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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물질적 생활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필 수도 있고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 변화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보편적 특성인 이성의 발현 과정을 줄기로 삼아 역사를 관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인간의 보편적 이성은 서로 다른 생각의 대립과 경쟁을 통해 자기를 실현한다.

역사는 서로 다른 사상과 아이디어들 사이의 살아남기 경쟁이 추동하는 이성의 자기 발현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사상도 완전하지 않으며 삶의 기술적 조건과 환경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한 시기에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던 사상은 조만간 새로운 사상의 도전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대의 교체는 언제나 사상과 이념의 교체를 동반한다.

정치철학과 국가이론도 예외가 아니다.

자유의 정신을 전제군주제의 가장 위험한 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옳았다.

 

 

<마키아벨리>

 

 

인간은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존재이다.

 

자유를 희구하는 생물학적/사회적 본능은 그것을 실현하는데 적합한 정치제도를 만드는 것으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냈다.

전제군주제 국가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했던 국가주의 국가론이 입헌군주제나 공화제 국가를 꿈꾼 자유주의자들의 도전에 직면한 것은 자연스러운 사태였다.

이 사상적 도전을 현실의 승리로 전환하는 데 기여한 철학자와 정치가는 숱하게 많지만, 대표적으로 세 사람을 들 수 있다.

 

로크,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다.

로크는 시민들의 동의로 성립하고 법에 따르는 통치를 주창했다.

 

스미스는 사회의 부를 증진한다는 목표 아래 국가가 시행한 자의적 간섭과 특권의 철폐를 제안했다. 밀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어떤 경우에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기본권으로 내세웠다.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줄이면 국가는 선을 행하려 하기보다 악을 저지르지 않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주의 국가론의 핵심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사회와 문명국가에서는 자유주의 국가론이 지배적 사상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도 '대부분' 자유주의 국가론에 입각해 만들어졌다.

 

여기서 '모두'가 아니라 '대부분'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국가주의 법률'이다.

자유주의 철학자들은 홉스의 제자라고 할 수 있다.

 

                             <토마스 홉스>

 

국가가 일종의 사회계약에 의해 탄생했으며 국가의 임무가 범죄와 무질서, 외부의 침략에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는 견해를 승인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계약의 세부 내용 가운데 주권자가 누구이며 국가권력이 어떻게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홉스와는 크게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국가에는 치안과 국방을 넘어서는 다른 책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권력이 자기의 임무를 수행할 때 지켜야 할 규칙과 넘어서지 말아야 할 경계를 설정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진 결과, 자유주의 국가론은 거꾸로 선 국가주의 국가론이 되었다. 국가주의 국가론에서 개인은 국가의 부속물에 불과하다.

 

국가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며 개인은 국가에 종속된다.

 

그러나 자유주의 국가론에서는 거꾸로 국가가 개인을 위해 복무한다.

로크는 사회계약론을 받아들였지만 전제군주제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는 이랬다.

 

인간은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며 독립되어 있으므로 어느 누구도 자신의 뜻에 반해 다른 사람의 정치적인 권력에 복속할 수 없다.

인간이 자유를 포기하고 사회의 구속을 받는 것은 다른 사람과 결합하여 하나의 공동사회를 형성하는 데 동의할 때 뿐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소유권을 지키고 외부의 침략을 막아 서로 안락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홉스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 공동사회, 즉 국가를 누가 어떻게 통치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홉스와 생각이 달랐다.

로크는 사회계약을 어느 한 사람이나 추상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사회의 다수파에게 권력을 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존 로크>

 

최고 권력인 국가의 입법권을 장악한 사람은 즉흥적이고 임의적인 명령이 아니라 국민에게 공포되어 널리 알려지고 항구적으로 확립된 법률에 의거하여 통치해야 한다.

또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공평하고 정직한 재판관들이 법률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

아울러 국가는 나라 안에서 법률의 집행을 위해서만 힘을 행사해야 하고, 밖으로는 외적의 침략에서 공동사회를 수호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 국민의 평화와 안전, 공공의 복지 이외의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지 못하도록 국가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

그가 국가의 목표에 새롭게 추가한 '공공의 복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중에 스미스가 명확하게 제시했다.

-2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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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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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가 [시민정부론](An Essay concerning the true original, extent, and end of civil government)에서 펼친 국가이론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채택한 헌법의 기본원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정치권력의 정당성은 다수 국민의 동의를 그 원천으로 하며, 국가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은 평화와 안전, 공공의 복지라는 국가목표를 이루기 위해 확립되고 공개된 법률에 따라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바를 벗어나 사적인 목적을 위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

'주권재민'과 '법치주의', 이것 없이는 국가권력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다.


일부 권력자들의 심각한 오용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법치주의'라는 말이 큰 오해를 받고 있다.

 

 

'법치주의'는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은 권력 그 자체의 속성이기 때문에 어떤 주의도 필요하지 않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이러한 속성을 제멋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원칙이다.

법치주의는 통치받는 자가 아니라 통치하는 자를 구속한다. 권력자가 주관적으로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이 그에게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 그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권력행사를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법치주의에서 일탈하면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하며, 정당성이 없는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

 

국가주의 국가론이 인민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려는 적극적 이론인 반면, 자유주의 국가론은 국가가 악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소극적 이론이다.

 

 

자유주의 국가론은 국가주의 국가론과 대립함으로써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내는 안티태제(antithese)였다.

 

로크의 사상은 영국과 유럽을 넘어 미국 헌법을 만든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

우리나라는 미군정의 지배 또는 후견을 받는 가운데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수립했다.

그런 점에서 로크의 국가론은 대한민국 사회의 기본 질서를 세우는 데도 간접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로크가 [시민정부론]에서 펼친 논리는 대한민국 헌법에서 그대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시민정부론]은 [리바이어던]보다 약 40년 늦게 나왔다.

 

홉스와 마찬가지로 로크도 왕당파와 공화파의 권력투쟁으로 잦은 정변과 혼란이 벌어진 시기에 살았다.

 

그런데 그는 재산이 없었던 홉스와 달리 법률가의 아들로서 적지 않은 유산을 받은 덕에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를 마친 후 4년간 학생을 가르친 것 말고는 별다른 돈벌이를 하지 않았다.

 

정치인 친구와 인연이 있어서 외교관으로 잠깐 일한 시기도 있었지만, 실험과학과 약학 등 새로운 자연과학과 철학을 연구하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썼다.

 

지병인 천식 때문에 런던의 탁한 공기를 피해 프랑스에서 여러 해 지내기도 했던 로크는 뜻하지 않게 정변에 휘말려 네델란드로 도망쳐야 했고 영국 정부는 그를 반역자로 규정해 유럽 전역에 지명수배령을 내렸다.

[시민정부론]은 로크가 5년 넘게 망명생활을 한 끝에 영국으로 돌아온 직후 쓴 논문이었다.

홉스는 정치적 혼란 그 자체를 극복해야 할 악으로 보았지만, 로크는 항구적인 법률이 아니라 즉흥적이고 임의적인 명령으로 통치함으로써 혼란을 야기하는 권력의 행태가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뛰어난 지성을 지닌 철학자로서 거의 비슷한 시대를 살며 동일한 정치적 혼란을 경험했던 두 사람이 상반되는 국가론을 펼친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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