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를 통한 구원을 얻는 체계가 아닌,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삶이 강조됨에도 마태복음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보다 그리스도인의 의가 더 나아야 한다고 써 있다.
이 말의 의미를 달라스 윌라드는 이렇게 풀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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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우리의 소관이나 책임이 아니다. 결과에 필요한 우리 몫의 일, 그것만이 우리의 책임일 뿐이다.
우리의 마음은 화해를 갈망하고 있는가?
우리의 몫을 다했는가?
정직히 그런가?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행위를 의식의 행위 정도로 때우려는 마음을 거부하고 있는가?
형제의 분노가 그 자신의 영혼과 우리의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입히는 해를 인하여 우리는 아파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넘어서 하나님의 길을 온전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굳이 율법적 행동 목록이 주어지지 않아도 그런 마음으로 행할 수 있는 적절한 길을 우리는 반드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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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권영경 교수님의 [위선]이라는 책에서는 은혜를 강조하기 위해 행위를 약화시키거나 은해와 행위가 서로 대비되는 개념인 것처럼 서술하고 가르치는 모든 사조를 거부한다. 성경적인 요소가 많아 보이며 성경을 바르게 독해한 좋은 설명이라 생각한다. 이는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성경 속에서 일관 되게 강조하는 표현들이며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표현들에서 '율법의 행위'는 겉으로 보여지는 할례, 제사 등의 몇 가지 '외현적 활동'에 국한된 내용임이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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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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