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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아들러는 1870년 2월 7일 빈에서 태어나 삶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젊은 의사 시절에도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사회 문제와 교육 문제에 적용했다.

1902년에 프로이트가 자택에서 여는 토론회에 아들러와 다른 세 사람을 초대했다. 이 모임이 빈 정신분석학회로 발전했다. 1910년에 아들러는 이 학회의 회장이 되었고, 학회지의 공동 편집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1911년에 아들러와 프로이트는 서로의 견해가 더 이상 조화를 이룰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아들러는 개인심리학학회를 결성하고 학회지를 만들었다.

 

 

그의 학회는 유럽 전역에 34개의 지부가 생겨날 정도로 확장되었고, 특히 독일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아들러는 심리학적 통찰력을 실질적으로 적용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에 광범위한 강연 활동을 펼쳤고, 빈에 최초의 아동 상담소를 열었다.

1926년부터 미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다가 1935년에 미국에 정착했다. 아들러는 강연 여행 중이던 1937년 5월 28일에 스코틀랜드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사망 당시 그는 뉴욕주립대 다운스테이트 의학센터의 전신인 롱아일랜드 의과대학에서 임상 환자의 심리와 대인관계 문제를 다루는 의학적 심리학 (인간의 정신 현상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있어 심리학과 의학의 관점을 종합하여 해설하는 심리학)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비공식적 담화와 강연은 아들러가 좋아했던 소통 방법이다. 그는 전문가와 학생뿐 아니라 비전문가들에게도 강연을 했다. 100편이 넘는 주요 논문을 썼는데, 그의 저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논문들은 대부분 강의록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아들러는 민주적이고 친근하며 친절한 사람이었고, 원예를 비롯해 비공식적 친교와 음악, 예술을 사랑했다.

 

결혼하여 네 명의 아이를 두었는데, 그중 두명은 부친의 뒤를 이어 현재 뉴욕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정력적이었던 아들러는 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동시에 삶을 즐겼다.

[왜 신경증에 걸릴까]의 편집자로 아들러를 잘 알고 있던 필리프 메레는 그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나를 비롯해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아들러가 위대한 인물이라고 느꼈다. 프로이트나 융만큼 폭넓고 깊은 교양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목표와 관련된 분야는 매우 심도 있게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들러는 인간 본성을 매우 심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위대한 정신치료 의사들보다 더 도덕주의자이지만 도덕적 신랄함은 없었다.

 

현역 의사로 심리학에 입문한 아들러는 사람들의 장애를 치료하거나, 부분적 불치일 경우 보상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했다.

 

프로이트나 융이 일부 어떤 면에서는 더 위대하고 아들러와 달리 저술에 뛰어났지만, 나는 환자를 진단하는 시선은 아들러가 이 두 사람보다 더 예리했다고 생각한다. 아들러는 놀라울 정도로 즉흥적이었고, 가장 훌륭했던 강의 대부분이 사전 준비 없이 이루어졌다."

- [왜 신경증에 걸릴까]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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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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