적 불안에 대한 밴 덜전의 비판은 이것보다 더 깊다. 그녀의 비난은 존재론적 불안을 단지 specific way of being 에게 한정 시킨 것 뿐만 아니라 , 그것을 pathological condition 과 결부시켜서 , medicalizing 시킨 것에 분노한다….

그래서 더욱 taboo 로 만들고 , 그것을 더욱 isolate 시키고 , psychotic ghetto 현상을 초래 했다나….벤 덜전에게 있어서 , 실존적 불안은 실존적 불안과 동등하다. 이것은 overcome 해야 할 문제라기 보다는 , 직면해야 할 문제다. 이 관점에서 랭이 이러한 존재론적 불안이 있는 내담자를 치료하려고 한 것은 fundamentally misguided 였다는 것이다.

벤 덜전은 결론 짓기를 , 랭의 작업은 illness and cure 에 대한 medical model 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봄. 그리고 랭의 기여는 실존주의 이론 보다는 Winnicottian analysis 에 더 잘 들어 맞는 다고 봄. (Winnicottian 은 대상관계 측면 , 가족 구조 등을 중요시 여김).

이와 같은 비판은 랭 작품의 세 번째 문제를 태동시킨다. , 그는 self 라는 개념을 구체화 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 인간 실존을 verb-like flux of experiencing 으로 보려 하지 않고 , 그는 true and false selves 에 대해 이야기 한다. 마치 이것들이 object-like entities 인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랭이 제안했던 것처럼 ‘schizoid individual 은 그가 a central citadel(요새) withdraw 할 때까지 his lines of defense 를 철회한다는 제안??.....this real self 가 개인의 내부(within) located 되어진다나……개인과 their world 사이(between)에 있는 게 아니고 말이다……그는 inter-relational understanding of human beings 에 헌신하려 했지만 , 그는 궁극적으로 relatively individualistic 하고 solipsistic(자기 중심적) perspective 를 채택한 것으로 기소를 당함.

 

[결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르침은 실존 치료 영역 , 더 나아간 영역에도 중요하다. Normality and abnormality 에 대한 치료사들의 가정에 의문을 제기함. 그리고 , the most bizarre behavior 에도 뭔가를 찾고자 함. 게다가 , 그의 작업들을 기반으로 훨씬 다양한 model , concepts 을 치료 중에 사용 가능케 만들어 줌. 랭의 작품 내에서 , meta-perception 개념이 대박을 침….그의 실제 practice 는 다소 inscrutable 하지만 , 많은 도전을 주고 있다. 특히 , 치료 관계에서 real 이 되고자 하는 그의 헌신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우리가 내담자에게 genuine 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고민케 해 준다. 우리가 때대로 regulations codes 에 집착할 때 , 이와 같은 도전은 특별한 중요성을 지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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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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