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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달라스 윌라드

출판 복있는 사람

발매 2007.09.05

 

 

 

걸작 중에 걸작이다. 책이 600page가 넘고 두껍다. 그리고 다루고 있는 주제도 광범위하다.

 


 

  하나의 주제로 소급되거나 환원되는 느낌이 아니라 각 챕터가 고유의 가치를 지니며 알아서 뛰어노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책을 더 꼼꼼하게 독해한다면 하나의 분명한 주제로 달려가는 글들을 목격했을 것 같다)

 


 

그런데,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서 감탄이 나오고, 주목하게 된다.

 


 

이 책에서 느꼈던 감동을 조금이나마 전달해 주기 위해 추천사를 몇 개 인용해 보겠다.

 


 

"사실 나는 [하나님의 모략]을 디트리히 본회퍼, 존 웨슬리, 장 칼뱅, 마르틴 루터, 아빌라의 테레사, 빙겐의 힐데가르트, 나아가 토마스 아퀴나스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진귀한 저작과도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싶다. 만일 주님의 재림이 늪어진다면 이 책은 다음 밀레니엄을 위한 책이다."

- 리처드 포스터-

 

 


 

"나는 여태껏 성경 외에 [하나님의 모략] 만한 책을 만나 보지 못했다. 주님 앞에 겸손히 부복하여, 그분이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그의 나라를 살아내도록 간절한 열망을 품게 한, 내 평생의 책 가운데 하나다." -고 옥한흠 목사-

 

 

 


"캠퍼스 선교단체 대표로서 젊은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하나님의 모략]을 추천한다. 이 책은 우리의 신앙관과 제자도, 인생의 목적에 대해 성경적 원리와 실제적인 지침을 제공해 주는 책이다.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김중안 한국 IVF 대표-

 

 


"이 책은 다른 경건서적들처럼 잔망치로 톡톡 치는 정도가 아니라, 해머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준다. 오늘날 피상적인 '소비자 기독교'에 익숙해 있는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와 더불어 묵상하며 읽어야 할 지침서이다."

-신국원 교수-

 

 

 

 


추천사만 봐도 이 책의 진가가 드러나는 신기한 책이다.

 


 

사실, 버릴 만한 요소가 거의 없어서 이 책 전체를 이곳에 실어 놓고 싶다.

 


 

하지만 지면에 한계가 있으니 간단히 몇 가지 지침만 제시하겠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3장: 현대 문화의 모습을 진단하고, 오늘날의 기독교와 교회가 처해 있는 여러 현상과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세계에서 누리는 풍성한 삶을 보여준다.

 


 

3~7장: 산상수훈에서 발견되는 예수의 핵심 가르침을 살펴봄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8~10장: 예수 학교의 제자들이 도제가 되어 변화받는 길을 제시한다.

 


 

기억에 남기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몇 가지만 나누겠다.

 


 

[1] 행함 없는 믿음에 대한 그의 고뇌

 


 

"용서받았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영생의 선물이 그 정도로 그친단 말인가?

 


 

"우리는 완전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용서만 받은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한 자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용서받은 자라는 것은 명백히 밝혀야 할 내용이다. 용서의 조건이 완전함에 있지 않다는 것도 분명히 알려야 한다. 그러나 이 슬로건의 의미가 과연 거기에 있을까?"

 

 


"우리는 정말 테레사 수녀로부터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내면이란 누구나 다 동일하다고 생각해야 할까? 인간의 진정한 욕망은 다 똑같은데 그중에 누구는 의지가 굳거나 '재수가 좋아' 거기에 빠지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이 정작 성품과 영성을 좌우하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도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옳을까? 예수가 우리의 '현실 생활'에는 사실상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그의 치밀한 고뇌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나서 그는 우익의 개인에 치우친 복음과 좌익의 사회 정의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좌익의 복음을 소개하면서 양 극단의 한계를 간파해 내며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두 복음의 관심은 죄책이나 구조악(사회적 죄) 및 그 해결에 있다. 그것이 전부다. 그들의 실제 삶이 복음 없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양 극단에 서서 신앙활동을 하는 이들은 정말 '진리'를 말하지만, 예수님과 전혀 상관 없는 삶을 살아간다.

 

 


 

[2] 팔복에 대한 설명

 


 

"팔복은 복 받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다. 팔복은 우리 쪽에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좋아하시거나 인간에게 유리한 조건들을 제시해 주는 것도 아니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핍박받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더 형편이 좋다는 말은 사실상 어디에도 없다. 여덟 가지 조건이 하나님이나 사람 앞에서 행복을 얻는 길로 제시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팔복은 '혁명 이후' 누가 높은 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지적도 아니다. 팔복은 예수와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지금 가까이 와 있는 하나님 나라를, 눈앞의 현실 상황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예시한 말씀이다. 인간이 모든 희망을 포기한 현실 상황들 속에서 과연 하나님의 천국 통치가 예수 안에서 임했음을 보여주는 증거 사례를 팔복은 하나하나 꼽고 있다."

 


 

-> 기존의 팔복에 대한 서술과 상당히 다른데,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은혜가 넘친다.

 


 

"팔복은 영적 거인들의 목록이 아니다. 종종 이들 '복 있는' 자들로부터 남다른 품위와 영광이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것은 그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거하는 하나님 나라의 광채다."

 


 

-> [하나님의 열심]에서 느꼈던 하나님만이 드러나는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진다.

 

 


 

[3]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것은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것 정도가 아니다. 좀더 깊이 들어가서, 그분은 '가진'자, 하나님 편에 '있는'자, '복 있는' 자를 외적 조건을 보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다. 하나님 나라와 크고 작은 인간의 나라는 오직 그 마음 속에서만 하나로 맞물릴 수 있다. 마음대로 문화적, 사회적 반경을 그어보라. 하나님은 반드시 뚫고 나갈 길을 찾아내실 것이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눅 16:15)

 


 

[4] 율법과 영혼

 


 

"예수는 인간 영혼의 구조를 정확히 아시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 자체에 중점을 두시지 않고 행동의 근원을 주로 다루신다. 따라서 그분은, 이미 지적한 것처럼 율법을 궁극적 답으로 삼으시는 백해무익한 일을 피하신다. 사람들은 한사코 그렇게 생각하지만 인간 실존의 문제는 잘못된 행동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분은 잘 아셨다. 그것은 증상일 뿐이다. 물론 그 자체로도 적지 않은 악을 유발할 때도 많이 있다.

 

 


행동의 근원을 살피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그분의 말씀의 골자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5:20), 즉 하나님 나라의 충만함을 누리며 살아가려면 인간적으로 꾸며내는 종교 인사들을 능가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율법이 말할수 없이 선하고 소중한 것이며, 그 안에 사는 삶이 영원한 삶이라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위축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율법은 의의 근원은 아니나 영원히 의의 경로다"

 


"율법의 행위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밖에 없는 사람,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잔을 안은 닦지 않고 겉만 닦기는 쉽지만 안을 깨끗이 닦으면서 겉만 더럽게 놓아두기는 어렵다. 안을 닦으면 자연히 그 과정에서 겉도 깨끗해지게 마련이다. 손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해도 미세할 뿐이다."

 


 

​-> 참 '행함'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고, '믿음과 행함'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멋지게 서술하고 있다.

 

 

[5] 분노 (진보가 외치는 거룩한 정의로서의 분노를 포함)

 


 

 "오늘날 영향력을 쥔 자들은, 우리는 반드시 분노해야 하며 사회악에 항거하려면 분노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부추기고 있다. 이런 개념은 우리의 사고 깊숙이 뿌리를 내린다. 언젠가 나는 가정 문제로 어느 그리스도인 부부를 상담하면서 아이를 홧김에 훈육하지 말라고 권한 적이 있다. 그들은 놀라며 물었다. "감정 없이 벌을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자신들의 분노에 자기 의가 섞여 있다는 것을 이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느 유명한 사회 인사는 절망과 분노야말로 정의를 위한 싸움의 필수 요소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가르치는 자들은 결국 섣부른 말한 마디에 몇 배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사실, 시민 상호 간의 분노와 원한으로 갈수록 병들어가는 이 나라에서 우리는 이미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게다가 분노와 원한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하게 옹호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분노로 되는 일도 없고 분노가 없어 악화되는 일도 없다. 오히려 분노에 깔려 있는 자기 의가, 상대의 분노와 자기 의만 더욱 유발시킬 뿐이다. 물론 가정이든 국가이든 잘못된 일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당연히 분노가 쌓여 결국 행동으로 터져 나오게 마련이다.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며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 밖에서는 심지어 필요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해답은 분노를 품는 것이 아니라 인내의 사랑으로 잘못 바로잡는 것, 더 이상 실제 혹은 가상의 잘못을 더하지 않으면서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다. 반면, 분노를 품고 키우는 것은 "마귀로 틈을 타'게 하는 것이다 (엡 4:26~27). 마귀는 그 틈을 살릴 것이고 그 대가는 지옥이 될 것이다. 의지적 분노에 매번 담겨 있는 한 조각 달콤한 자기 의는, 상대방의 자기 의의 반응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몰고 온다. 그리고 분노가 지배하는 한, 그 악순환은 끝이 없다."

 


 

-> 진보의 행보를 일견 지지하면서도 가장 우려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이와 같이 그의 저서는 훌륭한 통찰력의 보고와 같다. 더 많은 것을 나누고 싶지만 나머지는 이 책을 직접 읽으며 얻어가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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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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