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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합리적인 사람에게는 파기자가 없다>

-> (이게 앨빈 플랜팅가의 주장이다.....음....유신론의 파기자가 되기는 좀 애매하긴 하다...그러나 기독교 믿음이 이야기하는 사랑과 능력을 갖춘 인격신과 고통을 화해시키는 작업은 상당히 어렵다. 결국 앨빈도 명확한 답은 내리지 못하고, 개인의 신앙 고백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우리 인간이 알아낼 수 없는 한계의 범주인 것일까...)

 

우리가 이런 주장 - 악을 분명히 살펴보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파기자를 발견한다는 주장-을 고찰한다고 가정해 보자.

 

먼저, 믿음의 파기자는 내가 믿는 것의 나머지에 의존한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나의 새로운 믿음이 옛 믿음의 파기자인지 여부는 내가 달리 믿는 것이 무엇이며 나의 경험이 어떠한지에 의존한다.

 

나는 그 나무가 단풍나무라고 믿는데, 여러분은 내게 그 나무가 실은 느릅나무라고 알려 준다.

 

만일 내가 여러분이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며 진실을 말하기를 목표한다고 생각하면, 그러면서 내가 여러분이 나무에 관하여 나보다 훨씬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혹은 여러분이 스스로 진실이라 여기는 것을 말하고 있을 확률이 50 대 50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이 한 말은 그 나무가 단풍나무라는 내 믿음을 파기할 것이다.

 

세계가 보여 주는 악의 공포를 완전히 알게 되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유신론 믿음의 파기자가 될 수 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먼저 논증하고 싶은 것은, 만일 고전적 기독교가 참이라면, 철저히 합리적인 사람, 그 인식 능력이 올바르게 기능하는 사람에게는 악을 인식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파기자가 못 된다는 사실이다.

 

고전적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 때(어쨌든 아퀴나스/칼뱅 모델에 따르면), 여기에는 신의식이 올바르게 기능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런 과정이 올바르게 기능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친밀히, 자세히, 생생하게, 분명하게 아는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 영광, 선하심, 능력, 완전성, 경이로운 매력, 달콤함을 깊이 알 것이다.

이미지는 그냥 퍼온거고, 아래 내용과는 무관함.

 

그리고 이런 사람은 자신의 존재에 관하여 확신하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의 존재도 확신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 하나님이 거룩하고 불타는 열심으로 악을 증오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 하나님의 세계에 이런 악이 존재함으로 인해 당황할 수도 있으나, 그래도 하나님 같은 인격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아마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도 악과 고통에 직면하면 하나님이 왜 이런 것을 허용하시는지 자문할지도 모른다.

 

악을 보여주는 사실은 행동하게 만들고 탐구하게 만드는 자극제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그 답을 찾지 못하면, 자신이 모르는 이유가 틀림없이 하나님께 있다고 결론지을 것이다.

 

-> (신자에게 이런 마음가짐 말고 달리 이 문제를 영리하게 피할 방법이 없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라는 인격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추호도 의심하려 하지 않는다.

 

아퀴나스/칼뱅 모델에 따르면, 철저히 합리적인 사람에게 악의 존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파기자가 되지 않는다.

 

-[8부]에 계속-

-[지식과 믿음], 앨빈 플랜팅가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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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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