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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의 [후불제 민주주의]다.

1부: 헌법의 당위

2부: 권력의 실재

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시민 작가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을 하면서 느꼈던 정치,법,권력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잘 담겨 있는 책이다.

짤막짤막하게 구성되어 있는 책이라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나 짧은 챕터 속에 굉장히 중요한 내용들이 함축되어 있어서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는 책이다.

대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국회의원에 대해서, 공무원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은 많지 않은데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알기도 어려웠던 여의도의 풍경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왜 [후불제, 민주주의]일까?

저자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민주공화국이었다.

1948년 7월 17일 제헌의회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본 질서를 담은 첫 헌법을 공포한 순간부터 그랬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3.1 운동의 정신과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임시정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현행 헌법은 전문에서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해두었다.

제헌 헌법 전문은 더 적극적으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선언했다.

제헌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948년이 아니라 1919년에 건립되었다.

제헌헌법은 1919년에 건립되었던 대한민국을 '민주독립국가'로 '재건'하는 헌법이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을 '건국 60주년'으로 규정한 것은 심각하고 중대한 헌법 유린 행위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정치적으로 홀대하고 헌법을 휴짓조각처럼 무시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탄압했던 과거의 독재자들도, 적어도 말로는 제헌헌법과 현행 헌법 전문이 선언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지 않았다. 헌법 전문을 공개적으로 짓밟는 정권이 헌법의 다른 기본권 조항을 존중할 리가 없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선언한 대로 대한민국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정통성 있는 민주공화국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제헌헌법이 규정한 민주적 기본 질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다 지불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넣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이었고, 그 '후불제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의'였다.

......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지사들의 희생과 헌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60여 년 동안 꾸준히 비용을 '후불'했다.

1960년 4.19 혁명의 용감한 '형님'과 '언니'들이, 1980년 5.18 당시 전남도청의 시민군 전사들이, 1987년 6월 전국 주요 도시의 거리를 뒤덮었던 익명의 시민들이 엄청난 수고와 희생을 치렀다.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헤아릴수 없이 많은 지식인과 언론인, 노동조합 지도자와 대학생들, 종교인과 정치인, 농민과 회사원들이 체포와 구금, 해고와 고문의 위협을 무릅쓰고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분투했다. 이 모두가 민주공화국에 들어가는 비용을 '후불'한, 위대한 시민 행동이었다.

민주주의는 헌법과 제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기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주권의식, 헌법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적절한 이해, 공정한 경쟁 규칙의 수립과 경쟁 결과에 대한 승복, 생각이 다른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민주공화국을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난 60년 동안 이 모든 것을 아주 잘해냈다. 우리는 앞으로도 긴 세월에 걸쳐 '후불제 민주주의'의 비용을 정산해야 할 것이며, 지난 시기 잘해낸 것처럼 미래에도 잘해나갈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이 책은 '후불제 민주주의'로 대한민국을 정의 내린다.

유시민 작가의 논리 정연하고, 정의와 상식에 입각한 글들은 상당 부분 공감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호소력이 가득하며,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보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의 눈물 어린 정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이 책은 유시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가 꿈꾸던 자유와 정의가 공존하는 민주주의가 그려져 있다. 그의 책을 기존에 잘 읽어 왔고, 정의와 상식, 따뜻한 배려가 가득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겐 추천하는 책이다. 책의 저자가 꿈꾸는 '소명'을 인용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사실 나는 무척 운이 좋은 사람이다.

과거 지구 행성에 살았거나 지금 살고 있는 인간 일반의 관점에서 보면, 노력에 비해 너무나 큰 것을 받았다. 50년 전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 반도 국가 대한민국의 남쪽에서 태어난 것이 무엇보다 큰 행운이었다.

100년 정도만 일찍 태어났더라도 나는 왕권 국가 질서와 신분제도의 벽에 갇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야 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내전이 벌어지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태어났다면 나이 50이 될 때까지 살아남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휴전선 북쪽에서 태어났다면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박탈함으로써만 존립할 수 있는 국가체제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되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나는 특별한 육체적, 정신적 불편 없이 태어나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

나쁘지 않은 재능을 상속받았고, 그리 어렵지 않게 공부해 좋다는 대학을 나왔다. 유럽 유학도 했다. 큰 재산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대한민국 평균 이상의 소득을 얻으며 살았고, 내게는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없는 어머니와 아내와 아이들과 형제자매가 있다.

젊은 시절에 포악한 권력에 대들었다가 고초를 겪기는 했지만 죽지도 않았고 크게 다치지도 않았고 징역을 오래 살지도 않았다. 게다가 40대에 벌써 국회의원을 두 번 하고 장관까지 했다. 수십만 년 호모사피엔스의 역사에서 이만 한 행운을 누린 인간은 정말로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행운이 그저 우연히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 대부분이 내가 아는 또는 알지 못하는, 동서고금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선한 뜻을 실현하려고 분투한 덕분에 마치 우연인 양 내게 찾아왔다.

자유를 위해 투쟁한 동서고금의 선지자와 투사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이 있었다. 국립대학이 있었다. 출판 산업과 방송 산업이 있었다.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가 있었다. 그랬기에 나의 삶도 그렇게 펼쳐질 수 있었다.

나는 이 행운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내 삶을 더 큰 행복으로 채우는 것이 그 선한 의지와 분투를 대하는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능력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내가 아는 또는 알지 못하는 다른 누군가의 행운을 위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힘닿는 만큼 하는 것이, 내 삶을 더 큰 행복으로 채우는 비결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 일을 내가 잘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으로 해나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세상을 둘러보면 원치 않는 세상의 변화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쪽으로 변화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세상의 변화는 내 소망이 다수의 소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다수의 생각과 그에 따른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의 소망을 다수의 소망과 일치하도록 바꾸어서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렇게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그렇게는 못 하겠다면, 다수가 나와 같은 소망을 가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노력을 많이 해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면서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견디고 노력하면서 마침내 내 소망과 다수의 소망이 일치하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분명 '기다리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세상을 바꿔보기 위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기 위해 '옳다 여기는 방향'으로 힘차게 달렸으나 세상 만사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저자의 완숙해진 고백이 마음에 깊게 남는다.

유시민 작가의 스토리 텔링을 믿고, 그의 정치 행보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이 책은 유익함에 재미까지 더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책 추천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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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국가'에 대해 고민하는 국민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이 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동족 상잔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군부 독재의 그늘 속에서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독특한 나라다.

지금 누리는 자유와 복지가 쉽게 얻어진 게 아니었고, 아직도 부조리하고, 부당한 문제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는 부족한 국가이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누리지 못하는 수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좋은 나라이기도 하다.

최순실/박근혜 국정 농단 사태를 기점으로 '국가'에 대해 재고를 하게 되면서 유시민 씨가 개정판을 내놓았다.

워낙 믿고 보는 글 솜씨를 지녔기에 책은 재미있고 잘 읽힌다.

1장에서는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소개하며 '국가주의 국가론', 우리 나라에 많이 존재하는 '이념형 보수-국가주의'에 대해 소개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국가주의 국가론을 지지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시대적 배경을 해설한다.

2장에서는 법치주의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자유주의 국가론을 이끈 스미스, 루소, 밀 등에 대해 소개를 한다. 소위 '시장형 보수'의 탄생이다.

3장에서는 공산주의 혁명, 국가의 소멸, 정치적 냉소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의 실패 등을 다룬다.

4장에서는 플라톤이 말한 '철인 정치', 맹자가 말한 '군자가 다스리는 세상' 등을 소개하며 '민주주의'의 의미를 고찰해 본다. 누가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가득 담긴 장이다.

5장에서는 '애국심'이라는 감정을 탐색하는데 애국심을 극도로 중요하게 여겼던 독일 관념론자 피히테와 애국심을 사악하다고 규정한 톨스토이 등을 소개한다.

6장에서는 칼 포퍼 등의 개념을 활용해서 '혁명'에 대한 지식이 소개되어 있다.

7장에서는 진보정치의 참된 의미에 대해서 다양한 학자들의 이론을 기반으로 탐색하고 있다.

8장에서는 라인홀트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 나온 개념을 소개해 주면서 '정의'가 무엇인지, '시장'과 '정의'의 관계는 어떠한지, 국가가 지녀야 할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본다.

마지막 9장에서는 정치인이 따라야 할 도덕법에 대해 고민한다.


사실 워낙 다루는 범위가 넓다 보니, '국가' 한 가지를 논할 때에도 고찰해야 할 사안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또한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 놓는 유일신론의 세상이 아니다 보니 각 이론가들의 주장들이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서로를 보완/상쇄 해주는 그림이 그려질 뿐이다.

이 책 속에는 유시민 씨의 깊은 내공과 자신의 생각이 잘 버무려져 있다. 그러한 주관성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으나 그 부분이 이 책을 한층 더 재미있게 읽히게 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유시민 작가의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으며 그의 넓은 식견과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을 완전히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다. 때론 비판적으로 읽어볼 필요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가 지향하는 세상이 자유를 지향하고, 정의롭고, 상식이 통용되는 느낌이 강하다 보니 큰 틀을 놓고 본다면 가슴 뜨겁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 많다.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든 간에 한 국가에 소속되어 있으며 한 나라의 영향 하에 있는 이상 이와 같은 분야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해선 안 될 것이다.

 

끊임 없이 공부하고 연마해야 할 분야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정치 관련 이론가들의 사상을 공부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니 한번쯤 읽어 보길 추천한다.


책이 재미있고 유익해서 상당한 몰입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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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계를 떠나고 어용 지식인, 언론인으로서 더욱 빛을 내고 있는 유시민 씨의 명저다.

 

정치 관련 책은 의도적으로 읽지 않았던 10년의 세월이 있었으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치 영역을 배제하고 살 수 없다는 걸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태를 계기로 여실히 깨닫고 부지런히 정치 관련 책을 읽던 차에 한국현대사를 전반적으로 잘 훑어볼 수 있는 좋은 책을 찾았다.

(여러모로 유시민 씨에겐 빚이 많은 것 같다. 이 방대한 지식을 이렇게 쉽고, 깔끔하게 설명해 주기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던 유시민 씨는 원래 글을 잘 쓰고, 토론의 황제라는 별명이 있는 분이다.

 

 

역사서는 쓰는 저자의 주관성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지만, 한국 현대사는 워낙 정의와 불의, 기만과 진실의 싸움이 뒤엉켜 왔기 때문에 이 저서의 상당 부분을 동의하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

 

첨예한 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눈에 뻔히 드러나는 기만과 부패, 부정과 타협은 어찌하리요....

 

저자가 워낙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보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복지,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한국 현대사 공부가 가능한 책이다.

(워낙 내용이 좋다 보니, 자세히 발췌, 퍼와서 다른 지면을 통해 글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 책 한권을 읽고 나서 이 내용을 다른 책들을 보면서 살을 붙이고, 토론할 만한 부분은 토론도 해 보면서 스터디 교제로 활용해도 좋을 듯 싶다.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사진들도 그 당시의 치열했던 민주화 투쟁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고, 끊임없는 이념 논쟁의 덫을 헤쳐 나가고 있는 대한민국...

 

우리에겐 바른 정치관과 바른 역사 의식이 여타 나라들보다 더욱 요구되는 것 같다.

 

지금 당장 1독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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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물질적 생활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필 수도 있고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 변화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보편적 특성인 이성의 발현 과정을 줄기로 삼아 역사를 관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인간의 보편적 이성은 서로 다른 생각의 대립과 경쟁을 통해 자기를 실현한다.

역사는 서로 다른 사상과 아이디어들 사이의 살아남기 경쟁이 추동하는 이성의 자기 발현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사상도 완전하지 않으며 삶의 기술적 조건과 환경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한 시기에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던 사상은 조만간 새로운 사상의 도전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대의 교체는 언제나 사상과 이념의 교체를 동반한다.

정치철학과 국가이론도 예외가 아니다.

자유의 정신을 전제군주제의 가장 위험한 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옳았다.

 

 

<마키아벨리>

 

 

인간은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존재이다.

 

자유를 희구하는 생물학적/사회적 본능은 그것을 실현하는데 적합한 정치제도를 만드는 것으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냈다.

전제군주제 국가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했던 국가주의 국가론이 입헌군주제나 공화제 국가를 꿈꾼 자유주의자들의 도전에 직면한 것은 자연스러운 사태였다.

이 사상적 도전을 현실의 승리로 전환하는 데 기여한 철학자와 정치가는 숱하게 많지만, 대표적으로 세 사람을 들 수 있다.

 

로크,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다.

로크는 시민들의 동의로 성립하고 법에 따르는 통치를 주창했다.

 

스미스는 사회의 부를 증진한다는 목표 아래 국가가 시행한 자의적 간섭과 특권의 철폐를 제안했다. 밀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어떤 경우에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기본권으로 내세웠다.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줄이면 국가는 선을 행하려 하기보다 악을 저지르지 않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주의 국가론의 핵심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사회와 문명국가에서는 자유주의 국가론이 지배적 사상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도 '대부분' 자유주의 국가론에 입각해 만들어졌다.

 

여기서 '모두'가 아니라 '대부분'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국가주의 법률'이다.

자유주의 철학자들은 홉스의 제자라고 할 수 있다.

 

                             <토마스 홉스>

 

국가가 일종의 사회계약에 의해 탄생했으며 국가의 임무가 범죄와 무질서, 외부의 침략에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는 견해를 승인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계약의 세부 내용 가운데 주권자가 누구이며 국가권력이 어떻게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홉스와는 크게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국가에는 치안과 국방을 넘어서는 다른 책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권력이 자기의 임무를 수행할 때 지켜야 할 규칙과 넘어서지 말아야 할 경계를 설정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진 결과, 자유주의 국가론은 거꾸로 선 국가주의 국가론이 되었다. 국가주의 국가론에서 개인은 국가의 부속물에 불과하다.

 

국가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며 개인은 국가에 종속된다.

 

그러나 자유주의 국가론에서는 거꾸로 국가가 개인을 위해 복무한다.

로크는 사회계약론을 받아들였지만 전제군주제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는 이랬다.

 

인간은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며 독립되어 있으므로 어느 누구도 자신의 뜻에 반해 다른 사람의 정치적인 권력에 복속할 수 없다.

인간이 자유를 포기하고 사회의 구속을 받는 것은 다른 사람과 결합하여 하나의 공동사회를 형성하는 데 동의할 때 뿐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소유권을 지키고 외부의 침략을 막아 서로 안락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홉스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 공동사회, 즉 국가를 누가 어떻게 통치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홉스와 생각이 달랐다.

로크는 사회계약을 어느 한 사람이나 추상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사회의 다수파에게 권력을 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존 로크>

 

최고 권력인 국가의 입법권을 장악한 사람은 즉흥적이고 임의적인 명령이 아니라 국민에게 공포되어 널리 알려지고 항구적으로 확립된 법률에 의거하여 통치해야 한다.

또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공평하고 정직한 재판관들이 법률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

아울러 국가는 나라 안에서 법률의 집행을 위해서만 힘을 행사해야 하고, 밖으로는 외적의 침략에서 공동사회를 수호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국민의 평화와 안전, 공공의 복지 이외의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지 못하도록 국가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

그가 국가의 목표에 새롭게 추가한 '공공의 복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중에 스미스가 명확하게 제시했다.

-2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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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박명림 교수는 대한민국의 기원을 한국전쟁으로 본다.

이런 시각은 홉스의 이론에 맞닿아 있다. 70년 전 우리는 지구적 차원의 이데올로기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해방정국의 혼란과 민족분​단을 겪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민족 전체가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참혹한 내전을 치렀다.

국가를 대하는 국민의 의식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가 남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려 500만명이 죽고 사라지고 다쳤던 동족상잔의 이 전쟁을 우리는 '6.25 전쟁' 또는 '한국전쟁'이라고 한다. 그토록 짧은 기간에 이토록 좁은 영토에서 그처럼 많은 인명이 살상당한 전쟁은 세계사에서 흔치 않았다.

 

 


게다가 미군의 공습, 이념전쟁, 반전을 거듭한 전황 때문에 다른 어떤 전쟁보다도 민간인 살상이 많았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휴전협정 이후 긴 세월이 흘렀고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세대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국민들이 일제강점에서 벗어난 이후 최대 사건으로 꼽는 것은 단연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 이전의 사건들은 크건 작건 모두 전쟁으로 흘러들어갔고, 그 이후 정치와 사회, 외교도 모두 이 전쟁의 테두리 안에 놓였다. 이것은 대한민국 뿐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며 북한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그 결과 북한은 사회주의국가나 독재국가라는 말보다 병영국가(garrison state)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피바람을 마시면서 성장했다. 국가기구가 급속하게 팽창했고 반공주의가 위세를 떨치는 가운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안보 체제에 편입됨으로써 가까스로 국가의 안정을 확보했다.

 

10만 남짓하던 군대는 전쟁을 거치면서 60만이 넘는 대군으로 성장했고 경찰의 규모도 단기간에 5만 명을 넘겼다.

 

 

당시 대한민국의 사회적 발전 단계를 고려하면 지나친 규모였으며 이것이 전쟁 이후 정치의 틀을 결정했다.

1961년 군사 쿠데타와 뒤이은 30년간의 군부독재는 분단과 전쟁이 아니고는 그 유래를 설명하기 어렵다. 기나긴 자본주의 발전과 사회적 분화를 거치면서 상비군과 관료제가 발전하고 국가제도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길게는 8년, 짧게는 3년에 불과했던 전쟁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졌다.

우리의 국가는 시민사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민사회의 도전을 파괴하면서 밖에서 주어진 다음 급팽창하는 형태로 구축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분단국가 대한민국의 발생사는 홉스의 국가론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철학적으로는 홉스를, 통치기술로는 마키아벨리를 추종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사회 내부의 혼란을 방지하고 '북괴의 침략'을 막는 것을 국가의 절대적인 목표로 설정했고, 이를 위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국민이 아니라 자기가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반대하지만 해놓고 나면 좋아할 것"이라며 국민이 압도적으로 반대한 사업을 밀어붙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말에도 이런 사고방식이 깔려 있었다.

북한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의 위협을 쉼 없이 강조하면서 국론통일을 요구한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 평등권과 노동권은 법질서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며 통치권을 위협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북한 공산집단의 침략 위협과 북괴의 지령을 받는 친북용공세력이 야기하는 내부적 혼란'에 대한 실제적인 또는 조작된 대중의 공포감을 이용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했다.

-[국가란 무엇인가]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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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가 [시민정부론](An Essay concerning the true original, extent, and end of civil government)에서 펼친 국가이론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채택한 헌법의 기본원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정치권력의 정당성은 다수 국민의 동의를 그 원천으로 하며, 국가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은 평화와 안전, 공공의 복지라는 국가목표를 이루기 위해 확립되고 공개된 법률에 따라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바를 벗어나 사적인 목적을 위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

'주권재민'과 '법치주의', 이것 없이는 국가권력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다.


일부 권력자들의 심각한 오용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법치주의'라는 말이 큰 오해를 받고 있다.

 

 

'법치주의'는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은 권력 그 자체의 속성이기 때문에 어떤 주의도 필요하지 않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이러한 속성을 제멋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원칙이다.

법치주의는 통치받는 자가 아니라 통치하는 자를 구속한다. 권력자가 주관적으로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이 그에게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 그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권력행사를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법치주의에서 일탈하면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하며, 정당성이 없는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

 

국가주의 국가론이 인민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려는 적극적 이론인 반면, 자유주의 국가론은 국가가 악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소극적 이론이다.

 

 

자유주의 국가론은 국가주의 국가론과 대립함으로써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내는 안티태제(antithese)였다.

 

로크의 사상은 영국과 유럽을 넘어 미국 헌법을 만든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

우리나라는 미군정의 지배 또는 후견을 받는 가운데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수립했다.

그런 점에서 로크의 국가론은 대한민국 사회의 기본 질서를 세우는 데도 간접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로크가 [시민정부론]에서 펼친 논리는 대한민국 헌법에서 그대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시민정부론]은 [리바이어던]보다 약 40년 늦게 나왔다.

 

홉스와 마찬가지로 로크도 왕당파와 공화파의 권력투쟁으로 잦은 정변과 혼란이 벌어진 시기에 살았다.

 

그런데 그는 재산이 없었던 홉스와 달리 법률가의 아들로서 적지 않은 유산을 받은 덕에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를 마친 후 4년간 학생을 가르친 것 말고는 별다른 돈벌이를 하지 않았다.

 

정치인 친구와 인연이 있어서 외교관으로 잠깐 일한 시기도 있었지만, 실험과학과 약학 등 새로운 자연과학과 철학을 연구하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썼다.

 

지병인 천식 때문에 런던의 탁한 공기를 피해 프랑스에서 여러 해 지내기도 했던 로크는 뜻하지 않게 정변에 휘말려 네델란드로 도망쳐야 했고 영국 정부는 그를 반역자로 규정해 유럽 전역에 지명수배령을 내렸다.

[시민정부론]은 로크가 5년 넘게 망명생활을 한 끝에 영국으로 돌아온 직후 쓴 논문이었다.

홉스는 정치적 혼란 그 자체를 극복해야 할 악으로 보았지만, 로크는 항구적인 법률이 아니라 즉흥적이고 임의적인 명령으로 통치함으로써 혼란을 야기하는 권력의 행태가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뛰어난 지성을 지닌 철학자로서 거의 비슷한 시대를 살며 동일한 정치적 혼란을 경험했던 두 사람이 상반되는 국가론을 펼친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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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 국가론은 낡은 이론이지만 앞으로도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주권재민 사상에 입각한 선거제도와 권력분산 시스템이 정착되기 전까지 국가주의 국가론은 오랜 세월 민중과 권력자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20세기에도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 베니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제국주의 일본,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스페인, 이오시프 스탈린의 소련,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루마니아,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이러한 국가론을 체현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체제도 그 '약한 변종'으로 볼 수 있다.

냉전시대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매카시즘' 광풍의 이면에도 이 이론이 작용하고 있었다.

 

              <메카시즘>

 

21세기 문명국가의 시민들은 국가주의 국가론을 위험한 '전체주의 국가론'으로 간주한다.

나치 정권이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하는 등 참혹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독일에서는, 정당이 이런 국가론을 내세울 경우 연방헌법재판소의 해산명령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다르다.

4.19혁명 직후 1년과 외환위기 이후 10년을 제외하고, 정부 수립 이후 50년 넘게 국가권력을 장악했던 정치세력은 국가주의 국가론을 신봉한다.

그들이 마키아벨리 방식의 철권통치를 철두철미하게 실행하지 않은 것은 단지 '통치권자의 힘'이 '국민 전체를 합친 힘'보다 우세하다고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 충분한 자신감만 있으면 그들은 언제든지 시민을 국가에 종속시키려는 국가주의적 행태를 재현해낼 것이다.

1987년 이후 주요 선거결과와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대한민국 국민 셋 가운데 한 사람 정도는 국가주의 국가론을 확고하게 지지한다.

 

그래서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세력은 아무리 상식에 어긋나는 짓을 해도 잘 무너지지 않으며, 외환위기를 일으키거나 차떼기 선거부정을 저지르거나 대통령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들통나 무너지는 경우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세력을 재건한다.

치안과 국방을 유일한 국가목표로, 또는 적어도 다른 모든 가치나 목표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국가목표로 여기는 유권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유권자들은 자유, 인권, 노동권, 평등권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국방과 치안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으로 시민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다거나 심지어는 반드시 제약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당시 간첩단, 반국가단체, '북괴 찬양' 등의 혐의로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사형을 당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법원에서 재심 무죄판결을 받는 것을 보면서도, 그리고 국가보안법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국가보안법은 국가안보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견해를 굳건히 유지한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사회절수유지와 국가안전보장이다.

다른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해도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는 않다. 가난한 아이들과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 장애인과 중증질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복지지출을 확대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쁠 것은 없지만 국가가 꼭 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이 직접 그 혜택을 보는 경우에도 이런 정책을 펴는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진보를 표방하거나 개인의 자유를 국가의 권위보다 앞세우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국가관을 의심한다.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부동산 투기를 하고, 술에 취해 사람을 때리고, 여성을 추행하고, 권한을 남용하고, 탈세를 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에도 그 사람이 국가안보를 중시하는 보수당에 속해 있을 경우에는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는 데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잘못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런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며, 국가운영은 국가관이 확실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다.

​국가주의 국가론을 신봉하는 이들은 사형제를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국가는 그 정도 힘을 가져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철거민들의 거리시위는 물대포를 쏘고 헬기를 동원해서라도 강력 진압해야 한다.

해고 노동자와 철거민들의 처지는 이해가 되지만 질서파괴를 방관하는 것은 국가답지 못하다.


'용산참사'에 대해서도 사람이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믿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사회의 질서와 기강을 바로 세워야 제대로 된 국가라고 본다.


어린이와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머리를 짧게 깎아야 하며 잘못이 있으면 회초리로 맞아야 한다. 학교에도 기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와 권력자들을 비난하지 않는 정치인은 사상을 의심받는다.


국가안보를 도와주는 미국과 미군을 비판하는 정치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선거를 할 때 후보와 정당의 개별적인 정책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는다. 정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국가관'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성향의 정치세력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개성의 발현을 중시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까지도 '빨간 물'이 든 사람으로 간주하는 때가 많다.

이 모든 생각들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국가주의 국가론이다.


이를 따르는 사람과 정치세력을 가리키는 용어로는 '이념형 보수'가 적당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가주의 국가론은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이론이다.

논리적으로 단순명료해서 긴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가장 강력한 감정인 두려움을 정서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내부 혼란과 침략의 위험이 상존하는 '국민국가'의 시대, 이데올로기적/군사적 대결을 동반한 한반도 분단체제가 계속되는 한 대한민국에서 홉스의 국가론은 앞으로도 위력을 떨칠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는 이런 국가론을 추종하면서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했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현저하게 약화되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부활의 기지개를 켰으며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한번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권력 사유화와 헌법파괴, 부정부패, 직무유기에 가까운 태만의 실상이 분명하게 드러난 시점까지 박근혜 정부는 국가주의 국가론을 따르는 일부 국민들의 견고한 지지를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국민들이 집권 보수정당에 등을 돌렸기 때문에 유사한 사태가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단언하기는 어렵다.


​자유주의 국가론이나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념형 보수'를 무식하다고 경멸하거나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현실과 희망사항을 잘 구별하지 못한 소치일 가능성이 높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생명력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끈질기다.

 

-[국가란 무엇인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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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저서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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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일보]는 북한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을 의심한다.

 

[조선일보]는 "국군 탱크가 평양 주석궁에 진입함으로써 통일은 완성된다"고 믿는다.

내놓고 북한을 경멸하고 비난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사상적으로 의심한다.

​노무현은 김대중의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해서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한다.

'좌경용공분자'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이것이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싫어하는 두 번째 이유다.

노무현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고 말한다.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조선일보]가 '사상검증'의 덫을 씌워 공직에서 축출하려고 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싫어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조선일보]가 멀쩡한 사람을 '용공분자'로 몰아세운 사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오래 되지 않아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만 몇 가지 들추어 보자.

[조선일보]는 김영삼 정권 시절 김정남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비서관과 한완상 통일부 장관, 김태동 경제수석을, 김대중 정권 들어서는 정책자문위원장 최장집 교수를 상대로 집요한 색깔공세를 펴 결국 공직에서 밀어냈다.

대선을 눈앞에 둔 1997년 8월 터진 '이석현 의원 명함 사건'도 [조선일보] 작품이다.

이석현은 해외용 명함의 '한국'이라는 국호 옆 괄호에 '남조선'을 병기했다가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과 극우단체, 그리고 [조선일보]의 뭇매를 맞은 끝에, 당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기 발로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를 떠나야 했다.

이석현의 '죄'는 중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 외국인들에게 친절을 베푼 것이었다.

피해자는 그밖에도 많다.

소설가 황석영과 조정래, 리영희 교수, 외국어대 이장희 교수도 [조선일보] 보도 때문에 '불그스름한 용공분자'로 몰렸다.

 

<조선일보의 노골적인 제목 선정 비교>

 

[조선일보]는 심지어는 [기자협회보]까지 검증의 대상으로 삼았다.

[조선일보]는 1996년 2월 자칭 '세계적 특종'을 보도했다. '김정일 본처 서방탈출' 또는 '성혜림 망명사건'이다.

"김정일 후처들이 괴롭혀 결행" "김정일 여성편력에 가슴앓이" 등 [조선일보]가 제시한 망명의 근거를 보면 이것은 일종의 치정극이었다.

[기자협회보]는 이 '특정보도'의 진실성을 입증할 만한 사실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월간조선] 1996년 4월호에서 우종창 기자는 이렇게 물었다. "귀하는 안기부 편인가, 김정일 편인가?"

다음은 [조선일보]의 '사상검증' 공세에 대한 96년 3월 23일 [기자 협회보]의 소감이다.

본보가 마침내 '사상의 검증대'에 올랐다. [기자협회보]가 '김정일 편인가' 밝히라는 어이없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는 까닭이다. 참으로 서글프게도 이 물음은 우리나라의 언론을 대표한다는 신문사 중의 하나인 [조선일보]에서 발행하는 [월간조선]이 본보를 가리키며 물은 기사 중의 일부이다.(...) 우리를 더욱 서글프게 하는 것은, 문제의 기사에서 우리가 제기한 쟁점들 - 특종보다 진실보도가 우선 - 에 대해서 단 한마디의 제대로 된 반론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조선일보]가 햇볕정책을 집요하게 비난하는 것은 김대중 정권을 흔드는 동시에 노무현의 지지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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