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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첨예한 요즘 분위기에서 둘 간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책입니다. 과학사에서 잘못 알려진 역사적 진실을 추적해 보기도 하고, 맥그라스 특유의 논리를 바탕으로 섯부른 이분법적 접근이나 굴드 식 NOMA 개념을 거부하는 책입니다. 평소 맥그라스의 저서를 좋아한다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책이 될 것이며 이 책을 입문서로 시작해 개론서들을 찾아 읽으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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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근대에 인류가 세 가지 '자기애적 상처'(narcissistic wound)를 입었고, 각각의 상처는 인간의 자긍심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단언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 퍼옴)​


첫 번째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 있음을 알려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입힌 상처였다.

두 번째 상처는 심지어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음을 입증한 다윈주의였다.

세 번째는 인간이 자신의 한정된 영역에서도 주인이 아님을 밝히는 프로이트 본인이 입힌 상처라고 그는 당당히 밝혔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러한 혁명적 전환은 전자가 가져온 고통과 상처를 가중시키면서 인류의 위치와 중요성에 관한 철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프로이트의 견해가 갖는 종교적 의미는 이 책에서 나중에 다시 조명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 '상처' 중 첫 번째인 코페르니쿠스 혁명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각 시대는 그 시대의 세계관을 뒷밤침하는 일련의 확립된 신념들이 존재한다.

중세도 예외는 아니다. 중세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태양과 다른 천체(달, 행성 등)가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는 믿음이었다. '지구 중심적' 우주관은 자명한 사실로 간주되었다.

성경도 이러한 믿음을 근간으로 해석했다 .많은 성경의 해석에 지구중심적 가정이 적용되었다.

현재 사용 중인 언어 대부분도 지구중심적 세계관을 여전히 반영한다.

예를 들어 현대 영어에서도 '해가 오전 7시 33분에 떠올랐다.'고 말하는데, 여기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

태양계의 지구중심 모델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일상생활에 별 영향을 주지 않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중세 초기에 가장 널리 받아들였던 우주관은 2세기 상반기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eos)가 구상한 것이었다. 그는 <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달과 행성의 운행에 관한 기존의 개념을 집대성하면서 다음 가정에 근거하여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다.

2. 모든 천체는 원을 그리며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

3. 회전은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그 중심 역시 또 다른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형태를 띤다. 본래 히파르코스(Hipparchos)가 주창했던 이 중심론은 '주전원'(epicycle), 즉 원 운동 위에 원 운동이 부여된다는 개념에 근거한다.

행성과 항성의 움직임이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관측되면서 이론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주전원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모순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5세기 말 무렵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루기 힘든 이 모델이 무너지기 일보직전에 있었다. 하지만 무엇으로 대체한단 말인가?

16세기 들어 지구중심 모델은 태양 중심 모델, 즉 태양을 중심에 놓고 지구는 그 주위를 도는 많은 행성 중 하나라고 보는 관점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는 기존 모델과 완전한 결별을 뜻하며, 지난 1000년 간 인류의 실재관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임이 분명하다. 이 사고의 전환을 흔히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 부르며, 이것이 자리잡기까지 세 명의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폴란드 학자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동심원을 그리며 회전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 뿐 아니라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했다.


 

(코페르니쿠스- 퍼옴)


그러므로 항성과 행성이 움직이는 듯 보이는 것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조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모델은 차츰 버거워진 프톨레마이오스 모데렝 비해 단순하고 정밀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그러나 이 모델 역시 모든 관측 데이터를 설명하지는 못했고, 이 이론을 받아들이려면 수정이 필요했다.

덴마크 학자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는 코펜하겐 인근 섬의 관측소에 있으면서 1576년부터 1592년까지 행성 운동에 관한 일련의 정밀 관측을 실시했다.

이 관측 자료는 케플러(Johann Kepler, 1571~1630)가 수정한 태양계 모델의 토대가 되었는데, 그는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2세가 사망한 뒤 브라헤가 보헤미아로 이주할 때까지 브라헤의 조수로 일했다.

(요하네스 케플러)

케플러는 행성인 화성의 운행을 관측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행성이 태양 주위를 원형 궤도를 그리며 돈다고 가정하는 코페르니쿠스 모델로는 실제 관측된 화성의 운행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609년 케플러는 화성 운행의 일반 원칙 두 가지를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

[1] 화성이 타원형 궤도로 회전하며, 이 때 태양은 두 초점 중 하나다

[2] 화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선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면적을 휩쓸고 지나간다.

1619년경 그는 이 두 원칙을 나머지 행성에 확대 적용해 세 번째 원칙을 밝혀냈다.

[3] 행성의 공전 주기(행성이 태양 주위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 간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케플러의 모델은 코페르니쿠스의 개념을 상당히 수정한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획기적인 새 모델은 개념이 정밀하고 단순한데도 행성의 궤도가 원형이라는 잘못된 가정 때문에 관측 데이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흥미롭게도 이 가정은 유클리드 고전 기하학에서 유래한 듯하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리스 고전 철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원은 기하학적으로 완전한 형태지만 타원은 왜곡된 형태였다.  왜 자연이 기형적인 기하학 구조를 사용하겠는가?

-알리스터 맥그라스 [과학과 종교] 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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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 사이의 논쟁]

 

케플러에 대한 오해

 

 

 

책 제목: 과학의 영혼

 

100page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는 처음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따른 중요한 천문학자였다. 케플러 또한 피타고라스 철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의 첫 번째 중요한 저서는 행성의 운행체계가 일련의 3차원적인 기하학적 공식들에 의해 묘사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였다. 비록 나중에 이런 시도를 포기해야 했지만, 이는 숫자와 기하학이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피타고라스적 신념을 케플러가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 주었다.

 

 

 

커니는 케플러가 신적으로 영감을 받은 기하학을 기초로 신이 우주를 창조하였다.”는 사실을 믿었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수학의 정확한 묘사에 대한 그의 열정적인 신뢰는 케플러로 하여금 여러 차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행성의 궤도가 타원형의 궤도라는 사실을 밝혀내도록 만들었다.

 

 

 

코페르니쿠스처럼 케플러도 부분적으로 태양중심적 천문학에 매료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태양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는 태양을 신이 세상을 현존하는 사실을 상징하는 물리적 위치로 생각하였다.

 

그는 태양만이 가장 고귀한 신에 어울리는 것으로, 신은 이를 자신의 물질적 거처로 삼고 기뻐하며 천사와 함께 거한다. 단지 태양만이 그 위용과 능력에 근거해 그 주어진 목적과 의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하며 신의 거처라고 불리기에 합당하다.” 고 보았다.

 

 

 

 

길버트(Gilbert)의 자기학(magnetism)에 관한 저술들에 영향을 받은 케플러는 지구를 거대한 자기장(magnetic field)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력(magnetic attraction)의 개념을 행성체계 전체에 적용했는데, 이를 통해 태양을 거대한 중심 자석(great central magnet)으로 보았다.

 

이는 후대에 뉴턴이 주장한 중력을 미리 내다보는 것이었다. 물리학자 제럴드 홀튼(Gerald Holton)은 케플러의 체계에서 태양은 3가지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 태양은 행성들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수학적 중심부이다.

 

둘째, 태양은 행성들을 그들의 궤도 내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힘이 작용하는 물리적 중심부이다.

 

셋째, 태양은 신의 신전 역할을 담당하는 형이상학적 중심부이다. 홀턴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이 3가지 역할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케플러의 과학적 업적은 그의 형이상학적이며 종교적 입장들과 분리된 채로 이해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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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 사이의 논쟁들]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오해

  1. 책 제목: 과학의 영혼

  2. 저자: 낸시 피어시&찰스 택스턴

    52page~54page

길거리의 평범한 사람에게 기독교가 근대과학의 등장에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한다면, 아마 당신은 그에게서 놀라움과 불신의 반응을 보게 될 것이다.

 

이처럼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인정은 아직 학교로부터 대중문화나 교회 속으로 스며들어가지 못했다. 그리스도인 친구들에게 과학에 대한 기독교의 공헌에 대하여 내가 책을 집필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이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회의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회의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통된 오해들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종교적인 논쟁들은 교회가 과학을 반대한다고 말하며 자주 사실을 과장해 왔다. 특히 앤드류 딕슨 화이트(Andrew Dickson White)개신교 교회의 모든 교단들, 즉 루터란, 칼빈주의자, 성공회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반성경적이라고 매도하는데 경쟁적이었다.”는 전면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사실은 루터가 [탁상담화](Table Talk)에서, 그리고 칼빈이 행한 설교에서 여기 저기 언급하였던 사실을 제외하고는, 종교 개혁자들은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논쟁 자체를 무시하였다. 더군다나 이러한 언급들의 진위여부마저도 역사적으로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루터의 경우, [탁상담화]는 이 담화의 참여자들의 기억에 의해 그 담화가 있은 뒤 몇 년 후에야 기록되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루터가 실제로 코페르니쿠스를 얕잡아 보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한다.

 

화이트는 칼빈의 경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칼빈은 시편93:1을 언급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반대하는데 앞장섰으며, “누가 감히 코페르니쿠스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 위에 올려놓겠는가?”라고 묻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칼빈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으며, 발행된 그의 작품에서 어떤 식으로도 코페르니쿠스를 공격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코페르니쿠스*

 

진실은 신학자들이 코페르니쿠스주의에 답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현대 역사학자들은 흔히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인간의 가치에 대한 기독교적 견해에 치명타를 입혔던 것처럼 기술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인류의 지위를 우주의 중심적 무대라는 고상한 위치에서 강등시켰다고 주장한다. 한 예로 역사학자 존 랜달(John Herman Rendall) [현대 지성의 성립](The Making of Modern Mind)이라는 책에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인류를 우주의 목적이며 그 중심적 존재라는 교만한 위치에서 끌어내려 그를 끝없는 우주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작은 행성계의 자그마한 하나의 점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고 주장했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그리스도인들이 코페르니쿠스주의에 맞서서 자신들이 지닌 안정된 우주론이 무너지지 않도록 저항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문헌들은 이러한 묘사를 거의 지지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채택된 중세의 우주론이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세 우주론에서 우주의 중심이 곧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곳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이는 악마의 장소였다.

 

우주의 중심에 지옥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다음에 지구, 그리고 천체의 순서로 점차적으로 더 고상한 행성들이 자리 잡았다.

 

 

 

사물에 대한 이런 착안을 통해 볼 때, 인류의 중심적 위치는 보완도 아니며 그렇다고 그 위치의 상실 또는 강등(demotion)도 아니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시기에 그의 이론에 대한 일반적인 반대 주장은 그의 이론이 인류를 원래 위치보다 더 높이 올렸다는 것이었다.

 

중세 우주론에서 인간의 의미는 지구의 중심적 위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보여주시는 호의(regard)에 근거한 것이었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인간 가치에 대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위협했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견해에 불과하다. 이 견해는 우리 시대의 고뇌(angst)를 역사 속으로 되돌려 읽고 있는 것이다

 

96page ~99page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1473~1543)의 작품들은 과학혁명의 초기 단계에서 의지할 수 있는 초석과도 같았다. 그의 태양중심설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메우스로부터 주어진 지구 중심적 천문학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렇다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가? 기록에 의하면, 이는 어떤 실험적 자료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플라톤주의에 대한 헌신에서 비롯되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는 동안 코페르니쿠스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커니는 이러한 신플라톤주의와의 만남을 종교적 회심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했다. 신플라톤주의에서는 비물질적인 수학적 개념이 물질세계의 모든 것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플라톤 *

 

 

많은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신의 창조적 능력에 대한 가장 적절한 상징이 태양이라고 믿었는데, 이는 태양의 빛과 따스함이 모든 생명체들로 하여금 지구상에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플라톤주의는 태양신비주의(sun mysticism)와 관련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가르쳤지만, 신플라톤주의자들은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태양의 위치가 마땅히 신적 상징으로서의 위엄과 동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양에 대한 이런 신비주의적 견해가 코페르니쿠스에게 과학적 사고의 문을 열어준 것처럼 보인다. 다음의 인용문에 나타난 그의 사상은 확실히 신플라톤주의적 태양신비주의의 흔적을 담고 있다

 

모든 자리의 한복판에 태양이 왕자에 자리한다. 가장 아름다운 이 신전에서 어떤 위치가 이 발광체로 하여금 이보다 더 훌륭히, 한꺼번에 모두에게 빛을 비출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 그가 등불로, 정신으로, 그리고 우주의 통치자로 불리는 것이 옳다. …. 이제 태양은 왕적 보좌에 앉아서 자기 주위를 맴도는 그의 자녀들인 행성들을 다스린다.

 

같은 인용문에서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가시적 신’(the Visible God)으로 지칭하는 문헌을 인용한다.

 

신플라톤주의가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적 행성체계론에 박차를 가했는지 또는 이것이 그에게 과거의 지구 중심적 체계에 대항하여 자신의 새로운 체계를 지지할 수 있는 논증자료들(당장 사용할 만한)만을 제공했는지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확실히 알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이론에 대한 동시대의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데 있어서 신플라톤주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6세기 전반에 걸쳐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신플라톤주의자들 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이에 대해 분명하면서도 실험적인 반대 주장을 내세웠다. 그들은 지구가 어둡고, 비활동적이며, 무겁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듯이) 움직이지 않는 질량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천상의 별들은 빛의 접촉점이므로 빛과 불로 구성된 물체들이 그 주된 요소들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일상생활의 관찰에 대항해 지구가 실제로 별들과 같은 천상체로서 태양주의를 궤도를 따라 회전한다는 주장은 분명히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 밖에 없었다.

 

 

 

태양 중심론(heliocentric theory)은 상식에 근거한 또 다른 반대에 직면했다.

 

예를 들어 태양 중심론이 맞다면, 공중에 던져진 물체가 지구로 다시 떨어질 때는 처음 던져진 곳과 약간이라도 다른 곳에 착륙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그 물체가 공중에 머무르는 동안 지구가 회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론은 신기하게도 유효한 이론이었다.

 

지구의 회전은 코리올리스 효과(Coriolis forces)를 가져오는데, 이는 푸코의 진자(Foucault pendulum)에 의하여 증명될 수 있다. 덴마크의 저명한 천문학자 타이코 브라헤(Tycho Brahe)는 대포알이 지구의 회전방향과 동일한 방향으로 쏘아 올려질 경우, 이 대포알은 더 멀리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다.(지구의 움직임에서 비롯되는 운동량만큼의 힘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속도가 더해진다.). 또 다른 유효한 주장에 대해서도,, 갈릴레오가 초기 형태의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 해답이 주어지지 않았다. (8장을 참고할 것).

 

또한 반대자들은 만약 지구가 궤도를 따라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면, 하늘에 박힌 별들도 그 궤도의 반대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위치가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 또한 유효한 주장이었지만, 그 차이가 너무 작아서 1838년까지는 관측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주의에 대한 반대는 이처럼 수량적이며 논리적이었는데 반해, 당시 코페르니쿠스주의를 위한 실증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역사학자 홀(A. R. Hall)코페르니쿠스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천상에 대한 사실적인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올바르게 지적했다. 사실, 태양중심설을 지지하는 주장들은 사실적이라기보다는 모두 철학적이었다. 커니는 신플라톤주의적 가정(assumption)에 대해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은 공리적이다. 왜냐하면 이 주장은 그 자체로 적절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는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적 가정을 근거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주장은 또한 동일한 이유로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에 불과했다.”

 

이런 주장들을 넘어 코페르니쿠스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주장은 자신의 체계가 수학적으로 더 간단하다는 것 뿐이었다. 이는 행성의 궤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주전원(epicycle)의 수를 80에서 34로 줄일 수 있었다. 이는 괄목할 만한 성취는 아니었지만, 수학이 자연의 진리에 대한 열쇠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 피타고라스의 추종자들을 비롯한 신플라톤주의자들에게는 호소력 있는 주장이었다.

 

 

실증주의자들의 역사 해석은 모든 과학적 진보를 종교와 신비주의를 극복한 합리성의 승리로 파악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종교와 신비주의는 분명히 코페르니쿠스의 편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천문학 이론을 신플라톤주의의 신비적 교리와 연관시키는 것에 대하여 혐오감을 느끼지 않았고, 그의 많은 추종자들 역시 이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했다.(2장의 조르다노 부르노의 견해를 참고할 것)

 

더군다나 태양중심설에 대한 반대는 단지 교리와 반계몽주의(obscurantism)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이유는 당시 지배적인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였는데, 코페르니쿠스가 신플라톤주의적 철학에 근거한 이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백년 후 갈릴레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태양중심설은 신플라톤주의 전통 바깥에 머물렀던 과학자들에 의해 부인되었고, 뉴턴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태양중심설을 위한 물리적 구조론은 형성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논쟁은 전적으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범주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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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과학 사이의 논쟁들]

 

갈릴레오 논쟁에 대한 오해

 

 

 

책 제목: 과학의 영혼

 

54page ~5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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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개별적 신자들을 분리하게 되면 학문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기독교의 지지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근대 초기의 몇몇 과학자들은 개인적으로는 종교적 신념을 굳게 지킨 반면, 정치적 차원에서는 교회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종교적 탄압에 대한 교과서적 사건이 바로 갈릴레오의 경우이다. 이 사건에 대한 표준적 해설은 제이콥 브로노우스키(Jacob Bronowski) [인간의 등정](The Ascent of Man)이라는 인기 텔레비전 시리즈에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는 갈릴레오를 가톨릭의 종교재판법정(the Inquisition)에 기소된 선과 악 사이의 단순한 대결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역사학자 마틴 루드윅(Martin Rudwick)은 이 시리즈를 과학자 브로노우스키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과학적 승리주의’(scientific triumphalism)의 한 예라고 비난했다. 루드윅은 브로노우스키가 다룬 갈릴레오의 재판은 수집 가능한 역사적 연구 결과를 무시하는 의도적 선택에서 비롯된 모조품(travesty)이었다고 주장한다.

 

 

 

 

 

루드윅이 언급한 역사적 연구 결과란 과학과 종교 사이의 단순한 대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관련된 증거물들을 가리킨다.

 

갈릴레오에 관한 현대 저작들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갈릴레오의 범죄](The Crime of Galileo)라는 책의 저자인 조지오 드산티야나(Giorgio de Santillana)는 갈릴레오 사건이 한 유명한 과학자와 종교적 교리 사이의 대결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역설적으로 교회내 지성인들의 다수파는 갈릴레오를 지지한 반면, 그에 대한 가장 분명한 반대는 세속적 견해, 즉 대학의 철학자들로부터 나왔다고 그는 지적한다.

 

갈릴레오를 로마로 귀한케 해 종교재판법정의 질문에 답하도록 명령했던 교황조차도 한 때 갈릴레오의 지지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사실, 대체적으로 가톨릭교회에서는 과학으로서 갈릴레오의 이론에 대하여 어떤 논쟁도 없었다. 다만 교회의 반론은 갈릴레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위시한 모든 형이상학적, 영적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회적 결과들을 논박했던 것과 관련된다.

 

과학철학자 필립 프랭크(Philipp Frank)가 설명하듯이, 갈릴레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공격한 것이 그렇게 심각하게 다루어졌던 이유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종교적 그리고 도덕적 법률의 형성에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기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자신의 최상의 본질을 충족시키기 위한 윤리적 책무감에 의해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객체(object) 또한 그 이상적 본질, 즉 목적이나 형태를 충족하기 위한 내적 몸부림에 의해 움직이는 유사 유기체(a quasi-organic entity)라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객체는 밀고 당기는 기계적 힘보다는 윤리적 몸부림에 더 가까운 내재적 경향들에 의하여 움직인다.

 

 

 

이런 내재적 경향들 중 하나가 바로 우주에 있어서 자연적 위치를 향하려는 충동(impulse)이다. 즉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불꽃은 위로 올라가고 바위는 아래로 떨어지는데, 그 이유는 모든 객체가 자연적 위치를 향하여 몸부림치는 경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물리적 위치는 고상함의 정도와 관련된 것으로, 우주의 중심은 가장 천한 것이고 천상의 영역은 가장 고상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과학적으로 연구된 물리적 위계질서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위계질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즉 물리적 세계에서의 질서는 인간 사회의 질서와 관련되어 있었다.

 

 

 

성직자들이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과 우주론을 포기하는 것에 저항하였던 이유는 이들이 도덕적이고 사회적 삶의 전체적 비전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연관성이 사라지게 될 경우, 성직자들은 도덕성 자체가 파괴될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 따라서 이들에게 갈릴레오는 그릇되고 위험한 교리를 내세우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메리 헤스(Mary Hesse)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렇게 새롭고 위험한 견해들은 그 당시에 교리적으로 이들을 지지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 없이주창되었다.

 

그리고 당시에 이용 가능한 증거가 이론을 뒷받침하지 않을 때, 이에 대한 저항은 비과학적인 것도 비이성적인 것도 아니었다. 헤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그들(위험한 견해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든 근시안적 견해 때문에 교회의 대표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를 지니게 되었다. 그것은 당시에, 교회 대표자들이 생각하기에, 그들을 지지해 줄 충분한 증거물도 지니지 못한 채 무책임한 공상에 의해 자신들의 세계의 모든 구조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과학철학자 제롬 라베츠(Jerome Ravetz)는 갈릴레오와 로마교회 사이의 대결에 관한 바른 이해는 사회적 요소들을 염두에 두어야 가능하다고 보았다. 가톨릭의 위계질서는 당시 개신교의 도전에 대한 반응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헌신을 재다짐하였다.

 

따라서 갈릴레오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공격은 적군에게 탄환을 제공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게다가 대학과 교회의 연장자들인 기성세대의 엘리트들과 갈릴레오가 소속되었던 실질적 사고를 지닌 신진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생생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 때에 자신의 작품을 라틴어가 아닌 지역어로 발행하기로 한 갈릴레오의 결정은 기성세대 엘리트들을 향한 공격이었으며, 이는 더 넓은 독자층으로 지적 리더십을 옮기기 위한 폭 넓은 전략이었다.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양측 모두 보기 흉한 계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갈릴레오의 세력을 격감시키기 위해 비열한 방법과 인격적 원환을 사용했고, 이에 맞서 갈릴레오는 의도적으로 선동적이며 선전적 글들을 통하여 대항했다.

 

그의 [세계의 두 가지 원리적 체제에 관한 대화](Dialogues Concerning the Two Principal Systems of the World)라는 작품에 심플리시오(Simplicio)라는 바보처럼 행동하는 익살꾼이 등장하는데, 이는 한 때 갈릴레오의 친구이자 지지자이었던 교황을 살짝 위장하면서 풍자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오는 그의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 논쟁에 관한 전형적인 개작(retelling)은 갈릴레오가 교회에 대항하였으므로 그가 공론적 무신론자이거나 적어도 불가지론자(agnostic)였음이 틀림없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 앞에 진실하기 위해서 우리는 갈릴레오가 진정한 가톨릭 신자로서 교회이 종교적 교리 자체를 의심할 의도가 없었고, 단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유래된 과학적 체계를 의심했을 뿐이라는 그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실증주의적 접근은 갈리레오의 견해에 대한 종교적 변호를 단순히 권력에 의해 강요된 편법으로만 인정하고 이를 제외시킨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신자였으며 종교를 세계에 대한 진정한 정보의 근원으로서 과학과 나란히 간주했다는 그 자신의 주장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의 행동은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종교적 전통에 남아있기로 한 갈릴레오의 결정만이 왜 그가 교황을 위시한 모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그렇게 노력하였는가, 그리고 왜 그가 베네치아 공화국으로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였는가에 대한 적절한 해답인 것처럼 보인다고 루드윅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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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 논쟁'은 기존의 관점과 N.T. Wright 등의 새 관점을 같이 살펴보고, 제 3의 대안을 제시한 권영경 교수님의 의견까지 잘 참고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종말론적 유보의 구조를 띱니다.

 

그러므로 구원(의인됨) 의 "첫 열매" 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이제 진입했다는

말입니다. 그 구원(의인됨)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진입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곧 "의인" 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우리의 구원(의인됨) 의 완성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진입한 "의인" 의 상태에 머무른다는 것은 우리의 실존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에부과된 의무를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 모든 가치 판단과 윤리적 선택의 순간마다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오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 ( 즉 "은혜") 로 , 그리고 그것을 "믿음" 으로 "의인됨" 은 윤리적 의무와 분리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의" (즉 "은혜") 로 우리가 "의인" 이 되었으므로 , 우리는 "의인" 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은혜로만" 그리고 "믿음으로만" "의인됨" 의 복음을 강해하고는(롬 1:11 , 갈 1:4) ,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우리의 "믿음으로" "의인"된 우리가 어떻게 "의인" 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힘주어 가르친 것입니다.

(롬 12:15 , 갈5:6).

 

사단의 죄와 죽음의 통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옮겨졌으므로 우리는 마땅히 사단에게 순종해서 살지 말고 , 하나님께 순종하고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이 윤리적 권면의 부분을 여는 첫 마디(롬 12:1) 의 "그러므로" 에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우리의 "믿음으로" "의인" 이 되었기 때문에 ,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이 통치하는 "이 세대" 의 정신과 가치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변하여 좇아야 하며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다른 모든 종교들은 "의를 행하라(명령형) , 그러면 의인이 될 것이다(서술형)" 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너는 의인이다(서술형) , 그러므로 의를행하라(명령형) " 라고 가르칩니다. 개신교가 인간은 자신의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인" 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과 그러기에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인" 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전반부를 잘 표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전반부의 구원의 서술은 후반부의 윤리적 명령을 구조적으로 동반한다는 사실을 망각하여 , 하나님의 "은혜" 를  "싸구려 은혜" (본회퍼 왈) 로 만들고 무효화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 이 되었다는 것은 "그러므로 의인으로 살아야 한다" 는 요구와 함께 , "그러므로 이제 의인으로 살 수 있다" 는 가능성도 포함합니다.

 

우리가 사단의 죄와 죽음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옮겨졌기 때문에 , 우리는 숙명의 힘으로 오는 사단의 죄의 통치를 거부할 수 있고 , 우리의 믿음을 유발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분변하게 하고 그 뜻에 순종케 하는 하님의 영(성령) 에 힘입어 하나님께 올바른 순종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성령의 인도하시고 힘 주심에 따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우리는 "육신의 열매들"(갈 5:19~21) 이 아니라 "의의 열매들" (빌 1:11) 또는 "성령의 열매들"(갈 5:22~23) 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적용하여 우리를 "의인" 되게 하는데 , 이 "은혜" 는 "은사" 로 구체화하고 개별화하여 우리로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게 하는 힘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그의 재판석 앞에서 우리가 "첫 열매" 로 받은 "의인됨" 이 재확인되어야 할 것을 상기시키면서(고전 3:13~15 , 고후 5:10) , 우리가 믿음으로 진입한 "의인" 의 상태에 계속 머무르며 "의의 열매들" 을 맺어감으로써 그 최후의 심판석에서 "흠이 없는" 자들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고전 1:7~8 , 빌 1:9~11) . 이것은 최후의 심판석에서의 우리의 "의인됨" 의 재확인에 대해 우리의 책임을 강력히 상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불의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 꾸짖으면서 , 그들이 계속 죄악을 저지르면서 살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 위협도 합니다.(고전 6:9~10) .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 즉 사단의 통치 아래서 지은 죄에 대해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옮겨져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이 (고전 6:11), 계속 불의를 행하고 죄를 짓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진입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의") 속에 머무르지 않고 , 도리어 그곳에서 튀쳐 나온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부과하는 의무-즉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일을 하지 않고 , 도리어 사단에게 돌아가 그의 뜻을 행한다는 뜻이 아닌가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머무르지 않은 자들 , 곧 하나님 나라 속에 머무르지 않은 자들, 그의 통치를 받지 않은 자들이 최후의 심판 때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즉 어떻게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인간들을 바라보았을 때 이 점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

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동시에 성령으로 계속 우리를 "의인" 의 상태에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신실성(곧 하나님의 "의" 로우심) 을 상기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우리의 구원의 완성에 대해 확신을 주고 자기도 위안을 받습니다(롬8:1~39 , 고전 1:9 , 빌1:6).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의로우심" , "은혜") 에 대한 신뢰에서 오는

"안도함" 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석에 서야 함을 늘 생각하면서 "두렵고 떨림" 의 자세로 "의인" 의 삶을 사는 것 , 바로 이 두 측면들이 서논리적 긴장을 일으키면서 우리에게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건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 간의 논리적 긴장은 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긴장의 요소를 풀어 버리려고 하다보면 결국 한쪽을 경시하게 됩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전자(안도감)가 없어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나 후자(두렵고 떨림)가 없어서 방종하며 "의의 열매" 를 맺않는 것도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정통적인 옛 관점 신학의 견해를 무난하게 잘 따라가는 견해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N.T WRIGHT의 새로운 '칭의'에 대한 논의도 더 다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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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논쟁적인 연구 내용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겐 왜 이런 모성이 느껴지지 않는걸까?' 라는 주제로 고민하는 많은 이들이 한번 쯤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다.

 

당신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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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전했는데도 여전히 모성이 부족한 나쁜 엄마라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모성이 엄마의 완전한 본능이고 엄마가 꼭 지녀야 할 당연한 능력이라고 여기는 탓이 크다.

여자라면,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면 당연히 모성이 충만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모성의 힘으로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고 단정 짓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모성의 힘​은 그렇게 엄청난 것일까?

​학자들 중에는 모성이 본능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사회적 필요에 의해 어머니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모성이 과대 해석됐다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의 철학자 엘리자베스 바댕테르(Elisabeth Badinter)는 저서 [만들어진 모성](L'amour en plus)을 통해 모성의 개념이 근대에 들어오면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사회적, 역사적으로 분석했다.


그녀는 필요에 따라 모성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7,18세기의 유럽 사회에서는 오히려 아이들을 방치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공립 고아원에 자신의 아이를 맡기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1700년대 중반, 파리에 버려진 아이들은 3만 명 정도였는데, 10년 뒤에는 무려 두 배나 늘어 6만 명 이상이 되었다. 갓 태어난 아이 셋 중 하나는 버려지던 때였다.


부유한 계층에서는 어린 나이의 아들과 딸을 기숙학교나 수녀원으로 보냈다.


엄마들은 건강, 미용상의 이유로 모유 수유조차 꺼렸고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일이 많았다. 가난한 하층민에 속한 엄마들은 노동과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돌보고 젖을 물릴 시간조차 부족했다.


그래서 아이를 버리거나 방치해 죽음으로 내몬 경우도 흔했다.

 


하지만 국가나 사회에서는 이를 비난하거나 계몽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사회에 만연한 이러한 세태를 없애자며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론을 담은 [에밀](Emile)을 저술했다. 이 책은 당시 프랑스 엄마들에게 육아 바이블이 되었다.(하지만 루소조차 자녀 다섯 명 모두를 고아원에 맡겼다 -.-)


​이후 프랑스 상류층 여성들은 아이를 유모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아이에게 자신의 젖을 물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직접 아이를 돌보고 수유를 해야 한다고 일깨우는 책들도 쏟아졌다.


이후 유럽 전역에 산업혁명이 전파되면서 국가는 아이들이 곧 미래의 노동력이자 경제적 자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영아 사망률을 낮춰야 했고, 엄마들은 반드시 모유 수유를 하고 아이를 건강하게 잘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전달되었다.


바로 엄마로부터 고귀하고 성스러운 '모성'을 이끌어내 헌신적으로 아이를 돌보도록 유도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바댕테르는 자신의 책에서 "어머니들은 모두 자기 자식에 대해 모성 본능, 혹은 자연발생적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신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모성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과는 달리 모성이 반드시 여성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본능이라기보다 사회적 요구, 윤리나 종교적 가치에 의해 모성이 전면에 내세워진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생득적으로 모성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고, 진화론적 사고에 입각해서 모성의 필연성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며 유신론적 신관에 입각한다면 모성의 자연적 부여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용의 옳고 그름과 상관 없이 '만들어진 모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모성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좋은 엄마가 되는 것에 한계나 선을 미리 긋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모성은 절대 가치로 숭상하고 자신의 모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어쩔 수 없는 형벌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글의 핵심)


-<마더쇼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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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필립 얀시

출판 포이에마

발매 2012.11.22

 

 

 

 

  회의자의 안내자로서의 소명을 감당하며 열린 마음과 따뜻한 글쓰기, 그리고 깔끔한 논리로 무장해 온 필립 얀시가 '진리'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일종의 '변증서'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다양한 '주제'를 폭 넓게 다루다 보니 한 '주제'에 대한 깊이는 좀 부족한 책이지만, 전반적으로 논리를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

 


 

한장 한장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자.

 


 

[1장, 2장] 고통

 

  주님이 우리의 고통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하고 계시며 조만간 확실한 조처를 쥐할 것임을 역설한다.

  고통을 변증하는 다른 서적들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다.

  그리고 C.S Lews 의 [고통의 문제], 도로시 세이어즈 등의 지식을 활용하고, '고통' 속에서 만나는 깊은 하나님을 강조한다.


 

 또한 생리적이고 육체적인 통증, 고통이 '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한 '폴 브랜드 박사'의 논리를 통해 의료 분야에서 고통을 변증하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고통의 중요성'은 C.S Lewis 에서 답을 찾는다.


 

 이와 같이 얀시는 다양한 지식을 적절히 비벼서 우리에게 깔끔하게 전달해 준다.

 

 

 여기서 글을 끝낸다면 상당히 싱겁고 섭섭할 수 있는데 얀시는 브랜드 박사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한 내용을 수록함으로써 이 책만의 색깔을 입힌다. 브랜드 박사가 이야기하는 '고통 변증'은 상당히 참신하고 새롭다. (직접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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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강제 수용소에서 배우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험난한 시절을 보낸 솔제니친의 이야기를 집중 조명하면서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추려낸다.

  자유와 소망, 인간의 도덕성 등에 대한 영역을 탐구하는데 어렵지 않고 생생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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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초도덕의 위기

 


 

  이 챕터에서는 도덕적 상대주의를 경고한다. 옮고/그름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없는 시대가 오다 보니 그저 자기만 좋으면 그만인 세상이 되어감을 설명한다.

 


 

특히 진화심리학의 대두를 강조해서 설명하는데 이 부분은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자.

 


 

"진화심리학은 상대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선을 바라본다. 즉, 선을 영원한 가치라든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이상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의 실용적 기능 정도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리처드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 같은 진화 생물학자들은 테레사 수녀의 선한 행위도 결국 '자기 이득'을 위해 취하는 행동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수 많은 강경한 무신론자들이 신 없이도 도덕성이 유지된다고 주장했으나 사실 제대로 된 변증을 들어본 적은 없다.

 


 

  얀시 또한 '신' 없이 그와 같은 도덕성은 나타날 수 없음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눠준다.

 


 

"윌 듀런트, 아리엘 듀런트 부부는 "우리 시대 이전까지는 역사를 통틀어 사회가 신앙의 도움 없이 도덕적 생명력을 유지해낸 전례가 없는게 사실'이라면서, 예언적인 논평을 덧붙였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이슈는 공산주의와 개인주의, 유럽과 미국, 더 나아가 동양과 서양의 대립이 아니라, 과연 인간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살아보겠다고 덤벼드는 문명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바츨라프 하벨은 위기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서 인간은 항상 만물, 특히 자신에 관해 설명할 수 있게 해주던 일종의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좌표 시스템을 상실했다. 상대적이고 제각각인 좌표에 맞추다 보니 인간의 세계와 인격은 차츰 제각기 따로 노는 쪼가리들로 산산이 부서져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더 나아가 이러한 크리스천 윤리관 없이 어떻게 '결혼'이 유지될 만한 정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느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도덕적 상대주의 토양 속에서 페미니스트 사상가들 중 일부는 자아가 희미해지고, 구시대적인 관습에 사로잡힌 여성상을 타파하기 위해선 혼외정사를 강력히 추천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성의 침묵>을 쓴 델마 헤인의 주장)

 


 

  바버라 에런라이크도 <타임> 지에 기고한 글에서 "서로 호감을 품고 있으며 상호 합의한 성인들 사이에서 섹스는 마땅히 놀이의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 뿐이다" 라고 이야기 하며, 결혼 윤리의 붕괴를 조장했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어느 중산층 부부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부모를 돌보기가 귀찮아서 방치했다든지, 껄렁거리는 아이들이 다섯 살배기 꼬마를 고층건물에서 창밖으로 밀어버렸다든지, 열 살짜리 여자아이가 복도 한귀퉁이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든지, 인생을 즐기는 데 거추장스럽다며 엄마가 두 아이를 물에 빠트려 죽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너나없이 분노에 치를 떤다. 왜 그런가? 윤리가 본질적으로 제각기 알아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정말 믿는다면 도대체 무얼 근거로 그처럼 맹렬히 분개하는가? 그런 범죄를 저지른 파렴치범들은 한 점 거리낌이 없었다. 히틀러의 나치 친위대원들이 유대인들을 학살하면서 눈곱만큼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나 매한가지다. 도덕성이란 것이 개인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누가 그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무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 이 말에 대한 제대로 된 반박을 듣고 싶다.

 


 

  그리고 일부 근본주의자들과 제대로 정신 못 차린 기독교 역사 속에서나 노예제도가 기독교 내에 수용되었지, 결국 노예제도를 종식시킨 힘, 여성참정권 운동, 인권 운동, 시민권운동을 이끌었던 것도 '기독교'였다.

 


 

 신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가 윤리를 파괴시켰다는 건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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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진화 심리학은 믿을 만한가?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참신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얀시는 진화 심리학은 방자하기 짝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DNA에 기록된 것 외에 다른 목적을 지니지 않으며 유전자의 지배를 받고 있는 하찮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진화 심리학은 주장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도킨스, 대니얼 데닛 등이 등장하여서 새와, 벌, 침팬지에 관한 생생한 설명으로 혼을 빼놓고, 구애행위, 바람기, 모성본능, 가십, 사회조직 등을 멋들어지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늘상 제기되는 문제이지만 '진리 개념 자체'가 자연선택의 산물이 되어버리는데 무엇을 근거로 우리는 '진화 심리학의 글'이 '진리'라고 믿을 수 있을까? (엘리자베스 엔서컴이 C.S Lewis 와 이 부분에 대해 철학적 논의를 했던 걸로 아는데, 더 깊은 논의를 시도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얀시는 4가지 점에서 진화 심리학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1. 증명하거나 오류를 입증할 수 없는 두루뭉실한 원리를 표현만 바꿔 반복적으로 내세워가며 윤리적 문제들을 설명한다.

 

  그들은 이기적 유전자라는 한 가지 원리에 기대어 인간의 모든 행동을 해석한다. 그러다 보니 게이나 불임부부처런 유전자를 영원히 전하지 않는 이들의 행동 해석을 해야 한다는 난제에 봉착하기도 하고 영원한 순결을 서약한 마더 테레사 등의 행동을 서술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도 어찌저찌 그들이 설명을 시도하긴 한다).


 

  결국 이런 단일화된, 단순화된 해석은 우리의 모든 행동을 다 '이기적 유전자의 소산'으로 보게 만듦으로써 우리를 유전자에 조종되는 기계로 전락시켜 버린다.

 


 

2. 도덕성은 온전히 인간의 가장 내밀한 원천, 곧 유전자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대중들에게 진화 심리학을 능숙하게 잘 설명하는 로버트 라이트는 이기적 유전자 이론이 참이라는 근거로 '성욕'을 내세우는데 성적인 욕구야말로 마치 '인간이 많은 자손을 원하며 어떻게 해야 그 뜻을 이룰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자연의 방법이라고 그는 이야기 한다.


 

그런 논리대로 따라가다 보니 그는 일부다처제를 조심스럽게 인정하는 말을 한다. (남자의 성적인 욕구가 결혼 후에도 제어되지 않는다면 그걸 왜 한 명의 여자에게 국한시켜 두느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진화 심리학 논리대로라면 '폭력'도 용인이 된다.

 

 

  <악마같은 남성>에서 책의 저자는 "남성은 기질적으로 폭력을 잘 쓰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쉬 멈추기 어렵다" 라고 말하는데 이런 추론의 근거도 결국 인간의 가장 가까운 유전자 친구인 침팬지 수컷들이 동료를 죽이고, 강간하고, 지배하고, 짝을 두들겨 패는 것을 통해 유추를 한 것이다.


 

  C.S Lewis 가 [인간 폐지]에서 말했던 것처럼, 처음에 가닥을 잘못 잡으면 뒤로 갈수록 오류는 점점 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라이얼 왓슨이라는 자가 두 아기를 자동차에  태운 채로 호수에 밀어 넣은 수전 스미스를 변호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이러한 사레들이 사회 안정과 생태적 균형에 기여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죄악의 표출로 해석할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심사를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적합한 상태를 이루는 지점을 두고 벌이는 양측의 갈등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러한 차이를 조율하기 위해선 건전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진화론적 관점에 입각한 증거를 총동원해서 계산을 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모든 잔학한 행위를 다 유전적 행동이라는 논리적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하다 보니, 제대로 된 도덕 체계가 세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객관적 진리가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3. 자연은 도덕성에 관해 엇갈린 메시지를 준다.

 


 

  영장류를 보면 연민, 공감, 정의 같은 덕목들의 초기 형태를 알 수 있고 목숨을 걸고 상처 입은 동료를 구해내는 고래와 돌고래, 누군가 다치면 달려가서 돕는 침팬지, 죽은 친구의 곁을 떠나지 않는 코끼리 등을 보면서 사람들은 '윤리관'의 기원을 찾으려고 하는데, 자연은 그렇게 일관되지 않다. 얀시의 반박을 들어 보자.

 


 

"그렇다면 여성들은 자연을 본받아 사마귀처럼 짝짓기를 마친 수놈을 게걸스럽게 뜯어먹어야 하는 걸까? 보노보 침팬지가 그러하듯, 이웃들끼리 상대를 가리지 않고 재빨리 성관계를 가져서 분쟁의 소지를 없애야 하는 걸까? 모시밑들이처럼 남자들도 몰래 숨어서 기다리다가 가까이 다가오는 상대를 힘으로 취해야 하는 걸까?"

 

 


"얼룩다람쥐는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 새끼를 잡아 먹는다. 청둥오리는 동료를 집단 강간하고 물에 빠트려 죽인다. 기생벌의 애벌레는 움직이지 못하는 먹잇감을 안에서 밖으로 맹렬하게 갉아먹는다. 아프리카 시클리드는 동족의 눈알을 파먹는 걸 좋아한다. 하이에나는 태어난 지 한 시간 뒤면, 힘이 더 센 새끼가 한배에서 난 형제와 싸워 숨통을 끊어 놓는다."

 


 

이런 식의 '자연의 예시'는 끝도 없이 근거를 댈 수 있다.

 


 

4. 자연에 토대를 둔 윤리는 대규모 악용에 취약하다.

 


 

  잘못된 생물학적 논리인 우생학이 2차 세계 대전에서 미친 영향력은 분명히 그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식의 논의는 분명 잘못된 '철학, 세계관'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 part 2 로 넘어가면 '프란시스 쉐퍼'를 만나 인터뷰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프란시스 쉐퍼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사서 읽어보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쉐퍼의 인터뷰를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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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프란시스 쉐퍼의유산

 


 

  쉐퍼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의 이론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해 주는데 쉐퍼가 비판받던 포인트가 지적되어 있어서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쉐퍼 박사가 바르트나 키에르케고르처럼 저마다 좋아하는 인물들을 콘크리트 장벽 너머로 집어던져버릴 때마다 크리스천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안절부절 온몸을 꼼지락거리기 일쑤였다. 잭 로저스가 지적하듯, "쉐퍼는 루소와 칸트, 헤겔과 키에르케고르를 한데 묶어 처분해 버린다.... 그때마다 사실상 똑같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이들조차도 박사가 특정한 철학자를 터무니없이 희화화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나머지 상대편에 서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자신만만하고 폭넓은 주장을 펼친 탓에 쉐퍼에게는 호평과 악평이 동시에 몰렸다."

 


 

  내가 바라보는 쉐퍼도 한번은 반드시 거쳐갈 만한 멋진 신학자이고, 그의 방법론이나 자세를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게 더 유익할 때가 많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는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이 고상한 영적 세계의 일이 아니라 삶의 영역 전반을 아우르는 사건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 공헌도가 크다. (그의 세계관 책 말고, 설교집도 굉장히 은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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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T.S 엘리엇에게 한 챕터를 투자하는데, 그의 진면목에 대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다양한 활동을 했으나 주로 '시'를 통해서 많은 영향력을 미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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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선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다.


 

 NGO 에서 뛰는 친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챕터다.

 

 


 

 그 뒷 부분 부터는 '복음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예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주며  좀 더 실천적인 측면에서 '진리'를 탐색하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약간 두서가 없을 수도 있고, 산만한 경향이 있지만 각 챕터가 주는 교훈들이 상당하니 기회만 되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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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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