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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 기니스의 [소명] 에 나온 이야기로서 정확한 출처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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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는 20세기 예술의 최정상에 위치한 천재적인 예술가다.


그러나 그는 대인관계 특히 여성과의 관계에서는 탐욕스러운 괴물이었다.


그는 자기를 '미노타우르스'(인간의 몸과 소의 머리를 가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라고 불렀으며, 조각가 지아코메티를 비롯한 친구들은 그를 '괴물'이라고 불렀다.

 

 


피카소는 "내가 죽는 것은 배가 난파하는 것과 같아서, 거대한 배가 침몰할 때처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배와 함께 가라앉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불행하게도 피카소의 말은 옳았다.


1973년에 91세의 나이로 그가 죽은 후 그와 가까웠던 세 명의 인물이 자살했고 - 두 번째 부인 자클린, 초기의 정부 마리 테레즈, 손자 파블리토 등- 여러 명이 정신적인 붕괴를 겪었는데 그 중에는 첫 번째 부인 올가와 가장 유명한 정부인 도라 마르가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파괴적인 종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된 것이었다.


피카소의 어머니는 첫 번째 며느리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나는 어떤 여자라도 내 아들과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 아이는 자기만을 위할 뿐 타인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야."

 

 


프랑소와즈 질로는 피카소의 세 번째 정부인데, 그보다 40세 연하로서 그와 함께 살았던 10년의 세월을 [피카소와의 삶](Life with Picasso) 에서 들려준다.


그는 너무나 강렬하게 그녀를 사로잡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와 함께 있지 않으면 숨을 쉬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고 썼다.


그러나 피카소가 시인한 것처럼 그의 세게에는 오직 두 종류의 여인 - 여신과 신발 흙털개- 이 있을 뿐이었다.


모든 여인은 전자로 시작했다가 조만간 후자로 변하게 마련이었다.


질로 이전의 정부였던 도라 마르는 결국 피카소에게 "당신은 평생 어느 누구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몰라요" 라고 말했다.


한번은 질로가 그에게 '악마'라고 말하자 피카소는 피우고 있던 담배로 그녀의 뺨을 지졌다. 그리고 손을 떼면서 "아직은 당신을 바라보고 싶어" 라고 그 이유를 말했다. 피카소는 질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내를 바꿀 때마다 이전의 여인은 묻어버려야 해. 그런 식으로 그들을 없애 버리는 거야... 그 여인을 죽이고 그녀와 관련된 과거를 깨끗이 씻어 내는 거지."

 


질로는 이것을 피카소의 '푸른 수염 콤플렉스' (푸른 수염의 사나이는 6명의 아내를 차례로 죽인 동화 속의 잔인한 남자다) 라고 불렀고, 이것이 그의 무신론과 관계가 있음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자신은 니체의 추종자라고 공언했던 피카소는 신은 죽었다고 주장했으며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이다" 라고 중얼거리곤 했다고 한다.


피카소가 창조한 허무주의적인 공허함 속에는 악마적인 힘이 있었으며, 그것이 그로 하여금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어 내도록 하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분명 파블로 피카소는 위대한 화가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임에 틀림없다.


그는 파괴성을 드러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다른 방향을 향한 동경심을 보였다.


가장 뚜렷한 예로, 질로가 그의 모순을 발견하고 놀란 사건이 있었다.


피카소와 같이 생활한 지 3년째 되던 어느 날 그들은 프랑스 남부의 앙티브에 있었는데 갑자기 피카소가 질로를 조그마한 교회로 데리고 가서는 그녀를 앞선 구석진 곳으로 이끌었다.


"여기서 나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맹세해 주었으면 하오." 하고 피카소가 말했다.


"나 자신이 그 정도로 헌신하길 원하기만 한다면 어디에서나 그렇게 맹세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여기서죠?" 라고 질로가 되물었다.


"그저 아무데서나 하는 것보다 여기서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오"라고 그가 말했다.


"여기서든 다른 곳에서든 마찬가지예요"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아니오 글쎄, 물론 그 말이 맞소 다 마찬가지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요. 누가 알겠소. 교회에 뭔가 특별한 게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 모든 걸 좀더 확실하게 해줄 수도 있으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않소?"


그래서 질로는 맹세했고 피카소 또한 맹세를 했으며 그는 만족스로워하는 표정이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피카소의 고집은 일종의 미신이었는가, 아니면 직관이었는가?


피카소가 미신적이고도 운명론적인 인물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질로에게 "모든 사랑은 예정된 기간 동안만 지속될 수 있을 뿐이다." 라고 서글픈 어조로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의 관계가 끝날 날이 하루씩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고 썼다.


다른 한편 그 또한 치유 불가능한 갈망을 갖고 있었다. 그는 "나는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채 죽을 것 같다" 고 말한 적도 있다. 결국 옛날 노래 가사와 같이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면 영원이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그러한 동경은 인간 관계의 연약성 너머를 향한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준거점을 찾는 절규다. 오직 영원한 표준만이 영속적인 사랑을 향한 욕구를 해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무신론자 피카소는 하나님을 부인했지만, 그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이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교회로 가서 서로에게 사랑을 맹세하며 스스로 책임을 지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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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케노시스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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