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론 #변증 #철학 #신정론 #이슈 #앨빈 #플랜팅가 #악 #고통의 #문제 #기독교적 #답변'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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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근거한 가장 강력한 주장>

 

악의 존재가 하나님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결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 논증은 없다.

 

아울러 악에 근거한 증거론적 혹은 개연론적 논증 가운데 진지하게 고려할 만한 것도 없다.

 

이 정도면 됐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일부 사람에게는 고통과 악이 어느 정도 문제가 된다. 구약성경에는 그런 사례가 가득하다.

 

-> (과연 제대로 고통을 당하면 '어느 정도'라고 표현할 수준인지는 의문이긴 하지만...논리상으로는 음..

공부할 수록 어려운 영역.....이게 공부해서 될 일인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이런 고통스러운 절규를 토해 내신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

 

시편 22편의 말을 반영하는 외침이다.

 

-> (고통 속에서는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욥기는 악을 보여주는 사실과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샅샅이 그리고 강력하게 탐구한다.

 

욥은 분개한다.

 

그는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 생각하고, 하나님께 직접 그 이유를 설명하고 정당화하라고 도발한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자신이 겪는 잔인한 고통 때문에 혹은 자신과 가까운 누군가의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분노했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 찾아온 고통과 악 때문에 하나님께 분개할 수 있고, 불신할 수 있으며, 거부하고 적대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으레 유신론 믿음의 파기자를 산출하지는 않는다.

 

에수나 시편의 시인이나 욥도 유신론 믿음을 포기하려 한 것 같지는 않다.

 

이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유신론 믿음의 파기자라기보다는 영적인 혹은 목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 (이런 논증은 상당히 좋다....영적, 목회적..... 그 이상 표현은 없으려나?....감정적인 문제?......뭔가 2% 아쉽다. 극심한 고난 앞에서는 사실 이 정도 표현이 와닿긴 힘들다.)

 

 

어쩌면 하나님은 내 아버지나 내 딸이나 내 친구 혹은 내가 가장 끔찍한 고통을 겪게 하실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분명히 그분은 신이 가진 멋진 특질을 모두 갖고 있겠지. 그분이 이 지긋지긋한 일을 허용한 것도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을 거야. 요컨대 내가 으 이유를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나 같은 사람은 그분의 속내를 알 수가 없어.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일 테니. 그러나 그분이 허용한 일은 끔찍해. 정말 지긋지긋해!"

 

나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악을 쓰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훌륭하고, 장엄하고, 전지하고, 전능할 수도 (심지어 온전히 선할 수도) 있겠죠. 온통 탁월한 것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하는 일이 아주 지긋지긋하게 싫어요."

 

이런 문제는 사실은 증거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며, 유신론의 파기자도 아니다.

 

-[6부] 에 계속-

-[지식과 믿음], 앨빈 플랜팅가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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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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