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작가 필립 얀시가 바라본 바흐의 신앙과 관련된 일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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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토머스(Lewis Thomas)라는 에세이스트는 행성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을 때 지구를 대표할 만한 작곡가로 어떤 인물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바흐를 택해서 우주로 끊임없이 그 음악을 흘려보내겠어요.
물론 너무 좋은 면만 과장해서 보여주려는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막 만남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가장 멋진 얼굴을 보여주려는 건 얼마든지 애교로 봐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쓴소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요."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던 바르트부르크 성 근처에서 태어난 덕에 바흐는 루터교회와 가장 가까운 작곡가가 되었다.
바흐는 물론 성자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자유를 제한하려 드는 어떠한 권위와도 맞서는 문제 학생이었다.
하지만 목표가 뚜렷했다.
음악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마음에 쉼을 주는 것" 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지치지 않고 완벽을 추구하는 열정과 어마어마한 성경지식을 발판으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표하나, 악절 한 마디까지 살피시는 분은 부유한 후견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임을 확신하고 악보를 그릴 때마다 대부분 JJ 라는 약어로 시작했으며 SDG로 맺었다.
(필자 왈: 여기서 JJ는 Jesu Juva 의 약자로서 "예수님, 도와주세요" 라는 의미입니다. // 그리고 SDG는 Soli Deo Gloria의 약자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이란 뜻입니다.)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의 관계를 깊이 묵상하는 데서부터 마지막 부활을 찬양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바흐가 작곡한 295개의 칸타타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유명한 합창곡마다 자신 있는 고백을 담았다.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오라, 은혜로운 안식이여! 내 손을 잡아 따뜻하게 이끌어다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마지막 칸타타를 쓰는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에는 특별한 표제가 붙었다.
"주여, 이걸 들고 당신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바흐의 주요 작품들 가운데서도 <마태 수난곡Passion According to St. Matthew>은 독일에서 작곡된 합창곡 전체를 통틀어 단연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정작 곡을 쓴 음악가가 생존했을 당시에는 단 한 번 공연되고는 그만이었다.
자극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때부터 정확하게 100년 동안 이 대곡은 빛을 보지 못했다.
1829년, 멘델스존은 스승에게서 이 소중한 악보의 복사본을 얻었다.
원본은 아무짝에도 못 쓸 종이쪼가리쯤으로 여기고 한장 한 장 찢어서 치즈를 포장해주던 상인에게서 사들였다고 했다.
멘델스존은 <마태수난곡>을 다시 무대에 올렸고 바흐가 생전에 받아본 일이 없었던 큰 갈채가 쏟아졌다.
시카고 근처의 라비니아 파크에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이 곡을 연주하는 걸 들었다.
여름 콘서트였다.
3천 명에 이르는 청중들이 공원에 모여 4시간짜리 공연을 관람했따.
청중들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야외복과 액세서리로 화려하게 치장한 채 널찍한 자리에 앉아 촛불을 밝히고 저녁식사를 즐기는 이들과 꾀죄죄한 청바지 차림의 군중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시카고 노스쇼어에 모여 사는 유대계 주민들도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무언가에 홀린 듯,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담담히 재현해내는 이야기에 몰입했다.
공연을 마칠 때까지 합창단 전체가 다섯 차례나 입을 모아 '오 거룩하신 주님'이란 찬송의 잊히지 않는 후렴을 노래했다.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칙칙하고 선혈이 낭자한 상상 속의 그날 밤 갈보리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거장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엮어냈다. 이브닝가운과 턱시도를 차려입은 단원들은 십자가 사건이 인류에게 미친 깊고 깊은 영향 뿐만 아니라 그 캄캄한 밤을 지배했던 고통과 공포까지 고스란히 전달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어가며 못자국과 가시관을 설명하는 부흥사들의 소름끼치는 이야기보다 훨씬 생생하고 절절하게 들렸다.
그날 공연이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제껏 클래식 음악이 불씨가 되어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크리스천인 내 중심에서는 역사를 양분한 어마어마한 사건을 표현하기 위해 위대한 음악가가 쏟아부은 노력이 충분히 빛을 보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C.S 루이스는 위대한 예술을 일컬어 '뚝뚝 떨어지는 은혜의 물방울'이라고 했다.
인간의 내면에 참다운 대상을 향한 갈망을 일깨운다는 뜻이다.
거장의 손에서 빚어진 물방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거대한 물줄기가 된다.
SDG.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by 필립 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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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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