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라는 꽃'에 해당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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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로, 굳이 소개를 하지 않아도 친숙한 책입니다. 잔잔하지만 깊이 있는 말과 글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모두가 귀가할 무렵 문을 열지. 손님이 있느냐고? 생각보다 많아."


아베 야로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심야식당'은 주인장 마스터의 중저음 내레이션으로 문을 연다.


영화 '심야식당'에는 막장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노와 복수의 요소가 없다.


게다가 극의 전개 속도가 한 없이 느린 탓에 영화를 보는 내내 감칠맛을 내는 MSG를 한 숟가락도 넣지 않은 요리를 천천히 먹는 것 같았다.

 


다른 한편으론, 간이 안 된 콩나물국처럼 싱거운 결말과 온돌방 같은 따듯함이 이 영화의 미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이 참 많은 듯하다.


해가 지고 상점마다 불을 밝히는 늦은 밤, 일상에 지친 이들이 무거운 몸을 이끈 채 낡은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뒷골목 후미진 곳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온다.


사랑을 잃은 여자, 꿈을 잊은 젊은이,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그들은 마스터의 '입'이 아닌 '귀'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스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로 음식을 준비한다.

 

작은 화로를 이용해 마밥을 끓이고 케첩 소스를 뿌린 스파케티를 접시에 올린다.

 

허름한 식당에 옹기종기 모인 이들은 가족과 친구, 좋은 사람과 나누었던 시간과 추억을 한데 버무린다.


그리고 삼킨다.

그리움을 먹는다.

그렇게 허기를 달래고

그곳에서 마음도 달랜다.


사실 마스터는 그리 친절한 주인장은 아니다.

 

단골이 아니면 좀처럼 알아채기 힘든 미소를 보이며 팔짱을 낀 채 손님을 맞이한다.

 

말수도 적다. 정확히 말하면, 말을 아낀다.


누구보다 굴곡진 삶을 견뎌온 듯한 그는 상대의 말을 자르거나 함부로 조언을 남발하지 않는다.

차분히 귀를 기울이며 "늘 먹던 거로?" 같은 말로 덤덤하게 대꾸할 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영화 속 마스터처럼 깊은 상처가 있을 법한 사람들은 타인을 향해 섣부른 위로를 하지 않는 듯 하다.


그들은 위로를 정제한다. 위로의 말에서 불순물을 걸러낸다고 할까. 단어와 문장을 분쇄기에 넣은 뒤 발효와 숙성을 거친 다음 입 밖으로 조심스레 꺼내는 느낌이다.


위로의 표현은 잘 익은 언어를 적정한 온도로 전달할 때 효능을 발휘한다. 짧은 생각과 설익은 말로 건네는 위로는 필시 부작용을 낳는다.


"힘 좀 내" 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이런 멘트에 기운을 얻는 이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힘낼 기력조차 없는 사람 입장에선 "기운 내" 라는 말처럼 공허한 것도 없다.

 

정말 힘든 사람에게 분발을 종용하는 건 위로일까, 아니면 강요일까.


동사 '알다' 가 명사 '알'에서 파생했다고 한다. '아는 행위'는 사물과 현상의 외피뿐만 아니라 내부까지 진득하게 헤아리는 걸 의미한다.


이를 사람에 대입해 봤으면 한다.

 

우린 늘 누군가를 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한두 번 대화를 나누거나 우연히 겸상한 뒤 "그 친구 말이야" "내가 좀 알지"라는 식으로 쉽게 내뱉는다.


하지만 제한된 정보로는 그 사람의 진면목은 물론 바닥도 알 수 없는 법이다. 상대의 웃음 뒤 감춰진 상처를 감지할 때,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싫어하는 것까지 헤아릴 때 "그 사람을 좀 잘 안다"고 겨우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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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저
Love & Free 러브 앤 프리
다카하시 아유무 저/이동희 역
예스24 | 애드온2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상대에 대한 '앎'이 빠져 있는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찬찬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 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내도 늦지 않을 거라고 본다.


-[언어의 온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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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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