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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의 비범함을 느낄 때가 많다.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의 주변에서 비사유로 인해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을 얼마나 많이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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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에 대한 아렌트의 진단은 악인에 대한 기존 상식을 부숴 버린다.

 

아이히만은 악인이 아니라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이다. 잘못의 원천은 바로 생각의 무능력이다.

 

가히 충격적이다. 수백, 수천만의 양민을 가혹한 죽음의 땅으로 내몬 살인 기술자가 정상적인 인간이라니.

 

그가 저지른 악행의 원천을 생각하는 능력의 부족에서 찾다니, 지극히 평범한, 그래서 내 이웃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나 친구일 수도 있고, 어쩌면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는 그런 인간이 아이히만이라니.

 

아렌트의 진단과 해명을 들어 보자.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106쪽)

(기본적으로 역지사지, 타인에 대한 감정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그들은 공부하지 않고, 읽지 않고, 생각하지 않은 자들이다....사용하는 언어도 빈약한 경우가 많다. 이건 가정에서도, 친구 관계에서도, 두루두루 적용이 가능하다.)

 

아렌트가 관찰한 아이히만은 어휘력이 빈약했다. 그가 사용한 어휘는 나치의 선전 문구나 관공서 공문의 상투적 언어를 벗어나지 않았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어휘까지가 나의 세계다. 자신의 언어 세계가 궁색하기에 그는 타인의 세계를 감히 상상하지 못했고, 따라서 타인의 아픔이나 슬픔에 공감하기 어려웠던 거다.

 

한 사람의 사고력은 그의 어휘력으로 가늠할 수 있다. 가용 가능한 단어가 빈약할수록 그는 제 생각과 감정을 설명할 수 없고, 역으로 그런 언어가 부족할수록 그의 생각과 감정도 초라할 수 밖에 없다.

 

그가 문장이 아닌 단어로 말하는 것, 논리적으로 말을 구사하지 못하는 것에서 사유의 가난함이 드러난다.

 

그런데 언어와 사고가 저리도 중요한 것일까?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인간의 인간됨은 행위와 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과 동물은 삶의 생존을 위한 노동이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그리 다르지 않다.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는 것은 말과 행위다. 그것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말과 행위를 떠나서 인간은 인간일 수 없다.

 

그렇지만 저 인용구가 드러내는 생각은 통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생각과는 좀 다르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아무리 의심을 해도 의심할 수 없는 단 하나가 있다. 바로 의심하는 행위다.

 

유동하는 세계에서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기초를 통해 확실한 인식 체계를 구축하고, 그 기반 위에서 세계의 평화를 모색한 이 사람, 데카르트에게는 이성적 인간이 희망의 단서였다.

 

그러나 아렌트는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생각이 아니라 내가 아닌 남의 처지를 고려하는 것, 내가 함부로 어찌할 수 없는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고 고통에 연민을 품는 것이 진정한 생각이고,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나는 나이고, 너일 수 없다고 말하는 데카르트와 달리 아렌트는 나는 너의 아픔을 알 수 있고, 나의 아픔인 양 공감하고 참여한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바로 사고하는 능력으로!

 

-[2부]에서 계속-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김기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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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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