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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하버드 의대 생리학과장인 월터 캐넌이 다윈의 '경보 반응'을 설명하기 위해 '싸움 또는 도주'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캐넌은 싸움 또는 도주 반응이 활성화 될 때 혈액의 이동에 관해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기술하기도 했다.

 

  이런 때에는 말초 혈관이 수축되어 혈액이 사지 쪽에서 골격근 쪽으로 이동해서 싸우거나 달아나기에 더 적절한 상태가 된다. (피부에서 피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겁에 질린 사람은 얼굴이 하얘진다.)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숨이 더 가쁘고 깊어진다.

 

  간에서는 Glucose 를 더 많이 내놓아서 여러 근육과 기관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눈동자가 커지고 청각이 더 예민해져서 상황을 잘 포착할 수 있게 된다.

 

  피가 소화관에서 빠져나가고 소화 과정이 멈춘다.

 

  침이 적게 나오고(그래서 불안할 때에는 입이 마르는 느낌이 든다.), 대변이나 소변을 누거나 구토를 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때가 많다. (필요 없는 물질을 방출하면 몸이 소화보다 더 절실한 생존 욕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1915년에 나온 [통증, 굶주림, 공포, 분노에 따른 몸의 변화]에서 캐넌은 정서의 경험이 몸에 구체적으로 어떤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지 간단한 사례 몇 개를 보여주었다.

 

  캐넌은 대학생 아홉 명을 대상으로 어려운 시험을 본 뒤와 쉬운 시험을 본 뒤에 각각 소변을 검사했다.

 

  어려운 시험 뒤에는 아홉 명 가운데 네 명의 소변에서 당이 나왔다.

 

  쉬운 시험 뒤에는 한 명의 소변에서만 당이 검출됐다.

 

  다른 실험에서는 하버드 풋볼팀이 1913년 "결승전이자 아주 짜릿했던 승부"를 마친 뒤 선수들을 대상으로 소변을 검사했는데 스물다섯 개 샘플 가운데 열두 개에서 당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기절하게 만드는 생리적 반응은 싸움 또는 도주를 하도록 준비시키는 반응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적응에 따른 결과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피가 흐르는 상처를 입었을 때 혈압을 급격히 떨어뜨리면 혈액 손실이 적다.

 

  또 동물이 기절하면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가장하게 되는데 이게 어떤 상황에서는 목숨 보전에 도움이 된다.

 

  싸움 또는 도주 반응이 적당한 때, 실제로 물리적 위험이 닥쳤을 때에 일어난다면 생존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런데 적당하지 않은 때에 반응이 일어나면 어떨까?

 

  겁낼 만한 대상이 없는데 생리적으로 공포 반응이 일어나거나 위협의 크기에 비해 큰 반응이 일어난다면 병리적 불안이 될 수 있다.

 

  진화 과정에서 발달한 충동이 잘못된 길로 벗어난 결과다.

 


 

..................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에서 -

 

 

 

 

 

※ 모든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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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적인 신경증의 개념을 창시했다 할 수 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조차 연구 과정에서 계속해서 불안에 대해 스스로 모순되는 말들을 했다. 불안은 프로이트가 정신병리학 이론을 펼칠 때 기본 초석이 된 개념이었는데도 말이다.

 

  프로이트는 초기에는 성적 충동이 승화되어 불안이 일어난다고 했다.

(억압된 libido 가 "와인이 식초가 되듯" 불안으로 바뀐다고 했다.)

 

  나중에는 불안이 무의식의 갈등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말년작인 [불안의 문제]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여전히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니 거의 수치스럽기조차 한 일이다."

 

불안의 수호성인인 프로이트조차 개념을 정의하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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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우리를 싸울 것이냐 도망칠 것이냐의 충동에 지배되는 '파충류의 뇌'를 가진 원시적 존재로 만들지만, 한편 우리를 단순한 동물 이상으로 만드는 것도 불안이다.

 

키에르케고르는 1844년에 썼다.

 

"사람이 짐승이거나 천사였다면 불안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짐승이며 동시에 천사이기 때문에 불안을 느낄 수 있고, 불안이 클수록 더 위대한 사람이다."

 

미래를 걱정하는 능력은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과 하나로 이어진다.

 

또 미래에 대한 계획이 (과거에 대한 기억과 함께) 문화를 이루게 하고 사람과 짐승을 구분 짓는다.

 

키에르케고르처럼 프로이트도 가장 큰 불안을 일으키는 위협은 주변 세계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고 했다.

 

우리가 내리는 실존적 선택을 확신하지 못하고 죽음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두려움을 마주하고, 정체성 붕괴의 위험을 무릅쓸 때 정신이 확장되고 자아가 충족된다고 했다.

 

"불안을 전혀 모르거나 혹은 불안에 파묻혀서 파멸하지 않으려면 누구나 반드시 불안에 대해 알아가는 모험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다.

 

"따라서 적당히 불안해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을 배운 셈이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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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정신약리학의 정신적 선조는 그보다도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4세기에 병리적 불안은 생물학적, 의학적 문제라고 규정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이렇게 썼다.

 

  "[정신병이 있는 사람의] 머리를 갈라 보면 뇌에 습기가 많고 땀으로 가득하고 역한 냄새가 난다."

 

  히포크라테스는 '체액'이 광기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담즙이 뇌로 갑자기 몰려가면 불안이 일어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히포크라테스의 뒤를 이어 담즙의 온도에 중대한 비중을 두었다. 담즙이 따뜻하면 온화하며 열정적이고 담즙이 차가우면 불안하고 겁이 많다.)

 

  히포크라테스는 불안 등 정신장애는 체액이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면 나을 수 있는 의학적, 생물학적 문제라고 봤다.

 

  그러나 플라톤과 그 추종자들은 정신세계는 생리학과 구분되는 자율성을 지닌다고 생각하여 불안이나 우울이 신체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에 반대했다.

 

  어느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정신병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린애 이야기처럼 허황하다."​ 고 했다. 플라톤은 사소한 심리적 문제는 의사가 치료할 수 있지만(정서적 문제가 신체를 통해 나타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깊은 곳에 근원이 있는 정서적 문제는 오직 철학자들만 치유할 수 있다고 했다. 불안 등의 정신적 문제는 생리적 불균형이 아니라 영혼의 부조화에서 오며 여기에서 회복하려면 깊은 자아성찰, 자기통제, 철학을 따르는 삶이 필요하다.

 

  플라톤은 "어떤 사람의 몸과 마음이 대체로 건강한 상태라면 배관공을 불러 집수리를 하듯 의사를 불러 사소한 질환을 고칠 수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 구조가 망가졌다면 의사는 쓸모가 없다."고 했다.

 


 

  따라서 영혼을 치료하는 데 적절한 방법은 철학 뿐이다.

 


 

  히포크라테스는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저 철학자들이 자연과학에 대해 쓴 글들은 미술과 무관한 만큼 의학과도 무관하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다.

 


 

  병적 불안은 히포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현대 약학자들의 생각처럼 의학적 질환인가?

 

 


  아니면 플라톤과 스피노자, 인지행동 치료사들 생각처럼 철학적 문제인가?

 

 


  프로이트와 그 추종자들이 생각하듯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성적 억압에서 비롯된 심리적인 문제인가?

 

 


혹은 쇠렌 키에르케고르와 실존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정신적인 병인가?

 

 


  아니면 W.H 오든, 데이비드 리스먼(미국 사회학자, 교육자로 [고독한 군중] 등의 저서를 남김), 에리히 프롬, 알베르 카뮈, 또 무수히 많은 현대 사상가들이 선언했듯 문화적인 병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 구조의 한 기능인 것일까?

 


 

  사실을 말하자면 불안은 생물학적 기능인 동시에 철학적인 기능이기도 하고, 육체와 정신, 본능과 이성, 개성과 문화 모두와 관련 있다. 우리는 불안을 정신적, 심리적으로 경험하지만, 분자나 생리학적 층위에서도 불안을 측정할 수 있다.

 


 

  불안은 유전에 의해 만들어지는 동시에 양육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심리적 현상이면서 사회적 현상이다.

 

 


  컴퓨터 용어로 말하면 하드웨어의 문제(배선이 엉망이다)이면서 소프트웨어의 문제(논리적 오류가 있는 프로그램을 돌려서 불안한 생각을 일으킨다.)이기도 하다.

 


 

 기질은 어느 하나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위험 유전자라든가 어린 시절의 상처 같은 한 가지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스피노자와 두드러지게 침착한 성품이 본인의 철학 덕분인지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스피노자가 유전적으로 자율신경 각성 정도가 낮기 때문에 고요한 철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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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지행동 치료의 원조를 찾자면 17세기 네델란드의 유대인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스피노자는 불안은 논리적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스피노자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을 두려워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인지행동 치료사들이 말하는 '잘못된 인식'이라는 개념 (통제할 수 없는 일에는 두려움을 품을 이유가 없다. 두려움이 아무런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다)을 300년도 더 전에 제시한 것이다.

 

  스피노자의 이런 생각이 본인한테는 통했던 모양이다.

 

  전기 작가들은 스피노자가 두드러지게 침착한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스피노자로부터 16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도 잘못된 인식에 대해 같은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갖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 한다."

 

  무려 1세기에 쓴 글이다.

 

  에픽테토스는 불안의 뿌리는 생물학적 신체가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고 생각했다.

 

  불안을 가라앉히려면 "그릇된 인식을 교정"해야 한다고 봤다. (인지행동 치료사들도 똑같이 생각한다.)

 

  사실 스토아 학파는 진정한 인지행동 치료의 창시자라 할 수 있다. 에픽테토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세네카는 이렇게 썼다.

 

  "우리에게 해를 가하는 것보다는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게 훨씬 더 많고 우리는 현실의 고통보다 불안의 고통을 훨씬 더 많이 겪는다."

 

  1950년대 인지행동 치료의 공식 창시자인 애런 벡이 한 말을 2000년 전에 이미 똑같이 한 것이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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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에 대한 막연한 근심은 대뇌피질 전두엽(Frontal lobe)의 과잉 활성화로 나타난다.

 

 

 

 

 

 

  일부 사람들이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 느끼는 심한 불안이나 아주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느끼는 불안은 뇌의 전대상회라고 하는 부분의 과잉 활성화로 나타난다.

 

  한편 강박적 불안은 뇌 스캔으로 들여다보면 전두엽과 기저핵 안에 있는 하부 중추를 연결하는 회로에 교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1980년대 신경학자 조지프 르두의 선구적 연구 덕에 공포와 관련된 정서와 행동은 편도(amygdala)라는 기관에서 만들어 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여기에서 처리된다는 것이 이제 잘 알려져 있다.

 

  편도는 뇌 아래쪽에 있는 아몬드 모양의 기관 인데 지난 15년 동안 불안에 관한 신경학 연구 대부분이 이 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프로이트나 키에르케고르는 정확히 몰랐지만 지금 우리는 세로토닌, 도파민, GABA, NE, Neuropeptide Y 등 여러 신경전달물질이 불안을 줄이거나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안다.

 

  또 불안에는 강력한 유전적 요인이 있다는 것도 안다. 구체적으로 어떤 요인인지도 이제 알아나가기 시작했다.

 

  수백 편의 연구 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하버드 대학교 연구자들이 2002년에 어떤 유전자를 집어냈고 언론에서 "우디 앨런 유전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유전자가 편도 등 공포 관련 행동을 관장하는 신경 회로 중요 부분에서 특정 뉴런 집단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연구자들이 이런 '후보 유전자' 여러 개를 목표로 두고 접근하면서 특정 유전자 변이와 특정 불안장애 사이의 통계적 상관관계를 살피고 이 관계를 '중재'하는 화학적, 신경해부학적 매커니즘을 탐구하고 있다. 유전적 성향이 어떻게 하여 실제로 불안한 정서나 장애로 발현되는지를 정확히 밝히는 게 목표다. ​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장 토머스 인셀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불안을 정서로 보든 장애의 하나로 보든 이런 연구들을 통해 분자, 세포, 기관계에 대한 이해가 정서와 행동의 이해로 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흥미롭다. 마침내 유전자와 세포와 뇌, 신경계 사이의 연관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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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30년 전만 해도 '불안'이라는 병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1950년 정신분석학자 롤로 메이는 [불안의 의미]라는 책에서 자기 이전에 불안을 책 한 권 분량으로 다룬 사람은 쇠렌 키에르케고르와 지그문트 프로이트 두 사람밖에 없다고 했다.

 

  1927년 <심리학 초록>에 실린 목록을 보면 불안을 다룬 학술 논문은 세 편이 전부다. 1941년에도 열네 편 뿐이었다. 1950년이 되어도 서른일곱 편이 전부다. 불안이라는 주제 하나만을 다루는 학회가 처음으로 열린 때가 1949년 6월이었다.

 

  1980년 불안을 치료하는 약물이 개발되어 시장에 나왔을 때에야 비로소 불안 장애가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 3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편람에 프로이트 식 '신경증'이라고 되어 있었다.

 

  치료가 진단을 앞선 것이다.

 

 


  그러니까 불안 치료약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불안이 진단 범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해마다 불안을 다룬 논문이 수천 편은 나온다. 불안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지도 여럿이다. 무수한 연구를 통해 불안의 원인과 치료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더 크게 정신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이 계속 드러나고 밝혀진다.

 


 

  정신과 육체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유전자와 행동, 분자와 정서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등에 대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 MRI) 기술을 이용해서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여러 정서를 뇌의 특정 부위와 연결할 수 있고, 또 뇌 기능에 미치는 영향이 어떻게 다른지 눈으로 확인하여 불안을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도 있다.

 

 

 

 

-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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