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는 집단주의 문화의 산물이다.
집단주의는 효율성을 위해 위계적으로 편성되기에 필연적으로 권위주의를 낳는다. 진보언론이 보수언론 못지않게 노무현을 싫어하는 데에는 문화적 갈등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대통령은 권위로 대통령의 존재를 인식시켜줬는데, 노무현은 권위라고는 조금도 없어 진보적 언론인들에게는 우습게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노사모와 신좌파는 노무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했다. 노무현이 권위적이지 않다고 해서 신좌파 시민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직장 내에서도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 친노 왕따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대중과 SNS를 하거나 팟캐스트에 나오는 것조차 싫어하고 욕하는 교수들이 있다. 그 이유는 '교수의 권위를 떨어뜨려 교수들을 단체로 욕 먹인다'는 것이다.
내가 대중과 소통하느라 연구를 게을리한다면 얼마든지 욕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강의를 하나 면제받을 만큼 연구 실적이 많은 사람 중 하나다. 내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정치평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경험적 연구에 기초한 연구 결과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권위적인 문화에 젖은 사람은 내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듯하다. 게다가 교수 한 사람이 교수 집단 전체를 욕 먹인다는 사고는 집단주의저거 발상의 전형적인 예다.
정봉주 전 의원에 따르면, 사실 광고 효과는 정규 라디오 방송이나 TV보다 팟캐스트가 더 높다고 한다.
나만 해도 팟캐스트 광고를 듣고 베개, 보험, 중고 자동차 등을 구매하니 광고 효과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문화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팟캐스트에 광고하는 걸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왕따 현상은 질투심이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정봉주 전 의원은 민주당이 정청래, 표창원 두 의원을 징계한 심리에는 이들이 친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기와 질투심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에 질투하다가 좀 잘못한 게 나오니까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으로 집중 공격했다는 것이다.
질투심이야말로 집단주의 문화의 대표적 유산이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조차 하지 않는다.
(필자: 니체가 이야기했던 르상티망도 일종의 시기심, 질투심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면 집단주의 문화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겠다.)
김연아에게는 늘 김연아가 경쟁 대상이었다. 자기 스스로를 이기는 게 개인주의자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단주의자들은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질투심이 많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집단주의 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기본적으로 집단주의는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심리학자인 타지펠 교수의 유명한 실험연구가 있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점이 많은 그림을 보여주고 점이 몇 개인지 질문한다.
점이 '몇 개 이상'이라고 답하는 사람과 '몇 개 이하'라고 답하는 사람으로 그룹을 나눈다.
혹은 그림을 두 개 보여주고 어떤 그림을 더 좋아하는가에 따라 그룹을 나누기도 한다.
그런 다음 실험참가자들에게 상대 집단의 구성원과 자기 집단의 구성원에 대해 평가를 하라고 하면, 내 집단에 대해서는 호감을 보이고 상대 집단에 대해서는 비호감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처음 만나 임의적 집단으로 나뉘었을 뿐인데도 자신이 속한 집단 사람들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이 실험 결과는 집단주의 문화가 인간의 DNA에 장착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집단주의가 정치적으로 확대되어 나타난 것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고, 트럼프와 유럽 포퓰리스트들의 백인 우월주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왕따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집단주의라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을 죽였지만, 지금은 죽이지는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친노 왕따도 언어공격과 따돌림을 통해 집단적으로 고통을 주는 아주 부도덕한 행동이다.
학교에서든 정치에서든 왕따 행위는 사회적으로 규제 받고 지탄 받아야 한다. 정부는 필요하면 법적 제재를 통해서라도 이를 엄단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집단주의가 왕따를 만들어내고 왕따는 이중 잣대를 사용한다. 내 집단에는 호의적으로, 그 외 집단에는 비판적으로 말이다.
진보 언론은 노무현과 문재인이 최고의 권력이었기에 언론으로서 자신들의 의무를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가 1등을 달리던 때, 그에게 진보언론이 휘둘렀던 무딘 칼날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2부에 계속-
-[왕따의 정치학]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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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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