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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여전히 권위주의자가 많은 사회이다.

좌에도 우에도 많다.

리더십 연구의 대가 맥그리거 번스(James Mcgregor Burns) 교수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을 연구했다.

 

그가 루스벨트 대통령이 교활한 여우와 용맹스러운 사자의 모습을 다 가졌기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는데,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 리더십에 가장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즉, 이런 리더십이 권위주의 문화에서 먹힌다는 말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레이건은 별명이 '테플론(teflon) 대통령'이었고 오바마는 '벨크로(velcro) 대통령'이었다.

 

 

테플론은 음식이 팬에 들러붙지 않도록 하는 코팅이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레이건은 ​박근혜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주로 사용하며, 사과를 하지 않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면 국민이 "맞아, 저런 노인네가 뭘 알았겠어. 우리 불쌍한 대통령"​이라면서 보호해 줬다.

벨크로는 알다시피 등산복 같은 데 붙이는 찍찍이인데, 이는 주위의 먼지를 다 끌어들인다.

 

​오바마가 사과할 때마다 미국민은 "그래, 당신이 잘못했죠? 다 당신 탓입니다."

라고 했다는 뜻이다. 즉 권위주의자들은 사과를 잘 하는 대통령을 우습게 본다.

 

​오바마도 임기 중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기에 퇴임 무렵의 지지도가 임기 중보다 더 높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똑같이, 임기 중에는 걸핏하면 오바마 탓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이유는 오바마 대통령이 사과를 잘 했기 때문이다. 신좌파는 내 행동이 남과 달라서 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했다면, 비록 내가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의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 사과가 내 정체성을 손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왕따의 정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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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총선을 앞두고 정청래 의원이 최고위원이던 당시, 주승용 의원에게 한 공갈 발언이 문제가 됐다.

당시 주승용 의원은 최고위언을 사퇴하겠다고 협박하며 문재인의 당대표 퇴진을 수시로 요구했다.

정청래 의원이 사석에서 정말로 사퇴할 거냐고 물어봤단다. 그랬더니 "내가 미쳤냐.

 

최고위원 되려고 얼마나 돈을 많이 썼는데 사퇴를 하냐?"고 했단다. 정청래 의원의 공갈 발언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공갈한 사람이 더 나쁘지 '왜 공갈치느냐'고 한 정청래 의원이 더 나쁜가? 사실 '공갈'이라는 용어는 사전에도 등재된 표준어다.

 

 

 

​다만 '공갈하다'가 표준어이고 '공갈치다'는 그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소위 진보언론의 사설에서 '언어의 품격'을 운운하며 정청래 의원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좌파 언론이 반문의원들의 비민주적이고 패권적인 계파 행동을 문제 삼는 건 본적이 없다.

소위 진보언론은 ​자신들과 신좌파 간 문화와 이념의 차이로 친노와 친문에게 가혹했던 것은 아닌지 한번 성찰의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그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이 책의 목적은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놓고 다름을 인정하자는 것이지 비난하고 분열하자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언론이 성찰을 해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들의 판단을 전적으로 존중할 생각이다.

그렇게 떳떳하면 한겨레신문의 하어영 기자는 <전국구>에 다시 출연해 내 비판에 반론할 것을 부탁한다.

 

언론인은 남에 대한 비판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인데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는 왜 그리도 인색한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민주사회 최고의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인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이유는, 그들도 자신에 대한 비판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에 대한 비판을 고깝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성찰의 기회로 삼듯이 말이다.

​정봉주 전 의원이 방송을 하는 도중 내게 이런 글귀를 보내주었다.

 

내 방송이 연대의 시작이 아니라, 더 큰 분열을 가져올까 봐 걱정했더니, 그런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다. 독일 유대인 철학자 장 아메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자신들의 극단적 대립 속에서도 공동의 과거를 극복하는 데 성공하려면 그에 대해 침묵하고 망각하는 대신 희생자와 학살자 사이에 해소되지 않은 갈등을 드러내고 현실화해야 한다. 진정한 화해란 역사적 실천의 해결되지 않은 갈등을 현실화함으로써, 더 분명히 말하면 그것의 해결을 통해야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언론과 친노는 서로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다.

 

그런데도 상대편으로 인해 서로가 상처받았다. 양쪽 모두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된 것이다. 이런 점이 있기에, 그저 침묵하기보다는 해소되지 않은 갈등을 드러내 현실화하고 싶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터놓고 이야기해보고, 다름을 인정하고 손잡고 싶어서였다.

-[왕따의 정치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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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는 집단주의 문화의 산물이다.

 

집단주의는 효율성을 위해 위계적으로 편성되기에 필연적으로 ​권위주의를 낳는다. ​진보언론이 보수언론 못지않게 노무현을 싫어하는 데에는 문화적 갈등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대통령은 권위로 대통령의 존재를 인식시켜줬는데, 노무현은 권위라고는 조금도 없어 진보적 언론인들에게는 우습게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노사모와 신좌파는 노무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했다. 노무현이 권위적이지 않다고 해서 신좌파 시민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직장 내에서도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 친노 왕따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대중과 SNS를 하거나 팟캐스트에 나오는 것조차 싫어하고 욕하는 교수들이 있다. 그 이유는 '교수의 권위를 떨어뜨려 교수들을 단체로 욕 먹인다'는 것이다.

내가 대중과 소통하느라 연구를 게을리한다면 얼마든지 욕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강의를 하나 면제받을 만큼 연구 실적이 많은 사람 중 하나다. ​내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정치평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경험적 연구에 기초한 연구 결과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권위적인 문화에 젖은 사람은 내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듯하다. 게다가 교수 한 사람이 교수 집단 전체를 욕 먹인다는 사고는 집단주의저거 발상의 전형적인 예다.

정봉주 전 의원에 따르면, 사실 광고 효과는 정규 라디오 방송이나 TV보다 팟캐스트가 더 높다고 한다.

 

나만 해도 팟캐스트 광고를 듣고 베개, 보험, 중고 자동차 등을 구매하니 광고 효과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문화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팟캐스트에 광고하는 걸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왕따 현상은 질투심이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정봉주 전 의원은 민주당이 정청래, 표창원 두 의원을 징계한 심리에는 이들이 친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기와 질투심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에 질투하다가 좀 잘못한 게 나오니까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으로 집중 공격했다는 것이다.

​질투심이야말로 집단주의 문화의 대표적 유산이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조차 하지 않는다.

 

(필자: 니체가 이야기했던 르상티망도 일종의 시기심, 질투심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면 집단주의 문화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겠다.)

 

​김연아에게는 늘 김연아가 경쟁 대상이었다. 자기 스스로를 이기는 게 개인주의자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단주의자들은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질투심이 많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집단주의 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기본적으로 집단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심리학자인 타지펠 교수의 유명한 실험연구가 있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점이 많은 그림을 보여주고 점이 몇 개인지 질문한다.

 

점이 '몇 개 이상'이라고 답하는 사람과 '몇 개 이하'라고 답하는 사람으로 그룹을 나눈다.

 

혹은 그림을 두 개 보여주고 어떤 그림을 더 좋아하는가에 따라 그룹을 나누기도 한다.

그런 다음 실험참가자들에게 상대 집단의 구성원과 자기 집단의 구성원에 대해 평가를 하라고 하면, 내 집단에 대해서는 호감을 보이고 상대 집단에 대해서는 비호감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처음 만나 임의적 집단으로 나뉘었을 뿐인데도 자신이 속한 집단 사람들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이 실험 결과는 집단주의 문화가 인간의 DNA에 장착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집단주의가 정치적으로 확대되어 나타난 것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고, 트럼프와 유럽 포퓰리스트들의 백인 우월주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왕따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집단주의라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을 죽였지만, 지금은 ​죽이지는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친노 왕따도 언어공격과 따돌림을 통해 집단적으로 고통을 주는 아주 부도덕한 행동이다.

학교에서든 정치에서든 왕따 행위는 사회적으로 규제 받고 지탄 받아야 한다. 정부는 필요하면 법적 제재를 통해서라도 이를 엄단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집단주의가 왕따를 만들어내고 왕따는 이중 잣대를 사용한다. 내 집단에는 호의적으로, 그 외 집단에는 비판적으로 말이다.


진보 언론은 노무현과 문재인이 최고의 권력이었기에 언론으로서 자신들의 의무를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가 1등을 달리던 때, 그에게 진보언론이 휘둘렀던 무딘 칼날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2부에 계속-

-[왕따의 정치학]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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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우파나 좌파는 강한 국가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극과 극은 만난다고들 한다. 말발굽 모양처럼 극은 만나게 되어 있다.

극좌였던 일부 세력들이 극우인 뉴라이트 창설에 혁혁한 역할을 했던 것처럼....

우리는 정과 반이 아닌 합 어딘가에서 더욱 이치에 맞는 길을 모색해야 할지도

모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파는 국가가 재벌들에게 특혜를 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세계적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좌파 또한 강력한 국가가 재벌을 규제하고 보편적 복지와 소득 분배를 통해 경제적 평등을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동문'과 '한경'에 나타났던 제왕적 대통령제 프레임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한편으론 가장 민주적이었던 노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제왕​적 대통령으로서 경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제발 부탁하건대, 어느 쪽이든 하나만 택하시라.

제왕적 대통령이 싫다는 건가, 제왕적 대통령이 되어달라느 ㄴ건가.

보수 언론이야 비논리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치공세를 하기 위해 던지는 거지만, 소위 진보 지식인들이 원하는 게 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길이 없다.

-[왕따의 정치학]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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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 전 의원에 의하면 나꼼수를 가장 많이 비판했던 게 진중권 교수와 허지웅 씨였다고 한다.

 

진 교수는 정치적으로 논쟁적이었던 다수의 사안에서 진보진영을 비판함으로써 보수언론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유일하게 양심적은 진보 인사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 

 

 

 

하지만 그로 인해 곽노현과 이정희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진 교수는 나꼼수가 제기했던, 박원순 후보가 제보궐 선거에 출마했던 선거 날의 디도스 공격에 대해서도 음모론이라고 비판했지만 모든 게 사실로 드러났다.

 곽 교육감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는 점이 헌재의 결정에 의해 밝혀지고, 이에 경향신문은 사과를 했다.

 

그런데 진 교수는 여전히 곽 교육감의 유죄를 확신하는 발언을 해 트위터리안의 빈축을 샀다.

 

그 과정에서 트위터상으로 설전이 벌어졌는데 진 교수는 나를 멍청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법률 토론을 하기로 약속한 시간에는 나에게 딸기나 먹으라며 토론을 피했다.

 

내가 나꼼수의 디도스 공격 의혹을 지지했을 때는 "교수가 나꼼수 같은 거나 좋아하다니 한심하다"고 말했다.

 

이런 비난은 진 교수가 엘리티즘에 얼마나 심각하게 젖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진보신당 출신의 정치인들이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인 것처럼 행동해 신좌파와 헷갈릴 때가 많은데, 가장 뚜렷한 차이문화에서 발견된다. 권위주의자는 남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반면, 개인주의자는 타인을 존중해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진 교수는 자기 혼자만 양심적으로 결벽하다는 듯 다른 모든 사람을 쉽게 단죄하고 칼질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때문에 많은 진보진영 인사가 곤경에 빠졌지만 사과도 하지 않았다. 2012년에는 안철수를 지지해 그를 따르는 많은 시민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대선 후 안철수를 비판하기 시작하면서도 자신의 판단 착오에 대해서는 사과 한마디 없었다.

  그러나 진 교수의 장점은 계속 자기발전을 통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그가 거의 신좌파가 된 듯하다.

 

그의 전두엽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전두엽이 쪼그라든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진보가 될 수 없다고 믿기에 나는 진 교수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믿고 있다.

 

대체로 뇌가 굳은 사람은 공감 능력이 없다.

 

한자리에서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정반대의 말을 할지언정, 어떤 경우에도 상대의 말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팟캐스트를 녹음하면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 후부터는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을 설득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했다.

 

구좌파는 너무나 멀리 있는 서양의 추상적인 민중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 이 땅의 이웃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허지웅 씨의 경우는 '사과를 하지 않으면' 영화에서라면 몰라도 정치적 발언의 기회는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시민징계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자는 주장이다.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사상에 대한 사전검열로,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반하는 것이라 어떤 정부에서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불법 행위다.

 

그러나 시민징계리스트자율적인 정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방송국에서도 마약, 도박, 불륜, 성매매, 음주운전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을 걸러내는 자체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시민징계리스트란 연예인만도 못한 언론인이나 논평가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리스트다.

 

블랙리스트의 원래 의미는 관찰 대상 명단이며 국가에서는 주로 테러리스트 같은 위험인물을 감시하는 데 사용한다.

 

시민들은 이를 낙선·낙천 대상자, 불매기업 명단으로도 사용한다. 김기춘, 조윤선의 블랙리스트가 문제가 된 건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인을 원천적을 배제하는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친일인명사전》처럼 시민징계리스트를 더 많이 만들어야 사회정의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도 결국 민주주의란 언론, 정부, 권력기관에 대한 시민의 통제를 어떻게 강화해할 것이냐 하는 문제라고 했다. 물론 나에 반대하는 사람 역시 이유를 밝히고 나를 리스트에 넣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과 이명박의 차이를 모르겠다'는 허지웅의 주장은 개인의 의견이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베와 친노가 똑같다'는 주장은 사과 없이는 용서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일베는 박근혜가 정상적인 대통령이 아니었기에 합법 사이트로 남아 있고 처벌받지 않을 뿐이지, 선진국 같았으면 혐오 발언으로 진즉 처벌받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를 처벌하느느 혐오 발언 금지법이 현재 입법 예고되어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통과되리라 믿는다.


 누구도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인종, 출신 지역, 연령, 성별, 게다가 약자라는 이유로 비하 발언을 들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일베는 사회적 약자만 골라서 비하했다.

 

유럽에서는 히틀러를 옹호한다든지, 히틀러가 했던 일을 미화하려 하거나 희석하려는 어떤 행위도 법적으로 처벌받는다.

 

외국인이나 고등학생이 '하일 히틀러Heil Hitler' 비슷한 행동만 했을 때도 처벌 대상이 됐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일베 회원을 '일베충'이라고 부르겠는가. 영화 분야야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만, 정치 분야에서는 허지웅씨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발언을 했으니 정치적 발언을 하고 싶으면 먼저 자시의 잘못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지웅은 노사모와 일베가 행태상 차이가 없고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주장했다.

 

적대적 공생관계란 우리나라의 보수 세력과 북한 정권의 관계처럼, 겉으로는 적대적으로 보이지만 서로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친노는 신좌파 시민들이고 유럽의 역사를 봐도 민주주의 발전에 꼭 필요한 바람직한 집단이다.

 

허지웅이 곽노현 교육감을 부당하게 공격해 친노들이 SNS에서 허지웅을 비판한 것이지, 가만히 있는데 괜히 그랬겠는가. 

 

그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대신 친노에게 원망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 와중에 〈변호인〉이 개봉되기 전 포스터에 친노는 10점, 일베는 0점을 주는 경쟁이 벌어진 것 같다.

 

 

일베가 0점을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1,100만이 넘는 영화의 흥행을 봐도 0점은 비정상적인 점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지웅은 친노가 영화를 보기도 전에 10점을 줬으니 일베와 같다고 주장했다. 친노는 이미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본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노무현의 삶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영화가 감동을 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노사모와 일베는 전혀 닮은 점이 없다.

 

노사모는 일베가 없이 탄생했고 일베가 사라져도 건재할 것이다. 따라서 노사모와 일베의 관계를 굳이 정의한다면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일베는 노사모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사회에 해를 끼치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노사모는 우리 사회가 벌전하는 데 꼭 필요한 원동력이고 민주주의 징치체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역사를 봐도 국민 중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극심한 경기 침체기를 제외하고는 점점 증가하는 게 이 분야 권위자인 잉글하트 교수의 예측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발언을 허용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의 발언만 허용한다. 민주주의를 위협에 빠뜨리는 일베의 자유는 사법적 처벌의 대상이라는 게 선진 민주국의 기준이다.


 

 팟캐스트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정봉주 전 의원이 허지웅 같은 연예인은 상대하고 싶지 않다며 내 말을 도중에 자꾸 끊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곤 했는데, 팟캐스트에는 마치 내가 이 부분을 몇 번이나 강조해서 말한 것처럼 나온다.

 

그런 연유로 편집 과정에서 그리된 것이지 이 부분이 그렇게 강조할 만큼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요즘에는 연예인이 정치평론가보다 발언의 영향력이 더 크다. 따라서 나는 허 씨가 사과하지 않고 공적인 매체를 통해 정치적 발언을 이어간다면 지속적으로 비판할 생각이다.

 

일베의 반사회적 성격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나는 허 씨에게 사고를 촉구할 생각이다.

 

 그러나 구좌파사과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해 잘 하지 않는다.

 

게다가 부자에게는 벌금형이 그다지 큰 제약이 되지 않지만 서민에게는 같은 액수의 벌금형이 중벌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일반인에 비해 연예인으로서 그는 사과를 했을 때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허 씨가 반드시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아도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의 과거 발언에 대해 후회나 유감의 뜻을 표한다면, 나는 사과를 받아들일 생각이다.

 

그가 사과를 통해 보다 활발히 정치적 발언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그래야 시민들도 일베의 반사회성, 범죄성에 대해 새로운 학습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왕따의 정치학]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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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파는 왜 탈권위주의 문화에 집착하게 되었나?

이 분야 권위자인 잉글하트 교수의 주장을 내 공저 논문에 축약해서 설명했는데 그 일부를 이곳에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옮겨보겠다.

잉글하트 교수는 매슬로(A. Maslow)의 욕구 단계 이론(hierarchy of needs)에 기초하여 발전시킨 탈물질주의론을 두 가지 하위 이론으로 설명한다.

 

 

하나는 '희소성의 이론'으로, 인간은 현재 상황에서 충족되거나 풍부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나 대상보다는 부족하거나 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추구하고 중시한다는 것이다.

 

탈물질주의자들이 ​물질적 가치나 조건을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충족되었으므로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지는 정신적, 정서적 가치를 더 추구한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사회화 이론'이다. 인간의 가치관은 성인이 되기 전에 형성되므로 청소년기에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이 만들어지면, 성인이 되어 환경에 변화가 있더라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잉글하트 교수는 몇 세대에 걸친 시계열 연구를 통해 전후 경제 성장을 경험한 세대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을 유지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반면 청소년기에 물질적 ​궁핍을 경험한 사람은 성인이 된 후 경제적 상황이 개선되더라도 여전히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지닌다고 한다.

 

탈물질주의자 중에 젊은이들의 비율이 높다고 해서 이것이 단순히 나이 때문에 그런 건 아니라는 뜻이다.

 

​잉글하트 교수는 개인의 교육 수준을 탈물질주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로 보았다.

 

교육 수준은 개인의 경제적 안정 외에도 수준 높은 의사소통 기술을 제공하고, 비슷한 지적, 사회적 능력을 갖춘 집단의 일원으로서 인적 연결망에 속할 가능성도 높여준다.

 

개인의 현재 소득이나 직업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추정했으나, 연구 결과 그 효과는 미미하거나 확실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탈물질주의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물가 상승이나 실업률 상승과 같은 당시의 사회, 경제 상황에 따라 단기적으로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중시할 수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 경제적 상황이 호전되면 이들은 장기적으로는 다시 탈물질주의 가치

관으로 돌아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는 탈물질주의 가치관이 비교적 약한 제 3세계나 구공산권 국가에서도 장기적으로는 탈물질주의 가치관의 증가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왕따의 정치학]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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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진보언론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선 지금도 과오가 있느니 없느니 이런 말을 잘 하지 않아요.

 

그런데 왜 노무현에게만 그렇게 가혹했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그 때는 선거제도가 1인 2표제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노무현 임기 초반에는 민노당이 원내 진입을 하지 못했지요.

정봉주: 그렇죠. 그때는 국회의원 투표수에 따라 정당 비례의석이 배분되었죠.

조기숙: 김대중 대통령 때 과거 선거 제도가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2002년에 1인 2표제, 즉 인물 외에 정당에 별도로 투표하는 제도가 도입됐죠.

 

2004년 17대 총선 때 새로운 제도가 처음 적용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적지 않은 의석을 가진 민노당을 만난 거에요. 노 대통령은 민노당을 '경직된 진보', 열린우리당을 '온건한 진보'라고 불렀어요.

 

 

 

유럽식으로 표현하면 민노당은 구좌파(올드레프트), 참여정부는 신좌파(뉴레프트)라고 부르는 게 가장 정확한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스스로는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민노당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진보가 아니고 보수인가?' 하는 고민이죠. 그런데 우리 팟캐스트를 듣고 이제 의문이 풀렸다고 해요. '아, 내가 신좌파였구나' 하고요

​정봉주: 내가 우리 미권스 모임에 갔더니 회원들도 그런 얘길 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이렇게 생각했대요.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표현했던 경직된 진보는 아닌데 계속 광장에 촛불 들고 나오고, 정봉주를 만나니까 행복해. 그럼 정봉주는 또 뭐지? 정봉주는 진보라고 하는데 통합 진보당이나 이쪽하고는 결이 다르고. 이건 뭐지?' 그러다가 구좌파, 신좌파에서 딱 이해를 했다는 거예요

​'내가 구좌파가 아니라 신좌파로구나' 하고요. 그걸 보고 제가 엄청 똑똑해졌다면서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대번에 <전국구>라고 하더라구요.

 

​조기숙: 20세기 좌와 우는 경제적으로는 서로 대척점에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물질주의라는 점에서 같았어요.

물질주의는 우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거에요. 빈곤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전쟁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물질주의 문화는 집단주의를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위계적이고 경직될 수 밖에 없어요.

세계 어디든 전통사회는 굉장히 위계적이었어요. 명령하면 복종하잖아요. 아직도 군대나 의사 집단 같은 데는 상당히 위계적이죠.

정봉주: 그렇죠. 오히려 교도소는 다 풀렸어요. 하하

조기숙: 생명을 지키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곳에는 위계질서가 있어야 해요

조은나래: 정신을 딱 차려야 하니까.

조기숙: ​인간이 자연재해와 맞서 생존해야 했던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용납될 수 없었어요.

 

마을에서 리더가 명령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협력해야 농사도 지을 수 있고, 자연재해의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었거든요. 위기와 싸우는 곳에서는 권위주의 문화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정봉주: 친노들은 또 저를 좋아해요

 

조기숙: 문화 때문에 그래요. 21세기의 키워드가 문화죠. 20세기에는 우리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 자본가의 편이냐 노동자의 편이냐가 중요했지만요.

정봉주: 근엄한 이념적 색채로 갈랐던 거 아니에요?

조기숙: 그렇죠. ​좌든 우든, 어떤 위계적인 질서가 있는 권위주의 문화였는데 그걸 한마디로 집단주의라고 해요.

 

​20세기는 집단주의 문화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21세기는 좌우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탈이념적 성향​을 보여요.

 

 21세기는 개인주의 문화냐, 집단주의 문화냐 하는 게 갈등의 중심이 되죠. 이념적으로만 보면 노무현이나 진보언론이나 둘 다 진보인데 왜 갈등했냐. 그것도 구좌파와 신좌파의 분열이라는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죠. 정확히 말하면 문화적 갈등이에요

-[왕따의 정치학]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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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동일한 개념이라고 생각해서 좌는 진보이고 우는 보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건 단지 20세기에 한해서 그랬을 뿐이다. 둘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자본주의(우)가 보수고 사회주의(좌)가 진보였으며,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구소련이 해체된 러시아에서는 자본주의(우)가 진보고 공산주의(좌)가 보수다.

좌와 우는 20세기의 경제체제 중 어느 쪽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정해지지만 진보와 보수는 다르다.

즉 기존 체제가 무엇이든 이를 지키고자 하면 보수, 변화를 원하면 진보가 되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 왕과 사대부가 권력을 놓고 갈등을 빚었던 것처럼, 유럽의 왕실과 귀족도 마찬가지였다.

​'대헌장'​으로 불리는 마그나카르타는 본래 영국 왕 ​존의 실정을 견디지 못한 귀족들이 왕에게 귀족의 권리를 다시 확인시킨 봉건적 문서였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서 또다시 왕권과 의회가 대립하게 되자 일반 평의회의 승인 없이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영국의 명예혁명은 1689년에 공포된 '권리장전'으로 압축되는데 이로써 의회의 입법권, 의회의 승인 없는 과세의 금지, 의회 내의 언론 자유 등 국민과 의회의 권리가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유럽에서도 투표권이 귀족에서 평민으로까지 확대된 것은 19세기 초였다.

 

표면적으로는 평민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것으로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르주아(유산)계급을 위한 것이었다.

​재산의 규모나 교육, 나이의 정도에 따라 행사할 수 있는 표의 수가 다르게 배분되었기에 남성 유산 계급의 전유물이 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에서는 보수당인 토리당이 귀족과 대지주의 권한을 지키려 했고, 진보당인 휘그당은 산업과 상업으로 성공한 유산 계급으로서 신분제 폐지와 자유로운 무역을 주장했다.

휘그당의 후예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활동한 자유당이다.

자유당은 19세기 중반 이후 자유무역 구현, 선거법 개혁, 공장법 제정 등의 개혁을 주도했다.

그렇지만 20세기 이후 ​노동당​이 대두하면서 이들 일부는 보수당에 흡수되고, 나머지는 내분을 거듭하다 졸지에 몰락했다. 자유당의 몰락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이론이 존재한다.

역사적 우연이라는 주장도 있고 리더십의 부재와 내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입헌 민주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부르주아 계급의 보수화가 진행되는데, 나는 자유당이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몰락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계급이 투표권을 획득하면서 새로운 진보 세력으로 등장하자, 보수화된 자유당 일부가 보수당으로 편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당의 재연합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로써 자본가가 보수가 되고 노동자가 진보가 되는 20세기의 특수한 현상이 시작됐다.

보수를 우, 진보를 좌로 보는 개념은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처음 탄생했다고 한다.

 

 

 


​자코뱅 클럽은 프랑스 전국에 지부를 가지고 체계적으로 혁명을 주도한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였다. 혁명 이후 이는 자코뱅파와 지롱드파로 분리되는데 둘은 왕정의 폐지와 공화정의 실현을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지롱드파는 부유한 지주, 사교계에 진입한 도시 상공 부르주아 계층으로 해외 망명 은행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반면 민중과의 접촉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온건공화파인 지롱드파는 1791년 120월부터 1792년 9월까지 입법의회를 장악했다.

 

 

이들은 1792년 4월부터 심해지던 경제위기로 민주의 불만이 거세지자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들은 반혁명파를 응징하고 정정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부르주아 자유주의를 안정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쟁에서 패하고 경제위기가 더욱 심각해지자 각지에서 반혁명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지롱드파는 이를 수습하지 못했고, 결국 1793년 민중봉기로 추방되었다.

반면 ​자코뱅파는 농민, 노동자, 수공업자 등 하층민이 지지 기반이었다. 자코뱅당은 공안위원회, 보안위원회, 혁명재판소 등의 기관을 설치해 반대파를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시행했다.

​이들은 농민에게 토지 무상분배를 시행했으며, 서구 체계 최초로 식민지를 포함한 노예제 폐지를 결의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마르크스는 자코뱅당을 공산주의의 사상적 뿌리로 높이 평가했다. 이 시기 우연히 자코뱅파가 국민공회에서 왼쪽에 앉고 지롱드파가 우측에 앉게 된 게 죄파와 우파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19세기 말 영국의 자유당은 정치적으로는 개혁적이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유산 계급의 사유 재산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노동당이 등장해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진보적인 의제를 제시하면서 자유당은 사라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 많은 진보 지식인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19세기 영국의 자유당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노무현만 때리면 당시 제 3당이던 민노당이 제1 야당이 되는 줄 알았다고, 민노당 출신 박용진 의원이 2012년 '국민의 명령'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노무현은 19세기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

 

노무현은 21세기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이 점에소 소위 진보 지식인과 언론이 노무현 뿐만 아니라 노무현의 지지자인 친노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왕따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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