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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가 대거 개봉하면서 상영 횟수가 현저히 줄어 버린 영화다.

그래도, 감독이 [작은 아씨들] 의 그레타 거윅이고, 좋아하는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기에 주저없이 영화 관람을 추진했다. 

 

어린 시절, 여자 아이들의 장난감 양대 산맥 '미미', '쥬쥬'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외국에선 '바비 인형'이 최고였나 보다.

영화가 '바비 인행' '바비랜드'를 활용해서 페미니즘적인 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창의성 측면에서 일단 기본 점수를 줘야 할 것 같다.

마고 로비도 바비 인형과 싱크로율이 놀랍고, 라이언 고슬링도 켄 이라는 남자 인형에 딱 맞는 느낌을 준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영상미 좋고, 음악도 좋은 작품에서 열연을 하니 영화관에서 관람을 하는 만족감은 상당했다.

여성 감독인 거윅이 이전에 [작은 아씨들]에서도 페미니즘 이야기를 제법 나눴던 걸로 기억한다. 원작이 주는 깊이와 완성도가 있다 보니 일단 기본적으로 + 가산점이 붙는 좋은 작품이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좀 더 노골적이고,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후반에 바비 인형을 좋아하던 엄마의 입을 통해서 소리치듯이 '여성이 받는 억압과 차별,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연출 자체가 세련되거나, 영리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너무 노골적이고, 불편할 정도로 이야기를 나열하긴 하는데 아마 관련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가장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대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는 바비랜드라는 인형 세상 (이 곳에서는 바비라는 여자 인형이 모든 세상의 중심이다. 대통령도, 의사도, 판사도 다 여자들이 차지하고 있고 남자 인형들은 여자 인형을 빛내주는 들러리일 뿐이다.)과 현실 세상 (이 감독이 그려내는 현실 세상은 인형 세상과는 정 반대의 모습인 듯 하다.

 

말로 상징되는 마초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성들이 임원을 독차지하고 있고, 여성들은 남성들을 빛내주는 소모품인 것처럼 묘사된다.)을 비교/대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며 살던 바비 인형(마고 로비)이 '죽음'에 대한 실존적 생각을 하게 되고, '불안'을 느끼게 되고, 뒷꿈치가 발에 닿게 되고, 셀룰라이트가 생기면서 인형 세상을 떠나 인간 세상에 와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간 세상에 놀러온 바비 인형은 현실 세상에서는 사랑받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한 자신의 이미지에 충격을 받게 되고, 남자 인형인 켄은 자신이 속해 있던 인형 세상에서와는 달리 현실 세상에서는 남성들이 세상을 주도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전율을 하게 된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시 인형 세상에 돌아온 남자 인형 켄이 바비랜드 (인형 세상)을 가부장적 느낌으로 바꿔 버리고, 그런 세상에 대한 면역력이 없고, 취약했던 바비 인형(여자)들은 전부 남자에게 종속되고, 사랑받는 삶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결국 뒤틀려 버린 바비 랜드를 다시 원래대로 회복하기 위해 바비 인형(마고 로비)과 일부 여성 인간들이 힘을 합치게 되고 남성들이 지닌 허영심, 질투심, 경쟁 의식 등을 이용해서 자멸을 유도하는 전략을 세운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노골적이고, 편파적이고,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모습으로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남/녀 대립 구도를 첨예화 시켜 나간다.

하지만 결론부에 가서는 결국 여자는 남자에 종속되지 않고, 남자도 여자에 종속될 필요 없이 '나는 나로서' 살아가면 된다고 이야기 한다.

 

나름대로 남/녀 균형을 맞춰 주려는 시도들이 자잘하게 들어가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제시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마지막에 남/녀 공존과 화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나서 남자 인형(켄)이 "법관 자리 하나 달라!" 라고 할 때, 바비 인형(여자)은 "대법관 자리는 못 주고, 하급 판사 자리는 줄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결국, 이 바비랜드에서 평화와 공존은 주창되었으나, 이에 대비되는 현실 세계에서처럼 아직 완전한 평등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현실 세상에서는 '여성'들이 아직 높은 요직을 제대로 가지 못했다는 걸 암시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늘 고민이 되지만, 남/녀의 평등이 정말 모든 것을 equal 하게 만드는 것이 맞는 걸까?

가령, 바비랜드에서 보여준 남성들의 모습은 그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고, 본능에만 충실한 속된 말로 물소 게이와 같았다.

 

그에 반작용(안티 테제)로 등장한 여성들의 모습은, 남성들을 자신들이 지닌 성적 매력으로 홀려 놓고,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여우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극단적인 이미지의 남/녀를 상정해 놓다 보니, 메시지의 전달력은 선명해 지고, 파워풀하지만 이런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도 혐오하게 되고, 이런 여성들이 지배하는 사회도 전혀 나을 것 같지가 않다.

남성 중심 사회가 역사적으로 오래 지속되어 왔으며 진화론적으로 힘이 있는 생명체가 힘이 없는 생명체를 힘으로 누르는 야만의 시대가 길었다 보니 여성들이 느끼는 억압은 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를 영화로 표현하려면 반대 급부인 여성들을 좀 더 편파적으로 세워주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들이 있는 것 같다.

여성의 인권이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은 늘 동의하지만 이 주장에 이르는 과정이나 방식에 있어서는 늘 고민이 된다. 결국 남/녀라는 성별을 기준으로 세상을 조망하다 보니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급히 절충하는 듯 마무리는 했지만 뭔가 영화에서 일관되게 보여주던 극단적인 전개와 마지막 결론이 부조화스럽게 느껴지긴 한다.

 

 결국 우리는 의미와 목적 없이 그저 이 땅에 기투된 존재라는 실존주의적 사고로 세상을 조망하던 감독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신'을 끌어 들이는 방식을 택한다.

바비 인형을 만든 주체 (인형들에겐 '신'이다.)가 등장하면서 이들의 헛헛하고, 공허한 결론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려 한다.

 

그러나, 바비 인형(마고 로비)은 '자신이 인간이 되고 될까요?' 라고 허락을 구하자, 인형을 만든 주체(신)은, 그건 본인의 의지적 선택, 자유로운 결정이라고 이야기 한다.

결국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유신론적, 인격신은 아니고 이신론적인, 인간의 자유의지가 한껏 강조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절충한다. 마지막에 인간이 된 바비 인형(마고로비)는 부인과 선생님을 만난다 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는 무엇을 암시하는 걸까?

자신이 주체적으로 사랑할 남자를 선택하여 아이를 가졌다는 점?

본인의 삶에 '의미'를 찾기 위해 엄마가 되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점?

여러가지 열린 결말로 해석이 될 것 같다.

여성으로 태어나, 남성들은 할 수 없는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며 그러다 보니 아이 양육이라는 거대한 짐이 그들의 정체성, 주체성에 '고민거리'를 던져준다는 시사점.

인간으로 살아간다면 필연적으로 고민해 볼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이다.

이 저자의 시도는 늘 도전적이고, 참신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개별자로서만 존재하는 세상. 서로에게 영향을 주거나, 서로에게 종속되는 게 잘못되었다는 삶. 이 가치관에 있어서는 토론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모든 학문들도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철학과 지식이 발전적으로 창발된다는 들뢰즈의 리좀형 사고 방식은 이럴 때 필요한 개념이 아닌가 싶다.

 

이를 인간 사회에 적용해 본다면 모든 인간들은 개별자로서도 살아가야 하지만, 동시에 서로간에 상호작용으로 존재가 확립되는 부분도 분명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도 타인의 시선에 의해 즉자와 대자 등 썰을 풀었던 기억이 난다.

 

양자역학에서도 관측이라는 행위 자체가 '변화'를 일으킨다는 게 과학적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던가.

결국 미세한 입자부터 시작해서, 입자들의 합(+영혼?) 인 거시적인 인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존재를 확립해 나간다.

이런 섬세한 부분들까지도 남/녀 문제를 다룰 때 더욱 고민을 했었더라면 굉장한 명작이 나오지 않았을까?

마지막에 부인과 선생님을 찾는 인간이 된 바비 인형(마고로)의 모습에서 그런 작은 희망을 발견하긴 한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연출되고, 보여진 일련의 모습들은 '개별자'에만 집중하고, 이분법에 머무르며 (변증법적인 제 3의 결론 도출이 필요해 보이는데 남,녀로 양분되어 있음),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세상을 해석하다 답이 안 나오니 갑자기 신으로 도약을 한다. 그리고 그 신은 있으나, 마나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격신이 아니다 보니,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줄 만한 당위성도 없다.)

다소 철학적으로 빠져 버렸지만 영상미와 배우들의 연기, 현란한 음악 만으로도 수작의 반열에 올려둘만한 좋은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 줬다는 점에서 근래에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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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있음*

 

영화가 생각보다 묵직하다.

집도 없고, 일도 안 하는 가장과 아들, 딸, 아내까지 데리고 고속도로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가족. 아내는 셋째까지 임신한 상태...

 

이들이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은, 지나가는 고급 승용차에 접근하여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핑계를 대고 2만원을 빌린다. 상대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면 불쌍한 아이들을 등장시킨다.

 

이런 식으로 일당(?)을 벌고 나면, 휴게소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근처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잔다.

 

현대 사회의 양극화와 무지로 인한 무책임한 가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영화일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다루는 주제들도 심도가 있었던 영화다.

 

아버지로 나오는 정일우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걸로 묘사된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조합원 가입 등을 하다 아마 사기를 당한 것 같다. 그로 인해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내면에 가득 차 오르고, 이젠 타인에 대한 '피해 망상'과 '환청, 환시' 까지....

 

 

마치 정일우의 모습은 '조현병'으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인간에 대한 소외, 지독한 고립감, 타인에 대한 피해의식, 지독한 가난...이 모든 요소들은 조현병 발병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들이라 볼 수 있는데 그런 지독한 병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가 순간순간 병마를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건 사랑하는 가족들의 인정과 사랑, 용납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 무책임하게 아이만 잔뜩 낳고 대책없어 보이는 가장의 모습이 한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문제가 단순하진 않다. 부동산 공화국에서 '내 집 마련'을 하려는 노력을 했을 뿐이고, 자녀 양육을 '민영화' 시키는 현대 사회 속에서 국가와 사회, 그 어디로부터 도움을 받을 길이 없다. 화장실에 붙어 있는 '대출 광고 전단지'만 야속하게 우리를 유혹하고, 잘못 꼬였다가 인생이 파탄나고, 존재가 무너지는 고통을 당하기 십상이다.

 

 

이 와중에도 해맑게 웃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아들의 모습은 '지옥같은 현실 속에서 병들어가는' 아버지의 모습과 대조된다.

 

이 영화 속에는 '부조리'가 가득 담겨 있다.

 

누군가는 고속도로에 외제차를 끌고 와서 즐거운 여행을 하고 플렉스를 즐기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집이 없고, 오늘 하루 먹을 음식도 마땅치 않다. 조현병과 비슷한 병이 있는 상태라면 아마 취직도 어려울 것이다. 일단 아이들은 태어나 버렸고, 고아원 출신의 아내도 힘겹게 버티고 있을 뿐이다.

 

사회로부터 받은 배신감과 소외감, 거부감이 너무도 강했기에 타인을 믿을 수 없고, 타인에 대한 '망상 수준의 거부감'은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타인과의 접촉 자체를 못 하게 만드는 동인이 된다.

 

부동산으로 인해 한 가정의 존재가 말살 당하기 직전이다.

 

 

이 영화는 다른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배우 라미란 가정을 함께 보여준다.

 

아마, 아들이 학교에서 수학여행(?) 같은 걸 갔다가 사고를 당해 죽은 것 같다.

(맞는지 잘 모르겠다.)

이는 마치 씨랜드 화재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킨다. 두 부부는 중고가구를 판매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데 경제적으로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나 '자녀를 사별한 상실감'이 가슴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부부관계도 하기 어렵고, 서로 마음을 터놓고 상처를 치유하지도 못하고 있다.

 

우연히 고속도로에서 사기를 치고 있던 정일우 가족을 만나게 되고, 그 가족을 경찰에 신고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라미란은 결국 경찰서에 구금된 정일우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을 자신의 가구점으로 데려오고, 밥을 먹이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자녀를 잃은 상실감, 공허한 가슴'을 이 아이들을 거둠으로써 달래고 있는 양상인데, 묘하게도 이들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서로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데 힘을 보태준다.

 

영화 속에서는 식당에서 "사고로 자녀의 목숨을 잃은 유가족들이 나라에서 보상금을 받아 먹으려고 쇼를 한다. 우리 세금이 너무 아깝다." 는 식의 대사가 나오기도 하는데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아픈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 지옥에서 구원받을 수 없는 정일우는 환각과 망상 속에서 울부짓는데, 교회의 십자가 첨탑이 무심하게 카메라에 함께 잡힌다.

(현대 교회가 이 사회의 아픔에 대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신에 대한 존재론적 고뇌가 느껴지는 연출이었다.)

 

굳이 중고가구점에 티벳 출신 직원이 배치되어서, 어린 막내 아이를 앞에 두고 '영원 회귀?' 비슷한 썰을 푸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 감독은 이와 같은 '동양의 종교' 속에서 지금의 '지옥같은 현실'을 견뎌낼 대안을 찾으려고 하는게 아닌가 싶다.

(아닐 수도 있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바이다.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이 지옥같은 현실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는 끝내 경찰서를 탈출한 정일우가 중고가구점에 난입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치닫는다.

 

내가 기대하는 해피 엔딩은 라미란 가족이 정일우까지 포용해 줌으로써 이 친구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먹고 잘 치료 받으며 경제적인 도움도 받고 함께 살아가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결국 정일우는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불길로 뛰어들어 죽게 된다.

 

이 정신질환을 제대로 돌봐줄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너무 부족하다. 인력도 부족하고, 처우도 부실하고, 일단 사회 전반적으로 이 질환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떨어진다.

 

영화 속에서도 정일우의 기이한 행동들에 대해 누구 하나 제대로 대처하거나,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다. 그냥 미친 사람이고, 피해야 할 사람, 우리에게 해를 끼치니 벌을 받아야 할 존재로 묘사된다.

 

이 단계까지 오지 않도록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좀 더 만들어져야 할 텐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가슴이 저미는 장면들이었다.

 

조현병에 대한 묘사........ 국내 영화 중에 이 묘사를 제대로 끌어낸 작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고속도로 가족]을 보면 될 것 같다.

 

해외 영화로는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쉬가 조현병에 걸린 모습을 보여주지만, 다소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다.

 

와해된 행동과, 인간에 대한 공격성, 환청/망상

 

한 가정의 아버지가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잘 담겨져 있다.

 

그러나, 결국 누군가의 희생으로....

또한 누군가의 이타적인 도움과 헌신으로....

 

남은 가족들은 더 나은 삶을 찾게 되어 아픔을 딛고 일어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교회가 진정 기능해야 할 지점이 바로 이런 부분인데, 지금의 교회는 반대편에 서서 이들을 탄압하는 일에 힘을 쓰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도 있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마이너, 소수일 뿐...)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 양극화가 심해지면 고속도로 가족 비슷한 모습이 나오지 말란 법이 있을까?..

 

묵직한 영화의 메시지를 두고두고 숙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슬기도, 정일우도, 라미란도 다른 배우들도 연기가 너무 좋았다. '

 

 

*사진은 구글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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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포가 있으니 아직 영화 안 보신 분들은 나중에 보세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세번째 작품이다.

 

사실 너무 많은 마블 영화를 봐서 그런지 이전 스토리가 잘 기억나진 않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B급 감성의 개그 코드와 훌륭한 연출, 개성있는 캐릭터, 깔끔한 스토리, 볼만한 액션 등 1,2편 모두 꽤 잘 만든 마블 작품이었다는 흐릿한 잔상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가오갤 시리즈는 일단 종료가 된건가 보다.

 

시리즈의 간판 주연인 너구리 로켓이 이번 영화에서 주요한 스토리 라인을 담당했는데, 로켓에게 그와 같은 출생의 비밀이 있을 줄이야.....

 

이 작품은 최근 마블 작품 중에서 단연 돋보였다.

 

 

헐리우드 영화들이 요즘 진지하게 밀고 있는 '가족 사랑', '아이와 같은 약자들 지키기' 등의 주제는 여전하지만 이에 덧붙여서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는 주제 의식'이 합쳐지면서 영화의 완성도가 확연히 올라간 느낌이다.

 

"너를 규정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다."

 

로켓이 동물 너구리였으나, 생체 실험을 당해서 인간처럼 말을 하게 되고 2족 보행을 하게 된 사연들. 그리고 자신처럼 개조 당했던 친한 친구들이 비참하게 죽임 당했던 사실들.

 

그냥 우스꽝스러운 개그 캐릭터에 불과해 보였으나, 사실은 가슴 저미는 사연을 가졌다는 설정. 그리고 자칫 소외될 수 있는 캐릭터를 전체 스토리 라인의 핵심에 배치함으로써 과거 회상과 현재 진행 화면을 교차해 가면서 스피디하게 전개하는 연출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시기적절하게 들려오는 OST 는 단연코 훌륭했다. 라디오 헤드의 [CREEP] 으로 시작해서 여러가지 클래식한 명곡들이 들려오는데 귀도 즐겁고, 보는 맛도 있고, 캐릭터도 살아 있고, 이야기도 루즈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각각의 캐릭터들에게 예우를 다하고, 정성을 쏟은 것처럼 이번 가오겔 Vol3 마지막 작품도 한명의 캐릭터도 버리지 않고, 각각의 개성과 내면을 깊게 표현해 줘서 그 만큼 완성도가 올라가고 보는 맛이 있었던 것 같다.

 

 

1.우리가 기대하던 가모라가 아니라, 가모라 스스로가 선택한 그녀의 모습,성격,삶.

 

2.어머니나 하이 레볼루셔너리(이번 작품의 메인 빌런)가 규정하는 워록이 아니라 작은 동물도 아낄 줄 알고, 다소 찌질한 모습 그대로지만 주인공인 피터를 죽음에서 건져줄 수도 있는 성품을 지닌 존재다.(물론 기존 원작에서는 타노스의 유일한 친구이자,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지만 이 작품만 봐서는.?)

 

3.너구리인 로켓은 하이 레볼루셔너리가 규정한 '흉물스런 실험체'가 아니라, 모두가 아끼고 사랑하며 똑독하며 리더십도 있어 차기 가오겔 캡틴이 될만한 멋진 존재이자 라쿤이다.

 

4.드랙스는 주변에서는 머리가 나쁘고, 멍청하다고 놀리지만 사실은 유일하게 우주선에 갇힌 아이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아이들을 웃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성품을 지닌 아버지 상이다. (파괴자가 아니라.)

 

...

 

이런 식으로 메인 캐릭터들이 지닌 개성들을 본인 스스로 규정하고, 찾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장면을 할애해 주고 이 속에서 메인 스토리가 멀어지거나 삼천포로 빠지지 않게 적절하게 조율하는 걸 보면서 이 작품을 연출한 제작진의 능력에, 그리고 제임스 건 감독의 역량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마지막에 로켓이 자신의 이름 '라쿤'(너구리) 를 되찾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연약한 아기 너구리들을 감옥에서 탈출시키는 장면은 '자신이 받은 끔직한 상처'가 대물림 되지 않도록 자신의 아픔으로 상대를 구원해 주고, 자신 스스로도 내면의 트라우마에서 해방되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녹여낸 것 같아 특히 마음에 든다.

 

 

로켓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다시 이승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이라든지, 자신이 실험체임을 자각하며 괴로워하는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JRPG 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느꼈을 법한 깊고, 내밀한 인상을 받기도 했다.

(파이널 판타지7 가 북미에서 히트를 쳤었는데, 핵심 주제가 일치한다. 그리고 사후세계 비슷한 연출들은 마치 [귀멸의 칼날] 서구판을 보는 듯 했다.)

 

이렇게 내적인 요소들을 잘 살려주면서 좀 더 큰 시야로는 동물 보호(생명 존중 사상), 카운터-어스 속에서 인간과 똑같은 행동을 일삼는 이상사회를 보면서 '인간이라는 실존의 한계', '신이 없는 듯 한 세상의 모습으로 인해 자신 스스로가 신의 역할을 대리하려 하였으나 결국 이 작업은 신 이외에는 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겨준 듯한 하이 레볼류셔너리의 모습' 등 상당히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거시적인 요소들도 함께 잘 녹여낸 작품이다.

 

액션씬도 멋지고, 군더더기 없었으며 가오겔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 있어서 좋았다.

 

주변에 가오겔을 도와주는 크레글린이라든지, 말하는 강아지 코스모 등 한명도 버리지 않고 꼼꼼하고, 섬세하게 영화 속에서 역할을 부여 받았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최근 마블이 비실비실하고, 작품들을 영화관에서 볼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지만 가오겔3 는 간만에 마블다운 작품이 나온 것 같다.

 

이후 작품들도 내적인 요소, 외적인 요소, 전체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들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잘 담겨져 있으면 좋겠다. 아직 풀어내야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특히 최근 사이비 종교 관련 다큐, 넷플릭스 작품이 소개되면서 하이 레볼루셔너리의 모습에서 사이비 교주의 모습이 보였는데 이런 부분으로 접근해서 생각해보 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요즘 헐리우드 영화들이 '아이들 보호','약자 보호', '생명 존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데, 최근 미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총기 사고(학교에서 벌어지는) 등의 소식들을 듣고 있노라면 뻔한 주제일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그런 부분들을 알리고,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에서 얻을 만한 교훈적 요소들은 참 많다.)

 

(마지막에 그루트가 '사랑해 모두들' 이라고 외쳐주는 장면도 감동적이고, 모든 캐릭터들이 마지막까지 소중한 엔딩을 장식했다는 점은 자꾸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운 시리즈의 마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영화관에서 꼭 보는 걸 추천한다.

이후의 마블 작품들도 이런 깊이와 재미와 감동이 잘 담긴 작품으로 나와주길 바라며....

 

제임스 건 감독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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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영화화 한 작품 중에 성공한 작품이 많지 않다.

(이전에 파이널 판타지의 애니 버전인 '어드벤트 칠드런' 편은 제법 괜찮았다...그 이외에는 딱히 기억에 남는 게....)

 

요즘은 게임, 웹툰이나 만화책도 영화화 되는 세상이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워낙 많다 보니 기억에 남는 작품이 별로 없다.

 

일본에서 좋아하는 실사화 영화들은 <바람의 검심> <기생수> 등 몇 작품 빼고는 잘 만든 작품 떠올리기가 쉽지 않듯이, 애니메이션,게임 등을 영화화 한 경우도 실사화로 간 경우에는 흑역사 작품들이 많다. (ex) 드래곤볼, 스트리트 파이터.....)

 

이 작품은 그래도 실사화로 가지 않고 에니메이션으로 노선을 잘 탔기 때문에 충분히 위화감 없는 감상이 가능했다.

 

마리오와 피치 공주

 

무엇보다도 슈퍼 마리오를 게임으로 즐겨온 세대들로서는 향수를 자극할 만한 팬 서비스 요소들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슈퍼 마리오에서 심오한 스토리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슈퍼 마리오를 자세히 분석하거나, 공부한 적은 없다 보니, 세계관은 정확히 모른다. 대략적으로 유추만 할 뿐? 기껏해야 슈퍼 마리오 1,2,3 정도 즐기고, 최근 닌텐도 스위치로 나온 '슈퍼 마리오 오딧세이' 정도를 소장하고 있을 뿐이다.)

 

뉴욕의 배관공 형제 마리오와 루이지가 신비로운 버섯 왕국에 가서 쿠파 대마왕과 싸우고 피치 공주를 구해내는 이야기?

 

-> 일단 게임의 주 설정은 이런 정도였다면 이 작품은 요즘 페니미즘의 영향력을 반영해서 인지 피치 공주가 싸움을 잘하고, 주도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요즘 이 공식은 거의 불변인 것 같다. 여성이 남성에게 의지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작품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나름대로 피치 공주의 액션도 재미있고, 진취적인 성격을 보는 것도 즐겁다.)

 

이 작품은 게임을 즐기지 않은 사람이 본다면 다소 유치하고, 단순하다고 느낄 만한 구조다.

 

그러나, 게임의 디테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버섯이나 불꽃을 통해 능력을 획득한다든지, 특정 버섯을 먹고 캐릭터가 작아진다든지, 나뭇잎을 먹으면 너구리? 로 변신을 한다든지 ..... 기억 속의 물고기 몬스터나 거북이 몬스터들을 볼 수 있다든지...... 순간순간 2D 게임 화면처럼 횡스크롤로 화면이 전환된다든지....... 배관을 타고 순간 이동을 한다든지 ... 이런 다양한 요소들에서 재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루이지와 마리오...두 형제

 

"아는 만큼 즐겁다"

 

이 작품을 두고 하는 이야기 같다.

 

슈퍼 마리오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가장 깔끔하고 재미있는 구성.

 

아름다운 버섯 왕국을 큰 스크린으로 구경하고, 화려한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캐릭터들의 역동적인 액션을 구경하고, 추억의 BGM 이 약간 세련된 형태로 재구성되어 귓가를 맴돌 때 느끼는 그 희열.

 

특히 슈퍼마리오라는 게임 자체가 스토리가 강조되는 RPG 가 아니라, 횡스크롤 액션 게임에 가깝다 보니 게임 속에 상상력을 일부 더해서 이를 1시간 30분 경의 시간 동안 스크린 속에 가득 담아냈다는 점 만으로도 나름대로 이 작품의 노고와 의의는 충분하다 생각한다.

 

게다가 동키콩이나 마리오카트, 요시 아일랜드 등 다양한 닌텐도의 자매품 게임 요소까지 깜작 출현을 해 주면서 마치 '마블 유니버스', 'DC 유니버스'와 같은 새로운 세계관이 시작된 듯한 전개도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에 쿠키 영상에서 후속편으로 '요시'가 출현할 것을 암시한 걸로 봐서 앞으로 차기작을 구경하는 재미도 남겨지게 된 셈이다.

요즘 <슬램덩크> 도 그렇고, 80~90년대가 문화의 황금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 시절 우리와 함께 했던 작품 속 캐릭터, 작품 속 세상들은 요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결여될 때, 사람들은 과거로 눈을 돌린다는데 요즘 불고 있는 문화적 레트로 열풍이 한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결과라 생각하면 헛헛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단, 슈퍼 마리오 게임을 즐기고 사랑했던 이들에게 한정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게임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보기에는 많이 유치하고, 단조로울 것이다. 영화관을 가득 채운 어린아이들의 함성 소리만 듣고 나올 수 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젤다의 전설>, <파이널 판타지>, <드래곤 퀘스트>, <테일즈 시리즈>, <이스 시리즈> 등 다양한 작품들도 이런 식으로 애니메이션 화되어 나왔을 때 잘 뽑혀서 나올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요즘 콘솔 게임계에서는 과거의 명작들을 리메이크, 리마스터 하는 붐이 일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렇게 그 작품들을 영화화 하는 바람도 불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노스텔지어를 느껴보고 싶은 이들에게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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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 속에 들어 있는 감정을 담당하는 캐릭터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

(우리나라 웹툰 [유미의 세포들]도 참신하지만, 인사이드 아웃을 위시한 픽사의 명작 애니들을 보면 소재의 참신성에 있어서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픽사다운 창의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무엇보다 이러한 창의력을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표현해내는 그들의 저력이 대단하다.

 

Joy(기쁨), sadness(슬픔), disgust(혐오,까칠), anger(분노), 소심(fear) 5가지의 성격이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며 귀엽게 캐릭터화 된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고 훈훈하다.

 

 

대상이 느끼는 '감정'들이 구슬 같은 모양으로 '입력'이 되고 이게 '장기 기억소'로 가서 보관된다는 발상이나 우리의 삶 속에서 아주 중요한 핵심 기억이 있어서 이러한 '핵심 기억'이 '인격'이라는 '섬'을 형성한다는 해석은 특히  심리학적으로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emotion, long-term memory, core memory, personality 등 주요한 개념들이 어린 아이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전달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라일리의 '핵심 기억'은 주로 joy(기쁨)으로 기억되었고, 이러한 핵심 기억 덕분에 주인공인 라일리의 마음 속에는 인격을 형성하는 다양한 섬이 만들어 진다.

 

친구와의 우정을 다루는 '우정섬', 가족간의 친밀함이 만들어낸 '가족섬', 그 이외에도 엉뚱하고 유쾌한 삶을 좋아하는 '엉뚱섬', 자신이 자신있게 즐길 수 있는 활동인 '하키섬', 잘못한 것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정직섬' 등 말이다.

 

그러나 마냥 행복하게만 보이던 라일리의 삶은 아빠의 직장 문제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급변하게 된다.

 

이젠 미네소타에 살았던 때처럼 넓은 정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밀감을 쌓았던 친구들도 없고, 집도 허름해졌다.

 

 

 

Joy 가 주를 이루던 라일리의 마음 속에는 다른 마음이 틈타기 시작한다.

그리고 처음 전학간 학교에서 학우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면서 그만 눈물을 흘리며 다른 감정들에 사로잡히고 만다.

 

이러한 작다면 작을 수도 있는 사건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났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라일리의 성격을 이루는 인격의 섬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이 영화가 표현해 내는 라일리의 머릿속은 정말 다채롭다.(환상적이다라고 말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각 캐릭터의 개성도 적절하게 살아 있고, 꿈에 대한 묘사라든지 어린 시절 상상 속에만 등장했던 코끼리와 고양이와 돌고래를 섞어둔 동물의 등장은 creativitiy 의 절정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추상화시키는 공간' 속에 joy sadness와 상상의 동물이 들어 갔을 때 '형태'를 잃게 되고, 3차원에서 2차원으로 번형되어서  이 되어버리는 scene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라일리가 자신만을 좋아해 주는 가상의 남친을 설정해 둔 점. 그리고 그 남친들을 쭉 타고 낭떠러지를 건너는 부분은 와~ 대박! 이라는 탄성을 내지르게 해줬다. 연출이 기가 막힌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 중 중요한 부분은 슬픔에 대한 재고이다.

 

기쁨 만을 라일리에게 주고 싶어하는 joy 는 도중에 ‘sadness’을 놔두고 자신만 라일리에게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상상의 동물이 자신이 아끼던 로켓(수레)을 잃어버려 낙심하고 있을 때 그 동물을 위로해 줄 수 있었던 건 joy가 아니라 sadness였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결국 joy sadness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라일리는 슬퍼야 할 때 그 슬픔을 표출함으로써 가족들로부터 다시 용납을 받는다.

 

이 때 무너져 내렸던 '가족섬'은 다시 생기를 되찾게 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때 ‘핵심기억’이 형성되는데 이건 순전히 ‘기쁨’으로만 구성된 구슬이 아니라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새로운 종류의 구슬’이었다.

(이런 부분들은 '파괴는 진화의 시작이다'라는 문구를 표방한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문구라든지, 정/반(테제,안티테제)가 부딪혀 합을 만들어 내는 헤겔의 변증법을 떠올리게 만든다.)

 

 

결국 5가지의 감정들이 더욱 조화를 이루게 되면서 다양한 색이 섞인 구슬 기억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다시 라일리의 인격을 형성하는 들이 더욱 다채로운 모습으로 추가, 진화되어서 라일리라는 존재를 이루게 된다.

 

놀라운 발상이고, 환상적인 표현력이며 재미와 감동이 고루 갖춰진 흠 잡을 게 별로 없는 수작이다.

 

어린이가 이해하기엔 좀 어려울 수 있긴 한데, 그러다 보니 어린이를 데리고 온 어른들이 더 감동을 받는 영화 같기도 하다.

 

그러나 픽사가 워낙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제작진들이다 보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 나오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으니 너희들은 영원히 철들지 말아달라 라는 말 한마디 만으로도 아이들은 이 영화를 이해하기 보다는 가슴으로 느꼈을 거라고 믿는다.

 

이 영화가 시사해 주는 부분들을 짤막하게 나누고 싶다.

 

1.     라일리처럼 사랑을 많이 받고 부족함 없이 자란 가정의 자녀들도 이사’, ‘새로운 친구 관계’, ‘경제적 문제 등의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클 수 있는 이슈들로 인해 얼마든지 감정의 격변을 겪을 수 있고, (라일리 본인의 감정만 놓고 본다면) 죽음에 가까운 고비를 넘길 수 있다는 걸 부모 세대들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절정의 순간, 라일리가 가출을 하고 다시 미네소타로 돌아가는 차를 탔을 때, 그녀의 감정을 control 하는 계기판은 검게 물들어 버리고, 감정이 죽어 버리는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슬픔이 적절하게 표현되고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때 그녀는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두운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2.     마지막에 라일리가 울면서 다시 예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아빠도, 엄마도 힘든데 꼭 그렇게 말해야 겠니? 이 집이 어때서? 이 만한 집도 못 얻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라고 말하며, 가르치려 드는 모습이 아니라, “아빠도 예전 집이 그립구나 라고 말하며 안아주는 부모의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성숙하게 자녀들의 감정을 받아주는 부모가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라일리가 복이 많은 것 같다. (부모들이 배울 점이 많은 작품일지도..)

 

3.     감정 캐릭터들의 표현들이 참 놀랍고 재미있었다. 특히 anger 같은 경우는 분노를 표출하면서 자신을 지키려 하고, 충동적인 가출을 실행에 옮기게 만들면서 끊임 없이 자신의 불행을 타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말을 한다.

(ex) 이게 다 부모님 때문이야 라든지.). 분노가 지닌 단점들이 꽤 드러나긴 했지만, joy sadness가 없던 빈 자리에서 그나마 라일리를 지켜줬던 감정이었기에 역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4.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이 '기억'으로 '저장', 그 기억 중에 정말 중요한 기억은 ‘핵심 기억’으로 보관되어 '인격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부분을 멋지게 표현한 점은 이번 [인사이드 아웃]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 '기억의 구슬'을 보면, 생각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추억들이 라일리의 '인격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음을 알 수 있다. 

 

어릴 때 꽈당 넘어지면서 우연히 넣었던 하키의 첫 골! 이 때 부모님이 아낌없이 칭찬해 주며 잘했다고 말한 덕분에 그녀의 인격에는 하키섬이 생겼다. 

 

또래 친구와의 즐거웠던 시간들이 우정섬을 만들어 주고, 부모님과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 덕분에 가족섬이 생겨났다. 이러한 묘사가 쉽게 이해도 되면서 굉장히 realistic 한 부분이다 보니, 더욱 집중해서 보게 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생각보다 큰 게 아닐 수도 있다. 

 

특히 유아기, 아동기 시기에 부모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할 것이다. 다양한 섬이 아름답게 조성될 수 있게 힘을 써야 할 것 같다. [오카다 다카시의 서적들을 함께 본다면 이 작품은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닌 매우 중요한 심리,발달 영화가 될 것이다.]

 

 

5.     감정 캐릭터들 중에서 주로 부각되었던 건 joy sadness일 것이다. Joy는 행복했던 기억으로만 회상하고 있던 특정 기억이 사실 알고보니 sadness가 힘을 써준 덕분에 발현될 수 있었던 기쁨이었음을 깨닫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미네소타 주에 있을 때 하키 팀이 플레이오프전을 치뤘는데 라일리가 골을 놓쳤던 적이 있었다. 이 때 상심해 있던 라일리를 부모가 와서 같이 슬퍼해 주고, 위로해 줬기에 라일리는 다시 웃으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 기억이 기쁨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이렇듯, 사람의 감정은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다. 

 

어쩌면 라일리가 어릴 때 형성했던 '인격섬'들은 완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불완전함'들은 '시련' 속에서 '슬픔' 속에서 무너지고 깎이면서 결국 '복합적인 감정들'이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며 통합되는 그 순간, 진정한 라일리 인격체에 맞는 ‘완전한 인격섬’들이 그녀의 존재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다양한 감정이 아우러진 구슬들 중 핵심기억이 생겨나고 이러한 핵심기억들이 인격섬을 형성하게 되자, 어릴 때 단일한 색상의 구슬로 만들어졌던 인격섬보다 훨씬 더 풍성한 인격이 형성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인생의 희노애락이 이 영화에 다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픽사의 에니는 참 버릴 게 없는 것 같다.

작품의 완성도로 본다면 10점 만점에 9점 이상을 너끈히 줄 수 있는 명작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가족을 돌아보고, 주변 이웃을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양육할 때 참고할 부분이 많다.) 

 

p.s1: (엄밀히 말하면 이 영화에서 표현하는 joy(기쁨)와는 차이가 있지만 '웃김'만 있고, 우울과 슬픔이 배제되어 버린 세상의 모습은 미티 작가의 네이버 웹툰인 [야부리맨] 15화를 보면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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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일 전주 국제 영화제가 열렸었다.

*(이 글은 당시에 남긴 감상문이다.)

 

타임이 3시간 40분에 달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감독인 안도 모모코는 영화의 여자 주인공인 안도 사쿠라와 친 자매라고 한다. 

 

실제로 노인을 간병해 본 경험이 있는 감독은 그런 부분의 애환을 잘 그려내고 있다. 또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고령화 국가인 일본에서 노인을 향한 공경심이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를 응축시켜서 영화 속에 담아 내고 있다.

 

(특히 전쟁을 경험했던 세대들이 사라져 가는 이 과도기적 시점에서 그 시대의 정신과 의지를 잘 이어 나가자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은데 이 부분은 마카베 요시오라는 전직 교사였던 할아버지가 나오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실제로 감독이 만났던 전 해군인 어떤 할아버지가 했던 말들을 대사로 그대로 인용한 거라고 하는데, 이 부분부터 이 영화는 이전에 보여주던 따뜻함을 잃어 버리고 뭔가 갈팡질팡 하는 것 같다.)

 

(막판에 참 묘한 느낌을 주던 영화다) 

 

이 감독은 일본에서도 상당히 주목받고 있고, <0.5mm>는 영화는 일본 영화제에서 늘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수작이라고 한다.

 

스포일러 성 글이 있으니 영화를 보실 분들은 아래 글은 안 읽는 것이 좋겠다.

 

주인공 사와는 간병인인데, 어떤 집의 여자 주인이 자기 아버님과 하루만 같이 누워서 자 달라고 부탁한다. 섹스를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누워만 달라고 했는데 막상 누워 보니 그 할아버지는 성욕이 충만했었다. 

 

어쩌다가 실수로 난로가 넘어져서 불이 났는데 아래층에 내려와 보니 그런 부탁을 한 여자 주인(며느리)은 목을 메서 자살해 있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말을 못하는?(안하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여자 주인의 자식이 한 명 있었다.

 

이런 트라우마를 겪은 후에 사와는 3명의 노인을 만난다.

 

노인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첫 번째 노인과는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부르고 논다. -> 이 노인은 자식들이 자기 죽을 날만 기다리며 유산 다툼을 하고 있어서 가지고 있는 돈을 다 써 버리려고 떠돌고 있었던 건데 누군지도 모르는 이 젊은 여자와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 부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마음의 기쁨을 얻는다.

 

 

아마 여자 주인공인 사와도 알게 모르게 같은 연령대의 노인으로부터 힐링을 받았을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떠나기 전에 사와의 엉덩이를 만진다.;;)

 

두 번째는 자전거 훔치기를 좋아하고 자존감이 낮은 차 수리 정비공 할아버지가 나온다.

 

이 할아버지의 집에 머물면서 이 할아버지가 훔쳤던 자전거를 다시 원래 자리에 갖다 놓고, 사기꾼에게 돈을 뜯길 뻔 한 것도 사와가 막아준다.

 

이 할아버지도 사와가 옷을 갈아 입을 때 힐끔힐끔 보려고 하긴 하는데, 노골적으로 묘사되진 않는다.

 

그리고 이 할아버지는 자진해서 노인 요양원에 들어가고 자신의 117 쿠페 차를 사와에게 선물로 준다.

 

 

세 번째 만난 노인(마카베 요시오)은 명망 높은 교사라고 하는데 세일러복 입은 소녀를 좋아하는 fetish를 지닌 사람이다. 

 

사와는 이 집에서도 머물면서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데...

 

이 할아버지의 아내는 일찍이 치매가 와서 누워서 지낸다. 젊을 때 성악을 했던 것 같은데 이 할아버지는 아내인 할머니 만나기를 껄끄러워 한다. 이 할아버지는 고집도 세고, 자존심도 세서 자신이 이미 퇴직했다는 것을 집에 숨기고, 늘 출근을 하지만 갈 곳이 없어서 방황하고 있다. 하지만 사와와의 만남 속에서 서서히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는데....

 

 

세 번째부터 해석이 난해해진다. 

 

자다가 이 할머니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그러면 그 모습이 부끄러워서였는지, 아니면 자신보다 일찍 정신이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차마 볼수 없어서 그런지 그 할머니의 입을 막으려 하기도 하고..... 그 스트레스로 세일러복 입은 젊은 여자에 대한 fetish 가 생긴 건지, 아니면 이 fetish 가 먼저 생겨서 그 죄책감으로 아내인 할머니를 잘 보질 못하는 건지.......

 

 

 

이 할아버지는 사와가 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흥분하고, 사와의 펜티를 보고 역시 흥분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죄책감이 들었는지 욕실 문 밖을 나서면서 자기 마누라의 환영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사와를 데리고 갑자기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더니 섹스신이 난무한 이상한 영화를 보여준다. 그러자 사와는 갑자기 허망하게 웃어대면서 영화 보는 도중에 뛰쳐 나가 버린다.

 

그러다가 그 할아버지도 치매가 온 걸 알게 된다. 

 

갑자기 헛소리를 하더니, 사와에게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부분은 2~3, 많게는 5번 정도 반복되는 말들이 나오는데 전쟁은 무의미하고,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들이고..... 너무너무 죄송하다는 말을 얼굴을 클로즈 업 하면서 보여주는 부분을 보면 일본 감독이 전쟁에 대한 회개를 담은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걸 핵심 주제로 삼기에는 너무 생뚱맞고, 당혹스러운 흐름이다. (내가 영화를 전혀 잘못 이해한 걸까?)

 

그러면서 갑자기 철학적인 나레이션이 길게 이어진다.

 

인간이 자신의 문제, 사적인 감정에 함몰되어 타인을 돕지 못하고 타인을 파멸시키는 이 상황... 어서 이런 모습을 떨쳐내고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산을 움직이는 위력을 발휘하자는 등의 계몽적이고 진취적인 말들은 이 영화가 섬세한 상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더 큰 실존적, 철학적, 범 집단적인 열심히 이 회복을 감추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일본 특유의 제국주의적, 상명하달, 전체주의적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구태의연한 모습의 반복?)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이 영 시원찮다.

 

하지만 이렇게 단정짓기에는 이르다.

 

사와는 다시 처음 말 못하는?(안하는?) 마코토? 라는 남자?(여자?)를 만나게 되고, 걔가 살고 있는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러다가 그 녀석의 아버지와 갈등을 벌이게 되고 뛰쳐 나오는데...

 

결국 마코토는 여자로 밝혀졌고, 말도 할 수 있었던 걸로 밝혀졌다.

 

어린시절 할아버지가 성적으로 더러운 사람이었다 보니 그 며느리이자 마코토의 어머니는 마코토의 머리를 다 밀어 버리고 말도 안 하는 쪽으로 훈련을 시켜서 여자라는 걸 감추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 비극 속에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화 속에서 뱉어내는 마코토...

 

이 극심한 트라우마를 지켜보면서 사와는 역설적인 회복을 경험했는지도 모른다.

 

사와는 마코토에게 빨간색 원피스를 건네준다. 이 원피스는 영화 초반에 집 여자 주인이 사와에게 할아버지와 한 밤 잘 때 입어달라고 부탁한 옷이다. 원래는 하얀 옷이었는데 염색을 시켜서 빨갛게 된 거다.

 

그 옷을 받아든 마코토는 엄마를 부르면서 오열하고, 117 쿠페 차 트렁크에서 100만엔을 발견한 사와도 역시 오열한다.  100만엔은 두 번째로 만났던 차를 선물해준 할아버지가 남겨준 깜짝 유산이었던 것이다.

 

이 때 사와는 왜 오열했던 걸까?

 

나는 성적인 해석을 해 봤다. 나이 지긋한 노인으로부터 성적인 트라우마와 학대를 경험했던 사와가 만났던 모든 노인들은 전반적으로 성적인 공격을 사와에게 했었다.(그게 해학적이든, 크든, 작든). 마지막에 마코토의 아버지도 술 취해서 사와의 다리를 만져대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두 번째 만난 할아버지는 사와가 느낄 만한 수치심을 주지 않았고, 끝까지 그런 성적 어필 없이 관계를 마무리 지어줬다.

 

이 부분이 떠오르면서 사와는 오열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마코토와 포장마차에서 우동을 먹으면서 나오는 나레이션에서는 우리는 어린 세대부터 윗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까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겪지 못한 세대를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 우리가 알 수 없는 시대가 있었음을 어필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런 식으로 나이든 사람들도 성적으로 비틀려 있을 수 있음을 주인공은 서서히 수용하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극적인 치유가 임한다.

 

그런데 갑자기 과거 회상신이 나오면서 여자 며느리가 흰 원피스를 붉게 물들이는 장면과 마코토가 생리혈을 노출시키면서 여자임이 밝혀지고 생리가 묻은 흰 팬티를 다시 하얗게 만드는 장면을 대비시킨 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이 복잡한 의식의 흐름도 존중하고, 나름의 가치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 한 편으로는 애석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진리는 좀 더 simple 하고, vivid 하고, 명확한 구석이 있는데 말이다.

 

이것이 예술이라면, 난 예술과 별로 친해질 운명이 아닌 것 같다.

 

(p.s: 그래도 안도 사쿠라(여자 주인공)의 연기와 할아버지들의 연기는 아주 훌륭했다. 그래서 몰입감이 높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p.s2: 내겐 너무 어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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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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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테이션 게임]은 상당히 잘 만든 작품이다.

 

마치 존 내쉬의 이야기를 다룬 [뷰티풀 마인드] 와 같은 느낌의 영화인데, 사실 이 영화를 통해 이 인물을 새롭게 조명하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앨런 튜링]이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너무 매력적인 인물이고, 이 인물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했다는 게 더욱 반갑기도 했다)

 

그는 키가 180 c m 정도로 크고 몸집이 컸다고 한다. 

 

그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뭔가 범상치 않은 구석들이 있었다. 일단 그를 가까이서 알게 되면 재미있고, 도전적인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관계적 친밀함을 맡본 적은 거의 없었던 걸로 보인다.

 

그는 4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타임지]는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던 때에 그를 라이트 형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DNA 구조를 알아낸 크릭과 왓슨, 페니실린의 발견자인 플레밍 등과 함께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100명 안에 포함시켰다.

 

 

 

그가 도대체 누구이길래,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꽤나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튜링이 이룬 업적은 실로 굉장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1939~1945년의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의 가장 비밀스러운 코드인 Enigma 일부를 해복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이와 같은 업적으로 인해 전쟁이 2년 정도 일찍 종결될 수 있었고, 통계학적으로 1400만명 정도가 목숨을 건지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천재 수학자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영화 속에서 이와 같은 지구 영웅은 쓸쓸한 말로를 겪어야 했지만, 그가 이룬 업적은 사실 상상 그 이상이었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집중적으로 조명되지 않았지만 튜링은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응용프로그램을 저장한다는 혁신적 개념이 튜링으로부터 창안되었고, 프로그램이 컴퓨터의 메모리 안에 들어 있어서 우리가 원할 때 바로 일할 수 있게 된 것도 튜링 덕분이다.

 

 

이 영화의 제목인 [이미테이션 게임]은 무엇일까? 일단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점을 알아내는 실험인 튜링 test’라는 것이 있는데 이 천재적인 테스트를 튜링이 개발한 것이다.

 

 

여기서 실험자는 피실험자와 인공지능을 지닌 컴퓨터에게 Questions을 던지는데, 이 때 실험자가 컴퓨터와 피실험자중 누가 컴퓨터고, 누가 인간이지를 구분하지 못할 때 이 인공지능 컴퓨터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게 된다. 이 부분을 이미테이션 게임’(모방 게임) 이라고 부른다.

 

일단 짤막한 영화 감상문을 나누고(튜링이 이룬 IT 측면의 업적은 잠시 접어두고) 그의 생애와 인간 존재에 대해 짧게 나마 나눠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

 

영화는 전반적으로 훌륭하다. 

 

튜링 연기를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라는 인물이 워낙 연기를 잘해 줘서, 영화 전체의 퀄리티를 높여준 것 같다.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열연을 했다고 하는데 필자는 [셜록] 1화 보다가 말아서 그 진가를 알지 못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잠재력이 터진 것 같다.(요즘은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로 훨씬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우리 나라에서 워낙 사랑받는 여배우이기도 하고, [비긴 어게인] 등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2차 세계 대전을 무대로 하고 있다 보니 분위기가 음울한 편이고, 딱히 Dynamic 한 진행이 나오기 어려운 역사의 한 측면, 인물의 한 시기만을 다루고 있을 뿐인데도 군더더기 없이 유쾌한 요소와 적절한 진지성이 가미되어 이야기의 전개가 매끄럽다.

 

사실 상당히 좋은 작품이고, 몰입도가 높아서 긴 시간 집중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 5가지 테마를 가지고 그를 조명해 보자.

 

 

 

[1]‘특별함, 다름의 미학

 

그는 뭔가 남들과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의 수학 선생인 도널드 에퍼슨은 기억하기를 튜링은 가르치기 어려운 학생이었는데, 왜냐하면 자신만의 독자적인 방법들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튜링이 살던 기숙사 사감은 튜링에게 연금술사라는 별명과 함께 명백히도 반사회적이라는 딱지를 붙여줬다. 

 

어릴 때부터 비사교적이고 공상에 잘 빠지던 튜링은 9살의 어린 나이에 기숙학교로 보내졌고, 그 때 괴롭힘과 상급생의 횡포 속에서 사춘기를 보냈다. 그는 직접 개발한 만년필로 부모에게 편지를 쓰곤 했고, 심지어는 그의 발명품에 대한 세부 도면을 보내기도 했다.

 

뭔가 괴짜 같기도 한 그는 영화 속에서는 마치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랬던 그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지적인 안식처를 얻게 되자 노를 젓는 취미 생활도 가지고, 카드 놀이, 테니스도 즐기고 사람들을 사귀기 시작한다.

 

​여기서 '다름'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사람은 자신과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의 질문이 감정을 배제한 논리로 무장하고 있을 때가 많고, 엉뚱한 방향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받아야 했던 수 많은 괴롭힘들은 인간이 지닌 씁쓸한 폭력성을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해 준다.

      

그는 분명 뛰어난 구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때론 질투’, ‘시기의 일환으로 그와 같은 공격을 당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거머쥘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 막연한 분노를 느끼곤 한다.

 

 

분명, 튜링이 사회성이 부족하고, 관계를 맺는 법을 잘 몰라서 수 많은 이들에게 불쾌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도 천천히 배우고, 경험하고, 훈련할 시간을 허락해 주고, 여건을 마련해 준 이들은 과연 어디 있는가?

 

그의 ‘다름’은 삶을 살아가고, 관계를 맺는데 많은 제약을 줬을지 몰라도 결국 그였기에 그와 같이 놀라운 일들을 행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1939년에 독일과의 전쟁이 시작되던 첫 날, 그는 블레츨리 대저택이라고 부르던 버킹엄셔에 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저택으로 거처를 옮기고 타자기처럼 생긴 독일군의 암호화 기계인 Enigma 가 만들어 낸 암호문을 해독하는 전투의 핵심 인물이 된다. 

 

그는 기계를 써서 기계와 맞섰는데 그가 암호를 해독함으로써 히틀러에 대항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었다는 건 그의 다름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결실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이후에 그가 AI(인공지능)에 대한 개척자적 연구를 진행하면서 기계들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체스를 두는 프로그램)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는 짧은 인생을 살았다. 때론 오만해 보이기도 하고, 천재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으며, 때론 순수하게, 때론 괴짜같던 그의 인생은 남들과 많이 다른 모습을 지녀서 힘겨웠겠지만 많은 업적을 남기면서 진가를 드러냈다.

 

그 사람은 너무 일반적이지 않아. 그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어. 뭔가 이상해~ 왜 그렇게 살까?” 라고 말하는 범인들 속에서 그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이렇게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이룰 수 있다.’

 

 

[2] 고독, 소외

 

그는 학창시절 타인에게 받아들여 질 수 없었던 인생이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인 1912 6 23일에 런던의 패딩턴 역에서 반 마일 정도 떨어진 워링턴 크레센트 2번지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인 사라 스토니는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많은 집안 출신이었다. 그리고 아버지 줄리어스는 인도의 도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앨런은 일찍이 특권층의 삶을 누렸기에 요리사도 있었고 하녀들도 있었고 휴가 때는 해외에서 시간을 보냈다.

 

물질적인 어려움은 없었다는 점은 다행이었지만 그의 삶은 거의 고아나 다름 없었다.

 

 

그는 부모가 휴가 때 인도에서 돌아왔을 때만 같이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부모 없이 자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그의 어머니인 사라는 자신이 휴가를 받아서 영국에 돌아왔을 때 하루가 다르게 비사교적이고 공상에 빠져 가는 튜링을 보면서 안타까워 했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의 어머니인 사라는 일을 위해 다시 인도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멀리 사라지는 택시를 쫓아오면서 튜링이 팔을 크게 흔들고 학교 길을 따라 달려 내려오던 기억이 가슴 아프게 남아 있다 고 했다.

 

그가 영화 속에서 유독 기계에 집착하고, 수학과 지적 논의에 집착했던 이유도 그의 선천적인 지적 능력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고독이 영향을 미쳤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혼자서도 너끈히 살아갈 것 같고, 마치 혼자 살아야 될 것처럼 행동했던 그였지만 결국 영화 속에서 전쟁이 끝난 후 홀로 남겨진 그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외로워 보인다.

 

 

 

그리고 한 때 약혼한 사이였던 조안(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이 방문하자 혼자가 되기 싫다고 절규하기에 이른다.

 

기계와 인간 사이의 Humanoid 같은 그였지만 그는 지극히 인간적인 한 사람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기숙학교에서도 상급생에게 괴롭힘 당하고, 괴짜 같은 기질과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질 못하는 성격 때문에 친구도 없고(어린 시절 부모와의 친밀한 유대가 결여되어 감정 공감 능력이 개발되지 않았던 건 아닌지...), 부모도 멀리 계셔서 거의 고아 수준이었고, 군대 상급자도 그를 쫓아낼 궁리만 했던 걸 보면 그의 인생은 참 외롭다.

 

물론 영화 속에선 같이 비밀리에 일하는 사람들과 초반에는 반목이 심했으나 나중에 가서는 rapport가 어느 정도 형성되면서 사회성이 길러지고, 뭔가 안정감이 느껴지는 대목이 등장한다.

 

그러나 결국 전쟁이 완료된 후 비밀 유지를 위해 서로 만나기 어렵게 되면서 튜링은 다시 소외와 고독 속으로 침잠하게 된다.

 

그의 전기문을 읽어보면 상당히 쾌할하고, 잘 지냈다는 표현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건 그의 깊은 실존적 공허 외로움을 달래주진 못했던 것 같다.

 

 

[3] 동성애

 

왜 그에게 다음과 같은 성향이 생겼을지 생각해 봤다.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를 이해해 보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라고 받아들여 보자.

 

그는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었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인간으로부터 소외 한 존재에게 처음 다가와 준 (Sex)’ 남성’(Male)이라면,  남성에게 I love you 라는 암호를 보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처음 태어나서 마주하게 된 존재에게 애착이 형성되는 (동물에게 사용하는 표현인) 임프린팅(imprinting, 각인)과도 비슷한 느낌 아닐까?)

 

Male, Female을 구분하는 사회적 규약을 떠올리기 이전에 함께 있음’, ‘타인과의 관계 라는 측면이 제대로 영글지 못한 상태에서 후자가 먼저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면 전자인 사회적 규약이나 약속’, ‘도덕 등은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느낌을 주지 않을까?

 

그리고 그 유일했던 남자 친구가 결핵으로 죽어 버리면서 다시 고립되어 버린 앨런은 자신이 만든 기계에 크리스토퍼라는 그 사랑했던 남자 친구 이름을 붙여서 그 기계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영화의 장면들이 그의 고독의 깊이가 얼마나 컸으며, 사랑하던 남자의 죽음이 얼마나 큰 상실감을 줬을지를 암시해 주는 것 아닐까?

 

 

동성애 문제로 2년간의 감옥살이와 호르몬 치료를 통한 화학적 거세 중 한 가지를 선택 받아야 할 상황에서 그는 크리스토퍼(컴퓨터 기계)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화학적 거세를 당한다. 겉으로는 꽤나 잘 나가고, 천재적인 면모를 갖췄을지 모르지만 그의 내면은 초라하고 외로웠기에 그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닐까?

 

[4] 잊혀짐과 드러남

 

튜링의 생전에는 비밀 Enigma 해독으로 인해 알려지지 않았고 영국 정부도 50년간 함구했지만, 드디어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암호 해독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을 2년 앞당겨서 종결할 수 있었고, 1400만명이 생명을 구했다.

 

키이라 나이틀리(조안)가 폐인이 되어 버린 앨런을 찾아 가서, 넌 특별한 사람이었기에 이러한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너를 보러 오기 위해 기차를 타고 올 때 거쳐온 도시도 너가 아니었으면 다 파괴되었을 것이고, 승무원도 죽었을 것이다. 그런 너가 평범해 지려 하다니.... 라고 말하며 위로해 준다.

 

(여담이지만 영화 속 조안은 조안 클라크라는 실존 인물을 연기한 것이다. 그녀는 잠시이긴 했지만 튜링과 약혼을 했던 대단히 지적인 여성이었다고 한다. 암호해독의 매력에 너무 푹 빠져서 결국 그녀는 1970년대에 은퇴를 할 때까지 계속 이 분야에 남아 있었다)

 

비록 그는 살아 생전에는 제대로 된 영광을 누리지 못했지만, 21세기에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기에 그는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누구도 해낼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해냈지만,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다는 건 참으로 불행할 것이다. 세상 속에는 그런 모습을 묵묵히 감당해 내는 이들도 드물게나마 있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모든 경우에 튜링처럼 드러남을 맛보게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진정 잊혀져 버리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그들이 흘린 희생 노력 그리고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데 일조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결국 2009년 영국 총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를 드러나게 해 줬다.

 

비록 튜링이 그 당시의 법에 따라 다루어졌고 우리가 시계를 뒤로 돌릴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치료는 물론 명백히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나를 포함하여 우리가 얼마나 깊이 미안해하는지 말할 기회를 가져서 기쁩니다.’

[5] 숙명

 

불꽃처럼 살다 가버린 그의 삶은 어떻게 종결된 것일까?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튜링이 독이 든 사과를 깨물어 먹고 목숨을 끊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사과 속에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다고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는 말했는데 실상 당국에서는 청산가리가 들어 있는지 검사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Gossip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가상의 이야기가 덧붙여 진 것이라고 그의 전기 잔가인 B. 잭 코플랜드는 이야기 한다.

 

그리고 튜링이 죽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업무 시간을 함께 보냈던 오언 이프라임은 1954년 초부터 멘체스터 컴퓨팅 연구소에서 튜링과 같이 일해온 컴퓨터 엔지니어였는데 튜링은 여느때와 다름 없이 잘 가요라고 말하며 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검사관이나 경찰 중 그 누구도 자신에게 튜링의 태도나 죽기 전 행동 양상에 때해 물으러 오지 않았었다고 진술했다.

 

사인을 밝히려는 조사가 이루어졌다면 자살이라는 결론이 나왔을까?

 

코플랜드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주장한다.

 

사인을 밝히는 조사의 공식적인 자료들은 검시관의 사무실에서 폐기되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튜링의 어머니인 사라가 다양한 문서들의 사본과 병리학자가 만든 보고서의 사본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청산가리 중독은 평화로운 죽음이 아니라 경련을 동반하곤 하는데 그가 죽은 모습은 상당히 정돈되어 있었고, 신발도 가지런히 침실 문 바깥에 놓여져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튜링은 이런 습관을 지닌 적이 없었다고 하니 의혹이 커지게 된다.

 

[1] 자살

[2] 사고사

[3] 모르는 사람 혹은 사람들에 의한 살해

 

일단 자살의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많은 증언들이 있었고, 사고사 또는 살해 등의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살해 당했다는 [3]번 보기가 상당히 황당해 보일 수 있지만 튜링이 워낙 깊은 영역의 보안을 담당했었다 보니,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와 같은 음모가 계획되었다고 생각해볼 여지는 있을 것 같다.

 

1950년에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미국의 신경질적인 매카시 시대를 열었고 1953년 말경에 매카시즘은 최고조에 달했던  매카시는 국가 안보에 접근하는 것이 허용된 동성애자들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선언했는데 그 안보 조직들이 영국에서 비밀 암살을 수행한 건 아닐까?

 

데이비드 콘웰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MI5 MI6에서 일했었는데 2010년에 [선데이 텔레그래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직접적인 작전을 많이 했습니다. 바로 눈 앞에서 하는 암살들.’.....‘우리는 약간은 몹시 나쁜 일도 했습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비약일 수 있지만, 이 고백과 튜링의 운명을 연결지어 보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결국 명확한 그의 사인은 미궁으로 남겠지만, 그가 일반적인 한 사람이 이루지 못한 놀라운 일을 감당해 주고 쓸쓸히 이 땅에서의 생을 마감했다는 점에서 뭔가 숙명 적인 느낌을 강하게 남겨준다.

 

그의 선천적 기질과 환경적 요인 등이 그리고 알 수 없는 수 많은 상호작용으로 인해 그로 하여금 결코 순탄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남들이 누렸던 소소한 행복은 박탈당한 채 살았을지 몰라도, 그는 남들이 이룰 수 없었던 거대한 업적을 지닌 채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한 인간을 향한 숙명이었던 걸까?

 

생각이 깊어지는 영화다.

 

(여담 2: 영국의 체스 우승자였던 휴 알렉산더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데 그는 실제로 저속한 유머감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여담 3: 영화 속에서 튜링이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중간 중간 나오는데, 튜링은 실제로 올림픽 수준의 달리기 주자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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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우리 나라 영화 2019년도 작 나를 찾아줘 [Bring Me Home] 과 제목이 같으니 검색에 주의.

(참고로 데이빗 핀처 감독의 여러 작품 중에 [세븐], [파이트 클럽] 은 정말 수작이었다 생각한다. 그의 역량을 믿는다면 일단 믿고 봐도 좋을 것이다.)

 

(벤 애플렉은 요즘 DC에서 배트맨으로 활약 중이고, 로자먼드 파이크는 내겐 생소한 배우였으나 연기력이 정말 압권이다. 이 영화의 가장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을 보시면 영화의 스토리를 다 알게 되어 버리니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절대로 보시 마세요-

 

[Amazing Self]

 

데이빗 핀처 감독의 신작이 나왔다. 

 

놀라운 완성도와 치밀한 구성, 배우들의 열연으로 인해 전세계적인 흥행 가도를 달렸던 작품이다. 

 

이 감독의 전작들인 [세븐], [파이트 클럽] 등이 워낙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다 보니 이번 작품도 어느 정도 믿고 본 경향이 강하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일단 전체적인 총평을 해보자면, 

 

'단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치 않게 만들고, 짜임새 있는 구성과 연출력이 일품인 영화였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인 에이미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을 해보고, 그 이후에 간략하게 고찰해 볼 만한 부분들을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아내의 머릿속을 생각한다. 그녀의 생각, 그녀의 뇌...

 

나는 그녀의 두개골을 열고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그녀의 생각들을 잡으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에이미,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이와 같은 문구는 영화의 처음과 끝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5주년 결혼기념일을 보내려던 찰나에 그녀는 사라져 버린다.

 

이 영화는 초반에는 남편인 닉이 아내를 살해한 게 아닌가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중반 이후에는 충격적인 반전이 시작된다. 그녀는 자신이 살해당한 것처럼 가장하고, 닉을 벌주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생각 없이 봐도 그녀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이 영화의 간단한 감상평들을 살펴보면 싸이코 패스 무섭다.”, “결혼이 다 이런건가?” 등의 감상평이 남겠지만 우리는 여기서 에이미의 행동을 좀 더 깊게 들여다 봐야 한다.

 

여기서 키워드로 삼고 싶은 것은 ‘Self’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Self)이 흔들리면 상처를 입고, 그에 따른 reaction을 취하게 된다.

우리들의 인생사란 이 비루하고 연약하기 그지 없는 self를 지키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인 에이미의 self는 어떠한가?

 

 

일단 그녀의 self는 주변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싶어 한다. 

 

모든 사람이 나 이외의 타인이나 주변 환경을 control 하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지만 에이미는 그게 너무 과도하여 한계점을 넘어선 것 같다. 

 

이는 마치 자신이 신이 되어 모든 것을 다스리고 조종하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또한 그녀의 self는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의 self는 한 편의 드라마, 한 편의 연극처럼 꾸며져 있고, 보여주기에 익숙해져 있고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 즉 거짓된 천국과 진실된 지옥이 있다면 과감히 거짓된 천국 속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그녀의 성향이 영화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그녀의 self는 자기 감정에 비정상적으로 충실하며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를 드러낸다.

 

이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지닌 여성들의 그것과 같은 노선을 보여주는 것인데 자신의 감정이 행복해야 하고, 그게 충족되지 않는 삶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그녀의 태도는 균형감을 잃고 극단으로 치달아 있는 그녀의 기질적 틍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ideal 한 모습을 보여주는 남편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존경하다가도 남편의 작은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남편을 평가절하하기 시작한다. 

 

물론 남자 주인공인 닉이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면서 그녀의 실망과 분노는 극에 치닫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철저히 '아군 아니면 적' 두 가지 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와 같은 self를 지니게 만든 것일까?

 

영화에서 보여지는 힌트 이외에 우리가 달리 유추해 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굳이 원인을 찾자면 어릴 때부터 부모가 자신의 딸의 삶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Amazing 에이미 의 여주인공이었기에, 그녀는 소설 속의 에이미와 현실 속 에이미 사이에서 늘 괴리를 느끼며 살아왔을 것이다.

이러한 삶이 에이미에게 미친 영향력은 철저한 통제 그 자체였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에이미는 소설 속 에이미는 늘 자신보다 한발 더 먼저 나아갔다.“ 라는 말을 한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녀의 부모가 그녀의 삶을 통제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하고 있었고, 더 근본적으로는 소설 속 에이미가 그녀의 existence(실존)보다도 더 존재론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결국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고 많은 인기를 누리며 살아왔지만 모두가 기본적으로 행사하는 자신만의 free-will(자유의지)이 박탈당한 그녀는 누구보다도 병적으로 주변을 통제하고픈 욕망에 휩싸였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와 같은 life가 펼쳐지다 보니 그녀에게 있어서 삶은 진실 matching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삶은 일종의 연극이자 ‘show’ 였을 것이다.

자신의 내면은 공허하고, 철저하게 초라할지라도 사람들 앞에서 웃어주고, 소설속 에이미를 흉내내면 어린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모두들 그녀를 사랑해줬을 것이다.

 

이러한 show에 익숙해진 에이미는 사이코 같은 모습을 닉에게 잔뜩 보여준 영화가 끝날 시점에서도

 

난 당신을 해치지 않아. 그렇지만 자기도 동참해야 돼. 자기 역할을 해줘야 해.”

 

이라는 소름 끼치는 말을 하며 이와 같은 역할 놀이를 남편에게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닉과 에이미는 그저 보여주기 식의 쇼윈도 부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결혼 생활은 원래 이런 것이다.’를 보여줬다기 보다는 결혼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지닌 사람, 또는 삶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지닌 사람이 '결혼과 삶'이라는 숭고한 개념을 얼마나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이고, '극단적인 이분법적인 사고관'은 그녀를 둘러싼 환경적인 요인들과 선천적이고 기질적인 원인으로 인해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싸이코 같은 계획으로 자신의 남편을 세계에서 가장 초라한 남자로 추락시켜 버리고, 그의 목숨도 교수대에 올릴 뻔 했던 계획이 들통난 이후에도 자신의 남편에게 예전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오라는 황당한 제안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비정상적일 정도의 '통제 욕구'와 함께 '자신의 감정이 행복해지는 지점'만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제안하는 그녀의 모습은 사실 정상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자기 감정이 무너져 내렸다고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면서까지 복수를 꽤한다는 것 자체도 극도로 ‘자의식’이 강해져서 그 정도가 pathologic(병적인) 한 지점까지 가 버린 것이라고 해석 가능하다.

 

이러한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에이미는 그녀 만의 amazing self를 획득하게 되는데 결국 이 모든 self의 특성들은 ‘anger’로 귀결되고 만다.

  

영화 도중에 그녀는 자신이 살해 당했다는 언론 보도가 퍼져 나가도록 유도하고, 전혀 다른 지역에 숙박하면서 자신만의 치밀하고 광적인 계획을 즐긴다.

 

그곳에서 골프를 치며 하는 말은 나는 슬프지 않다. 단지 화가 나 있을 뿐이다.’'  .

 

그녀를 형성하는 독특하고 기이한 self들은 결국 ‘anger’로 수렴해 버리고 이는 뛰어난 그녀의 지능’(하버드대 졸업)과 접목되어 잔혹하고 끔찍한 살인 계획을 저지르게 만들어 버린다.

 

이와 같은 치밀한 살인 계획가 충격적인 사기극이 가능했던 것은 기이한 self’들이 anger로 수렴됨과 동시에 그녀의 사이코패스 적인 기질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녀의 사이코패스(또는 소시오패스 또는 반사회성 인격장애) 기질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녀만의 독특한 self를 형성했던 주변 상황들도 원인이 될 수 있겠고 선천적인 그녀의 성향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소 닉이 바람을 피웠다든지, 결혼 초창기처럼 닉이 그녀를 사랑해 주지 않아서 그녀가 사이코패스가 된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그녀는 전 남친인 토미를 강간범으로 모함해서 그의 인생을 망가뜨린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DSM IV 기준으로 반사회성 인격장애의 정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 정신의학계에서는 전문가의 진단을 위한 DSM-IV-TR 진단기준, ICD-10 진단기준 등을 가지고 있다. 반사회성 인격 장애의 진단에 관한 DSM 4 진단기준은 다음과 같다.

 

A.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무시하는 패턴이 15세 이후로 전반적으로 나타나며 다음의 특성 중 3개 이상을 충족시킨다.

법에서 정한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지 않으며 구속당할만한 행동을 반복함

개인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한 반복적인 거짓말, 가명 사용 또는 타인을 속이는 사기 행동

충동적이거나 미리 계획을 세우지 못함

빈번한 육체적 싸움이나 폭력에서 드러나는 호전성과 공격성

자신이나 타인의 안전을 무시하는 무모성

꾸준하게 직업 활동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지속적인 무책임성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학대하거나 절도 행위를 하고도 무관심하거나 합리화하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자책의 결여

 

B. 적어도 18세 이상에게 진단한다.

 

C. 15세 이상에 품행 장애를 나타낸 증거가 있어야 한다.

 

D. 반사회적 행동이 조현증 또는 조증 삽화의 경과 중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변을 철저하게 짓밟으면서도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에이미의 모습을 보면 영락 없는 사이코패스다. 

 

DSM-IV 상으로는 그들은 꾸준하게 직업 활동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미리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에이미와 약간 다르다. 

 

그녀는 굉장히 스마트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울 줄 안다. 물론 자신의 실수로 돈을 다 강탈당한 이후에는 옛 남친을 찾아가서 그의 별장에 있는 CCTV를 십분 활용하여 즉흥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녀는 치밀하다하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치밀하고 스마트한 지능을 바탕으로 높은 위치에 오른 사이코 패스들이 많다고들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해석함에 있어서 사이코패스 였다 라는 제안은 매우 설득력이 높다.

 

그리고 약간 다른 관점으로 그녀를 분석해 본다면 에이미는 경계성 인격장애와 히스테리성 인격장애과 뒤엉켜서 광적으로 표출된 case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Self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고, 극적인 감정의 전환을 보이기도 하며 자신과 소설 속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은 흡사 depersonalization과 흡사하기에 경계성적인 면모도 다분히 보인다.

 

그리고 끊임없이 언론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체크하고 한적한 곳에 은둔하며 자신의 계획이 진행되는 양상을 TV로 지켜볼 때도 옆에 있는 여자의 Feedback 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그녀가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자 그녀가 마시던 음료가 담긴 컵에 침을 뱉는 행동을 하는 걸로 봐서는 자신이 (좋은 쪽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상황을 극도로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히스테리성 인격장애의 기준 중 하나이다) 또한 옛 남친인 토미와 사귈 때에도 먼저 sex를 하자고 유혹하고 나중에 그를 강간범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라든지 자신의 외모와 같은 sexual 한 부분을 기회만 되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솜씨를 봐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부적절할 정도로 성적으로 유혹적이거나 자극적이다’, ‘자신에 대한 관심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 외모를 이용한다라는 히스테리성 인격장애의 정의에도 어느 정도 부합해 보인다. 

 

또한 자신을 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연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감정을 과장해서 표현한다’, ‘피암시성이 높아서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도 인생을 show처럼 살아가는 그녀와 어느 정도 유사한 구석이 있다. 그리고 남편은 자신에게 질릴 대로 질려 있는데도 닉에게 끊임 없이 이렇게 살아 달라는 제안을 하고, 요구를 하는 모습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실제보다 더 친밀한 것으로 생각한다.’ 라는 히스테리성 인격장애의 요소와 일치한다.

   

그녀는 극적인 감정 변화의 면모가 느껴질 때는 ‘경계성+히스테리성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가린 채 잔인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일 때는 ‘사이코패스’ 그 자체다.

 

지금까지 에이미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에 집중해 봤는데 사실 그녀의 사이코패스 적인 기질을 activate(활성화시키다)시킨 요인을 고민해 본다면 결국 닉과 에이미의 '공동 책임론'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쯤에선 결혼 생활의 중요성을 한번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결혼은 서로를 조종하고, 자신의 유익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용납해 주고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는 이타적인 마음가짐이 선행되어야 하며 많은 갈등들을 ‘communication’(소통)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닉이 실직하고 나서 서서히 자신이 원하던 ideal 한 모습을 잃게 되자 에이미는 그런 닉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서히 소통이 흐려지기 시작하는데 거액의 돈을 친정에 보내 드릴 때도 에이미는 닉에게 상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뉴욕에서 미주리로 이사갈 때도 닉은 에이미에게 제대로 상의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소통이 단절되고 서로를 향한 통제욕구가 활성화 되기 시작하면서 보이지 않는 균열이 시작된다. 

 

서서히 상대방의 욕구가 아닌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픈 생각이 강해지기 시작하다 보니 매일 매일의 결혼 생활은 실망과 공허 그 자체였을 것이다. 전과 같이 아내가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게 된 닉은 어느 순간 젊은 여제자와 바람을 피우게 되고, 그 모습에 극도의 배신감과 실망이 폭발하면서 에이미는 사이코패스 적인 기질을 발동시키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설 속 에이미처럼 이상적이고 모두에게 사랑 받는 인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와 결혼을 해도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100%를 다 지닐 수 없다는 점을 에이미도 인정하고 들어 갔어야 한다. 그런 배우자를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대하는 그녀는(그게 진실이 아닌 연극이자 show라 하더라도) 일종의 delusion(망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 없다.

 

 

 

우리에겐 건강한 Self가 필요하다.

이 영화 속 에이미와 같은 반어법적인 Amazing self’ 가 아니라, 상대방의 부족함도 용납해 주고, 자신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한번 더 배려하며 갈등이 생겼을 때 소통에 힘을 쓰는 이 시대의 진정한 ‘The Amazing self‘가 절실하다.

 

그리고 Self Anger로 귀결되지 않고 Self Love로 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의 노력이나 고행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The Higher existence 로부터 그 축복을 부여받는 것 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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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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