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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둘을 중세 특유의 장르라고 부르면서 그 작품들이 구현하는 상상 활동이 중세인들의 주된 소일거리 또는 많은 시간을 썼던 소일거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면, 잘못된 판단이 될 것입니다.

 

일부 발라드의 으스스한 특성과 로망스의 무심하고 간결한 페이소스 - 최고 로망스들에 담긴 미스터리, 무한의 감각, 규정하기 어려운 과묵함 - 는 중세 특유의 취향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가장 위대한 중세 문학 중 일부, 예를 들면 찬송가, 초서(Geoffrey Chaucer, 1343~1400)(중세 영국 최고의 시인, 근대 영시의 창시자라 불림)의 작품, 비용(Francois Villon, 1431~1463)(프랑스의 시인)의 작품에는 그런 요소들이 전혀 없습니다.

 

단테는 <신곡>에서 죽은 자들의 영역을 온통 누비지만 독자는 거기서 <어셔즈 웰의 아낙>(The Wife of Usher's Well)(풍랑에 휩쓸려 죽은 세 아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내용)이나 <위험 성당,  Chapel Perilous> 을 볼 때와 같은 전율을 결코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 식의 로망스와 발라드 작품들은 중세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이후 줄곧 그랬던 것처럼 오락거리, 소일거리였다는 것이지요. 

 

그 작품들은 정신의 주변부에서만 살 수 있는 것들이요, 그 매력은 그것들이 (매튜 아널드가 과대평가했을 가능성이 있는 위치인) '중심에' 있지 않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주된 특징을 놓고 보자면 중세인은 몽상가도 방랑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조직가, 편찬가, 체계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에 자리를 마련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이기를" 원했습니다.

 

구분하고 정의하고 도표를 작성하는 것이 그의 기쁨이었습니다. 격동적 활동들을 잔뜩 벌이면서도 그 활동들에 형식을 부여하고 싶은 충동 또한 넘쳤습니다. 문장의 예술과 기사도의 원칙을 발전시켜 전쟁에 (의도적으로) 형식을 부여했습니다.

 

성욕은 (의도적으로) 정교한 사랑의 법도로 형식화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모방한 엄격한 변증법적 양식의 틀 안에서 고도의 독창적이고 과감한 철학적 사색이 펼쳐졌습니다. 아주 다양한 개별 내용들을 정리해야 하는 법률과 도덕신학 같은 학문들이 특히 번성했습니다.

 

시인이 쓸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때로는 그러지 않는 편이 나았을 방식으로) 수사학의 기수링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은 중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하는 일이었습니다.

 

현대의 모든 발명품 중에서 그들이 가장 감탄했을 만한 물건은 카드 색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이 충동은 너무나 터무니없어 보이는 그들의 규칙 집착과, 가장 숭고해 보이는 성취에 똑같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후자를 통해 우리는 열정적이고 체계를 만드는 데 열중하는 정신이 지칠줄 모르고 진득하면서도 환희에 찬 에너지를 발휘하여 어마어마한 양의 이질적 재료들을 통합시키는 광경을 봅니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과 단테의 <신곡>이 그 완벽한 사례입니다.

 

파르테논이나 <오이디푸스 왕>처럼 통일되고 질서 정연하면서도, 공휴일의 런던 기차역처럼 복잡하고 다채롭지요.

 

그런데 제가 볼 때 이 <신학대전>과 <신곡> 옆에 놓을 수 있는 세 번째 작품이 있습니다.

 

이것은 중세의 종합 그 자체로서 그들의 신학, 과학, 역사를 복잡하고 조화롭게 하나로 조직해 낸 머릿속의 '우주 모형(Model of the Universe)'이지요. 이 모형의 건설에 영향을 미친 것은 제가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요소, 즉 그들 문화의 근본이 되는 책 중심의 특성과 열렬한 체계 사랑입니다.

 

-[폐기된 이미지], C.S Lewis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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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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