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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집에까지 어떻게 왔는지 도통 기억을 못한 경험이 혹시 있는가?

 

매일 다니는 길에 익숙한 나머지, 당신의 눈과 몸이 반사적으로 운전을 하는 사이에 정신은 다른 곳으로 가 있는 경험 말이다.

 

이런 '얼이 나간' 듯한 느낌은 경미한 형태의 해리(dissociation)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심한 수준의 해리 현상을 보이는 사람은 모든 것이 실재가 아닌 듯 느끼거나, 묘하게 낯선 느낌이 들거나, 무감각해지거나, 이탈되어 있는 듯이 느낀다.

 

정신이 '떠나 있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은 기억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

 

해리의 정도는 반사적으로 운전하여 귀가하는 것에서부터 우리가 다중성격장애(Multiple Personality Disorder)라고 부르는 극단적인 해리까지 여러 양상이 있다.

(그래서 요즘엔 다중성격장애를 '해리성 정체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라고 부른다.)

 

(필자: 참고로 다중인격장애는 영화 등에서는 인기있는 소재이지만 ([Identity] [23 identity] 등), 학계에서는 이게 진정으로 존재하는 정신장애인지 논란이 있습니다. 물론 DSM 에 등재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검증이 된 질환이긴 하지만 치료진의 말에 쉽게 암시가 걸리는 히스테릭한 환자들이 치료자의 의도에 따라 다중인격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을 품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느낌이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기 다른 수준의 해리를 경험할 수 있다.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일수록 경계인이 해리를 경험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극단적인 경우엔 짧은 시간 동안 현실과의 모든 접촉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경계인이 당신과 함께 겪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기억한다면, 해리 현상으로 그것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계인의 고백]

가끔 나 자신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느껴진다.

 

아무것도 현실 같지가 않다.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마치 내 주위에서 한 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의 치료사는 그럴 때 내가 마치 정신을 놓은 것처럼, 아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현실로 돌아오면, 사람들은 내가 나 자신은 기억 못하는 말과 행동을 했다고들 한다.

 

-[잡았다, 네가 술래야] 에서-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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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당신은 아마 이 특징에 아주 익숙할 것이다.

 

경계성 분노는 대체로 매우 격렬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논리와는 무관하다.

 

마치 돌발홍수의 급물살이나, 갑작스러운 지진, 맑은 하늘의 번개 같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났듯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어떤 경계인들은 그와 정반대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화를 전혀 표현할 수 없다고 느낀다.

 

마샤 리네한은 화를 내지 않는 경계인은 "만약 조금이라도 화를 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하며, 어떤 때에는 자기가 아주 조금만 화를 내도 상대방이 복수해 올 것이라는 공포를 느낀다." 라고 쓰고 있다.

 

경계성 성격장애 전문가인 제인 드레서는 우리와의 인터뷰에서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비단 분노뿐 아니라 모든 감정을 아주 격렬하게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녀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의 진단 기준에서 분노가 강조된 이유는 대체로 분노가 경계인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감정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폈다.

 

리네한도 이런 믿음에 동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신체의 90% 이상 부위에 3도 화상을 입은 사람들과 같아요. 정서적인 피부라고 할까, 그것이 거의 없으니 아주 작은 접촉이나 움직임에도 심한 괴로움을 느끼죠."

 

당신이 경계인에게서 언어적, 물리적 공격을 받는다면, 경험 많은 정신건강 전문가들도 때때로 경계성 분노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여 기분 나빠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경계인의 고백]

 

내가 주변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면 나는 긴장하고 화가 나기 시작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강한 돌풍처럼 다가와 나를 압도한다.

 

일단 터지면 나는 단 몇초 사이에 완벽한 평정심으로부터 극단적인 분노로 옮겨 갈 수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적들에게 포위 당했으며 다른 모든 사람이 내가 화를 내어 문제를 일으키도록 자극하는 것처럼 느낀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성질은 어렸을 때 당한 학대 때문인 듯하다.

 

어느 시점에 나는 부모님의 학대를 더 참을 필요가 없다고 결심했다.

학대를 분노로 받아치는 것이 나의 생존 방법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아니, 사실은 그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나도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에 격노해 있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이 그것이다.

나는 그저 내가 아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존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경계인의 고백]

 

내가 생각하기에 경계인들은 오직 한 가지만 걱정한다.

바로 사랑을 잃는 것이다.

 

그런 데 대해 정말 걱정이 되면 나는 공포에 휩싸이고, 화를 냄으로써 그것을 드러낸다.

공포를 느끼는 것보다는 화를 내는 일이 더 쉽고, 화를 내면 내가 덜 연약한 듯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것이 사실은 상처받는 데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라고는 어떤 경계인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화가 났을 때는 세상에 대한 그 모든 지적인 이해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나를 돕는 단 한 가지는 남편의 이런 말이다.

 

"당신이 화가 난 게 아니라 두려워 하고 있다는 걸 난 알아."

그 순간 분노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나는 다시 두려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나는 진정한 분노 - 보통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느끼는 분노-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러려면 자기(self), 즉 온전한 존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자기가 없기 때문에 - 혹은 내가 진정한 자기를 너무나 깊이 묻어 두어 이젠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 진정으로 화를 낼 수가 없다.

 

-[잡았다, 네가 술래야]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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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일반적으로 몇 시간, 아주 드물게만 며칠 이상 지속되는 일시적 불쾌감이나 짜증, 혹은 불안)

 

대부분의 사람은 기분이 나쁠 때 기분 전환을 위해 스스로 노력한다.

 

또한 자기 기분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다.

 

경계인에게는 그런 일들이 무척 어렵다.

 

그들의 기분은 불과 몇 시간 사이에 격렬한 분노에서 우울한 감정으로, 우울에서 짜증으로, 짜증에서 불안감으로 바뀔 수 있다.

 

 

[비경계인의 고백]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남편과 사는 것은 한 순간은 천국에서, 다음 순간에는 지옥에서 사는 것과 같다.

 

나는 그를 유쾌한 지킬 박사이자 끔찍한 하이드 씨라고 부른다.

 

그는 단순히 내가 너무 앞서거나 빠른 속도로 말했다고, 잘못된 어조나 표정으로 말했다고, 아무

튼 별별 이유로 이성을 잃고 화를 낸다.

 

그의 기분을 맞추어 주기 위해서 나는 살얼음을 밟듯이 조심조심 행동해야 한다.

-[잡았다, 네가 술래야]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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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 4판에 의하면, 경계성 성격장애자 중 3~10%가 자살을 한다.

 

이 수치에는 음주 운전처럼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경계인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마샤 리네한은 경계성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자살(그리고 충동적이며 문제가 있는 다른 행동들)은 통제할 수 없는 극도의 감정적 고통에 대한 해결책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한다.

 

물론 자살은 한 사람의 기분을 바꾸는 가장 궁극적인 방법이다.

 

자살보다는 덜 치명적인 행동들도 [경계인의 기분을 바꾸는 데] 꽤 효과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약물 과다 복용은 보통 긴 시간 잠이 들게 만드는데, 잠은 정서적 취약성을 규제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자살 위협을 포함한 모든 자살적 행위는 주변의 행동  - 정서적 고통을 줄이는 데 유용할 수 있는 도움 - 을 유도해 내는 데도 매우 효과적이다.

 

많은 경우 그러한 행동은 주변 사람으로 하여금 경계인의 정서적 고통에 관심을 보이고 그 고통을 완화해 주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비경계인의 고백]

 

어느 날 아내가 절망적인 모습으로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자 친구가 자기를 차버렸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아내는 내가 그녀의 외도에 화를 내서는 안 되며,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위로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충분히 위로하지 않자 아내는 죽어 버리겠다고 위협하기 시작했다.

열살짜리 아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그러나 아들은 이미 엄마의 행동들에 극도로 냉소적이 되어 있었다.

 

[자해행위]

 

 

자해행위 또한 가족들이 이해하기 매우 힘든 경계성 성격장애 행동 중의 하나이다.

그 예로는 신체 부위를 날카로운 물체로 긋기, 피부 태우기, 뼈 부러뜨리기, 머리 찧기, 바늘로 찌르기, 피부 긁어대기, 머리카락 뽑기, 상처 딱지 뜯어내기 등이 있다.

 

이 모든 행동에 자살 의도는 없다.

 

위험하거나 강박적인 행동 - 비만이 될 정도로 과도하게 먹기, 다른 사람들에게 신체적인 싸움을 걸기 등- 도 자해행위의 한 종류가 될 수 있다.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는 것은 극도의 정서적 고통 - 주로 수치, 분노, 슬픔, 버림받는 느낌 - 을 방출하거나 조절하기 위해 경계인들이 쓰는 대처 기제이다.

 

자해는 베타 엔도르핀(beta-endorphins)이라고 알려진 체내 마취제를 방출하기도 한다.

 

이런 화학물질들이 자해를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경계인들이 자해를 하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 지극히 다양하지만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1] 마비된 감정과 공허감을 완화하여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해

 

[2] 감정을 마비시키기 위해

 

[3]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4] 자신을 벌하기 위해, 혹은 자기혐오를 표현하기 위해 (이런 현상은 학대를 받은 경계인에게서 더 빈번히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5]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자신이 '나쁜 '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든 증명하기 위해

 

[6] 스트레스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7] 자신의 고통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얻기 위해

 

[8] 현실 감각을 되찾기 위해

 

[9] 자신이 '실재함'을 느끼기 위해

 

[10] 신체적 고통에 집중함으로써 정서적 고통, 좌절, 다른 부정적 느낌들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11] 자신의 정서적 고통을 타인에게 전하거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다음은 경계인들이 자해에 관해 직접 한 말들이다.]

 

[1] "솔직히 말해,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아채도록 하려고 그렇게 한 것 같아요."

 

[2] "내 기분이 얼마나 나쁜지를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내 몸에 상처를 냄으로써 직접 보여줄 수 있죠."

 

[3] "누군가에게 화가 날 때, 난 그 사람을 부숴 버리고, 다치게 하고, 죽이고 싶어요, 하지만 실제로 해칠 수는 없다는 걸 알지요. 그래서 내 몸에 상처를 내거나 머리를 잡아 뽑으면서 그 화를 표현하는 거에요. 당장에는 기분이 나아지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후회합니다."

 

[4] "아버지가 나에 대한 학대를 멈추었을 때, 나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 그 아픔을 대신할 만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했어요."

 

[5] "나에게 흉터들이란 부모님이 내게 한 일을 보여주는 거죽의 그림일 따름이에요."

 

 

 

 

자해는 미리 계획될 수도, 충동적일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행해질 수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몽롱한 가운데 자신이 하는 일을 깨닫지 못하는 듯한 상태에서 - 행해질 수도 있다.

 

자해를 하는 동안 고통을 느낄 수도 있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해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옷으로 가려지는 부위만을 건드린다.

 

우리가 인터뷰한 사람 중에는 상처 때문에 병원에 가면 자해 사실이 밝혀질까 봐 스스로 상처 봉합술을 배운 이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자위 행위의 결과에 관해 보다 솔직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데, 아마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자신의 고통을 알리는 방법이기 때문일 듯하다.

 

우리가 인터뷰한 경계성 성격장애자들은 자신이 왜 자위행위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그런 행동을 멈추기가 쉬워지지는 않는다.

 

그들 대부분이 느끼기에 자해행위는 마치 흡연처럼 삶에 대처하기 위한 습관이며, 자해 욕구는 흡연자가 담배 한 개비를 더 피우고 싶어하는 욕구만큼이나 강할 수 있다.

 

경게인 모두가 자신을 해치거나 자살하려 한다는 오해가 있다.

 

경계인이어도 일상생활을 잘 해나가는 사람은 자해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해하는 경계인이 그렇지 않는 경계인에 비해 전문적인 도움을 더 많이 구하는 편이기에 그 같은 오해가 생기기 쉽다.

 

-[잡았다, 네가 술래야]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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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충동적인 행위들 중 두 가지 이상이 나타나야 합니다. 경계성 인격장애를 DSM 차원에서 진단하기 위해서 필요한 항목이며 최근 개정된 DSM-5 의 정의가 더 정확하니 여기 나온 설명들은 경계성 인격장애의 전반적인 특징으로 간주하고 읽으면 될 것입니다.

 

 

 

 

(ex) 과소비, 마약, 알코올 남용, 좀도둑질, 무모한 운전, 폭식, 무절제한 성행위 등)

 

주의: 5번 기준에 있는 자살이나 자해행위는 포함되지 않는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 모두에게는 가능만 하다면 끝없이 탐닉하고 싶은 충동들이 있다.

 

이를테면 초콜릿 한 상자를 몽땅 먹어 버린다든가, 예쁜 스웨터를 색깔별로 모두 산다든가, 새해를 축하하는 샴페인을 마지막 잔까지 마신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충동을 조절하거나 즉각적인 만족을 지연시키는 능력을 다양한 정도로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기 행동의 장기적인 결과 -위의 경우 늘어난 몸무게, 엄청난 액수의 신용카드 청구서, 그리고 끔찍한 숙취 - 들을 안다.

 

그러나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동을 물리치거나 조절하는 일이 아주 힘들다.

 

늘 공허와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유쾌함을 주는 활동은 기분 전환의 좋은 도구이다.

 

감정 상태를 바꾸는 약물은 보다 즉각적인 위안을 제공하는 만큼 더욱 강력한 전환 수단이 된다.

 

피해를 낳는 행동들은 분노나 자기 혐오를 표현하는 방법일 수 있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또한 폭식과 구토, 무분별한 성행위, 좀도둑질, 충동적 쇼핑, 과음 혹은 약물 남용 같은 충동적인 행동을 통해 공허함을 채우고 정체성을 만들려 애쓰기도 한다.

 

 

 

 

경계성 성격장애와 중독물질 남용 장애는 종종 함께 나타난다.

 

어떤 연구에서는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 중 약 23% 에게 중독물질 남용 장애가 있다고 보고했다.

 

중독물질을 남용하는 경계인은 둘 이상의 물질 (주로 마약과 알코올 중독이 함께 나타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우울한 감정을 느끼기 쉬우며, 자살 기도나 사고가 잦고, 충동 조절 능력이 떨어지며, 반사회적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더 큰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당신과 관게가 있는 경계인이 마약이나 알코올을 남용하고 있다면, 그의 어떤 행동이 경계성 성격장애와 관련되며 어떤 행동이 중독물질 남용과 관련되는지 판단하는 일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잡았다, 네가 술래야]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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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삼십대가 되면 자아상, 즉 자신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가 상당히 일관성을 띤다.

 

사십대쯤에 그때까지의 삶의 선택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면서 중년의 위기를 거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자신의 가치들, 종교적 신조, 주요 문제들에 관한 입장, 경력과 관련한 선호 같은 것들을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런 것들에 관한 탐색이 끝을 모른다.

 

타인에 대한 일관된 인식이 결여된 것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본질적 인식 역시 결여되어 있다.

 

언제든 믿고 매달릴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인식이 없는 그(그녀)는 마치 폭풍 한 가운데 떠 있는 배의 갑판에서 비바람에 이리저리 떠밀리고 강타당하는 승객과 같다.

 

맹렬한 폭풍우 한가운데에서 그는 붙잡을 무언가를 찾아 필사적으로 주변을 살핀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구명조끼를 입고 돛대에 스스로를 묶은 다른 승객들 뿐이다. 또 다른 집채만 한 파도가 갑판을 덮치자 그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이 매달린 돛대를 함께 잡는다.

 

하지만 구명조끼는 한 사람만 입을 수 있는 크기이고, 돛대도 두 사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갈라지기 시작한다.

 

 

 

로버트 윌딩어는 만성적인 공허함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인 정체성 혼미(identity diffusion)의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체성 혼미란,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환자들에게서 보이는 증상으로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는 느낌, 뿌리 깊으며 종종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느낌을 의미한다.

 

보통 우리는 다른 환경 속이나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신을 일관성 있게 경험하는데,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런 자기의 연속성을 경험하지 못한다.

 

대신,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들은 통합시킬 수 없을만큼 서로 모순되는 자기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흔히 자신의 내면이 텅 비어 있는 듯하다거나,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거나,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그들의 내적 공허함과 혼미 때문에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존재할지를 결정하는 데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반응에 의지하게 된다.

 

누군가가 옆에 없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 못하거나, 아예 자신이 존재한다는 느낌조차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그 같은 환자들이 왜 혼자 있는 것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종종 충동적으로까지 행동하는지, 그들이 왜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나 한없는 권태, 그리고 해리를 경험하는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준다.

 

 

 

경계인들은 자신을 정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이든간에 항상 모자람이 있다고 느낀다.

 

앞에서 분열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는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근거로 삼는 것은 상대방과의 가장 최근 만남이라고 했다.

 

그들은 관계라는 것을 여러 요소들이 공존하는 통합체로 보지 못한다.

 

관계란 언제나 "그런데 당신은 최근 나를 위해 뭘 했지?" 라는 질문일 뿐이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대한다.

 

그들의 자존감은 자신의 최근 업적에 달려 있다.

 

그리고 남들을 평가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가혹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마음에 드는 경우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 중 일부는 하는 일에서 눈부신 성공을 이루고, 직장과 공동체, 혹은 가정에서 업적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자기가 마치 대사를 외우는 배우 같다고 느낀다.

 

관객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그들의 존재는 사라지는 것이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이 타인의 무력한 희생자라고 여긴다.

 

그의 행동이 특정한 상황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에도 말이다.

 

이것 역시 그들이 지닌 정체성 딜레마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예로, 집단상담 시간 중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어느 남자가 불평하기를, 집주인이 자신을 쫓아냈기 때문에 갈 곳이 없다고 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한 20분쯤 그에게 동정의 말을 건네다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묻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 남자는 집주인의 주차 공간에 자신의 차를 세우는 등 아파트의 규칙을 너무 많이 어겨서 쫓겨난 것이었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한 여자는 상습적으로 남편을 구타했고, 수도 없이 바람을 피웠으며, 남편 옷가방 안에 마약을 숨겨 놓은 뒤 경찰에 신고하여 남편을 구속시키기도 했다.

 

여자는 끝내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했다. 그 후 남편은 직장에서 만난 여자와 사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경계인 여성은 친구에게 자신의 이혼을 설명할 때 남편이 직장 동료를 만나기 위해 자신을 버렸다고 말했다.

 

두 경계인 모두 각자의 상황에서 자신이 한 역할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 중 일부가 피해자 역할을 하는 까닭은 그것이 동정적인 관심을 유발하고, 정체성을 제공하며,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을 주기 때문이다.

 

학대 경험이 있는 경계인들은 그러한 경험의 각본을 그대로 반복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은 신뢰하는 사람으로부터 잔인한 행동을 기대하도록 오랫동안 조건화되었기 때문에 자신을 계속해서 피해자로 여기는지도 모른다.

 

어린아이였을 때 그들은 학대하는 사람의 행동이 자기 탓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어떤 점 때문에 사람들이 차갑고 무자비하게 행동한다고 믿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성인이 되었을 때 타인에게서 최악의 상황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의 정상적인 행동을 잔인하거나 자신을 버리려는 행동으로 해석해 강한 분노나 절망, 혹은 수치심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배경을 모르는 주변 사람에게는 그들의 행동이 혼란스럽기만 할 것이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역할은 바로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는 역할이다.

 

이런 긍정적 역할은 경계인들에게 정체성을 제공하고 통제감을 강화시켜 주며 공허함을 덜 느끼도록 해준다.

 

[경계인의 고백]

 

내게는 함께 있는 사람의 특징들을 내 것으로 취하는 카멜레온 같은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한 것이다. 내가 어떤 특정한 성격이 될 때, 나는 마치 망토를 입는 것처럼 진정한 나 자신 위에 그 성격을 덧입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삶을 망치는 일을 즐기는 교활한 책략꾼이 아니다. 그 과정은 사실상 의식적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나 자신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자신이 실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위조품 같이 말이다. 만약 나에게 이런 과정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력이 있다면, 위협을 느낄 때마다 '나 자신'으로 돌아가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잡았다, 네가 술래야] 에서 -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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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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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존감과 인정, 정체감 등 자기 스스로 얻기 어려운 것들을 타인에게서 구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찾는 것은 자기 안에 블랙홀처럼 존재하는 공허감과 절망을 영원한 사랑과 동정심으로 채우면서 돌보아 줄 사람이다.

 

[경계인의 고백]

 

나는 친절해 보이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다가가곤 했다.

그들이 나를 돌봐주리라는 깊은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다가 이 세상 누구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고 돌봐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깨달았다.

 

마음 속의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지만 겉모습은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지닌 강렬한 궁핍감은 그들이 맺는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비경계인 부모와 경계인 자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비경계인의 고백]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열여덟 살짜리 딸을 키우는 일은 휴일도 없이 날마다 24시간 일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것과 같다.

 

딸은 늘 우울해하고, 그럴 때마다 위로가 필요하다. 일상적인 문제들의 해결책을 생각하는 데도 딸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

 

한밤중에 자기 살을 그어 피를 뚝뚝 흘리는 모습으로 울면서 내 침실로 오기도 한다.

 

나는 그 아이를 매우 사랑하지만 이런 일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고, 어떡해야 좋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딸 아이만을 위해 쓰다 보니 다른 자식들이 원망하기 시작한다.

 

_____________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관계를 잃는 일은 마치 팔다리 하나를 잃는 일, 심지어는 죽음과도 맞먹게 느껴질 수 있다.

 

동시에 그들은 자존감이 아주 앉아서, 아무도 자신과 함께하고 싶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경계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애정이 없으며 곧 자기를 떠나리라는 것을 밝혀줄 단서를 늘 찾는다.

 

그러한 두려움이 맞았음이 확인되는 듯하면 분노를 터뜨리거나,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흐느끼거나, 복수를 하려 들거나, 자해를 하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그 밖의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이는 경계성 성격장애의 핵심적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경계성 성격장애로 고통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고 친밀해지기를 무엇보다도 절실히 원한다.

 

하지만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들이 하는 행동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든다.

 

이런 상황은 그를 상대하는 비경계인인 당신에게도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니 이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는 어떨지 상상해 보라.

 

당신은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벗어나 있을 수 있다. 재미있게 놀고, 파티에 가고, 책을 읽고, 해변에서 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경계인은 하루 24시간 내내 자신의 공포, 걱정과 함께 있어야 한다.

 

많은 경계인이 과대 이상화와 폄하의 양극단을 오락가락하는데, 이를 '분열(splitting)'이라고 부른다.

 

경계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사악한 마녀 아니면 착한 요정으로, 성자 아니면 악마로 인식한다.

 

당신이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듯하면 당신을 최고의 영웅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실망시켰다고 보면 한 순간에 당신은 못된 악당이 되고 만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타인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함께 보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 대한 그의 평가는 종종 상대와의 마지막 만남에 근거하게 된다.

 

코미디 쇼인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 나오는 '미스터 단기기억'처럼 말이다.

 

미스터 단기기억에게는 모든 순간이 새롭다.

 

점심 시간이 되면 그는 같이 밥을 먹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자신을 소개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또 주문한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의 감정적 기억도 그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제롤드 크라이스먼은 분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보통 사람은 양면가치를 지니고 있고, 두 가지 모순되는 상태를 한번에 경험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두 상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한쪽에 있을 때는 다른 쪽의 감정 상태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보면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아서 인간의 모순성이나 애매모호함을 용인하지 못한다.

 

그는 어떤 사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조화시켜 일정하고 통일성 있게 이해할 수가 없다.

특정한 순간에 좋거나 나쁜 사람일 뿐, 그 중간이나 회색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묘하거나 근소한 차이는 아예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주 힘들게만 이해한다.

 

끊임없이 엄습해 오는 모순된 감정들과 이미지들로부터, 그리고 그 이미지들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에서 오는 불안으로부터 경계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분열' 기제는 종종 역효과를 가져온다.

 

성격이라는 옷감 안에서 처음에는 작게 해어졌던 부분이 나중에는 완전히 찢어진다.

즉, 자기 정체감과 다른 사람들의 정체성이 더욱 극적으로, 더욱 자주 바뀌게 되는 것이다.

 

_______________

 

전부가 아니면 무(無) 라는 경계인의 사고방식은 인간관계 뿐 아니라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이 하나밖에 없다고 믿는다.

 

일단 행동을 취하면 되돌릴 수 없다.

 

예를 들면,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여자가 직장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녀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직장을 구만두는 것이었다.

 

경계인의 노력 또한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일 때가 많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한 대학생의 경우, 정치 캠페인에 깊이 관여하게 되자 모든 수업에서 낙제 점수를 받게 되었다.

 

다음 학기에 그는 수업에 전념하기 위해 일체의 정치 활동을 그만두었다.

 

자신의 시간을 두 가지 활동에 나누어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흔히 사람 사이의 관계가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타인은 친구가 아니면 적이고, 열정적 애인이 아니라면 오로지 정신적인 우정을 나누는 친구인 것이다.

 

이는 경계인이 엣 연인과 정신적인 친구가 되기 힘든 이유 중의 하나이다.

 

확실한 정의에 대한 집착은 타인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 역시 흑백논리로 본다.

 

 

 

경계인들을 위한 책에서 리처드 모스코비츠는 이렇게 설명한다.

 

당신(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아마도 완벽을 향해 진력할 것이고 때로는 그것을 이루었다고 느끼지만, 작은 결점 하나라도 보이면 가차없이 자신을 책망할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만족할 때면 자신이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규칙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지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을 것이다. 또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자격이 있으며 이 세상의 좋은 것은 모두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스스로에게 불만스러울 때는, 아무것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세상의 온갖 나쁜 일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으며 벌을 받게 되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만약 그 벌이 찾아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당신을 벌하도록 만들거나 스스로 벌을 내릴 수도 있다.

 

분열은 상시적으로 반복될 수도 있다.

 

경계인의 필요와 기대를 모두 채워 주는 일은 불가능하거나 아주 어렵다.

 

우선,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필요나 기대를 명확하게 말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거나, 원하는 것이 있는지조차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계인이 원하는 바를 알았을 경우에도, 거기에 부응하려 들면 그들은 이제 다른 무언가를 원하다고 말하곤 한다.

 

하루 사이에도 몇 번씩 당신은 그에게 영웅이 되었다 악당이 되었다 할 수 있다.

 

반대로 그러한 영웅/악당, 성자/죄인의 순환 주기가 몇 년이 될 수도 있다.

 

'애정의 대상'에게서 '결함'을 확인한 경계인은 때로 새로운 대상을 찾아내지만, 결국은 같은 순환을 반복하게 마련이다.

 

이 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 당신은 자신에 관해 일관성 있고 균형 있는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이는 생각보다 힘들 수 있다.

 

왜냐하면 경계인은 당신이 어떤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굳게 믿으며, 그 만큼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확신은 결코 연기가 아니다.

 

진실로 그렇게 믿는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 당신을 열렬하게 긍정적으로 대할 때 당신이 이성적 관점을 유지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런 관점은 당신이 미움받는 처지에 놓일 때 자신을 굳건히 지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분열 습관 때문에,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특히 어렸을 때 학대를 받은 사람들-은 타인을 신뢰하는 일이 아주 어렵다.

 

그러한 신뢰 부족은 인간 관계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예를 들어, 당신을 악당으로 여기는 시기에 경계인은 당신이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바람을 피운다는 비난을 퍼부어 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경계인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려고 더욱 애쓰지만 종종 허사로 돌아간다.

 

불신감은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의 내면에 깔려 있는 것이지 비경계인의 특정한 행동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경계인의 고백]

 

나에게는 항상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갈망 같은 게 있었다.

스스로도 그걸 명확히 규정할 수 없어서 그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욕구의 구덩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나를 보통 사람과 다르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못된 여자이며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여자임을 알아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상을 분산했다.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하지만 누구와도 아주 가까이하지는 않았다.

 

그리하면 어쩌다 내가 방심해서 한 친구가 내가 아주 이상한 사람임을 알게 되어 멀어지더라도, 나에게는 다른 친구가 쉰아홉 명이나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연애라는 것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친밀감이 따라왔다.

 

한 사람이 그토록 소중해지고 나니 위험은 더욱 커졌다. 내 안의 욕구들이 취약한 둑 안의 물처럼 차오르기 시작했다. 욕구들이 둑을 무너뜨리고 분출하지 않도록 나는 안간힘을 써야 했다.

 

아,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이 남자도 나를 필요로 한다.

 

그래, 이번에는 안전할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사나운 물살을 막고 있던 둑에서 큰 돌덩이 하나를 쳐낸다. 그러자 급류가 나를 삼켜 버리고, 거센 물살에 나는 핀볼처럼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로 튕겨진다.

 

세상이 빙빙 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게 물살은 제멋대로다.

 

나와 함께 있어 줘. 매일 낮, 매일 밤. 나를 보고, 내 말을 들어줘. 나 여기 있잖아. 내가 보여? 여기 있어! 여기야, 여기에 있다고!...

 

아 믿을 수 없어! 마침내, 마침내, 이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야! 그런데.... 이것 좀 봐! 그가 거부하고 있어. 조용히 텔레비전 좀 보고 싶다고 하네.

 

다른 할 일이 있다네. 그럼 나는 도대체 뭘 하라는 거지? 욕구 좌절! 아아, 정말 짜증 나... 빌어먹

을. 난 이 남자가 미워. 내가 마음을 열었잖아.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 사람은 모른다는 거야?

아니, 나와 이야기하는 대신 텔레비전을 보겠다고? 이 순간 여기서 나와 함께 있기보다 친구들과 나가고 싶다고?

 

 

자기가 대체 뭔데 내게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거야?

 

화가 나서 미치겠네. 그리고 정말 창피스러워. 벌거벗은 내 모습을 보인 거잖아.

 

바닥 모르는 내 욕구의 구덩이를 보여 버린 거야. 그가 나를 웃음 거리로 만들었어.

 

당황스러워서 나는 막 공격한다. 단단히 혼내줘야지.

 

그 나쁜 놈에게 자기가 감히 누구를 가지고 놀려 했는지 가르쳐 줘야해.

이 친구야. 알기나 해? 나는 너 안 좋아해. 아니, 너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구.

자 이것 한 방 먹어! 또 한 방! 봤지? 나는 끄떡없어. 난 강한 여자라구. 나에겐 빌어먹을 어떤 사람도 필요 없어.

 

너 따위는 더욱 그래. 나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분노하고 소리 지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내가 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지 보게 된다.

 

그러고는 나 자신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경멸한다. 죽을 것처럼 무섭다. 그가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미련도 없이 떠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상처받기 쉽다. 나는 전혀 강하지 않다. 제발 버리지 마. 사실 난 강한 여자가 아냐. 네가 정말 필요해.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보여 줄 수 있지?

 

나는 울면서 애원한다. 그가 얼마나 멋진 남자인지, 얼마나 참을성이 많은지 얘기한다.

 

당신이 날 싫어한다는 걸 알아. 싫어하는 게 당연하지. 나 같은 건 죽어야 해!

 

당신에게도 내가 없는 게 나을 거야. 아니, 괜한 말이 아냐. 진짜 내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그가 조금 누그러지는 빛을 보인다. 오, 제발 나에게 만회할 기회를 줘. 언제 어디서든 머서진 사랑을 나누자. 열두 가지 맛있는 코스 요리도 만들어 줄게.

 

너의 어여쁜 정부라도 될게. 너에게 내 열정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게 해줘.

후유, 그가 돌아왔다. 그는 아직 내 곁에 있다. 일을 영 그르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와 함께 있으니 정말 기분이 좋다. 그는 나를 좋아해. 내겐 그가 필요해.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초래했음을 깨닫게 되면, 즉 이러한 순환이 너무 자주 반복되어서 관계가 더는 손쓸 수 없이 망가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가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관계를 끊어 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이 끔찍한 과정을 또다시 겪는다.

-[잡았다, 네가 술래야]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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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 광장 한 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혼자 서 있는 일곱 살 아이라고 상상해 보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신은 엄마 손을 잡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엄마는 군중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엄마를 찾으려고 주위를 미친 듯이 둘러보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고 겁나는 낯선 사람들이 당신을 쏘아 보며 지나갈 뿐이다.

 

바로 이런 감정이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 거의 언제나 느끼는 것이다.

 

자신만이 고립된 듯하고, 불안하며,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겁에 질리는 그런 감정 말이다.

 

주위에서 그를 아끼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은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에게 미소를 짓거나, 도움을 베풀거나, 따뜻하게 포옹을 해주는 군중 속의 몇몇 친절한 얼굴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곧 떠날 듯한 행동을 하든지 경계인이 헤어짐의 징조로 해석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이든 하는 순간, 경계인은 공포에 질려 허둥대고, 갑자기 분노를 터뜨리거나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버림 받는 다는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장애가 있는 한 여성은 자신의 룸메이트가 지하의 공동세탁실에 가기 위해 아파트를 나서는 것조차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한 예로, 어떤 남자가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아내에게 자신이 생명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병에 걸렸다고 애기하자 아내는 남편이 의사를 만난 것에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때로는 버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경계인이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노 같은 방법으로 그 두려움을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느낌, 자신의 상황에 대한 무력감은 경계성 성격장애자의 분노를 쉽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경계인이 어렸을 때 보호자의 관심을 받지 못했거나 심한 문제가 있는 가정에서 자랐다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느낌을 부정하거나 억누름으로써 공포를 극복하는 법을 배웠을 수도 있다.

 

오랜 기간 같은 방법을 쓰다 보면, 더 이상 처음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당신 주변의 경계인이 기분 나빠하거나 화를 낸다면, 혹시 그 사람이 버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유발할 만한 일이 없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비경계인의 고백]

 

직장에서의 귀가 시간이 5분이라도 늦어지면 아내는 내게 전화를 걸어 어디 있는지 알아 내려고 한다. 무선 호출기를 들고 출근해야 하며, 아내는 끊임없이 호출기를 울려댄다.

 

친구들과 외출할 수도 없다. 아내가 너무 싫어하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중에 호출 당하는 수도 있다.

스트레스가 심해 이제는 아내가 같이 나가지 않는 이상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도 그만두었다.

 

[경계인의 고백]

 

버림 받았다고 느낄 때의 내 감정은 고립감, 끔찍한 공포, 그리고 주위 모든 사람으로부터의 소외감 등이 뒤섞인 것이다. 나는 겁에 질려 당황한다. 배신 당하고 이용당한 느낌이다. 죽을 것만 같다.

 

어느 날 밤, 나는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텔레비전에서 하는 영화를 보고 있다면서 영화가 끝나면 전화하겠다고 했다. 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다리미질을 했다.

그는 전화하지 않았다. 좀 더 기다렸다.

 

여전히 벨이 울리지 않았다. 버림 받을 거라는 끔찍한 느낌이 다시 닥쳐왔다.

 

나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바로 전날, 이제 그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믿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밤 10시, 마침내 전화벨이 울렸을 때는 이미 그와 헤어지기로 마음 먹은 뒤였다.

 

그가 헤어지겠다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지워야 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고 보니 남자 친구는 그때까지 영화를 보고 있었다. 자신이 우스꽝스러웠지만, 내가 느꼈던 아픔, 공포, 심장을 찌르는 듯했던 불안감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잡았다, 네가 술래야]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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