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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정독한다 해서 영어 실력이 늘거나, 영어 점수가 높게 나오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언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토대를 잘 훈련해 둔다면 훗날 다양한 언어를 공부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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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끈 한 영어 단어장의 광고 카피를 본 적이 있다.

"영어 고전 속의 문장을 분석하면 the라는 단어는 수천 번 나오고 indisputable이라는 단어는 두 번 밖에 안 나오니 많이 쓰는 단어 위주로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the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데 얼마나 깊은 사유와 노력이 필요한지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자주 쓰이는 간단한 단어일수록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보통 한 단어에 2~3일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영어 단어의 성격이 이런데도 하루에 50~100개의 단어를 외우면 어떻게 되겠는가?

​많이 쓰는 단어 위주로 공부한다는 생각은 옳으나 'the-정관사'하는 식으로 단순하게 외우고 넘어가는 방법은 쓸모없는 공부다.

Can, have, put, take 등의 단어는 사용법이 매우 복잡하며,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영어 문장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Up, on, about, to 등의 단어는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공간 관념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며, will shall, would 등의 단어는 우리와 전혀 다른 시간 관념에서 출발했다.

이런 단어의 뉘앙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영어 사용자가 계속 만들고 변형시키는 엄청난 양의 전치사와 동사 중첩을 이해하지 못해, ​'I got fucked over'가 왜 '사기를 당했다'라는 의미를 가진 문장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정말로 영어를 잘하려면 '안다'와 '할 줄 안다'를 구분해야 한다. 한국인에게 ambition의 뜻을 물으면 '야망'이라고 곧장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아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지칭해 "저 사람은 분수에 안 맞는 야심가야"라는 한국어 문장을 "He is over/ambiti/ous"라는 영어 문장안에 굴곡시켜 꽃아넣을 줄 모르면 사실 이 단어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국인에게 '포근하다'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곧바로 대답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인이 어떤 분위기를 느끼면 '포근하다'의 ㅗ 발음을 ㅜ 로 굴곡시켜 "참 푸그~은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면 대부분 의미가 통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것이다.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은 이처럼 서로 다르다.

 

​우리는 영어 단어를 공부할 때 아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알기는 많이 안다.

​그러나 할 줄 아는 것에 대해 배우거나 생각해 보지 않아 할 줄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머리는 우리가 시킨 대로 작동했을 뿐인데, 단어를 그렇게 열심히 외우고도 영어가 트이지 않으면 '나는 머리가 나빠' 하면서 죄 없는 머리를 탓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한국어인 '포근하다'의 의미를 말로 잘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포근하다'가 가진 복합적인 느낌과 감정을 한마디로 딱 잘라서 표현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ambition을 한마디로 딱 잘라 '야망'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그 단어의 모호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를 잘 안다는 것은 그 단어의 모호함을 안다는 것이고, 단어가 가진 모호함을 모르면 그 단어를 실생활에서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언어뿐 아니라, 운동이건 디자인이건 필기와 실기의 차이고 이론과 실제의 차이다.

단어​의 모호함에 대해서는 여러 철학자도 언급한 바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단어가 언어 속에서 의미 있게 사용된다고 해서 꼭 그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게임'을 예로 들어 그의 이론을 이해해 보자.

테니스 한판을 'a game of tennis'라고 부른다고 해서 게임을 두 사람의 경쟁이라고 정의한다면, 혼자 하는 카드놀이인 '솔리테어(solitaire)'는 게임이 아닐 것이다. 반대로 게임을 유희라고 한다면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승리를 쟁취하려고 하는 올림픽 대회는 게임이 아니겠지만, 분명히 영어로는 'Olympic Games'라고 부른다.

 

Great Game of Life (인생이라는 거대한 하나의 게임)에 쓰이는 게임과, 닌텐도 게임에서의 게임이 같은 개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게임이라 단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언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정확한 개념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든 '저건 왠지 게임 같다'라고 느끼는 모든 행동을 '게임'이라는 단어 의미 상자 안에 다 던져 넣었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왠지 저건 게임 같다'라는 기준을 '가족 같은 유사함(Familienahnlichkeit)'이라고 정의했다. 아들과 아버지를 보면 '왠지 닮았다'라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기준이 모호하다.

 

다시 게임이라는 예로 돌아가 보면, '게임은 ~이다'라는 문장은 애초부터 만들 수 없음에도 우리는 게임의 의미를 이해하고 언어 속에서 사용하는 데 큰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게임이라는 단어는 버섯이나 이끼처럼 계속 의미를 확장하며 가지를 쳐 나가는데, ​ 이 단어는 원래 올림픽처럼 여러 사람이 모여서 경쟁하는 것에서, 어떤 규칙을 따라 승부를 건 후 승패를 가르는 모든 것(인생은 게임이다), 더 나아가 규칙에 얼마나 순발력 있게 잘 맞추어 어떤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느냐를 테스트 하는 모든 것(테트리스나 체스같이)으로 의미가 광맥처럼 이어진다.

​그렇다면 영어를 배우는 사람은 '게임'이라는 단어를 어떤 한국어로 번역할 것인가?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인은 매우 단순한 전략을 사용했다.

그냥 '게임'이라는 단어를 통째로 수입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단어의 모호함이다. 이 모호함을 이해 못 하면 자꾸 한 단어에 '여러 의미'가 있다면서 그 의미까지 다 외우려고 하는데, 그렇게 외워도 또 다른 상황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그 단어를 만나게 되므로 '아는 단어인데 해석이 안 된다'라며 머리를 긁적일 수 밖에 없다.

-[플루언트] 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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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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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를 단순하고 생각 없이 하는 게 아니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비법이 담긴 책이다.


영어를 단기간에 마스터 시켜준다는 거짓을 배격하며, 영어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를 바꿈으로써 저절로 영어 공부가 되어지는 비법을 담은 야심찬 책.


일단 이 책의 구성이 상당히 독특한데 일단 '영어'라는 언어가 전세계의 공용어가 된 배경과 역사적인 맥락을 추적한다.


그리고 '한국어'와 '영어','한국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를 비교, 대조하면서 우리에게 왜 영어가 어려운지를 사회,문화,역사적 맥락에서 추론해 낸다.


영어 문장만이 지닌 독특한 문법의 비밀을 파헤치는가 하면, 단어공부는 '외워서 하지 마라' 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제시해 준다.

 

 


여러가지 기초 전제들을 이 책에서 잘 배웠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영어 실력을 쌓아 보자고 이야기 하면서, 먼저 문화 독해력을 키우고, 시를 낭독하며 고전을 잘 읽고 서양 철학까지 섬렵해야 진정한 영어의 뉘앙스와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이 쯤 되면 당신도 느끼겠지만 이 책은 기존에 시중에 많이 나와 있던 '영어 공부 잘하는 법' 류의 책과는 그 접근법 자체가 다르다.


그러다 보니 책 한 권 읽고, 단어도 많이 외우고 영어 성적도 올리고 싶었던 학생들에게는 실망이 클 책일 수도 있다.

여러가지 설명은 잔뜩 들어 있지만 이걸 읽는다고 해서 영어 점수가 1점이라도 오를 만한 책은 아닌 것이다.

 

(영어 관련 문법이나 예시 문제도 거의 없고, 계속 서술형 글만 잔뜩 들어 있으니, 이게 과연 영어공부를 위한 책인지 의심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영어'의 '기술'을 익히는 게 아니라 '영어'라는 '언어'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이야기하는 관점은 가히 혁명적일 것이다.


영어 공부만 20년 이상 해온 나로서는, 아직도 영어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유에 대해 내심 궁금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책은 그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제시해 주는 책이었다.


인문학적으로, 체계적으로, 포괄적으로 언어를 마스터 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 책이 주는 내용이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고, 이 책이 말하는 바를 단숨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질 것이다.


결국 영어 공부에 왕도는 없다지만, 처음 방향성을 이 책이 제시하는 대로만 지닐 수 있다면 당신의 영어 공부는 이미 절반 정도 성공한 것이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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