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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의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의 전작인 <90년생이 온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해서 유명세를 탔던 책이다. 필자는 [그건 부당합니다]만 읽어 봤는데, 책을 읽고 나니 전작도 사봐야 겠다는 확신을 주는 좋은 책이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를 편가르기 하고 요즘 젊은 세대들을 소위 MZ 세대라고 부르면서 다각도로 분석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묘하게 사안을 단순화 시키고,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과장하는 느낌을 지우지 않을 수 없다.

 

 

젠더 이슈에 있어서도 갈라치기를 노골적으로 하더니, 이젠 세대간의 갈라치기까지 이뤄지는 건지 삐딱한 시선(+섬세한 시선)으로 주의, 감시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yes24 에서 발췌한 사진

 

누군가에겐 이와 같은 분열이 정략적으로 이득이 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건 정치,사회 공부를 조금만 해봐도 너무도 쉽게 유추 가능한 사안이다.

 

그런 측면에서 젊은 세대들이 이야기하는 '공정' 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때론 '불공정'에는 침묵하면서, '불이익'은 못 참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젊은 친구들에 지나치게 우경화 되어가는 모습도 보이긴 하지만 이들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며 세상 속에서 균형감을 회복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현 세대가 공무원,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

조직 문화에 대한 필연적 거부감.

저출산, 비혼주의가 만연한 이유.

통제력을 잃어 가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이슈에 대해 열광하는 듯한 모습.

태생적인 불평등에 대한 논의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하나같이 주옥같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이 책의 저자와 다른 의견을 지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섬세한 필지와 나름 객관적인 자료들을 동원하여 자신이 서술하고자 하는 내용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잘 쓴 책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섬세한 사회 지식을 습득한 지성인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는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모양새로 유지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어느 정도의 노력을 투입하면, 100프로 비례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나와주면 참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세상을 살아 보면 50프로 노력을 쏟아 부었다 해서 50프로까진 아니더라도 20~30프로라도 보상을 받는 시스템은 아닌 것 같다. 운이 나쁘거나, 여건이 좋지 않으면 50프로의 노력을 쏟아 부어도 0프로로 남기는 게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노오오오력 하라는 식의 말.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식의 메시지는 현 시대에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결국 근원적으로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 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따라올 수 밖에 없다.

 

이 책으로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한 뒤에는, 근원에 있는 물음들에 답을 하기 위해 추가적인 사유를 동반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인간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건 부당합니다], 임홍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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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적 가치관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획일화되어 있고, 한 줄로 서열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학벌, 직장, 직위, 사는 동네, 차종, 애들 성적...삶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남들 눈에 띄는 외관적 지표로 일렬 줄 세우기를 하는 수직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완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논리상 한 명도 있을 수 없다. 그 모든 경쟁에서 모두 전국 일등을 하기 전까지는 히딩크 감독 말처럼 늘 '아직 배가 고플' 테니 말이다. 모두가 상대적 박탈감과 초조함, 낙오에 대한 공포 속에 사는 사회다."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중에서-

 

문유석 판사나 나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이런 생각들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도 있다. 김찬호 사회학 박사는 우리 사회의 수직적 가치관과 그로 인해 모든 면에서 일상화된 경쟁 심리의 부작용을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 속에서 찾는다. 그것이 "모멸감"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yes24 에서 발췌한 사진

 

"한국인들은 사소한 차이들에 집착하면서 위세 경쟁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모멸을 주고받기 일쑤다. 못생겼다고, 뚱뚱하다고, 키가 작다고, 너무 어리다고, 나이가 많다고, 결혼을 안 했다고, 이혼했다고, 심신에 장애가 있다고, 가난하다고, 학벌이 후지다고, 비정규직이라고, 직업이 별로라고, 영어를 못한다고...

 

모멸을 주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기준으로 열등한 집단을 범주화하고 멸시하는 통념이나 문화의 위력도 만만치 않다. 일부 소수의 '잘난' 사람들만을 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박대 또는 천대를 받는 듯 느낀다.

 

-김찬호 [모멸감] 중에서-

 

세상을 수직적으로 보는 이들은 우월감 또는 열등감을 바탕에 깔고 다른 사람을 대한다.

우월감으로 인해 마트 고객센터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열등감으로 인해 타인이 이룬 성공을 시기하고 깎아내린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비상식적인 갑질이 난무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수직적이기보다는 수평적인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 대다수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월등히 높다.

 

어떤 이는 문유석 판사나 김찬호 박사, 혹은 나 같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이상주의자라고 비판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식으로든 서열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냐며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이 대체적으로 그런 식의 서열에 무감한 문화를 가진 나라는 이 지구상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런 문화권 안에서는 모두가 각자 다른 재능을 가지고 각기 다른 모습과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룬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구성원 모두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나는 그런 곳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불행히도 20대의 내가 겪었던 한국은 그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그래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를 들을 때면, 나는 한국에서 겪은 쓰디쓴 기억들이 떠올라서 씁쓸해진다.

 

이렇게 유행어는 종종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미국 영어 문화수업], 김아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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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대학교에 있는 식당의 이름을 떠올려보자.

 

바로 학생식당이다.

 

학교의 식당이 학생식당인 이유는 기본적으로 대학의 구성원인 학생들이 학교 바깥의 식당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시설이기 때문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외부인이 방문해 학생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를 제한하기 위해 학식을 구입할 때 학생증을 제시하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의 구내식당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학생식당이라는 이름이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대학교에는 학생식당 외에도 교수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통상 교수식당은 학생식당보다 메뉴의 질이 높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높은 편이다. 식당의 근무자가 직접 음식을 서빙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럼 왜 대학교에 교수식당이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

 

대체로 기존의 학교 구성원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문제지만, 앞으로 이에 대해서도 곧 공식적인 문제 제기가 일어날 것이라 예상된다.

 

가령 일반 회사에서 대리 이하가 이용하는 사원식당과 과장급 이상이 사용하는 간부식당을 구분해 운영한다면 (물론 일부 회사에는 임원들이 이용하는 VIP 식당이 있지만, 대체로 외빈을 모시는 식당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회사 구성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놀랍게도 조직 구성원의 등급을 나눠서 식당을 운용하는 곳들이 존재한다.

 

법원이 대표적이다. 2021년 4월 <경향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전국 법원 19곳 중 18곳의 구내식당에서 판사와 직원이 식사하는 공간을 분리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내용이 보도되자 결국 김명수 대법원장은 전국 법원의 판사 전용 식당을 없애고 판사, 직원 구분없이 식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법원행정처는 전국 법원 총무과에 법관만 들어갈 수 있었던 구내식당, 즉 간부식당을 폐지하고 차등을 두지 말도록 권고했다. 이렇듯 법원을 포함한 공공기관에서도 특정 계급을 위한 식당이 사라지는 상황인데, 지성의 산실이라 불리는 대학교가 아직도 요지부동인 것이다.

 

2022년 6월 미국 코넬대학교의 엄치용 연구원은 언론 기고를 통해 "한국의 대학 건물 중 괴물 같은 명칭은 단연 교수식당 내지는 교직원 식당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가 미국 대학에 가보니 교수나 학생 구분 없이 동등하게 배식구 앞에서 줄을 서서 먹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지성을 대표한다는 대학에서조차 신분에 따라 식사 장소에 차별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한국 대학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대부분 돈과 관련된 문제에만 집중한다고 밝혔다.

 

대학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주로 학령 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에 따른 대학의 재정 악화를 이야기할 뿐 대학교 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꼰대 문화가 대학 발전을 저해해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이다.

 

그는 교수식당뿐만 아니라 교수 전용 화장실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에 남아 있는 꼰대 문화는 비단 교수식당만은 아닐 것이다.

 

과연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 학생들이 기존에 남아 있는 관행들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지켜봐야 할 문제다. 또한 학교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학교에서는 학생이 곧 학교의 주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교수가 학교의 주인인 것과 같은 관행을 일삼아왔다. 겉과 속이 다른 모양새를 계속 취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차라리 관행을 고치지 못할 바에야 사실 학교의 주인은 교수, 학생은 물주라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그건 부당합니다], 임홍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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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학창 시절 꼰대 문화의 상징물.jpg>라는 게시물이 올라와서 화제가 됐다.

 

단 한 장의 사진이 공개된 게시물에는 공감과 댓글이 폭풍같이 달렸다.

 

사진에는 한 학교의 넓은 계단이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려운데, 댓글을 보면 차차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우선 사진 속 넓은 계단은 학교의 중앙 계단이다. 글쓴이는 왜 계단을 찍은 사진을 올린 것일까.

 

글쓴이는 자신이 90년대생이라고 밝히면서 자신이 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학교 중앙에 있는 계단으로는 학생들이 출입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해당 계단은 교직원만 이용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자신의 교실이 중앙 계단 근처에 있음에도 눈앞에 있는 계단을 놔두고 비효율적으로 가장자리 계단을 이용해 빙 돌아서 교실에 가야 했다는 것이다.

 

물론 글쓴이는 교무실에 가거나 선생님 심부름을 가야 하는 목적이라면 중앙 계단을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단, 사뿐사뿐 걸어 다녀야 하고 선생님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경건한 표정으로 공손하게 인사해야 한다고 한다.

 

또 중앙 계단을 이용하고 싶을 때는 손에 프린트물 같은 아이템을 들고 가면 효과 만점이었다는 팁도 전하고 있다.

 

실제로 자신들의 학교에서도 교직원만 중앙 계단을 이용할 수 있었다는 제보성 댓글들이 게시글에 달려 있다. 또 학생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 중앙 계단뿐만 아니라 다른 곳들도 있었다는 댓글도 관찰됐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출입금지 구역이 바로 교실 앞문과 교직원 화장실이었다.

 

학교나 반마다 다르지만 교실 앞문은 보통 선생님 심부름으로 옆 반에 전달 사항이 있거나 물품을 빌리러 갈 때만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예외적으로 학급 임원은 특별히 출입을 허가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선생님이 교실에 없을 땐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 자칫 앞문을 열었을 때 선생님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낭패라는 댓글도 있었다.

 

이처럼 90년대생이 증언하는 학생들의 금단 구역은 현재 거의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글쓴이는 밝히고 있다.

 

 

하지만 당시 학생들에게는 함부로 갈 수 없었던 공간이었던 듯 하다. 한편으론 추억의 한 조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의 꼰대 문화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덧붙이고 있었다. 

 

과연 학교의 꼰대 문화로 일컬어지는 학생들의 금단 구역은 전부 사라진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히려 90년대생이 경험한 학창 시절 꼰대 문화의 범위가 초중고에서 점차 확대됐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대학교 후배가 교수로 임용된 후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학생들과 소통을 나누고 싶은 생각에 식당을 방문했다. 

 

마침 같은 과 학생을 발견하고는 옆으로 다가가 함께 식사를 해도 괜찮은지 물었다. 그러자 학생은 너무나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그가 학생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학생은 자신이 3학년인데 학교를 다니는 내내 어느 교수님도 같이 밥을 먹자고 한 적이 없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냥 같이 밥 먹기 싫었던 것 아니냐며 농담을 던졌지만, 개인적인 사연을 떠나 왜 그처럼 학생과 교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건 부당합니다], 임홍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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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앞서, 한국의 남성과 여성들은 이러한 대결 모드가 진행되기 이전에 우리 사회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각기 다른 부당함을 가지고 있다고 살펴본 바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현재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젠더 갈등은 곧 부당함과 부당함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남녀 간 문제에서 기인한 것처럼 보이는 이 문제도 따지고 보면 부당함의 주체가 남/녀 쌍방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지지고 볶고 싸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상대편을 싸잡아 혐오하는 방식은 효과적인 해결 방식이 될 수 없다.

 

<공정하지 않다>의 저자 박원익과 조용호는 남녀가 서로의 차이점을 보고 총을 겨누는 것은 초점이 어긋난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제는 남녀 모두가 서로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봐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여기서 문제 해결의 작은 힌트를 찾아낼 수 있다.

 

저자들은 페미니즘을 둘러싼 남녀 인식의 격차를 뚜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전통적인 가부장적 성 역할에 대한 반감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젊은 남녀들은 각자의 이유로 결혼이 불공정 거래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남녀 각자에게 부여한 전통적 가치관, 즉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 안에 감춰진 부당성을 모두 공통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독박 병역과 독박 육아라는 다른 차원의 무기를 허공에 휘두르며 타격감 없는 무한 전쟁에 빠져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진짜 적이 사실은 서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구조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무의미한 싸움에서 벗어나 협력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집단 싸움을 부추기는 양극단 커뮤니티 속 트롤러들의 목소리에 대표성을 부여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트롤러들과 건강한 남녀를 구분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전히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이 당하는 성범죄에 함께 분노하고, 여성을 향한 혐오에 맞서 함께 싸운다.

 

여성들 역시 나의 친구와 가족이 묵묵히 국가 주도의 강제 징집을 신성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수고 많았어" 라는 따스한 한마디를 전달해 왔다.

 

앞으로도 SNS와 미디어는 계속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헛된 시도를 주류의 목소리인 것처럼 포장하고 선동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각자의 부당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반복해 상기하고, 자극적이고 급진적인 모습 뒤 건강한 일반인이 굳건히 서 있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연대를 이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부당합니다], 임홍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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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임금 격차 또한 큰 차이를 보인다.

 

OECD에서는 매년 회원국의 남녀 임금 격차를 발표하는데, 대한민국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5년부터 2020년까지 1등의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그 격차 수준은 1995년부터 2020년까지 1등의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그 격차 수준은 1995년 44.2퍼센트에서 2020년 31.5퍼센트로 다소 완화된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큰 폭의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남녀 간 큰 차이를 보이는 주된 이유로는 여성의 경력단절이 뽑힌다.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도맡으며 경력이 단절되고, 자연스럽게 여성의 근속 연수가 짧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에 대한 또 하나의 반론은 "경력 단절 없는 20대 여성은 군대를 간 남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 아닌가?"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가설은 일부 사실로 드러난다. 

 

연령대 남녀 임금 격차에서 만 20~24세는 남녀의 차이가 없거나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남성의 군복무를 반영하지 않은 결과다. 군복무, 경력 차이, 대학 전공별 차이 등의 변수를 통제해 임금 격차를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 경력 단절 이전의 연령대에서도 성별로 인한 격차가 존재한다.

 

여성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분명 여성이 사회적으로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는 현시대에도 여성으로서 당하는 객관적인 부당함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좀 고민이 된다. 리더로서의 실력, 임금을 받을 만한 구체적인 활동이 뒷받침 된 결과라면 단순히 임금 차이만 가지고 불평등을 논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된다. 여성을 약자로 인식하고 복지의 측면에서 일정 부분 선을 맞추려는 취지라면 어느 정도 참작이 되지만 그런 논리는 여성들도 동의하지 않을 텐데.........)

 

 

이러한 부당한 차별을 해소하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 우리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여기고 있는 페미니즘(Feminisim)이다. 만약 위와 같은 의미에 한정한다면 페미니즘의 정의는 분명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정의한 대로 '성별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평등이 존재한다는 믿음', 즉 일종의 휴머니즘에 기반을 둔 평등적 사회 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다른 의미의 강력한 논란을 품은 단어가 돼버렸다.

 

지금의 페미니즘은 매우 광범위하고 수없이 많은 분파가 있어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도 힘들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알려진 사람들에게 "페미니스트세요?" 라고 물으면 "어떤 페미니즘을 말씀하시는거죠?" 라는 대답을 듣기 일쑤고,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페미'는 그 자체로 '여성우월주의'이자 극단적으로 남성을 혐오하고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모는 성차별주의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정도다.

 

어찌 보면 여성의 부당한 성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개념이 오히려 남성을 차별하는 도구로 인지되거나 오해를 받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반여성을 대표 기치로 내세운 극우사이트 '일베'의 무차별적 혐오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한 메갈과 워마드 사례가 그렇다.

 

이들 커뮤니티가 일베와 같은 방식으로 혐오를 돌려주는 미러링을 진행하면서, 지금 현재까지도 젠더 갈등이라는 이름으로 급진적인 페미니즘과 30대 이하 젊은 남성들의 부당성 대결이 이어지고 있다.

 

-[4부]에 계속-

-[그건 부당합니다], 임홍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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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신흥 강대국 중국이 미국을 세계 패권국가 자리에서 밀어낼 수 있을까.

 

독자들은 이후 전개될 이야기를 통해 미중 패권 경쟁의 미래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앞서 현재 두 나라의 국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쏟아져 나오는 상당수 보도와 연구에서 미국은 흔히 '지는 해'로, 중국은 '떠오르는 해'로 묘사된다.

 

그러나 세계은행의 집계에 따르면 이는 사실과 동떨어진 견해다.

 

한 국가의 하드파워, 즉 전통적 의미의 국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경제력과 군사력이다. 

 

경제력으로 볼 때 중국은 분명 '떠오르는 해'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개혁 개방 초기인 1980년에 2%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17%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런데 '지는 해'는 미국이 아니라 유럽과 일본이다. 1950년대 세계경젱의 40%를 차지하던 미국의 비중은 다른 나라들이 성장하면서 1980년에는 25% 수준으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이 수치는 세계경제를 호령하는 데 충분한 규모다.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에는 23%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2020년엔 다시 25% 선을 회복했다. 온갖 종류의 쇠퇴론에도 불구하고 지난 40년간 미국 경제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몫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에 1980~2020년 사이 유럽연합(EU)의 비중은 29%에서 18%로, 일본은 10%에서 6%로 크게 줄어들었다. 

 

 

다시 말해,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비중은 그대로인 가운데 중국이 급부상하고 유럽, 일본이 추락했다는 것이다. 다만 미중 간 격차는 급격히 축소되었다.

 

군사력 측면에서는 미국의 우월적 지위가 더 공고하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2021년 기준으로 미국의 군비 지출은 8010억 달러로 세계 전체 군비의 38%를 차지했다.

 

이 액수는 2~11위 국가의 군비 총액과 맞먹는 수준이다.

 

2위인 중국은 2930억 달러(14%)였다. 다만, 최근 10년간 추세를 보면 중국의 추격이 무섭다. 2012~2021년 미국의 군비지출 증가율은 -6%를 기록한 반면에 중국은 72%에 달했다.

 

미국과 중국의 국력 비교는 이렇듯 짐작보다는 팩트를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통계와 추세를 고려한 냉정한 평가가 미중 패권 경쟁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의 위상과 경로를 상당 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두 나라 경쟁의 판도는 중국이 지금까지의 급격한 발전을 얼마나 더 지속할 것인지, 혹은 어느 수준으로 둔화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발전 경로는 미국의 강력한 대중국 경제 제재와 코로나 19 팬더믹, 중국공산당의 기업 통제와 시장 개입, 인구 고령화 등의 문제에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기술의 충돌], 박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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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의 역사에서 기술 변혁과 세계패권은 뗄 수 없는 인과관계를 갖는다.

 

18세기 이래 산업의 기반이 되는 기술 개발에 성공한 국가는 생산력의 비약적 증가를 이뤄냈고, 이는 국제 무역의 주도권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그렇게 쌓은 국부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키워 세계패권을 거머쥐었다.

 

18세기 후반 증기기관을 개발해 1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증기기관은 전례 없는 대량생산체제와, 철도를 비롯한 수송, 교통망을 탄생시켰다. 이를 토대로 융성한 국제 무역과 세계 최강의 해군력이 대영제국 100년의 영화를 이끌게 된다.

 

19세기 후반 미국은 전기와 내연기관을 기반으로 한 제2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올라타며 영국의 경제 구모를 넘어섰다.

 

1차 세계대전(1914~1918)과 대공황(1929년~1930년대) 이후 영국의 퇴조를 틈타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한 미국은 2차 세계대전 (1939~1945)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세계 패권국 자리에 올랐다.

 

미국은 1980년대 제조업 공동화와 쌍둥이 적자(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시달리며 휘청거리는 듯했으나, 20세기 말 컴퓨터와 인터넷 등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면서 패권 유지에 성공한다.

 

21세기 초 세계는 다시 인공지능과 통신망, 그리고 신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고 있다.

 

중국이 노리는 것도 바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회의 창이다. 

 

기술 격변기에 대도약을 이뤄 세계 최강국 자리를 넘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2013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해 9월 공산당 핵심 권력집단인 정치국은 IT 산업단지인 베이징 중관춘에서 집단학습 행사를 열었다. 정치국 집단학습이 중국 지도부의 집단 거주지인 중난하이 밖에서 열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정치국 위원들은 반도체 장비와 바이오, 우주항공 산업 전시 구역을 주의 깊게 둘러봤다.

 

또한 빅데이터, 나노 재료, 생체칩, 양자통신 분야의 기술 개발과 응용 수준에 관해 연구원들과 긴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우리는 위기 의식을 갖고 새로운 과학기술 혁명과 산업변혁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

 

기다려서도, 관망해서도, 나태해져서도 안 된다."

 

라고 말했다. 이듬해인 2014년부터 중국은 '대중창업 만중혁신'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대대적인 창업장려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후 시 주석은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포부를 국제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2018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BRICS)(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 남아공) 정상회의 연설에서 "18세기 1차 산업혁명의 기계화, 19세기 2차 산업혁명의 전기화, 20세기 3차 산업혁명의 정보화까지 과학기술 혁신은 사회생산력의 대해방과 생활수준의 대도약을 가져오면서 인류 역사의 발전 궤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우리는 더 크고 더 깊은 과학기술 혁명과 산업변혁을 겪고 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신기술/신업태/신산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당시 별도로 열린 비즈니스 포럼 연설에서 그는 "지금 세계는 100년 동안 보지 못한 대격변에 직면해 있다"라고 진단하며 이렇게 말했다. 

 

"향후 10년은 세계 경제에서 신구 성장동력이 전환되는 시기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양자정보, 바이오 등 새로운 과학기술 혁명과 산업 변혁이 신산업, 신업태, 신모델을 양산하고 글로벌 발전과 인류의 노동과 삶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신흥시장국과 개발도상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해 이 중대한 기회를 잡아야 한다."

 

중국 등 브릭스 국가가 힘을 모아 미국 등 서구 선진국들을 대체하는 기회로 향후 10년을 활용하자는 주장이다.

 

-[기술의 충돌], 박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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