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아'라는 정체성에 별다른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아마 남들 앞에 나서서 자기소개를 하라는 요구를 받으면 머릿속에 재빨리 자아에 대한 심상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면서 나라는 존재는 자명한 것이고, 타인은 타인이라고 생가한다.
그러나 과연 나와 타자의 구별이 그렇게 분명한가?
오히려 자아 역시 나에게 낯선 타자이자 자꾸 변하는 대상이 아닐까?
거울 단계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라캉의 답이다.
라캉은 자아가 외부로 투영된 신체 이미지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동일시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라 말한다.
거울 단계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인식의 기준이 되는 자명한 자의식이나 선험적이고 절대적인 자아는 없다는 것이다.
자아는 어느 순간 나의 이미지를 다른 대상 이미지로부터 분리하고, 그것에 고착됨으로써 가능해진다.
거울 단계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이미지에 열광하는 것은 그것이 외부 세계에서 처음으로 가시화된 자신의 신체를 보여주면서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외부로 가시화된 이미지는 내 것이기도 하지만 실은 주체의 나르시시즘이 투사되는 타자적 대상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단지 신체가 가시적 공간에 반영된 것으로 나와 마주해 나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그림자다.
그런데 신체 이미지는 나의 내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한갓 대상일 뿐이기에 주체에 대해 언제나 타자로만 머물며 이상화되기 쉽다. 이처럼 최초 주체의 구성 순간이 타자적인 거울상에 의해 매개되는 것은 주체의 욕망을 소외된 구조로 만든다. 라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체가 스스로를 발견하고 제일 먼저 느끼는 곳은 타자 속에서다. .... 헤겔의 사유가 말해주는 것은 인간의 욕망 자체가 매개된 욕망, 즉 자신의 욕망에 대해 알게 하려는 욕망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라캉 [정신적인 인과성에 관한 설명, 에크리]-
여기서 타자는 실제 타자를 의미할 수도 있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주체가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대상으 주체의 타자다. 예컨대 어린아이는 장난감을 던지거나 훼손하면서 그러한 놀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인간은 타자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때만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조적으로 인간의 욕망은 나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과 그것이 겨냥하는 대상을 향하게 된다. 욕망은 순수하게 나의 내면적 의지를 표현하는 것 같지만, 타자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는 점에서 소외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중에 라캉은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고,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론이라고 정식화한다. 인간이 타자에 대해 의존적이 되는 것은 최초로 주체를 구성할 때 타자화된 이미지라는 매개를 통해 구성된다는 것과 관련이 깊다.
자아는 대상화된 나의 신체 이미지를 매개로 구성되기에 본질적으로 타자이고 안정적이지 못하다. 자아 구성의 이러한 역설을 라캉은 오인(misunderstanding)의 구조 라고 말한다.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는 것은언제나 오인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자아가 타자라는 말은 이런 소외된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다.
다음으로, 거울 단계는 소외에서 발생하는 공격성을 유발한다. 공격성이 발생하는 것은 이미지와 현실의 분열 때문이고, 이상화된 자아가 육체적인 불안과 미숙을 완전하게 덮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라르의 이론과 접점이 있는 듯)
거울 단계의 나르시시즘적 동일시는 안정된 자아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최초 분열의 순간이다. 거울 이미지는 실제 육체의 현실이 아니라 이상화된 나의 모습만을 상상적 공간에 투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후 6개월~1년 된 아이는 운동 신경의 발달이 미숙해 아직 자신의 몸을 완전하게 통제하지 못하며 몸이 주는 감각들도 파편화된 형태로 느낀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모습은 이상화된 전체로 나타나기 때문에 아이는 자신의 몸이 보여주는 완벽한 조화에 환호하면서 끌리게 된다. 그러나 아이가 이미지에 끌리면 끌릴수록 아이가 느끼는 실제 몸의 현실은 완벽한 자아의 상에 균열을 낳는다. 이렇듯 실제 몸의 불완전성과 이미지의 완벽함이 최초의 분열과 불안을 낳으면서 자아의 일체감을 위협하는 게 거울 단계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 때 파편화된 몸과 통일된 이미지의 대립을 위태롭게 봉합하는 것이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나르시시즘은 언젠가 실현될 완벽한 자아를 환상적으로 기대하게 만드는데, 이러한 환상적 예견은 이후 모든 대상 관계에 깊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거울 단계가 상상계를 구성하는 것은 이러한 환상과 관계가 깊다. 인간이 욕망의 대상에 도달하지 못하면서 언제나 완벽한 욕망의 충족을 꿈꾸는 것도 거울 단계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나르시시즘은 자아의 분열을 완전하게 봉합하지 못한다. '조각난 몸'의 느낌은 환상적 형태로 주체를 위협하며, 그러므로 주체는 이상화된 자아에 대해 끌리면서도 무의식적 공격성을 드러낸다.
라캉은 프로이트가 죽음 충동의 파괴적 성향과 성애에 깔린 양가성(사랑과 미움)의 분석을 통해 강조한 공격성을 거울 단계와 연관 지어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주체는 한편으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자기애를 갖지만 동시에 불안감을 느끼면서 그것을 파괴하고자 한다. 이미지는 나이면서 동시에 이질적인 타자이기 때문이다.
마치 나르키소스(Narkissos)가 샘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잡으려다 죽은 것처럼, 자아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애착에는 이러한 자살적 성향이 깔려 있다. 이러한 관계는 모든 외부적인 대상 관계에 적용된다. 타자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사실상 긴장과 갈등의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공격성에 대한 방어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도덕률이 강조된다.
도덕 규칙과 박애의 강조는 사실은 견딜 수 없는 타자의 존재에 대한 공격성과 불안에 대한 일종의 도피이자 방어다.
주체는 언제나 타자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갖는데 이러한 불안감과 상상적 안정감이 기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이 상상계의 본질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이 체질적으로 공격성을 많이 보이는 것은 거울 단계에서 느끼는 조각난 몸의 환상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분열은 인간이 언어를 배우고 상징계에 들어가면서 더욱 심화된다.
-[프로이트&라캉, 무의식에로의 초대]에서 -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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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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