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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철학의 본질은 명제와 이론이라는 병적인 거짓 외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행위의 영역에 있다는 선언은 비트겐슈타인이 [논고] 4.112에서 주장하는 바인데, 그로 인해 무의미한 전래의 철학과 자신의 반철학 사이에 모호한 기류가 감돌게 된다.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의 욕망을 과학의 활동과 관련 지을 경우 이런 주장의 전반적인 가치는 분명해진다.
누구나 철학은 궁극적인 목적에, 더 높은 무엇에,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어떤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론적 활동, 이를테면 명제의 형식을 취하는 활동(의미가 부여된 명제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참된 명제, 즉 "참된 명제들의 전체는 자연과학 전체를 형성한다"([논고],4.11]라는 진술에서 언급되는 과학)은 이 모든 것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는 실망스러운 일일지 모르지만 특히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실증주의자의 모습을, 혹은 심지어 분석철학자나 합리주의자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에게), "명제는 더 높은(eminent) 어떤 것도 표현할 수 없다" ([논고], 6.42)라는 점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이는 다음의 구절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우리는 설령 모든 가능한 과학적 질문이 답을 찾는다 하더라도 삶의 문제들은 조금도 손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는다고 느낀다." ([논고], 6.52) 그 자체의 실존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일반적인 열망 가운데, 철학은 "삶의 문제들"에 전념하며 모든 과학적, 이론적 형상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철학은 명제와 의미의 권위에서 벗어나며 동시에 행위의 형태에 전념한다.
간단히 말해서, 그런 행위에는 두 가지 유형이 실존할 것이다.
[1] 하나는 비사유를 강제로 이론적 명제에 굴복시키려 하기에 하위 과학적(과학 아래에 있는)(infra-scientifique)이자 무의미한 유형으로, 이는 진정한 의미의 철학적 질병이다.
[2] 다른 하나는 상위 과학적인 (과학 위에 있는)(supra-scientifique)유형이며, 이는 실재를 "건드리는" 것으로서의 비사유를 침묵 속에 단언한다.
이것이 바로 반철학의 전리품인 진정한 "철학"이다.
-[반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알랭 바디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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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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