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대거 개봉하면서 상영 횟수가 현저히 줄어 버린 영화다.
그래도, 감독이 [작은 아씨들] 의 그레타 거윅이고, 좋아하는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기에 주저없이 영화 관람을 추진했다.
어린 시절, 여자 아이들의 장난감 양대 산맥 '미미', '쥬쥬'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외국에선 '바비 인형'이 최고였나 보다.
영화가 '바비 인행' '바비랜드'를 활용해서 페미니즘적인 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창의성 측면에서 일단 기본 점수를 줘야 할 것 같다.
마고 로비도 바비 인형과 싱크로율이 놀랍고, 라이언 고슬링도 켄 이라는 남자 인형에 딱 맞는 느낌을 준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영상미 좋고, 음악도 좋은 작품에서 열연을 하니 영화관에서 관람을 하는 만족감은 상당했다.
여성 감독인 거윅이 이전에 [작은 아씨들]에서도 페미니즘 이야기를 제법 나눴던 걸로 기억한다. 원작이 주는 깊이와 완성도가 있다 보니 일단 기본적으로 + 가산점이 붙는 좋은 작품이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좀 더 노골적이고,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후반에 바비 인형을 좋아하던 엄마의 입을 통해서 소리치듯이 '여성이 받는 억압과 차별,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연출 자체가 세련되거나, 영리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너무 노골적이고, 불편할 정도로 이야기를 나열하긴 하는데 아마 관련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가장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대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는 바비랜드라는 인형 세상 (이 곳에서는 바비라는 여자 인형이 모든 세상의 중심이다. 대통령도, 의사도, 판사도 다 여자들이 차지하고 있고 남자 인형들은 여자 인형을 빛내주는 들러리일 뿐이다.)과 현실 세상 (이 감독이 그려내는 현실 세상은 인형 세상과는 정 반대의 모습인 듯 하다.
말로 상징되는 마초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성들이 임원을 독차지하고 있고, 여성들은 남성들을 빛내주는 소모품인 것처럼 묘사된다.)을 비교/대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며 살던 바비 인형(마고 로비)이 '죽음'에 대한 실존적 생각을 하게 되고, '불안'을 느끼게 되고, 뒷꿈치가 발에 닿게 되고, 셀룰라이트가 생기면서 인형 세상을 떠나 인간 세상에 와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간 세상에 놀러온 바비 인형은 현실 세상에서는 사랑받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한 자신의 이미지에 충격을 받게 되고, 남자 인형인 켄은 자신이 속해 있던 인형 세상에서와는 달리 현실 세상에서는 남성들이 세상을 주도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전율을 하게 된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시 인형 세상에 돌아온 남자 인형 켄이 바비랜드 (인형 세상)을 가부장적 느낌으로 바꿔 버리고, 그런 세상에 대한 면역력이 없고, 취약했던 바비 인형(여자)들은 전부 남자에게 종속되고, 사랑받는 삶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결국 뒤틀려 버린 바비 랜드를 다시 원래대로 회복하기 위해 바비 인형(마고 로비)과 일부 여성 인간들이 힘을 합치게 되고 남성들이 지닌 허영심, 질투심, 경쟁 의식 등을 이용해서 자멸을 유도하는 전략을 세운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노골적이고, 편파적이고,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모습으로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남/녀 대립 구도를 첨예화 시켜 나간다.
하지만 결론부에 가서는 결국 여자는 남자에 종속되지 않고, 남자도 여자에 종속될 필요 없이 '나는 나로서' 살아가면 된다고 이야기 한다.
나름대로 남/녀 균형을 맞춰 주려는 시도들이 자잘하게 들어가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제시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마지막에 남/녀 공존과 화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나서 남자 인형(켄)이 "법관 자리 하나 달라!" 라고 할 때, 바비 인형(여자)은 "대법관 자리는 못 주고, 하급 판사 자리는 줄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결국, 이 바비랜드에서 평화와 공존은 주창되었으나, 이에 대비되는 현실 세계에서처럼 아직 완전한 평등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현실 세상에서는 '여성'들이 아직 높은 요직을 제대로 가지 못했다는 걸 암시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늘 고민이 되지만, 남/녀의 평등이 정말 모든 것을 equal 하게 만드는 것이 맞는 걸까?
가령, 바비랜드에서 보여준 남성들의 모습은 그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고, 본능에만 충실한 속된 말로 물소 게이와 같았다.
그에 반작용(안티 테제)로 등장한 여성들의 모습은, 남성들을 자신들이 지닌 성적 매력으로 홀려 놓고,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여우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극단적인 이미지의 남/녀를 상정해 놓다 보니, 메시지의 전달력은 선명해 지고, 파워풀하지만 이런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도 혐오하게 되고, 이런 여성들이 지배하는 사회도 전혀 나을 것 같지가 않다.
남성 중심 사회가 역사적으로 오래 지속되어 왔으며 진화론적으로 힘이 있는 생명체가 힘이 없는 생명체를 힘으로 누르는 야만의 시대가 길었다 보니 여성들이 느끼는 억압은 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를 영화로 표현하려면 반대 급부인 여성들을 좀 더 편파적으로 세워주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들이 있는 것 같다.
여성의 인권이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은 늘 동의하지만 이 주장에 이르는 과정이나 방식에 있어서는 늘 고민이 된다. 결국 남/녀라는 성별을 기준으로 세상을 조망하다 보니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급히 절충하는 듯 마무리는 했지만 뭔가 영화에서 일관되게 보여주던 극단적인 전개와 마지막 결론이 부조화스럽게 느껴지긴 한다.
결국 우리는 의미와 목적 없이 그저 이 땅에 기투된 존재라는 실존주의적 사고로 세상을 조망하던 감독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신'을 끌어 들이는 방식을 택한다.
바비 인형을 만든 주체 (인형들에겐 '신'이다.)가 등장하면서 이들의 헛헛하고, 공허한 결론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려 한다.
그러나, 바비 인형(마고 로비)은 '자신이 인간이 되고 될까요?' 라고 허락을 구하자, 인형을 만든 주체(신)은, 그건 본인의 의지적 선택, 자유로운 결정이라고 이야기 한다.
결국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유신론적, 인격신은 아니고 이신론적인, 인간의 자유의지가 한껏 강조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절충한다. 마지막에 인간이 된 바비 인형(마고로비)는 부인과 선생님을 만난다 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는 무엇을 암시하는 걸까?
자신이 주체적으로 사랑할 남자를 선택하여 아이를 가졌다는 점?
본인의 삶에 '의미'를 찾기 위해 엄마가 되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점?
여러가지 열린 결말로 해석이 될 것 같다.
여성으로 태어나, 남성들은 할 수 없는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며 그러다 보니 아이 양육이라는 거대한 짐이 그들의 정체성, 주체성에 '고민거리'를 던져준다는 시사점.
인간으로 살아간다면 필연적으로 고민해 볼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이다.
이 저자의 시도는 늘 도전적이고, 참신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개별자로서만 존재하는 세상. 서로에게 영향을 주거나, 서로에게 종속되는 게 잘못되었다는 삶. 이 가치관에 있어서는 토론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모든 학문들도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철학과 지식이 발전적으로 창발된다는 들뢰즈의 리좀형 사고 방식은 이럴 때 필요한 개념이 아닌가 싶다.
이를 인간 사회에 적용해 본다면 모든 인간들은 개별자로서도 살아가야 하지만, 동시에 서로간에 상호작용으로 존재가 확립되는 부분도 분명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도 타인의 시선에 의해 즉자와 대자 등 썰을 풀었던 기억이 난다.
양자역학에서도 관측이라는 행위 자체가 '변화'를 일으킨다는 게 과학적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던가.
결국 미세한 입자부터 시작해서, 입자들의 합(+영혼?) 인 거시적인 인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존재를 확립해 나간다.
이런 섬세한 부분들까지도 남/녀 문제를 다룰 때 더욱 고민을 했었더라면 굉장한 명작이 나오지 않았을까?
마지막에 부인과 선생님을 찾는 인간이 된 바비 인형(마고로)의 모습에서 그런 작은 희망을 발견하긴 한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연출되고, 보여진 일련의 모습들은 '개별자'에만 집중하고, 이분법에 머무르며 (변증법적인 제 3의 결론 도출이 필요해 보이는데 남,녀로 양분되어 있음),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세상을 해석하다 답이 안 나오니 갑자기 신으로 도약을 한다. 그리고 그 신은 있으나, 마나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격신이 아니다 보니,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줄 만한 당위성도 없다.)
다소 철학적으로 빠져 버렸지만 영상미와 배우들의 연기, 현란한 음악 만으로도 수작의 반열에 올려둘만한 좋은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 줬다는 점에서 근래에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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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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