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영향으로 공화파 학교를 졸업한 지라르는 1940년 바칼로레아에 합격한 이후 이듬해인 1941년에 고등사범학교(ENS) 입학시험 준비를 위해 의학 공부를 하는 형을 따라 리옹으로 향한다.
하지만 전쟁 당시의 열악한 상황으로 인해 고향으로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그는 아버지의 충고에 따라 파리 고문서 학교에 진학한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그리 만족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서관이나 박물관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그에게 미국에서 프랑스어 조교 제의가 들어왔고, 그는 1947년 프랑스를 떠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미국에서 결혼한 그는 학문적 여정 전체를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지라르는 1950년 인디애나 대학에서 [1940~1943년 사이 미국에 대한 프랑스의 여론]이라는 제목으로 현대사 박사과정을 마친 뒤 같은 대학에서 소설 강의를 시작한다.
그는 강의를 하면서 특히 스탕달과 플로베르, 프루스트,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에 나타난 공통점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는 그의 첫 번째 저서와 긴 학문적 여정의 시작을 장식하게 된다.
1957년 존스홉킨스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지라르는 그곳에서 1968년까지 11년 동안을 재직하는데, 이 기간은 그의 학문적 여정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 그는 레오 스피처를 비롯해 조르주 풀레와 장 스타로벵스키 등과 같은 당대의 대표적인 비평가들과 만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첫 번째저서,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 책이 불러일으킨 여러 논쟁들은 미국뿐 아니라 고국인 프랑스에도 그의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1966년 지라르는 '비평의 언어와 인문학' 이라는 유명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뤼시앵 골드망(Lucien Goldman),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자크 라캉(Jacques Lacan) 등을 비롯해 구조주의라는 새로운 사조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이 학술대회는 말 그대로 미국에 구조주의를 소개해 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학술대회는 성공적이었지만 정작 지라르 자신은 이 학술대회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그는 이 학술대회가 가져온 결과에 큰 불만을 표시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구조주의나 해체주의 등과 같은 현대의 주된 사유 흐름과는 전혀 동떨어진 사유 체계를 형성했던 지라르는 이러한 이론들이 자신의 영역을 순식간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반길 수만은 없었다.
결국 지라르는 이 일을 계기로 1968년 버펄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1975년까지 그곳에 재직한다.
버펄로 대학 시절 무엇보다도 눈여겨볼 만한 점은 바로 [폭력과 성스러움]의 출판일 것이다. 지라르의 학문적 지평을 결정적으로 확장시킨 이 책은 '인류의 문화적 기원과 기독교'라는 주제로 나아가는 초석이 되었다.
지라르는 [문화의 기원]에서 이 책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은 존스홉킨스 대학 시절인 1965~68년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본격적으로 인류학에 관심을 가지기 전인 1963~64년 그리스 비극을 읽는 중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대왕]과 에우리피데스의 [바쿠스의 여사제들]을 통해 초석적 폭력(violence fondatrice)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1975년 존스홉킨스 대학으로 돌아온 지라르는 1978년 [세상의 처음부터 감추어져 온 것들]을 발표하면서 또 하나의 학문적 지평을 개척한다.
[폭력과 성스러움]이 출간되기 전인 1971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한 이 책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그가 본격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원래 지라르는 [폭력과 성스러움]을 고대 문화와 기독교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하려고 했지만, 집필 과정에서 기독교 부분을 제쳐놓고 고대 문화 부분만으로 책을 구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때 모아둔 자료를 바탕으로 [세상의 처음부터 감추어져온 것들]에서 본격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논의로 돌입하게 된다.
지라르는 1980년 스탠퍼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1995년 퇴임할 때까지 그곳에 재직했으며, '학제 간 연구소'를 설립하여 퇴임 이후에도 줄곧 활동해 왔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점은 1983년 스리지 라 살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와 1994년에 개최된 '폭력과 종교에 관한 학술대회'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학술대회라고 할 수 있는 스리지 라 살 콜로크는 폴 뒤무셸(Paul Dumouchel)과 스탠퍼드 대학의 동료였던 장 피에르 뒤피(Jean-Pierre Dupuy)에 의해 조직되었으며, 르네 지라르의 학문을 주제로 열린 가장 크고 의미 있는 학술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
'르네 지라르를 중심으로 본 폭력과 진실'이라는 제목의 이 학술대회 문집은 185년 같은 제목으로 그라세(Grasset)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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