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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 것처럼 지젝은 우리를 위해, 우리를 대신해서 놀란다.

그럼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관찰의 향락에 빠질 수 있게, 일반적인 경우라면 반드시 느꼈을 죄의식 없이 향락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마치 '물론 나는 화장실이나 사도마조히즘, 그리고 발기에 관한 이 모든 이야기가 지극히 외설적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모든 삶의 측면들을 이론화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지젝은 죄의식 속에서 향락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의 자기 책망을 덜어주어, 좀 더 즐겁게 그의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앞의 '거의' 라는 단어는 지젝이 '물신주의적 부인'(fetishistic disavowal)'이라고 부른 것으로 기능한다.


지젝은 자신이 말한 것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부정어법(apophasis)이라 불리는 부인의 논리와 유사한 수사적 장치가 있다. 부정어법은 '어떤 것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함으로써 바로 그것을 말하는 장치'다.


가령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는 목사님의 부정을 언급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진술이 이에 속한다.


그래서 부정어법은 담화 내부의 구멍을 드러낸다.


어떤 것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함으로써 바로 그것의 윤곽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처럼 부정어법은 내가 한 말의 한계, 혹은 지평을 드러낸다.


이를 지젝에게 대입시켜보면, 일상생활의 천박한 측면과 대중문화를 이론화 하는 가운데 지젝은 전통 철학의 한계를 드러낸다.


전통 철학이 언급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말한 것, 자위행위나 멜 깁슨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지젝이 다루는 대상은 철학 담론 내의 구멍, 곧 보통 적합한 이론적 제재를 구성하기 위해 이론의 영역에서 배제해온 것들이다.


이런 구멍을 다루는 행위가 일탈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가 철저하게 보수적인 관점, 즉 전통적인 철학의 관점을 견지하며 그것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만야갸 지젝이 엄격한 철학적 관점도 없이 문화적 파편들을 분석한다면, 달리 말해 그의 이론이 그가 다루는 제재만큼이나 '저급'하다면, 그의 전체 기획은 따분해지고 우리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지젝의 저작이 지닌 첫 번째 매력은 정확히 이와 같은 영역의 혼합, 즉 철학에서 언급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이는 19세기 중엽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Charles-Piere Baudelaire)(1821~1867)가 사용한 공감각과 유사하다.


공감각은 '나는 푸름을 듣는다.' , '나는 큰 소리로 사물들을 본다' 처럼,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과 이미지를 연합하여 묘사하는 것이다.


공감각은 낭만주의 시인들의 개별 감각 묘사가 무미건조해지고 세속적이 됐을 때 비로소 수립되었다.


고상한 철학과 저급한 대중문화를 혼합하는 지젝의 작업은 일종의 공감각, 즉 서로 다른 유형의 담론들을 혼합하여 그것들 각각의 특성을 더 뚜렷이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말해지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철학은 말하지 말아야 한다.' 는 관점이 정확히 독자의 관점, 철학의 대상을 미리 설정해온 우리 자신의 관점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하야 한다.


철학 자체는 자기 대상에 무관심하다.


차갑고 냉철한 지젝, 즉 '거의'라는 단어가 필요없는 이의 관점은 이 무심한 관점이다.


그래서 철학의 부정어법, 혹은 철학에 대한 '공식적' 담론에 뚫린 구멍은 철학 자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구성한 것이다.


끊임없이 대중문화를 참조하여 철학을 더럽힘으로써, 아무것도 회피하지 않는 열정을 철학에 다시 불어넣음으로써, 지젝은 독자들의 공식적 편견에서 철학을 구해낸다.


이런 의미에서 지젝의 이론적 전복성은 정통 이론보다 훨씬 더 정통적인 성격에서 나온다.


그는 철학을 무겁고 진지하게 대했다.


문화에 대한 가볍고 유희적인 논의는 그것을 증명하는 징후이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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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 기니스의 [소명]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출처를 정확히 명시해 두지 않았습니다만 워낙 성실한 학자이니 믿어볼 만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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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열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파스칼은 역사상 가장 탁월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요 서구 문학의 위대한 걸작으로 꼽히는 [팡세](Pensees)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정말로 다재다능했던 인물로 수학의 천재요, 발명가요, 컴퓨터 및 현대 위험 이론의 대부요, 수학뿐 아니라 물리학, 철학, 신학에 정통한 르네상스 사상가요, 프랑스어를 가장 우아하게 구사하는 산문 작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들을 제대로 밝혀 주며 그의 짧지만 강렬하고 고통스럽고 불꽃 같은 인생의 핵심부에 자리잡고 있던 중요한 경험에 대해 아는 사람은 당대에 거의 없었고 우리 시대에도 매우 드물다.


1654년 11월 23일 월요일 저녁, 31세였던 파스칼은 마차 사고로 인하여 죽기 직전까지 갔었다.


그 날 밤 그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경험했고 이것이 그의 인생 행로를 바꾸어 버렸다.


파스칼은 원래 과속 운전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회의론자들은 그의 교통 사고 소식에 비웃음으로 반응했다.


볼테르(Voltaire)는 콩도르세(Condorcet)에게 이렇게 조롱하며 말했다.


"이보게, 뉴일리 다리 사고 이후로 파스칼의 뇌가 손상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반복해서 말해도 싫증이 안 나는군!"


파스칼의 극적인 체험은 밤 10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계속되었다.


그것을 보통 그의 '두 번째 회심'이라 부른다. 그의 첫 번째 공식적인 회심은 24세 때 루앙(Rouen)에서 있었다. 이 두 번째 회심에서 그의 언어 능력이 손상되어 결국 망가지고 말았다. 그는 그 체험에 단 하나의 단어, "불" 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경험은 파스칼에게 너무나 귀하고 결정적이어서 그는 그 단어를 양피지에 적어 윗옷 안쪽 심장 옆에 붙이고 다녔다. 8년 여의 여생 동안 새로 구입하는 윗옷마다 그것을 새겨 넣을 정도였다.


이 사실은 1662년 39세의 나이에 그가 죽은 다음 그의 여동생이 윗옷 가슴부분이 두툼한 것을 보고 발견하게 되었다.


파스칼의 "회상럭"(Memorial) 전반부는 다음과 같다.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가슴 깊숙이 느껴지는 확신, 확신, 기쁨, 평안.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자 너의 하나님

"너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이 세상은 잊혀지네,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이.

그분은 오직 복음서에서 가르치는 길로만 발견될 뿐.

인간 영혼의 위대함이여.

"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당신을 알지 못했어도 나는 당신을 알았나이다."

기쁨,기쁨,기쁨,기쁨의 눈물


우리는 대부분 파스칼의 수학적 업적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그의 짧은 인생에 담긴 고통과 괴로움을 경험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품과 재능의 깊은 잠재력에 불을 붙여 찬란한 불꽃으로 타오르게 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도 열려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소명이다.


그 소명이 파스칼에게 너무나 깊이 다가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불이 그의 삶과 일을 어루만졌고 그의 전 생애가 소모되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파스칼은 소명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하나님의 소명은 삶에서 가장 깊은 성장과 최고의 영웅적 자질을 향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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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철학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퓨전된 문화인 같은 느낌이 좋다.

 

그의 주장들은 비판적으로 고찰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며,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의 철학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다.


자크 라캉을 공부하다 보니, 지젝이 라캉의 정신분석을 적절히 활용해서 또 다른 사유를 전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요즘 득세하고 있는 해체주의, 구조주의 철학자들의 책보다 일단 재미가 있고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도 좀 더 통통 튀는 매력이 있다고나 할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슬라보예 지젝(1949~)은 철학자이다. 하지만 지극히 유희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글을 쓴다는 점에서 여느 철학자와 다르다.


지젝은 철학을 끊임없이 오락거리로 만든다.

 

비판적 사유 특유의 고답성을 유쾌하게 무시하는 그의 접근방식은 열정적이고 전복적이다.


정치적 무관심에 빠진 현대인들의 생활을 꾸짖는가 하면, 다음 순간 이웃집 닭에게 잡아먹힐 걱정을 하는 남자에 관한 농담을 하고, 영화 <스피드> 속 키아누 리브스의 윤리적 영웅주의를 역설하는가 하면, 비아그라의 철학적 토대와 마르크스주의에서 기독교가 갖는 역설적 가치를 폭로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젝은 정신분석학과 철학의 목덜미를 붙잡아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대면시킨다.


영국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지젝을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럽에 출현한 사람 중 가장 놀라운 명민함으로 정신분석학, 혹은 문화이론을 해설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지젝의 이 '놀라운 명민함'은 그의 놀람에서 비롯된다.


정말이지 그는 끊임 없이 놀라서 묻는다.


 

왜 모든 것이 이와 같은가?


물론 지젝의 놀람은 일종의 전략이다.


그의 주장대로 비판적 사고의 토대는 의혹과 경계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 ('이것은 그와 같다' , ;법은 법이다' 등)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 우리가 현실로 대면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묻는 순간, "철학은 시작된다."


부모에게 하늘이 왜 파란지 묻는 어린아이의 엉큼함으로 지젝은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그것을 하는지에 관한 통상적인 지식 전체를 의문에 부친다.




 

 

대중문화로 철학을 '더럽히는' 철학자

 


 

지젝의 매력 중 하나는 그 자신의 표현대로 "영화나 대중문화의 사례들과 때로는 고상한 취향의 한계를 위험하게 넘어서는 농담이나 정치 일화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방법으로 대중문화와 일상생활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죽음이나 고매한 시적 극단을 메마르고 잔잔한 어조로 설명하는 일부 철학고 달리 매우 풍부한 호소력이 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그가 '고상한 취향의 한계'와 협상하여 그것을 자기 저작의 일상생활과 통합시키는 방법이다.


지젝 스스로 지적하듯이, 타란티노나 화장실에 관한 논의에서 발생하는 미세하게 역겨운 향락은, 실제로는 "소위 인간적 고려라고 하는 병리학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기계적' 사유의 전개"를 은폐한다.


가령 지젝이 영화 <에얼리언>의 지하 동굴에 대해 "이 동굴이 불러 일으키는자궁-질의 이미지는 거의 노골적이다" 라고 말할 때, '거의'라는 단어는 확실히 그의 저작을 관통하는 차갑고 냉철한 이론가의 면모와 그가 겨냥하는 독자 사이의 분열을 시사한다.

 


자궁-질의 암시가 '거의 노골적'이라면 정확히 누구에게 그렇다는 것인가?


답은 물론 우리, 지젝의 독자들이다.


이런 진술로 지젝은 우리를 소외시킨다.


다시 말해서 이런 자궁의 환기는 너무나 음란해서 거의 외설에 가깝지만, 동시에 지젝이라는 '이론가' - 그것이 독자의 감각에 미칠 충격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문화적 파편들을 자신의 이론적 제분기에 집어넣는 이론가-에게는 전혀 외설스럽지 않다.


따라서 '거의' 란 단어는 지젝의 작업 속에 감춰진 분열, 일종의 '떨림점'을 지시한다.


독자의 감각을 알고, 마찬가지로 그 감각을 지니고 있는 지젝은, 오직 이론적 요점과 엄밀성만을 따지는 지젝에게 공명하여 떨린다.


요컨대, 지젝의 문체가 지닌 트릭은 이러하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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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저서를 읽다가 intro- 부분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인물 정보라도 간략히 알고 접근하시라는 취지에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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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영향으로 공화파 학교를 졸업한 지라르는 1940년 바칼로레아에 합격한 이후 이듬해인 1941년에 고등사범학교(ENS) 입학시험 준비를 위해 의학 공부를 하는 형을 따라 리옹으로 향한다.


하지만 전쟁 당시의 열악한 상황으로 인해 고향으로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그는 아버지의 충고에 따라 파리 고문서 학교에 진학한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그리 만족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서관이나 박물관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그에게 미국에서 프랑스어 조교 제의가 들어왔고, 그는 1947년 프랑스를 떠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미국에서 결혼한 그는 학문적 여정 전체를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지라르는 1950년 인디애나 대학에서 [1940~1943년 사이 미국에 대한 프랑스의 여론]이라는 제목으로 현대사 박사과정을 마친 뒤 같은 대학에서 소설 강의를 시작한다.


그는 강의를 하면서 특히 스탕달과 플로베르, 프루스트,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에 나타난 공통점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는 그의 첫 번째 저서와 긴 학문적 여정의 시작을 장식하게 된다.


1957년 존스홉킨스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지라르는 그곳에서 1968년까지 11년 동안을 재직하는데, 이 기간은 그의 학문적 여정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 그는 레오 스피처를 비롯해 조르주 풀레와 장 스타로벵스키 등과 같은 당대의 대표적인 비평가들과 만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첫 번째저서,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 책이 불러일으킨 여러 논쟁들은 미국뿐 아니라 고국인 프랑스에도 그의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1966년 지라르는 '비평의 언어와 인문학' 이라는 유명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뤼시앵 골드망(Lucien Goldman),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자크 라캉(Jacques Lacan) 등을 비롯해 구조주의라는 새로운 사조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이 학술대회는 말 그대로 미국에 구조주의를 소개해 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학술대회는 성공적이었지만 정작 지라르 자신은 이 학술대회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그는 이 학술대회가 가져온 결과에 큰 불만을 표시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구조주의나 해체주의 등과 같은 현대의 주된 사유 흐름과는 전혀 동떨어진 사유 체계를 형성했던 지라르는 이러한 이론들이 자신의 영역을 순식간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반길 수만은 없었다.


결국 지라르는 이 일을 계기로 1968년 버펄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1975년까지 그곳에 재직한다.


버펄로 대학 시절 무엇보다도 눈여겨볼 만한 점은 바로 [폭력과 성스러움]의 출판일 것이다. 지라르의 학문적 지평을 결정적으로 확장시킨 이 책은 '인류의 문화적 기원과 기독교'라는 주제로 나아가는 초석이 되었다.


지라르는 [문화의 기원]에서 이 책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은 존스홉킨스 대학 시절인 1965~68년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본격적으로 인류학에 관심을 가지기 전인 1963~64년 그리스 비극을 읽는 중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대왕]과 에우리피데스의 [바쿠스의 여사제들]을 통해 초석적 폭력(violence fondatrice)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1975년 존스홉킨스 대학으로 돌아온 지라르는 1978년 [세상의 처음부터 감추어져 온 것들]을 발표하면서 또 하나의 학문적 지평을 개척한다.


[폭력과 성스러움]이 출간되기 전인 1971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한 이 책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그가 본격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원래 지라르는 [폭력과 성스러움]을 고대 문화와 기독교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하려고 했지만, 집필 과정에서 기독교 부분을 제쳐놓고 고대 문화 부분만으로 책을 구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때 모아둔 자료를 바탕으로 [세상의 처음부터 감추어져온 것들]에서 본격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논의로 돌입하게 된다.


지라르는 1980년 스탠퍼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1995년 퇴임할 때까지 그곳에 재직했으며, '학제 간 연구소'를 설립하여 퇴임 이후에도 줄곧 활동해 왔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점은 1983년 스리지 라 살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와 1994년에 개최된 '폭력과 종교에 관한 학술대회'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학술대회라고 할 수 있는 스리지 라 살 콜로크는 폴 뒤무셸(Paul Dumouchel)과 스탠퍼드 대학의 동료였던 장 피에르 뒤피(Jean-Pierre Dupuy)에 의해 조직되었으며, 르네 지라르의 학문을 주제로 열린 가장 크고 의미 있는 학술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


'르네 지라르를 중심으로 본 폭력과 진실'이라는 제목의 이 학술대회 문집은 185년 같은 제목으로 그라세(Grasset)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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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출판사에서 나온 [르네 지라르] 서문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옮겨와서 소개해 드립니다.

 

문화 연구가인 르네 지라르를 김우현 감독의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와 동시에 읽으며 공부할 기회를 3~4년 정도 전에 가졌었는데 신기하게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속에 르네 지라르가 인용되어 있더군요.


악한 생각만 욕망해도 그게 실재하는 '악'으로 간주되듯이[마태복음5~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 내용 참고], 선한 것을 욕망하는 것만으로도 '선'이 실재가 될 수 있다는 김우현 감독의 적용은 참으로 신선했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지라르의 '욕망 이론' '모방 이론' 자체도 한번 쯤 숙고해 볼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고, 그가 사회 현상과 이 땅의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그 해답을 '기독교'에서 찾고자 했다는 점은 인상 깊었기에 한번 쯤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서 글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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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지라르(Rene Girard)는 '욕망의 삼각형'과 '희생양' 이론 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 문학 및 문화 연구가다.


그의 활동 영역이 어느 학문 분야에 속한 것인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소모적일 정도로 그는 실로 방대한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다.


물론 이 방대한 영역이 그의 손 아래에서 '단 하나의 주제'로 환원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를 어떤 학문 영역이 연구자라고 정의 내리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면서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이 복잡한 학자, 그럼에도 우리에게 꽤나 친숙한 학자의 삶을 일별해보기로 하자.


작가는 물론이거니와 여느 사상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의 삶이 보여주는 단편들과 삶의 전반적인 궤적을 살펴보는 것이 그의 작품 및 사상 세계 전체를 통찰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론을 달지 못할 것이다.


 

물론 작가의 삶과 그의 텍스트를 철저히 분리하려는 시도들이 난무하고 있는 오늘날이지만, 한 작가 혹은 사상가의 저작과 사유 체계 속에는 그가 삶 속에서 경험한 수많은 사건과 만남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한 사상가의 학문 세계라는 거대한 박물관에 이제 막 들어서는 입문자들에게 있어서 그의 생애만큼 손쉬운 안내서도 없을 것이다.

 


르네 지라르를 소개하는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난점이자 가장 먼저 부딪치게 되는 장애물이 바로 여기에 있다.


르네 지라르가 남긴 학문적 소산이나 유명세에 비한다면 정작 그의 생애와 관련된 자료들은 극히 미약하다.


저서는 물론이거니와 이론에 대한 각종 해설서들, 또는 인터넷 자료들을 두루 살펴보아도 그의 생애에 대한 자료는 한 페이지 남짓하게 정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르네 지라르의 학문 여정 자체가 고향인 프랑스가 아닌 미국 대학을 무대로 이루어졌으며, 이론 또한 현대의 주된 사유 흐름들과는 다소 동떨어진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고민은 더해진다.


굵직한 평전이랃 한 권 출판되었다면 더도 없이 고마우련만, 우리에게는 아직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이 책도 르네 지라르에 대한 소개보다는 철저히 이론 세계를 소개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르네 지라르의 이론 자체가 그의 말대로 '단 하나의 주제'로 단단히 엮여 있는 만큼, 그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해도 충분히 접근 가능하고, 이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2004년에 출판된 지라르의 대담집인 [문화의 기원]은 그의 삶의 여정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조금이나마 충족시켜주고 있다.



르네 지라르는 1923년 12월 25일 성탄절에 남프랑스 지방에 있는 아비뇽이라는 도시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르네 노엘 테오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공화파이자 반교권주의자였던 아버지는 파리 고문서 학교를 나온 지방 사학자로 아비뇽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일했다.

 

반면 가톨릭 신자이자 왕당파 지지자였던 어머니는 지체가 높고 보수적인 가문 출신으로 예술에 조예가 깊은 여성이었다.


특히 어머니는 드롬 도에서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킬로레아에 합격한 첫 번째 여성이기도 했다.

 

지라르는 이처럼 거의 모든 면에서 상반되는 생각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라났지만 부모 중 어느 쪽도 사상이나 종교에 맹신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예를 들어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는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꽤나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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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신

 

저자: 알리스터 맥그라스

 

43page ~49page

 

 

 

도킨스는 누구인가?

 

하지만 먼저 도킨스부터 소개하자. 클린턴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 3 26일 케냐(Kenya)에서 클린턴 존 도킨스(Clinton John Dawkins)와 진 메리 비비안 도킨스(Jean Mary Vyvyan Dawkins)의 아들로 태어났다.

도킨스에 따르면, 자신의 종교적 배경은 전통적인 성공회였다고 한다.

그러나 청소년 시기에 프랑스 예수회 사제이자 고생물학자였던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뎅(Pierre Teilhard de Chardin)의 진화와 영성의 관계에 대한 견해에 관심을 가졌다는 단서도 있다.

 

 

 

 

 

도킨스는 온들 스쿨을 졸업한 후 1959년에 옥스퍼드 대학 베일리얼 칼리지(Ballio College)에 동물학 전공으로 입학했다.

1962년 졸업 후 옥스퍼드 대학 동물학과에서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공동수상자였던 니코 틴버겐(Niko Tinbergen, 1907~88) 교수의 지도로 연구를 시작했다.

 

 

 

틴버겐과 그의 오스트리아인 동료인 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 1903~89)동물행동학(자연 환경에서 일어나는 동물 행동의 전체 패턴을 적응과 패턴의 진화를 중심으로 분석하는 연구)을 개척하고 있다.

로렌츠가 1930년대에 이 학문의 개념적 토대를 놓았다면, 틴버겐의 침착하고 세밀한 관찰 작업은 그 이후의 개념적 발전들과 실천적 발전에 공헌했다. 특히, 그의 기념비적 작품인 [본능에 대한 연구](The Study of Instinct, 1951)가 그러하다.

집 병아리의 선택적 쪼아 먹기’(Selective Pecking in the Domestic Chick)라는 제목의 도킨스의 박사 학위 논문은 동물행동학의 이러한 전통 위에 서 있다. 그의 박사 논문의 주제는 간결하고도 구체적이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닭이 주변 자극을 부리로 쪼는 방식을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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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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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의 영어 표현을 매끄럽게 번역할 능력도 부족하거니와 영어 실력 자체의 미진함으로 인해 이해 안되는 부분이 많이 있음을 유념해 주시길 바랍니다.

 

더 깔끔하게 누군가 번역해 주시면 그걸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C.S Lewis가 인용한 부분들은 이미 번역되어 나와 있는 책들을 찾아 보시면 더욱 아름답고 자연 스러운 표현들을 보실 수 있으니 이건 그냥 참고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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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가 컨퍼런스 시간 전부를 C.S Lewis 라는 사람 한 명에게 쏟아 부어야 하는지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Peter Kreeft“The Romantic Rationalist: Lewis the Man” 에서 C.S Lewis에게 보낸 찬사를 여러분과 공유하며 이 강연을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황량한 시대가 이어지던 때세부적이고 전문적인 분야만을 연구하도록 만드는 사조가 팽배했었기에 이 시대는 다방면에 박식한 천재들라든지, 낭만적인 감성을 지닌 시인들, 정신적이고 숭고한 사랑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 수사학적 감각을 지닌 전문가, 심지어 정통 그리스도인을 거의 쓸모 없게 만들어 버렸는데 그와 같은 시대 가운데 한 사람이 있었다. (마치 또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 그는 엘프나 천사처럼 비현실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는 이와 같은 영역들에서는 아마추어였지만 자신의 전공 분야인 중세/르네상스 영미문학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기도 했다.

 

1963년도에 죽기 전까지 그는 문학사, 문학 비평, 신학, 철학, 전기문 분야, 성경 연구, 비유학, 판타지, 공상 과학, 편지글, , 설교, 공식적인 수필과 비공식적인 수필, 역사 소설, 영성 일기, 종교적 우화, 단편집, 아동 소설 등을 저술하며 일생을 바쳤다.

 

Clive Staples Lewis는 일개 인간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또 하나의 세상과도 같았다.

 

 

당신이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와 같은 찬사를 더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C.S Lewis라는 사람이 뭔가 굉장히 특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그가 놀랍도록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믿습니다. 그가 이 땅을 떠난 지 50주년이 되는 지금 이 순간, 이와 같은 컨퍼런스는 그를 보내 주신 하나님을 향한 크나큰 감사와 그를 향한 우리의 존경심, 그리고 그의 재능이 온 세상 가운데 영원토록 보존되고 전파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열망에 비하면 매우 미약하고 작은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의 유년기&학교 생활]

 

이 컨퍼런스에서 많은 연설자 분들이 루이스와 관련된 그들의 관심사가 반영된 그의 삶의 많은 요소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 여러분들에게 4분 동안 그의 삶을 간략하게 나눌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몇 몇 심오한 진실에 대해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더 나눠야 하기 때문입니다.

 

루이스는 늘 우리가 비가 내리고 홍수가 덮쳐올 때 집 속에 꼭 감춰 두고 싶어하는 그런 류의 중요하고도 심오한 진실을 사랑했었습니다.

 

루이스는 1898년도에 Ireland에 있는 Belfast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9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재혼하지 않았습니다. 1908년도 8월과 1914년도 가을 사이 즈음에 루이스는 네 군데나 되는 기숙학교를 다녔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2년 반 동안 그는 William Kirkpatrick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루이스는 그를 The Great Knock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의 내면에서 태동하던 무신론이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더욱 확고해졌고 그의 추론 능력은 이와 같이 독특한 방식으로 정제되고, 훈련되어져 갔습니다. 루이스가 말하기를, 세상에 거의 완전 순도100%의 논리로만 구성된 존재가 있다면 그건 바로 Kirk 일 것이다.” 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루이스는 훗날 그 때의 자신을 ‘17세의 합리주의자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믿음의 대변자가 되어가는 과정]

 

그러나 그의 합리주의가 정점에 달하던 그 순간, 그는 George Macdonal의 판타지 소설인 Phantastes[판타스테스]에 매혹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와 같이 그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날 밤, 나의 상상력은 보기에 따라서는 일종의 세례를 받았었다.” 무언가가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어줬고, 밝은 그림자가 내면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그는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낭만적인 충동들이 내면에서 다시 꿈틀거렸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그 당시 상황이 생생한 사실이었고 거룩한 순간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루이스는 그 독특한 경험을 이와 같이 부르진 않았었습니다.)

 

 

18살 때,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그는 육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1918년도 2월 달에 그는 프랑스에서 부상을 입어 회복을 위해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옥스퍼드에서 1919년도 1월달에 공부를 다시 재개했습니다. 그 이후로 6년 간 공부한 결과 그는 고전 분야, 인문학, 영문학 이 세 분야에서 1등급(우등) 학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1925년도 10월 달에 대학원생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수업을 보조하는 학생 조교가 되었습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26세 되던 때입니다.

 

6년 뒤인 1931년도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진리라는 강한 확신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10년이 체 지나지 않아서 그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이라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믿음의 대변자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출현하는 방송 대담 프로그램은 1941~1942년도에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전성기의 루이스]

 

루이스는 자신이 지닌 창조성과 변증적 능력의 절정기에 다다랐다. 그의 전성기에, 루이스는 중세 영미문학계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권위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라이벌 중 한 명의 이야기를 참고하자면, 루이스는 당시 그의 세대 전체를 대표하는 최고로 박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그와 같은 찬사 그 이상의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종류의 책들이 출판되었는데, [순례자의 귀향], [네 가지 사랑],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페렐란드라] 가 바로 그 출판된 책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1950년도에 [나니아 연대기]를 저술하기 시작했습니다.

 

방금 언급한 이 모든 책들은 각기 다른 장르의 책들인데 이를 통해 루이스라는 한 인물이 작가로서 그리고 사상가로서 심지어 상상력이 풍부한 선지자로서의 면모들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만큼 루이스는 놀라울 정도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947년도 [타임]지의 표지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옥스퍼드 대학에서의 생활 30년 후인 1955년도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르네상스 영문학 정교수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 해인 1956년도에 그의 나이 57세였는데, 루이스는 Joy Davidman 이라는 여성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결혼 기념일을 기념하지 못한 체, Joy 라는 여성은 암으로 죽게 됩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3년 반 후인 그의 65세 생일을 2주 남긴 시점인 1963년도 11 22일 루이스는 Joy 를 따라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하나에 집중된 삶]

 

루이스는 그가 살아있을 당시보다 요즘 더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 40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1억 부 이상이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입각해볼 때, 제가 여러분께 던져 드리고 싶은 메시지는 루이스는 굉장히 보기 드물 정도로 높은 수준과 만족도를 자랑하는 낭만적 합리주의자’(romantic rationalist)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낭만적이고 합리주의적인 깊은 (그러나 종종 왜곡된) 열망이 숨어 있습니다.

 

저의 논지는 그의 낭만주의와 그의 합리주의는 루이스가 그리스도께로 가게 된 길잡이 역할을 해 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낭만주의와 합리주의는 그가 일생을 살아 내고, 일생동안 이뤄낸 업적들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은 루이스를 논리와 비유라는 두 가지 특별한 재능을 겸비한 저술가이자 교사로 만들어 줬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재능을 가지고,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사람들에게 세상 저 너머에 있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고, 세상의 의미에 대해 일깨워 주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데 바쳤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그의 낭만주의부터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의 합리주의를 살펴볼 것이며, 이 두 가지 요소가 어떻게 그를 그리스도께 인도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이 두 가지 요소가 그를 20세기 최고의 비유가, 복음 전도사로  자리매김하게 해 줬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낭만주의]

 

1932 8월에 루이스는 14일간 그의 첫 소설을 써 내려갔습니다. 이 때는  루이스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고백한지 1년이 체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순례자의 귀향]은 루이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순례를 하던 삶을 기반으로 한 우화였으며 200page 정도의 분량을 자랑했습니다. 부제목은 “Allegorical Apology for Christianity, Reason, and Romanticism”(기독교, 이성, 낭만주의에 대한 우화적 변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낭만, 합리주의자, 기독교인 이 모든 요소를 옹호했습니다. 

 

 

 

[낭만주의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10년 후에 [순례자의 귀향]의 제 3판이 출시될 때, 그는 서문에 10page를 더 추가시켜서 모호한 부분을 변증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낭만적인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고자 이야기를 덧 붙였습니다.

 

사람들이 모호함을 느끼는 이유는 (고의가 아니게), 제가 이 단어를 굉장히 사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가 정의 내리는 이 단어의 정의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누리는 경험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제목에 써 있는 낭만주의에 대한 나의 정의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들이 주요하게 작용하는 특별하게 반복되는 경험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경험이 떠오르면 저는 주저 없이 그러한 것들을 낭만적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 없는 비동물계와 놀라운 문학의 세계도 결국 이와 같은 낭만을 불러 일으켜 주는 경험들 내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루이스가 언급한 특별한 경험에 대한 정의를 면밀히 조사해 보면, 이와 같은 낭만은 그가 10년 후에 쓴 자서전에서 그가 말하는 ‘Joy’(기쁨)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에 대한] 그와 같은 경험은 강렬한 열망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열망은 다른 류의 열망들과 두 가지 관점에서 구별이 됩니다. 먼저 무언가를 원하는 감각은 갑자기 생겨 나고 때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이 배제된 순전한 원함그 자체는 즐거운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게 사실입니다. 순수한 갈구함은 다른 어떤 ‘fullness(풍성함)’보다 더 좋습니다. 이와 같은 류의 가난은 다른 모든 부유함보다 더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열망의 대상에 대한 기이한 미스터리가 존재합니다. 경험이 부족한 미숙한 사람 (그리고 부주의는 몇가지 미숙함을 그의 삶 속에 남긴다.)이 생각하기를, 자신들이 그와 같은 것을 느꼈을 때, 자신들이 무엇을 열망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떠한 지난 날 벌어졌던 사건들, 무시무시한 바다, 성적인 암시, 아름다운 초원, 머나먼 행성, 놀라운 성취, 놀라운 지식 등]

 

그러나 이와 같은 모든 인상’(impressions)들은 모두 잘못되었습니다.

단 하나 높이 살 만한 요소가 있다면 이와 같은 글은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해 주는 한 사람에 의해 쓰여져 있다는 것 뿐입니다. 이 주장을 함에 있어서 한 치의 자만심이나 허영심이 틈 탈 자리는 없습니다.

, 저는 그들이 잘못되었음을 이성을 사용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입각하여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역으로 이와 같은 오답들 하나 하나에 제 스스로를 노출시켜 보고 스스로를 속여보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 각각의 속임수를 밝혀내기에 충분할 정도로 오랫동안 숙고하고 고민해 봤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 성실하게 이와 같은 열망’(desire)를 좇는다면, 그릇된 대상을 계속 추구하는 것이 되고, 그들의 허위는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그들은 단호하게 자신들이 좇던 그릇된 대상을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 사람은 인간의 영혼은 현존하는 주관성의 세계와 시공간의 실존 속에서 온전하게 주어지지 않은’ (아니 그보다는 주어진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몇 몇 object(대상)를 즐기도록 창조되었음을 명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열망에 대한 변증]

 

루이스는 이와 같은 경험을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존재론적 증거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또는 많이 양보해서, 창조된 세계 너머의 또 다른 무언가에 대한

 

증거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열망에 대한 변증

신실하게 따르면 단순히 그 사실을 논하는데 머무르지 않게 되고 그 (모종의) ‘존재론적 증거와 함께 거하며 살 수 있게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훗날, 그가 [순전한 기독교]를 썼을 때, 그는 이와 같은 논지를 더욱 유명한 표현으로 바꿔 표현합니다.

 

, 만약 내가 이 세상이 만족시켜 줄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설명은 나란 존재가 또 다른 세상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가슴을 후비는 갈망]

 

결국 그의 낭만주의의 정수는 이 피조 세계보다 더 큰 무언가에 대한 감각이 그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험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언가가 다른, 그리고 자연 세계를 뛰어 넘는 그 무언가 말입니다.

 

처음에 그는 강렬한 열망 또는 갈망이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심한 후에 루이스는 말하기를

 

나는 지금에서야 내가 지닌 마음의 상태로만 간주하고 있던 그 경험이 그와 같은 중요성을 지녀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이와 같은 경험에게 중요성을 부여했다. 내가 지녔던 그 경험들은 무언가 다른 것, 이 세상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표지자로서 매우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무언가 다른 것, 이 세상 너머의 어떠한 것은 그가 자신이 갈망하던 것이 God 이었다는 것을 알기 전에도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크리스천이 되었기에, 그 강렬한 갈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게 누구를 나타내는지를 이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와 같은 강렬하고 아름다운 경험들, 달콤쌉쌀하고 아련한 경험들이 내가 회심하게 된 이후로 더욱 뚜렷하게 내게 다가오게 되었음을 나는 믿는다.” 라고 말했습니다.

 

 

 

[루이스의 생애에서 중심이 되는 이야기]

 

 

 

Alan Jacobs 

 

이러한 경험보다 한 인간의 존재의 핵심에 더욱 밀접하게 다다를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Clyde Kilby

 

그의 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발견되어지는 단 하나의 길

 

이라고 표현했으며,

 

루이스 자신 스스로는

 

내 삶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감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예기치 못한 기쁨] [순례자의 귀향] 그리고 [고통의 문제], [영광의 무게]에서 발견되는 낭만주의기쁨에 대한 이와 같은 경험에 대한 루이스의 반복적인 서술을 읽고 나면, 당신은 이러한 영역들이 단순히 루이스가 자신의 독특한 기질이나 성향의 일부로 이것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보편적 특질로서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의미에서 낭만적입니다.

 

루이스는 이와 같은 갈망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신은

결국 이게 우리 모두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일 거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천국을 양한 우리의 감춰진 열망]

 

예를 들어, [고통의 문제]에서 루이스는 천국을 전혀 열망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마저도 사실은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저란 사람도 인간은 천국을 열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 인간이라는 존재는 마음 깊숙한 곳에 감춰진 심연에서는 무언가 다른 것을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애타게 만드는 순간의 경험들, 이뤄지지 않을 약속, 당신의 귀에 잡히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메아리….

 

그러나 만약 사라지지 않은 메아리가 당신에게 찾아와 명확한 소리로 변하였다면….. 당신은 그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의심의 가능성을 넘어서 당신은 이게 바로 내가 창조된 이유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의 문제 참고]

 

그래서 루이스는 자신의 낭만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인간 존재의 경험으로 바라봤습니다. 우리는 모두 낭만적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따금 씩 현존하는 세상은 더 크고 깊은 것을 추구하는 우리의 심연한 감각을 만족시켜 줄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합리주의자]

 

 

 

우리는 지금부터 루이스의 합리주의에 대해 이야기해 볼 것입니다. ‘낭만주의라는 용어처럼, 나는 합리주의라는 용어도 흔히 사용되는 것과 같은 철학적인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사용할 것입니다.

 

제가 합리주의자속에 넣고자 했던 의미는 루이스가 합리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진지하게 헌신했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지니고 있었던 원칙은 참/거짓의 분명한 기준이 존재하며 이 모든 것은 절대 이성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순례자의 귀향]의 부제가 [기독교,이성,낭만주의에 대한 우화적인 변증] 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루이스가 말하는 낭만주의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성은 어떤 식으로 변호하고 있을까요?

 

 

 

[본성을 이끄는 논리]

 

루이스의 합리성에 대한 핵심을 이야기해 보자면, 그는 비모순율의 원칙(the law of non-contradiction)(모순율)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모순율은 사물이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니다 는 될 수 없다고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원칙).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은 법칙이 배제되어 버리면 진리만 손상을 입는 것이 아니라 낭만주의기쁨까지도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비모순율의 법칙은 모순적인 진술이 동시에 둘 다 참이 될 수 없다는 개념입니다.

 

 

 

 

 

루이스는 논리를 궁극적인 현실의 실제적인 표현이라고 간주했습니다. 논리의 법칙은 문화가 각기 다르게 창조된 인간의 관습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의 법칙현실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이 가능케 만들어 줍니다.

 

그는 말하기를

 

논리는 실재하는 것들이 실존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진정한 통찰력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해서, ‘사유 법칙구체적인 무언가에 대한 법칙이 되기도 한다. 즉 가장 먼 공간과 가장 멀리 떨어진 시간 속에서의 구체적인 무언가에 대한…..  

 

 

 

[하나의 장소를 향해 나 있는 두 가지 길]

 

이와 같은 기본적인 논리 법칙’ (또는 합리성’)에 대한 헌신은 루이스를 낭만주의또는 기쁨이라는 길에서 그가 발견했던 그리스도와 동일한 그 분께로 루이스를 인도해 줬습니다. 그는 이 상황을 이와 같이 묘사했습니다.

 

“[낭만주의에 대한] 나의 변증과 나의 철학적인 진전에 대한 논증된 변증들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수렴되고 있다.” (, 유신론에 대한 실재, 기독교, 온 열방의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목표 말이다.) 

 

낭만주의 노선에서, 루이스는 자연의 본성 너머에 있는 궁극적 실재를 향해 계속적으로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결국 궁극적 실재의 끝은 God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열망은 이 세상의 무언가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똑 같은 상황이 어떻게 그가 이성을 사용할 때도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는 현대 사회 속에 출현하게 된 철학적, 과학적 우주론을 면밀히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재적인 모순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과학적인 우주론을 총제적인 개념으로서 받아들인다면 (이 관점에서는 합리적이고 인격을 지닌 신이 배제됩니다.), 저란 사람은 기독교에 적합한 사람도 되지 않을 뿐더러, 과학의 범주에도 포함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만약 마음이라는 개념이 전적으로 생리적인 뇌에만 종속되는 것이라면(여기서 의미하는 뇌는 생화학적 개념의 로서 의미가 부여되어 있지 않은 원자들의 집합체일 뿐입니다.), 저로서는 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보다 마음에 대한 제 사유가 더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이유를 도무지 알 길이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생각들이 제가 해결해야 할 마지막 과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다룰 때 중요하게 작용하는 세계관을 나무에 이는 바람과 다를 바 없이 취급해 버립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참이라고 말하거나 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루이스는 이와 같은 행동이 모순적이라고 지적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생각을 사용하는 것그 자체를 무효화 시켜 버리는 세계관을 창조하는데 사용할 뿐입니다.

 

 

 

 

 

[인간 폐지]

 

 

 

이와 같은 개념이 바로 루이스가 [인간 폐지]라는 그의 책 제목에 함축시켜 둔 의미였습니다. 만약 모든 논리의 근본이 되고(비모순율의 법칙처럼), 가치 판단의 근본이 되는 ‘God’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정의 또는 아름다움 등과 같은 가치), 인간이라는 존지는 폐지되어 버릴 것입니다.

 

인간의 사고와 생각은 단지 바스락거리는 잎사귀와 다를 바 없게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 판단은 작은 연못의 일렁임 처럼 하찮은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Tao’() ( 1원칙의 절대성)에 대항하는(궁극적으로는 God에 대항하는) 새로운 류의 신념의 반란은 마치 나무 기둥에 대항하는 잔 가지들의 반란과도 같다. , 만약 그 반란이 성공한다면, 그 반란을 일으킨 자들은 자신들의 존재 자체도 파괴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간폐지 참고하기]

 

 

 

루이스는 무신론적 세계관이 이라면, 기독교의 신학은 깨어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신이 일어났을 때, 당신은 깨어남모두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 속에 머무르고 있으면, 당신은 깨어남을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기독교의 신학은 과학, 예술, 도덕성, 하위 기독교 종교들을 포용할 수 있지만, 과학적인 세계관 그 자체는 다른 어떠한 것들도 포용할 수 없다. 심지어 과학 그 자체도 포괄하지 못하는 설명체계인 것이다. 내가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마치 내가 태양이 떠오른다는 표현을 할 때, 비단 그것이 내 눈에 보여지기 때문에 믿을 뿐만 아니라, 내가 그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표현을 하고, 믿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성을 넘어 기독교로]

 

이와 같은 사고들이 어떻게 그를 기독교를 진리로 부를 수 있게 해 주는 이성의 길로 인도해 줬는지에 대한 루이스의 고백을 직접 들어봅시다.

 

 

 

이와 같은 근거에 기초해 봤을 때, 대중적이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과학적 우주론은 어찌 되었든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철학적 이상주의나 유신론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해도 과학적 우주론보다는 덜 거짓에 가깝다고 표현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상주의는 당신이 그것을 진지하게 취급하기 시작할 때 위장된 유신론이었음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유신론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가 언급했던 주장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그 지점을 심사숙고하며 진지하게 고찰하다 보면 어정쩡한 중간 지대가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는 미친 사람 아니면 진정한 신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광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루이스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준 낭만주의합리주의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그의 일생 동안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모종의 갈망에 대한 경험들은 이 세상의 개념만 가지고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이 루이스를 이 세상 너머에 계시는 God에게로 인도해 줬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가 일생동안 씨름했던 논리와 이성의 경험들은 그로 하여금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정의와 과학이 이와 같은 개념들의 근본을 이루는 초월적인 God 없이는 어떠한 타당성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지점까지 그를 이끌어 줬습니다. 

 

 

 

[언어의 힘이라는 열쇠]

 

그러므로, 루이스는 한 편에는 낭만주의’(또는 깊은 갈망)라는 길을 따라서 그의 구주이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로 나아갔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합리주의’(또는 논리’)라는 길을 따라서 그리스도께로 나아갔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들은 그로 하여금 물질로만 이루어진 세상 너머의 어떠한 실재를 소유하도록 그를 다그쳤습니다. 그 어떠한 실재는 뭔가 전혀 다른 것이었으며 이 세상 전체보다도 더 큰 무언가였습니다.

이 두 길은 마침내 창조주이자 구속자 그리고 우리의 모든 갈망의 궁극적 성취이시며 우리의 모든 이성과 추론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수렴하게 되었습니다.

 

낭만주의합리주의’ (, ‘갈망함논리적 사고’) 는 그로 하여금 이 세상이 지닌 의미타당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를 이 세상 바깥으로 인도해 줬습니다. 이 세상은 그의 깊고 심연한 목마름을 해갈시켜 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그의 가감 없는 논리그 자체에 타당성을 부여해 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의 갈망함은 풍성하고 영원히 지속된 만족감으로 보상되었으며, 그의 이성에 대한 진리 논증은 타당성을 얻게 되었는데 이 모든 과정은 이 세상에서 이뤄진 작업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가능했던 작업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 루이스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줬던 낭만주의합리주의에 대한 이중 경험은 루이스에게 세상의 깊은 의미를 밝히 드러내는 데 언어가 지닌 힘이 얼마나 굉장한지를 알려주는 키가 되어줬습니다. , ‘비유의 막강한 힘 말입니다. 지금부터 비유자로서의 루이스에 대해 알아봅시다.

 

 

 

 

 

[비유의 달인]

 

 

 

God은 하나님이 아닌 것을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만든 not-God 들은 하나님을 드러내고, 알아가는 수단으로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이 세상은 세상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인해 이끌림을 받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무언가는 바로 세상과는 다른 God이었습니다.

그는 낭만주의합리주의로부터 이 세상이 가장 고상하고 가장 진실에 가까이 도달하는 그 순간은 바로 이 세상이 자신들 너머의 다른 무언가를 가리킬 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을 그 자체로 보기 보다는 그 자체와 유사하지만 다른 그 무언가에 빗대어 바라볼 때 가장 선명한 진리를 볼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이 논증을 다음과 같이 추론했습니다. , 만약 이 세상에 대한 가장 심연한 의미를 담고 있는 열쇠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 놓여져 있다면, 이 세상을 그 자체로 단순하게 서술하는 것보다 이 세상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이 세상을 비유함으로써 이 세상을 더욱 깊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끊임 없이 다듬어져 가는 논리적 명료성]

 

루이스가 건드리는 거의 모든 영역들이 놀라운 통찰력으로 빛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가 자신의 논리적 명료성을 끊임 없이 다듬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빈번하게 활용해 주는 비유도 그의 통찰력을 빛나게 해 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은유, 유추, 실례, 직유, , 소설, 신화 등이 사실은 보여지는 세상을 그 세상이 아닌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비유의 여러 방식들에 속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세상이 진정 무엇인지지를 더욱 깊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어떠한 대상이 무엇인지 깊게 들여다 보기 위해서 그 대상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그 대상을 비유한다는 것은 상당히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이 바로 루이스의 전 생애가 루이스에게 가르쳐 준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루이스는 자신의 전 생애를 이 진리를 예시하고 변호하는 데 사용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1931년도에 T.S Eliot에게 자신이 그에게 보낸 에세이를 설명해 주기 위해 글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이 모든 것들은 진리를 담지하는 능력을 지닌 상상력에 대한 낭만적 교리를 재긍정 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비록 낭만그 자체가 진리를 이해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말합니다.”

 

 

 

[비유의 역설적 효과]

 

루이스는 그의 전 생애 동안 언어적 이미지, 언어적 비유가 실재를 조명 해주는 힘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크리스천이 되었을 때, 이와 같이 세상을 바라보는 깊게 내재된 그의 능력이 그가 쓰는 모든 글 속에 오직 진리를 조명할 목적으로만 활용되도록 제한되었습니다.

1954년도에 루이스는 the Milton Society of America에 그의 책 리스트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책들이 어떻게 하나로 묶일 수 있는지를 이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내 안의 상상력을 뿜어내는 인간은 더 많이 늙어 버렸지만 여전히 계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저술가나 비평가보다 더욱 기초적인 감각들이 이 상상력을 뿜어내는 인간 속에 담겨져 있다.

나로 하여금 처음 시인이 되게 (거의 성공하진 못했지만) 만들어 줬던 것도 바로 이 인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회심한 후에 나로 하여금 [스크루 테이프의 편지]부터 [신학적으로 각색된 공상 과학 소설] 까지 자유 자재로 쓸 수 있도록 상징적, 문자적 형태 안에서 내 종교적 신념을 끌어안을 수 있게 해 준 것도 바로 이 인간이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아이들을 위해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를 쓸 수 있게 나를 인도해 준 것도 그 인간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이 받은 소명의 많은 영역에서 상상력이 가미된 문학 작품 저술에 힘을 쏟았는지를 이야기해 준 것입니다.

모든 이와 같은 형태의 비유는 우리가 종종 간과하고 있는 현실의 측면들을 드러내 주는 역설적 효과가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상상과 실재]

 

1940년도에 그는 편지를 썼습니다.

 

신화는 컨텐츠 자체가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 미루어 볼 때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상상력이 풍부한 원천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생생한 실재와 만날 수 있게 해 준다는 관점에서 진리에 더 근접한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대상이 아닌 것에 실재를 비유함으로써 우리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에세이인 “Ono Stories”를 보면, 루이스는 고대 신화인 [Oedipus]에 대한 멘트를 남깁니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이것이 실제 삶을 나타내 주진 않을지 몰라도 아마도 실재는 뭔가 더욱 근본적인 영역일 것이라는 모종의 이미지를 나타내 주는 기능을 지닌다.” 라고 루이스는 말합니다.

 

 

 

루이스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great romance’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1958년도에 편지에 “A great romance는 마지 당신이 도달할 수 없는 어떠한 것을 상기시켜 주는 향기를 지닌 꽃과 같다…. 나는 오크나 엔트, 엘프를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에 대한 느낌들, 먼 과거에 대한 감각들….위험을 감소시켜 주는 느낌….명백히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성취되는 영웅적인 과업들….광대함..어딘지 모를 낯섬….왠지 모를 따뜻함아늑함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뒤엉켜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이 느끼는 것을 그대로 대변패 준다. 

 

 

 

[실재를 드러내기]

 

[순례자의 항해] 서문에서, 그는

 

모든 좋은 우화는 감추기 보다는 드러내려고 한다. 보충 설명하자면, 내면 세계에게 (상상화 된) 구체적인 체현을 제공해 줌으로써 그것들이 더욱 잘 보이고 만져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 [Impenitence] 에서, 그는 가상의 이야기 하는 동물들을 변호하는 내용을 담습니다.

 

Masks for Man, cartoons, parodies by Nature
Formed to reveal us.

 

(인간을 위한 마스크, 만화, 본성에 대한 풍자 등은 모두 진정한 우리를 드러내기 위해 지어졌다.)

 

다시 말해서 영웅 신화 그리고 날카로운 우화, great romance(위대한 낭만소설), 이야기하는 동물들은 모두 드러내기 위해만들어진 ‘masks’(마스크)와 같은 것이다. 다시 비유의 역설로 돌아가 보자면

 

실재를 더욱 깊이 드러내기 위해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그 실재의 일부분을 묘사하는 것…(이것이 바로 비유’)

 

 

 

 

 

[변증학에서 활용되는 비유]

 

혹시 제가 루이스는 시나 소설에서만 비유자로서 살아갔다는 인상은 남기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루이스는 그가 저술하는 모든 장르에서 비유자로 살아갔음을 강조해보려고 합니다.

 

신화와 우화 그리고 낭만소설, 이솝 우화들은 은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됩니다. 그러나 실상 은유적으로, 상상력에 기반하여, 우화적으로 글을 쓰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은 루이스의 삶과 작품 모든 영역에 심겨져 있습니다. 

 

루이스는 그가 저술하는 모든 영역에서 한 명의 시인이자, 장인, image-maker 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어떠한 요소들이 (그의 소설이 아닌) 루이스의 설교, 에세이, 변증적 글들을 매혹적으로 만들어 줬는지를 탐구했습니다.

 

그 결과 루이스는 시인의 감성을 가지고 다른 산문체의 글들을 써 내려가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글들은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물고 주의깊게 정제된 구절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요소들이 상상력을 잘 붙잡아서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우리가 좋은 를 평가할 때 활용되는 단어를 읊을 때 나는 소리, 풍성하고 시사하는 바가 많은 비유와 이미지들, 생생한 묘사, 서정적인 분위기 등이 모두 루이스의 산문 형태의 글에서 발견된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맥그라스의 분석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요소들이 루이스를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쓴 글에서 재미를 주고, 기분을 전환 시켜 주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글을 써야 하며 어떻게 이야기를 주고 받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최고의 롤모델로 만들어 줍니다.

 

Walter Hooper는 다음과 말했습니다.

 

모든 루이스의 작품을 모와 보면, 그의 명확하고 재치가 가득한 산문과 시 속에서 동일한 사람이 발견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의 놀라운 상상력은 길을 인도해 주는 실과 같습니다. 이것은 계속적으로 작품 속에 드러나며, 이와 같은 요소들이 (제가 생각하기에는), 바로 그의 추종자들이 지금까지는 별로 관심 받지 못했던 주제들에 대해 루이스가 글을 썼을 때 열광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루이스가 건드리는 모든 영역들은 모두 그의 마술에 흠뻑 빠져들고 맙니다.

 

 

 

최고 수준의 비유자에게 가르침을 받고,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건 대단히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 이미지와 비유 그리고 창조적인 실례와 은유 그리고 어구를 사용하는 놀라운 방식들은 모두 즐겁고 유쾌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잠언 25:11)

 

솔로몬은 심지어 이미지가 가져다 주는 기쁨을 기념하기 위해 이미지를 활용합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요점으로 삼고자 하는 바는 비유가 가져다 주는 pleasure(유희)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유가 일으켜 주는 조명’(illumination)의 힘에 있습니다. 즉 비유는 진리’(truth)를 드러내 주는 힘이 있습니다.

 

 

 

 

 

[가장 심연한 의미를 지닌 열쇠]

 

루이스의 낭만주의합리주의(그의 깊은 갈망과 그의 타당성을 요구하는 논리체계들) 세상이 과연 어떠한지를 이해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서 세상이 아닌 그 바깥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 세상에 대한 가장 심연한 의미를 담은 열쇠가 이 세상 바깥에 존재한다면(세상의 창조자 그리고 구속자인 예수 그리스도), 세상은 그 자체로 세상 그 자체를 묘사함으로써 단순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아닌 그 무언가로 비유되어짐으로써 더욱 깊이 있는 조명을 받게 될 것입니다.

 

루이스의 그칠 줄 모르는 비유에 대한 헌신 (이미지와 유추 사용 그리고 은유와 놀라운 수준의 병렬 구조, 심지어 그의 가장 논리적인 진리에 대한 설명 체계에까지) 은 단지 큰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는 차원에서만 이뤄졌던 작업이 아니고, 이와 같은 비유가 드러낼 수 있는 더 깊은 차원의 진리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주된 이유는 유희를 누리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진리를 잘 드러내 주는 비유의 속성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루이스는 진리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객관적인 실재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에 대한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진리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성을 활용하는 것은 진리를 알아가고, 변호해 나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이성보다도 더욱 깊고 심연한 영역을 드러내 줄 수 있는 비유만이 드러낼 수 있는 실재의 깊은 차원과 깊이도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세상 속에서 경이로운 것들을 바라본다는 것]

 

이 세상이 궁극적인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경이로움을 가지고 바라보거나 음미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루이스는 [기적]에 나와 있는 이 문단에서 image를 활용한 산문을 가지고 이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데 아마 그의 은유적 표현의 최고봉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어의 영어됨은 다른 언어들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만 오직 생생하게 들려질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같은 논리를 가지고 접근해 볼 때, 오직 초자연주의자들만이 진정한 자연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이 진정 보고자 하는 자연으로부터 조금은 거리를 유지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다시 그 자연을 되돌아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진정으로 실재하는 아름다운 광경이 보일 것입니다. 당신은 자연적인 해류로부터의 뜨겁고 짠맛을 뚜렷하게 의식할 수 있기 전에 이 세상 너머로부터 발원한 순수한 물 그 자체’(pure water)를 맛 봐야 합니다.

여기서 그것 God으로 또는 모든 것으로 인식하기 위해 자연에 대한 모든 핵심적인 요소들즐거움을 잊는 것입니다. 나오십시오. 그리고 뒤돌아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곰과 아기들과 바나나들의 향연: 주체할 수 없는 원자들과 난초들과 암들과 카나리아 벼룩, 기체, 토네이도, 두꺼비들의 향연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것들이 궁극적 실재였노라고 생각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이것들이 단지 남자와 여자를 위한 한 편의 도덕 드라마를 위한 무대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자연은 자연 그 자체입니다. 자연을 경배하지도 마시고, 경멸하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고 알아가십시오…. 신학자들은 우리에게 자연은 (마치 우리 인간들과 같이) 구속받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자연이 예속되어졌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의 본질이라기 보다는 자연의 질병과 같은 것입니다. 자연은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격 안에서 회복되어질 것입니다. (천국에서 금지된 것처럼) 누군가로부터 길들여지거나 살균되어지는 개념의 회복은 아닐 것입니다. 그 때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오랜 원수나 친구, 놀이 상대, 유모 등을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족함 없이 완벽한 시간이 될 것이고,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오직 초자연주의자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연을 볼 수 있다.”

 

세상에 대한 놀라운 경이(핵심과 유희)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세상이 가장 아름답고 놀라울만한 경이는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의 비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의 길은 루이스에게 세상은 일종의 비유임을 가르쳐줬습니다. (우리의 갈망의 궁극적인 충족은 이 세상에서 이뤄지지 않는 다는 것을 가르쳐줬습니다.) 그리고 합리주의의 길은 루이스로 하여금 세상이 비유임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우리의 사고에 대한 궁극적 타당성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비유이기에, (우리의 갈망의 목적지도 아니요, 우리가 지닌 논리의 기반도 아닌), 이 세상은 비유에 의해 가장 심오하게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

 

루이스가 자신의 모든 작품들에서 했던 작업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모든 비유들에서, 그리고 그의 모든 비유들이 가미된 합리적 추론 속에서..), 그는 계속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계속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께 직면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인도했습니다. 그가 가장 잘 알았던 두 길은 바로 낭만주의합리주의였습니다.(‘갈망함논리적 사고’). 그리하여 이 두 가지 길은 루이스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길로 활용되었습니다.  

 

교리적인 측면에서는 저와 상당히 다른 노선을 걷고 있음에도 (그 이슈들은 상당히 중요하고 논쟁적인 부분들입니다.) 제가 루이스를 존경하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의 명백하고, 부끄러움 없는(과감한) 신념에 있습니다.(예수 없는 이들에겐 결여되어 있는.. 그리고 모든 크리스천들은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들 -> 세계적인 수준의 학식을 포함한…). 그리고 많은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숨어 있고, 모호하고 인정받기만을 바라는 지성적인 크리스천들과는 달리 루이스는 늘 과감하고 전면에 설 줄 알았습니다.

 

한 영혼의 구원은 이 세상의 모든 서사시를 보존하고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우리고 우리가 그를 영화롭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영광을 볼 수 있게 도와주다]

 

 

 

이것이 결국 그가 자신의 모든 비유와 합리적 추론을 통해 행했던 작업입니다. 그리고 Norman Pittenger 1958년도에 크리스천의 믿음에 대한 그의 지나치게 단순화된 묘사를 비판했었을 때, 루이스는 그가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보여줬던 것을 우리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비판에 응답했습니다. 

 

 

 

제가 처음 믿음 생활을 시작했을 때 기독교는 굉장히 교양 있는 수도사들의 이해할 수 없는 언어 또는 부흥사들에 의해 제공되는 극도로 감정적인 형태를 띄며 내 앞에 거대하게 다가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 중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임무는 간단했는데 결국 가방끈이 짧은 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활용하고, 각 지역의 특색에 맞춰서 기독교의 교리를 잘 이해시켜 주고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

Dr. Pittenger 는 그가 많은 질병들을 주장하는 것에 덧붙여서 치유책도 조언해 줬었더라면 훨씬 유용하고 훌륭한 비평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잡화점 주인, 변호사, 부동산업자, 장의사, 경찰, 장인들과 같이 그가 속해 있는 지역 내 곳곳에 존재하는 수 많은 사람들 모두를 회심시키고자 할 때 어떻게 그와 같은 작업을 해 낼 것이란 말인가? 어떠한 방법론을 사용하여서, 어떠한 성공요소를 가지고 말인가?

 

 

 

루이스는 낭만주의합리주의가 수렴하는 길인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 왔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그가 이와 같은 길들을 걸으며 배운 요소들 때문에), 그는 놀라운 사유자가 되었고 비유가가 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그의 모습이었고, 이게 바로 그가 알아왔던 것들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복음을 전할 때도 이와 같은 요소들이 잘 활용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낭만적인 시도들을 잘 활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합리적인 논증을 통해서도 결국 그가 보았던 것을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게 해 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그가 지닌 모든 갈망함의 최종점이었으며 그의 모든 사유의 굳건한 근원이었던 것입니다.

 

C.S Lewis: 낭만적이고, 합리주의적이며, 비유가이며, 복음 전도자. 하나님의 영광의 작품이며, 우리를 향한 선물, 여기에 존재하고 있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1Peter Kreeft, C.S. Lewis: A Critical Essay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 1969), 4.

 

2C.S. Lewis, Surprised by Joy (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1955), 135.

 

3Surprised by Joy, 181.

 

4Surprised by Joy, 179,

 

5Alister McGrath, C. S. Lewis: Eccentric Genius, Reluctant Prophet (Carol Stream, Illinois: Tyndale House Publishers, Inc., 2013), 210.

 

6Ibid. 166.

 

7http://ncronline.org/news/art-media/cs-lewis-couldnt-touch-anything-without-illuminating-it (accessed 9-12-13)

 

8He wrote to his friend Arthur Greeves on October 1, 1931, “I have just passed on from believing in God to definitely believing in Christ — in Christianity.” The Collected Letters of C.S. Lewis, Vol. 1, Family Letters 1905–1931, ed. Walter Hooper (San Francisco: HarperSanFrancisco, 2004), 974.

 

9C. S. Lewis, The Pilgrim’s Regress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ty, 1958), 5.

 

10Ibid. 7.

 

11In Surprised by Joy, 17–18, Lewis said that this Joy is the experience “of an unsatisfied desire which is itself more desirable than any other satisfaction. . . I call it Joy, which is here a technical term and must be sharply distinguished both from Happiness and from Pleasure. Joy (in my sense) has indeed one characteristic, and one only, in common with them; the fact that any one who has experienced it will want it again. Apart from that, and considered only in its quality, it might almost equally well be called a particular kind of unhappiness or grief. But then it is the kind we want. I doubt whether anyone who has tasted it would ever, if both were in his power, exchange it for all the pleasures in the world. But then Joy is never in our power and pleasure often is.”

 

12Ibid

 

13Ibid. 8.

 

14Ibid. 10.

 

15Ibid.

 

16C.S. Lewis, Mere Christianity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60), 106.

 

17Surprised by Joy, 238.

 

18Ibid.

 

19Alan Jacobs, The Narnian: The Life and Imagination of C.S. Lewis (New York: HarperOne, 2006), 42.

 

20Clyde S. Kilby, The Christian World of C.S. Lewis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64), 187.

 

21Surprised by Joy, 17.

 

22Devin Brown, A Life Observed: A Spiritual Biography of C.S. Lewis (Grand Rapids: Brazos Press, 2013), 5.

 

23C.S. Lewis, The Problem of Pain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62), 145-146.

 

24C.S. Lewis, “De Futilitate” in Essay Collection and Other Short Pieces (London: HarperCollins, 2000), 674.

 

25C.S. Lewis, The Pilgrim’s Regress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 1958), 10.

 

C.S. Lewis, “Is Theology Poetry?” in Essay Collection and Other Short Pieces (London: HarperCollins, 2000), 21.

 

27C.S. Lewis, The Abolition of Man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47), 56.

 

28 “Is Theology Poetry?”, 21.

 

29Ibid., 20.

 

30Walter Hooper, editor, The Collected Letters of C. S. Lewis: Narnia, Cambridge, and Joy, 1950-1963, Vol. III (San Francisco: HarperCollins, 2007), 1523. Emphasis added.

 

31Walter Hooper, editor, The Collected Letters of C. S. Lewis: Narnia, Cambridge, and Joy, 1950-1963, Vol. III (San Francisco: HarperCollins, 2007), 516-517

 

32Walter Hooper, editor, The Collected Letters of C. S. Lewis: Books, Broadcasts and War, 1931-1949, Vol. II (San Francisco: HarperCollins, 2007), 445. Emphasis added.

 

33C. S. Lewis, “On Stories,” in Essay Collection and Other Short Pieces, 501.

 

34Walter Hooper, editor, The Collected Letters of C. S. Lewis: Narnia, Cambridge, and Joy, 1950-1963, Vol. III, 371.

 

35Ibid., 971-972

 

36The Pilgrim’s Regress, 13.

 

37Alistair McGrath, C.S. Lewis, 108.

 

38Walter Hooper, Poems, vi.

 

39C.S. Lewis, Miracles: A Preliminary Study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47), 67-68.

 

40C.S. Lewis, “Christianity and Literature,” in: Christian Reflections, 10.

 

41C.S. Lewis, “Christianity and Culture” in: Christian Reflections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67), 14.

 

42C.S. Lewis, “Rejoinder to Dr Pittinger,” God in the Dock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 1970),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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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와 그의 종교관

 

책 제목: 과학의 영혼

108page

 

프랑스 태생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물리적 세계가 거대한 기계이며, 식물과 동물 역시 기계와 유사한 자동장치(automaton)라고 주장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자신이 받아들인 기계론적 철학을 당대의 종교적 회의주의자들을 논박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기계적 우주와 인간의 영혼을 예리하게 구분함으로써, 데카르트는 인간 영혼에 대한 믿음을 보전하고, 이를 신에 대한 믿음을 위한 전진 기지로 삼고자 했다.

 

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는 종교적 확언이었다. 사고는 종교적 활동이었으므로, ‘코기토’(Cogito)는 인간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답변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코기토에서 출발한 데카르트는 즉각적으로 신의 존재에 도달했다.

 

 

이런 데카르트의 철학적 유산이 신이나 인간 영혼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 되지 못하고, 단지 거대하고 비인격적인 우주에 대한 기계론적 개념에 대한 증명이 되어 버린 것은 이상한 일이다.

 

기계론적 철학의 확산은 과학사회의 형성에 의해 더욱 촉진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갈릴레오의 추종자들이 그룹을 형성하였고, 프랑스에서는 갈릴레오의 저작을 불어로 번역한 탁발수사 마린 드 메르센느(Marin de Mersenne, 1588~1648)를 중심으로 그룹이 형성되었다.

 

영국에서는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1627~1691)이 왕립협회(the Royal Society)라고 불리는 과학사회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신플라톤주의를 따르는 다수의 무리들에 의해 둘러 싸여 있었지만, 이 그룹들은 선교적 열정을 지니고 자신들의 기계론적 철학을 장려하였다.

 

또한 이들은 기계론적 철학을 종종 종교적 변증과도 연관시켰다. 예를 들면, 왕립협회의 회원인 로버트 훅(Robert Hooke, 1635~1703)은 그처럼 엄청난 장치들에 의해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자연을 보고도 이 모든 것을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것은 어리석다고 보았다.

 

혹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이처럼 탁월한 기계장치들은 전능자의 작품이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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