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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다카시 책은 정말 중요하다. 히키 코모리, 회피성 인격장애, 인간 알레르기 분야라든지, 경계성 인격장애 분야에서는 이 만한 저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현대 사회에서 더욱 이 저자의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리라 예상해 본다.

 

한 분야에서 깊은 깨달음과 지식을 연마한 자들은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이론을 만들고 싶어지는데 가령 우주론에서도 '모든 것에 대한 이론' 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과 유사하다.

 

다카시도 언컨텍트 시대에 인간 진화심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인간 종인 '디스커넥트 인간형'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대담한 미래를 그려 나간다. 다카시 책을 보고 비판적인 느낌이 든 경우는 별로 없었다. 워낙 탁월하고, 지식의 깊이, 경험의 폭이 넓은 정신과 의사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배우고, 수용해야 할 내용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책은 도발적인 시도, 참신한 시도였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우며 일부 소름 돋을 정도로 생각해 볼 만한 시사점을 주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봐야 할 책이었다.

 

일단, '디스커넥트 인간형'이라는 분류가 꼭 필요한가가 의문이다.

 

정의 자체가 모호하다. 약간은 자폐증과 같기도 하고, 아스퍼거 증후군과 유사하기도 하며, 회피성 애착을 지닌 사람, 히키 코모리, 비범한 천재, 조현성 인격장애 등 다양한 정신병리나 인격 구조가 뒤섞인 느낌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니체라든지, 유발 하라리 등도 디스커넥트 인간 유형이라고 하는데 글쎄..... 본인이 뭔가 가설을 세워 놓고 거기에 진실을 끼워 맞추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애착'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하고, '애착'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핵심 원동력임을 전제로 하는 그가 미래 시대에는 애착/관계 중심적 인간은 도태되고, 애착이 크게 필요 없는 '디스커넥트 인간 유형'이 살아남기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 근거로 진화론적 접근 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새로운 종의 출현, 대진화/소진화 까지 언급하면서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이야기하는데 "좀 많이 나가버린" 이론이 아닌가 싶다.

 

굳이 정확한 정의 자체가 어려운 신종 용어를 활용해서 세상을 설명하려 하기 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병리 개념, 성격 구조 개념을 가지고도 어느 정도 세상은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오캄의 면도날 법칙에 기반한다면 '단순할수록 진리에 가까울 확률이 높다' 고 본다면, 이런 개념은 다소 불필요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큰 틀 속에 여러 개념들을 혼합 시켜 두면, 세상을 큰 틀에서 조망하고, 설명하기 편해진다는 장점은 있다. 갈수록 타인에겐 관심이 없고, 혼자가 편하고, 성/결혼/아이에 연연하지 않고, 인간보다는 사물이나 기술에 더 친화적인 사람이 많아지는 시대.

 

이런 유전자가 더욱 자연 선택을 받게 되어 후대에 대물림 된다는 흥미로운 발상.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를 몰아낸 네오 사피엔스가 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한다.

 

코로나 이후 언컨텍트 시대가 대두되고, 사람들이 IT 매체 속에서 사람들과의 교류를 더 즐기게 되고, 일본 포함 우리나라 및 다양한 나라에서 히키 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많아지는 것고 사실이다.

 

기존에 이런 해석만으로도 제법 충분하다 생각하는데 '디스커넥트 인류' 라....... 진화심리학, 진화론이라는 전제를 달고 개념을 만들면 이와 같은 결론이 도출되는 것 같다. 아마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유신론적 접근을 기저에 활용했다면 이와 같은 도출과는 제법 다른 모습으로 미래를 예견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이 지닌 세계관이나, 경험지식 등을 많이 의존하는 것 같다.

 

'애착'을 평생 연구해 온 학자가 이젠 '애착 없는 인류'를 예견하고 있다.

 

워낙 내용이 도발적이라 비판할 여지가 많긴 하지만, 미래 시대에 정말 이런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는 실제 존재하는 인물, 과거의 인물, 다양한 사례들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논의를 전개하기 때문에 읽다 보면 설득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크게 설득되지 않은 책이다.

 

-[디스커넥트 인간형이 온다], 오카다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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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출판  이레

발매  2007.04.04

 

 

 

 

<인생 수업> 의 성공에 이어 , 나온 <상실 수업> 

 

워낙 대중적인 서적이라 많이들 읽어 봤을 것이다.

 

'상실'이나 '죽음'을 받아 들이는 5가지 단계는 여기 저기에서 응용되어 쓰이고 있다.

 

일단 '죽음'이 닥쳐 오면 1. 부정(Denial) 하고 싶어 진다.

 

그러다가 2. 분노(Anger) 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이 모든 상황들을 회의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분노의 단계를 지나고 나면, 신과 3.협상(Bargaining)을 하고 싶어한다.

 

앞으로 더욱 착하게 살테니, 제발 내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꼭 그와 같이 편리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구 현실에 직면해야 함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은 4. 우울(Depression)에 시달리게 된다.

 

그 깊은 침잠의 시간 동안,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바로 보는 계기를 얻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은

 

5. 수용(Acceptance)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은 큰 틀을 기억해 두는 것만으로도 '상실 수업'은 큰 성과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계는 꼭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복수의 요소들이 함께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존 맥아더 목사님은 자신의 저서에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종교를 거론하며, 영지주의적인 그녀의 활동에 경계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이 책만 놓고 봤을 때 그런 위험 요소를 찾기는 매우 어려웠다.

 

존 맥아더 목사님도 한쪽 극단에 서 계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보니, 곧이 곧대로 듣다가는 남아나는 사람이 없어질 것 같아서 좀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당신은 '상실'이 닥쳐올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런 마음의 훈련을 미리 해 둔다면, 그리고 생과 사가 사실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는 여정이라는 자기 인식만 있어도 우리는 '죽음'을 좀 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실제로 나의 '문제'로 다가오면, 모든 수업했던 내용들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알아둘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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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폴 투르니에

출판  IVP

발매  2010.04.20

 

 

 

 

결혼은 위대한 모험이다. 결혼은 자기 자신과 배우자를 끊임없이 발견해 가는 모험이다. 결혼은 매일 새로운 지평을 넓혀 가는 과정이며, 인생에 대하여, 인간 실존에 대하여, 하나님에 디하여 새로운 것을 배워 가는 기회다.'

 

- 폴 투르니에-

 

이 저서는 '부부 관계 개선'을 위한 지침서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참고서라고 볼 수 있다.

 

목차만 일어봐도 중요한 핵심은 다 잡아낼 수 있는 책이지만, 각 챕터의 중요 포인트들을 한번 언급해 보도록 하자.

 

1)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 '성격 차이'가 있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상대방의 다른점을 폄하하기 보다는 의지를 가지고 서로를 이해해 가라고 종용하는 저자.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강조되는 챕터다. 

 

2)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 속마음을 잘 바깥으로 표현하는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속으로만 생각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추론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서로를 향한 '진정한 이해'는 요원해 질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마무리를 짓는다.

 

3) 이해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만, 완전하게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음을 잘 지적해 주는 챕터다. 그리고 아내가 남편을 두려워하는 만큼, 남편들도 아내를 두려워 한다는 것을 주지시켜 주면서 섬세한 접근법을 제시해 준다. 판단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충고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우리 인간 존재에게 '용기'를 낼 것을 촉구하고 있다.

 

4)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한다.

->사랑과 이해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잘 잡아주고 있는 챕터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해하며, 이해하는 사람은 사랑한다는 놀라운 공식이 제시되어 있다.

 

가령, 상처 투성이로 자란 배우자를 대할 때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를 제시해 주는데...

 

'배우자는 그저 그를 사랑함으로써, 장점보다는 그의 문제점을 수용하고 사랑함으로써 그를 도울 수 있다. 그저 그를 이해해 주고, 그가 어린 시절에 상실했고 지금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이해해 주며, 그 부족함을 채워 주려고 노력함으로써 말이다.'

 

 

5)이해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차이점을 인정해야 한다.

->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두 사람은 상대방의 필요를 무시하고, 특히 그것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잘 간파하고 있는 챕터다. 칼 융의 이론이 담긴 MBTI 도 짤막하게 언급이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다름'을 잘 인정해 두고 들어가면 실로 유용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6)이해하기 위해서는 남녀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 이 챕터에는 중요한 전제가 제시되어 있다. 즉 남자는 여자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여자도 남자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특징들을 잘 존중해 주고 잘 활용해 준다면 부부 관계는 극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이야기된 부분들을 잘 떠올려 보면 좋을 것이다.

 

7)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여자에게 사랑은 연극이 진행되는 시간이지만, 남자에게 사랑은 막간이다.' - 폴 투르니에-

 

 

8)서로를 돕기 위해서는 이해해야 한다.

-> 적어도 남자가 여자보다 일반적으로 자기의 죄를 더 의식하는 편이다!! 라는 그의 주장은 대담하다.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죄를 덜 의식한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질투'를 언급해 볼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기질적 차이에서 기인한 논리적인 부분도 존재한다.

하지만 남자든 여자든 모두 구원 받아야 할 약점들을 지니고 있으며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의 미덕과 선행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 때문임을 기억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9)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 현대 심리학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최초로 한 경험들, 초기 경험들이 우리 삶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그러한 경험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배우자와도 이런 과거의 이야기와 어린 시절 이야기를 충분히 공유하면서 서로를 이해해 나가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심리 치료사가 되어 줘야 한다.

 

10)온전한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 

-> 우리에게 도덕적 감화력을 제공해 주고, 깊은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 주시는 분은 하나님 뿐이시다.

두 사람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신비에 도달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라는 명제를 넘어서 어떤 인격의 사람이 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이는 방법의 문제가 아닌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

서로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놀라운 역사를 기대해 본다.

 

폴 투르니에의 강점은 이 모든 일련의 심리적, 영적 요소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잊지 않고 언급해 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책의 구성도 마음에 들고, 제시해 주는 메시지들도 얻을 점이 많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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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버지니아 M. 액슬린

출판  샘터사

발매  2002.09.14

 

 

'나는요, 모든 아이들이 자기만 오를 수 있는 동산을, 하늘 위에 별 하나를, 나무 하나를 자기 것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내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본문 중에서-

 

몇 년 전에 인지 장애와 조울증을 함께 얻게 된 초등학교 학생을 상담해 주면서 이 책을 추천 받았었다.

 

자폐아와 같이 보이기도 하고, 뭔가 정신에 이상이 있어 보이기도 하는 딥스라는 아이.

하지만, 사실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속도 깊고, 생각도 많으며 천재성까지 지니고 있는 듯한 신비로움이 담긴 아이.

 

그 아이를 <놀이 치료> 해 주는 형식으로 대화가 전개되는 책인데, 상담사가 지녀야 할 무한한 인내와 넓은 이해심, 깊은 통찰력이 잘 반영되어 있는 책이다.

 

딥스에게 삶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하나씩 조곤조곤 가르쳐 주는 상담사는 결코 권위적이거나, 위협적이지 않다.

 

아동의 눈높이에서 그 아동의 언어를 가지고 그 생각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1)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신뢰

2) 긍정적인 격려

3) 인내

 

이 3가지가 <딥스>를 요약해 준다고도 말하고 있다. 사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무궁무진함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칭찬과 격려, 지지는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떠올려 보더라도, 우리는 격려를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 이르는데는 상담사의 무한한 인내가 요구된다.

 

세상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고 세상과 담을 쌓아 버린 딥스에게 건강한 자아를 찾게 도와주는 상담사.

 

<놀이 치료> 계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의 내면을 다루는 작업이 얼마나 고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는 지를 경험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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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존 그레이

출판  동녘 라이프

발매  2010.04.15

 

 

 

 

227주 연속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책.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 굉장히 중요한 메세지를 전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의 본질적인 차이를 이와 같은 비유를 가지고 풀어쓴 책이다.

 

그 만큼 두 존재가 다른 점들을 지니고 있다는 걸 인정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책 제목 정도는 한번 쯤 들어 봤을 것이다.

 

다른 많은 개념들 중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고, 기억에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여자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나면 대화를 통해 그것들을 해소하려고 한다면 남자들은 동굴 속에 숨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100% 일반화 시키기는 어려워도, 여러분도 아시다 시피 이와 같은 지식은 실생활에서 매우 유용하다.)

 

두 존재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더 확장시켜서 각 사람마다 기질과 성격이 다를 수 있음을 알아가고 싶다면 MBTI 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런 맥락까지 심화, 발전 시켜 공부하다 보면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을 만나도 가슴은 그들을 품지 못할 지언정, 머리로라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사실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건, 성경 속의 내용들을 동의하며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실마리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틀 속에서 이와 같은 대중 서적을 잘 가미시켜 주면 좀 더 깊이 있게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서로 오해가 생기고 원망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기 마련.

 

특히 남녀가 서로 사랑하여 부부가 되고 나면 이 책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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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모건 스콧 펙

출판  열음사

발매  2007.03.20

 

 

스캇 펙 박사의 명저. 그리고 엄청나게 많이 팔린 저서.

 

 

우리의 인생은 '정신의 성숙' 을 이루기 위한 여정으로서 실패한 게 아니다. 이렇게 끝나 버린 게 아니다.

 

아직도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남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함축적인 메시지만 이해하고 있어도 이 책은 상당한 통찰력을 제공해 줬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전반적으로 훌륭한 책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로서 스캇 팩의 '인간의 내면 성찰' 능력 이라든지,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솜씨'는 역시 '스캇 팩' 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 준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며 그가 얻게 된 '소중한 지식' 들이..

 

내겐 참 많이 공감이 되고,새롭게 배우거나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많은 것 같다.(8년 전에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지닌 세계관 자체에서 난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그가 정의 내리는 '사랑'. 그가 주장하는 인생의 '궁극적 목표', 그가 지닌 '하나님에 대한 생각'들이 내겐 좀 위험해 보인다. 성경과 잘 매치가 안 된다고나 할까.(정확히 조사하진 못했지만 이 책을 쓸 당시에는 스캇 팩 박사님이 크리스천이 아니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딱히 논란이 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사람의 정신을 다루는 이들이 범하기 쉬운 우를 잘 따라가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프로이트 등의 유물론자들의 사고가 은연 중에 깔리게 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입으로는 '하나님' 을 말하지만, 그 '단어'는 그저 하나의 term으로서 '하나님' 을 의미하는 것이지, 만유를 창조하시고 , 지금도 살아 역사 하시는 살아계신 '실존적 하나님' 을 의미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프란시스 쉐퍼는 이러한 '신식학' 을 경고한다. 이것은 진정한 기독교가 아니라고....

(그러나 이 책을 읽은 8년 전에는 쉐퍼의 세계관을 많이 동조했었기에 이와 같이 추론했었지만, 지금 다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좀 더 관대한 평가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좀 더 공부하고 이 분에 대해 논하고 싶다.

 

 

[8년 전에 기독교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한 부분들]

<아직도 가야 할 길> 외에도 다수의 저서를 남긴 , 훌륭한 기독교 의학자이자 영성

 상담자로 알려져 있는 스캇 팩 박사님.

 

저는 아직 <아직도 가야할 길> , <영혼의 부정> 밖에 보지 않은 상태구요. 앞으로 더욱 부지런히 그의 저작들을 읽어 보려 합니다.(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도 진보가 없습니다.;)

 

참 ,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꼭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최근에 옥성호 집사의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에서 심리학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들을 우려하는 내용과 더불어 스캇 펙이 비판을 받았었습니다. (정확히 어디에 적혀 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 이 집사님은 스캇 펙은 기독교인이 아닌데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설명해 두고 있습니다.)

 

2권의 책만 읽은 상태에서 제 생각은 그는 훌륭한 심리학자 , 유망한 정신과 의사라는 칭호를 받을 만은 하겠지만 , '크리스천' 인지는 정말 모르겠다는 겁니다.

(지금에 와서는 옥성호 집사의 주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고 있고, 스캇 팩 박사가 나중에 크리스천으로 회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스캇펙의 고백>

 

나는 대체로 별 볼일 없는 학자일 뿐만 아니라 특히 성경에 대해서는 형편없는 학생이란 점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양육에 대한 두 번째 예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여태 껏 신약성서를 요한 계시록까지 읽어 본 일이 없다. 그리고 사도들의 서한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더구나 구약성서는 한 번도 읽어 보지 못했다.

 

나는 구약성서의 다니엘서가 어떤 이야기인지 알고 있었다. 많은 초등학생들이 알고 있듯이 다니엘은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 어떤 이유로 사자 굴에 던져졌다가 하느님의 은혜로 목숨을 구하게 된 사람이었다.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그리고 평생 다니엘서를 읽어 본 일도 없었다.

 

 

어린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면 귀엽게 넘어가 주겠지만 ,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 기독교적 마인드를 지닌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이런 어린 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것을 '정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 이렇게 '진리' 에 대한 열망이 없고 , 알고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이 주장하는 영혼의 개념 , 내세의 개념 , 하나님에 대한 지식 등이 과연 바른 것을 제시할 수 있을까? 라고 질문을 던져 봤을 때 ,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진다.

 

 

<그가 말하는 심리학>

즉 신학과 심리학의 문제에 종속된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그 두 문제가 분리되어 온 것은 실상 허울 뿐이다. 나는 이미 생존적 , 정신적 고통을 심리적 , 영적 현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모든 논쟁을 종결시키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독자들이 나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독자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신학적인 차원과 심리학적인 차원에서 그 두 가지를 통합하는 노력을 경주해 보라는 것이다.

 

 

투철한 직업 정신은 인정해 주겠지만 , 이런 면에서 보면 심리학을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심리학이 추구하는 '자기 발견' , '자아 사랑' , '긍정적 마인드' 등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기 부인' , '십자가 은혜' , '인간의 죄의 깊이' 등에 대한 개념 습득에 매우 큰 장애물이 됨을 고백해야 겠다. 분명 [베전2:9] 등에서 말하듯이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됨이라는 놀라운 특권을 누리는 존재임에 틀림 없지만 , 인간이 '자신의 죄의 본질' 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서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한다는 것은 거의 100% 불가능하다. 이건 '거듭난 이들' 의 수 많은 증언들이 크나큰 근거가 되어 줄 것이며 성경적으로도 이건 매우 정확한 진실이다. 하지만 , 스캇 펙 박사는 영혼과 정신을 동등한 개념으로 취급해 버림으로써 , 심리학과 신학도 함께 묶어 버릴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차이점을 제외한다면 '심리학'은 전반적으로 '신학'과 함께 '인간 이해'를 위한 중요한 밑바탕이 되어 준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판단을 함에 있어서  그의 '진화론 적 사고' 가 큰 역할을 하는데 , 단순히 '진화론' 을 믿는다는 그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유신론자이면서도 진화론을 믿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 이 '진화론적 사고' 가 초래하는 심각한 문제점을 극히 일부만 언급해 보겠다. 

 

<진화론 적 발언>

우리 뇌의 가운데 부분에 신경세포가 뭉쳐 있는 중추가 있는데 , 이 중추를 자극하면 우울증이라는 고통스러운 감정이 생긴다. 그리고 중추에는 분노와 유포리아(행복감) 같은 특정의 감정을 만들어 내는 다른 중추들도 위치하고 있다. 이 각기 다른 신경중추들과 마찬가지로 우울 중추도 수천년 간 인간의 진화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뇌 속에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정교하게 진화되어 왔다. 어떤 목적일까?

 

나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짝을 구하려는 성적 본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짝짓기를 통해 아이를 낳고 이리하여 종족의 보존을 이어 가려는 것으로 , 사랑에 빠져 일시적인 자아 영역의 붕괴를 일으키는 것은 내부의 성적 충동과 외부의 성적 자극 상황에 대한 인간 본능의 전형적인 반응 형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소 우스꽝 스럽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랑에  빠지는 것은 유전자가 정신을 속이는 하나의 속임수로써 결국은 결혼이라는 덫에 걸리게 만든다. 이런 계략이 잘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성적인 충동이나 자극에 동성애적이거나 다른 요인-부모의 간섭 , 정신 질환 , 책임에 따른 갈등 또는 자기 훈련 등- 이 끼어 들어 결합을 방해하는 경우가 그 것이다. 반면에 이런 계략 , 즉 세상이 다 자기 것 같은 환상적이고 유아기적 결합과 퇴행이 없었다면 , 행복하든 불행하든 현재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공포감마저 드는 현실 때문에 결코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았을 것이다.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신화의 경우 , 그것은 순전히 거짓말이다. 아마도 그 신화에 지독한 거짓말이 필요한 이유는 사랑에 빠지는 경험이 결혼으로 향한 우리의 음모를 격려하고 또 정당하게 하여 인류의 존속을 보장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러한 고백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 , '영적 본성' 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 순간 그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는 듯 하다. 크리스천이 아니다. 정말 심각하게 그에게 제안하고 싶은 건 , '성경' 을 읽어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사랑' 이 그저 '신화' 요 , '거짓말' 이 되어 버리다니....후반부에 가면 그는 '낭만적 사랑' 은 '일종의 환상' 이긴 하지만 , 유용하기 때문에 '존속할 가치' 가 있다고 말한다. 이게 바로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진화론적 사고' 에 흡수 당한 전형적인 모습이다. '종족 보존' 을 취우선에 두는 비기독교적인 사고. 그리고그의 마음은 '물질주의' 에 찬성하지 않는다면서 , 그가 말하는 '성장해 나가는 영혼' 은 결국 , '진화해 나가는 정신' 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손으로 만질 수 없다 뿐이지 , '눈으로는 보이는 듯한 육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 로 충만하게 짜여져 있다. 한 마디로 '말장난' 이 많다는 것이다. 영혼을 인정하고 ,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말하지만 그가 입술로 고백하는 '하,나,님' , '영,혼' , '사,랑' 이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도통 일치하지 않는다.

(이 책을 쓸 당시 스캇 팩이 크리스천이 아니었다는 포인트를 감안해 준다면 너그러이 봐줄 수 있긴 합니다만, 기독교 서적에서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건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하여>

 

사랑을 받는 것이 당신들의 목적이라면 그걸 성취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확실히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 자신이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첫 번째 생의 목적이 수동적으로 사랑을 받는 것이라면 당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 인간 사회에서는 , 그리고 기존의 심리학에서는 적절한 상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한 사람의 영혼을 치료할 때 , 이런 식의 발언을 계속 고수한다면 , 그 영혼은 '하나님' 을 만날 수 없다. '죄의 깊이' 를 인지 하지 못한다면 , '십자가의 은혜' 는 내 것이 될 수 없다. 내가 구원받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음을 가슴으로 시인하지 않으면.... 그는 자기의 힘을 자기의 신으로 삼는 '호세아' 가 말하는 부류의 사람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저와 같은 말을 하며 , "당신의 영혼의 성장을 위해 힘차게 전진하세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았답니다.." 라고 이야기 해 줄 때 , 이 모든 핵심적인 메세지에는 '나' 란 존재가 주인공이지 , '하나님' 은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오캄의 면도날 법칙에 의해 '하나님' 이라는 개념은 그냥 잘라서 없애 버리는 게 더 논리적이다. 굳이 '하나님' 을 끼워 넣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의 참된 목적이란 오직 정신적 성장이나 인간의 발전입니다."

 

-> 이게 기독교에서,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아닐 것이다.

 

"사랑은 자기 희생이란 잘못된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랑은 자신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 이것은 자기 희생이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 확대인 것이다. 뒤에서 논의하겠지만 순수한 사랑은 자기를 채워 나가는 활동이다. 그것은 자신을 위축시키기 보다는 확대시키고 , 자신을 메마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게 한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과 같이 자기 중심적이다. 여기에는 사랑은 '자기중심적이면서 동시에 자기 중심적이지 않다' 라는 역설이 성립된다. 자기 중심적이라는 문제가 사랑을 사랑 아닌 것으로부터 구분해 주지는 않는다. 그 구분은 행동의 목적에 있다. 진정한 사랑은 그 목적이 항상 정신적 성장이고 , 사랑이 아닐 때는 그 목적이 항상 다른 것에 있다.

 

-> 하나님의 역할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주장은 내 힘으로 저러한 궁극적 사랑을 성취해 나갈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물론 그는 '공동 창조자' 라는 표현으로 신과 내가 함께 '공동 사역' 을 해 나간다고 말하지만 , 그의 마인드 속에는 '나는 곧 하나님이 된다' 라는 개념이 숨어 있다.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 '자신의 정신적 성장' 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이상 그의 주장은 '범신론' 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나는 사랑에 대해 정의하기를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키려는 의지' 라고 했다.

 

-> 그에게는 한 영혼의 구원이 가장 중요한 개념이 아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그는 이미 '기독교인' 이 아니다. 자신은 기독교인이 되고 싶겠지만 , 애석하게도 '잘못된 지식' 을 가지고 있기에 '기독교인' 이라는 단어가 함축하는 의미에 부합되는 사람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정신과 영혼을 제대로 구분 못 한다면 프로이트 등의 트릭에 평균치 이상의 영향을 받아 버린 건 아닐까?

 

"아이가 셋 있는 서른 다섯 살의 부인이 있었다. 독재적이고 남을 무시하며 융통성이 없는 사람과 결혼을 한 그 부인은 날이 갈수록 남편에게 의존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이런 의존은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도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남편은 그들 관계의 본질을 변화시켜 보려는 부인의 모든 시도를 막았다. 하지만 그 부인은 용감하게 남편의 반대와 이웃의 비난을 무릅쓰고 남편과 이혼해 아이들을 데리고 홀로 지내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 모험 덕에 그 부인은 자기 일생에 처음으로 자신의 주인이 된 듯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는 그 가련한 여인의 단호한 결정에 박수를 쳐야 마땅하지만 , 이 행동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인가?.. '나의 자아' , '나의 인생 여정' 에 큰 가치를 부여하다 보니 , 결국 '이제껏 감당해 본 적 없는 어려움' 앞에 쉽사리 도피해 버리는 나약한 영혼을 양산해 내는 꼴이 되어 버렸다. 두 사람의 만남은 아버지가 개입하신 일이었으며 , 심지어 아이가 셋이나 있다. 3자가 말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 힘들어도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그녀가 눈물로 하나님 아버지께 힘을 구하며 , 위로를 구할 때 하늘 아버지가 그녀를 더욱 강하고 지혜로운 여자로 세우시며 , 그 남편마저도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을 터인데........

(그녀의 '고통' 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 발언을 한다고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 이게 성경적으로 맞는 경로인 걸 어떻게 하겠는가? 비기독교인이면 할 말이 없지만 , 기독교인이 이런 지침을 조장한다는 건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남아나는 가정이 도대체 몇 가정 되겠는가?)

 

"어떤 정신 치료자들은 환자와 성적인 관계를 가진 치료자를 비난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런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오히려 환자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치료자이며 성적인 욕구에 대한 이해심이 적어서 그럴 것이라고 여겨진다. 더욱 깊이 생각해서 환자의 정신적인 성장이 성적 관계를 가짐으로써 진전된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 나는 서슴지 않고 그런 관계를 가질 것이다.

 

-> "인생의 궁극적 목표를 '정신의 성장' 으로 두다 보니 , 이런 끔찍한 결론 도출도 주저함 없이 하기에 이른다. 환자를 사랑하고, 포용해 주는 듯 한 느낌.... 참 따뜻한 사람...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고 칭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 크리스천은 아니다. 그건 인정하자.(심지어 도덕적으로도 낮은 점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이들이 바로 모든 종교는 하나로! 를 외치며 '다원주의 신앙' 을 조장하는 것이다. '진리의 토대' 가 없다시피 하기에, 자신이 어떤 입장을 정하고 , 어떤 주장을 함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다. 또는 그 '기준' 이 너무 세속적이어서 , '진리' 에 위배된다.

 

그 외에도 기적적인 '질병의 치유' 대한 그의 발언. '범신론의 냄새' 가 다분히 느껴지는 글을 아무 거리낌 없이 인용하는 태도. 때론 프로이트보다 융을 지지하면서 그가 말하는 '무의식' 의 개념을 거의 '신' 의 자리에 올려 놓는 그의 태도.

 

"사실 무의식은 모든 면에서 의식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현명하다"

 

라는 둥의 발언을 하고 , '집단 무의식' 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데 그 2가지 근거는 너무 빈약한 그대....

 

"우리가 아무리 조심스럽게 이 질문에 접근하더라도 , 사랑을 베푸는 하나님이란 존재를 가정하고 그것을 진지하게 탐구하다 보면 결국은 한 가지 무서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같게 되는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곧 진화의 목적이다. 하나님이 바로 진화시키는 힘의 원천이자 도착지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은 알파이며 오메가라고 말하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이다."

 

-> 스캇 펙은 꼭 충격적인 주장을 하고 나서 , 뒷 문장에서 한 발 물러선 말들을 하면서 안전망에 들어가는 경우가 참 많다. 이 발언은 '그리스도의 형상' 을 닮아가는 '은혜로 구원 받은 죄인들' 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나도 곧 신이요!' 라는 범신론에 아주 가깝다. 단지 이 문장만 봐서 그렇다는 게 아니고 , 그가 하는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 앞으로 봐도 , 뒤로 봐도 '범신론' 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  그때야말로 "자, 일은 끝났어. 나는 목적을 이룬 거야" 라고 말하며 쉴 수는 절대로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더욱 지혜롭고 , 더욱 현명해지도록 밀고 끌어올려야 한다. 이 믿음을 따른다면 자기 향상과 영적 성장을 위한 끝 없는 노력을 죽는 순간까지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책임은 우리의 책임이다. 하나님이 된다는 가능성을 인간들이 끔찍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영혼의 개념.....그 영혼의 구원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내 힘" , "내 의" 를 신의 경지에 까지 올리려는 시도를 해 나가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의 무게' 가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워서 인간은 '하나님이 된다는 가능성' 을 끔찍해 한다라고 말한다.

기독교적 마인드를 계속 깔고 봤을 때는 , '정말 성경을 안 본 사람이구나. 뭘 정말 모르는 구나'라고 밖에 말 못 하겠다.(스스로도 인정했다.)

또는 기독교인 뿐만 아니고 , 일반인들의 마음도 치유해 줘야 하기에 그 두 가지 세계관을 뒤 섞다 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비 논리적인 주장들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차라리 이 책을 썼을 당시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껍질 뿐인 기독교식 포장은 안 했으면 더 고 퀄리티의 작품이 탄생했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게으름은 사랑의 반대말이다."

 

-> 이 개념 자체가 "나의 행동 , 나의 의" 를 극대화시키는 발언이다.

 

"나는 오랫동안 원죄라는 개념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고 부정해 왔다. 나는 섹스를 특별히 죄악시하지 않았다. 그 밖의 다양한 욕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종종 맛있는 음식을 지나치게 탐닉했고 그 결과 복통에 시달리곤 했지만 , 죄의식 따위가 주는 고통 때문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 미안하지만 , 그는 십자가의 놀라운 은헤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고집과 아집을 버리지 않는 이상은...... 자신이 느끼고 있다고 주장해도 그건 본질의 그림자에도 미치지 못할터....

 

"그는 창세기를 신화로 보고 있으며 아담과 하와의 잘못은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문을 묻지 않은 게으름 때문이란다. 그래서 원죄가 있다면 그건 '게으름' 이라고 주장하는데 아주 황당한 주장이다.

 

"나는 앞에서 게으름이 바로 원죄이며 , 우리 속에 병든 자아의 형태로 존재하는 악마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기에 , 그 자리가 너무 공허하며 , 그러기에 그 분을 하나의 '인격체' , '실존' 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 '하나님' 은 '특정 대상' 이 아니고 , '불순종' 이라는 개념은 '특정 대상' 에게 적용하는 것이기에 , 그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개념조차 지니고 있지 않다.

 

"나는 악이란 영적 성장을 촉진할 목적으로 자아를 확대하는 것을 회피하는 정치적 권력 행사-노골적이거나 은밀히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로 본다.

 

-> 그가 말하는 '영적' 은 성경이 말하는 '영적' 과 다르다. 그저 '육적인 정신의 성장' 을 촉진시키지 못하게 하는 개념들은 다 싸잡아서 '악' 이라고 정의 내린다. 자칫 잘못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 도 이 '악' 과 밀접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태가 심각하다.

 

<그가 말하는 은총,은혜>

 

우리가 은총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장소는 바로 나 자신의 내부이다. 지금의 자기 자신보다 좀 더 현명해지고 싶다면 자신의 내부에서 길을 찾아라. 이 말은 곧 하나님과 인간이 마주 보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의식과 무의식이 마주 보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의 무의식이 바로 신이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다. 우리는 언제나 신의 일부이다. 하나님은 어제도 ,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 충격적이네요.

 

"독자들이 무의식이 곧 신이라는 개념에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이 결코 이단적인 개념이 아님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것은 우리 안에 내재하는 성령 또는 성신이라는 기독교적 개념과 근본적으로 같은 개념이다."

 

-> 당신은 틀렸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체이십니다. 설령 당신이 초자연적인 신의 음성을 실제로 들었다던 몇 번의 고백이 실제로 일어났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러한 '기적' 의 영역을 어떻게든 물질 또는 정신의 영역으로 예속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 결국 성령님 마저 , '무의식' 이라는 감옥에 가둬 버리는 군요.

 

"나는 영적 성장의 궁극적 목표가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데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즉 , 신이 아는 만큼 인간도 알게 되는 것이다."

 

-> 마틴 루터가 울고 가고 , 칼빈이 기가 막혀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분의 형상을 닮아간다고 해서 , 창조자와 피조물 간의 '넘사벽' 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건 매우 심각한 신학적 오류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동물의 개념>

"내가 다른 동물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영혼을 갖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들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모두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어떤 동물은 영혼이 있을 것이다."

 

-> C.S LEWIS 도 동물의 구원을 언급한 적이 있지만 , 자신의 '희망 사항' 이 '비 성경적' 임을 잘 알고 그냥 '혹시 그러면 좋겠다' 정도로 이야기 했었는데 , 스캇 펙은 노골적이다. 진화론적 사고는 이러한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 그 기본 토양이 되어 준다.

 

<육체의 부활>

 

"나는 중도적 입장의 크리스천임에도 육체의 부활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편이다. 내 생각에 이 교리는 육체와 영혼을 혼동하고 있다. 그 둘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육체는 매체이다. 즉, 물질이다. 우리의 영혼은 혼이다. 그리고 혼은 육체와는 전적으로 다른 법칙을 따른다. 우리는 우리 육체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물질주의자들에게는 육체가 없는 어떤 존재를 상상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상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욕을 먹는 이유는 , 그는 자신이 자신 있어 하는 개념에 대해서는 막무가내로 밀어 붙이고 , 자신이 없어하는 '십자가' , '천국과 지옥' , '말세' , '은혜' 에 대한 개념들은 거의 언급하지 않아 버리는 특성이 있다.(아얘 알려고 하질 않는다). 스캇 펙도 '하나님의 상상의 초월성' 은 익히 잘 알고 있어서 능수능란하게 인용하며 쓰고 있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이 '부활' 에 대해 어떻게 언급하고 계시는지를 먼저 돌아봤어야 했다. 영혼과 혼의 개념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고 , 왜 특정 인들이 '육체의 부활' 을 주장하는지 , 그 이유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물질주의' 에 물들어서 그런 걸까? ㅅ사실 그런 이들은 '부활' 자체를 주장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하는지 알고 나면 , 자신이 이렇게 글을 쓴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성>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 부분에 관한 한 나는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다."

 

"영혼의 창조는 하나의 실험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그들의 여러 실험이 처음에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예감과는 다른 결과를 낳는 것에 대해 이젠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실험을 실패한 실험이라고 부른다. 비록 우리가 그 실패한 실험을 통해서 성공했을 때만큼 무엇인가를 얻을지라도 그 실험은 실패했다고 한다. 이런 실패한 실험들은 우리들에게 계획을 다시 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영혼의 창조에 관한 신비를 모두 제거해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 결국 하나님의 '창조' 는 불완전했기에 , 실패의 구석이 있으며 이러이러한 연유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지 않다라고 말하고 싶은 가 보다. 이 말을 들으면서 리처드 도킨스 , 버드런트 러셀 등은 덩실덩실 춤을 추겠지만 , 그는 하나님을 모른다. 접근하는 방법이 무신론자와 다를 바가 없다. '특정 현상' 을 보고 , '그 현상을 일으킨 존재' 에 대해 논증하고 있다. 하지만 , '현상을 일으킨 존재' 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 '그 특정 현상' 을 설명해 내는 게 기독교 아닌가? '믿음' 의 힘은 이 때 발휘되는 것이고 말이다..

 

또 충격적인 고백을 들어 보자.

 

"성인 사도 바울은 '죄악의 신비성' 을 '인간 악의 신비' 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 서게 되면 더욱 큰 신비는 인간의 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선에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될 것이다. 나의 견해로는 보통의 인간들은 그냥 우연히 그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점잖고 영웅적이라고 생각된다."

 

-> 이웃을 격려해 주고 , 높여 주는 용도로서는 이러한 '인간에 대한 견해' 가 참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 이건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정의' 가 아니다. 그도 역시 '인간' 이기에 , '자신의 죄의 깊이' 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저 수건이 가려진 상태로는 '십자가' 가 나의 것이 될 수 없고 , 그 놀라운 은혜를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며 , 그러기에 그에게 있어서 '삶의 최고 가치' 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달리심'[고전2:2] 에 없는 것이다. 그 선하심을 한 번만 맛 봐도 , 자신의 활동에 , 자신의 고백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음을 알게 될텐데.....

 

 

스캇 팩의 이 저서가 일반 심리학으로 분류되면 좀 더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워낙 기독교의 개념을 잘못 '활용'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보니, 일반 심리학으로 넣기에도 애매하고, 기독교 심리학 저서로 보기에는 아주 낮은 점수 밖에 줄 수 없는 저서입니다.

 

당혹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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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모건 스콧 펙

출판  김영사

발매  2001.10.15

 

 

 

 

스캇 펙의 또 다른 작품.

 

'안락사' 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담고 있다.

 

그 외에도 자살 , 살인 등의 모호한 경계를 파헤치고 있으며. 결국은 '세속주의자' 들의 '영혼에 대한 경시' 더 나아가서 '영혼을 부정' 하는 그들의 태도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모호한 부분들도 참 많다.

 

답하기가 힘든 많은 사례들을 실제 의학을 다뤄보면서 겪어 본 숙련자 만이 이런 고뇌의 책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스캇 펙의 책을 보면서 자주 느끼는 거지만 그는 '기독교적 토대'에서 이야기를 출발하지만 언제나 그 핀트가 2% 어긋나 있다.

 

<아직도 가야할 길>도 그랬고, <거짓의 사람들> 에서도 뭔가 2%가 부족한 느낌을 풍겼는데 이 책도 그렇게 확 와닿는 부분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을 본지도 10년 이상이 지나, 현재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스캇 펙의 여타 유명한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어낸 독자라면 이 책도 한번쯤 거쳐가 볼만한 정류소가 될 것이고, 스캇 펙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불편감을 느낀 독자라면 굳이 찾아서 볼 만한 책은 아닐 것이다.

 

이 책도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꽤 있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인 것도 사실이다.

 

'안락사'라는 논의 자체가 생명 윤리에서 워낙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이고 'Well dying 법' 등이 재정되는 등 우리 나라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 봐야 할 사안이다 보니 자신만의 입장을 정리해 보고 관련 개념들을 공부해 둔다면 손해 볼 일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때가 되면 죽게 된다. 우리와 먼 이야기 같지만 '안락사' 논의, 더 나아가서 '영혼'에 대한 논의들은 어떤 직업군에 있든, 어떤 신체 조건을 가졌든 모두가 함께 고민해 봐야 할 공통 주제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가야할 길> 보다는 집중력 있게 읽어내려간 책이다.

 

(이 책을 쓸 당시에 스캇 펙이 기독교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가 지닌 인간에 대한 열정과 일관된 방향성은 분명한 귀감이 되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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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달라이 라마

출판  김영사

발매  2001.11.10

 

 

10년 전에 쓴 글이며, 기독교적 관점에서 종교적으로 (다소 비판적으로) 리뷰한 글입니다. 지금 다시 읽어 본다면 새로운 시각으로 리뷰를 써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따뜻하며, 깊이 있으며 나름의 통찰력을 지닌 책이라서 관련 종교에 관심이 있다면 상당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종교적인 관점에서 리뷰를 한다면 비판적으로 리뷰해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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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그는 역사상 가장 잔인한 침략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중국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사람이다. 또한 거의 40 동안을 망명객으로 살고 있고 , 동시에 티벳 민족 전체가 자유를 얻을 있는 꿈과 희망을 그에게 걸고 있다.

 

책은 14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가초 이야기한 것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일단 ,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달라이 라마를 찾아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이란 무엇인가?" 를 논하는 책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슬픔에 대처하는 법" 등에 대해서 물어본다던지,

 

"자신을 화나는 이에게 대처하는 법", "적에 대한 태도 바꾸기" 등을 다루며 더 나아가 "그가 정의 내리는 사랑" 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따스하며 , 참 좋은 말들을 많이 해 주신다.

 

예를 들어 몇 군데만 인용해 보겠다.

  

-다른 사람이 시기심으로 나를 욕하고 비난해도 나를 기쁜 마음으로 패배하게 하고 승리는 그들에게 주소서. 내가 도와준 사람이 나를 심하게 해칠 , 그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

 

우리는  경쟁상대에 대해 주로 어떤 태도를 가질까요? 대개 우리는 적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행동 때문에 적이 불행해진다고 하더라도 , 그렇게 좋아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 그보다 치사한 짓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은 정말로 그렇게 되길 원합니까?”

  

[심화 리뷰]

 

느낌:

 

<전체적으로..>

 

좋은 말도 많고 , ‘진리 overlap 되는 부분도 많지만 ,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모든 일을 행할 있는 ‘The source of power’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책은 은근히 분석적인 느낌이다.  어떤 현상’ , 감정적 상태  등을 현명하게 다루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방법들은 힘의 근원인 존재가 구체적인 방법 적용하여 , 상황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 내가 믿는 힘의 근원은 절대 수가 없다.  

 

힘을 나의 으로 삼는 자[하박국 1:11]

  

<종교에 대해서>

 

달라이 라마는 티벳은 오래도록 불교 국가였었기 때문에 , 티벳 사람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불교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말을 하기 이전에 중도를 유지하는 자세’ ,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자세  등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런 그는 불교만이 전부가 아니며 , 다른 종교들을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다.

굉장히 듣기 좋은 소리 같지만…. 결국 온전한 진리로서 , ‘불교 믿고 있는 사람이 아니며 , 그는 그저 정신 수양의 수단으로 불교를 가치관의 중심으로 삼고 있었다.

 

이라는 개념은 찾기가 어려웠다.

 

그저 카르마 믿고 있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며 , 카르마 서양의 기독교 등에서 말하는 하나님으로 대체할 있다고 말했다. 

 

 카르마라는 단어는 그저 지어낸 단어…. ‘실존 하는 인격체 아닌….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어쩔 없이 사용한 무형의 단어였다.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행복론> 은 "뉴 에이지" 의 범주를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15. 불교도라면 멋지게 받아들일 교훈을 남기는 달라이 라마에게 저자는 그러면 불교도가 아닌 이들에게는 어떻게 말씀 하시렵니까? 라고 묻자,

 

  그런 사람들에게 있는 말은 우리가 인간 존재로서 너무나 훌륭한 지성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인간 존재는 굳은 결심을 있는 능력이 있으며 , 그토록 강한 결심을 이용해 무엇이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만일 능력을 꾸준히 의식하고 반복해서 떠올려 결국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 존재를 그런 방향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갖는다면 , 좌절감이나 무기력 , 자기 혐오의 느낌을 줄일 있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유일 신을 믿는 이가 아니라 태한 목사가 말했던 것처럼 세상이 듣기 좋아하는 평화’ , ‘화합 가지고 심지어 불교도들도 의아해 할 여지가 있는 주장을 한다. 그는 자신의 몸에 잠재된 카르마'를 강조하는데 단어를 하나님으로 바꾸면 기독교가 하는 말과 같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무신론자들에게는 자신의 지성이라는 단어를 집어 넣으면 같은 의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철저한 오해에서 비롯된 설명이다.)

 

 

달라이 라마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김태한 목사님이 쓰신 [뉴 에이지와 신비주의] 책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다 보니 진정한 의미의 '종교 논쟁'은 이슬람교 - 유대교 - 기독교 로 압축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불교의 대부분의 계열들이 이와 같은 느낌을 추구한다면,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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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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