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철학자 #비트겐슈타인 #니체 사상'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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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반철학을 구성하는 세 가지 작업을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찾을 수 있으며, 이 점이 비트겐슈타인이 이 사안에 관한 한 그의 중요한 선배 격인 니체의 저작에서 "진리의 일부"를 발견했다고 한 바를 해명해 준다.

 

이러한 진리의 일부는 다음과 같은 명백한 차이들과 함께 변증법적 관계에 들어선다.

 

[1]니체의 철학적 진술들에 대한 계보학적 파괴에, 철학적 진술을 지탱하는 권력 유형에 대한 규명에, 이에 따라 그 기만을 삶의 도약(elan vital)의 형상으로 보는 분석에 상응하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편에서, 무의미(non-sens)를 언어적인 의미의 영역에 강제하는 부조리(absurdite)에 대한 규명이다. 

 

니체에게 형이상학은 무에 대한 의지이며, 비트겐슈타인에게 형이상학은 의미로 모습을 드러낸 의미 없음이다.

 

니체에게 그 질병의 이름은 허무주의이며, 비트겐슈타인에게 그것은 어쩌면 허무주의보다 더 나쁜 것, 즉 지껄임이다.

 

 

[2] 니체에게 은닉된 철학적 행위란 유형학적인 사제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그 행위는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에, 사유할 수 있는 것과 사유할 수 없는 것 사이에 그어진 경계선을 지우는 일이며, 한계들의 불명료성(non-clarte)을 향한 의지이다.

 

따라서 이는 또한 - 니체도 이에 동의 할 것인데- 어떠한 규칙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고 어떠한 차이에 의해서도 제한되지 않는 꿈결에서나 말해질 수 있는 언어를 맹목적이고 격정적인 방식으로 실행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도 하다.

 

[3] 니체가 고지한 행위는 원정치적인 것인데, 왜냐하면 그 순수한 긍정[단언](affirmation)은 결국 사제가 지닌 세속적 권력의 파괴이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의 경우, 고지된 행위는 원미학적인 것인데, 이는 말할 수 있는 것의 한계에 관련된 모든 명료성의 원리(그 자체가 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가 예술적 패러다임에 대한 접근법이자 내면적 아름다움으로서의 신성한 삶에 대한 접근법이기도 한 순수한 보여줌(monstration)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윤리학과 미학은 하나이다."([논고], 6.421)

 

이는 한참 뒤에 나온, 거의 유언에 가까운 선언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많은 단념과 방황을 겪은 후에 본질적인 것이 되돌아오는 법이다.)

 

"철학이 시로 쓰여야만 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철학에 대한 나 자신의 태도를 요약했다고 생각한다."

 

-[반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알랭 바디우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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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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