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서 'He's brother'라고 할 때 이것은 한국어로 번역할 수 없다.
남자 형과 남자 동생 두 개념을 미국 사람은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필자도 인문학 관련 책을 쓸 때 옛 사료를 뒤지다가 'Brother of King Heinrich' 이라는 문장을 발견했는데, 너무 옛날 사람이어서 두 사람의 생일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형인지 동생인지 모르니 한국말로 단순한 문장을 만들 수 없었다. '하인리히 왕의 형이나 동생인...' 같은 문장으로 번역해야만 했다.
거꾸로 우리말로 '동생'이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두 개의 개념이 된다.
'younger sister + younger brother'다. 이것은 가족 관계에서 중요한 구별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나이로 구별하고 영어는 성별로 구별하는 가족관 자체가 서로 달라서 생긴 문제다.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의 경우 영어와 한국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사용상에서는 명백한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로 사랑을 뜻하는 amour라는 단어는 영어의 love보다 훨씬 큰 성적 욕망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 본 여성과 1주일 동안 뜨거운 사랑을 나눈 프랑스인은 그 1주일에 대해 "C'etait de l'amour(그건 사랑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상당히 오래 사귄 미국 커플도 그 이성에게 자기 인생을 바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love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아직 불확실한 감정을 'The-L Word'로 돌려 말하며 직접 언급은 피한다. Amour와 love 모두 우리말로는 '사랑'으로 번역되지만 명백하게 다른 느낌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두 단어의 서로 다른 용법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영어 단어는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정확한 의미 파악이 힘들 뿐 아니라, 사람도 나이가 많아지면 변하듯 단어의 의미가 변하기까지 한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할머니 중에 게이(Gay)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제법 많다. 보편적인 관념으로는 아마 '어떻게 딸에게 그런 이름을?' 이라며 의아해할 수 있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gay는 '즐겁다', '경쾌하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였다. 미국에서 만든 흑백 영화를 보면 '우리 모든 걱정을 잊고 즐겁게 놀아보자'를 'Let's have a gay ole' time"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어가 어쩌다 보니 지금은 동성연예와 그에 관련된 모든 것을 지칭하거나 어떨 때는 비하하는 형용사로 변했다.
이렇게 단어의 의미는 끊임없이 변해 왔으며 계속 변하고 있다.
만약에 연세 많은 원어민 할머니 두 분이 영화관을 나오면서 "That movie was wicked!" 라고 말했다면 사람들은 할머니들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폭력과 선정적인 장면을 마음에 들지 않아 투덜대는 것으로 알아들을 것이다.
하지만 펑크족 복장의 두 젊은이가 "That movie was way wicked yo"라고 말했다면 이 문장 속의 wicked 의 의미는 윗세대인 할머니들의 말과 반대로 '엄청 멋지다'가 된다.
그런데 wicked 를 신조어로 사용하던 그 세대도 지금은 나이가 들었고, 이제 wicked 는 great 의 매우 고루한 옛 유행어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처럼 단어는 사용 시간과 사람에 따라서 매우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때, 장소, 사용자에 따라 달라지는 단어의 의미를 문장의 맥락을 따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어떤 외국어를 배우건(모국어도 마찬가지) 반드시 필요한 센스다. 누구도 이 능력부터 갖추지 않으면 그 언어로 제대로 소통할 수가 없다.
바로 이것이 영어를 공부하면서 단어를 무조건 암기하려고 들면 오히려 올바른 어휘 능력을 기를 수 없는 이유다.
만약 단어를 암기로 익히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으로 단어를 알아가야 할까? 그 답은 친구 사귀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오래 알고 지내면서 그 사람을 여러 상황에서 겪어 보면 서서히 친숙해지게 된다. 나중에는 여러 사람이 있는 대로에서도 걸음걸이만 보고 그를 알아보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친숙함'이라고 부르는 인지 능력은 바로 어휘 능력의 기반이다. 암기와는 관계가 없다. 모국어 능력은 공부가 아니라 습관을 통해서 길러진다.
영어로 '능력'을 뜻하는 ability 는 어원상으로 '습관'을 뜻하는 'habit' 과 통한다. ('ab'/ 영단어의 생성 원리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저 단어가 습관과 관련되어 있는지 훤히 보일 것이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해온 암기 방법을 버리고 다른 새로운 학습 방법을 권하는 나의 제안이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전혀 새로운 방법은 아니다. 이미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꺼내면 된다. 도자기 장인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흙을 살살 달래가며 자기가 원하는 도구로 만들어내고, 대장장이는 쇳물을 녹여서 칼이나 쟁기를 만들어낸다.
또 이탈리아의 유리 기술자는 중력에 의해서 아래쪽으로 계속 늘어나는 녹은 유리를 대롱으로 빙빙 돌리며 유리가 식기 전에 동물이나, 심지어는 복잡한 자동차 모양으로도 만들어낸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이처럼 모양이 제멋대로 변하는 유기체의 패턴을 감으로 파악해서 그 흐름에 맞추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낼 줄 아는 능력이 들어 있다.
영어는 액체처럼 흐르는 유기체와 같다. 우리는 그저 그 유기체의 '흐름을 타는' 본능만 끄집어내면 되는 것이다.
-[플루언트]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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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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