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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많이 자른 존 스토트 목사님의 견해입니다.

(더 풍성한 논의가 이뤄졌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성경적으로 다른 관점을 주장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나 현 시점에서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유용성은 두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고안된 것 중 가장 지혜롭고 안전한 정부 형태다. 이는 그것이 우리 인간됨의 역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창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즉, 인간의 존엄성)

 

그것은 사람들의 동의 없이 그들을 통치하기를 거부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그들에게 책임 있는 역할을 부여할 것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타락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즉, 인간의 부패성).

 

그것은 한 사람이나 몇 사람의 손에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고, 권력을 분산시켜 인간들을 각자의 교만과 어리석음에서 보호하기 때문이다.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그것을 간결하게 표현했다.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불의를 향하는 인간의 성향은 민주주의를 필요하게 한다."

 

가톨릭 철학자 리처드 노이하우스(Richard Neuhaus)는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는 타락한 창조 세계에 적절한 통치 형태다. 그 세계에서는 교회를 포함해서 어떤 사람이나 제도도 한 치의 오차 없이 하나님을 대변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과 제도가 불완전하게 파악한 초월적인 목적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겸손의 필연적 표현이다...

 

물론 민주주의는 불만족스럽다. 하나님 나라 외의 모든 체제는 불만족스럽다. 민주주의의 임시성과 불완전성을 불평하는 것은 정치적 건강을 나타내는 표시다.

 

세상을 정돈하는 진정 만족스러운 방식이 무엇인지 찾아내려는 열망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이며, 그 열망을 정치적 영역에 쏟아붓는 것은 위험할 정도로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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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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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 논쟁'은 기존의 관점과 N.T. Wright 등의 새 관점을 같이 살펴보고, 제 3의 대안을 제시한 권영경 교수님의 의견까지 잘 참고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종말론적 유보의 구조를 띱니다.

 

그러므로 구원(의인됨) 의 "첫 열매" 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이제 진입했다는

말입니다. 그 구원(의인됨)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진입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곧 "의인" 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우리의 구원(의인됨) 의 완성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진입한 "의인" 의 상태에 머무른다는 것은 우리의 실존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에부과된 의무를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 모든 가치 판단과 윤리적 선택의 순간마다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오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 ( 즉 "은혜") 로 , 그리고 그것을 "믿음" 으로 "의인됨" 은 윤리적 의무와 분리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의" (즉 "은혜") 로 우리가 "의인" 이 되었으므로 , 우리는 "의인" 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은혜로만" 그리고 "믿음으로만" "의인됨" 의 복음을 강해하고는(롬 1:11 , 갈 1:4) ,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우리의 "믿음으로" "의인"된 우리가 어떻게 "의인" 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힘주어 가르친 것입니다.

(롬 12:15 , 갈5:6).

 

사단의 죄와 죽음의 통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옮겨졌으므로 우리는 마땅히 사단에게 순종해서 살지 말고 , 하나님께 순종하고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이 윤리적 권면의 부분을 여는 첫 마디(롬 12:1) 의 "그러므로" 에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우리의 "믿음으로" "의인" 이 되었기 때문에 ,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이 통치하는 "이 세대" 의 정신과 가치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변하여 좇아야 하며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다른 모든 종교들은 "의를 행하라(명령형) , 그러면 의인이 될 것이다(서술형)" 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너는 의인이다(서술형) , 그러므로 의를행하라(명령형) " 라고 가르칩니다. 개신교가 인간은 자신의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인" 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과 그러기에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인" 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전반부를 잘 표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전반부의 구원의 서술은 후반부의 윤리적 명령을 구조적으로 동반한다는 사실을 망각하여 , 하나님의 "은혜" 를  "싸구려 은혜" (본회퍼 왈) 로 만들고 무효화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 이 되었다는 것은 "그러므로 의인으로 살아야 한다" 는 요구와 함께 , "그러므로 이제 의인으로 살 수 있다" 는 가능성도 포함합니다.

 

우리가 사단의 죄와 죽음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옮겨졌기 때문에 , 우리는 숙명의 힘으로 오는 사단의 죄의 통치를 거부할 수 있고 , 우리의 믿음을 유발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분변하게 하고 그 뜻에 순종케 하는 하님의 영(성령) 에 힘입어 하나님께 올바른 순종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성령의 인도하시고 힘 주심에 따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우리는 "육신의 열매들"(갈 5:19~21) 이 아니라 "의의 열매들" (빌 1:11) 또는 "성령의 열매들"(갈 5:22~23) 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적용하여 우리를 "의인" 되게 하는데 , 이 "은혜" 는 "은사" 로 구체화하고 개별화하여 우리로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게 하는 힘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그의 재판석 앞에서 우리가 "첫 열매" 로 받은 "의인됨" 이 재확인되어야 할 것을 상기시키면서(고전 3:13~15 , 고후 5:10) , 우리가 믿음으로 진입한 "의인" 의 상태에 계속 머무르며 "의의 열매들" 을 맺어감으로써 그 최후의 심판석에서 "흠이 없는" 자들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고전 1:7~8 , 빌 1:9~11) . 이것은 최후의 심판석에서의 우리의 "의인됨" 의 재확인에 대해 우리의 책임을 강력히 상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불의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 꾸짖으면서 , 그들이 계속 죄악을 저지르면서 살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 위협도 합니다.(고전 6:9~10) .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 즉 사단의 통치 아래서 지은 죄에 대해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옮겨져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이 (고전 6:11), 계속 불의를 행하고 죄를 짓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진입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의") 속에 머무르지 않고 , 도리어 그곳에서 튀쳐 나온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부과하는 의무-즉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일을 하지 않고 , 도리어 사단에게 돌아가 그의 뜻을 행한다는 뜻이 아닌가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 머무르지 않은 자들 , 곧 하나님 나라 속에 머무르지 않은 자들, 그의 통치를 받지 않은 자들이 최후의 심판 때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즉 어떻게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인간들을 바라보았을 때 이 점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

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동시에 성령으로 계속 우리를 "의인" 의 상태에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신실성(곧 하나님의 "의" 로우심) 을 상기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우리의 구원의 완성에 대해 확신을 주고 자기도 위안을 받습니다(롬8:1~39 , 고전 1:9 , 빌1:6).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의로우심" , "은혜") 에 대한 신뢰에서 오는

"안도함" 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석에 서야 함을 늘 생각하면서 "두렵고 떨림" 의 자세로 "의인" 의 삶을 사는 것 , 바로 이 두 측면들이 서논리적 긴장을 일으키면서 우리에게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건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 간의 논리적 긴장은 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긴장의 요소를 풀어 버리려고 하다보면 결국 한쪽을 경시하게 됩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전자(안도감)가 없어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그러나 후자(두렵고 떨림)가 없어서 방종하며 "의의 열매" 를 맺않는 것도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정통적인 옛 관점 신학의 견해를 무난하게 잘 따라가는 견해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N.T WRIGHT의 새로운 '칭의'에 대한 논의도 더 다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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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존 스토트

출판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발매 2010.06.01

 

 

소천하신 존 스토트 목사님의 마지막 책이다.

 


  평생을 하나님의 종으로 힘써 왔으며, 세상 속에 뛰어들어 다양한 현대 사회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진리를 선포했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책이 [제자도] 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스토트의 명성은 자자하다.

 


 

  빌리 그레이엄은 그를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성직자"라고 칭했고, 존 폴락은 "사실상 전 세계 복음주의의 신학적 리더"라고 그를 평가했다.

 


 

  [Time] 지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했을 정도이니 그가 기독교 계에서 더 나아가 세계에 미친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제자의 참다운 핵심 자질 8가지를 제시하는데

 


 

  불순응, 닮음, 성숙, 창조 세계를 돌봄, 단순한 삶, 균형, 의존, 죽음

 


 

이 바로 그것이다.

 


 

[한 챕터씩 간략하게 살펴보자]

 


 

불순응: 세상에서 도피하여 거룩함을 보존하려 해서도 안 되고, 세상에 순응하여 거룩함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는 구호 아래 그는 다원주의, 물질주의, 윤리적 상대주의, 나르시시즘에 불순응 하라고 촉구한다.

 


 

닮음: 이 챕터는 율법주의 토양에서 읽으면 아무 생명력이 없는 글이 되지만, 참다운 십자가 복음에 서서 읽는다면 굉장히 중요한 자질임을 알게 된다.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려면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읽는다면 굉장히 은헤가 될 것이다]

 

 


-> 스토트도 이 챕터의 마지막에 '성령의 내주' 라는 섹션을 만들어서 이를 통해 '닮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하며, 이 챕터의 가치를 극대화시켜 준다.

 


 

 

성숙: 성숙이란,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순종함으로 그분과 성숙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 이 부분을 이루기 위해 그는 그리스도의 힘으로만 전력투구하라고 촉구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도 바울이 신적인 힘을 입을 때조차 수고하며 애썼던 점을 강조하며 치밀한 균형감 속에서 '성숙'을 이루라고 말한다.

 

[스토트의 깊은 영성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창조 세계를 돌봄: 청지기적 사명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데 그는 주의점을 제시한다.

 

[1] 자연을 신격화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2] 자연을 착취하는 반대 극단도 피해야 한다.

 

그는 이 챕터에서 자연 생태계를 지켜내는 환경 이슈와 동시에 문화 명령까지도 성취해야 하는 복음주의적 사명을 주장함으로써 기독교인이 평생을 씨름해야 할 중요한 화두를 적절하게 제시한다.

 


 

단순한 삶: 좀더 적은 돈으로 살고 좀더 많이 나누기 위해 우리의 수입과 지출을 재점검할 것과 가난한 이웃을 도울 때도 원조보다는 개발을 도움으로써 그들이 자력으로 생존해 나가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영성이 결코 이론에 그치지 않고, 끊임 없이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갔음을 잘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균형: [1] 개인적인 제자들로 자라는 일과 공동으로 교제하는 일 둘 다로 우리는 부름 받았다. [2] 예배와 일 둘 다를 하도록 부름 받았다 [3] 순례자와 시민 둘 다로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다.

 


 

요약하면 우리는 개인적인 제자이면서 교회의 구성원이며, 예배자이면서 증인이며, 순례자이면서 시민인 것이다.

 

[이러한 치밀한 균형점을 찾아내고 선포할 수 있다는 건 그의 연륜과 지혜의 깊이가 얼머나 무르익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의존: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챕터다. 그 분의 계획은 우리가 점점 더 그분을 의존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이 부분은 신앙의 초보들이 들으면 황당할 수 있겠지만, 십자가 복음의 본질을 암시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 분만을 의존하며, 나를 신뢰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그분과 하나가 되고, 참된 겸손을 얻게 된다.

 


 

죽음: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생명을 얻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박해와 선교와 순교를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챕터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가장 큰 두려움으로 여기지만 그리스도인에겐 죽음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니며 나의 죽음이 더 많은 생명을 싹 틔울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

을 걷게 만드는 소중한 동반자가 된다.

 


 

이와 같은 깔끔한 책의 마무리는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 가장 정확하고 명료하게 보여준다.

 


 

값진 책이다.

 

 

                                               존 스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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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존 스토트

출판 IVP

발매 2011.03.14

 

 

 

  개정판이 나오면서 상당히 깔끔한 표지로 재등장했다. 스토트 목사님이 소천하신지 그리 많이 지나진 않았는데 그의 역작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현실 참여적이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굳건히 살아가는 삶을 강조하던 그의 정수가 담겨 있는 책인 듯 하다.

 


 

  인권, 환경, 평화, 생명공학, 부의 불균형, 실업, 다문화 사회, 동성애, 페미니즘 등 다양한 사회 이슈들을 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직면하는 그의 모습은 교회 안에만 갇혀 있는 시야가 좁은 목회자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한 명의 제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책의 말미에는 스터디 가이드가 있기 때문에 한 챕터를 읽고 나서 소그룹 모임을 통해 토의문제를 같이 풀어 보고, 고민을 나누는 유익한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스토트 목사님이 얼마나 많이 연구하고, 고민하고 달려 왔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존 스토트, 퍼옴)


 

  각 챕터 자체가 굵직하고 중요한 논의이며 많은 공부가 요구되기 때문에 감히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색깔을 지니고 있는데 스토트 목사님은 용감하게 각 영역에 뛰어들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과 지식들을 거침없이 활용해서 기독교의 진리를 세워 놓는다.

 


 

  세부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면, 스토트 목사님의 의견에 반대하는 부분이 나올 수도 있고 아쉬운 챕터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책 한권으로 성공리에 쓰여졌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벅차 오르는 책이다.

 


 

  500page가 넘는 분량이기 때문에 읽어내는데 시간은 좀 걸리지만 각 분야에 대해 기독교적인 관점이 궁금한 이들은 해당 부분을 발췌해서 읽어도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떠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떠오른다.

 


 

  힘겹게 각자의 위치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명을 지켜내고 살아가고 있을 용사들에게 작은 위로와 힘이 될 수도 있는 책이고, 이미지가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여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어진 한국 기독교 계에도 이와 같은 목회자가 더욱 많아지기를 기도하게 된다.

 


 

  세상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꼭 소장하고 읽고 또 읽으며 고민해 보자.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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