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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작가 필립 얀시가 바라본 바흐의 신앙과 관련된 일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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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토머스(Lewis Thomas)라는 에세이스트는 행성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을 때 지구를 대표할 만한 작곡가로 어떤 인물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바흐를 택해서 우주로 끊임없이 그 음악을 흘려보내겠어요.

 

물론 너무 좋은 면만 과장해서 보여주려는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막 만남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가장 멋진 얼굴을 보여주려는 건 얼마든지 애교로 봐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쓴소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요."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던 바르트부르크 성 근처에서 태어난 덕에 바흐는 루터교회와 가장 가까운 작곡가가 되었다.

 

바흐는 물론 성자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자유를 제한하려 드는 어떠한 권위와도 맞서는 문제 학생이었다.

 

하지만 목표가 뚜렷했다.

 

음악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마음에 쉼을 주는 것" 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지치지 않고 완벽을 추구하는 열정과 어마어마한 성경지식을 발판으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표하나, 악절 한 마디까지 살피시는 분은 부유한 후견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임을 확신하고 악보를 그릴 때마다 대부분 JJ 라는 약어로 시작했으며 SDG로 맺었다.

 

(필자 왈: 여기서 JJ는 Jesu Juva 의 약자로서 "예수님, 도와주세요" 라는 의미입니다. // 그리고 SDG는 Soli Deo Gloria의 약자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이란 뜻입니다.)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의 관계를 깊이 묵상하는 데서부터 마지막 부활을 찬양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바흐가 작곡한 295개의 칸타타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유명한 합창곡마다 자신 있는 고백을 담았다.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오라, 은혜로운 안식이여! 내 손을 잡아 따뜻하게 이끌어다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마지막 칸타타를 쓰는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에는 특별한 표제가 붙었다.

 

"주여, 이걸 들고 당신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바흐의 주요 작품들 가운데서도 <마태 수난곡Passion According to St. Matthew>은 독일에서 작곡된 합창곡 전체를 통틀어 단연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정작 곡을 쓴 음악가가 생존했을 당시에는 단 한 번 공연되고는 그만이었다.

 

자극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때부터 정확하게 100년 동안 이 대곡은 빛을 보지 못했다.

 

1829년, 멘델스존은 스승에게서 이 소중한 악보의 복사본을 얻었다.

 

원본은 아무짝에도 못 쓸 종이쪼가리쯤으로 여기고 한장 한 장 찢어서 치즈를 포장해주던 상인에게서 사들였다고 했다.

 

멘델스존은 <마태수난곡>을 다시 무대에 올렸고 바흐가 생전에 받아본 일이 없었던 큰 갈채가 쏟아졌다.

 

시카고 근처의 라비니아 파크에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이 곡을 연주하는 걸 들었다.

 

여름 콘서트였다.

 

3천 명에 이르는 청중들이 공원에 모여 4시간짜리 공연을 관람했따.

 

청중들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야외복과 액세서리로 화려하게 치장한 채 널찍한 자리에 앉아 촛불을 밝히고 저녁식사를 즐기는 이들과 꾀죄죄한 청바지 차림의 군중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시카고 노스쇼어에 모여 사는 유대계 주민들도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무언가에 홀린 듯,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담담히 재현해내는 이야기에 몰입했다.

 

공연을 마칠 때까지 합창단 전체가 다섯 차례나 입을 모아 '오 거룩하신 주님'이란 찬송의 잊히지 않는 후렴을 노래했다.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칙칙하고 선혈이 낭자한 상상 속의 그날 밤 갈보리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거장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엮어냈다. 이브닝가운과 턱시도를 차려입은 단원들은 십자가 사건이 인류에게 미친 깊고 깊은 영향 뿐만 아니라 그 캄캄한 밤을 지배했던 고통과 공포까지 고스란히 전달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어가며 못자국과 가시관을 설명하는 부흥사들의 소름끼치는 이야기보다 훨씬 생생하고 절절하게 들렸다.

 

그날 공연이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제껏 클래식 음악이 불씨가 되어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크리스천인 내 중심에서는 역사를 양분한 어마어마한 사건을 표현하기 위해 위대한 음악가가 쏟아부은 노력이 충분히 빛을 보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C.S 루이스는 위대한 예술을 일컬어 '뚝뚝 떨어지는 은혜의 물방울'이라고 했다.

 

인간의 내면에 참다운 대상을 향한 갈망을 일깨운다는 뜻이다.

 

거장의 손에서 빚어진 물방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거대한 물줄기가 된다.

 

SDG.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by 필립 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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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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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필립 얀시

출판  IVP

발매  2009.02.17

 

 

  '은혜'라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주제를 이렇게 눈물나게 잘 들려주는 책이 몇 권이나 더 있을까?

필립 얀시는 우리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가 들려주는 '은혜' 이야기는 진부한 주제의 진정한 실체를 우리에게 잘 드러내 준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지 않고서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며, 하나님을 어떻게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든 맥도날드의 다음과 같은 말을 주의 깊게 들어봐야 할 것이다.

 

 

  "만한 일에는 세상도 교회 못지않거나 교회보다 낫다. 집을 지어주고 가난한 자를 먹여 주고 아픈 사람을 고쳐 주는 일은 굳이 교인이 아니어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못하는 일이 하나 있다. 세상은 은혜를 베풀 수 없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와 풍성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딱딱하거나 단순한 지식 전달용 책이 아니다.

 

 

  그가 표방하고 있는 것처럼, 은혜를 '설명'하기 보다는 '전달'하고 있는 책이다.

 

 

  이게 간단해 보이지만, 쉽게 읽히면서 동시에 풍성한 내용과 짜임새를 잃지 않는 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세상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내 인생을 봐~ 난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무슨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라는 거야?" 라는 좁은 시야에 갇혀 있을 때 이와 같은 책을 열어볼 필요가 있다.

 

 

  그 '은혜'가 실질적이고, 역사적으로 어떻게 많은 이들에게 임했는지를 듣고 나면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지각이 열리게 될 것이다.

 

 

  '은혜 남용'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그 위험성을 뚫고 나가 '진리'가 선포되는 이 책은 결국 '위험성'을 이겨 버리는 Power가 있다.

 

 

  '칼 바르트'가 아돌프 히틀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다음과 같이 답했던 것을 기억해 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히틀러의 죄를 위해?

 

 

  은혜에는 한계가 없다는 점이 강조되는 일화라고 볼 수 있다.

 

 

  그냥 '은혜'가 아닌 '놀라운 은혜'가 기독교에 있다는 게 궁금하다면, 이 책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당신의 신앙적 감각을 새롭게 깨워줄 굉장히 잘 쓰여진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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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필립 얀시

출판 포이에마

발매 2012.11.22

 

 

 

 

  회의자의 안내자로서의 소명을 감당하며 열린 마음과 따뜻한 글쓰기, 그리고 깔끔한 논리로 무장해 온 필립 얀시가 '진리'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일종의 '변증서'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다양한 '주제'를 폭 넓게 다루다 보니 한 '주제'에 대한 깊이는 좀 부족한 책이지만, 전반적으로 논리를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

 


 

한장 한장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자.

 


 

[1장, 2장] 고통

 

  주님이 우리의 고통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하고 계시며 조만간 확실한 조처를 쥐할 것임을 역설한다.

  고통을 변증하는 다른 서적들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다.

  그리고 C.S Lews 의 [고통의 문제], 도로시 세이어즈 등의 지식을 활용하고, '고통' 속에서 만나는 깊은 하나님을 강조한다.


 

 또한 생리적이고 육체적인 통증, 고통이 '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한 '폴 브랜드 박사'의 논리를 통해 의료 분야에서 고통을 변증하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고통의 중요성'은 C.S Lewis 에서 답을 찾는다.


 

 이와 같이 얀시는 다양한 지식을 적절히 비벼서 우리에게 깔끔하게 전달해 준다.

 

 

 여기서 글을 끝낸다면 상당히 싱겁고 섭섭할 수 있는데 얀시는 브랜드 박사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한 내용을 수록함으로써 이 책만의 색깔을 입힌다. 브랜드 박사가 이야기하는 '고통 변증'은 상당히 참신하고 새롭다. (직접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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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강제 수용소에서 배우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험난한 시절을 보낸 솔제니친의 이야기를 집중 조명하면서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추려낸다.

  자유와 소망, 인간의 도덕성 등에 대한 영역을 탐구하는데 어렵지 않고 생생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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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초도덕의 위기

 


 

  이 챕터에서는 도덕적 상대주의를 경고한다. 옮고/그름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없는 시대가 오다 보니 그저 자기만 좋으면 그만인 세상이 되어감을 설명한다.

 


 

특히 진화심리학의 대두를 강조해서 설명하는데 이 부분은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자.

 


 

"진화심리학은 상대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선을 바라본다. 즉, 선을 영원한 가치라든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이상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의 실용적 기능 정도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리처드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 같은 진화 생물학자들은 테레사 수녀의 선한 행위도 결국 '자기 이득'을 위해 취하는 행동이라고 결론을 짓는다.

 


 

  수 많은 강경한 무신론자들이 신 없이도 도덕성이 유지된다고 주장했으나 사실 제대로 된 변증을 들어본 적은 없다.

 


 

  얀시 또한 '신' 없이 그와 같은 도덕성은 나타날 수 없음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눠준다.

 


 

"윌 듀런트, 아리엘 듀런트 부부는 "우리 시대 이전까지는 역사를 통틀어 사회가 신앙의 도움 없이 도덕적 생명력을 유지해낸 전례가 없는게 사실'이라면서, 예언적인 논평을 덧붙였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이슈는 공산주의와 개인주의, 유럽과 미국, 더 나아가 동양과 서양의 대립이 아니라, 과연 인간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살아보겠다고 덤벼드는 문명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바츨라프 하벨은 위기의 실체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서 인간은 항상 만물, 특히 자신에 관해 설명할 수 있게 해주던 일종의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좌표 시스템을 상실했다. 상대적이고 제각각인 좌표에 맞추다 보니 인간의 세계와 인격은 차츰 제각기 따로 노는 쪼가리들로 산산이 부서져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더 나아가 이러한 크리스천 윤리관 없이 어떻게 '결혼'이 유지될 만한 정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느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도덕적 상대주의 토양 속에서 페미니스트 사상가들 중 일부는 자아가 희미해지고, 구시대적인 관습에 사로잡힌 여성상을 타파하기 위해선 혼외정사를 강력히 추천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성의 침묵>을 쓴 델마 헤인의 주장)

 


 

  바버라 에런라이크도 <타임> 지에 기고한 글에서 "서로 호감을 품고 있으며 상호 합의한 성인들 사이에서 섹스는 마땅히 놀이의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 뿐이다" 라고 이야기 하며, 결혼 윤리의 붕괴를 조장했다.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어느 중산층 부부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부모를 돌보기가 귀찮아서 방치했다든지, 껄렁거리는 아이들이 다섯 살배기 꼬마를 고층건물에서 창밖으로 밀어버렸다든지, 열 살짜리 여자아이가 복도 한귀퉁이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든지, 인생을 즐기는 데 거추장스럽다며 엄마가 두 아이를 물에 빠트려 죽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너나없이 분노에 치를 떤다. 왜 그런가? 윤리가 본질적으로 제각기 알아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정말 믿는다면 도대체 무얼 근거로 그처럼 맹렬히 분개하는가? 그런 범죄를 저지른 파렴치범들은 한 점 거리낌이 없었다. 히틀러의 나치 친위대원들이 유대인들을 학살하면서 눈곱만큼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나 매한가지다. 도덕성이란 것이 개인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누가 그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무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 이 말에 대한 제대로 된 반박을 듣고 싶다.

 


 

  그리고 일부 근본주의자들과 제대로 정신 못 차린 기독교 역사 속에서나 노예제도가 기독교 내에 수용되었지, 결국 노예제도를 종식시킨 힘, 여성참정권 운동, 인권 운동, 시민권운동을 이끌었던 것도 '기독교'였다.

 


 

 신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독교가 윤리를 파괴시켰다는 건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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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진화 심리학은 믿을 만한가?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참신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얀시는 진화 심리학은 방자하기 짝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DNA에 기록된 것 외에 다른 목적을 지니지 않으며 유전자의 지배를 받고 있는 하찮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진화 심리학은 주장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도킨스, 대니얼 데닛 등이 등장하여서 새와, 벌, 침팬지에 관한 생생한 설명으로 혼을 빼놓고, 구애행위, 바람기, 모성본능, 가십, 사회조직 등을 멋들어지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늘상 제기되는 문제이지만 '진리 개념 자체'가 자연선택의 산물이 되어버리는데 무엇을 근거로 우리는 '진화 심리학의 글'이 '진리'라고 믿을 수 있을까? (엘리자베스 엔서컴이 C.S Lewis 와 이 부분에 대해 철학적 논의를 했던 걸로 아는데, 더 깊은 논의를 시도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얀시는 4가지 점에서 진화 심리학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1. 증명하거나 오류를 입증할 수 없는 두루뭉실한 원리를 표현만 바꿔 반복적으로 내세워가며 윤리적 문제들을 설명한다.

 

  그들은 이기적 유전자라는 한 가지 원리에 기대어 인간의 모든 행동을 해석한다. 그러다 보니 게이나 불임부부처런 유전자를 영원히 전하지 않는 이들의 행동 해석을 해야 한다는 난제에 봉착하기도 하고 영원한 순결을 서약한 마더 테레사 등의 행동을 서술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도 어찌저찌 그들이 설명을 시도하긴 한다).


 

  결국 이런 단일화된, 단순화된 해석은 우리의 모든 행동을 다 '이기적 유전자의 소산'으로 보게 만듦으로써 우리를 유전자에 조종되는 기계로 전락시켜 버린다.

 


 

2. 도덕성은 온전히 인간의 가장 내밀한 원천, 곧 유전자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대중들에게 진화 심리학을 능숙하게 잘 설명하는 로버트 라이트는 이기적 유전자 이론이 참이라는 근거로 '성욕'을 내세우는데 성적인 욕구야말로 마치 '인간이 많은 자손을 원하며 어떻게 해야 그 뜻을 이룰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자연의 방법이라고 그는 이야기 한다.


 

그런 논리대로 따라가다 보니 그는 일부다처제를 조심스럽게 인정하는 말을 한다. (남자의 성적인 욕구가 결혼 후에도 제어되지 않는다면 그걸 왜 한 명의 여자에게 국한시켜 두느냐는 것이다.)

 

 

더군다나 진화 심리학 논리대로라면 '폭력'도 용인이 된다.

 

 

  <악마같은 남성>에서 책의 저자는 "남성은 기질적으로 폭력을 잘 쓰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쉬 멈추기 어렵다" 라고 말하는데 이런 추론의 근거도 결국 인간의 가장 가까운 유전자 친구인 침팬지 수컷들이 동료를 죽이고, 강간하고, 지배하고, 짝을 두들겨 패는 것을 통해 유추를 한 것이다.


 

  C.S Lewis 가 [인간 폐지]에서 말했던 것처럼, 처음에 가닥을 잘못 잡으면 뒤로 갈수록 오류는 점점 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라이얼 왓슨이라는 자가 두 아기를 자동차에  태운 채로 호수에 밀어 넣은 수전 스미스를 변호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이러한 사레들이 사회 안정과 생태적 균형에 기여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죄악의 표출로 해석할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심사를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적합한 상태를 이루는 지점을 두고 벌이는 양측의 갈등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러한 차이를 조율하기 위해선 건전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진화론적 관점에 입각한 증거를 총동원해서 계산을 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모든 잔학한 행위를 다 유전적 행동이라는 논리적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하다 보니, 제대로 된 도덕 체계가 세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객관적 진리가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3. 자연은 도덕성에 관해 엇갈린 메시지를 준다.

 


 

  영장류를 보면 연민, 공감, 정의 같은 덕목들의 초기 형태를 알 수 있고 목숨을 걸고 상처 입은 동료를 구해내는 고래와 돌고래, 누군가 다치면 달려가서 돕는 침팬지, 죽은 친구의 곁을 떠나지 않는 코끼리 등을 보면서 사람들은 '윤리관'의 기원을 찾으려고 하는데, 자연은 그렇게 일관되지 않다. 얀시의 반박을 들어 보자.

 


 

"그렇다면 여성들은 자연을 본받아 사마귀처럼 짝짓기를 마친 수놈을 게걸스럽게 뜯어먹어야 하는 걸까? 보노보 침팬지가 그러하듯, 이웃들끼리 상대를 가리지 않고 재빨리 성관계를 가져서 분쟁의 소지를 없애야 하는 걸까? 모시밑들이처럼 남자들도 몰래 숨어서 기다리다가 가까이 다가오는 상대를 힘으로 취해야 하는 걸까?"

 

 


"얼룩다람쥐는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 새끼를 잡아 먹는다. 청둥오리는 동료를 집단 강간하고 물에 빠트려 죽인다. 기생벌의 애벌레는 움직이지 못하는 먹잇감을 안에서 밖으로 맹렬하게 갉아먹는다. 아프리카 시클리드는 동족의 눈알을 파먹는 걸 좋아한다. 하이에나는 태어난 지 한 시간 뒤면, 힘이 더 센 새끼가 한배에서 난 형제와 싸워 숨통을 끊어 놓는다."

 


 

이런 식의 '자연의 예시'는 끝도 없이 근거를 댈 수 있다.

 


 

4. 자연에 토대를 둔 윤리는 대규모 악용에 취약하다.

 


 

  잘못된 생물학적 논리인 우생학이 2차 세계 대전에서 미친 영향력은 분명히 그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식의 논의는 분명 잘못된 '철학, 세계관'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 part 2 로 넘어가면 '프란시스 쉐퍼'를 만나 인터뷰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프란시스 쉐퍼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사서 읽어보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쉐퍼의 인터뷰를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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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프란시스 쉐퍼의유산

 


 

  쉐퍼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의 이론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설명을 해 주는데 쉐퍼가 비판받던 포인트가 지적되어 있어서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쉐퍼 박사가 바르트나 키에르케고르처럼 저마다 좋아하는 인물들을 콘크리트 장벽 너머로 집어던져버릴 때마다 크리스천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안절부절 온몸을 꼼지락거리기 일쑤였다. 잭 로저스가 지적하듯, "쉐퍼는 루소와 칸트, 헤겔과 키에르케고르를 한데 묶어 처분해 버린다.... 그때마다 사실상 똑같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이들조차도 박사가 특정한 철학자를 터무니없이 희화화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나머지 상대편에 서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자신만만하고 폭넓은 주장을 펼친 탓에 쉐퍼에게는 호평과 악평이 동시에 몰렸다."

 


 

  내가 바라보는 쉐퍼도 한번은 반드시 거쳐갈 만한 멋진 신학자이고, 그의 방법론이나 자세를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게 더 유익할 때가 많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는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이 고상한 영적 세계의 일이 아니라 삶의 영역 전반을 아우르는 사건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 공헌도가 크다. (그의 세계관 책 말고, 설교집도 굉장히 은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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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T.S 엘리엇에게 한 챕터를 투자하는데, 그의 진면목에 대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다양한 활동을 했으나 주로 '시'를 통해서 많은 영향력을 미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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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선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다.


 

 NGO 에서 뛰는 친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챕터다.

 

 


 

 그 뒷 부분 부터는 '복음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예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주며  좀 더 실천적인 측면에서 '진리'를 탐색하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약간 두서가 없을 수도 있고, 산만한 경향이 있지만 각 챕터가 주는 교훈들이 상당하니 기회만 되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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