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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무오설을 신봉하는 근본주의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적은 다른 종교가 아닌, 기독교 내부에서 성서비평학을 수용하는 자유주의자들이다.


성경에 대한 탄력적 사고를 토대로 종교 간의 대화 및 교회 연합운동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자들은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암적인 존재요,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기독교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들은 단정한다.


그 결과, 성서 무오설은 한국교회가 연합을 위해 극복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09년 11월 3일에 WCC 총회에 대한 담화문을 발표한 예장(합동)은 "우리는 WCC와 함께할 수 없고, 일치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들이 WCC를 반대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WCC 내 많은 자유주의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의 영감, 무오 등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죽음, 부활, 승천, 재림 등을 믿지 않는다." 는 것이다.

 

(이대웅, "합동, WCC 총회 관련 강경 입장 담은 담화문 발표,"[크리스천투데이] (2009년11월4일))

이런 생각은 다른 이들을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2010년 5월에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선출된 최갑종 박사도, 진보적 성향의 기독교학회와 보수적 성향의 복음주의신학회의 통합 가능성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기구의 통합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불필요할 뿐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측면도 있다.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보고 무오류를 주장하는가 하면, 성경 역시 인간의 저작물이기에 오류가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렇게 성경관에서 차이가 난다면 통일은 어렵다"고 자신의 확고한 견해를 밝혔다.

 


이처럼, 근본주의 진영에서 성경무오설은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척도로 작용하고 있으며, 진보진영과의 연합/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심각한 장벽으로 기능을 하고 있다.


한편, 이런 근본주의적 성경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복음주의 신학계 내에도 성서무오설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영감설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성경무오설을 신앙적 정체성의 요체로 수호하고,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강력히 추구하는 근본주의적 성경관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대체로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성경무오설은 이론적/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하는 성경 원본이 현재 존재하지 않고, 우리 대부분은 성경을 원어로 읽을수 없어 번역본에 의존하고 있다.

 

동시에 어떤 번역본도 완전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는 우리는 다양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서, 우리의 해석은 매우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성경 무오설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둘째, 성경무오설에 근거한 근본주의적 성경해석은 사회적 갈등과 분열의 원인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에서, 정병진은 근본주의적 성경관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근본주의자들의 성경에 대한 사랑과 열정적인 전도활동은 기특하지만, 그들의 반지성주의적 단순한 신앙심 때문에 종교사회적 충돌과 물의를 빚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그 부작용이 매우 심각합니다. 더욱이 그들의 무리하기 그지없는 문자주의적 성서 이해는 합리적 대화를 가로막고 갈등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더욱 이 세계에 평화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텐데, 그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전쟁과 갈등을 부추기게 된다면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성경을 읽을지라도 신앙관이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독과 같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병진, "전쟁신 야웨를 넘어서", [뉴스앤조이](2003년 3월 17일))


이처럼 성경무오설은 한국교회의 근본주의를 규정하는 신학적 잣대로 기능을 해왔다. 지금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최근에는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조차 이런 근본주의 성경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증가하면서, 이것은 더욱 심각한 갈등의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성경에 대한 다른 입장이 한국교회를 더욱 성숙시키는 '거름'이 될지, 아니면 분열과 갈등의 '불씨'가 될지 조심스럽게 두고 볼 일이다.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에서 발췌함-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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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을 통해 본 이단의 모습

 

저자: 최병규

 

질문: KJV 성경만이 절대적인 번역인가요?

 

19~20Page

 

: 지방에 있는 HD교단의 모 성도가 상담을 요청해 왔는데 그것은 성경 중에 특정한 하나의 성경 번역본만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해 온 단체에 대한 것이었다.

영어 성경 중에서도 오직 킹제임스역(King James Version) KJV만이 올바른 성경 역본이라고 주장하는 단체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단체는 기존의 한글 개역 성경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고, 오직 KJV 성경만이 변개되지 않은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상당히 신학적인 주장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특별한 섭리로 그 분 자신의 말씀을 변개되지 않게 하셨는데, 그렇게 보존된 헬라어 성경 사본은 보편적으로 수용된 본문인 T.R (Textus Receptus, Received Text)이며, T.R.에서 번역된 KJV와 같은 성경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기를, “<개혁한글판 성경>으로는 진리의 조명을 받을 수가 없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에는 예장합동 총회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독단성과 아집과 공격성이 들어 있다 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주장하는 T.R.은 어떤 사본인가? T.R은 여러 사본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훌륭한 많은 사본들 가운데 유독 TR 헬라어 사본만이 진정한 성경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KJV 1611년 영국 왕 James 1세 때 영어로 번역된 것으로 James 왕이 그 권위를 인정했다고 해서 King James Version이라고 일컬어진다.

KJV는 당시로도 전혀 새로운 성경이 아니라 그 이전의 번역판들에 대한 개정판이었고 에라스무스의 TR을 사용하였는데, T.R은 소수의 헬라어 사본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는 KJV가 번역될 당시보다도 훨씬 더 많은 고고학적 발굴들과 더 깊은 연구들로 인하여 성경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직 KJV만을 절대시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KJV가 좋은 번역이고 훌륭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번역본들 중의 하나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다른 번역본들의 훌륭한 점들도 동시에 인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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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을 통해 본 이단의 모습

 

저자: 최병규

 

66~67page

 

 

 

질문: 짐승의 표 666에 대하여 알고 싶어요.

 

: 언젠가 몇 차례 계속 들어온 상담 가운데는 어느 교회에서 666과 바코드 관계에 대하여 강조하는 목사가 있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필자가 속한 교단에 속한 분이 아니냐고 문의가 들어온 저거이 있었다.

물론 필자가 확인해 본 결과 우리 교단에는 그런 이름의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그는 고신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어떤 교단에 속했나 보다.

종말론자들이 한동한 주장했던 것인데 최근에까지 그러한 식의 주장을 계속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 분으로부터 온 상담전화였다.

 

 

 

그러면 666 그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

 그것은 [13:18]에 언급되어 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변종길 교수에 의하면, 16~18절의 말씀은 모든 자에게 표를 받게 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다.

666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것을 Nero와 연관시켜 설명하려고 한 이로부터, 비밀문자(cryptogram)보다는 하나의 상징(symbol)으로 보려고 한 이들을 포함하여 다양한다.(각주).

변종길 교수는 그것을 짐승에 속했다고 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한 것에 대해서는 황제 숭배에 참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업이나 경제활동에 막대한 지장 혹은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변교수는 일부 학자들이 666 Nero 황제와 연관지으려 하지만, [13]을 요한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인 도미티안’(Domitianus)’가 타당하다고 결론짓고 있다.(각주).

Stauffer 역시 Coniectanea Neotestamentica에서 도미티안의 라틴식 이름(full Latin title of Domitian, Imperator Caesar Domitianus Augustus Germanicus)의 헬라어 생략형으로 설명한 것이라고 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당시 요한은 그와 친숙했던 이들이 그 숫자를 해독할 수 있도록 의도했다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로부터 불과 100여 년 뒤의 인물인 이레니우스(Irenaeus)조차도 의도된 사람을 파악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고 Mounce는 밝힌 바 있다.

그러므로 이 666을 컴퓨터, 바코드, 신용카드, 세계통일화폐, 적그리스도적인 모형 인물 등과 연관시켜 다가올 미래의 종말론적 관점을 증대시키는 데 적용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박윤선 박사도 [계시록주석](고려신학교,1949), p 228에서 우리는 성경의 본문에 의종하야, 이것이 세상의 종말기에 근접하야 이러날 어떤 개인인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한 바 있다. 박박사에 의하면, 바빙크(Bavinck)는 이것을 악의 세력으로 보았다고 하며, Theodore Zahn Abrahahm Kuyper도 역시 그렇게 보았음을 지적했다.

 

 

보수 정통신학에서 근본주의,세대주의적 계시록 해석 overlap 되는 부분이 많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다. 666이라는 걸 실존하는 사물, 인물 등에 1:1로 대응해서 넣으려는 시도는 세대주의적

해석의 특징이다. 그런 식으로 성경에 접근할 이유는 없다.

 

이미 다른 글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666 (짐승의 표)가 서로 상충된다는 점을 분명히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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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따로 발췌해 둔 글이다. 요즘 들어 생각하는 건 '구원의 확신'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우리가 그러한 삶을 성령의 은혜로 살아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율배반적이면서도 역설적인 기독교의 신앙을 단순화하여 자신들의 위선적인 삶을 정당화 하는 데 사용하는 건 위험하다.

 

: 상담을 통해 본 이단의 모습

 

저자: 최병규

 

23~25Page

 

 

 

질문: 목사님, 제가 거듭난 날짜를 모르면 구원받지 못한 건가요?

 

: “목사님, 제가 거듭난 날짜를 모르면 구원받지 못한 것일까요?

제가 친구를 따라서 어떤 집회에 가 보았는데 그 때 어떤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이 질문을 해 오는 분들은 종종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한 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성도가 자기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 생활 속에서 영적 활기를 띠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짐이 되는 수가 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 문제는 다수의 성도들이 한두 번 혼란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자신의 신앙생활에 이상이 왔을 경우에 특히 자신이 죄를 범하는 생활 속에서 헤어나고 있지 못할 때에 그럴 수 있다. 그럴 때 신자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존재의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언젠가 이와 유사한 경우를 상담한 적이 있다. 어느 이단 관련 여신도가 서울의 어느 교회에 다니는 어느 집사님에게 접근해와서 질문하기를, “집사님은 구원받으셨어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래요, 저는 구원받았어요.”라고 대답하던 그 집사님에게 연거푸 그 동일한 질문을 해 왔을 때, 집사님은 순간 자신이 없어지더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에는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하는 확신이 들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최근 생활 모습을 생각해 볼 때에는 그 자신감이 흔들리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이단 추종자들은 성도의 구원의 확신문제에 대한 의아심을 부추킴으로써 그의 신앙의 전 시스템을 흔들어 놓고 그들의 교리를 제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때 필자는 그 내담자에게 다음과 같이 확인 질문을 했다. “집사님은 구원받으셨습니까?” 그러자 집사님은 , 그렇습니다.” 라고 명백하게 말했다.

그 때 필자는 다시 그 분께 말했다. : “그러면 집사님이 구원받으셨다는 것을 자신의 감정의 기복이나 신앙생활 모습들에 따라 말씀하지 마십시오.

한 번 구원받은 성도라면 그 구원을 잃어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성도는 자신이 현재 주님을 믿고 있다면 구원 얻은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에 의해 주어진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다고 하는 지식의 기초는 우리의 느낌들( feelings)이 아니라 우리가 그 관계 속에 있다고 그 분이 말씀하시는 그 사실에 있다.”고 언급한 존 스토트(John Stott)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치러 봐야 할 시험은 주관식이 아니라 객관식이라고 했다.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은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쳐다봐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사도행전 16 31절에서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 12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으며, 요한일서 4 15절 말씀에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성도는 비록 자신이 구원받은 일시를 기억하지 못하고 현재의 삶이 나태해져 있고 불순종하는 면들이 다소 있어도(이 부분들은 회개를 통하여 고쳐나가야 함).

구원에 대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사실들에 근거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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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에 만연해 있는 수 많은 이단들과 한국 교회의 위기설 등 여러가지를 고민해 볼 때 한국의 근본주의를 점검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설 중에선 도덕성의 부재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원인들이 고찰되고 있으며 비교적 최근에 신광은 목사님의 "아르뱅주의" 라든지, 권영경 교수님의 "위선" 이라는 개념도 매우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 중요한 한가지 요인이 바로 '신학의 부재'와 '잘못된 개념의 유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중 '근본주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의견들은 분분하겠지만 동의를 하든, 그렇지 않든 한번 쯤은 고민해 볼 만한 문제일 것 같아서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근본주의의 만연으로 인해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이 득세를 할 수 있었고, 창조과학부터 시작해서 말세를 특정하게 예견하는 세대주의적인 열풍에도 일조를 했다고 '일단은'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입장은 이후에 수정될 여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국에 뿌리 내린 개신교의 흐름을 추적해 보고, 분석해 보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리라 믿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성경과 근본주의


신학적 측면에서 한국 개신교 안에는 근본주의적 목소리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회가 성서영감론 및 성서무오설을 근거로 성서비평학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고,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기초한 묵시적 종말론을 여전히 신봉하는 현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뿐만 아니라, 종교 간의 대화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고히 유지하면서 타 종교들과 갈등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창조과학을 중심으로 진화론에 대해 거의 맹목적으로 반대의 관점을 고수하는 점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먼저, 성서무오설과 묵시적 종말론을 축으로 전개되는 성경과 근본주의 관계를 살펴보자.


[요약: 한국 개신교의 신학적 근본주의는 성서 영감설과 묵시적 종말론,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창조론에 근거한 진화론 반대 등으로 요약 가능]


현재에도 대다수의 한국 교회들은 성서무오설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성서 비평학에 대해 비판적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교단 중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는 교단총회 홈페이지의 "신앙의 뿌리" 코너에서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우리의 신학적 입장은 "수정되지 않은 칼빈주의" 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구 프린스턴 신학자들이 자신들의 신학적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마다 자신들은 구 칼빈주의를 계승한다고 고백하였던 것처럼, 본 교단은 수정되지 않은 정통 칼빈주의를 교단의 신학적 입장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존중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포함된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고백을 계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구칼빈주의'와 '구프린스턴신학'은 성서무오설을 교리상으로 완성하여 미국근본주의의 신학적 토대를 제공한 19세기 중반의 프린스턴 신학을 말한다.

 

다시 말해, 예장(합동)은 적어도 성서의 영감과 권위 면에서 근본주의 전통에 서 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대부분의 장로교회와 성결교회, 그리고 오순절 교단들이 이런 입장을공유함으로써, 소수의 진보적 교단들을 제외한 한국교회 절대다수가 근본주의적 성서관을 고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 장로교 통합 측은 헌법 '제 2부 신조'에서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라고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기독교 대한성결교회의 헌법에는 성경에 대해 "우리 교회의 경전은 성경전서, 곧 구약과 신약이니 이 경전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들이 영감에 의하여 기록한 것인즉 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나니 성경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에 넉넉하므로 무릇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신학설이나 여하한 신비설이나 체험담은 신빙할 수 없으며 이런 것을 신앙의 조건으로 하거나 구원의 필요로 함을 배격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헌법]]

 

 


 

둘째, 근본주의 신학을 구성하는 중심축의 하나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라는 묵시적 종말론이다.


전통적으로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종말사상에 근거해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 극단적으로 비관적인 견해를 고수했고, 그 연장 선상에서 일체의 사회개혁이나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이 점에서 한국 개신교회도 유사한 전통을 보존해 왔다.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회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자신들의 종말론으로 신앙하고 있다.

 

특히, 성결교회와 오순절 교회처럼 성령 운동을 주도하는 그룹들은 묵시적 종말론을 강조한다.


한국 개신교회가 묵시적 종말론의 영향하에 있다는 구ㅜ체적 증거로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의 재림을 예언했던 "다미선교회 사건"을 지적할 수 있다.


비록 그 단체가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고, 또 그 에언이 시대적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런 사이비적 종말운동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정도로 세력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유형의 종말론에 대한 암묵적 승인 혹은 동조가 한국 개신교인들 내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점은 한국전쟁 이후 수많은 천년왕국 운동이 발생했고, 그 대부분이 개신교 계열에서 기원한 사실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한국교회 초기부터 선교사들을 통해 전수된 근본주의적 종말사상은 근현대사의 질곡을 통과하며 한국의 특수한 민족주의와 만나 다양한 형태로 분출되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 자체가 한국 개신교 내에서 근본주의적 종말론이 얼마나 강력하게 뿌리내려 왔는가를 반증해 준다. 이 사실을 노길명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사회에서 천년왕국운동은 그리스도계 신종교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기본적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체험과 미국 개신교의 신앙유형, 그리고 선교사들의 선교정책이 결합하여 나타난 현상이었다.

 

즉, 민족의 수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근현대사 속에서 민중은 낡은 질서의 종말과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강조하는 미국의 개신교 신앙 흐름에 친화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여기에 덧붙여 교회사를 민족사와 분리시키는 서구 선교사들의 선교 정책에 대한 반발이 기성 교회와는 다른 새로운 종파 운동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노길명 [한국의 종교 운동]-

 

to be continue~

-배덕만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를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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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지엽적으로 읽어 내면 이런 오류를 잘 범하게 된다. 성경 속에서 '병'의 발생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요인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만 봐도 '모든 병'이 마귀로부터 왔다는 주장은 할 수 없다고 본다. 좀 더 깊고,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야가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하다.

 

 

: 상담을 통해 본 이단의 모습

 

저자: 최병규

 

45~46page

 

 

질문: 모든 병은 죄로부터 왔고 마귀가 주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맞나요?

 

 

 

: “어느 분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질병은 마귀가 주는 것이니까 마귀를 쫓아내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과연 그런가요? 과연 모든 질병은 마귀가 주는 것인가요?”

아마도 기독교인들 중에 상당수는 질병이란 죄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물론 성경에는 질병이 인간의 본성에 물들어 있는 죄 때문임을 밝히고 있으며 범죄에 대한 보응으로 질병을 내리시는 경우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불순종하면 애굽사람들에게서 병을 옮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 적이 있다.( 15:26),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지 않는 죄는 재앙이나 죽음이 따른다.( 7:4; 16). 거짓 마음을 품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목숨을 잃었다.(5:1)

 

그러나 하나님은 질병을 반드시 죄에 대한 결과로만 주시지는 않는다.

가령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를 가리키면서 그 어떤 사람의 범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기 때문이다.(9:3).

이러한 사실은 가족치료를 전문으로 한 외과의 알버스(Gregg R. Albers)에 의하여 잘 소개된 바 있다.

 

다시 상담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과연 질병은 마귀가 주는 것인가? 거기에 대하여 우리는 오히려 질병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병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하나님은 언제나 질병을 통해서 사람들과 더 밀접한 교통을 나누신다는 사실이다.

 Gregg Albers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질병에 걸릴 때보다 사람이 더 겸손해지는 시간은 없다. 신체적 정신적인 질환으로 시달릴 때보다 자신의 유한성과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더 실감하는 순간은 없다. 하나님이 질병을 허락하심으로서 기대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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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1907 운동이 한 때 붐을 이뤘던 적이 있다.  우리 나라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기도하고, 찬양하며 평양 대부흥의 기적을 다시 남한에 불러 일으키려는 야심찬 부흥집회였었다. 특히 평양 대부흥 당시 길선주 성도의 고백은 상당히 잘 알려져 있다.

 

Again 1907 집회 당시 Chioir로 일부 행사에 참여도 했었던 필자로서는 1907년도 평양 대부흥에 대한 막연한 뜨거움을 가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함께 그 날을 소망하며 새벽 4시까지 기도하고 부르짖었던 추억들이 있다. 지금 들어도 은혜로운 이야기들이 그 속에 많이 담겨 있지만, 신학적으로 볼 때 어떤 문제점이 섞여 있었는지를 짧게 알아보자. 사실 신앙의 길이라는 것도 바르게 알고 전심으로 믿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들을 요즘 들어 더욱 많이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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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의 신앙적 정체성의 한 흐름을 결정지은 부흥운동을 통해 근본주의적 성향이 대중화 되었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대표적 예가 평양 대부흥 운동을 주도하며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지도자로 부상한 길선주 목사의 경우다.


그는 장로교 최초의 안수 받은 목사 중 하나요, 장로교의 대표적 교회 중 하나인 평향 장대현 교회이 담임 목사요, 세상을 떠난 1935년까지 일생을 부흥사로 전국을 누빈 사람이다.


그는 성경연구에 몰두하여, 요한계시록을 일만 번, 요한일서를 500번씩 읽었다고 한다.


그는 성경을 통해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사용했으며, 믿음을 지키려면 말세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종말론 연구와 설교에 집중했다.


그 결과, 그의 부흥회는 계시록 강의로 유명했고, [말세학]이란 종말론 연구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말세의 징조들을 열거하면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끝나는 때가 1974년이고 2002년에 천년왕국이 지상에 시작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묵시적 종말론에 대한 절대적 신앙은 길선주 목사의 신학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그의 전국적 부흥회와 교단적 영향력을 통해 한국의 대중들에게 널리 유포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 주목한 유동식은 그의 저서 [한국신학의 광맥]에서 길선주의 사상적 유형을 "보수적 근본주의 사상"으로 규정하고, "그의 보수주의적 성서무오설과 말세론은 한국 근본주의 신학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배덕만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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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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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빈치 코드에 숨은 거짓과 진실

 

저자: 리처드 어베니스(Richard Abanes)

 

 

 

주제: 예수의 신성에 대한 이슈

 

59~60 page

 

 

 

예수의 신성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그 때까지 예수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저 한 사람의 예언자일 뿐이었다.” (다빈치 코드 1 357~358page)

 

진실: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의 신성을 결정하는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것 이전에 가장 긴급한 문제는 아리우스라 불리는 한 남자와 연루되었다.

 

 

도마가 예수께 했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요한복음 20 28)이라는 말에서 입증되듯,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감하시던 때 이미 그리스도의 신성은 동의 되었다. 요한복음 1 1, 디도서 2 13, 히브리서 1 8~10절 그리고 베드로후서 1 1절과 같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도 예수의 신성은 잘 나타난다.

 

 

 

2세기가 끝날 때까지 이러한 믿음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견고하게 믿어졌다. 예수를 묘사한 다음의 표현들을 생각해 보라: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 150년경) : “하나님의 말씀으로 잉태한 독생자, 하나님” ; “하나님이시며 만군의 주

 

이레니우스( 185년 경) :우리의 주, 하나님, 구세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200년 경) : “참으로 가장 분명한 하나님,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온 우주의 주와 동등하시다.”

 

 

 

 

 

예수는 결혼했는가?

 

62page

 

이는 영지주의 복음서에서 현저하게 되풀이 되어 나오는 당혹스러운 주제이다. 막달라 마리아.. 구체적으로 말해, 그녀가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했다는 사실이다.” (다빈치 코드 2 13페이지)

 

진실: 나그 함마디 문서들 중에 있는 영지주의 복음서-진실의 복음서, 도마 복음서, 빌립 복음서- 중에 그 어떤 것도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가 결혼했다라는 언급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마리아 복음서(Gospel of Mary)도 이 문제에 대해 마찬가지로 침묵하고 있다.

 

 

 

62~63page

 

빌립 복음서는 구세주의 반려자는 막달라 마리아라고 밝히고 있다. 모든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한 그리스도는 그녀의 입에 종종 키스하곤 했다. 나머지 제자들은 이를 불쾌하게 생각하고 그에게 불평을 털어 놓았다. 그들은 예수께 당신은 왜 우리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합니까?”라고 말했다.. 모든 아람 학자들은 당신에게 동료라는 단어가 그 당시에는 정확히 배우자라는 뜻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줄 것이다.” (다빈치 코드 2 15~16페이지)

 

 

 

진실: 빌립 복음서는 결코 아람어로 쓰여지지 않았다. 이 복음서는 이집트어의 후대 형태인 콥트어로 쓰여 졌다. 그리고 이것조차도 아람어가 아니라 그리싀어로 쓰여진 초기 문서의 번역이다.

또한, 덴버 신학교의 그레그 블롬버그 교수에 따르면, “표준적으로 동료가 배우자를 의미하는 아람어나 히브리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카고 신학교에서 초기 교회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교수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첼에 따르면, 다빈치 코드가 일반적으로 친구 또는 동료로 번역되는그 단어를 잘못 번역하고 있다고 한다.

 

 

 

 

 

예수의 혈통에 대한 검증

 

66~67page

 

수 많은 역사가들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왕실 연대기는 상세하게 기술되고 있다.” (다빈치 코드 2 26page)

 

진실: 댄 브라운은 학구적인 무게를 추가하고 역사학자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예수 혈통에 대한 자신의 주장의 진실성이 독자들에게 유포되기를 바라고 있다. 뒤이어서 [성혈과 성배] (마이클 베이젠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 [앨라배스터석으로 만든 항아리를 이고 있는 여성] (마가렛 스타버드) , [복음서 안의 여신] (마가렛 스타버드) 그리고 [성당수도 기사단과 비밀결사] (리닌 피크넷과 클리브 프린스)과 같은 4개의 책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의 저자는 모두 역사학자가 아니었다. 스타버드는 비교 문학과 독일어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젠트는 심리학 전공의 대학생 이었으며 최근까지 신부주의와 종교 체험을 전공으로 석사공부를 했다. 그리고 레이는 원래 단편 소설가이자 저술가였다.” 링컨은 BBC 텔레비전 명사이자 대본작가이다. 그리고 피크넷과 프린스는 비학, 초자연주의, UFO에 심취해 있는 실제 음모 이론가들이다.

 

 

 

메로빙거 왕조에 대하여

 

67~68page

 

그리스도의 후손들은 5세기에, 메로빙거 왕조라고 알려진 혈통을 만든 프랑스 왕가와 결혼해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기 전까지 프랑스에 숨어 살면서 차츰 성장했다 .메로빙거 왕조는 파리를 세웠다.” (다빈치 코드 2 33페이지)

 

진실: 파리는 B.C. 250년부터 B.C.200년까지 그 곳에 정착한 켈트 사람, 골 사람(Gauls, 현재의 북부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를 포함하는 유럽 서부의 고대명), 특히 파리시족(Parisii)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도시는 B.C. 52년 줄리어스 시저가 정복한 이후, 로마 제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메로빙거 왕조는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수백년 후, 서부 게르만족과 연합해 그 지역을 탈취한 프랑크족 시대에 이르러 그 모습을 처음 드러낸다. 이 종족은 A.D. 200년부터 250년 사이에 벨기에족(Belgic, Gaul 북부에 살았던 고대 벨기에족)의 갈리아 지역으로 이주해 클로비스 1(481~511)의 통치를 받다가 약 486년에 이르러 현재 프랑스라고 불리는 지역의 통치권을 갖게 되었다.

 

메로빙거 왕조의 혈통이 시작된 시기는 프랑크족이 파리 지역에 들어오기 전인, 447년에서 457까지 통치했던 메로비치 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손자, 클로비스 1세 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파리가 수도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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