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드라마가 돌아왔다. 그러나 <뷰티풀 마인드>는 <닥터스>라는 인기 의학 드라마에 밀려서 시청률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하고 조기 종영해 버렸다.(기존의 전형적인 의학 드라마와는 결이 좀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우리 나라 드라마의 특성상 '멜로'가 섞이는 특성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뷰티풀 마인드는 상당한 수작이었다.
<닥터스>는 첫 화부터 대중성을 확보할 만한 다양한 요소들이 잘 가미되었다. 선남선녀 주연급 캐릭터들과, 적당한 하이틴 물을 방불케 하는 학교씬, 그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나름 화려한 액션신 등…
분명 <닥터스>는 재미있고, 시청률이 높게 나올 만한 드라마다.
그러나 <뷰티풀 마인드>같은 경우는 스토리 라인이 전반적으로 어두운 부분을 담고 있다. 섬세한 심리 묘사를 자주 그리다 보니, 마이너한 성향을 풍기기도 했을 터인데, 난 이런 부분들이 오히려 <뷰티풀 마인드>의 가치를 높여 줬다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는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는 싸이코 패스[반사회성 인격장애] 신경외과 의사 이영오의 자전적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나름 매 화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데, 떡밥 회수도 괜찮고, 장혁과 박소담의 연기도 좋다. 다른 주연급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사실 사람들의 감정을 공감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싸이코 패스 라느니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불리기에는 의학 정의상 약간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마땅히 눈물을 흘려야 할 때 울 수 없고, 사람들이 웃고 있을 때 혼자 웃을 수 없는 누군가가 있다면……. 더군다나 그 사람이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과 정신을 지녀야 할 의사라는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누구든 그 의사를 만나면 소름이 돋고, 경계심이 생길 것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이영오(장혁)는 그런 사람이다.
[적당한 스토리 누설이 있으니 안 보신 분들은 아래를 읽지 마세요]
이영오는 이건명(허준호) 과장으로부터 어린 시절에 수술을 받았고, 수술 중의 실수로 인해 감정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손상되었다는 판정을 받는다.
이건명은 자신의 의료 실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이영오를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이 아이가 보통의 아이들처럼 살아갈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사람의 표정과 눈빛 등을 가지고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도록 특별한 의사소통 훈련을 시킨다.
결국, 이영오는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 몸짓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을 예측하는 훈련을 하여 어느 정도 보통의 사람들과 비슷한 면모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 드러난 사실은 이건명은 수술 도중 실수를 하지 않았었고, 단지 brain CT 사진이 뒤바뀐 것 뿐이었다. 결국, 이영오는 멀쩡한 아이였는데, 이건명이 자신의 실수를 가리기 위해 더 이상의 follow up 없이 그 아이를 기정 싸이코패스로 낙인 찍고 키워 왔던 것이다. 더군다나 자연스럽게 사람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로 규정을 해 버리고 키워 왔기에, 그 아이의 전두엽은 후천적으로 퇴화 되어 버린 케이스였다.
이 드라마 속에선 현성 병원의 이사장인 강현준과 채순호 과장이 나오는데 그들은 각자의 이득을 위해서 불법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들이다.
재생 의료 사업을 추진하고 연구 중인 이 병원을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병원으로 만들기 위해….. 이사장인 강현준은 이를 통해 현성 그룹 총회장인 자신의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 하고, 채순호 과장은 이를 통해 병원장 자리를 획득하며 계속 기득권을 얻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재생 의료 치료제를 사용했던 사람들의 심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부작용을 은폐하기 위해 채순호 과장은 그들을 의료 사고라는 명목 하에 죽음으로 몰고 간다.
이런 부도덕한 상황 속에서 늘 참다운 의사 상으로 모범을 보여주던 현석주 선생은 분개하게 된다.
스토리를 파편적으로 설명하니, 뭔가 이 드라마의 멋진 면모들이 건조해 지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러나 요약하자면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과 욕심이 이 드라마 속에서 잘 드러나 있고 그 속에서 늘 무시 당하고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 받아온 [이영오] 라는 공감 장애 환자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가 역시 멋지게 그려져 있다.
계진성이라는 의롭고 순수한 여자 순경을 만나면서 이영오는 서서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워 나가게 되고, 계진성의 병든 폐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자신의 폐 하나를 이식해 주는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이 드라마가 감동적인 이유는 이영오라는 한 인간이 변해 가는 모습이 너무 절절하다는 것이다.
사실 누구보다도 가장 큰 피해자였던 이영오…
그러나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용서를 구해야 했던 이건명(아버지)은 이영오의 존재를 늘 무너뜨려 왔다. [넌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넌 안되는 거다]
이런 말만 듣고 자라 왔으니, 어떻게 감정을 배울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이영오보다 훨씬 저급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인간은 감정이 있다 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해 주는 존재가 아닌가 보다.
생리적으로 감정이 마비된 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더 깊은 심중[우리는 그것을 마음, 또는 영혼 , 정신 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에 따뜻한 불을 품고 있다면 그 사람은 상대방을 가슴으로 품을 수 있게 되나 보다.
이 드라마의 포인트는..
1. 우리 나라에 만연해 있는 자존감 낮고, 자존심 강한 아버지로부터 받아온 가정의 학대를 견디고 아버지보다 더욱 아름다운 남자로 자라난 이영오의 스토리
2. 자신을 이토록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 이들을 향해 복수와 분노를 표출하기 보다는, 이 복잡다단한 세상사를 달관하며, 이를 아름다운 방향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이영오의 스토리
3. 비록 전두엽이 멀쩡하고, 감정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공감장애, 사이코 패스라 조롱 당하던 이영오 보다도 훨씬 저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돌아 보게 만드는 스토리 전개
4. 감정이 없었던 이영오가 계진성을 만남으로써 서서히 참된 사랑에 눈을 떠 가는 모습. 다른 감정은 학습이 가능했으나 눈물을 흘리는 것만큼은 배울 수 없었는데, 끝내 환자의 모습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영오의 변화된 모습
5.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힘을 합친 이사장과 채순호 과장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말로를 지켜 보는 재미. 이는 의학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익히 노골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연장선 상에서 즐겨주면 될 것 같음.
p.s: 장혁을 위시하여 주연급 배우들의 연기도 상당히 좋다. 특히 가장 많은 역할을 담당한 이영오[장혁]의 캐릭터 성은 정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p.s2: 현성 그룹은 o성 그룹을 풍자한 게 아닐런지.... 단일한 기업이지만 왠만한 언론, 정치의 영향력 그 이상을 지니고 있는 기라성 같은 그들의 존재.....
p.s3: 음악이 상당히 좋다. 자신의 감정, 자신의 존재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이영오의 마음이 잘 반영된 음악은 특히 압권
섬세한 심리 묘사, 잔잔하지만 깊은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는 [뷰티풀 마인드]..
최근 의학 드라마 중 가장 색깔 진하고, 여운이 오래 남는 드라마였다.
조기 종영된 게 아쉽지만, 명작은 보고 나서 남기는 교훈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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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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