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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스포 있음)

현재 시즌9 까지 나온 상태이며, 완결이 되지 않은 미드다.

(빈부격차가 심한 미국에서 소위 사회경제적 수준이 최하위인 한 가족의 이야기다. 드라마 전반에는 알콜 중독, 동성애, 조울증, 성차별, 빈곤의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 정신과적 이슈들이 언급되고 있으며 나름대로 고민해 볼 만한 요소들도 잘 녹아져 있는 작품이다.)

일단 표면적으로 바라본다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갤러거 가족은  '막장 가족'이다.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가족보단 자신을 더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버지 프랭크..

실질적으로 가족들을 돌보고 있으나 남자 문제에 있어서 늘 문제를 일으키고 마는 장녀 피오나 갤러거...

가족 내에서 가장 스마트 하지만 아버지를 닮아 알코올 중독과 충동 및 공격성으로 힘들어 하는 립 갤러거

어머니인 모니카와 같은 양극성 장애로 인해 힘들어 하며, 동성애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이안 갤러거

초기엔 가장 Stable 한 느낌이었으나 갈수록 발암 캐릭터가 되어 가고 있는 데비 갤러거...


막내이지만 Conduct disorder 느낌이 다분하여 훗날 Anti-social PD 가 되 버릴 위험이 있는 칼 갤러거.... (그래도 시즌 지나갈 수록 가장 정신 차리는 것 같아서 다행. 오히려 시즌9에 와서는 가장 emotional 한 캐릭터 중 한 명이 되어가는 듯 하다. 다행이다.)

 

 


 

일단 미드 자체가 재미있다. 다소 선정적인 부분이 있으나 표면적인 도덕적 잣대만 제거하고 보면 Dysfunctional family 의 어려움이 가장 현실적이고, 적나라하게 잘 표현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정의 아픔이 최소 3대~5대 까지 대물림 된다는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리얼리티가 훌륭하다. 


예를 들어 이 가정의 모든 문제의 첫째 원흉으로 느껴지는 아버지 '프랭크'를 한 없이 미워하면서 드라마를 보다가도 결국 그도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고통 당했던 한 사람의 희생자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면서 그를 섣불리 비판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느낌들이 교차하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모니카(가족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엄마)를 비난하고 싶은 애피소드가 있는데 쭉 드라마를 보고 나면 그녀의 삶에도 만만치 않은 애환이 있었음을 알게 되기에 그 캐릭터를 마냥 미워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선과 악이 뚜렷하지 않으며 모호하게 뒤엉켜 버린 Messy 한 도덕적 흐름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인물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크다 보니, 한 인물씩 번갈아 가면서 감정을 이입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심지어 착실하게 자신의 앞가림을 하고 있으며 가족 모두의 아픔을 끌어 안고 살아온 듯한(?) 피오나도 남자 문제에 있어서 무책임한 행동을 하거나, 충동적인 경향을 보이곤 하면 과연 이 캐릭터도 강력한 가정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이 험란한 가정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기회를 잡아서 가족의 자랑이 될 뻔 했던 립도 술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한다.


다른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와중에도 나름대로 아둥바둥, 서로간에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버텨내는 그들의 삶은 "잡초와 같은 인생" 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은 살기 좋아졌다고 하나, 이들이 보여주는 가정의 모습은 나름 작중 극대화 된 면이 있으나 현실적인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 만연한 양극화 현상이라든지, 자본주의의 폐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한계와 모순 등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고민도 함께 해볼 수 있다. (물론 이 유쾌한 드라마를 보면서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기는 어렵지만..) 

- 미국의 양극화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은 최상위 계층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으나, 점차 소외받는 계층의 숫자도 많아지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말했던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이 자체적인 심판을 봐준다기 보다는 시장의 대변인이 되버린 기업이나 특정 권력자들에 의해 목돈이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는 슬픈 현실......


 

가족의 중요성, 상처의 대물림, 가족간의 상호 의존성, 돈과 성 마약 등의 전형적인 Moral probelm 등 시사점이 많은 드라마다.


일단 편하게 봐도 재미있게 몰입해서 볼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자신을 이입하며 볼 수 있을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선정적인 부분, 자극적인 요소들을 잘 흘려 보내면서 핵심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추천하는 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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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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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는 이런 내용이다.


어느 시골에서 첫째 딸인 중학생 여자아이가 나머지 6명의 동생들을 돌보면서 사는 이야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했더니, 아빠, 엄마는 농사 일을 하시느라 바쁘고 그러다 보니 첫째 딸에게 많은 부분의 책임이 위임되는 형세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첫째 딸 입장에서 화면을 보니, 힘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삶에서 과연 행복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엄마가 자신은 편히 지내면서 첫째 딸을 부려먹는 모양새일까?


그건 아니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매우 힘든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


사실 2년에 한번 꼴로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도 잘 못한 상태로 고된 밭일, 논일을 하며 자식들을 돌봐야 하니 엄마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첫째 딸의 인생을 이렇게 방치해서야 되겠는가?


이번 화는 좀 어려웠던 것 같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자녀 계획 없이(피임 전략 없이), 무분별하게 자녀를 출산한 엄마의 탓을 많이 돌렸다.(바른 지식을 가지고 이런 부분에서도 지혜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건 사실 맞는 말이다. 엄마의 책임은 결코 적지 않다. 아빠는 두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이미 출생해 버린 시점에서 후회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앞으로는 자녀 계획 확실히 매듭 짓고, 방치되고 있는 자녀들의 양육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첫째 딸은 엄마 잔소리에다가 고된 일까지 겹치니 스트레스가 쌓여 가고, 그 스트레스는 폭력성으로 변화되어 동생들을 향해 뻗어간다. 첫째 딸이 동생들을 심하게 구박하거나 때리는 건 사실 당연하다.(물론 폭력을 정당화하자는 말은 아니다.). 단지, 첫째 딸의 삶은 평범한 중학생 여자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정신건강에 심대한 타격이 오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최선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었다.


아마도, 엄마와 첫째 딸은 서로가 가장 소중한 동료이자 의지할 존재임을 인정하고 서로를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그 끈끈한 연대 속에서 둘째, 셋째 딸 정도 까지는 조금씩 일을 분담해서 동생들을 커버해 주고 첫째 언니가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조금만 도와줘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첫째 딸은 엄마와 단 둘이 스테이크를 먹고,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럴만도 하다. 엄마 사랑 받고 어리광 부릴 나이 아니던가?

 

첫째 딸도 엄마로부터 받아야 할 애착의 몫이 있고, 관심과 사랑과 지지의 분량이 있는 법이다.


애어른을 만들어 놔 버렸으니, 얼마나 삶에 결핍이 크겠는가?


엄마는 첫째 딸에게 사랑을 잘 표현하고, 감싸줄줄 알아야 할 것이다. 건강히 자라난 첫째 딸이 더 힘을 내서 자신의 원군이 되어준다는 걸 인정하고 말이다.


아버지의 부재도 상당히 큰 문제였다. 1주일에 한번 같이 밥 먹기도 힘든 관계라니.......


친구들과 놀기는 잘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살거면서 자녀 계획도 적절히 조절하지 못했다는 건 무지와 무책임의 판단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조금만 더 아이들을 챙겨 주고, 관심을 보였다면 이 가정이 이렇게 흔들리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도 고된 바깥 일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집안에서 힘을 쓰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코 이런 모습이 바람직하진 않다.)


이 힘든 system 속에서도 부디 웃음을 잃지 않고, 아름답게 자라나는 7남매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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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의 유재석이라고 외치고 다니며, 지하철 안에서나 야외에서 다양한 몸개그를 구사하는 주인공


개그라고 하지만 사실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패널로 앉아 있는 개그맨(우먼)들의 말처럼,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데 우습게 보여버리고 마는.... 왜 이 남학생은 이런 시도를 하는 걸까?

 

자신의 지나치게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불만이 많았던 이 친구는~ 그 틀을 깨고자 더욱 사람들 앞에서 공포증을 이겨 내며 자신을 채찍질 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좋지 못한 아버지 상이 존재한다. 지나치게 엄한 아버지 상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심지어는 폭력을 구사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자신이 배우지 못하고 힘들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것을 아들로부터 보상 받고자 하는 전형적인 심리가 엿보인다.


보란듯이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가서 돈 잘 벌어오면 그게 자신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 입장에서 그 마음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 문제에서 만큼은 이제 솔직해 지도록 하자. 이건 엄밀한 의미에서 사랑이 아니다.


무엇보다도'자신의 아들을 위한 사랑'은 아니다. 보상받지 못하고, 천대 받던 자신을 향한 사랑의 발로로 아들을 휘어잡고, 다그치고, 모욕 주고 있지 않은가.


어머님도 마찬가지다. 한 명 있는 형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이 친구를 지지해 주거나 응원해 주지 않는다.


"넌 무엇을 하고 싶니?"


"넌 참 멋진 녀석이야~"


"넌 있는 모습 그대로 참 가치 있어~"


이런 뉘앙스의 대화가 인생에서 한번이라도 오갔을런지 모르겠다. 섬세한 지성을 지닌 가까운 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 친구는 수치심 중독에 빠져 있을꺼야, 늘 집에서 수치를 당하고 무시를 당하니, 그 속으로 자신을 던져 넣어버린 것 같은..."


스스로는 개그가 자신에게 잘 맞고, 이를 통해서 활로를 찾은 듯 하다. 이건 시간이 지나면 정말 그러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자신이 진정 하고 싶었던 건 개그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자신이 '개그' 하는 걸 도저히 못 봐주는 가족들 앞에서 계속 '개그'를 시도하는 모습은 슬픈 자학 행위나 다름 없다.


한번이라도 인정 받고 싶은 아들의 처절한 절규로 보이기도 하고, 그들이 원치 않는 것을 자신을 우습게 만들면서까지 기어코 줘버리고 싶은 수동 공격성 같기도 하다.....

 

 


 

착한 심성을 지닌 그 학생은 이렇게라도 자신을 항변하고 있는 것 아닐까?


"나도 살아 있다. 당신들이 조롱하고 모욕 주고 수치심을 준 나란 존재. 이젠 감정을 어떻게 주고 받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교감하는지도 모르겠어. 난 수치심을 느낄 때만 날 느낄 수 있어."


이런 고백을 되내이며 오늘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우습게 내어 던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이 학생에게 이야기 해 주고 싶다.


"당신이 개그하지 않아도 당신은 당신입니다. 누구도 당신의 삶을 침해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게 당신의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가족이든.... 당신이 진정 원한다면 그 일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당신의 참된 가치를 당당히 펼쳐 나갔으면 좋겠어요. 너무 잘하고 있어요. 그 동안 살아 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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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드라마 [쉐임리스]의 미국판 리메이크 버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소 선정적이긴 하나, 미국의 빈민층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보고 싶다면 한번쯤 볼만 합니다. 인물들의 개성도 뚜렷하고, 드라마 자체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도 alcohol use disorder(알콜 사용장애)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이들, 가족들이라면 시즌6에서 '립'이 보여주는 모습을 참고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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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갤러거 집안에서 가장 smart 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던

립이 시즌6가 지나가면서 '알콜 중독' 문제로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프랭크라는 아버지 답지 않은 아버지를 만나, 갤러거 남매들 모두 상처가 가득하지만

립의 무너짐은 개인적으로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성'에 취약하다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나아 보였는데 말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며, 아버지로부터 '남자다움, 여자다움'에 대한 긍정을 받고자라지 못한 경우에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자신감이 저조해지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흔히 '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잘 생기곤 한다.)


한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알콜 중독자'들은 내재된 분노가 많다.


그들은 일종의 fantasy 를 지니고 있는데, 이게 심해지면 망상적 사고가 될 수도 있다.


마치 타인이 자신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것이라는 실현 가능성 없는 믿음을 지니게 된다고나 할까?

 

그들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사고를 우리는 '중독적 사고'라고 따로 명명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너끈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능성'부터 시작해서, 타인이 자신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것이라 믿는 '환타지'에 이르기까지 '중독적 사고'의 범위는 넓고도 다양하다.


한 여교수와의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던 립은 둘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서 감정적으로 break down 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립은 학교 내에서 '알콜 중독' 진단을 받은 교수 밑으로 들어가 TA로 일하면서 그 교수에게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할 사랑과 관심, 지지를

받아내려 한다.

 

(정신분석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father hunger 가 있어서 그와 같은 figure를 찾아 헤매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교수도 '알콜 중독' 문제로 싸우고 있는 연약한 인간이고, 자신의 몸 하나 지키기도 버거운 '코가 석자'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father hunger가 채워지지 않고, 자신의 의존 욕구가 달성되지 않게 되면서 립은 '극도의 공허함'(emptiness)를 느끼게 되고, 이를 다시 채우고자 재음주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외부에 의존해서 계속 채우려는 시도가 반복된다.

 

 

Alcohol use disorder 진단을 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공허함'을 호소한다. 그들은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물질에 의존하거나, 성에 의존하거나, 돈에 의존한다. 하지만 외부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더욱 망가져 간다.


결국 물질적인 요소/외부적인 요소들은 '공허함'을 제대로 채워주지 못함을 알게 되고 그러한 외부 현실에 대한 '분노'가 증대된다. 

 

술을 마시기 전에는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우울할 뿐이었으나 일단 CNS depressant 로 작용하는 술이 들어가면 단주 기간에는 느끼지 못했던 '모종의 전능감'(Omnipotency)과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자신이 억압(Repression) 해 둔 공격성도 탈억제(disinhibited) 되면서 작은 자극으로 인해서도 '분노'가 외부로 표출된다.

 

지속적인 음주가 brain의 전두엽(frontal lobe)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더 나아가 prefrontal cortex(전전두 피질)에 손상을 가함으로써 우리의 충동 조절(impulse control) 능력에 문제가 생기게 됨을 떠올려 본다면 립이 보여주는 공격적인 행동들은 상당히 그럴싸하다.

 

갑자기 교수의 차를 쇠파이프로 부수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주먹으로 때리기도 한다. 립은 다행히 교수의 권유를 받아들여 '알콜 중독자 모임'(Alcoholics Anonymous)에 참여하게 되면서 시즌이 종료된다.


자신의 '중독'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치료의 절반을 차지한다.


부디 다음 시즌에선 회복된 모습의 립을 보게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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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음)


전학 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게 된 주인공 아유무. 전학 첫 날 가장 살갑게 친구가 되어 줬으나 한 순간에 돌변해 버린 마나미. 남녀 공학 학교에서 벌어지는 왕따 현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본 드라마다.

 

피해자들의 두려움과 고립된 상태를 잘 반영해 주는 드라마이며 캐릭터들의 개성도 훌륭하다.

 

드라마의 초반에 묘사되는 피해자가 겪는 고통스러운 상황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워지게 만들 정도로 가해자들의 괴롭힘은 가혹하고 잔인하다.

 

일본 드라마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치밀하고 섬세한 감정 표현과 심리 묘사들은 보는 이들의 성향에 따라서 다소 과하게 느껴지거나, 오글거리는 부분도 있으나 이러한 정서가 잘 맞는 이들에게는 깊은 감정 이입에 도움을 주는 플러스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백미는 끔찍한 괴롭힘을 당하던 아유무에게 든든한 동료들이 생기는 스토리 전개다. 더 나아가 한명의 '정의'가 다수의 '정의'가 되기 시작하면서 '정의'가 힘을 얻기 시작하고, 결국 '거짓된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엉성한 결속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와해되어 가는 지점이 이 드라마의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는 지점이다. 가장 통쾌한 순간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결국 '가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가 되고,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왕따 현상이 반복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순간,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우리도 선택을 해야 한다.

 

"그녀를 용서할 것인가?"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실존적이며 철학적인 질문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인 아유무는 '멋진 선택'(내 기준에서는)을 하게 되는데...


마음 같아서는 자신을 끔찍하게 괴롭히던 마나미를 끔찍하게 괴롭혀 주고, 통쾌한 복수를 해주길 기대했으나, 아유무는 가해자 보다는 '왕따' 현상이라는 괴물 그 자체와의 싸움을 선포한다.

 

우리가 싸워내야 할 보이지 않는 '괴물'을 명확하게 인식한 것이다. 마치 게임을 할 때 마지막 보스인 줄 알고 괴물을 격퇴했으나 사실은 히든 보스가 남아 있어서 더욱 맹렬한 공격을 해오는 것처럼 '왕따'현상은 개별적 인간을 각개격파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이 뚜렷한 주제 의식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화려한 복수를 꿈꾸던 이들에겐 아쉬운 반전일 수 있으나, 이 드라마의 전형적이고 정석적인 주제 의식이 바로 이 드라마를 봐야 할 가치를 높여 주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왕따 현상' 에 대해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가해자, 방관자 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떨어져 버리지 않기 위해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가진 자들의 횡포, 학교 측의 무능함, 주변의 방관자, 가족 구성원의 문제 등 '왕따 현상'에 수반되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적절하게 녹아져 있어 현실감을 더해주는 이 작품은 여러 모로 시사점이 많은 작품이 될 것이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스토리도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오락적인 요소로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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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될 수 있으니 드라마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보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얀 거탑]을 보고..

 

유명한 의학 드라마다. 수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되었다.(3년 전 쯤 봄)

원작이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확실히 우리 나라 드라마와는 전개하는 방식이 좀 다른 면이 있었다.

우리 나라는 의학 드라마든, 법정 드라마든, 퓨전 사극이든, 환타지 물이든 늘 달달한 연애씬이 주를 이룬다.

두 선남선녀의 그렇고 그런 로맨스를 위해 여러가지 부수적인 소재들을 옵션으로 사용하는 느낌이라면 일본 드라마들은 특정 소재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집요함과 집중력이 있는 듯 하다.

가령 요리 드라마는 정말 요리사의 숭고함과 열정을 잘 그려내고, 의학 드라마는 정말 의학 드라마 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일본판을 보지 못해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하얀 거탑]은 식상하기 쉬운 연애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의 가치는 한층 높아진다.

촉망받는 외과 의사 장준혁의 일대기를 그린 듯한 이 작품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 야망이라는 주제를 매우 적나라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장준혁은 지극히 인간적인 캐릭터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야망과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인 것이다.

자존심 따위는 과감히 내리고, 적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하고 때로는 강경하게 밀어 붙이는 태도로, 때로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애절한 멘트로 상대방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수 있다. 누군가는 이와 같이 확실하고 프로페셔널한 세속성을 닮고 싶어할 수도 있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처세술이니, 사회성이라는 이름으로 나름 멋지게 불릴 수도 있고 말이다.)

외과 과장이 되고자 하는 장준혁의 야망은 자신의 스승까지도 과감히 밟아버릴 수 있는 저돌성을 띄고 있는데 이는 이주원 외과 과장과의 치열한 심리전으로 그려지며 드라마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이에 반해 그의 오랜 친구인 최도영은 우리가 꿈꾸는 성실한 의사다.(여기서 '우리는'에 속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선호도가 있는 방향성이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병원이나 자신에겐 손해가 가더라도 인간을 향한 애정과 사랑, 그리고 인격성을 잃지 않는 의사다때론 그의 모습이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해 보일 순 있지만, 역시 내가 환자 입장이라면 이런 의사를 찾고 싶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중심 인물은 누구보다도 장준혁이다.

그가 외과 과장이 되기 위해 자신의 스승인 이주원 과장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서도, 혹자들은 장준혁을 마냥 미워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작금의 시대 상황과 정치 양상, 작게는 회사 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들이 더러 연출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장준혁을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그와 같은 색깔을 띄고 있는 모종의 욕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혹자들은 "욕망이 정말 나쁜가?, 모든 인간은 '욕망'하지 않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도 있고 말이다.

성향 상 그의 모습에 공감을 못 하는 것 뿐이지, 무언가 내가 바라는 것’, ‘내가 잡고자 하는 것을 간절히 꿈꾸고 염원하던 순간들을 각자가 지니고 있지 않은가?

(결국 색깔이나 방향성이 다르다 뿐이지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다는 점)

장준혁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한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에겐 외과 과장이 되고, 자신의 명성을 알리는 게 그의 삶에 전부였던 모양이다.

그것을 몸 속에 가득 채우기 위해 그는 인간성도 버리고(스승을 배신하거나, 자신의 실수로 죽은 환자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거나), 사랑도 버리고(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기 보단, 자신과 이야기가 통하는 술집 여성 희재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몸도 버리고 만다.

점점 인간 이하의 존재로 추락해 가는 그를 붙잡아준 건 그의 주변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그를 지지해 주던 무리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있는 그대로 불러주는 (“준혁아~”) 최도영이나 그의 어머님, 그리고 희재와 같은 인물이 그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기억 속에 남는 인물임이 드라마 속에 잘 묘사되어 있다.

장준혁이 스스로 파멸의 길로 치달을 때, 그는 친구인 도영이가 해 준 말을 회상하곤 한다.

넌 존재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었는데, 어떤 것을 이루지 않아도,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의 가치를 봐주는 고백이었다.

장준혁은 이 부분이 결여 되어 있었다.

그는 지독히 자존감이 낮았고, 열등감이 심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전형적인 반작용으로 그는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를 드러내는 데 생의 에너지를 다 쏟아 붓고 말았다.

(Kohut 은 self psychology 에서 어린 시절 자신을 충분히 지지해 주고, 공감해 주는 self-object(자기 대상)을 지니지 못했을 때, 그리고 이상적인 부모상이 형성되지 못했을 때 아이는 '나르시스틱 injury' 를 얻게 되며 이를 보상하기 위해 과장된 자기(grandiose self)를 형성하여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를 어필하고 싶어한다고 주장한다. 장준혁은 전형적인 '자기애성 인격장애' 의 표본이 아니었을까?)

그의 깊은 내면은 어쩌면 여리고 따뜻한 구석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장준혁의 명성과 실력을 이용해 병원의 위상을 높이고 자신도 병원장이 되고자 했던 부원장이라든지, 장준혁 주변에 날파리처럼 달라 붙었던 수 많은 인물들은 자신들의 욕심의 암 조직을 장준혁의 몸 속에 차곡차곡 배설했던 게 아닌가 싶다.

장준혁 본인의 욕심도 암 조직 발생에 한 몫을 했겠지만 주변의 모든 어두움이 장준혁의 몸 속에 응집되어 결국 젊은 천재 의사의 삶을 좀 먹어 버렸다.

그래도, 떠나는 길 자신의 시신을 해부학 교실에 기증하는 모습을 통해 그나마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승화 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여운을 느끼게 해 준다.

특별한 로맨스가 깊게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 인스턴트 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요소도 딱히 없어 보이지만, 이 드라마는 다분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정치적이며 다분히 인간적이다.

그리고 장준혁과 대비되는 최도영의 존재는 의롭고 싶으나 용기가 부족하고 체면을 중시하던 이주완 과장이 움직이는데 힘을 실어 줬고, 장준혁이라는 고집 불통의 마음 속에도 잔잔한 감동을 남겨 주었으며 수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 줬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포인트다.

한 사람의 의로운 자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생명을 전달할 수 있는지가 잘 묘사되어 있다.

어떤 인물과 같은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몫이다.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목적하는 바를 움켜 질 수 있는 장준혁의 모습이 멋있어 보이고, 강단 있어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최도영과 같이 지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씨를 뿌린 대로 거두기 마련이다.

장준혁의 장점들(자신의 이득이나, 야망 성취의 일환일 수 있긴 하지만 자신의 밑에 두고 있는 수련의들을 잘 챙겨주는 모습은 일정 부분 멋있어 보이긴 한다, 그리고 실력 있는 외과 의사라는 모습도 보기 좋고 말이다. 때론 용감한 모습도 한번 씩 보여주고 말이다.)을 잘 기억하면서, 동시에 오경환 교수나 최도영 교수, 이주완 과장의 딸인 이윤진과 같은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면 가장 적절한 결말이 아닐까? (물론,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 답답해 보이고 꽉 막혀 보이고 융통성이 떨어져 보일 때도 있을 것이며 이들이 절대적인 '의'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결말은 열어 놓겠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정말 잘 만들어져서 여운이 오래 남는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꼭 보자!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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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학교'는 상당한 전통을 자랑하는 하이틴물이자, 진지한 성장 드라마다.

 

2015년도를 맞이하여 한층 깊이를 더하고, 완성도를 높인 '학교' 가 방영되었다.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 늦게 본 감이 있긴 하지만, 음악이면 음악, 스토리면 스토리, 연기면 연기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잘 만든 드라마였다.

 

[줄거리는 구구절절 적진 않겠습니다만, 한번 보시면 많은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1. 왕따 문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이은비는 통영에 있는 학교를 다닐 때 강소영으로부터 극심한 왕따를 당한다. 학창 시절에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많은 문제들 중에 가장 심각한 일면을 다뤘다는 점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지닌 의의는 크다고 볼 수 있다.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는 건 인간이 겪는 수 많은 고통들 (불안감, 공포, 우울감, 무기력 등)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고통을 줃나는 '수치심'을 건들기 때문에 따돌림은 일종의 '범죄'며, '폭력'이다.

 

이를 가벼이 여겨선 안된다는 걸 나름 잘 보여준 드라마였다.

 

또한 이은비가 기억을 잃고 나서 자신이 고은별인 줄 알고 전혀 다른 학교, 전혀 다른 친구들,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면서 드라마는 흥미진진해 지는데, 나중에 고은별의 스토리가 밝혀지면서 은별은 자신의 친했던 친구 수인의 따돌림을 막아주지 못하고 오히려 암묵적으로 그 따돌림에 동조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때로는 따돌림의 문제가 '강소영' 같은 사악한 캐릭터 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서 아무 짓도 하고 있지 않는 '방관자'들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내가 적극적으로 '범죄'하지 않는 것만이 '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좇지 않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중립'이라는 미명 하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순간 자신의 몸이 점점 더 '악'으로 물들어 가는 경우도 생길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내가 '중립을 지켜야지!' 라고 가만히 있다고 해서 나를 둘러싼 구조와 맥락과 세상이 나를 그 자리에 가만히 유지시켜 줄 거라 생각하는 건 상당히 순진한 발상일 수 있다.)

 

막상 그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은별처럼 행동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그리고 용감한 행동을 시도했던 은비의 모습을 닮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그 길이 안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2. 교육 문제

 

고등학생을 다루는 성장 드라마의 단골 메뉴와 같은 '공부', '교육', '성적'.... 이 고등학교도 나름 명문이라 그런지 치열한 공부 경쟁이 반영되어 있다.

 

<발칙하게 고고> 에서 만큼 노골적으로 이 주제를 중심에 두지는 않지만 오히려 Side story 로 적당히 이 문제를 환기 시켜 주는 게 더 밸런스가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입시 교육의 폐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며, 이런 식으로 10대의 청춘을 보내 버리다 보니 우리는 서로 나누는 법,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에 매우 무딘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이기고, 밟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더 친숙해 지게 만드는 교육은 과연 교육인지 살육인지 ....

 

 

 

 

3. 부모들의 문제

 

사이코 패스 같았던 강소영의 연기는 대단했다. 그러나 강소영 또한 사이코 패스 같던 아빠, 엄마의 희생양이었다.

 

특히 아빠는 야욕이 많고, 누군가를 밟아 버리고 지배해 버리는 삶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못난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니 사회성이 엉망이 되어 버린 게 아니겠는가. 그의 엄마도 뭐 문제 많은 사람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이에 반해 은별과 은비의 엄마로 나오는 분은 정말 좋은 엄마의 표상이 아닐까 싶다. 인자하고, 너그럽고 함부로 자신의 생각을 딸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말이다.

 

또한 공태광의 아버지와 한이안의 아버지도 함께 언급을 해야 할 것 같다. 공태광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집에 부족함 없는 자원을 누리고 살아가지만 늘 비뚤어져 있고, 결핍이 가득한 학생으로 그려진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 아버지로부터의 결핍을 보상해 줄 만한 어머니가 부재하다는 점.... 이에 반해 한이안의 집은 부유하지도 않고, 넉넉하지도 않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 돈독하다.

 

아버지로부터 지지 받고 인정 받지 못한 공태광은 엇나갈 수 밖에 없는 소인을 지니고 있었다.

 

4.정체성의 문제

은비는 은별처럼 살아가다가 기억이 돌아오게 되어 자신이 은별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제목인 '후아유' 처럼, 은비는 자신의 에전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주저한다. 자신이 '은별'이 됨으로써 누리게 되는 수 많은 가치들 (엄마, 친구들, 경제적 여유) 을 한순간에 뿌리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I 는 I로 남아야 하지 You 가 될 수 없다. 나의 실존적 자아가 바로 서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얻게 된다 해도 무의미할 뿐이다.

 

결국, 은별이 돌아오고 나서 은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기할 수 있는 사랑의 집을 다녀오게 되고, 그 속에서 많은 결심들을 굳힌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은비'로서 점검하고자, 태광과 이안의 고백 속에서도 더욱 신중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쉽게 얻을 수 있었을 주변의 좋은 것, 좋은 사람들을 '은비'는 굳이 돌아가는 수고를 하면서 바로 손아귀에 넣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은비'이기에, 태광과 이안은 은별보다 은비를 선택했던 게 아닐까.

 

약한 자, 어려움에 처한 자를 외면할 수 없는 따뜻한 성품, 그리고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 해서 그걸 바로 잡으려 하지 않는 겸손함과 도덕성... 이런 매력은 때론 그녀를 왕따라는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녀의 삶에 큰 아픔을 나겼지만, 결국 그녀를 빛나게 하는 무기가 되었다.

 

이 드라마가 다루는 'Who are you?' 라는 물음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5. 사랑과 용서

우리의 삶 속에는 많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왕따의 문제, 교육의 문제, 부모들의 문제, 정체성의 문제 등..

 

그러나 이 모든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사랑과 용서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누구보다도 가장 진한 복수를 꿈꿨을 법한 은비는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된 후반에도 '강소영'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강소영을 향해 '난 너가 참 불쌍해' 등의 진솔한 고백을 하며, 그 존재를 향한 care를 아끼지 않는다. 결국 강소영은 이은비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되고, break 가 걸리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에 은별과 은비가 break 를 걸어준 것에 대해 간접적인 감사를 표한다.

 

양육강식의 '정글' 과 같은 인생을 배우고 자란 강소영에겐, 따뜻하고 배려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은비와 은비 주변 친구들(은별과 다른 여자 친구들, 이안과 태광 등)이 마냥 부러웠을 것이다.

 

envy 가 jealousy 로 변모하면서 점점 더 표독스럽게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걸 누리는 상대를 짓밟고자 했던 '강소영'... 어쩌면 소영의 삶에 따뜻한 빛을 제시해 줬던 건 그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가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무시하고, 공격하고 짓밟았던 은비가 아니였을까.....

 

또한 왕따를 당하다가 죽음을 선택한 수인... 그리고 그 수인을 방관해서 괴로워하는 은별... 그 죄책감의 무게를 실감하며 슬픔을 삭이고 있는 동안 수인의 언니 또한 은별을 용서해 주며 보듬어 준다.

 

은별이 결코 잘한 일은 없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있었기에 이 모든 상황들이 정리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고백하는 용서의 말은 회복의 시작이요, 열쇠가 될 수 있다.

 

비록 은별이 가해를 한 주체는 아닐지라도 스스로의 방관이 '소극적 가해' 였음을 인정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태광 또한 아버지를 늘 증오했으나, 아버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용기를 내어 드러내는 순간, 그 완고하고 깐깐하던 아버지가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의 죄를 감추기에 급급하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태광에게 멋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수를 하러 경찰서를 가는 모습.... 그 모습 속에서 회복의 씨앗이 있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맛있는 양념볶음 처럼 잘 버무린 드라마. 그리고 그 플롯에 어울리는 멋진 OST...

 

그러나 이 드라마가 다루고자 하는 핵심 주제들은 사실 '학교'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에겐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는 의외로 간단한 것에 있을 수 있다. 서로 소통하자.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자. 그리고 잘못을 인정한 자를 용서하자. 잘한 것은 아낌 없이 칭찬하고 지지하며, 못하더라도 상대방의 인격이 다치지 않도록 보듬어 주자.

 

그리고 모든 만남 속에 사랑을 담아 보자. 이런 소중한 교훈을 안겨 준 '후아유'

한번 쯤 시청을 추천합니다!!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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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터너]를 보고..

 

3부작 단편 드라마인데, 방영 후 몇 달 뒤에 보게 되었다.

페이지 터너란, 피아노를 연주할 때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 드라마는 상당히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well-made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예술 고등학교에서 1등을 달리고 있는 윤유슬(김소현)이라는 여자 학생이 나오고, 같은 고등학교의 2등을 하고 있는 서진목(신재하)이라는 남자 학생, 그리고 체육고등학교에서 장대 높이뛰기 선수인 정차식(지수)이라는 인물이 주요 인물이다.

 

 

 

<간단한 줄거리>


유슬이와 진목은 늘 사이가 안 좋다.

유슬의 엄마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인데 어린 시절 진목을 가르쳤던 경력이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유슬의 엄마는 어린 진목으로부터 자존심의 상처를 입게 되고, 그 뒤로 그게 한이 되어서 자신의 꿈을 자신의 딸로부터 성취하기 위해 딸의 피아노 선생을 자처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슬은 진목과 라이벌 의식을 느끼게 되고, 엄마의 마음을 반영하여 늘 그와의 싸움에서 이기고자 한다.

한편 차식은 무시를 당하면 빡치는 타입의 성격이다. 엄마를 모욕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견디질 못하고 빡쳐서 장대 높이뛰기로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열정이 있고, 좀 저돌적인 캐릭터다.

어느 날 유슬과 엄마는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나서 유슬은 시력을 잃게 되고, 차식은 장대 높이 뛰기를 하다가 잘못 떨어져서 허리를 다쳐 선수 생활을 못하게 된다.

유슬과 차식은 모두 삶의 목적을 잃고 인생을 마감하러 병원 옥상에 올라가지만 극적으로 서로를 만나 살아남게 되고, 그 이후에 유슬의 등,하교 등을 챙겨주는 도우미로 차식이 발탁되면서 이들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

유슬의 엄마는 어린 시절 집안 환경이 받쳐 주지 못해서 실력은 좋았으나 작은 피아노 학원 선생 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집안이 굉장히 좋은 진목의 개인 레슨 선생님이 되어 열심히 가르치려 하였고, 진목이 피아노를 무미 건조하게 치는 것을 지적했으나 오히려 어린 진목은 자신이 피아노를 못친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선생 뿐이라며 선생님을 바꿔 달라고 아버지께 조른다.

이런 굴욕의 시간을 겪고 나서 엄마는 자신의 딸 (이 딸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음을 그 사건 도중에 눈치채게 됨)에게 자신의 인생을 건다. 좋게 말하면 요즘 말하는 골프 맘이니, oo 맘 처럼 지극정성으로 자녀를 정상의 궤도에 올리고자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는 엄마지만 사실 이 엄마는 자녀를 사랑해서 그렇게 한 게 아니라고 봐야 한다.

자신의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성취하기 위해 딸을 이용할 뿐이었다. 그래서 딸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늘 자신이 지시하고 딸을 조종하기 바쁘다. 딸도 자신의 엄마가 지닌 한을 알기 때문에 늘 ‘yes’ 로 화답을 하지만, 자신이 왜 피아노를 쳐야 하며, 피아노를 치는 것이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시력을 잃고 나서 유슬은 차식이 해 준 말을 떠올리며 엄마로부터의 정서적 독립을 시도한다. 힘들어도 자신의 삶은 자신이 꾸려 나가고, 자신이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 나간다. 엄마도 처음에는 이 상황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힘들어 하지만 결국 자신이 딸을 망쳐 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착한 유슬은 자신이 엄마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는 이유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계속 엄마에게 끌려가다가는 선택의 기회가 없었던 자신보다는 자신의 선택을 강요했던 엄마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가, 결국 엄마를 원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슬이 다음과 같은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자살을 하려고 병원 옥상에 올라가 떨어졌을 때 자신을 받아 준 차식의 말의 영향이 컸다.

 

 

 

차식은 유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너는 피아노 치는 거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엄마 앞에서 좋아하는 척 하고, 늘 자신의 입장이나 의견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너가 엄마를 속인 거다라고 이야기 한다. 어찌 보면 상대방의 감정이나 복잡한 context 를 무시한 단순한 해석일 수 있지만, ‘자신의 책임을 강조하는 차식의 조언이 유슬에겐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아들러는 인간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환경 요인, 유전 요인과 함께 주어진 상황에 대한 각 개인의 response(반응)을 강조했었다.

세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인 반응이라고 이야기 했었는데, 유슬도 이 부분에서 자신에게 그 삶을 강요한 엄마를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도 결국 그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행동하기로 선택한 면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눈이 멀고 나서 유슬은 좀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에 이른다. 한편, 유슬의 눈이 멀었는데도 끝까지 딸에게 피아노만 치게 하려는 엄마의 모습은 가히 정신 이상자 수준이다.

그 정도로 유슬의 엄마는 피아노에 맺힌 한으로 인생을 살아 왔던 것이다. 그러나 유슬은 과감히 피아노 치는 것을 중단한다. 그리고 차식을 만나면서 서서히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피아노 치는 것을 즐기기 시작한다. 마지막 콩쿨 대회 때 유슬은 처음으로 웃으면서 피아노를 치는 사진을 남기게 된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성을 갈망한다. 부모의 의도가 어떠하든, 자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삶은 사랑이 아니다. 자유는 사랑의 필수 전제이다.

 

 

 

[부모의 사랑과 인정]

진목은 어릴 때부터 사이코 패스 소리를 들을 정도로 까칠하고 건조한 녀석이다. 늘 웃지 않고, 뭔가 날이 서 있고, 인상을 찌뿌리고 다닌다.

그러나 피아노 치는 실력은 상당하다. 늘 유슬과 1, 2등을 다투는 사이이고 말이다. 늘 자신을 무시하고 싫어하는 유슬과 유슬의 엄마를 보며 분노를 키워가던 그는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린다. 유슬과 유슬 엄마의 오만함을 벌해 달라고….. 그 순간 두 모녀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유슬은 시력을 잃게 된다.

그 사건 이후로 진목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그 죄책감을 달래 보고자 유슬에게 잘해 주려 한다. 처음에는 동정심이나 죄책감의 해소가 목적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마음은 좀 더 따뜻한 무언가로 바뀌어 가기 시작한다.

진목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집안은 부유했고, 가진 것도 많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늘 그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친구와 싸우고 와서 손을 다친 어느날이었다. 밥상 머리에서 아버지는 며칠 뒤에 있을 연주회에 참석하라고 말을 하고 진목은 팔을 다쳐서 참석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때 진목은 팔을 다쳤구나~ 어쩌다가 다쳤니?, 많이 아프니?” 등의 대답을 기대했겠지만 그의 아버지는 오직 연주회에 대한 이야기만 할 뿐이다. 그 모습에 섭섭했는지, 진목은 아버지~ 왜 제겐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느냐!” 고 말을 하자, 그 아비는 나약한 사람은 꼭 그런 관심이나 지지를 원한다고 말한다.

실력이 부족하니까 계속 동정 받는 쪽으로 마음이 향한다는 것이다. 그의 아비는 아들의 노력이나 열심을 지지해 주지 않는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먹고 정체성과 자존감을 만들어 나가는데 그런 성취감이 전혀 주어지지 않으니 진목은 자신이 왜 피아노를 치고 있는지 답을 찾기가 어렵다. 결국 자신은 피아노를 치는 게 맞지 않다고 여기고 수능 공부를 하겠다고 말하자 아버지가 하는 말은 잘 생각했다~ 너 정도로 피아노 쳐 봐야 작은 피아노 학원 선생이나 하겠지~ 그 정도로 살아봐야 시간만 아깝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끝까지 진목의 마음은 만져지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진목은 피아노실에서 차식이 대신 몰래 피아노를 연주할 일이 생기고 그걸 듣던 유슬은 진목에게(사실은 차식이가 친 건 줄 알고 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너는 꼭 피아노를 쳐야 한다고너에겐 재능이 있다고 말해준다.

 그 말을 들은 진목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흘린 땀에 대한 인정과 지지를 받은 것마냥 눈물을 흘린다. 부모로부터 받았어야 할 지지와 인정을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 만한 (자신을 가장 모욕하던 유슬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콩쿨 때도 차식을 대신해서 피아노를 치게 되는데 그 순간에도 진목은 유슬의 엄마로부터 칭찬을 듣는다. 자신의 능력을 깎아내리던 존재로부터 진정한 인정을 받게 되는 순간이다. 진목은 결국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여전히 아버지의 지지는 없지만, 자신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스스로 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은 이 부분에서도 중요하게 오버랩된다. 진목이 피아노를 다시 치기로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결핍되었던 인정과 지지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고, 차식과 유슬이 보여준 모습들도 중요하게 작용했으리라 본다.

마지막 콩쿨 대회 때 차식을 대신해서 진목은 유슬과 피아노를 치게 되고 그 둘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멋진 피아노 연주를 해 보게 된다. 늘 은상만 받아 오던 진목은 처음으로 대상을 받는 순간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사랑과 인정이 오가는 그 무대는 그 어떤 대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대상에 걸맞는 대회였던 것이다.

 

 

[자존감과 자신감 그리고 열등감]

차식은 첫 등장 때부터 몹시 화를 낸다. 누군가 관중석에 있는 자신의 엄마를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친다.

처음에는 인격 장애가 있나 싶겠지만, 사실 엄마를 몹시 사랑하고 엄마와 자신이 무시 받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성격이다. 대개 집안 환경이 부유하지 못하고 결핍이 많은 경우에 그런 모습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러더라도 그에겐 열정이 있고 누가 봐도 당당한 자신감이 있다. 그러나 경기 도중 사고를 당해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자신감 넘치던 차식도 한순간에 자신감을 잃어 버리고 병원 옥상에 올라가 생을 마감하려 한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가여웠던 엄마는 거대한 선의의 거짓말을 해 버린다. 즉 차식의 숨겨진 아빠가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한명세라는 것이다.(이게 거짓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자, 차식은 자신에게 놀라운 재능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믿고 매우 적극적으로 피아노 공부, 연습에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저런 사건을 계기로 유슬과 가깝게 지내면서 둘은 콩쿨 대회에 나가기로 한다.

그러나 콩쿨 당일 날 차식은 엄마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게 된다. 늘 엄마에게 지극 정성이던 차식은 그 날 만큼은 엄마에게 몹시 화가 나 있다. 결국 엄마는 아들이 너무 기죽어 있는게 싫어서 엄마 아들이잖아~ 그러니까 넌 잘 할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엄마 스스로가 대필이나 해주는 초라한 작가 인생을 살고 있고, 월세 집도 면할 수 없는 상황이여서 자신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차마 그렇게 말해주진 못하고 그냥 재능 많은 한명세씨가 아빠야! 라고 말해줬던 것이다. 그러나 차식은 그 순간 그 어떤 때 보다 더 빡친다고 이야기 한다. “자신에게 있어서 엄마는 초라한 존재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멋진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낮은 자존감을 지니고 있다는 게 몹시 화날 정도로, 자신이 느끼는 엄마는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 모자는 저녁에 전봇대에 아르바이트 전단지를 붙일 때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차식이가 피아노 연주를 힘들어 하며 자신감을 잃어할 때 그의 엄마는 정 선생님하면서 아들을 높여준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감을 잃어 하는 것 같으면 여사님~’ 이라고 부르며 엄마를 높여 준다. 가진 게 없고, 부족한 게 많은 집안이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는 모습. 엄마는 아들을 높게 보고,, 아들은 엄마를 높게 보는 모습이 있기에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예술 고등학교에 유슬의 도우미로 오면서 차식은 자신이 듣기 싫은 무시 받는 말들을 학교 학생들로부터 많이 듣게 되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분노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무시를 인정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때론 자신을 무시하는 진목 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할 만큼 그는 자신감자존감으로 발전시켜 나가기에 이른다.

아들러는 열등감(inferiority)이 우리의 인생을 이끄는 강력한 동력이라고 이야기 한다. 차식도 그런 열등감을 느끼는 말들을 들으면 전투력이 상승한다고 스스로 이야기 한다.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자신감, 열등감, 자존감. 이들에 대한 섬세한 분류가 가능하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성숙한 열등감, 자신감의 사슬을 끊고, 내가 무언가를 지니든 안 지니든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주어진 존재 만으로도 높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자신의 아빠가 한명세라서, 자신이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길을 걸어가는 것 그 자체로도 존재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차식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고, 그는 누구보다도 그걸 잘 해나갈 것이다.

 

결국 '스스로 선택하는 삶', '사랑과 지지와 인정', '자존감, 자신감, 열등감'의 이슈는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몇가지 인생의 키워드들을 안정감 있게 지닐 수 있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아름다워 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 한가지가 있다.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우리는 모두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우리는 혼자서는 이 인생의 키워드들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드라마 속 유슬이 차식과 진목에게 영향을 주고, 진목이 차식과 유슬에게 자극을 주고, 차식이 유슬과 진목에게 영향을 주듯이 우리의 삶에는 모두 '페이지 터너'가 필요하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삶이기에 '스스로 선택한다는 개념'도 결국 타인의 '건강한 선 지켜주기'가 전제되어야 하며 '사랑과 지지와 인정'도 결국 '타인이 주는 몫'이 있는 법이고, '자존감, 자신감, 열등감'이라는 개념도 결국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서툰 실수 속에서 서서히 완성되어 갈 것이다. 함께 이 길을 훈련해 나가게 만들어 주는 좋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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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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