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상황 #문화적 요소 #중세 영문학 #C.S LEWIS'에 해당하는 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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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좁은 의미에서의 문화-즉, 사상/정서/상상력-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바바리안적 요소들이 덜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요소들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로마와 다른 이교주의의 파편들이 고대 노르드어/앵글로색슨어/아일랜드어/웨일스어에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런 파편들이 많은 아서 왕 로망스(모험담)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세의 연애시는 바바리안들의 관습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발라드는 아주 최근까지도 (늘 반복되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는) 선사 시대의 전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들려주는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고대 노르드어와 켈트어 텍스트들은 오랫동안 아주 제한된 지역 바깥으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다가 근대에 와서야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언어가 달라지면서 앵글로색슨어는 금세 잉글랜드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고대 게르만족과 켈트족 세계의 여러 요소가 이후의 자국어들에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려면 참으로 힘들여 찾아야 합니다.!

 

웨이드(Wade)(게르만 신화의 등장인물. 웨일랜드의 아버지)나 웨일랜드(Weland)(게르만 신화와 북구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대장장이)가 한 번 등장할 때 핵토르, 아이네이스,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는 쉰 번이나 등장합니다.

 

중세의 책에서 켈트족 종교의 유산 후보 하나를 캐낼 때 마르스와 베누스와 디아나는 스무 번씩 등장합니다.

 

연애시에 담긴 바바리안들의 영향을 희미하고 추측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연애시가 그리스-로마 고전이나 심지어 아라비아인들에게 영향을 받은 요소는 훨씬 더 분명합니다.

 

바바리안들의 유산이 정말 적다기보다는 몸을 숨기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몸을 숨기는 데 아주 능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 로망스와 발라드에 있어서는 이것이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둘이 어떤 의미에서, 어느 정도나 중세 특유의 산물인지 물어야 합니다.

 

18세기와 19세기 사람들은 중세에서 로망스와 발라드가 차지하는 비중을 실제보다 크게 봤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중세 로망스를 직접 계승한 아리오스토(Ludovico Ariosto, 1474~1533)(이탈리아의 시인. 대표작 <광란의 오를란도>), 타소(Torquato Tasso,1544~1595)(이탈리아의 시인. 대표작 <해방된 예루살렘>), 스펜서(Edmund Spenser, 1552~1599)(영국의 시인. 대표작 미완성 장편시 <선녀여왕>)의 작품들은 허드(Richard Hurd, 1720~1808)(영국의 주교. 대표작 <기사도와 로망스에 관한 문학>(Letters on Chivalry and Romance) 와 워턴(Thomas Warton, 1728~1890)(영국의 계관시인)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순문학(polite literature)'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Letters on Chivalry and Romance

허구 작품에 대한 그런 취향은 '형이상학파' 시대(17세기)와 문예 전성기(Augustan Age)(18세기 전반)에도 줄곧 살아 있었습니다. 발라드(이야기를 담은 민요) 또한 종종 다소 격이 떨어진 형태로 등장하기는 해도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유모에게서 발라드를 들었고, 저명한 평론가들이 가끔씩 발라드에다 찬사를 보냈습니다.

 

따라서 18세기의 중세 '부활'은 완전히 죽지 않은 것을 살려 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로를 따라 우리는 중세 문학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 앞에 흐르던 개울을 따라가다 수원에 이른 셈입니다. 그 결과, 로망스와 발라드가 중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과도하게 채색하게 되었습니다.

 

학자들을 제외하면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 중세의 이미지를 떠올리고자 하는 대중적 도상화 - 포스터, <펀치>(Punch) (영국에서 발행된 만화 위주의 주간지)의 농담 - 는 모험을 찾아 떠난 기사를 그려 놓고 성과 도움이 필요한 처녀, 용 같은 것을 배경에 잔뜩 배치합니다.

 

이런 대중적 인상에 대해서는 흔히 변호가 가능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로망스와 발라드는 중세 특유의 작품 또는 중세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힐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중세인들이 남긴 문학 작품 중에서 로망스와 발라드가 가장 많은 이들에게 계속해서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여러모로 정도 차이가 있는 비슷한 장르들을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기는 하지만, 로망스와 발라드는 총체적 효과 면에서 독특하고 대체 불가합니다.

 

-[폐기된 이미지], C.S LEW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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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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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중세를 권위의 시대라고 말할 때는 흔히 교회의 권위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세는 교회의 권위만이 아니라 여러 권위가 공존하는 시대였습니다.

 

중세 문화를 환경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때 중세 문화는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필사본들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중세의 모든 저술가는 가능한 한 이전의 한 저술가를 토대로 삼고 한 고전 저자(auctour) (작품들이 당대 문학적 지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고한 고전의 저자)를 따라갔는데, 라틴어 작가이면 더 선호했습니다.

 

이는 중세 시대와 야만 상태의 차이점이자 근대 문명과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야만인 공동체에서 문화를 습득하는 방법이라면 유구한 행동 양식에 참여하는 것과 입에서 나오는 말, 즉 부족의 나이 든 사람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지식이 결국 관찰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중세에는 주로 책에 의존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독서는 전체 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 진술에 유보 조항을 하나 달아야 하겠습니다. 중세의 뿌리는 책을 통해 주로 전해진 그리스-로마 전통뿐 아니라 북부와 서부에 위치한 '바바리안'들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바바리안'이라는 단어에 작은따옴표를 붙인 것은 오해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표현은 자칫하면 로마 제국의 국경을 압박했던 이들과 로마 시민들 사이에 인종과 예술과 자연적 역량 면에서 고대에 실제로 존재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있었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로마 제국이 무너지기 오래 전부터 시민권은 이미 인종과는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역사 내내, 인접해 있던 게르만족과 켈트족은 일단 로마에 정복당하거나 동맹 관계가 되면 로마 문명에 동화되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어려움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켈트족이 그 일에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지체 없이 토가를 입었고 금세 수사학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중절모까지 다 갖춰 입고 유럽인인 척하는 호텐토트(Hottentot)(남아프리카공화국 원주민 코이코이족을 가리키는 네델란드어로 '열등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동화는 매우 실질적이었고 흔히 영구적이었습니다. 몇 세대 만에 그들은 로마의 시인, 법률가, 장군들을 배출하게 됩니다. 두개골의 형태와 이목구비와 피부색과 지성 면에서도 그들은 그리스-로마의 기존 구성원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이해된 의미에서의) 바바리안들이 중세에 기여한 바는 그들을 연구하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평가될 것입니다. 법과 관습과 전반적 사회 형태에 관한 한, 바바리안적 요소들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특정한 예술이 특정한 방식으로 중요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학의 그 어떤 것도 문학이 사용하는 언어보다 더 본질적일 수는 없습니다. 언어는 고유의 개성이 있습니다.

 

다른 어떤 언어와도 다른 시각을 함축하고 정신 활동을 드러내며 울림을 갖습니다. 

 

어휘만이 아니라 - 영어의 'heaven'이 프랑스어의 'ciel'가 같은 의미일 수는 없습니다. - 구문의 형태도 독특합니다.

 

따라서 잉글랜드를 포함한 게르만족 국가들의 중세(와 근대) 문학에는 바바리안들의 언어에서 유래한 것이 만연합니다. 

 

라틴어에 밀려 켈트어들과 게르만 침략자들의 언어들이 거의 사라진 다른 나라들에서는 상황이 상당히 다릅니다.

 

중세 영문학의 경우, 프랑스어와 라틴어의 영향을 모든 면에서 충분히 감안하고 나면, 모든 문장이 그 어조와 리듬과 '느낌'에서 여전히 바바리안들이 남긴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와 앵글로색슨어의 관계를 문학과 무관한 "언어학적 사실일 뿐"이라고 무시하는 이들은 문학이 존재하는 양식 자체에 대해 충격적인 무신경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폐기된 이미지], C.W LEW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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