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가 [시민정부론](An Essay concerning the true original, extent, and end of civil government)에서 펼친 국가이론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채택한 헌법의 기본원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정치권력의 정당성은 다수 국민의 동의를 그 원천으로 하며, 국가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은 평화와 안전, 공공의 복지라는 국가목표를 이루기 위해 확립되고 공개된 법률에 따라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바를 벗어나 사적인 목적을 위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
'주권재민'과 '법치주의', 이것 없이는 국가권력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다.
일부 권력자들의 심각한 오용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법치주의'라는 말이 큰 오해를 받고 있다.
'법치주의'는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은 권력 그 자체의 속성이기 때문에 어떤 주의도 필요하지 않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이러한 속성을 제멋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원칙이다.
법치주의는 통치받는 자가 아니라 통치하는 자를 구속한다. 권력자가 주관적으로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이 그에게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 그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권력행사를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법치주의에서 일탈하면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하며, 정당성이 없는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
국가주의 국가론이 인민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려는 적극적 이론인 반면, 자유주의 국가론은 국가가 악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소극적 이론이다.
자유주의 국가론은 국가주의 국가론과 대립함으로써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내는 안티태제(antithese)였다.
로크의 사상은 영국과 유럽을 넘어 미국 헌법을 만든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
우리나라는 미군정의 지배 또는 후견을 받는 가운데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수립했다.
그런 점에서 로크의 국가론은 대한민국 사회의 기본 질서를 세우는 데도 간접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로크가 [시민정부론]에서 펼친 논리는 대한민국 헌법에서 그대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시민정부론]은 [리바이어던]보다 약 40년 늦게 나왔다.
홉스와 마찬가지로 로크도 왕당파와 공화파의 권력투쟁으로 잦은 정변과 혼란이 벌어진 시기에 살았다.
그런데 그는 재산이 없었던 홉스와 달리 법률가의 아들로서 적지 않은 유산을 받은 덕에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를 마친 후 4년간 학생을 가르친 것 말고는 별다른 돈벌이를 하지 않았다.
정치인 친구와 인연이 있어서 외교관으로 잠깐 일한 시기도 있었지만, 실험과학과 약학 등 새로운 자연과학과 철학을 연구하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썼다.
지병인 천식 때문에 런던의 탁한 공기를 피해 프랑스에서 여러 해 지내기도 했던 로크는 뜻하지 않게 정변에 휘말려 네델란드로 도망쳐야 했고 영국 정부는 그를 반역자로 규정해 유럽 전역에 지명수배령을 내렸다.
[시민정부론]은 로크가 5년 넘게 망명생활을 한 끝에 영국으로 돌아온 직후 쓴 논문이었다.
홉스는 정치적 혼란 그 자체를 극복해야 할 악으로 보았지만, 로크는 항구적인 법률이 아니라 즉흥적이고 임의적인 명령으로 통치함으로써 혼란을 야기하는 권력의 행태가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뛰어난 지성을 지닌 철학자로서 거의 비슷한 시대를 살며 동일한 정치적 혼란을 경험했던 두 사람이 상반되는 국가론을 펼친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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