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슬릿 이야기를 할 때 파동은 여러 개의 줄무늬, 즉 간섭 무늬를 보인다고 했지만, 모든 파동이 그런 것은 아니다.
파동이라도 간섭 무늬를 제대로 보이려면 결이 잘 맞아야 한다. 결이 맞지 않아 엉망으로 되어 있는 파동은 파동이라도 간섭 무늬를 만들 수 없다. 예를 들어 야구장에서 파도 타기를 할 때,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일어났다가 앉지 않으면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이처럼 결이 맞지 않은 파동을 '결어긋난 파동'이라 부른다. 파동이 간섭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을 때, 결어긋남이 일어났다고 한다. 결어긋난 파동이 이중 슬릿을 지나면 입자가 지난 것처럼 2개의 줄무늬가 나타난다.
결어긋남을 지지하는 수 많은 실험적 증거가 있다.
이 가운데 직관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좋은 것이 바로 1999년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의 안톤 차일링거 교수 연구팀의 실험이다. 슈뢰딩거 고양이의 역설을 들은 차일링거의 반응은 이랬다.
"뭐가 역설이야? 그냥 실험해 보면 되지!"
물론 이들이 고양이를 가지고 실험을 한 것은 아니다. C60 이라는 거대 분자로 이중 슬릿 실험을 수행한 것이다.
(C60 의 분자 구조)
C60은 탄소 분자 60개가 축구공 모양으로 모인 것으로 지름은 1나노미터에 불과하다. 수십만 개를 일렬로 늘어쉐어 봐야 머리카락 두께 정도 밖에 안 된다. 크기만 보면 여전히 작다고 할 수도 있지만, 원자가 60개나 모인 것이다.
물리학자의 입장에서는 고양이만큼이나 큰 느낌이다. 그래서 거대 분자라고 부른다.
실험의 결론은 간단하다.
이런 거대 분자도 파동성을 보인다. 즉 여러 개의 줄무늬가 나온다는 말이다.
끝!
현재 차일링거 그룹은 분자의 크기를 점점 더 키워 가면서 실험을 하고 있는데, 1차 목표는 분자량 5800의 인슐린으로 파동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양이로도 파동성을 보일 수 있다는 말일까? 차일링거의 대답은 간단하다. "물론! 단, 결어긋남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안톤 차일링거 교수)
사실 C60의 실험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이 분자가 이중 슬릿을 지나 스크린에 도달할 때까지 절대로 측정(관측) 당하지 말아야 한다. . 여기서 측정이란 무엇일까? 내가 안 보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분자가 날아가는 중에 공기 분자와 부딪치면 적어도 부딪힌 공기 분자는 C60이 어느 슬릿을 지나는지 알게 된다. 즉 측정을 당했다는 말이다.
(필자: '측정'의 정의 자체가 상당히 광범위 해진다.)
따라서 여러 줄무늬를 보려면 반드시 진공을 만들고 실험을 해야 한다. 공기 분자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진공도가 나빠져서, 즉 공기 분자가 하나 둘 돌아다니기 시작해서 C60이 이중 슬릿을 지나는 동안 공기 분자와 적어도 한 번 부딪치면 여러 줄무늬는 2개의 줄무늬로 바뀐다.
C60과 부딪치는 순간 공기 분자는 C60의 위치를 알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공기 분자를 붙잡고 물어보면 우리도 알 수 있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즉 공기 분자는 C60의 위치를 알고 있고 우리는 모르더라도 간섭 무늬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비판으로부터 닫혀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사이비 과학일 수밖에 없다."는 포퍼의 주장은 그 이론들을 신주단지처럼 떠받들던 당대 지식인 사회를 향한 큰 도발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포퍼가 처음(1940년대)에는 진화론도 사이비 과학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어떤 개체가 살아남느냐고 물으면 진화론은 적응을 잘한 개체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적응을 잘한 개체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더 잘 살아남은 개체라고 답한다. 이런 식의 진화론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으며 반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진화론은 사이비 과학이다.
하지만 포퍼는 진화론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얼마나 모자랐는지를 금방 깨닫고 진화론을 사이비 과학으로 규정했던 것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심지어 말년에는 생물 진화론과 지식 변동론을 결합시킨 이른바 진화 인식론(Evolutionary Epistemology)을 발전시켜 [객관적 지식:진화론적 접근](Objective Knowledge: An Evolutionary Approach)(1972)을 출간하기도 했다.
지식 성장의 원리인 '대담한 추측과 혹독한 반증'은 생물 진화의 원리인 '맹목적 변이와 선택적 보존'(blind variation and selective retention)을 빼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포퍼가 일평생 화두로 삼았던 '합리성'은 비판에 직면하여 반증의 시도에 눈을 감지 않는 지식인의 정직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단 과학 지식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포퍼는 그의 반증주의에 입각하여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한 열린 사회를 꿈꿨다.
포퍼의 과학철학과 정치철학을 꿰뚫고 있는 중심 원리는 바로 반증주의였다.
이런 포퍼의 사상을 사람들은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라고 한다.
과학의 정의에 대해 다루는 상당히 흥미로운 책입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과학철학자들의 답변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 봐야 할 좋은 개론서입니다. 칼 포퍼는 '반증주의'로 이름을 알린 학자인데 그의 이론에 입각해서 프로이트의 심리학이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 점성술을 바라본다면 이들은 '과학'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특정 학자의 정의가 '과학의 참 정의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가 소개되어 있으며 저마다의 정의가 지닌 독창성을 중립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과학을 정의하는데도 이와 같이 단일한 결론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과학의 구체적인 내용들에 있어서는 더더욱 많은 논의와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상당히 유익한 책이다.
포퍼는 자신의 반증주의에 기초하여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라 믿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사이비라고 비판했다.
-칼 포퍼-
예를 들어 어린이를 익사시키려고 물 속에 집어던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물속에 뛰어드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두 행동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첫 번째 사람의 행동은 억압 본능으로 인한 고통에 그 원인이 있다고 설명할 것이다.
반면 두 번째 사람의 행동은 억압 본능이 '승화(sublimation)'된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프로이트를 이은 정신분석학자 아들러도 이렇게 서로 상반된 행동을 똑같은 원리로 설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사람은 열등감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죄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었던 반면, 두 번째 사람은 열등감 때문에 고통은 받고 있었지만 자신이 그 아이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보일 필요가 있었다.
즉 프로이트와 아들러 모두 상반된 행동을 동일한 원리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포퍼는 바로 이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신분석학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설명하기 때문에 어떤 개별 사례들과도 양립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 이론을 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반박할 수 없는 이론이라면 그것은 진짜 과학이 아니다. 사이비요, 짝퉁이다. 포퍼는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한때 아들러 밑에서 방치된 아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펴기도 했지만 정신분석학을 사이비로 규정하고 그들과 결별했다.
포퍼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도 반증 불가능한 사이비 과학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가령 19세기 영국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정책이 도입되었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지배 계급은 빈민 계층의 후생 복리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마르크스 이론과 상충되어 보였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오히려 그런 사례가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우겼다. 그런 정책의 도입이야말로 자본가들이 곧 일어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당근에 불과하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지도 않은 러시아에서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것은 마르크스 이론의 명백한 반증 사례인데도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얼버무렸다.
포퍼는 대학 시절 사회주의 학생연맹에 가입하여 한때 마르크스주의자로 살기도 했지만, 마르크스 이론이 갖는 경직성 때문에 그 이론을 사이비 과학으로 규정할 수 밖에 없었다.
포퍼가 사이비라는 딱지를 붙인 또 한 가지는 점성술(astrology)이다.
별의 위치, 모양, 밝기 등을 통해 국가의 안위나 개인의 운명을 예견하는 점성술은, 서양에서는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지금 우리로 치면 생시로 사주팔자를 보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서양의 점이든 동양의 점이든 개인의 운명을 예견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포퍼는 점성술은 너무나 일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가령 '올 한 해 운수 대통할 팔자야' 라는 점괘가 나왔다고 하자. 이 점괘가 정말로 맞는지 틀린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그 점괘를 받은 사람이 1년 내내 힘겨운 삶을 살다가 연말에 다시 점성술사를 찾아가 점괘가 틀렸으니 환불해 달라고 따진다면 점성술사는 어떻게 대응할까? "올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는데 그걸 막은 게 운수대통이지 뭐냐?"라고 발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변명이 가능한 이유는 점성술 체계가 반증 불가능한 진술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포퍼는 점성술이 사이비 과학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양자 역학의 정통 이론인 코펜하겐 해석은 측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선 우주를 둘로 나눈다.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 거시 세계는 뉴턴이 만든 고전 역학이 지배한다.
하나의 입자가 하나의 구멍을 지나는 우리에게 친숙한 세계다. 미시 세계는 양자 역학이 지배하는 세계다. 여기서는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가지며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2개, 아니 수십 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갖는 상태를 중첩 상태라 부른다.
측정(관측)은 거시 세계의 실험 장치가 수행한다. 측정을 하면 미시 세계의 중첩 상태는 깨어지고 거시 세계의 한 상태로 귀결된다.
이 해석은 보어가 이끄는 물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내놓은 것이다.
당시 보어가 살았던 덴마크 수도 이름을 따서 '코펜하겐 해석'이라 부른다.
이 해석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1. '측정'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 정체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측정을 하면 상태에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그 물리적 과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측정을 하지 않았어도 전자가 입자라면 분명 하나의 구멍을 지나지 않았을까?
이 문제에 대해 코펜하겐 해석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측정을 안 했다면 어디로 지났는지 절대 알 수 없다. 하나의 구멍으로 지났는데, 단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원리적으로, 절대로, '구글 신'도, '아이언 맨'도, 스티븐 호킹도 알 수 없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렇다. 측정 전에는 중첩 상태에 있지만, 측정을 하면 하나의 분명한 실재적 상황으로 귀결된다.
좋다. 그렇다면 내가 달을 보기 전에는 여기저기 중첩 상태에 있다가 보는 순간 달이 그 위치에 있게 된다고? 그럼 내가 안 볼 때 달은 어디 있는 거지? 위치가 없는 존재는 없으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네. 그렇다면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은 없는 것인가? 아니 내가 아니라도 내 친구가 보면 달이 존재하는 것인가?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던진 유명한 질문이다.
우주가 실제 존재하기 위해서는 측정이 필요하므로, 우주는 그 자신의 존재를 위해 의식을 가진 생명체를 필요로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게 된다. 황당한 말 같지만 196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유진 위그너의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는 달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일까?
공룡이 달을 보았을 때, 달은 측정된 걸까?
삼엽충도 원시적이나마 눈 같은 것이 있었다는데, 달을 보고 달인지 알았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측정의 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에 해당된다. 측정을 하면 하나의 분명한 실재적 상황으로 귀결된다고 했지만 사실 '실재'(reality)가 무어냐고 물으면 필자도 할 말이 없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룰 것이다.
코펜하겐 해석의 두 번째 문제(2)는 우주를 둘로 나눈다는 것이다.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다. 하지만 대체 어디가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의 경계란 말인가? 거시 세계의 모든 물질은 미시 세계의 원자가 모여서 된 것이지 않은가?
좋다. 원자 하나는 미시계다. 인간은 분명 거시계다.
당신이 2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난 적은 없지 않은가. 아메바 같은 생명체는 거시계인 것 같다. 그렇다면 분자량이 5,800 정도인 인슐린은 어디에 속할까? 이 정도면 탄소 원자 분자량의 480배 정도 된다. 미시계인가, 거시계인가? 애매한가?
만약 원자 1,000개가 모인 물질이 경계라고 하자.
그렇다면 원자 1,000개까지는 2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나다가 1,001개가 되면 하나의 구멍을 지난다고?이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의 대답은 간단했다.
SHUT UP AND CALCULATE!
입 닥치고 계산하라는 말이다. 사실 우주를 둘로 나누는 시도는 그리 낯설지 않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지 상태가 자연스러운 운동이라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라. 모든 물체는 결국 정지한다. 그렇다면 달과 별같은 천체는 왜 정지하지 않는가?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지상계와 천상계, 둘로 나눈다. 지상계의 운동은 시작과 끝이 있는 직선으로 되어 있고, 천상계의 운동은 등속의 완벽한 원운동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뉴턴은 천상계와 지상계가 하나의 법칙으로 기술된다고 생각했다.
사과는 땅으로 떨어지는데 달은 왜 안 떨어질까? 이미 2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달도 지구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천상의 달은 지상의 사과와 마찬가지로 떨어지고 있다. 다만 땅에 닿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지상계와 천상계는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지상계의 운동도 천상계처럼 영원히 움직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갈릴레오는 정지가 아니라 등속 운동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지상계의 물체가 멈추는 것은 정지가 자연스러워서가 아니라 마찰력 때문이다.
이처럼 과학의 역사는 분리된 지식을 통합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다.
그렇다면 혹시 우주를 거시계와 미시계로 분리해야 한다는 코펜하겐 해석은 우주를 천상계와 지상계로 나눈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류를 되풀이하는 것은 아닐까?
프리드만과 르메트르가 개발한 우주론의 출발점은 1915년 11월 25일에 아인슈타인이 독일의 물리학 학술지 <물리학 연감(Annalen der Physik)>에 제출한 한 편의 논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거의 10년에 걸친 수학적 여행 끝에 그의 일생을 통틀어 최고의 업적이라 할 수 있는 일반상대성이론(Theory of General Relativity)을 완성했다.
그는 이 아름답고 완벽한 이론을 통해 아이작 뉴턴(Issac Newton)의 고전 중력이론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시켰다.
일반상대성 이론의 기초와 우주론과의 상호관계를 어느 정도 아는 독자들은 앞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절을 건너뛰어도 상관 없다. 그러나 간단한 복습을 원한다면 계속 읽어보기 바란다.
아인슈타인은 1907년부터 일반 상대성이론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아이작 뉴턴의 이론이 중력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지금도 전 세계의 고등학생들은 뉴턴이 1600년대에 발견한 중력, 즉 만유인력법칙(Universal Law of Gravity)을 배우고 있다.
이것은 자연에 존재하는 힘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최초의 이론이다.
NASA 의 연구원들과 천문학자들은 아직도 뉴턴의 중력법칙을 이용하여 우주선의 궤적을 계산하거나 혜성과 별, 그리고 은하의 운동을 예측하고 있다. 뉴턴의 중력이론은 그 정도로 정확하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아인슈타인은 지난 250년 동안 수많은 실험을 통해검증된 뉴턴의 중력이론에서 심각한 결함을 발견했다.
이 문제는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아인슈타인 스스로 자문해보았다.
중력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1억 5천만 km 에 걸쳐 거대한 공간이 놓여 있다. 태양의 중력은 이 먼 거리를 어떻게 날아와서 지구의 운동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 지구와 태양 사이를 밧줄이나 체인으로 연결시켜 놓은 것도 아닌데 중력은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뉴턴이 1687년에 발표한 불후의 명저 <프린키피아, Principia>를 보면 그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발견한 중력법칙으로는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뉴턴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무언가가 전달된다고 확신했으나, 그 '무언가'의 정체를 밝히지는 못했다.
그는 <프린키피아>에 "독자들이 각자 생각해보기 바란다"고 장난처럼 적어놓았다. 그로부터 근 250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뉴턴의 책을 읽었지만 아무도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이 예외였으니, 그가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저변에 깔려 있는 수학적 특성을 10년 동안 연구한 끝에, 1915년에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개념적 비약이었고 수학도 엄청나게 복잡했지만, 핵심은 처음 떠올렸던 질문만큼이나 간단명료했다. 중력은 어떤 과정을 거쳐 빈 공간을 통해 전달되는가? '텅 빈 공간'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바로 '공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매개체가 바로 텅 빈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기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여기 금속으로 만든 커다란 테이블 위에 작은 구슬이 굴러가고 있다.
테이블 면은 평평하기 때문에, 구슬은 직선경로를 따라 얌전하게 굴러간다.
그런데 누군가가 테이블 면을 토치램프로 가열하여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구슬은 면의 요철에 영향을 받아 이전과는 다른 구불구불한 경로를 그리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이 원리가 공간에도 거의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텅 빈 공간은 평평한 테이블과 비슷해서, 그 안에 있는 물체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똑바로 나아간다.
그러나 질량을 가진 물체가 공간 속에 포진해 있으면 이들의 존재 자체가 공간의 모양을 왜곡시키는데, 이것은 울퉁불퉁해진 테이블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태양은 자신의 주변공간에 음푹 파인 홈을 만들어서 그 근처를 지나가는 물체의 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음푹 파인 곡면 위에서 구슬을 굴리면 곡선궤적을 그리는 것처럼, 태양 주변에서 움직이는 행성들은 휘어진 공간의 영향을 받아 지금과 같은 곡선궤적을 그리는 것이다.
대략적인 설명은 이렇다. 그러나 그 안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더욱 심오한 사실들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어 나온다.
휘어지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다. 질량은 시간까지 휘어지게 만든다.(그래서 '시공간의 곡률(spacetime curvature)'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것이다.). 테이블 위를 굴러가는 구슬은 지구의 중력 때문에 표면을 이탈하지 않지만(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의 휘어진 형태를 굳이 다른 것에 비유하지 않았다. 그는 휘어진 시공간 자체가 곧 '중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간은 2차원이 아닌 3차원이므로 사정이 많이 다르다.
공간이 휘었다는 것은 물체를 떠받치는 아래쪽 면이 휘었다는 뜻이 아니라, 물체를 에워싸고 있는 공간 자체가 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공간을 2차원으로 단순화시켜서 금속 테이블에 비유해도 아인슈타인의 아이디어를 이해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일반상대성이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중력이 공간을 가로질러 먼 곳까지 전달되는 원리가 커다란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역사에 길이 남을 아이디어를 제안한 이후로 중력은 "물체의 질량이 주변환경을 왜곡시키는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이 아이디어에 의하면 지금 당신의 몸은 지구가 만들어 낸 시공간의 굴곡을 따라 아래로 움직이려 하기 때문에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수학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몇년을 더 고생한 끝에 마침내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 장방정식(Einstein Field Equation)'을 유도해냈다. 이 방정식에 질량의 분포상태를 대입하면 시공간의 휘어진 정도, 즉 곡률을 알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질량뿐만 아니라 에너지도 고려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방적식 E=mc^2 에 의하면 질량은 에너지로, 그리고 에너지는 질량으로 언제든지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E는 에너지이고, m은 물체의 질량, c는 빛의 속도(광속)이다.
뿐만 아니라 휘어진 시공간이 그곳으로 이동해오는 물체(별과 행성, 혜성, 심지어는 빛까지)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미래를 세세한 부분까지 예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점쟁이여서가 아니라, 바로 이 방정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이 발표된 후,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관측도 비교적 빠르게 수행되었다.
당시 천묵학자들은 수성의 공전궤도가 뉴턴의 이론으로 계산된 값에서 조금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1915년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방정식으로 수성의 궤도를 다시 계산하여 관측과 일치하는 결과를 얻었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그의 동료 에이드리언 포커(Adrian Fokker)는 너무 흥분하여 몇 시간 동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1919년에 영국의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과 그의 동료들은 태양 주변을 스쳐서 지구로 날아오는 별빛을 직접 관측하여 빛의 경로가 휘어진 정도를 계산했는데, 이들이 얻은 값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견된 값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 소식은 <뉴욕타임즈>의 헤드라인에 "열광하는 과학자들-빛은 하늘에서 구부러진다"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되었고, 그날부터 아인슈타인은 과학의 새로운 천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작 뉴턴의 계보를 잇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일반상대성이론의 가장 극적인 검증은 그 후에 이루어졌다. 1970년대에 일단의 물리학자들이 수소 메이저 시계(maser, 메이저는 레이저와 비슷하지만 가시광선이 아닌 마이크로파를 증폭하는 장치이다.)를 이용하여 지구의 중력에 의해 나타나는 시공간의 왜곡을 1만 5000분의 1까지 측정하는데 성공했고, 2003년에는 카시니-호이겐스 우주선(Cassini-Huygens spacecraft)이 태양 근처를 지나가는 라디오파의 궤적을 정밀하게 측정하여 일반상대성이론이 예견한 시공간의 왜곡이 옳다는 것을 5만 분의 1이라는 작은 오차범위 안에서 입증했다.
이제 일반상대성이론은 이론물리학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최상의 도구로 자리 잡았다.
요즘 우리는 거의 끼고 살다시피 하는 스마트폰이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지구 위치 추적 시스템)는 위성과의 교신을 통해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장비인데, 이 위성에 탑재된 장치는 지구의 중력에 의한 시공간의 왜곡을 고려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GPS는 오차가 계속 누적되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1916년에 아인슈타인이 추상적인 수학방정식으로 재구성한 시공간과 중력의 개념이 지금은 주머니 안에 들어가는 소형 단말기 속에 압축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