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은 자기 인생의 수십 년을 위장병 때문에 누워 보냈다.
1865년에 다윈은 자기가 거의 30년 동안 앓아온 여러 증상을 열거하는 처절한 편지를 존 채프먼이라는 의사에게 보냈다.
나이 쉰 여섯에서 쉰일곱. 25년 동안 밤낮으로 극심하게 발잘적으로 속이 부글거림. 이따금 구토를 하고 구토가 몇 달 동안 지속된 일이 두 차례 있었음. 몸이 떨리고 히스테리적으로 울음이 나고 죽을 것 같은 기분이나 반쯤 기절한 상태가 되어 구토가 나오며 흐린 색 소변이 다량 나옴. 현재는 귀울림, 몸이 붕뜬 기분, 시야가 흐려지고 구토가 나옴... E[에마 다윈, 아내]가 곁을 떠나면 초조함.
이 목록이 적힌 증상의 전부가 아니다. 다른 의사가 권해서 다윈은 1849년 7월1일부터 1855년 1월 16일까지 '건강 일기'를 썼다.
수십 쪽에 달하는 이 일기에는 만성피로, 심한 복통, 배 속에 가스가 참, 잦은 구토, 현기증(다우니은 "머리가 수영한다"고 표현함), 떨림, 불면, 발진, 습진, 종기, 가슴 두근거림, 가슴 통증, 우울 등의 증상이 나열되어 있다.
다윈은 자기 아버지부터 시작해 수십 명의 의사를 만나보았지만 아무도 병을 낫게 해주지 못해 좌절했다.
채프먼 박사에게 편지를 썼을 때에는 이미 지난 수십 년의 대부분 시간을 환자의 몸으로 집 안에서만 지내야 했다.
(그 동안에 영웅적으로 분투하여 [종의 기원]을 썼다) 일기와 편지를 바탕으로 다윈은 스물여덟 살 이래로 낮 시간의 3분의 1은 토하거나 침대에 누워서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
채프먼은 이런 저런 불안증 때문에 "나가 떨어진" 저명한 당대 지식인 여럿을 치료했다. 채프먼은 자기가 "정신이 매우 발달하고 교양이 높은 예민한 신경증 환자"를 전문으로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미묘한 정신적 영향에 얽히고 지배 받아서 그 정신적 영향이 신체적 병과 어떤 강도로 어떻게 관련되는지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고 했다.
채프먼은 신경과 관련된 거의 모든 병에 척추에 얼음을 가져다 대는 치료를 처방했다.
채프먼은 1865년 5월 말 다윈의 시골집을 찾아왔고 다윈은 그 뒤 몇 달 동안 날마다 몇 시간씩 얼음 속에 들어갔다. 다윈은 [사육 재배에 의한 동식물의 변화]의 핵심 부분을 척추에 얼음 주머니를 두르고 썼다.
치료는 효과가 없었다. "끝없는 구토"가 계속되었다. 다윈과 가족들이 채프먼을 좋아하긴 했으나("우리는 채프먼 박사를 너무 좋아해서, 얼음이 효과가 없어서 실망한 한편 박사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다윈의 아내가 쓴 글이다.) 7월에는 치료를 포기하고 의사를 런던으로 돌려보냈다.
다윈 치료에 실패한 의사는 채프먼 전에도 있었고 후에도 있었다. 다윈의 일기와 편지를 읽어보면 놀랍게도 1836년 비글호 항해에서 돌아온 뒤에 거의 언제나 쇠약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윈한테 정확히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두고 150년 동안 열띤 의학적 토론이 벌어졌다. 다윈 생전과 후에 거론된 병명은 다음과 같다. 아메바 감염, 맹장염, 십이지장 궤양, 소화기 궤양, 편두통, 만성 담낭염, '소모성 간염', 말라리아, 카타르성 소화불량, 비소 중독, 포르피린증, 기면증, '당뇨병 유발 인슐린과다증', 통풍, '억눌린 통풍', 만성 브루셀라증(비글호가 방문했던 아르헨티나의 풍토병), 샤가스병(아르헨티나에서 벌레에 물려 감염되었을 수 있음), 다윈이 실험하던 비둘기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비글호에서 겪은 장기 배멀미로 인한 한볍증, '눈의 굴절 이상' 등. 방금 나는 2005년 영국 학술지에 발표된 [다윈의 병이 밝혀지다] 라는 글을 읽었다.
이 글에서는 다윈의 병이 유당불내증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다윈의 삶을 찬찬히 읽어보면 다윈이 가장 심하게 앓을 때마다 불안이 병을 재촉한 원인으로 등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정신의학자이자 역사가인 랠프 콜프는 1970년대에 입수 가능한 다윈의 일기, 편지, 의료 기록 등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콜프는 다윈의 병증이 가장 심한 기간이 진화론 연구나 가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시기와 일치했다고 한다.(결혼식을 앞두고는 "이틀 밤낮 동안 심한 두통이 계속되어서 과연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1997년 <미국 의학협회 저널>에 실린 [찰스 다윈과 공황장애]라는 논문의 저자들은 다윈 스스로 설명하는 증상을 바탕으로 하면 DSM-4 의 '광장공포증을 동반한 공황장애' 진단을 쉽게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다윈은 이 병과 관련된 열 세 가지 증상 중에서 아홉 가지 증상을 보였다.(진단을 받으려면 네 가지만 충족시키면 된다.)
4년 9개월 동안 계속된 비글호 항해는 다윈이 생물학 연구를 펼치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경험이었다.
비글호 출항 전에 항구에서 몇 달을 보내면서 "생애 최악으로 비참한 시간"을 보냈다고 노년에 다윈은 기록했다. 평생 끔찍한 신체적 고통에 시달린 다윈이 그렇게 말했다니 그 때 고통이 얼마나 대단했기에 그랬을까 싶다.
"가족과 친구들 곁을 오랫동안 떠난다는 생각에 울적했고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암울하게 보였다. 게다가 심장이 두근거리고 아파서 괴로웠다. 젊고 무지한데 의학에 관한 수박 겉핥기 지식은 있어서 나는 내가 심장병에 걸린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현기증과 손끝이 따끔거리는 증상도 경험했다. 모두 불안의 증상이고 특히 공황장애로 인한 과호흡 때문에 일어난다.
다윈은 겨우 우울감을 극복하고 항해를 떠났다. 항해하는 동안 폐소 공포증('끝없는 두려움'에 빠지게 했다) 과 심한 배멀미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대체로 건강을 유지했고 필생의 과업을 달성하고 명성을 누릴 토대가 될 생물학적 증거들을 수집했다. 그렇지만 1836년 10월 2일 비글호가 팰머스로 돌아온 뒤 다윈은 평생 단 한 차례도 영국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장장 거의 5년 동안 세계 여행을 하고 돌아온 뒤에 다윈의 지리적 활동 영역은 점점 축소되었다.
다윈은 "나는 조금만 흥분해도 위장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어디든 가기가 겁이 난다."고 사촌에게 말했다.
[종의 기원]을 쓸 수 있었다는 게 기적일 지경이다. 결혼 직후에 다윈은 진화론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주기적 구토'를 겪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토하고 몇 주 동안, 심할 때에는 몇 년 동안 침대 신세를 져야 하는 이런 기간이 그 뒤에도 계속 찾아온다.
흥분하거나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일이 있으면 신체적 동요를 일으켰다.
파티나 모임이 있으면 불안 때문에 '쓰러졌고', '격한 떨림과 구토 발작'이 일어났다.("그래서 여러 해 동안 디너파티를 모조리 포기해야 했다."고 다윈은 적었다.)
다윈은 진입로로 들어오는 손님들을 집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볼 수 있도록 서재 창밖에 거울을 설치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거나 숨을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다윈은 채프먼 박사의 얼음 치료 뿐 아니라 유명한 의사 제임스 걸리(제임스 걸리 박사는 그 무렵에 앨프리드 테니슨, 토머스 칼라일, 찰스 디킨스도 치료했다.)의 '물 치료'도 시도했고, 운동도 했고, 무당분 식사, 브랜디와 '인도산 에일', 조제약 수십 종도 먹어보고, 내부 장기를 자극하기 위해 금속판을 상체에 붙이고 놋쇠와 아연선으로 만든 '전기 사슬'로 전기 충격을 가하고, 식초에 온 몸을 담가보기도 했다.
심리적 효과 때문인지 다른 데로 정신이 분산되었기 때문인지 실제로 효험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부는 한동안 효과가 있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병이 재발했다. 런던에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일 등으로 인해 규칙적인 일상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며칠에서 몇 주 동안 누워 지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매우 심한 구토'가 시작되었다.
무슨 일을 하려 하든, 특히 다윈이 '내 지긋지긋한 책'이라고 부른 [종의 기원] 작업을 하려면 몇 달씩은 앓았다. "몸이 좋지 않았어. 진저리나는 교정쇄 때문에 이틀 동안 심하게 토했거든."
1859년 초 교정을 보는 동안 친구에게 보낸 편지다. 다윈은 서재에서 토할 수 있게 커튼 뒤에 세면대를 설치하기도 했다.
1859년 10월 1일 구토에 시달리면서도 교정을 마쳤다. [종의 기원]을 붙들고 씨름한 열다섯 달 동안 불편을 느끼지 않은 상태로 보낸 가장 긴 시간이 20분이 채 안 될 정도로 끝없이 위장장애에 시달렸다.
20년 넘는 준비 기간을 거쳐 [종의 기원]이 1859년 11월 마침내 출간 되었을 때 다윈은 물 치료를 받으러 요크셔에 있는 온천에 가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배 속은 요동 쳤고 온 몸에 발진이 돋았다.
"최근에 많이 안 좋았다. 끔찍한 '위기'를 겪었다. 상피병에 걸린 것처럼 한쪽 다리가 부었고 눈이 거의 감겼고 온 몸이 발진과 화농성 부스럼으로 덮였다.
..............지옥에 사는 것 같았다.
다윈의 병은 책 출간 뒤에도 낫지 않았다. "아마 나는 날마다, 매 시간마다 불편하다고 불평하고 신음하면서 무덤까지 갈 것 같다."고 1860년에 썼다.
어떤 사람들은 다윈의 증상이 심하고 기간이 오래 지속되었다는 점을 들어 다윈이 세균 감염이나 아니면 다른 신체적 병에 걸렸었다고 주장한다.("찰스가 얼마나 아픈지 말씀드려야겠네요. 여섯 달 동안 거의 날마다 토했답니다." 아내가 1864년 5월 친구에게 보낸 편지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을 들어 반박할 수 있다. 다윈이 일을 멈추고 스코틀랜드 고지대나 북웨일스로 여행을 갔을 때에는 건강이 다시 좋아졌다.
찰스는 너무 쉽게 불안해해. 알잖아.
-[애마 다윈이 친구에게(1851)-
내가 찰스 다윈의 위장에 지나친 관심을 쏟는 것처럼 보일 것도 같은데 아마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공포에 대한 현대적 연구를 촉발했고, 공포가 구체적인 생리 반응(특히 소화기의 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로 그 사람이 신경증적 위장에 극심하게 시달렸다는 사실이 참 얄궂기도 하고 또 그럴싸하다 싶기도 하다.
다윈은 아내 에마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문제도 있었다. "당신이 없으면 나는 아프고 너무나 쓸쓸해요." 다윈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다. "아 엄마, 당신과 같이 있고 싶어요. 당신이 보호해 주어야 안전한 느낌이 들어요." 이런 편지도 보냈다.
엄마라고?
프로이트주의자들이 다윈에게 의존성 문제 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가 있다고 주장한 것도 납득이 간다. 여기서 내가 아내에게 부담이 될 정도로 의존하고 그 전에는 부모에게 의존했다는 사실에 근거해 W 박사가 나에게 의존성 인격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내렸음을 밝혀야 할 것 같다.
의존성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DSM-5에 따르면 다른 사람(주로 사랑하는 사람이나 양육자)에게 심리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고 자신은 무언가 부족하고 무력해서 혼자 힘으로는 해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등의 특징이 있다.
마지막으로 다윈이 수십 년 동안 끝없이 구토를 했다는 점도 나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다. 구토 공포증이 있는 나 같은 사람은 그 사실에서 병적인 매혹을 느낀다. 다윈은 불안감 때문에 구토를 했지만 구토가 불안감을 더 높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다윈은 그렇게 토하면서도 일흔세 살까지 살아 당시 기준으로는 장수했다.
다윈이 이렇듯 심한 위장병을 안고도 그렇게 위대한 성취를 해냈다는 사실을 보면, 내가 한 번 구토를 하더라도, 아니 다섯 번 하더라도, 아니 하루에 다섯 번, 아니면 다윈처럼 수 년 동안 하루에 다섯 번 구토를 하더라도 죽지 않을 뿐 아니라 뭔가를 이루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구토공포증이 없는 사람이라면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할 것이다.
내 정신병의 핵심에 있는 불합리한 강박을 드러내는 예이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당신이 구토공포증 환자라면, 그렇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거울처럼 또렷하게 이해할 것이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