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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참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과학과 신학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이 시대의 몇 안되는 신학자이기 때문에 그는 중요하다. 

 

이 책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9.11 테러 이후에 등장하기 시작한 New Atheism (새로운 무신론) 운동에 대한 설명서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들의 행보가 어떤 측면에서 문제가 많은지를 조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은 일종의 역사서, 인물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서두에서 새로운 무신론의 선두주자들에 대한 인물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리처드 도킨스, 대니얼 데닛,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대표적인 인물들로 소개되어 있는데, 맥그라스는 도킨스의 여러 주장들 중 '밈'의 개념에 대해서 그 실체를 전혀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을 반박하고, 대니얼 데닛의 어설픈 철학에 대해 비판을 시도하며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황당 무개한 주장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반박한다.

(에드워드 윌슨, 칼 세이건 등 다른 주류 유물론적 자연주의자들도 함께 주목해 보자.)

 

'밈'의 '허구성'에 대한 부분은 나도 동의하는 바이고, 대니얼 데닛의 논증이 유신론적 철학자인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처럼 정교해 보이지 않고 고작 몇 페이지 만을 가지고 어설픈 논증을 마무리 짓는 그의 모습에서 당혹스럽다는 점에서도 의견이 같다.

 

 

히친스의 저서는 읽어보진 않았지만 맥그라스가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히친스는 자신의 책에서 일부 핵심 종교 사상에 대한 자신의 분석이 빈약하다면 그것은, 그 사상을 제대로 다룰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사상이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제시하는데 황당하기 그지없다.

 

사실, 새로운 무신론자들의 저서 중에서 제대로 된 철학이 가미된 변증서를 도통 찾기가 어렵다.

 

히친스는 역사적인 지식도 많이 부족해서인지 히틀러의 나치즘에 반대해 죽음으로 저항한 본회퍼 목사의 자세를 두고 "가상하긴 하나 모호한 휴머니즘"에 입각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본회퍼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행했는지에 대한 사전 조사도 안 해 봤음을 반증한다. (참 지성인이 맞는 건가..)

 

그리고 히친스는 미국 인권운동 지도자인 마틴 루터킹이 실질적인 의미에서 기독교인이 아니었다고 말하는데 그 증거는 없다.

 

더 나아가 히친스는 테레사 수녀를 "광신도, 근본주의자, 사기꾼"이라고 혹평하며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녀로 인해 비참해졌다. 그 매춘부가 가야 할 지옥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 이 부분은 히친스가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한다. (OMG)

 

알리스터 맥그라스

 

이 책은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무신론을 기존의 온건한 무신론이나 열렬한 무신론과 구분하는데 왜냐하면 후자의 두 가지는 반드시 반유신론 적인 것은 아닌 반면에 새로운 무신론은 반드시 반유신론이어야 한다.

 

온건 무신론자들은 유신론자들과의 대화에 기꺼이 참여하려 하는데 그 예로 움베르토 에코와 로마 추기경인 카를로 마르티니의 대담을 들 수 있다. (이 둘의 대화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읽어볼 만 하다)

 

새로운 무신론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종교는 괴이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실상 그 증거는 불명확해 보인다.

 

그들의 공격성은 하늘을 찌르기 때문에 맥그라스도 이들로부터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직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때 맥그라스를 지지해 준 건 온건한 무신론자들이었다고 한다. 자신과 다른 관점을 지닌 이들을 향한 일말의 공간도 남겨두지 않고 그저 타자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비참하게 만드는데만 에너지를 쓰는 '새로운 무신론 운동'은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새로운 무신론은 흥왕하고 있을까?

 

이 책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이야기 한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북미에서 100만부 가까이 팔리는 기염을 토했지만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은 북미에서만 3천만부가 팔렸다. (도킨스 책보다 더 많이 팔린 그들의 대표 저서는 없을 테니, 나름 생각해 볼 만한 수치다)

 

그리고 2007년 말 설문 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무신론자로 분명히 규정하는 미국인은 4퍼센트에 불과했다.

 

새로운 무신론의 참신한 면은 종교에 대한 비아냥에 더 심해진 것 뿐이지 비판의 본질이나 내용의 질은 전혀 참신할 게 없다는 점도 이 새로운 운동의 한계점이다.

 

New Atheism 의 주인공들

 

재미있는 일화도 소개되어 있다.

 

노르웨이의 휴머니스트 잡지인 "자유 사상"(Fri Tanke)에 바지니란 사람이 글을 실었는데 그 제목은 "새로운 무신론 운동은 파괴적이다" 였다. 왜냐하면 새로운 무신론 운동은 자신의 긍정적 신념이 아닌 종교에 대한 공격에 더 힘을 쏟으며, 이성에 대한 독점권을 오만하게 주장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보이지만 이 글로 인해 바지니는 RichardDawkin.net의 여러 비평가들에 의해 이단자로 낙인찍혀 화형 당했고, 벌레, 머저리, 든 거라고는 공기 밖에 없는 에어백이라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이성과 증거가 자신들의 신념을 뒤엎는다 하더라도 이를 중시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이 보여줄 만한 행동은 아니지 않는가?

 

이는 마치 종교 근본주의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교조주의 적이고, 편협하고, 앞뒤가 꽉꽉 막혀서 도무지 대화하기가 어렵다.

 

이 책에서 맥그라스는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해 주면서 동시에 신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분명한 비판을 가한다.

 

잠시 맥그라스가 신무신론 운동의 대표주자인 도킨스에 대해 남긴 평가를 들어보자.

 

"도킨스는 무신론의 어두운 면을 너무나 쉽게 부인하는 경향이 있기에, 우리는 그를 믿을 만한 종교 비판자로 간주하기 어렵다. 그가 내세우고 표방하는 바, 엄정한 증거에 입각한 추론을 그의 분석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무신론의 보편적 유익을 열렬하고, 경건하고, 무비판적으로 믿는 나머지 자기 자신은 비판적 검토 과정을 거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책은 마지막 부분에 가면 "종교는 폭력적이다" " 종교는 비이성적이다" "종교는 비과학적이다" 라는 신무신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하나 하나 반박을 해 나가는데, 맥그라스의 진가가 잘 드러나는 깔끔하고 논리적인 반박이 이뤄진다.(따로 정리해서 올릴 수 있으면 올리겠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 재반박이 가능하다면 시도해 보는 것도 무신론 측 진영에서는 시도해 볼 만 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신무신론 운동의 위험성과 문제점들을 잘 알고, 그에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상당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관련된 저서들을 많이 읽어온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깔끔한 정리와 요약, 그리고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맥그라스는 맥스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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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터 맥그라스의 [Mere Theology] 책 Ch4. 를 보면 이 둘의 신학을 비교해 둔 부분이 나온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신학 여정은 내가 신학을 바라보는 여정과 흡사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 13년 전,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 등을 보면서 모든 세상이 다 설명되어질 수 있다는 희열과 기쁨에 가득찼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 죽음을 경험하면서 [헤아려본 슬픔]과 같은 반응이 나오는 순간이 있었다.

 

 

 

존 비버슬루스(John Beversluis)의 논평

 

"[헤아려 본 슬픔]은 고통스러운 책이다. 그것은 이 책이 고통, 죽음, 위태로운 신앙을 다루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루이스가 그동안 반드시 대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 질문, 그의 이전 신앙에 결정적일 정도로 중요했던 그 질문에 대해 반응도 없고, 대답도 없는 상태로 남겨진,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의 신앙을 재발견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이성으로 모든 것이 다 설명될 것 같았던 계몽주의적 세계관이 좀 더 실존주의적이고, 경험론적인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한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루이스가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 보기 전에 썼던 [순전한 기독교]는 내 인생을 바꿔 놓을 만큼 훌륭했지만, 사랑을 경험하고 나서 썼던 [네 가지 사랑]은 나를 전율하게 했고, 루이스가 고통을 합리주의로 적절히 버무려 놨던 [고통의 문제]는 내 신앙을 바꿔 놓을 만큼 훌륭했지만, 그가 고통을 영혼 깊숙한 곳까지 경험하고 나서 썼던 [헤아려본 슬픔]은 나의 영혼을 움직였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이 지닌 역설적인 면모는 쟈크 엘룰의 세계관처럼 이율배반적인 우리들의 삶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굉장한 힘이 숨어 있다.

 

실제로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나면 그와 같이 '설명되지 않는', 그러나 너무도 생생한 '실존적 신학'이 내 삶에 들어오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을 활용한 논리 정연한 '신학'이 부정되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전의 루이스도 이후의 루이스도 모두 존중 받아야 하며 실존과 이성이 함께 어우러져서 궁극적으로 온전한 빛 되신 하나님을 보게 될 날을 고대해야 할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여담이지만 리처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를 보면 칼빈주의적 세계관과 마틴 루터의 이율배반적 세계관이 서로 대비되어 등장한다. 낸시 피어시의 [완전한 진리]를 읽을 때 느끼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전율은 대단하다. 세상을 승리할 것만 같은 십자가의 힘에 전율한다. 그러나, 실존적이고 경험적인 삶의 무대에서 책의 메시지는 쉽사리 발현되지 않는다. 그 때 우리는 마틴 루터 또는 쟈크 엘룰의 메시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율배반적이고, 역설적인 세상 속에서의 삶을 감내해야 하는 우리의 삶은 새로운 세계관을 요구할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배척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되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매꿔줄 것이다.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를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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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터 맥그라스 책을 보다가 둘을 짧게 비교한 부분이 나오네요. 흥미로운 내용이라 발췌해 봅니다.

 

루이스는 허버트와 비슷하게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확고하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루이스가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지배적인 이미지는 조명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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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빛으로 세상을 밟게 비추고 인간의 인지 능력을 바꾸어 주는 태양과 같다.

 

따라서 하나님을 인간 정신에 빛을 비추어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지적인 태양이라고 생각하는(Andrew Walker, 'Scripture, Revelation and Platonism in C.S Lewis'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55(2002), 19~35 page 보기) 루이스의 성향이 상당히 플라톤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비판이 아니다. (루이스의 신학적 지침 중의 하나이자,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발견되는 기독교적 플라톤주의를 알려면, Philip Cary, Augustine's Invention of the Inner Self: The Legacy of a Christian Platonis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63~76rpage 보기)

 

 

 

루이스가 인간이 더 큰 실재에 참여할 때 '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인식 방법을 선호했던 많은 낭만주의 저자들의 선호 성향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움(Sehnsucht)이라는 낭만주의 개념에 대한 관심이 그의 저작 곳곳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루이스의 초기 소네트 "정오의 강렬함"(Noon's Intensity)은 이런 이미지가 특히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그는 하나님을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적 광선"을 비추는 태양으로 묘사한다.

(C.S Lewis, Collected Poems (London: HarperCollins, 1994), 128쪽. 이에 대한 논평을 알고 싶으면 Don W. King, 'Topical Poems: Lewis 'Post-Conversion Poetry' in C.S Lewis : An Examined Life, edited by Bruce L. Edwards (Westport, CT: Praeger, 2007), 292~293쪽 보기)

 

이 소네트에서 조명이 본질 자체를 바꾸는지 아니면 본질에 대한 인간의 인식만 바꾸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루이스의 지배적인 사상은 인간의 관점이 거룩하게 바뀐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루이스의 관점은 허버트의 관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허버트는 실재와 인간 인식의 변화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두 가지 모두 치유하고 고치는 "팅크"(tincutre, 알콜에 혼합하여 약제로 쓰는 물질)로서의 복음에 의존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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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알리스터 맥그라스

출판 IVP

발매 2001.06.14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에서 마크놀이 우려했던 대로 이 시대에는 지성을 격하시키는 이상한 복음주의가 뒤엉켜 있다. 행위가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하고, 지성이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하니 신학 자체의 문제를 파헤치고, 분석하는 책이 나올만도 하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영향력은 톰 라이트에 비견할 만 하다.

 


 

 분야는 다르지만 그가 분명하게 공헌해 주고 있는 위치가 있기 때문에 그의 저작은 소중하다.

 


 

 이 책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성경의 권위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나서 복음주의와 후기 자유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종교 다원주의를 비교, 분석 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주옥과 같은 책이다.

 


 

 그의 다방면의 학식이 빛을 발할 때가 많은데 가령 [성경의 권위]에 대한 파트에서도 '경험' 과 같이 민감한 부분을 어떻게 서술하는지 들어보면 치밀한 균형과 신중함이 느껴진다.

 


 

 대체적으로 C.S Lewis 의 논리도 많이 사용되면서 실존주의적인 접근도 능수능란하게 활용함으로써 쉐퍼의 한계를 극복하기도 한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자유주의자들의 (100% 경험에만 기댄) 기독교 신학을 배격하는데 힘을 실어줬다는 부분도 언급하면서 사유의 풍성함과 논리성을 치밀하게 조직해 나간다.

 


 

 그리고 성경의 권위를 드높이면서 그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언급하는데 이는 신정통주의와 싸우다가 정통신학자들이 버려버린 중요한 성경 해석의 방법론이다.

 


 

 이와 같은 영역에서 힘을 쏟았던 리처드 니버, 칼 바르트를 옹호하면서 맥그라스는 보수 기독교로 하여금 다시 한번 각성하기를 촉구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성경의 네러티브적 특성을 인식하면 성경의 계시를 온전하게 회복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결코 신적 계시의 객관적이고 인지적인 진리에 대한 복음주의의 헌신을 포기하거나 약화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계시에는 객관적이고 인지적인 요소 이상이 있으며, 그러한 주제에 대한 환원주의적 접근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지혜를 권하는 것이다."

 


 

 후반에 맥그라스는 '복음주의'가 다른 어떤 현대의 세계관들에 비해 결코 부끄럽거나 부족하지 않다는 점을 변증하는데 상당히 놀라운 설명이 이어진다.

 


 

 너무 중요한 내용이 많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서 이 내용들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복음주의 지성에 대한 열망이 크고, 세계관에 대한 관심이 많은 이들에겐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약간 어려울 수 있지만 많은 것을 얻어가게 될 것이다.]

 


 

 마지막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무리하자.

 


 

 "이 책은 복음주의의 지적인 적절함과 충족성이 공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복음주의 운동의 내적 기준과 현대 서구 세계의 다른 세계관들과의 관련 속에서 보여 주고자 했다. 더 이상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신념으로 인해 부당하게 주눅이 들거나 그것들을 방어하거나 변명하는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자신들의 신념을 적용하고, 지난 세대에 이루어 놓은 위대한 진보를 견고하게 하고 확대시켜야 한다. 진리를 향한 복음주의의 열정은 복음주의적 지성에 대한 열정이어야 한다. 복음주의는 기독교 교회의 삶을 형성하고 새롭게 하는 데 주된 공헌을 해 왔다. 이제는 기독교 지성의 삶을 형성하고 새롭게 할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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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알리스터 맥그래스

출판 IVP

발매 2014.04.03

 

 

 

 

  이 책은 Mere Theology 를 표방하며, 신학의 강력한 효능과 기능을 삶의 구석구석에 적용해 주는 책이다.

 

 

  신학은 신학자의 전유물이고, 사변적 논쟁에만 쓰인다는 고정관념을 깨 주면서 기독교 신학의 목적, 위치, 타당성을 바르게 세워준다.

 


 

 그와 같은 밑작업을 한 후에 그는 독특한 전개를 해 나가는데 조지 허버트의의 시를 통해서 '신학을 렌즈나 창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얻어낸다.

 


 

 그리고 다음 챕터에서는 십자가, 고난, 신학적 당혹감이라는 제목으로 마틴 루터와 C.S 루이스를 숙고하는데 마틴 루터의 십자가 신학으로 '고난'을 묵상하며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와 [헤아려본 슬픔]을 통해서 '고통'의 실존적 차원까지 서술해낸다.

 


 

 예를 들어 C.S 루이스가 쓴 [고통의 문제]를 읽을 때 그는 이성적으로 빛이 임하는 걸 경험하긴 했찌만 실존적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이후에 [헤아려 본 슬픔]을 읽으면서 그 결핍된 부분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했다고 맥그라스는 말한다.  루이스 스스로도 표면적 인간이 아닌 '깊이 있는 인간'을 다루는 사람으로 변모했던 게 아닌가 싶다.

 


 

 여기까지는 흥미로우면서도 약간 무난하다. [워낙 훌륭한 논의를 많이 해 와서 그렇다]

 


 

 그 이후에 '자연관'에 대한 설명과 함께 part2 의 문화와 관계를 맺는 챕터가 시작되는데 여기부터 맥그라스의 진가가 드러난다.

 


 

 '자연과학' vs '신학'이라는 잘못된 대결구도를 바르게 지적해 주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한 사례를 가지고 설명을 시작하는데, 아마 이런 논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현존하는 유일한 신학자가 아닌가 싶다.

 

 

 

                                   *알리스터 맥그라스*


 

 그리고 창조와 진화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다루고, 뒤에서는 [신 없는 사람들]에서도 언급되었던 '신 무신론 운동'에 대한 설명을 추가적으로 하면서 현재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잘못된 대결 구도를 타파하고자 한다.

 


 

 이 책은 초반에는 참신하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빛나며 약간은 뻔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책에 비하면 상당히 밋밋한 감이 있다), 후반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논의, 그리고 맥그라스가 아니면 해줄 수 없는 논의를 해 줌으로써 그 기능을 다한다.

 


 

 '자연과학과 신앙'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공격적인 신 무신론 운동에 대해 관심이 가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신학을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도 있으니 사실 모든 평신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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