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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인들은 책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책에 나온 내용이라면 정말 잘 믿습니다. 옛날 고전 작가들이 한 말이라면 거짓이라고 믿지 못합니다.

 

그리고 중세인들은 대단히 이질적인 책들의 모음을 물려받았습니다.

 

유대교부터 이교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책까지 읽었습니다.

(다른 분류 방식으로 말해 보자면) 연대기, 서사시, 설교, 환상을 기록한 책, 철학 논문, 풍자가 있었습니다.

 

이 고전 저자들이 서로 모순되는 말을 하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장르의 차이를 무시하고 시인과 철학자가 말하는 과학을 똑같은 무게로 받아들인다면, 여러 저자들의 말이 더더욱 서로 모순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중세인들은 장르의 차이를 아주 많이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시인들이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지적할 수 있었음에도 실제로는 시인과 철학자의 말을 똑같이 받아들였습니다.

 

상황이 이러한 데다가 책에 나오는 내용을 불신하기를 한사코 주저하는 마음마저 강하다면, 여기에는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질 절박한 필요와 영광스러운 기회가 분명히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외견상 모순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조화를 이루어 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충돌 없이 담아낼 모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형이 모든 것을 충돌 없이 담아내려면 정교해지는 수 밖에 없고, 크고 세밀한 질서가 잡힌 다중적 체계를 통해 이 모형의 통일성을 이루어 낼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중세인들이 어쨌거나 이 작업에 착수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추가적인 유인이 있었습니다.

 

이 작업이 이미 시작된 데다가 상당히 많이 진척된 상태였다는 사실이지요. 고대의 마지막 시기에 많은 작가들이 -그 중 일부는 이 책의 뒤편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 아마도 반 정도는 무의식적으로 전혀 다른 출처에서 나온 여러 견해를 모으고 조화시키고 있었습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의 요소 뿐 아니라 이교적, 기독교적 요소까지 섞어 혼합 모형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중세는 이 모형을 채택하고 완성시켰습니다.

 

단테의 <신곡>

 

저는 이렇게 완성된 모형이 <신학대전>, <신곡>과 나란히 할만한 걸작이라고 말했는데, 이 모형이 두 작품과 어느 정도는 같은 이유로 우리의 정신에 비슷한 만족감을 선사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 모형은 두 문학 작품처럼 규모가 크지만 제한되어 있고 이해 가능합니다. 그 장엄함은 모호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뒷부분에서 설명하겠지만, 그것은 고딕적 장엄함이 아니라 고전적 장엄함입니다.

 

그 내용은 아주 풍부하고 다양하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긴밀히 이어져 있되, 평면적인 평등이 아니라 위계적 사다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모형의 이런 아름다움은, 더 이상 그것을 참된 것으로 여기지 않기에 예술품 대하듯 자유롭게 바라보는 - 또는 그렇게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 - 우리에게만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이 모형이 참되다고 믿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그로부터 심오한 만족감을 얻었고 그에 관한 풍성한 증거가 있습니다.

 

저는 이 '우주 모형'이 중세 최고의 예술품일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중세의 중심 작품이라고 독자를 설득하고 싶습니다.

 

이 우주 모형 안에 대부분의 개별 작품들이 들어 있고, 개별 작품들은 이 모형을 끊임없이 언급했으며 이 모형으로부터 아주 많은 힘을 얻었다고 말입니다.

 

-[폐기된 이미지], C.S Lewis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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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둘을 중세 특유의 장르라고 부르면서 그 작품들이 구현하는 상상 활동이 중세인들의 주된 소일거리 또는 많은 시간을 썼던 소일거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면, 잘못된 판단이 될 것입니다.

 

일부 발라드의 으스스한 특성과 로망스의 무심하고 간결한 페이소스 - 최고 로망스들에 담긴 미스터리, 무한의 감각, 규정하기 어려운 과묵함 - 는 중세 특유의 취향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가장 위대한 중세 문학 중 일부, 예를 들면 찬송가, 초서(Geoffrey Chaucer, 1343~1400)(중세 영국 최고의 시인, 근대 영시의 창시자라 불림)의 작품, 비용(Francois Villon, 1431~1463)(프랑스의 시인)의 작품에는 그런 요소들이 전혀 없습니다.

 

단테는 <신곡>에서 죽은 자들의 영역을 온통 누비지만 독자는 거기서 <어셔즈 웰의 아낙>(The Wife of Usher's Well)(풍랑에 휩쓸려 죽은 세 아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내용)이나 <위험 성당,  Chapel Perilous> 을 볼 때와 같은 전율을 결코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 식의 로망스와 발라드 작품들은 중세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이후 줄곧 그랬던 것처럼 오락거리, 소일거리였다는 것이지요. 

 

그 작품들은 정신의 주변부에서만 살 수 있는 것들이요, 그 매력은 그것들이 (매튜 아널드가 과대평가했을 가능성이 있는 위치인) '중심에' 있지 않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주된 특징을 놓고 보자면 중세인은 몽상가도 방랑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조직가, 편찬가, 체계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에 자리를 마련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이기를" 원했습니다.

 

구분하고 정의하고 도표를 작성하는 것이 그의 기쁨이었습니다. 격동적 활동들을 잔뜩 벌이면서도 그 활동들에 형식을 부여하고 싶은 충동 또한 넘쳤습니다. 문장의 예술과 기사도의 원칙을 발전시켜 전쟁에 (의도적으로) 형식을 부여했습니다.

 

성욕은 (의도적으로) 정교한 사랑의 법도로 형식화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모방한 엄격한 변증법적 양식의 틀 안에서 고도의 독창적이고 과감한 철학적 사색이 펼쳐졌습니다. 아주 다양한 개별 내용들을 정리해야 하는 법률과 도덕신학 같은 학문들이 특히 번성했습니다.

 

시인이 쓸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때로는 그러지 않는 편이 나았을 방식으로) 수사학의 기수링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은 중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하는 일이었습니다.

 

현대의 모든 발명품 중에서 그들이 가장 감탄했을 만한 물건은 카드 색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이 충동은 너무나 터무니없어 보이는 그들의 규칙 집착과, 가장 숭고해 보이는 성취에 똑같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후자를 통해 우리는 열정적이고 체계를 만드는 데 열중하는 정신이 지칠줄 모르고 진득하면서도 환희에 찬 에너지를 발휘하여 어마어마한 양의 이질적 재료들을 통합시키는 광경을 봅니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과 단테의 <신곡>이 그 완벽한 사례입니다.

 

파르테논이나 <오이디푸스 왕>처럼 통일되고 질서 정연하면서도, 공휴일의 런던 기차역처럼 복잡하고 다채롭지요.

 

그런데 제가 볼 때 이 <신학대전>과 <신곡> 옆에 놓을 수 있는 세 번째 작품이 있습니다.

 

이것은 중세의 종합 그 자체로서 그들의 신학, 과학, 역사를 복잡하고 조화롭게 하나로 조직해 낸 머릿속의 '우주 모형(Model of the Universe)'이지요. 이 모형의 건설에 영향을 미친 것은 제가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요소, 즉 그들 문화의 근본이 되는 책 중심의 특성과 열렬한 체계 사랑입니다.

 

-[폐기된 이미지], C.S Lewis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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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좁은 의미에서의 문화-즉, 사상/정서/상상력-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바바리안적 요소들이 덜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요소들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로마와 다른 이교주의의 파편들이 고대 노르드어/앵글로색슨어/아일랜드어/웨일스어에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런 파편들이 많은 아서 왕 로망스(모험담)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세의 연애시는 바바리안들의 관습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발라드는 아주 최근까지도 (늘 반복되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는) 선사 시대의 전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들려주는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고대 노르드어와 켈트어 텍스트들은 오랫동안 아주 제한된 지역 바깥으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다가 근대에 와서야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언어가 달라지면서 앵글로색슨어는 금세 잉글랜드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고대 게르만족과 켈트족 세계의 여러 요소가 이후의 자국어들에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려면 참으로 힘들여 찾아야 합니다.!

 

웨이드(Wade)(게르만 신화의 등장인물. 웨일랜드의 아버지)나 웨일랜드(Weland)(게르만 신화와 북구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대장장이)가 한 번 등장할 때 핵토르, 아이네이스,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는 쉰 번이나 등장합니다.

 

중세의 책에서 켈트족 종교의 유산 후보 하나를 캐낼 때 마르스와 베누스와 디아나는 스무 번씩 등장합니다.

 

연애시에 담긴 바바리안들의 영향을 희미하고 추측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연애시가 그리스-로마 고전이나 심지어 아라비아인들에게 영향을 받은 요소는 훨씬 더 분명합니다.

 

바바리안들의 유산이 정말 적다기보다는 몸을 숨기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몸을 숨기는 데 아주 능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 로망스와 발라드에 있어서는 이것이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둘이 어떤 의미에서, 어느 정도나 중세 특유의 산물인지 물어야 합니다.

 

18세기와 19세기 사람들은 중세에서 로망스와 발라드가 차지하는 비중을 실제보다 크게 봤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중세 로망스를 직접 계승한 아리오스토(Ludovico Ariosto, 1474~1533)(이탈리아의 시인. 대표작 <광란의 오를란도>), 타소(Torquato Tasso,1544~1595)(이탈리아의 시인. 대표작 <해방된 예루살렘>), 스펜서(Edmund Spenser, 1552~1599)(영국의 시인. 대표작 미완성 장편시 <선녀여왕>)의 작품들은 허드(Richard Hurd, 1720~1808)(영국의 주교. 대표작 <기사도와 로망스에 관한 문학>(Letters on Chivalry and Romance) 와 워턴(Thomas Warton, 1728~1890)(영국의 계관시인)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순문학(polite literature)'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Letters on Chivalry and Romance

허구 작품에 대한 그런 취향은 '형이상학파' 시대(17세기)와 문예 전성기(Augustan Age)(18세기 전반)에도 줄곧 살아 있었습니다. 발라드(이야기를 담은 민요) 또한 종종 다소 격이 떨어진 형태로 등장하기는 해도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유모에게서 발라드를 들었고, 저명한 평론가들이 가끔씩 발라드에다 찬사를 보냈습니다.

 

따라서 18세기의 중세 '부활'은 완전히 죽지 않은 것을 살려 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로를 따라 우리는 중세 문학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 앞에 흐르던 개울을 따라가다 수원에 이른 셈입니다. 그 결과, 로망스와 발라드가 중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과도하게 채색하게 되었습니다.

 

학자들을 제외하면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 중세의 이미지를 떠올리고자 하는 대중적 도상화 - 포스터, <펀치>(Punch) (영국에서 발행된 만화 위주의 주간지)의 농담 - 는 모험을 찾아 떠난 기사를 그려 놓고 성과 도움이 필요한 처녀, 용 같은 것을 배경에 잔뜩 배치합니다.

 

이런 대중적 인상에 대해서는 흔히 변호가 가능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로망스와 발라드는 중세 특유의 작품 또는 중세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힐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중세인들이 남긴 문학 작품 중에서 로망스와 발라드가 가장 많은 이들에게 계속해서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여러모로 정도 차이가 있는 비슷한 장르들을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기는 하지만, 로망스와 발라드는 총체적 효과 면에서 독특하고 대체 불가합니다.

 

-[폐기된 이미지], C.S LEW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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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중세를 권위의 시대라고 말할 때는 흔히 교회의 권위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세는 교회의 권위만이 아니라 여러 권위가 공존하는 시대였습니다.

 

중세 문화를 환경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때 중세 문화는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필사본들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중세의 모든 저술가는 가능한 한 이전의 한 저술가를 토대로 삼고 한 고전 저자(auctour) (작품들이 당대 문학적 지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고한 고전의 저자)를 따라갔는데, 라틴어 작가이면 더 선호했습니다.

 

이는 중세 시대와 야만 상태의 차이점이자 근대 문명과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야만인 공동체에서 문화를 습득하는 방법이라면 유구한 행동 양식에 참여하는 것과 입에서 나오는 말, 즉 부족의 나이 든 사람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지식이 결국 관찰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중세에는 주로 책에 의존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독서는 전체 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 진술에 유보 조항을 하나 달아야 하겠습니다. 중세의 뿌리는 책을 통해 주로 전해진 그리스-로마 전통뿐 아니라 북부와 서부에 위치한 '바바리안'들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바바리안'이라는 단어에 작은따옴표를 붙인 것은 오해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표현은 자칫하면 로마 제국의 국경을 압박했던 이들과 로마 시민들 사이에 인종과 예술과 자연적 역량 면에서 고대에 실제로 존재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있었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로마 제국이 무너지기 오래 전부터 시민권은 이미 인종과는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역사 내내, 인접해 있던 게르만족과 켈트족은 일단 로마에 정복당하거나 동맹 관계가 되면 로마 문명에 동화되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어려움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켈트족이 그 일에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지체 없이 토가를 입었고 금세 수사학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중절모까지 다 갖춰 입고 유럽인인 척하는 호텐토트(Hottentot)(남아프리카공화국 원주민 코이코이족을 가리키는 네델란드어로 '열등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동화는 매우 실질적이었고 흔히 영구적이었습니다. 몇 세대 만에 그들은 로마의 시인, 법률가, 장군들을 배출하게 됩니다. 두개골의 형태와 이목구비와 피부색과 지성 면에서도 그들은 그리스-로마의 기존 구성원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이해된 의미에서의) 바바리안들이 중세에 기여한 바는 그들을 연구하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평가될 것입니다. 법과 관습과 전반적 사회 형태에 관한 한, 바바리안적 요소들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특정한 예술이 특정한 방식으로 중요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학의 그 어떤 것도 문학이 사용하는 언어보다 더 본질적일 수는 없습니다. 언어는 고유의 개성이 있습니다.

 

다른 어떤 언어와도 다른 시각을 함축하고 정신 활동을 드러내며 울림을 갖습니다. 

 

어휘만이 아니라 - 영어의 'heaven'이 프랑스어의 'ciel'가 같은 의미일 수는 없습니다. - 구문의 형태도 독특합니다.

 

따라서 잉글랜드를 포함한 게르만족 국가들의 중세(와 근대) 문학에는 바바리안들의 언어에서 유래한 것이 만연합니다. 

 

라틴어에 밀려 켈트어들과 게르만 침략자들의 언어들이 거의 사라진 다른 나라들에서는 상황이 상당히 다릅니다.

 

중세 영문학의 경우, 프랑스어와 라틴어의 영향을 모든 면에서 충분히 감안하고 나면, 모든 문장이 그 어조와 리듬과 '느낌'에서 여전히 바바리안들이 남긴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와 앵글로색슨어의 관계를 문학과 무관한 "언어학적 사실일 뿐"이라고 무시하는 이들은 문학이 존재하는 양식 자체에 대해 충격적인 무신경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폐기된 이미지], C.W LEW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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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로, 굳이 소개를 하지 않아도 친숙한 책입니다. 잔잔하지만 깊이 있는 말과 글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모두가 귀가할 무렵 문을 열지. 손님이 있느냐고? 생각보다 많아."


아베 야로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심야식당'은 주인장 마스터의 중저음 내레이션으로 문을 연다.


영화 '심야식당'에는 막장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노와 복수의 요소가 없다.


게다가 극의 전개 속도가 한 없이 느린 탓에 영화를 보는 내내 감칠맛을 내는 MSG를 한 숟가락도 넣지 않은 요리를 천천히 먹는 것 같았다.

 


다른 한편으론, 간이 안 된 콩나물국처럼 싱거운 결말과 온돌방 같은 따듯함이 이 영화의 미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이 참 많은 듯하다.


해가 지고 상점마다 불을 밝히는 늦은 밤, 일상에 지친 이들이 무거운 몸을 이끈 채 낡은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뒷골목 후미진 곳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온다.


사랑을 잃은 여자, 꿈을 잊은 젊은이,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그들은 마스터의 '입'이 아닌 '귀'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스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로 음식을 준비한다.

 

작은 화로를 이용해 마밥을 끓이고 케첩 소스를 뿌린 스파케티를 접시에 올린다.

 

허름한 식당에 옹기종기 모인 이들은 가족과 친구, 좋은 사람과 나누었던 시간과 추억을 한데 버무린다.


그리고 삼킨다.

그리움을 먹는다.

그렇게 허기를 달래고

그곳에서 마음도 달랜다.


사실 마스터는 그리 친절한 주인장은 아니다.

 

단골이 아니면 좀처럼 알아채기 힘든 미소를 보이며 팔짱을 낀 채 손님을 맞이한다.

 

말수도 적다. 정확히 말하면, 말을 아낀다.


누구보다 굴곡진 삶을 견뎌온 듯한 그는 상대의 말을 자르거나 함부로 조언을 남발하지 않는다.

차분히 귀를 기울이며 "늘 먹던 거로?" 같은 말로 덤덤하게 대꾸할 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영화 속 마스터처럼 깊은 상처가 있을 법한 사람들은 타인을 향해 섣부른 위로를 하지 않는 듯 하다.


그들은 위로를 정제한다. 위로의 말에서 불순물을 걸러낸다고 할까. 단어와 문장을 분쇄기에 넣은 뒤 발효와 숙성을 거친 다음 입 밖으로 조심스레 꺼내는 느낌이다.


위로의 표현은 잘 익은 언어를 적정한 온도로 전달할 때 효능을 발휘한다. 짧은 생각과 설익은 말로 건네는 위로는 필시 부작용을 낳는다.


"힘 좀 내" 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이런 멘트에 기운을 얻는 이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힘낼 기력조차 없는 사람 입장에선 "기운 내" 라는 말처럼 공허한 것도 없다.

 

정말 힘든 사람에게 분발을 종용하는 건 위로일까, 아니면 강요일까.


동사 '알다' 가 명사 '알'에서 파생했다고 한다. '아는 행위'는 사물과 현상의 외피뿐만 아니라 내부까지 진득하게 헤아리는 걸 의미한다.


이를 사람에 대입해 봤으면 한다.

 

우린 늘 누군가를 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한두 번 대화를 나누거나 우연히 겸상한 뒤 "그 친구 말이야" "내가 좀 알지"라는 식으로 쉽게 내뱉는다.


하지만 제한된 정보로는 그 사람의 진면목은 물론 바닥도 알 수 없는 법이다. 상대의 웃음 뒤 감춰진 상처를 감지할 때,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싫어하는 것까지 헤아릴 때 "그 사람을 좀 잘 안다"고 겨우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언어의 온도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유시민 저
언어의 온도
이기주 저
Love & Free 러브 앤 프리
다카하시 아유무 저/이동희 역
예스24 | 애드온2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상대에 대한 '앎'이 빠져 있는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찬찬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 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내도 늦지 않을 거라고 본다.


-[언어의 온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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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민 [사람이 선물이다] 에서 발췌한 어록

 

 

 

 

눈물이 없는 웃음은 천박합니다. 사색이 없는 단순함은 가볍습니다. 기도가 없는 조언은 무력합니다. -조정민-

 

 

 

부족해도 주는 것은 돕는 일이고, 남아서 주는 것은 재고 정리입니다. 주고 잊어버리면 남을 도운 것이고, 기억하면 나를 도운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주건...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조정민-

 

 

 

가진 것을 의식하면 부족을 느끼고, 없는 것을 의식하면 불안을 느낍니다. 있건 없건 너무 의식하지 마세요. 평안은 줄어든 소유의식, 작아진 자의식입니다. -조정민-

 

 

 

초상식은 나를 비난하는 사람 칭찬합니다.

 

나를 속이는데 믿어줍니다.

 

나를 이용하는데도 멀리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상식으로 유지되고 초상식으로 뒤집힙니다. -조정민-

 

 

 

인생의 가치는 많은 소유가 아니라 깊은 인격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끝없는 성숙입니다.

 

인생의 참된 아름다움은 성공이 아니라 성품입니다. - 조정민-

 

 

 

얼굴을 들여다보는 만큼 영혼을 들여다보았다면, 몸을 돌보는 만큼 영혼을 돌보았다면.. 삶이, 그리고 세상이 과연 이럴까. - 조정민-

 

 

 

[믿음은 평안이다]

 

107.믿음은 목표를 향하고 있는 자신을 끊임없이 바꾸는 태도이고, 불신은 자신이 향하고 있는 목표를 계속 바꾸는 태도입니다. 그래서믿음의 끝은 목적지고, 불신의 끝은 방황입니다.

 

 

 

110. 믿음은 우연 같은 사건 속에서 필연을 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사건을 해석하는 힘입니다. 그 힘이 분노로부터, 상처로부터, 과거로부터 나를 자유하게 합니다. 사슬을 끊어버리고 날아 보세요. 새 날 새 삶입니다.

 

 

 

115. 예수는 제자를 불렀습니다. 제자가 스승을 찾아가던 시절

 

부를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 나를 따르라고 불렀습니다. 멋모르고 따라나섰던 제자들은 그 사랑에 눈뜨고 모두 제 발로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119. 종교는 착하게 살아 마일리지 쌓는 일이고, 신앙은 그 마일리지로는 어림 없다는 깨달음입니다. 종교는 내 노력으로 천국 갈 수 있다는 생각이고, 신앙은 이미 와 있는 천국에 들어가겠다는 결정입니다.

 

 

 

[지혜는 나를 보는 거울이다]

 

129. 재미있으나 의미 없는 인생은 후회에 시달리고, 의미 있으나 재미 없는 인생은 유혹에 시달리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인생은 성공에 시달립니다. 삶은 어떻게든시달립니다.

 

 

 

131. 지식은 내가 갖지 않은 것을 갈망하게 하고, 지혜는 내 안에 이미 있는 것에 눈뜨게 합니다. 지식은 나와 다른 내가 되기 위한 목마름을 주고, 지혜는 이 모습 이대로 나를 수용하는 평안함을 줍니다.

 

 

 

133. 인생의 섭리는 역설입니다. 나누었는데 늡니다. 주었는데 받습니다. 버렸는데 얻습니다. 내려갔는데 높아집니다. 죽었는데 삽니다. 역설은 상식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을 뛰어넘습니다.

 

 

 

134. 나눈 것을 기억하면 선행이고, 나눈 것을 잊으면 거룩입니다. 선행은 내 것을 나눈 것이고, 거룩은 하나님의 것을 되돌린 것입니다. 선행은 인간의 기준이고, 거룩은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139. 변명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법은 없습니다. 변명은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을 실패를 확정하는 데 쓰기 때문입니다.

 

 

 

140. 갖고도 나누지 못하면 가난한 것입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바쁜데 열매가 없다면 게으른 것입니다.

 

 

 

142. 다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헤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는 절대 옳고 너는 절대 틀렸다고 끝까지 주장하는 것입니다. 절대로절대 옳은 사람은 없습니다.

 

148. 사람을 믿고 사람을 의지하다 배신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배신한 사람 잘못이 아니라 믿은 것이 잘못입니다. 사람은 결코 믿을 대상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고 배려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150.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일수록 쉽게 분노합니다.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니까그러나 세상이 나 중심으로 움직이면 세상이 못 견딥니다. 세상이 버티는 힘은 내 분노가 아니라 손해와 희생, 용서와 사랑입니다.

 

 

 

152. 그런 말을 듣고 싶다면 먼저 그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런 얼굴을 보고 싶다면 먼저 그런 표정을 지으면 됩니다. 그런 대접을 받고 싶다면 먼저 남을 그렇게 대접하면 됩니다. 세상은거울입니다. [인생은 거울이다.]

 

 

 

165. 가짜를 수 없이 보면.. 진짜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진짜를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가짜는 한눈에 보입니다. 험한 세상에서 꼭 필요한 분별입니다.

 

 

 

167. 생명을 끝장내는 대신 자존심을 끝장내세요. 실타래처럼 엉킨 문제가 소리 없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자존심은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는 착각과 아집입니다. 자존심은 인생의 무거운 짐입니다.

 

 

 

170. 내가 죽기로 작정한 사람은 아무도 두렵지 않고, 내가 죽은 사람은 아무도 해칠 이유가 없습니다.

 

 

 

176. 내 일에 성실한 사람은 생활인입니다. 신의 일에 뛰어든 사람은 신앙입니다. 내 일을 신의 일로 속이는 사람은 종교인입니다. 무슨 일이건.. 경계가 없는 사람은 성인입니다.

 

 

 

179. 나를 과대평가하는 말에 화를 내지 않았다면, 나를 과소평가하는 말에도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사람들의 칭찬에 묶이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비난에도 묶이지 않습니다.

 

180. 항상 내 일이 남의 일보다 큰일이면 보통사람입니다. 때로 남의 일이나 내 일이나 마찬가지면 비범한 사람입니다. 늘 내 일보다 남의 일을 더 크게 여기면.. 성인입니다.

 

 

 

184. 부정적인 것 한 가지가 눈에 띄면 긍정적인 것 세 가지를 찾으세요. 불편한 사람도 괜찮아 보이고, 힘들게 하는 아내나 남편도 훌륭해 보이고, 속 썩이는 자녀도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무엇보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봅니다.

 

 

 

185. 보는 것에 속지 말고 듣는 것에 속지 말고 사람 말에 속지 마세요. 내 혀도 나를 속이고 내 생각도 나를 속입니다. 심지어 내 눈물에도 내가 속습니다. 내가 내게 속는 줄은…. 꿈에도 모릅니다.

 

 

 

186. 무슨 일을 하건 가장 필요한 준비는 태도이고, 무슨 일을 맡기건 마지막 살펴야 할 준비는 인격입니다.

 

 

 

189. “비판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혼자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격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러면둘 다 웃으며 살 수 있습니다. 비판으로 세워진 사람보다 격려로 세워진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194. 한눈에 남의 결점 보는 사람은 예리한 사람입니다. 보고 비판하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냥 덮어주는 사람은 푸근한 사람입니다. 그 결점 보완해 주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돕고도 말이 없으면 거룩한 사람입니다.

 

 

 

195. 사람의 마음은 거울이 아니라 렌즈입니다. 오목한 데 비치면 열등감이 되고 볼록한 데 비치면 우월감이 됩니다. 영성 훈련…. ‘렌즈 깎아 거울 만들기입니다. 비치는 대로의 평상심이 깨달음인데.. 거울은 만상에도 자유합니다.

 

 

 

199. 그를 높인다고 내가 더 낮아지지 않으며, 나를 높인다고 그가 더 낮아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나를 낮춘다고 결코 내가 더 낮아지지 않습니다.

 

200. 결혼하고 싶은데 이토록 힘든 이유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은 나한테 좀처럼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혼….. 나의 성취가 아니라 나의 포기입니다.

 

 

 

 

Love

 

[사랑은 사람이 하나님과 나눠 가진 성품이다.]

 

224. 사랑 없이 줄 수 있지만 주지 않고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면서 제발 상처 주지 말고, 받으면서 제발 상처 받지 마세요.

 

 

 

227. 큰 나무 밑에서는 작은 나무가 못 자랍니다. 그러나 큰 사람 곁에서는 더 큰 사람이 자랍니다. 청출어람의 사랑입니다. 사람의 성장과 성숙을 돕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요즘 누구를 사랑하세요?

 

 

 

230.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못 찾았습니다. 고난이 너무 큰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눈뜨고 볼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덜 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숱한 문제가…. 내 문젭니다.

 

 

 

231. 내가 벌었다고 내 돈이 아니고, 내 계자에 있다고 내 돈이 아니고, 내가 쓴 것만이 내 돈입니다. 내가 생각했다고 내 생각이 아니고, 내가 책을 썼다고 내 생각이 아니고, 내가 산 것만이 내 생각입니다.

 

 

 

Relationship

 

[관계는 수용이다] –리더십, 공동체, 오해, 충고-

 

 

 

246. 관계가 고통스러운 까닭은신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을 인간에게서 찾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실수가 전공이고 부족이 특징입니다.

 

 

 

250. 대화는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과 많은 얘기를 나누어도 마음을 경청하지 않으면 텅 빈 독백이고, 혼자서도 내면의 음성을 경청하면 속이 찬 대화입니다. 나와 내가 못 나눈 마음을 누구와 나눕니까.

 

 

 

255. 이기고 지는 데 무관심한 사람, 논쟁에도 자유로운 사람, 진리가 아니면 내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 나를 향한 시선이 없어도 평안한 사람,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사람복된 사람입니다.

 

 

 

256. 남을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내가 결론을 내야 끝내는 사람, 내 기준에 모두를 굴복시키는 사람, 주목 받지 못하면 못 견디는 사람,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비교하는 사람불쌍한 사람입니다.

 

 

 

269. 일생 여행을 다니신 분의 고백입니다. “하도 다녀서 어디 갔다 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러나 누구와 다녔는지는 기억합니다. 그 사람을 기억하면 그 장소도 기억이 나요.” 직장도 그래요. 일과 업적은 곧 잊혀도 관계는 오래 기억됩니다. 사람 잘 대해주세요.

 

 

 

271. 두 눈 부릅뜨고 야단쳐서 변한 사람보다 한 눈 감아주고 보듬어서 변한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혼내서 변한 사람변하기는 변했는데 더 독해졌을 뿐입니다.

 

 

 

285.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문제를 말하는 사람은 문제를 더 엉키게 만듭니다. 문제는 말 안 하는 사람도 압니다. 내 눈에 문제가 먼저 보인 까닭은 내가 해결책을 먼저 생각하라는 사인입니다.

 

 

 

294. 오해를 내가 풀면 변명이 되고 다른 사람이 풀면 동정이 되고 신이 풀면 신뢰가 됩니다. 오해.. 그냥 두고 다른 일에 집중하세요. 살다가 오해 없기를 바라는 것도 큰 오햅니다.

 

 

 

Hardship

 

[고난은 용기의 출발점이다]

 

 

 

296. 두려움은 두려움 속으로 뛰어 들어야 이깁니다. 고난은 고난 속으로 뛰어 들어야 이깁니다. 죽음은 미리 죽고 다시 살아나야 이깁니다. 피하면 살 수는 있어도이길 수는 없습니다.

 

 

 

307. “생선이 소금에 절임 당하고, 얼음에 냉장 당하는 고통이 없다면 썩는 길밖에 없다.” 정채봉 선생은 고통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고통은 방부제입니다. 고통은 경보기입니다. 고통은 선물입니다. 고통은…. 생명의 사인입니다.

 

 

 

Money

 

[돈보다 사람이 크다] –, 교만, 권위-

 

311. 사람은 돈을 원하고, 돈은 영혼을 원합니다. 돈은…. 거의 신입니다.

 

 

 

 

Vision

 

[비전은 생명이다] –, 열정, 소명, 습관, 승패-

 

337. 누군가 돕고 싶으세요? 꿈을 꾸도록 도우세요. 열정을 품도록 도와주세요. 꺼지지 않는 불을 가슴에 지펴주세요. 영원한 것에 대한 갈망을 심어 주세요. 가장 큰 도움이고 가장 귀한 섬김입니다.

 

 

 

340. 차는 달려야 하고 비행기는 날아야 합니다.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은 자유롭게 비상해야 합니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처럼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올해…. 아름다운 뜻을 품고 훨훨 나세요.

 

342. 최선을 다하는 것 중요합니다. 최선을 택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전자는 내가 온 힘을 다하는 것이고, 후자는 전능자의 손을 붙잡는 것입니다. 최선을 택하고 최선을 다하면 결과에 자유합니다.

 

 

 

345. 바람 없는 바다에서 능숙한 항해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파도 없는 호수에서 뛰어난 서퍼가 될 수는 없습니다. 바람 불고 파도 치는 곳을 찾아가서 뛰어들지 않으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348. 당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야 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않고 진정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351. 부를 소, 목숨 명.. 소명은 목숨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부릴 사, 목숨 명사명은 목숨을 쓰는 일입니다. 할 만한 가치가 있고, 해야 할 의미가 있는 일이면 무슨 일이건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354. 여기 길이 없다면 당신이 새 길을 내라는 뜻입니다. 지금 희망이 없다면 당신이 희망의 메시지가 되라는 사인입니다.

 

 

 

356. 돈 안 받고 하는 일이 있습니까. 그 일에 기쁨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일 계속하세요. 그 일이 당신 영성의 수원지입니다.

 

 

 

360. 포기하지 않는 사람.. 못 이깁니다. 돈 필요 없다는 사람못 이깁니다. 죽어도 좋다는 사람못 이깁니다. 꺾이지 않는 의지는이미 승패를 넘었습니다.

 

 

 

362. 포기하지 않으면실패는 과정입니다. 경험입니다. 자산입니다. 인생에 실패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포기입니다.

 

 

 

364. 꿈을 좇으면서 게으를 수 없고, 목표를 향해 달리면서 방향을 바꿀 수 없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면서 시간을 허비할 수 없습니다.

 

 

 

365. 꿈의 사람…. 고난 속에서도 고난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열정의 사람….. 사람들 속에서도 사람들 시선에 묶이지 않습니다.

 

비전의 사람…. 세상 속에서도 세상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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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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