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우리나라는 서구처럼 수백 년에 걸쳐 진보와 보수가 형성된 게 아니라, ​해방 이후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갈등을 압축적으로 경험해왔다.

 

이건 순전히 주관적 해석이므로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 진보의 역사는 시민권을 향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고, 시민권의 내용도 세 차례에 걸쳐 변화를 겪어 왔다.

제 1세대 시민권은 참정권이었고, 제2세대 시민권은 경제적 권리(복지권)이었다. 유럽에서는 전후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복지국가가 정착되었지만, 미국에서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복지권을 헌법 개정 조항으로 포함시키려다 갑자기 서거해 아직 시민권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제3세대 시민권은 자치권이다.

소수민족이나 문화를 지키기 위한 시민권인데 이를 헌법에 규정한 나라는 소수에 불과하다. 나는 제 3세대 시민권을 프랑스 68혁명의 참여민주주의 정신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19세기와 20세기는 ​더 많은 보통사람이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싸움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귀족에서 유산 계급으로, 유산 계급에서 평민으로, 그리고 노동자와 여성과 젊은이들로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참정권이 허용되는 방향으로 인류의 역사는 진보해 왔다.

​우리는 일제에서 해방됨과 함께 투쟁 없이 미군정에 의해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그 후 우리의 민주주의는 몇 차례 굴절됐고, 급기야는 독재정권의 등장으로 그 참정권마저 빼앗기게 되었다.

 

참정권을 향한 투쟁이 4.19, 5.18 그리고 6.10으로 이어졌다.

 

투쟁을 통해 드디어 참정권을 획득한 건 1987년 대통령 직접선거를 내세운 개헌운동의 승리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제1세대 시민권을 향한 운동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운동이기도 했다.

 

1987년의 6.10 항쟁은 화이트칼라가 가세함으로써 성공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민중운동이라기보다는 지식인, 대학생, 중산층 위주의 제1세대 시민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그랬듯이 경제권을 향한 노동자 정당의 제2세대 운동이 일어나면 제1세대 운동에서 진보적이었던 유산계급은 보수화된다.

열린우리당은 탈지역주의 정치개혁을 소명으로 내걸고 창당했기에 영국의 자유당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영국의 자유당과 참여정부는 달랐다.

 

노무현은 2002년 대선에서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새 정치를 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었다.

​탈지역정당인 열린우리당의 탄생과 과반수 의석 달성, 노무현 정부의 정치개혁으로 한국민의 정치만족도는 2002년 말 아시아 최하위(25%)에서 2004년 초 1등(75%) 이 되었다.

정치개혁을 1년 만에 거의 완성했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를 의제화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제2세대 시민권운동에 본격적으로 불을 댕긴 장본인이 노무현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1980년대 후반에도 노동자의 인권을 변호하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정동영은 노무현이 의제화한 제2세대 시민권을 2007년 대선에서 의제화하지 못했다.

 

그는 탈지역주의 정당인 열린우리당을 깨고 이도 저도 아닌 대통합민주신당을 탄생시켰는데, 선거에서 대패했고 신당은 정당으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했다.

 

 

2008년 총선에서 참패한 대통합민주신당은 2012년 총선에서 혁신과 통합이라는 재야 시민단체 세력과 통합하면서부터 노동 분야 전문가를 대폭 공천했으며, 대선 후보가 된 문재인은 복지, 재벌개혁 등 좌파적 경제 공약을 대거 내걸었다.

 

민주당이 경제적 진보정당의 색채를 띠면서 호남의 기득권 정치인과 전문가 출신의 중도 정치인(박영선, 김한길, 변재일 등)이 안철수와 한 편이 되고, 비교적 진보적인 친노/민평련이 연대하는 본격적인 이념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광옥, 한화갑, 김경재 같은 호남 정치인들은 새누리당으로 넘어갔다.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권교체를 함으로써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됐다고 믿기에 보수화 행보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호남에서의 분열은 민주당이 제2세대 시민권인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자 세대 간 이념 갈등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유럽 역사에서 살펴봤듯이, 제1세대 시민권에서 진보적이었던 자유당이 제2세대 시민권 운동이 등장하면서 몰락하거나 보수당에 흡수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역사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중도보수정당이었지만, 2012년 이후 세계화와 양극화의 흐름 속에서 경제적 민주화와 제2세대 시민권을 향한 시대적 과제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호남을 중심으로 했던 60대 이상 민주화 세력이 제2세대 운동이 일어나면서 보수화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중도보수적인 안철수와 호남 정치인들이 국민의당으로 뛰쳐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단지 문재인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이념 갈등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호남 출신이었기에 민주당에 몸담았던 것이지 민주당이 경제적 민주화를 지향하는 정당이라서 온 게 아니었다.

 

김수환 추기경, 김동길 교수 등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던 지식인들이 민주화 이후 보수적으로 변화한 이유 역시 단지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유럽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화 이후의 필연적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와 독재의 균열이 사라지자 민주화운동을 했던 일부 유산 계급이 보수화된 것이다.

 

호남인들은 모두 진보여야 한다는 가정 자체가 잘못이라고 본다.

 

​호남인들 중에도 기득권 세력이 있다.

 

우리의 소선거구 선거제도는 지역주의 토호 세력에는 큰 행운이다.

 

호남의 의원들은 공천만 받으면 천년만년 당선될 수 있다. 호남에서 민주당 다선의원이 보수화되는 건 당연하고, 때마침 등장한 국민의당은 민주당에 비해 경제적 쟁점에서 더 보수적이다.

따라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합쳐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로 회귀하자는 주장이나 다름 없다.

 

이러한 이념적 분열을 거치면서 지역주의가 약화되는 것이므로, 호남의 분열은 사실 한국 정치 발전에 매우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분열을 안타까워하거나, 서로 간에 원망하고 미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거 역사에서 진보/보수라는 이념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등장한 건 1997년 대선 이후 2000년 총선에서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호남의 한이 풀리면서 호남인들의 분열이 시작된 것이다.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수도권에서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이탈한 것이다. 고소득, 고학력, 성공한 호남 출신 수도권 유권자들이 이익 투표를 하면서 한나라당을 찍기 시작했다.

 

더는 민주당을 찍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지역주의의 약화는 2000년 총선 때 시동이 걸렸다.

서구에서는 20세기에 좌우 대립이 있었다.

영국에서 자유당이 보수당에 일부 흡수되면서 사라지고, 노동당이 좌파 정당으로 등장해 복지권이 확립되었다.

그래서 20세기에는 ​경제적 민주화를 추구하면 좌파, 경제적 자유(사유재산권)를 추구하면 우파가 되었다.

​경제 문제가 정당을 가르는 핵심 균열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68혁명이 일어났다. 68혁명은 경직되고 비인간화된 공산주의에 대한 염증을 표출했다.

20세기의 자본이냐 노동이냐 하던 경제적 균열은 둘 다 물질주의 뿐이다.

물질주의는 빈곤과 전쟁 등을 겪은 세대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68세대는 ​2차 대전 이후 평화와 풍요 속에서 자란 중산층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전후 세대로서 배고픔과 전쟁의 위협을 모른다. 이들에겐 물질이 더는 중요하지 않기에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기본적으로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좌우가 서로 싸우면서 똑같이 권위주의적이라는 점을 혐오했다.

​권위주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집단주의에 기초한다. 집단주의는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데, 이것이 유럽의 신세대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경제가 풍요로워 질수록 인간은 개인주의적으로 변한다. 마치 물리학에서 온도가 올라갈수록 분자의 운동이 활발해져 고체에서 액체,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는 것과 같다. 68세대에게는 물질보다 자아실현과 정의 같은 가치관이 더 중요했다.

예컨대 인권과 일상 속에서의 민주주의, 환경, 생태, 여성 등의 가치를 높이 사고 이를 위해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들이 물질 이후의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서 탈물질주의자라고 부른다. 유럽은 1968년 이후 30년간 혁명적 변화를 거치며 21세기에 도달했다.

.................

민노당이 원내에 진입하면서 경제 균열이 한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자, 진보언론과 지식인은 영국처럼 자유주의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사라지면서 민노당이 제1 야당이 되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와 열린 우리당에 가혹하게 굴었다. 불행히도 한국은 분단과 6.25를 겪은 나라다. 빨갱이, 좌파 기피증이 민노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가로막았다. 이것이 우리가 유럽과 달리 제2세대 시민권을 성취하기도 전에 건너뛰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김대중 대통령이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세계 최강의 IT 국가가 되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인터넷은 시민에게 정보를 주며 정보는 곧 권력이다. 제2세대 시민권을 확립하기도 전에 권력을 가진 시민들이 제3세대 시민권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게 노사모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한 노사모가 한국 탈물질주의 운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은 인터넷을 활용해 대통령이 되었는데, ​미국의 오바마는 2008년에야 이를 벤치마킹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리가 미국보다 6년이나 빨랐던 것이다.

​우파는 노무현을 좌파라고 공격했고, 좌파는 노무현을 신자유주의자라고 공격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노 대통령은 "그럼, 참여정부가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거냐"고 한탄했다.

 

그랬더니 좌우 언론은 노 대통령도 스스로 참여정부를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인정했다며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된 시민들은 양쪽의 공격이 다 부당하다고 느꼈다.

노무현은 분명히 공공성을 추구했으면서도 세계화와 시장경제의 장점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탈권위주의적인 그의 모습이 좌우 정치인 누구보다 진보적으로 보였다. 이 때문에 나는 노무현 왕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론을 보수, 진보가 아니라 우파, 좌파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인 노무현과 좌파 언론이 갈등을 보이는 이유는 좌파 언론이 노무현만큼 진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좌파 언론이 20세기 경제적 평등이라는 구좌파 이념을 추구한다면, 노무현은 21세기의 진보라고 할 수 있는 탈물질주의 이념을 추구했다.

​탈물질주의의 요체는 탈권위주의적이며, 이들을 유럽에서는 신좌파라고 부른다.

​신좌파는 좌파의 아류가 아니라 우파(시장)와 좌파(국가)를 모두 배격하고 제3의 영역에서 합리적 개인의 연대를 통한 공동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제3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진보적 자유주의'라고도 부른다.

영국의 자유당이 아니라 신좌파였던 노무현은 우파 언론뿐만 아니라 구좌파 언론과도 이념 갈등을 겪었던 것이다. 나는 늦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의 정체성을 찾아 주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21세기 진보적 자유주의자였습니다."

-[왕따의 정치학] 에서 -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마약 하지 맙시다!!!! 경각심을 주고, 잘 이해하기 위한 지식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대마초는 해외에서는 주로 마리화나로 불립니다.

마리화나(marihuana)란 이름은 스페인어 여성 이름 중 가장 흔하다는 마리아(Maria)와 후아나(Juana)를 합쳐 만든 합성어죠. (포르투칼어 Mariguango<취하게 만드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고 함)

이것을 하면 '여성과의 성관계처럼 좋다' 혹은 '여성의 품처럼 아늑하다' 라는 뜻에서 시작된 단어로 보입니다.  단어의 시작부터가 은어인 거죠.

마리아의 M 과 후아나의 J 를 따러 MJ 라 부르기도 하고, 영어권 국가에서는 '메리제인'(Mary Jan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팝 가사에서 메리제인이라는 여성을 찬양하거나 그리워하는 경우, 대마초를 비유한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검열 들어오면, "이거 사랑 노랜데, 왜? 뭐?" 이러는 거죠.

 

'마리화나'라는 표현이 익숙해서 흔히 사용하지만, 공식 명칭은 '칸나비스'(cannabis)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canvas)'와 철자가 비슷하죠? 캔버스라는 명칭이 칸나비스에서 딴 겁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초기 캔버스는 대마로 만들어졌죠.

마리화나보다 칸나비스라고 부르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지만 사회적 금기가 늘 그렇듯 정식 명칭보다는 은어가 많이 쓰입니다.

히피 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위드'(weed), '그래스(grass)', '그린(green)', '허브(herb)' 같이 친자연적인 애칭이 많고요. 또 대마초를 태울 때 나는 냄새가 스컹크의 방귀 냄새와 비슷하다고 해서 '스컹크(skunk)'라고 부르는 이도 있습니다.

 

물론 보통의 한국 사람들은 스컹크 방귀 냄새도 맡아본 적이 없을 테니 적절한 이름은 아니군요. 하지만 대마초 향이 워낙 독특하기 때문에 당신이 이전에 대마초를 한 번도 피워보지 않았어도, 냄새를 맡는 순간 대마초인지 담배인지 바로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혹시 '데메테르'라는 향수 회사를 아시나요?


독특한 향을 만들기로 유명한 회사인데, 이들이 출시한 제품 중에 대마 향(칸나비스 향)이 있습니다.


모토는 "피우지는 말고, 향을 즐기세요" 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네티즌들은 , "무슨 약을 빨고 향수를 만들면 저런 향을 만들 수 있지?" 라는 반응을 보였죠.


대마초의 냄새가 정말 궁금한 독자라면, 이 제품을 한번 테이스팅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합니다. 다만 주변 사람들이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바로 앞에서 마리화나가 스컹크로 불린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고지했습니다.


한국의 꾼들은 대마초를 '떨'이나 '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시시를 마리화나의 다른 이름 정도로 알고 있는 이들도 많은데, 둘은 비슷하긴 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하시시는 대마에서 성능이 좋은 암꽃과 잎만을 응축해서 만든 일종의 압축 마리화나입니다. ​마리화나보다 8~10배 정도 강한 효과를 냅니다.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
728x90
반응형
SMALL

책에서 가장 유용한 파트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마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올리는 거지, 마약과 친해지지 맙시다. 마약 하시면 안 됩니다.!!!!!!! 마약은 마약입니다.

 

의학적 용도로 제한적으로, 합법적으로 사용하시는 게 아닌 이상 근절합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대마(마리화나, 하시시)

깜짝 놀랄 이야기로 시작해보죠.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다 아시죠?

그럼 그가 배를 만들 때, 어떤 재료로 돛을 만들었을까요?

바로 대마...가 아니라 천으로 만들었습니다. 돛을 천 아니면 뭐로 만들겠어요. 그런데 이 천이 대마로 만들어진 천이었죠.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과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역시 대마 천으로 만든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의류에서도 대마 천과 대마 섬유는 중요한 소재입니다.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를 만든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는 청바지의 프로토 타입을 대마 천으로 만들었죠.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과 토마스 제퍼슨은 대마 농장을 운영했습니다. 특히 제퍼슨은 대마 사랑이 남달랐는데, "나라를 지키고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대마가 필요하다"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그는 실제로 좋은 대마를 구하기위해 중국과 터기에서 대마 씨를 숨겨 들여왔습니다. 미국의 문익점이죠.

또 다른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제지공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공장에서는 종이를 대마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벤저민 프랭클린이 작성한 미국 독립선언문은 대마 종이에 인쇄되었죠. 미국의 건국 정신은 그야말로 대마와 함께했습니다.


어마어마하지 않나요?

 

 

마약이라고 해서 어디 지옥에서 자라는 특별한 식물이 아닙니다.


한반도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대마를 길렀고, 지금도 안동 지역에서 대마를 키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대마를 키운다고?" 놀란 분들도 있을 텐데, 삼베옷을 만드는 삼, 그게 바로 대마입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담배 대신 대마를 피우는 어르신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었죠. 그러나 군사정권에서 대대적으로 대마 금지 정책을 펴면서 대마밭이 사라지고, 대마초를 피우던 문화도 사라졌습니다.


대마의 마약 작용은 꽃, 잎, 줄기 순으로 순도가 높고 (꽃>잎>줄기), 꽃 중에서는 암꽃이 수꽃보다 순도가 높습니다. (암꽃>수꽃). 그래서 대마 전체가 아니라 꽃과 잎 부분만 마약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마의 줄기, 뿌리, 씨앗은 한국에서도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줄기는 대마 섬유(삼베옷), 뿌리나 씨앗은 기름이나 한약재로 이용합니다.


대마를 수확해서 말리면 대마초가 됩니다. 대마초는 보통 담배와 비슷한 방식으로 흡입합니다.

 

담뱃대를 이용하거나 담배와 섞어 말아 피우죠. 간혹 물담배처럼 증기를 내서 마시기도 합니다.


외국 영화에서 가끔 인물들이 흰 연기로 꽉 찬 플라스크를 마시며 헤벌레 하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보통 이 때 피우는 게 대마초입니다. 이 물담배용 도구를 '봉(bong)'이라 부르죠.

 

 

 

그래서 봉씨 성을 가진 사람은 해외에서 자기소개만 했을 뿐인데, 현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곤 합니다. 최근에는 간단하게 전자담배에 대마초 농축액을 넣어 피울 수도 있죠.


대마를 음료나 음식에 넣어 먹기도 합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파티나 축제에 참석했을 때, 모르는 이가 음식을 권하면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패키 쿠키, 해피 브라우니라고 소개한다면 마리화나가 들었을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대마 쿠키>


한때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마초가 금지되었으나, 최근에는 합법화되는 곳이 많습니다. 북한에서도 대마초는 범죄가 아닙니다. 길에서도 피우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죠.


당연히 북한도 국가적으로 마약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북한 기준에 대마초는 마약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것뿐이죠. 북한의 대마는 대부분 산업용, 농업용이라 마약 성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대마초는 흡입 후, 효과가 최대 세 시간까지 지속됩니다.


기분이 좋아지면서 감각이 예민해지죠.


잘 들리고 잘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가끔은 없는 소리도 들리고 없는 물체도 보이는데, 이는 드문 경우입니다.


Happy smoke, Love & Peace 로 불리는 만큼 피우고 나면 실없는 사람처럼 헤헤 웃으며 나른해집니다. 술 마시고 싸우는 사람은 있어도 대마초 피우고 싸우는 사람은 없다고 하죠.


또한 다른 마약과는 다르게 복용 후에 허기가 져서 "정신을 차려보니 밥솥째로 퍼먹고 있더라." 같은 증언도 있습니다.


실제로 에이즈나 암 환자가 식욕을 잃었을 때, 의료용으로 마리화나를 처방하기도 합니다.


미국 에니메이션 <사우스 파크> 14시즌에 랜디 마쉬라는 캐릭터가 마리화나를 처방받기 위해 고환암에 걸리려고 노력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어떻게 일부러 암에 걸리냐고요?


고환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립니다. 너무 부어올라서 자신의 고환을 수레에 싣고 다니죠.


현실에서는 그렇게 될 리가 없지만, 그렇다고 따라 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에서 -

 

728x90
반응형
LIST

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