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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일 전주 국제 영화제가 열렸었다.

*(이 글은 당시에 남긴 감상문이다.)

 

타임이 3시간 40분에 달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감독인 안도 모모코는 영화의 여자 주인공인 안도 사쿠라와 친 자매라고 한다. 

 

실제로 노인을 간병해 본 경험이 있는 감독은 그런 부분의 애환을 잘 그려내고 있다. 또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고령화 국가인 일본에서 노인을 향한 공경심이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를 응축시켜서 영화 속에 담아 내고 있다.

 

(특히 전쟁을 경험했던 세대들이 사라져 가는 이 과도기적 시점에서 그 시대의 정신과 의지를 잘 이어 나가자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은데 이 부분은 마카베 요시오라는 전직 교사였던 할아버지가 나오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실제로 감독이 만났던 전 해군인 어떤 할아버지가 했던 말들을 대사로 그대로 인용한 거라고 하는데, 이 부분부터 이 영화는 이전에 보여주던 따뜻함을 잃어 버리고 뭔가 갈팡질팡 하는 것 같다.)

 

(막판에 참 묘한 느낌을 주던 영화다) 

 

이 감독은 일본에서도 상당히 주목받고 있고, <0.5mm>는 영화는 일본 영화제에서 늘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수작이라고 한다.

 

스포일러 성 글이 있으니 영화를 보실 분들은 아래 글은 안 읽는 것이 좋겠다.

 

주인공 사와는 간병인인데, 어떤 집의 여자 주인이 자기 아버님과 하루만 같이 누워서 자 달라고 부탁한다. 섹스를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누워만 달라고 했는데 막상 누워 보니 그 할아버지는 성욕이 충만했었다. 

 

어쩌다가 실수로 난로가 넘어져서 불이 났는데 아래층에 내려와 보니 그런 부탁을 한 여자 주인(며느리)은 목을 메서 자살해 있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말을 못하는?(안하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여자 주인의 자식이 한 명 있었다.

 

이런 트라우마를 겪은 후에 사와는 3명의 노인을 만난다.

 

노인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첫 번째 노인과는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부르고 논다. -> 이 노인은 자식들이 자기 죽을 날만 기다리며 유산 다툼을 하고 있어서 가지고 있는 돈을 다 써 버리려고 떠돌고 있었던 건데 누군지도 모르는 이 젊은 여자와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 부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마음의 기쁨을 얻는다.

 

 

아마 여자 주인공인 사와도 알게 모르게 같은 연령대의 노인으로부터 힐링을 받았을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떠나기 전에 사와의 엉덩이를 만진다.;;)

 

두 번째는 자전거 훔치기를 좋아하고 자존감이 낮은 차 수리 정비공 할아버지가 나온다.

 

이 할아버지의 집에 머물면서 이 할아버지가 훔쳤던 자전거를 다시 원래 자리에 갖다 놓고, 사기꾼에게 돈을 뜯길 뻔 한 것도 사와가 막아준다.

 

이 할아버지도 사와가 옷을 갈아 입을 때 힐끔힐끔 보려고 하긴 하는데, 노골적으로 묘사되진 않는다.

 

그리고 이 할아버지는 자진해서 노인 요양원에 들어가고 자신의 117 쿠페 차를 사와에게 선물로 준다.

 

 

세 번째 만난 노인(마카베 요시오)은 명망 높은 교사라고 하는데 세일러복 입은 소녀를 좋아하는 fetish를 지닌 사람이다. 

 

사와는 이 집에서도 머물면서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데...

 

이 할아버지의 아내는 일찍이 치매가 와서 누워서 지낸다. 젊을 때 성악을 했던 것 같은데 이 할아버지는 아내인 할머니 만나기를 껄끄러워 한다. 이 할아버지는 고집도 세고, 자존심도 세서 자신이 이미 퇴직했다는 것을 집에 숨기고, 늘 출근을 하지만 갈 곳이 없어서 방황하고 있다. 하지만 사와와의 만남 속에서 서서히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는데....

 

 

세 번째부터 해석이 난해해진다. 

 

자다가 이 할머니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그러면 그 모습이 부끄러워서였는지, 아니면 자신보다 일찍 정신이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차마 볼수 없어서 그런지 그 할머니의 입을 막으려 하기도 하고..... 그 스트레스로 세일러복 입은 젊은 여자에 대한 fetish 가 생긴 건지, 아니면 이 fetish 가 먼저 생겨서 그 죄책감으로 아내인 할머니를 잘 보질 못하는 건지.......

 

 

 

이 할아버지는 사와가 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흥분하고, 사와의 펜티를 보고 역시 흥분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죄책감이 들었는지 욕실 문 밖을 나서면서 자기 마누라의 환영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사와를 데리고 갑자기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더니 섹스신이 난무한 이상한 영화를 보여준다. 그러자 사와는 갑자기 허망하게 웃어대면서 영화 보는 도중에 뛰쳐 나가 버린다.

 

그러다가 그 할아버지도 치매가 온 걸 알게 된다. 

 

갑자기 헛소리를 하더니, 사와에게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부분은 2~3, 많게는 5번 정도 반복되는 말들이 나오는데 전쟁은 무의미하고,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들이고..... 너무너무 죄송하다는 말을 얼굴을 클로즈 업 하면서 보여주는 부분을 보면 일본 감독이 전쟁에 대한 회개를 담은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걸 핵심 주제로 삼기에는 너무 생뚱맞고, 당혹스러운 흐름이다. (내가 영화를 전혀 잘못 이해한 걸까?)

 

그러면서 갑자기 철학적인 나레이션이 길게 이어진다.

 

인간이 자신의 문제, 사적인 감정에 함몰되어 타인을 돕지 못하고 타인을 파멸시키는 이 상황... 어서 이런 모습을 떨쳐내고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산을 움직이는 위력을 발휘하자는 등의 계몽적이고 진취적인 말들은 이 영화가 섬세한 상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더 큰 실존적, 철학적, 범 집단적인 열심히 이 회복을 감추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일본 특유의 제국주의적, 상명하달, 전체주의적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구태의연한 모습의 반복?)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이 영 시원찮다.

 

하지만 이렇게 단정짓기에는 이르다.

 

사와는 다시 처음 말 못하는?(안하는?) 마코토? 라는 남자?(여자?)를 만나게 되고, 걔가 살고 있는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러다가 그 녀석의 아버지와 갈등을 벌이게 되고 뛰쳐 나오는데...

 

결국 마코토는 여자로 밝혀졌고, 말도 할 수 있었던 걸로 밝혀졌다.

 

어린시절 할아버지가 성적으로 더러운 사람이었다 보니 그 며느리이자 마코토의 어머니는 마코토의 머리를 다 밀어 버리고 말도 안 하는 쪽으로 훈련을 시켜서 여자라는 걸 감추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 비극 속에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화 속에서 뱉어내는 마코토...

 

이 극심한 트라우마를 지켜보면서 사와는 역설적인 회복을 경험했는지도 모른다.

 

사와는 마코토에게 빨간색 원피스를 건네준다. 이 원피스는 영화 초반에 집 여자 주인이 사와에게 할아버지와 한 밤 잘 때 입어달라고 부탁한 옷이다. 원래는 하얀 옷이었는데 염색을 시켜서 빨갛게 된 거다.

 

그 옷을 받아든 마코토는 엄마를 부르면서 오열하고, 117 쿠페 차 트렁크에서 100만엔을 발견한 사와도 역시 오열한다.  100만엔은 두 번째로 만났던 차를 선물해준 할아버지가 남겨준 깜짝 유산이었던 것이다.

 

이 때 사와는 왜 오열했던 걸까?

 

나는 성적인 해석을 해 봤다. 나이 지긋한 노인으로부터 성적인 트라우마와 학대를 경험했던 사와가 만났던 모든 노인들은 전반적으로 성적인 공격을 사와에게 했었다.(그게 해학적이든, 크든, 작든). 마지막에 마코토의 아버지도 술 취해서 사와의 다리를 만져대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두 번째 만난 할아버지는 사와가 느낄 만한 수치심을 주지 않았고, 끝까지 그런 성적 어필 없이 관계를 마무리 지어줬다.

 

이 부분이 떠오르면서 사와는 오열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마코토와 포장마차에서 우동을 먹으면서 나오는 나레이션에서는 우리는 어린 세대부터 윗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까지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겪지 못한 세대를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 우리가 알 수 없는 시대가 있었음을 어필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런 식으로 나이든 사람들도 성적으로 비틀려 있을 수 있음을 주인공은 서서히 수용하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극적인 치유가 임한다.

 

그런데 갑자기 과거 회상신이 나오면서 여자 며느리가 흰 원피스를 붉게 물들이는 장면과 마코토가 생리혈을 노출시키면서 여자임이 밝혀지고 생리가 묻은 흰 팬티를 다시 하얗게 만드는 장면을 대비시킨 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이 복잡한 의식의 흐름도 존중하고, 나름의 가치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 한 편으로는 애석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진리는 좀 더 simple 하고, vivid 하고, 명확한 구석이 있는데 말이다.

 

이것이 예술이라면, 난 예술과 별로 친해질 운명이 아닌 것 같다.

 

(p.s: 그래도 안도 사쿠라(여자 주인공)의 연기와 할아버지들의 연기는 아주 훌륭했다. 그래서 몰입감이 높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p.s2: 내겐 너무 어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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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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