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터 맥그라스 책을 보다가 둘을 짧게 비교한 부분이 나오네요. 흥미로운 내용이라 발췌해 봅니다.
루이스는 허버트와 비슷하게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확고하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루이스가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지배적인 이미지는 조명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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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빛으로 세상을 밟게 비추고 인간의 인지 능력을 바꾸어 주는 태양과 같다.
따라서 하나님을 인간 정신에 빛을 비추어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지적인 태양이라고 생각하는(Andrew Walker, 'Scripture, Revelation and Platonism in C.S Lewis'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55(2002), 19~35 page 보기) 루이스의 성향이 상당히 플라톤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비판이 아니다. (루이스의 신학적 지침 중의 하나이자,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발견되는 기독교적 플라톤주의를 알려면, Philip Cary, Augustine's Invention of the Inner Self: The Legacy of a Christian Platonis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63~76rpage 보기)
루이스가 인간이 더 큰 실재에 참여할 때 '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인식 방법을 선호했던 많은 낭만주의 저자들의 선호 성향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움(Sehnsucht)이라는 낭만주의 개념에 대한 관심이 그의 저작 곳곳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루이스의 초기 소네트 "정오의 강렬함"(Noon's Intensity)은 이런 이미지가 특히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그는 하나님을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적 광선"을 비추는 태양으로 묘사한다.
(C.S Lewis, Collected Poems (London: HarperCollins, 1994), 128쪽. 이에 대한 논평을 알고 싶으면 Don W. King, 'Topical Poems: Lewis 'Post-Conversion Poetry' in C.S Lewis : An Examined Life, edited by Bruce L. Edwards (Westport, CT: Praeger, 2007), 292~293쪽 보기)
이 소네트에서 조명이 본질 자체를 바꾸는지 아니면 본질에 대한 인간의 인식만 바꾸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루이스의 지배적인 사상은 인간의 관점이 거룩하게 바뀐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루이스의 관점은 허버트의 관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허버트는 실재와 인간 인식의 변화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두 가지 모두 치유하고 고치는 "팅크"(tincutre, 알콜에 혼합하여 약제로 쓰는 물질)로서의 복음에 의존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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