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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철학은 모든 이론적 오만을 박탈당하는데, 그 이유는 철학이 어림짐작과 오류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이 정도만 되어도 철학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는 셈이 될 것이다- 철학의 의도 자체가 무효화되기 때문이다.

 

"철학 저술들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명제와 질문들은 거짓이 아니라 무의미한 것(absurdes) 이다." ([논고], 4,003)

 

반철학의 전형적인 특징은(철학자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 자가 전시대나 동시대 사람들을 반박할 때와는 달리) 철학적인 논제들을 논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런 식의 논의를 하려면 반철학이 철학의 규범들(예를 들어 참과 거짓의 규범들)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철학자가 의도하는 것은 그런 철학적 욕망을 통째로 방황과 유해한 것의 영역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질병의 은유는 이러한 반철학적 의도에서 좀처럼 빠지지 않는 주제이며, 확실히 비트겐슈타인의 "무의미한 것"이라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무의미"라는 말이 "의미의 결여"(depourvu de sens)를 의미하는 한, 심지어 철학은 사유가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실제로 사유의 정의란 바로 이런 것이다. 

 

"사유란 의미가 부여된 명제이다."([논고], 4)

 

비트겐슈타인

 

따라서 철학은 비사유(non-pensee)이다. 심지어 -이는 미묘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사안인데- 철학은 말할 수 없는 실재를 포착해 내기 위해 의미가 부여된 명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긍정적인 비사유조차 아니다.

 

철학은 퇴행적이며 병적인 비사유인데, 왜냐하면 철학은 그 자체의 무의미함(absurdite)을 명제와 이론의 영역 안에 제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철학적 질병은 무의미가 그 자체를 의미로 드러낼 때, 비사유가 그 자체를 사유로 상상할 때 발생한다.

 

따라서 우리는 철학을 마치 거짓된 사유인 양 논박하는 것이 아닐, 오직 사유를 위해 정해진 규약들(명제들과 이론들)에 부당하게(absuredement) 자기 자신을 기입해 넣는 가장 중대한 과오로, 즉 비사유의 과오로 판결하고 단죄해야 한다. 

 

철학은 긍정적인 비사유의 궁극적으로 탁월한 존엄성(의미의 장벽을 뛰어넘는 행위의 존엄성)의 견지에서 볼 때 유죄인 것이다.

 

-[반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알랭 바디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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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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